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 없는 대상을 사랑하는 심정은 어떠할까? 섣불리 헤아리기 어렵지만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 자체가 고통일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면 차라리 잊기라도 하련만 눈앞에서 매일같이 마주치면서 그를 봐야만 한다면 사랑이 잦아들 리 만무하다. 게다가 나는 너를 사랑할 수 있지만 그런 너는 (어쩌면) 영원히 나를 사랑할 수 없다면 그 고통의 깊이는 더욱 헤아리기 어려울 것이다. 차라리 그런 나의 사랑에 냉소라도 하면서 욕이라도 퍼부어주면서 희망을 갖지 말라고, 싹조차 틔울 수 없게 뿌리까지 뽑아버린다면 그 사랑을 조금은 쉽게 단념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야속하게도 그는 종종 돌아보며 나를 향해 미소 짓는다. 그러니 이 사랑은, 한없이 목마르기만 한 이 사랑의 갈증은 좀처럼 사그라들 줄 모른다. <두려워요, 투우사여>에는 그런 응답 없는 대상을 사랑하는 두 남자가 등장한다. ‘로카’와 ‘카를로스’가 바로 그들이다.
로카는 카를로스를 사랑한다. ‘앞집 미친년’이라 불리는 로카는 게이. 드랙퀸 게이이다. 로카의 마음을 사로잡은 카를로스는 게이에게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이성애자이다. 이성애자를 향한 게이의 짝사랑이라니, 얼른 꿈 깨! 마음을 접어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다. 두 사람은 한집에서 동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독재자 피노체트가 지배하는 1980년대 칠레의 산티아고. 로카는 카를로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힘들여 파트너를 찾아 헤맬 필요도 없었고, 섹스에 굶주린 적이 없을 정도로 자유로운 성생활을 누려왔다. 그 시절에도 라틴아메리카는 드랙퀸이니, 게이니 참 자유분방하구나 싶을 정도로 게이들의 난잡한 성생활이 이 작품 곳곳에서 그려진다. 제아무리 이성애 남성이라 할지라도 몸 파는 게이를 찾아 몇 푼 던져주고 호기심이나 성욕을 채우는 일도 빈번하다. 때문에 로카는 그런 방법으로 카를로스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카를로스 또한 이성애자이지만 호기심이나 성욕 때문에 자기한테 꽂힌 로카를 취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로카는 진심으로 카를로스를 사랑하기에 그러고 싶지 않다. 그의 몸이 아니라....(아니, 몸도 탐이 나지만) 마음을 갖고 싶다. 마음을 얻은 후에, 사랑을 얻은 후에 그와 섹스하고 싶다. 그러나 그것은 불가능하다. 카를로스는 그런 식으로 호기심에, 성욕을 채우기 위해 몸을 파는 남자를 사는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게다가 카를로스는 그토록 눈부신 외모에도 불구하고 여자를 사랑하는 일에 관심이 없다. 독재 치하 칠레, 그런 시기에 대학생인 그, 독재자로부터 조국의 자유를 되찾고자 지하운동을 하는 데 혈안이 된 그가 여자를 사랑하는 것은 그 여자 또한 위험에 처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그는 그 누구도 사랑하지 않는다. 아니 사랑하기를 멈춘 상태이다. 그런 그가 애달프게 사랑하는 대상은 바로 칠레, 그의 조국이다. 그러나 조국 또한 그에게 대답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자유, 해방된 조국은 너무나 멀어만 보이고, 그럼에도 그의 사랑은 그칠 줄 모른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뜨겁게 사랑하면, 어쩐지 자유가, 해방된 칠레가 눈앞에 나타날 것만 같아 그 사랑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러니까 로카는 카를로스를, 그 카를로스는 칠레를 사랑하고 또 사랑하는 것이다. 여전히 대답 없는 그들을.
