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쩜 전 그가 소개한 영화 11편 중에 본 작품이 하나도 없을까요? 대학생 때는 촌년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하자마자 서울의 어디가 어딘지 분간도 못하면서 그 위험한 허리우드(저 때는 위험한 곳이었지요) 극장이며 별별 상영관을 다 찾아다니곤 했는데 요즘은 넷플릭스다 유투브다 창구가 많음에도 다양한 영화는 커녕 보고픈 영화도 못 보고 있지요. 개봉을 안 해서 못 본 것이란 핑계를 대기도 민망한 상황입니다. 결국 보고자 하는 마음과 생각하고자 하는 마음의 결과가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겠지요.
이 글은 4년 동안 작가가 쓴 글을 모은 것이라는데 그의 논리가 너무나 명쾌해서 그의 의견대로 선거도 어서 추첨제로 바뀌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마저 들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챕터에서 소개된 영화 '소공녀(microhabitat)'(2017)라는 영화는 기어이 다운을 받아 보고야 말았습니다. microhabitat는 '미세하고 작은 것들이 사는 거처'라는 의미를 지닌 영어단어더라구요. 위스키와 담배 한 갑, 그리고 남자친구만 있으면 만사오케이인 여주인공 미소가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집을 포기하고 안정된 생활을 포기하는 모습이 인상깊었습니다. 집을 포기한 순간 그녀가 도움을 받고자 찾아간 예전의 밴드를 하던 멤버의 면면을 보면서 나는 어떤 인물에 속할까 생각해 보기도 했지요.
영화를 보는 내내 사람들에겐 저마다 소중한 것이 있기 마련이고, 그것을 지킬 권리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어른이 되면 어릴 적 품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것인지 아니면 그것이 사라져야 어른이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상대방이 소중하게 품고 있는 것을 어리석다고 멸시하는 것은 어른으로서 아니 사람으로서 하지 말아야 할 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작가가 글 속에서 소개한 '레이먼드 카버'의 <별것 아닌 것 같지만 도움이 되는>이란 작품 속에 나오는 이야기처럼 적어도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사람이 되지는 말아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이런 결심 역시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지고 잊혀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영화를 보면서 제가 어떤 인간인지 반성하고 격려하는 일은 멈추지 않으려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