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 E. M. 포스터 전집 5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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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은 이야기의 흥미로움 정도로만 치자면 포스터의 작품 가운데 어쩌면 가장 ‘재미’있는 작품이다.

200페이지 정도의 가벼운 분량이기도 했지만, 다음 장이 궁금해서 손에서 놓을 수가 없었다. 포스터가 막장 드라마를 쓴다면 이런 느낌이 아닐까? 20세기 초반 영국과 이탈리아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막장 드라마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막장 드라마’라는 표현을 쓰자니 이 작품이 막장인가(?)하고 오해할 수도 있을 듯하다. 그러나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은 포스터의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 아름답고, 위트 있고, 유머러스하면서 따뜻하다.  그런데 왜 ‘막장 드라마’냐고? 욕을 하면서도 볼 수밖에 없는 막장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하기 때문이다(물론 포스터의 작품을 읽을 때 욕은 나오지 않는다). 예측 불가능한 빠른 전개와 인물 간의 예상을 뛰어넘는 관계와 영향 등등.

이 작품은 정말 스포일러를 조심해야 한다. 책을 다 읽고 뒤표지를 봤더니 줄거리가 줄줄 적혀있던데, 절대로 읽으면 안 된다! 재미가 완전 반감되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도 언젠가 이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스포일러 등 소설 내용을 최대한 언급하지 않고 리뷰를 남기려고 노력하고 있다(그러다 보니 ‘재미있다’는 말 외에 할 말이 없구나;). 이 작품을 읽음으로써 포스터 작품 중엔 <인도로 가는 길>과 단편 모음집인 <콜로노스의 숲>을 제외하고 다 읽게 되었는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재미로만 따지자면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이 단연 최고가 아닐까 싶다.

물론 이 작품은 재미에서는 최고지만 포스터의 초기작이니 만큼 후기작에 비해 깊이가 조금 떨어지는 느낌은 있다. 그러나 그 반면 포스터 작품의 주요한 특징(계급간의 문제, 인습과 전통에 얽힌 삶과 자유로운 삶의 대비 등등)이 이미 이 작품에서부터 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재미도 재미지만 유머러스함도 빛난다. 여러 구절에서 키득키득 웃음이 나오고 어떤 부분에서는 폭소가 터져 나온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구절- ‘그는 큰 키에 여윈 체격의 젊은이로, 옷 어깨에 패드를 넣는 사려 깊은 방법으로 안쓰러운 상태를 피해야 했다.(80쪽)’

포스터 작품을 거의 다 읽어가는 이즈음…. 좋아하는 작품 순으로 마음속에 새겨보았다. <인도로 가는 길>과 <콜로노스의 숲>이 아직 남아 있기는 하지만, 그리고 언젠가 읽게 되겠지만…. 왠지 나에게 이 두 작품이 포스터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 될 가능성은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아직까지 안 읽고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음;). 내가 포스터 작품 가운데 좋아하는 순서는.... <모리스>, <전망 좋은 방>, <하워즈 엔드>, <천사들도 발 딛기 두려워하는 곳>, <기나긴 여행> 순이다. <인도로 가는 길>과 <콜로노스의 숲>까지 다 읽으면 또 해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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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18
아서 밀러 지음, 강유나 옮김 / 민음사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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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일어나는(그러나 한 번 일어나면 엄청난) 대자연이 주는 공포와 달리, 비록 미세할지라도 인간의 삶은 태어나자마자 공포와 불안을 내포한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나자마자 썩어가기 시작’한다는 노래 가사도 있듯이, 삶의 시작은 곧 죽음으로 가는 길이라는, 삶이 주는 태생적인 공포. 게다가 결국 그렇게 죽고 말 것인데, 죽기까지 어떻게 ‘먹고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끊이지 않는 불안과 공포. 아주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나 ‘먹고 살아야’하는 일에 대한 불안이 없는 특수한 환경의 몇몇 인간을 제외하고 이 지구의 인간은 모두 이런 ‘불안’을 안고 살아갈 것이다.