로카와 카를로스 사이에는 또 다른 벽이 있다. 동성애자와 이성애자라는 성적 기호의 차이뿐만 아니라 계급 차이도 존재한다. 로카는 남창 드랙퀸.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 계층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카를로스는 대학생. 게다가 둘 사이의 나이 차이는 못해도 20년 이상은 난다. 그런데도 그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면서 웃는다. 응답하지 않는 대상을 향한 사랑에 오늘도 속이 쓰리면서도 서로 씩씩하게 자기만의 사랑을 오늘도 키워 나간다. 로카야 그렇다 치고 카를로스는 왜 로카 주변에서 얼쩡대는 것일까? 사실 로카의 집, 앞집 미친년이라는, 아무 생각 없어 보이는 이 게이의 집은 카를로스와 그의 동료들-그러니까 대학생들이 모여서 지하 운동의 거점으로 삼기에 안성맞춤이다. 누가 저런 집에서 독재자를 무너뜨릴 운동가들이 모일 것이라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드나드는 젊은 남자들을 봐도 대부분은 저 앞집 미친년의 몸을 사러 오는 사내들이려니 하리라. 그래서 카를로스는 로카의 집을 드나들면서 그녀의 자유분방함을 흡입하면서 숨통을 트이고 또 때로는 그녀의 애정을 듬뿍 받으면서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고자 오늘도 정신없다. 이 녀석은 단지 로카를 이용하기만 하는 것일까? 의심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만약 그가 그렇게 비열한이라면 로카가 사랑에 빠졌을까?
넌 참 기분 좋게 만드는 재주가 있어, 너랑 있으면 행복해져. 내가 뭐, 누르면 웃음소리가 나는 인형이라도 되니? 그런 게 아니야. 너랑 있으면 낙관주의자가 돼. 그리고 또? 또 뭐가 필요해? 나를 아주 조금은 사랑해줬으면 하지. 아주 조금이라니, 그보다는 더 좋아하는 거 알잖아. 그건 다르지, 좋아한다는 말하고 사랑한다는 말은 아예 다른 세상에 존재한단 말이야. 그만큼의 차이가 있다고. (p.173)
카를로스는 자기를 웃게 만드는 로카 앞에서 무장해제 되면서 낙관주의자가 된다. 이 힘겨운 시대에, 상황에 늘 초조해하며 긴장을 멈추지 못하는 삶에서 로카의 생각 없음-유쾌 발랄한 생활은 그에게는 숨구멍이다. 사실 카를로스가 로카에게 털어놓은 어린 시절의 그 고백을 듣노라면 카를로스 또한 로카를 사랑하기 아예 불가능한 사람은 아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나 카를로스의 마음을 온통 차지한 것은 칠레라는 여인이므로 로카가 들어설 자리가 없다. 로카의 마음이 온통 카를로스여서 ‘정말 오직 그 사람 때문에 요조숙녀처럼 행동하게 된 것’과 마찬가지로. 그리고 그런 그에게 카를로스가 숨기고자 하는 비밀은 중요하지 않다. ‘그 비밀을 얘기해주건 말건 별 상관이 없다.’ ‘그게 책이건 뭐건 저 망할 놈의 상자들은 그녀에게 전혀 중요하지 않다.’ 로카 ‘그녀가 바랐던 건 단지 그를 흔들어 깨우는 것. 그의 침묵하는 사랑이 그녀를 숨 못 쉬게 만든다고 말하고 싶었을 뿐’....(p.72) 그 두 사람은 저마다 그렇게 불가능한 꿈을 꾼다.
