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부탁해
신경숙 지음 / 창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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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처럼 바쁜 나날들이 없다 싶다. 집안 일과 회사일에 치여 정신없이 돌아다니면서도 읽고 싶은 책을 밀쳐둔 마음이란. 늘 그렇듯이 책을 사대는 속도를 읽는 속도가 따르질 못한다. 바쁜 순간순간을 보내면서도 자투리 시간을 내어 이번 달에 읽은 책이 벌써 십여 권. 세상엔 공짜가 없구나라는 생각이 처절하게 드는 날들이다. 예전에 한 권씩 하던 알라딘 서평단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4기 알라딘을 신청했더니 덜커덕 되어버렸다. 소설을 주로 읽는 듯 싶어 이참에 인문서적을 읽어야지 싶어 '인문/사회' 부분을 신청했는데 되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기쁨도 잠시. 일주일이 멀다 하고 두 권씩 배송 되어 오는 책들이 책상에 쌓이고 쌓이고 쌓였다. 거기다 독서모임까지 참여한 덕분에 과히 나의 책상은 책들의 천국이다. 직장동료들은 내가 책을 읽을 때마다 여유로워 보인다고 말을 하며 한가하다는 듯 나를 흘끔거리고 있으나 5분 10분 남는 시간을 활용하는 나의 독서는 그야 말로 처절하기만 하다. 읽고 싶은 책과 읽어야 할 책과 읽는 책들의 틈바구니 사이에서 위태위태하게 나아가는 나날들. 그래도 행복하기는 하다.^^ 여튼 서평 쓸 서적을 읽는 틈틈이 꽤 오랜 묵혀 둔 책을 끄집어 들었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 뜬금없이 왜 이 책을 그 많은 무더기 속에서 집어들었나 싶다가도 읽을 때가 된 것이지 생각했던 것이다. 그녀도 말하지 않던가! 

 세상의 대부분의 일들은 생각을 깊이 해보면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뜻밖이라고 말하는 일들도 곰곰 생각해보면 일어날 일이 일어난 것이다. 뜻밖의 일과 자주 마주치는 것은 그 일의 앞뒤를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는 증거일 뿐.(p40)

  두 돌도 채 안 된 어린 것을 재워두고 딱딱한 서평 서적 속에서 잠시라도 놓여나보자는 생각에서 집어든 책이 바로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였다. 신경숙의 물 흐르듯 흐르는 문장력은 독서에 속도를 붙여줌은 물론 감동까지 주니 내 맘을 쉬어가는 독서로는 그만이다 싶었다. 역시나 나의 추측이 맞았다. 어제 밤에 집어든 책이 결국 지금에야 내 손에서 놓여났으니 말이다. 한창 베스트셀러에 진입하고 있던 책을 밀쳐둔 것은 유행에 편승하여 책을 읽고 싶지 않은 나의 모난 성격 때문이었지 싶다. 여튼 책을 읽는 내내 맘이 뭉클하고 아팠다. 신기하게도 엄마들의 모습은 니네 엄마 우리 엄마 없이 똑같다 싶었기 때문이다. 신경숙은 객관화된 시선을 통해 자신의 엄마를 찾아간다. 가족 누구도 몰랐던 엄마의 모습을 딸의 입장에서 추억하고, 남편의 입장에서 돌이켜 보며, 아들의 입장에서 반성해 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서서히 엄마는 엄마이기만 한 것이 아니라 '박소녀'라는 인생이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왜 우리는 이것을 이렇게도 늦게 깨닫는가 말이다. 

  대학 입학 3일 전. 덜커덕 정말로 덜커덕 아빠의 죽음을 접했다. 우리들은 도대체 무엇을 믿고 우리 자신의 부모들만은 영원히 살 것이라고 믿는 것일까? 집을 떠나 서울로 대학을 온 덕분에 아빠의 죽음을 더더욱 실감하지 못하고 그곳에 두 분 모두 있겠다 생각하며 대학시절을 보낸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문득문득 아빠의 빈자리를 느낄 때마다 공허했고 허탈했다. 그럴수록 엄마에게 잘 해야지 다짐하곤 했는데 나 역시 전화 수화기만 붙들면 엄마에게 큰소리가 나가고 투정이 나가기 십상이었다. 소설 읽는 내내 나는 주인공에게 굳이 나의 감정을 이입시킬 필요가 없었다. 그게 바로 나였으니까. 나는 그냥 나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기만 하면 되었다. 밥상머리에서 숟가락을 세게 내려 놓으며 대들던 기억들, 대문이 부서져라 닫으며 화난 표를 냈던 기억들. 어쩜 하나같이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기억들 뿐인 것인지. 나는 어떻게 해야 엄마가 서운하고 속상할 지 어디서 배우고나 온 것처럼 엄마 속을 뒤집었던 것이다. 그러한 일들을 알고도 하고 모르고도 했으니 나의 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 게다가 어디를 가나 나의 인물을 자랑해대는 엄마의 촌스러움에 몸둘 바를 몰랐다. 내가 보기엔 너무나 평범하고 모자라기까지 한 나의 얼굴을 들여다 보며 얼마나 뿌듯해 하는지 난 민망할 따름이다. 그런 내가 서서히 엄마를 돌아보기 시작한 것은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인 듯 싶다. 힘들게 아가를 낳고 나서 이제 서서히 우리 엄마를 돌아본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제 나도 엄마가 되어야 하는데 난 여전히 딸이기만 한 것이다. 친정엄마는 죄인이라더니 키워서 시집 보내놨더니 덜커덕 아가를 낳아 놓고 또 엄마한테 맡겨버린 대책없는 딸. 나는 그런 딸이다. 그래도 그런 철없고 무정한 딸에게 엄마는 말하셨다.  