아서 밀러의 희곡 <세일즈맨의 죽음>은 바로 그런 현대인의 불안과 공포가 절절하게 녹아있다. 그렇기에 이 작품이 194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되자마자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고, 현재까지 전 세계적으로 가장 널리 공연되고 사랑받는 미국의 대표적인 희곡으로 자리 잡은 게 아닐까. <세일즈맨의 죽음>은 공간과 시간을 초월해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잠재된 ‘먹고 사는 일에 대한 불안’을 탁월하게 표현한 작품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이로 치면 환갑을 넘긴 윌리 로먼은 세일즈맨으로 30년이 넘게 일했다. 지금도 일하고 있지만,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에 처해있다. 나이 들어 운전하기 어려운 지경인데도 매일 무엇인가를 팔고자 차를 타고 집을 나선다. 한때 잘나가던 세일즈맨이었지만 그의 현재는 초라하다. 성공하지 못한 자신의 인생을 보상받기라도 할 생각으로 집착했던 두 아들은 백수건달이나 다름없다. 특히 그토록 사랑했던 첫째 아들 ‘비프’와는 어디서부터 꼬였는지 만나기만 하면 싸움뿐이다. 윌리는 이런 초라한 현실을 잊고자 자꾸만 찬란했던 과거에 집착한다. 과연 윌리 로먼과 그의 가족에겐 그가 꿈꾸듯 더 나은 미래, 희망이 있을까?

<세일즈맨의 죽음 Death of a Salesman>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이 작품은 비극이다. 그런데 그 비극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이 대단히 탁월하다. 윌리의 환상을 통해 나타나는 찬란했던 과거와 남루한 현재의 적절한 대비, 이웃이자 친구인 찰리와 그의 아들 버나드의 성공한 삶과 대비되는 윌리 로먼 가족의 초라한 현실, 아들 비프와 아버지 윌리의 갈등과 그 갈등의 원인인 된 비밀 등이 차례로 드러나면서 극은 탄탄하게 전개된다. 그다지 길지 않은 분량의, 한정된 공간 안에서 펼쳐지는 희곡임에도 그 안에서 전달하는 주제와 인생에 대한 통찰력은 묵직하다.

‘저는 이 회사에서 삼십사 년을 봉직했는데 지금은 보험금조차 낼 수 없는 형편입니다! 오렌지 속만 까먹고 껍데기는 내다 버리실 참입니까. 사람은 과일 나부랭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와 같은 윌리의 대사에서는 자본주의 사회의 참혹한 현실에 대한 비판도 엿보인다. 대공황 이후 ‘먹고 사는 일’에서 벼랑 끝에 내몰린 한 가정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세일즈맨의 죽음>은 지금 이 땅의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다. 매일 일해도 가난함을 벗어날 수 없는 워킹푸어들이 넘쳐나고, 그렇게 회사에서 일해도 나이 들면 언제 폐기처분될지 모르는, 그래서 미래는 더 암담하기만 한 직장인들의 삶…. 그 불안과 공포를 잠시라도 잊고자 ‘지르고’ 또 ‘질러보지만’ 돌아오는 것은 카드 값과 카드 할부가 끝날 때쯤이면 고장 나기 일쑤인 전자제품에 둘러싸인 그런 삶. 그 삶이 60년 전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린다 : 여보 인생은 버리며 사는 거예요. 항상 그런 거지요. (14쪽)

비프 : 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육칠 년이나 뭔가를 해보려고 애썼거든. 물품 배송부 직원, 세일즈맨, 이런 저런 일들. 그냥 하찮은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었지. 뜨거운 여름날 아침에 전철을 타고, 재고를 챙기고, 전화를 하고, 아니면 사고팔고 하는 것에 너의 온 인생을 바친다고 생각해 봐. 진짜 바라는 것은 셔츠를 벗어 던지고 야외에서 일하는 건데 고작 두 주짜리 휴가를 위해 일년 중 오십 주를 죽어라 고생하는 거지. 그리고 언제나 네 옆의 녀석보다 한발 앞서야해. 그러나 여전히, 그게 네가 말하는 미래가 있다는 거지. (22~23쪽)

비프 : 모르겠어요. 좀 둘러보며 뭘 할지 봐야겠어요.
린다 : 비프, 평생을 둘러보며 살 수는 없지 않겠니?
비프 : 뭘 지그시 붙들고 있지를 못하겠어요. 어머니, 뭐든 죽 붙들고 있을 수가 없다고요.
린다 : 비프, 사람은 철새처럼 봄이 되면 왔다가 가을 되면 날아가는 게 아니란다. (62쪽)