불가능한 꿈. 이 사랑이 슬픈 이유는 두 사람이 저마다 사랑하는 대상이 그 사랑에 응답할 가능성이 적다는 것뿐만 아니라 혹시 응답받는다 하더라도 그 이후로도 사랑을 유지해 나가기 쉽지 않다는 것 때문이다. 카를로스를 사랑하다가도 종종 슬퍼지는 로카, 만일 그녀 앞에 카를로스가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녀의 삶은 조금 더 행복했을까? 행복까지는 아니더라도 그저 나날이 유쾌했을까? 아무것도 모른 채, 이 위험한 운동에 발 담그지도 않고 머리에 꽃밭만 가득하게 살아가는 게 더 낫지 않았을까 싶기도 한데 로카는 말한다. ‘다행히도 그녀의 삶엔 카를로스가 나타나 주었다. 그가 칠레 사람들이 처한 잔혹한 현실을 보여준 것’이라고. (p.152) 칠레의 잔혹한 현실에까지 눈뜬 로카의 사랑은 이제 어떻게 치달을까. <두려워요, 투사여>는 그 비극의 끝을 보기 위해 책장이 빠르게 넘어간다.
자연스레 떠오르는 또 다른 작품이 있다. 마누엘 푸익의 <거미여인의 키스>가 그러한데 두 작품 모두 라틴아메리카(각각 칠레와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한다는 점뿐만 아니라 동성애자와 이성애자, 정치범과 평범한 시민이 우연히 만나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저마다의 사랑에 빠지고 또 정치적으로 억압된 현실에 눈뜬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 사랑이 비극적이라는 점 또한.... 이 두 작품에서 게이인 두 사람-<투우사>의 로카와 <거미여인>의 ‘몰리나’의 역할에도 주목하게 되는데, 왜 하필 게이일까? 그 두 게이는 혁명을 꿈꾸는 두 운동가-카를로스와 ‘발렌틴’을 사랑하게 되고 그들에게 이런저런 영향을 주고 자기 자신들도 변화한다. 그런 두 사람의 성정체성이 게이라는 점이 흥미로운데, 아마도 그들이 그 세계에서 가장 천대받고 억압받는 계층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적/개인적 이중의 억압을 발랄함으로 날려버리는, 심각하게 만들지 않는, 그 가벼움에 중요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 독재 치하 암흑의 억압조차 가벼움으로 해방시켜버리는, 한없는 발랄함으로 날려버리는 그리하여 숨구멍을 트이게 하는 존재로서의 게이Gay,
좀 다른 결이기는 하지만 <테레사와 함께 한 마지막 오후들>도 생각난다. 이 작품은 라틴아메리카를 배경으로 하지는 않지만 같은 언어(스페인어)로 쓰였으며, 1950년대 중반의 스페인 바르셀로나, 프랑코 집권기의 반독재 투쟁이 치열하게 전개되던 시절을 배경으로 마찬가지로 혁명을 꿈꾸는 대학생 ‘테레사’와 빈민가 출신의 좀도둑 ‘마놀로’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앞선 두 작품과 좀 다르다면 혁명을 꿈꾸는 정치범이자(대학생)이 여성이라는 점, 그리하여 두 사람의 사랑은 성정체성보다는 계급/신분 차이에서 좌절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랄까. 그럼에도 테레사와 마놀로는 서로 사랑에 빠지기는 한다. 비록 어느 순간 벽에 부딪히고 말지만..... 그래서 대답 없는 너, 카를로스, 그러나 자꾸만 돌아보며 웃음 짓는 너, 카를로스, 그를 향한 멈추지 못하는 사랑에 눈물 흘리는 앞집 미친년, 사랑에 미친년 로코의 그 사랑이 더더욱 애절하게 다가온다.
나도 그런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어. 하지만 내 나이에 그렇게 도망칠 수는 없거든, 꿈을 좇아 떠나는 미친 늙은이처럼, 우리의 만남이 가능했던 건, 두 개의 다른 이야기가 사건의 소용돌이 속에서 간신히 손만 잡고 있었기 때문이야. 여기서 일어나지 않았던 일은 이 세상 어느 곳에 가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나는 강아지처럼 네게 사랑에 빠졌고, 너는 그냥 내가 사랑하도록 놔둔 거야. (<두려워요, 투우사여>, p.26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