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8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선영 옮김 / 비채 / 2009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람들에게 학교는 어떤 모습으로 기억되고 있을까요? 그곳에서 생활하는 학생과 교사들은 그 속에 있는 사람 나름으로, 그곳을 졸업한 사람은 또 그들 나름으로, 또한 그 속에 있는 사람과 엮여 있는 수많은 사람들, 학부모들과 교직원들의 가족들까지 모두 다른 제각각의 모습으로 학교의 모습을 상상하고 있을 것입니다. 학교 문턱도 밟아보지 못했다던 과거세대를 제외하고 학교라는 곳을 거치지 않고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아마 거의 없다시피 할 것입니다. 성실하게 학교 생활을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의무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그곳을 한 번은 거쳐가기 마련이지요. 그렇기에 정치적 사안과 달리 교육 문제나 학교 문제가 화젯거리로 오를라치면 저마다 전문가가 되어 핏대를 세우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이렇게 모두가 거쳐간 곳인 만큼 그곳에는 참으로 많은 이야기가 간직되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들이 나름 다양한 세대를 포함하고 있다고 한들 학교만큼 세대가 다양할까요? 10대부터 20대, 30대까지, 하물며 60대까지 모두들 사각형의 상자 속에서 추억을 만들고, 기억을 만들고, 상처를 입고, 상처를 치유하며 살아가고 있지요. ‘여섯 번째 사요코’라는 소설에서 ‘온다 리쿠’는 이렇게 말하더군요. 교실은 하나의 그릇이 되어 매년 사람들을 담았다가 쏟아내기를 반복한다고 말이지요. 늘 봐 왔던 똑같은 교실 속에서 교사와 학생이 어우러져 생활하는 그렇고 그런 이야기는 결국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미나토 가나에’는 학교에 대한 아주 흥미진진하고도 괴기스러운 이야기를 하나 더 추가하고 있는 셈이네요. 
  

  여고생들의 추억이 서린 아련한 학교의 모습이 아니라 살인사건이 얽힌 사랑받지 못한 사람들의 서글픈 이야기가 가득한 소설은 읽는 내내 저의 마음을 무겁게 했습니다. 일본의 남다른 엽기적인 행적이라 치부하기엔 시절이 너무 흉흉한 요즈음이 더욱 실감되었기 때문이겠지요. 갑자기 추워진 날씨 속에 마음까지 더 스산해졌다고나 할까요? 이 소설에는 그닥 많은 인물이 등장하진 않습니다. 자신의 아이를 잃은 한 교사의 담담한 고백으로 시작하는 도입부는 사람을 확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습니다. 이제 겨우 초입인데도 불구하고 엄연히 사건의 경위와 범인까지 알려주는 1장의 내용은 사람을 섬뜩하게 느껴지게 합니다. 그런데 책을 덮어버리게 하기보단 눈앞으로 책을 더 끌어당기게 만드는 것이 작가의 힘일 테지요. 특별한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현란함이 있다기보다는 자분자분 이끌어가는 글의 전개가 사람의 손을 더욱 끈끈하게 잡아당긴다는 게 적절한 표현일 듯 싶습니다. 가해자들의 고백과 가해자 부모들의 고백들. 이젠 더이상 누가 누구의 피해자이고 가해자인지도 모를 상황들까지 머리 속은 혼란스럽기만 합니다. 그렇기에 스포일러처럼 소설의 내용을 다 일러바친다고 해도 글을 읽으면서 느끼는 스릴감은 여전할 듯 하네요. 그게 작가의, 번역자의 역량이었겠지만요. 

  이번 소설을 읽고 ‘한 사람의 인성을 형성하는 데에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이 관여하는구나’라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단순히 한 명의 범인이 정해져 있다면 그를 향해 돌을 던질 수 있을 뿐 아니라 ‘나는 범인이 아니니까, 나는 선한 편에 있으니까’라고 위안까지 얻을 수 있는데 범인을 양성한 사회를 고발할 즈음에는 도대체 저는 어디로 숨을 수 있단 말입니까. 우리가 죽어 마땅한 범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양산한 것은 결국 우리의 무관심이라는 것을 살아갈수록 더욱 실감하곤 합니다. 내 가족의 안전과 부귀를 위해 울타리를 튼튼히 할 수록 울타리 밖으로 밀려난 사람들의 적개심은 더욱 커져만 갈 것입니다. ‘나만’이 아니라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아야 할 때가 지금인 것만 같습니다. 이 시기를 놓치면 더욱 겉잡을 수 없는 사태가 올 것 같긴 한데 도대체 제가 무엇부터 해야 할른지 모르겠네요. ‘슈야’와 ‘시모무라’들이 한 걸음 더 내딛기 전에 내가 무엇인가 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가는 말이 고우면 사람을 얕본다’라는 웃지 못할 속담이 판치는 세상입니다. ‘가는 말이 고우면 오는 말이 곱다’라는 속담이 통하는, 서로 배려할 줄 아는 세상을 우리 모두가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럼 우리의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조금 더 밝아지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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