윌 리 : 헤이스팅스 냉장고라니, 들어나 봤어? 내 인생에 한 번이라도 좋으니 고장 나기 전에 내 것으로 가져 봤으면 좋겠네! 만날 고물만 내 차지야! 막 자동차 할부가 끝나니 폐차 직전이지. 냉장고는 미친 듯이 벨트나 닳아 없애고 있어. 그런 물건들은 유효 기간을 정해 놓고 나오나 봐. 할부가 마침내 끝나면 물건도 생명이 끝나도록 말이야. (85~86쪽)

윌리 : 저는 이 회사에서 삼십사 년을 봉직했는데 지금은 보험금조차 낼 수 없는 형편입니다! 오렌지 속만 까먹고 껍데기는 내다 버리실 참입니까. 사람은 과일 나부랭이가 아니지 않습니까! (97쪽)

윌리 : 우습지 않아? 고속도로 여행, 기차 여행, 수많은 약속, 오랜 세월, 그런 것들 다 거쳐서 결국엔 사는 것보다 죽는 게 더 가치 있는 인생이 되었으니 말이야. (117쪽)


-아서 밀러, <세일즈맨의 죽음>,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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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워즈 엔드 열린책들 세계문학 98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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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의 작품을 읽는 일은 즐겁다. 책 읽기를 좋아해서 책 읽는 행위 자체가 즐겁기는 하지만, 유난히 그 즐거움이 더 큰 작품이 있다. E.M. 포스터가 그렇다. 그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고고하고 우아한 숲을 거닐고 있는 기분이 든다. 고고하고 우아한 숲이라는 게 존재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다. 아주 잘 짜인 지적인 소설을 읽는 기분도 든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매우 지적이고 낭만적이면서도 아름답다. 그러나 우아하고, 도도하고, 아름답다고 해서 그 아름다움이 ‘허영’이나 괜한 의미 없는 멋부림과는 거리가 멀다. 진실한 아름다움이 담긴 작품, 포스터의 작품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이렇지 않을까.  

그가 자신의 최고 작품으로 꼽았다는 <하워즈 엔드>를 읽는 동안 문장 하나하나에 감탄하고, 이야기 짜임에 감탄했다. 이 사람이 나중에 이런 역할을 하고, 저 사람이 이런 영향을 줄 줄이야! 이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흐를 줄이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탄성을 자아냈다. 어떻게 보면 꽤 복잡한 이야기인데 이토록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흐를 수 있다니.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들었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 속에 담긴 주제의식 또한 가볍지 않다. 인물들이 툭툭 내던지는 대사나 대화에서 삶의 가치에 대해 이런 저런 고민을 해보게 된다. 포스터의 작품은 한 편의 잘 만들어진 고전 드라마를 보는 듯한데, 그저 한 편의 재미있는 드라마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의식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사회성’까지도 겸비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포스터의 작품을 사랑하고 포스터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전망 좋은 방>에서도 포스터는 고루한 인습이나 전통과 싸우는 자유로운 개성을 가진 인물(애머슨 부자)을 내세워 그런 악습에 갇혀 사는 사람들을 인식을 일깨우는 데 힘을 썼다. <모리스>에 나오는 ‘모리스’ 역시 그런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전혀 상반되는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내세워 그들의 대화를 통해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과연 전통과 인습을 지켜나가고, 그러느라 인간의 영혼과 삶이 자유롭게 날지 못하고 감금당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질문을 던져 왔던 포스터. 그리고 그의 이런 질문은 <하워즈 엔드>에서도 계속 된다.

독일인과 영국인의 피가 흐르는 헬렌과 마거릿 자매는 말 그대로 ‘교양인’이다. 지적이고 똑똑하며 음악과 문학, 예술 등 ‘정신적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이상주의자이며, 페미니스트적 기질도 농후하다. 마거릿의 동생인 헬렌이 좀 더 이상주의자며, 마거릿에 비하면 더 격한(?) 페미니스트다. 그런데 이 두 자매는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그들의 세계와는 정반대에 속한 삶을 살고 있는 윌콕스 부부를 만나게 된다.

