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거짓말 창비청소년문학 22
김려령 지음 / 창비 / 200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p210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놓고 장난치는 거예요. 나는 사과 했어, 그 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 

 
   

내가 이 소설에서 기억하는 문장은 이 정도이다. 상처받은 자의 감정을 저리도 적나라하게 표현한 문장. 이런 문장은 겪어보지 않은 자는 결코 말할 수 없다. 물론 저 감정을 경험한 자만이 이 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경험하지 않았다고 해서 모르는 것이 아니라 경험한 자들이 더욱 오롯이 이 묘사를 가슴으로 음미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 부분을 읽고 있으니 나도 모르게 '온다 리쿠'의 <호텔 정원에서 생긴 일>에 묘사되어 있던 '애정과 증오'의 차이점에 대한 묘사가 떠오른다. 애정이 따스한 햇살이라면 증오는 이글이글 타는 숯이라고 했던가? 위험하지만 매력적인 숯불이 시시각각 조금씩 다른 것으로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것은 흥미롭다고 그녀는 말했더었다. 여튼 다시 이 이야기로 돌아오자. 

이 이야기는 학교에서 벌어지는 아이들의 심리와 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청소년 문학이라는 이름답게 학교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위주로 이야기를 풀어가고 있는데 그 사이사이에 읽히는 여러 가지 감정의 군상들은 결코 청소년 문제라고 치부할 수만은 없을 듯하다(학교라고 해도 아이들만 있는 곳이 아닐진대 사람사는 일이 왜 없겠는가). 그럼에도 난 이 글을 읽으며 청소년들이 읽기에는 좋겠다라는 생각을 했다. 달리 말하면 내가 읽기는 좀 지루했다는 뜻이고 살짝 실망했다는 뜻도 포함하는 바이다. 작가의 전작 '완득이' 역시 청소년 문학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적나라하게 다루고 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건과 그에 따른 교훈이 적절한 양념으로 버무러져 있기에 읽기가 심심치 않았다. 소외된 자들의 삶과 그들이 생을 마주하는 방식이 참신했고 살아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우아한 거짓말'이라는 매력적인 제목과 생생한 청소년의 이야기를 그릴 줄 아는 작가의 이름을 선뜻 선택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번 책은 어째 날것이라는 생각만 들 뿐 깊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청소년 문학보다는 동화에 가깝다는 느낌? 소외당하고 상처받았던 기억이 얼마나 가슴 절절했기에 지금 쓴 책에서조차 그 아픈 감정이 그대로 드러나나 싶어 안타깝긴 하다. 그러나 좀더 다듬어진 다음 작품을 기대해 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