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어 벗 포 더
앨리 스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민음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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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와 지인들과 사교 모임을 즐기는 당신. 당신은 오늘도 디너파티를 열었다. 지인의 지인으로 파티에 참석한 한 남자가 눈에 들어온다. 사십대 중반에 평범한 외모, 조용하고 수더분하고, 아무런 해도 끼칠 것 같지 않은 그런 인상의 남자. 사람들과의 대화에도 곧잘 섞이고, 자기주장을 강력하게 내세우지는 않는데 그러면서도 할 이야기는 한다. 아, 그 남자가 자신은 채식주의자라고 이제와 밝히니 조금 당황스럽지만 그는 샐러드를 먹으면서도 즐거울 수 있다면서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디저트를 준비할 때쯤 남자가 2층으로 올라간다. 당신은 그가 화장실을 쓰려는가 보다 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누구나 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남자, 시간이 꽤 흘러도 내려올 줄 모른다. 무슨 일이 있는 걸까? 당신은 걱정이 되어 2층 화장실로 올라가 노크를 하고 괜찮은지 묻는다. 안에서는 대답이 없다. 아무래도 이상해서 이 남자와 함께 온 지인에게 도움을 요청해본다. 이 남자를 데리고 온 지인은 화장실 앞에서 똑똑 노크를 하고, 괜찮은지 묻는데 역시 안에서는 대답이 없다. 화장실 손잡이를 돌려본다. 어라? 문이 열린다. 안에는 아무도 없다. 지인은 당황한다. 어딜 간 거지? 아래층으로 내려오니 그가 벗어둔 재킷과 휴대전화는 그대로 있다. 말도 없이 가다니, 너무 하는군 싶지만 무슨 급한 일이 있으려니 하고, 다시 파티 분위기에 젖어든다.

파티가 끝난 다음 날 아침, 그 남자의 자동차가 여전히 당신 집 앞에 세워져 있는 것을 본다.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느낀 당신은 2층으로 다시 올라가고, 2층 예비 침실 문이 안에서 잠겨 있음을 깨닫는다. 문 밑으로 쪽지가 보인다. “물은 됐습니다. 그렇지만 곧 먹을 게 필요할 거예요. 아시다시피 저는 채식주의자입니다. 참아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렇다. 그 남자는 파티 중간에 먼저 돌아간 것이 아니라, 어젯밤 내내 이 예비 침실에서 머문 것이다. 게다가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체 무슨 까닭일까? 당신이라면 이제 어떻게 할 것인가? 저 낯선 남자를 집 안에 들여놓은 채 일상생활이 가능할까?

<데어 벗 포 더>는 이런 상황 아래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데어 벗 포 더>라는 제목처럼 수수께끼 같은 일들의 연속이다. 스스로 남의 집 2층 예비 침실에 갇히기를 선택한 남자의 이름은 ‘마일스 가스’- 앞서 설명했듯이 40대 중반의 그는 디너파티에서 만나도, 거리에서 만나도 특별히 해가 될 것 같은 느낌은 전혀 없는 평범한 남자이다. 지인인 ‘마크’를 따라서 이 2층 집 여주인인 ‘제네비브 리’가 연 디너파티에 참석했고, 남의 집 예비 침실에 스스로 갇히기를 선택한다. 그렇게 하루 이틀, 열흘이 지난다. ‘리’ 부인은 마일스의 휴대전화 속 주소록을 열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연락을 취한다. 그렇게 연락을 받은 사십대 여성 ‘애나’의 이야기가 ‘데어(There)’를 장식한다. 전화를 받은 애나도 당황스럽기 짝이 없다. 마일스와 특별한 관계가 전혀 아니기 때문이다. 마일스와는 이십 년 동안 보지 못한 사이였고, 그나마 알게 된 것도 그들이 고등학생이던 시절이다. 한 은행이 후원한 고등학생 글짓기 대회에서 선발되어, 유럽 여행을 떠났을 때 알고 지낸 사이. 애나는 어찌 되었든 마일스가 스스로 갇혀 있는 집으로 향한다. 그녀는 마일스가 방 밖으로, 집 밖으로 나오게 할 수 있을까?

