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
황대권 지음 / 열림원 / 2006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제목을 보고 무지 마음에 들어서, 이 필자의 전 작품이 너무 맘에 들어서, 가벼운 재생 용지가 좋아서 단숨에 나의 장바구니에 담았더랬다.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라는 제목만 보고도 좋았다.  못난 놈들은 얼굴만 봐도 반갑다고 민들레가 나에겐 반가운 동지로 느껴진 모양이다. 아마 이런 여러 정황으로 볼 때, 내가 요즘 힘든가 보다 생각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토닥토닥 위로해 주었다. 늘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서운해 하던 나를 반성하며, '그래, 민들레는 민들레일 뿐인데 굳이 장미랑 비교해서 우울해질 필요는 없을 거야.'  그런 마음으로 구입했다. 근데 책을 받고 펼치기 전에 갑자기 나의 꼬인 심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근데 이 제목이 뭐지? 당연히, 민들레는 장미를 부러워해야 한다는 건가? 이 제목의 전제는 그렇다는 셈인데... 그럼 우린 민들레니까 장미를 부러워하지도 말라고? 그렇다고 제목을 '장미를 민들레를 부러워하지 않는다'라고 바꾸면 이 불만이 해소될까라는 엉뚱한 생각도 해 보았지만 그건 또 그것대로 안 될 것 같다. 그런 제목이라면 단번에 '당연하지. 장미가 민들레를 부러워할 필요가 있겠어?'라고 했을 테니까. 그렇다면  민들레는 정말 장미를 부러워하지 않았을까? 혹 장미가 민들레를 부러워하진 않았을까? 말도 안 되는 상상력을 펼쳐본다. 아직 책도 펼치기 전에 말이다.

 제목의 전제를 우리 모두 상식선에서 받아들인다. 우리의 상식에서는 장미란 돈을 주고 사야 하는 자본주의의 상품이고, 민들레는 굳이 심어서 키우지 않아도 길거리에 흔하게 볼 수 있는 희소가치가 없는 식물인 셈이다. 저자가 말하는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생물로서 필요한 존재인데도 우리에겐 너무나 흔하디 흔해서 무시받는 존재인 민들레... 제목으로 이리 저리 따지고 있을 무렵 옆에 있는 나의 지인이 말했다. "그렇다고 민들레 한 다발 묶어서 선물 줄 수는 없잖아." 그 사람의 말에 함께 웃긴 했는데 이제 생각하니 그것도 괜찮을 것 같다. 노란 민들레 한 묶음. 아무리 봐도 비닐 포장지에 화려하게 싸여 있는 장미, 부직포 나부랭이와 색색의 포장지에 싸인 장미도 나름대로 좋겠지마는 그것과는 달리  아무 장식 없이 민들레 한 송이 건네주는 것도 운치가 있을 것 같다.  왜 간혹 선전에도 나오지 않던가. 아이들에 손에 민들레 홀씨 가득 있는 꽃송이를 들고 '후~~' 부는 장면이... 그때 장미꽃잎을 '후~' 분다면 느낌이 달라지겠지? 저마다 매력이 있는 셈이니까... 작가가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면서도 이래 저래 꼬투리를 잡아보았다. 근데 책을 읽고 나니 결국 엎어치나 매치나인 듯 하다. 자본주의 시대에 매몰되어 이것 저것 잣대로 재어보면서 자연도 사람도 망치는 짓 하지 말고, 함께 상생하는 우리가 되어야겠다. 여당과 야당이 부르짖는 상생의 정치 말고, 인간과 자연이 함께 사는 상생 말이다.  

 말 한 마디 할 때마다 야생초에 대한 애정이 뚝뚝 묻어나오는 작가의 새로운 이야기에, 그의 조용하지만 애절한 목소리에 귀 기울이면서 나도 도시가 아닌 곳에서 텃밭 하나 꼬옥 마련하고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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