"내가 니 나 노코 지대로 몬 키아서 미안시러븐데 니 새끼 키아감서 그거 지대로 함 해봐야 되지 싶다.  아 하나 키우는 기 내가 세상에 보답하는 길 아이겠나. 그라고 야 키우는 기 니 다시 키우는 거 아이겠나. 이번에는 제대로 해야 될낀데... "  

세상에 보답할 것이 있을 정도로 세상 덕을 보고 살아오지 않은 엄마가 내뱉는 이러한 말을 들으며 나는 그냥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주고 받는 셈을 철저히 하려는 나를 보며  '우물에 침 뱉아도 돌아와서 먹을 일 있대이. 절대 남한테 함부로 하지 말거래이. 그라고 몇 개 떠 빼앗을라카는 거보단 니가 손해보고 사는 기 훨씬 나은 기라.'라고 말하는 운명론자인 우리 엄마는 나에겐 생불이나 다름 없이 보이곤 한다. 그러한 너그러운 엄마 밑에서 나는 그 많은 세월 동안 무엇을 했던가. 그래서 엄마랑 이것저것 뒤늦게 시도를 해 본다. 모르면 그냥 잊으라고 퉁명스럽게 얘기하는 대신 핸드폰 문자 메시지 보내는 법도 알려드리고 컴퓨터 켜는 것도 알려드려본다. 한 달에 한 두 번 영화도 보러간다. 수도권을 돌고 돌다 지방에 도착한 영사기에서 돌아가던 필름으로 보던 영화는 화질이 그야말로 꽝이었다고 말하는 엄마가 극장 들어가더니 엄청 깜짝 놀라신다. 근 30년 만에 영화를 본다는 우리 엄마. 영화 한 편 관람비가 얼마인지 듣고서는 극장에는 안 가도 된다는 엄마에게 초대권이 왔다며 거짓말을 하고 극장에 다녀왔다. 돈도 들고 사람도 많아 정신없는 극장 같은 곳에 갈 것 없다며 집에서 텔레비전만 봐도 충분하다고 하더니 극장을을 다녀온 날부터 엄마의 얼굴에 웃음기가 헤붓하다. 언니에게도 전화를 해서 영화보고 왔다고 자랑이 대단하시다. 막내 덕에 호강을 한다면서. 그때 엄마가 처음 본 영화가 '아내가 결혼했다'였던가? 남자가 아닌 여자가 다른 남자를 선택할 수도 있는 세상을 보며 '세상이 망했구나'라며 탄식할 줄 알았던 엄마가 좋은 세상이 됐다면서 속이 시원하다고까지 말했을 땐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 엄마도 엄마가 아니라 여자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엄마가 좋아하실수록 내가 이제껏 이런 사소한 것조차 엄말 위해 한 게 없구나 싶어 마음이 아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이 아플수록 나의 목소리를 왜 이리 투박하고 화난 듯 나오는 것인지 나는 여전히 부족하고 철없는 딸임에 틀림이 없는 모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알려줄 때마다 잊어버리는 문자메시지 보내는 법을 엄마에게 또 한 번 알려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드라마 '아이리스'에 나오는 그 예쁜 '김태희'를 보면서도 "자보다 니가 더 이뿌구마."라는 턱없는 소리를 하실 때도 이젠 짜증내지 말고 "엄마가 오죽이나 예쁘게 낳아줬어야지."라고 곰살맞게 대꾸해야겠다. 분명 엄마 눈에는 내가 그리 보이리라는 것을 알기에... 그런데 어째 난 나의 딸을 그렇게 볼 자신이 없는 것은 왜일까? 다음 달에는 엄마랑 무슨 영화를 보러 갈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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