‘벗(But)’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러나(But) 방에 들어가 문을 닫아건 사람/뭘 그만두라거나 해달라고 요청할 거람?’ 이 장에서는 마일스를 그 집으로 이끈 장본인인 ‘마크’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마크는 이제 육십 대에 들어선 동성애자로 마일스와는 디너파티에 초대된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런 관계는 아니다. 그저 극장에서 잠시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가 말이 통해서 술을 함께 마신 사이일 뿐. 마크와 마일스는 그러나(But)라는 단어에 대해 토론하다 가까워졌다. 그들은 ‘그러나는 서로 연결하는 접속사’이면서도 ‘우리를 항상 옆길로 이끌어주는 단어’라고 생각한다. ‘포(For)’는 치매를 앓는 80대 노인 ‘메이’의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인데, 이 노인은 마일스와 어떤 관계일까? 마지막장 ‘더(The)’는 ‘브룩’이라는 아홉 살 꼬마의 이야기가 중심을 이룬다. 이 꼬마 또한 마일스와 어떤 식으로든 관계가 있다. <데어 벗 포 더>는 이렇게 스스로 남의 집 방 안에 갇힌 마일스라는 남자와 그와 어떤 식으로든 ‘희미하게’ 관련이 있는 네 사람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러나 이야기는 친절하지 않다. 리 부인이 애나에게 전화를 걸어서 도움을 요청할 때만해도, 독자들은 아, 이제 애나와 마일스의 관계가 밝혀지면서, 마일스가 왜 남의 집 예비 침실에 들어가 방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지, 그래서 어떻게 도움(?)의 손길을 받아 방 밖으로 나오게 되는지 이야기가 흐르겠구나 생각하겠지만(나 또한 그랬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플롯을 완전히 깨뜨린다. 상상 밖으로 이야기가 흘러간다. 마일스가 머물고 있는 방에는 운동기구인 로잉 머신(rowing machine)이 있고, 와인 제조 장비 세트와 1950~60년대 고전 공상과학영화 DVD 모음집이 있다. 다행스럽게도 욕실이 딸려 있다. 그는 그 안에서 뭘 하며 지낼까? 대체 왜 스스로 갇히기를 선택했을까? ‘그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고 싶었을까? 죄수가 된다는 게 어떤 느낌인지 알아보고자 스스로 문을 걸어 잠근 것일까? 그 행위는 우리가 새처럼 자유롭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죄수라는 것을 보여 주는 일종의 시답잖은 중산층 게임일까? 어떤 쇼핑몰도 어떤 공항의 중앙 홀도 자유로이 갈수 있고, 또 나뭇결이 고스란히 드러난 멋진 마루가 있는 집의 2층 방으로도 자유로이 갈 수 있다고 믿지만 우리가 실은 죄수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게임 말이다.’(98쪽) 누구도 그 이유를 알지 못한 채 무려 석 달이나 흐른다.

나라면 방문을 부숴버리거나, 경찰을 불러서라도 강제로 문을 따 버릴 텐데, 집주인인 리 부인은 모든 폭력을 싫어한다면서 그러기를 거부한다. 마일스가 제 발로 나오기를 기다린다. 하지만 모든 폭력을 싫어한다는 리 부인의 태도에는 속물적인 욕망이 깃들어 있다. 마일스는 어느덧 대중들에게 ‘마일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남의 집 예비 침실에서 밖으로 나오기를 거부하고 살아가는 이 남자는 이제 유명해져서 사람들이 생각하기에 뭔가 있어 보이는 이름, 기억하기 쉬운 이름인 ‘마일로’라는 이름까지 갖게 되었고, 리 부인 집 앞에는 언론과 유튜브 등이 진을 친다.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플래카드를 들고 환호하며, 그를 기념품 등 상품화해서 판매하는 사람들까지 나타난다. 리 부인도 이런 상황이 싫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렇게 마일스는 결코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데도 아주 강력하게 자기 존재를 사람들 앞에 각인시킨다. 없지만 있는 사람, 그러니까 부재하지만 현존하는 인물이다. 사람들이 ‘기사 제목 같은 데서 더(The)라는 단어가 없어도  더(The)가 내포되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비유적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모두 어떤 면에서 이 사람 ‘마일로’와 같은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모두 낯선 사람의 집 어느 방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집은 우리 집이어서 이 상황이 무척 불공평하고 부적절해 보일 뿐이다. (143쪽)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왜냐하면 즐겁게 지내기 위해서 패트릭
왜냐하면 세상을 더 좋게 만들기 위해서 엘리너
왜냐하면 서로 보살펴 주기 위해서 엄마
왜냐하면 오래가는 것들을 만들어 내기 위해서 아빠 (324쪽)


