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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브라이슨 발칙한 유럽산책 - 발칙한 글쟁이의 의외로 훈훈한 여행기 ㅣ 빌 브라이슨 시리즈
빌 브라이슨 지음, 권상미 옮김 / 21세기북스 / 2008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잔인한 4월. 성큼 다가온 봄기운을 느껴야 할 시간인데 이제야 봄이 슬슬 다가오는가 싶은 기분이 든다. 미친 개나리라는 욕설을 감내하며 2월에 꽃을 피우던 개나리(따지고 보면 미친 건 개나리가 아니고 날씨였고, 날씨가 미친 것은 결국 인간들이 미친 때문이겠지?)들도 3월이 다 되어서야 피기 시작했다. 혹자는 이를 이상기온 때문이라며 투덜댔고, 또 어떤 이는 지구가 살기 위해 몸부림치는 증거라고 했으며, 또 어떤 이는 이 모든 일이 인간들이 벌여온 일에 대한 죗값이라며 반성했다. 여튼 4월 하순이 되어 드디어 솜옷을 살짝 벗어두고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어느 새 벚꽃은 지기 시작했고 개나리 역시 노란꽃보다는 연두잎이 더 무성하게 보이고 있다. 봄처녀는 아니건만 어딘가로 떠나고픈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다. 그래서일까? 요즘 손에 잡히는 책이 모두 여행기이다. 기억에도 까마득한 체코 여행을 떠올려 보려고 집어들었던 '윤미나'의 '굴라쉬 브런치'도 가슴을 마구 요동치게 만들더니 '빌 브라이슨'의 '발칙한 유럽산책' 또한 술렁이는 가슴에 여행가고픈 욕구를 충동질하고 있다. 가지 못할 상황에 처해 있다 보니 더욱 가고픈 마음이 간절해진다고나 할까? '빌 브라이슨'은 여행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p383 나는 흐르는 물을(호텔 화장실에서 샤워하려다 녹물) 보면서 변기에 앉아 여행이란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생각했다. 집의 안락함을 기꺼이 버리고 낯선 땅으로 날아와 집을 떠나지 않았다면 애초에 잃지 않았을 안락함을 되찾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돈을 쓰면서 덧없는 노력을 하는 게 여행이 아닌가
그러게 말이다. 편안하고 일상적인 이 모든 안락함을 뒤로 하고 우리는 왜 굳이 여행을 떠나고 싶은 것일까? 누군가의 말처럼 답답한 지구를 벗어나고 싶으나 그게 잘 안되니까 내가 살고 있는 곳이라도 벚어나려고 하는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들은 모두 지금 여기로 돌아오고 싶어서 여행을 떠나는 게 아닌가라던 작가의 말이 생각난다. 지루하고 흥미 없어 보이는 일상이 지닌 커다란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 우린 간혹 어리석게도 먼길을 돌아오기도 하니 말이다. 이런 면에서는 합리적이지 않은 인간의 어리석음이 꼭 필요한 요소 같아 보이기도 한다. 간혹 어리석음으로 인해 얻는 여행의 기억을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떠날 수 있을까라는 망설임, 떠나기 전의 설렘, 떠난 후의 아련함, 어느 것 하나 버릴 수 없는 감정들이다. 브라이슨 덕분에 2000년대의 분위기와는 사뭇 다른 과거의 유럽을 대신 돌아볼 수 있었다. '나를 부르는 숲'에서 받은 감동만큼은 아니지만 이번 여행 역시 그의 유쾌한 글에 담김 기발한 생각과 행동 덕분에 웃음 지을 수 있었다. 그러나 '나를 부르는 숲'에 대한 감동이 너무나 컸던 관계로 이번에는 별 하나 반 정도는 빼고프다. 그나 별이 1/2이 없는 관계로 하나 반올림 하여 별 4개 준다. 왜냐구? 빌 브라이슨의 글맛이 매력적이라는 사실은 인정할 필요가 있으니까. 원서로 읽을 능력이 된다면 얼마나 더 유쾌했을까를 생각하면 아쉽기도 하다. 망할 영어실력 같으니라구...
2010년 4월 21일 수요일 얄밉게 나온 봄햇살을 바라보며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