이 알쏭달쏭한 작품은 수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데, 무엇보다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한다.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실제로 여기, 또는 거기(There)에 육체가 있어야지만 존재하는 것일까? 마일스는 방 안에 갇혀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람들의 관념(생각) 속에서 그런 상태일 뿐이다. 누구도 마일스가 방 안에 있는 것을 본 사람은 없다. 실제로 마일스가 2층으로 올라갔을 때 디너파티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그가 응당 화장실을 쓸 것이라고 생각하고는 그가 한참이 지나도 내려오지 않자, 당연하다는 듯이 화장실 문을 두드린다. 그가 거기(There) 없는데도, 거기 있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이다. 그러나(But) 그는 화장실에 존재하지 않는다. 2층 예비 침실 문 아래에 쪽지를 남겨둠으로써 그 안에 있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인식된다. 하지만 이 마저도 어떤 누군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실제로 보지는 못한다. 그는 과연 무엇을 위해서(For) 거기에 있기를 선택한 것일까? 이 책을 읽다 보면 마일스가 사실 누군가에게는 전혀 존재하지 않는데도, 존재하는 그 누구보다 더 강력한 영향력을 끼치는 순간들을 마주하게 된다. 우리는 정말 어떤 면에서는 마일스처럼 모두 ‘낯선 사람의 집 어느 방(생각/관념)에 들어가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내보내고 싶어도 쉽사리 내보내기 어려운 형태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은 어떤 식으로든 희미한 관계에서도 영향을 끼친다. 마치 정관사 더(The)처럼. 이 작품은 이렇게 인간의 관념과 인식, 존재에 관한 고정관념에 질문을 던진다. 이 수수께끼 같은 작품은 책을 덮고도 내가 제대로 읽은 게 맞는지 아리송한 여운을 남기는데, 그런 안개 속에서 희미한 그림자를 잡은 듯한 느낌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다. 계속 읽을 작가 목록에 ‘앨리 스미스’를 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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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1-19 19: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허, 이것 참.... 서평인 거 같기도 하고, 리뷰인 거 같기도 하고, 그냥 독후감인 거 같기도 한데, 확실한 건, 낚시라는 거.
이걸 물어? 말어? 으아, 참.... 물어? 말어?, 아몰랑!!!!

잠자냥 2021-01-19 22:26   좋아요 0 | URL
ㅎㅎㅎ 호불호가 있을 수 있는 작품이라 막 추천은 못하겠습니다!
 
데어 벗 포 더
앨리 스미스 지음, 서창렬 옮김 / 민음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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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를 편하게 두지 않는 수수께끼 같은 소설. 무엇을 상상해도 그 상상 밖으로 펼쳐진다. 플롯에 익숙한 독자를 당혹하게 만들면서 그 이야기 속으로 빨려들어가게 만드는 영리한 소설. 이 작품을 작가 의도대로 100% 이해한 독자가 과연 있을까? 나 또한 여전히 알쏭달쏭. ‘그러나’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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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부만두 2021-09-13 00:0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멋짐 폭발하는 책이에요.

잠자냥 2021-09-13 09:36   좋아요 0 | URL
하하하, 맞아요~ 재미나게 읽으셨다니 기쁩니다!
 
기자 생리학 인간 생리학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류재화 옮김 / 페이퍼로드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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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꼼꼼하고 기가 막히게 인간을, 특정 직업군을 관찰하고 세밀하게 묘사할 수 있다니, 발자크의 인간 희극이 그냥 나온 게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 그 속시원한 풍자에 읽는 내내 낄낄 웃게 된다. 19세기 프랑스 언론인이나, 21세기 한국 기레기들이나 어쩜 그렇게 똑같을까? 웃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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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피판의 갑문 대산세계문학총서 110
안드레이 플라토노프 지음, 김철균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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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명이 지나간 자리에 남은 인간의 삶. 그 쓸쓸한 인간의 삶을 철학적으로 심오하게 그려나간다. 플라토노프의 작품 안에서 인간은 늘 체제에 희생되는 가련한 존재. 그 연민 어린 시선이 계속 그의 작품을 읽게 만든다. 문체는 또 어찌 이리 아름다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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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1-12 09:1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대산세계문학 총서.... 좋은 책 리스트 가운데 이걸 빼놨어요. 이런 정신머리하고는....

잠자냥 2021-01-12 09:49   좋아요 1 | URL
아 그러셨군요! 단편모음집이라 기억이 희미해지셨던 것이 아닌지요? ㅎㅎㅎㅎ
플라노토프 아무튼 제 기준에서는 무척 아름다운 작가입니다.
 
블러드차일드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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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복적인 상상력과 그걸 뒷받침하는 이야기 솜씨. 세상에 대한 관찰력과 집요함이 빚어낸 수작들. ‘말과 소리’가 가장 좋았다. 매 단편마다 덧붙여 있는 작가 후기는 빼는 게 더 좋았을 것 같기도 하다. 독자만의 해석을 오히려 한정짓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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