헨리 윌콕스는 전형적인 사업가의 모습을 지닌 남자로 여자는 남자의 등 뒤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식의 보수적인 세계관에 부자와 빈자의 차이, 계급 차이는 사회가 유지 되려면 ‘있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의 부인인 루스 윌콕스 역시 그런 남편의 등 뒤에서 ‘가정’을 지키며 사는 삶이 여자의 삶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한 눈에 보기에도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닌 사람들이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고, 그 인연으로 헬렌과 마거릿은 윌콕스네 집 <하워즈 엔드>로 초대를 받게 된다. 소설은 <하워즈 엔드>를 둘러싸고 헬렌, 마거릿 슐레겔 자매와 윌콕스 가의 삶이 어떻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이상적이고 정신적인 세계에 사는 ‘슐레겔’ 가문과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세계로 상징되는 ‘윌콕스가’ 이 두 가문의 대비 속에 또 다른 흥미로운 인물이 존재한다. ‘레너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레너드는 음악회장에서 헬렌과 마거릿 자매와 우연히 만난다. 헬렌이 레너드의 우산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 하고 가져가는 바람에 인연을 맺게 된 것. 헬렌은 실수로 음악회장에서 남의 우산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가져가는 일이 많은 사람이지만 레너드는 그 우산 하나에(우산 가격에) 전전긍긍할 정도로 극빈층 계급에 속한다. 가난하지만 책이나 음악과 같은 문화적인 것과 늘 가까이 하고자 하고, 그런 것에 목말라 했던 그가 큰마음을 먹고 음악회에 갔고 거기서 ‘문화적인 소양을 잘 갖춘 여유로운 중산층 계급’의 헬렌, 마거릿 자매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그 두 자매와 우정을 쌓게 된 레너드는 그녀들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문화적으로 충족되는 기분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도저히 자기가 감히 건널 수 없는 벽, 차이가 있음을 실감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 속에서 책과 음악을 소비하며 교양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은 여유로운 중산층 계급이 어릴 때부터 항상 문화적 환경에 둘러싸여 자라나며 쌓아 온 그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축적해온 교양과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력을 레너드가 따라가기엔 한계가 있었고 그는 그것을 뼈저리게 절감한다.

<하워즈 엔드>는 이렇게 최상류층은 아닌 중산층 계급 중에서도 좀 더 부자인 윌콕스가, 넉넉한 재산이지만 윌콕스 가문보다는 경제적으로 수준은 낮은, 그러나 문화적 소양은 넘치는 슐레겔 자매, 마지막으로 경제적으로 최하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어쩌면 윌콕스가 보다는 소양이 있는 레너드를 등장시켜 이 세 계급(중산층 내에서도 상, 중, 하를 이루는)이 어떻게 얽히고설켜 그들의 삶이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그 안에서 계급차이, 남녀문제, 경제적 상황이 개인의 인성에 미치는 영향 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줄거리가 상당히 의외의 방향으로 흐르기에 세세히 설명은 못하지만(결정적 스포일러가 될 위험이 다분히 있다), 앞서 언급했듯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상당히 재미있다. 게다가 포스터는 각 계급에 대해 어떤 계급의 삶이 더 낫고 옳은지 섣불리 개입하여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실제로 그들은 서로의 삶에 매혹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들과는 정반대되는 삶에 격렬하게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책을 덮을 즈음에는 어떻게 사는 삶이 좀 더 인간답게 사는 삶인지 판단을 내릴 수는 있을 것이다.

“모두가 애정에 달린 문제에요. 애정요. 모르겠어요? 아시겠죠. 저는 헬렌을 아주 좋아해요. 하지만 당신은 별로 그렇지 않죠. 맨스브리지 씨는 아예 헬렌을 모르고요. 그게 다예요. 애정은 서로 주고받을 때 권리가 생기는 법이에요. 맨스브리지 씨. 수첩에 적어 두세요. 유용한 말이니까요.” (3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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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외투.광인일기.감찰관 펭귄클래식 64
니콜라이 고골 지음, 이기주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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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클래식코리아의 니콜라이 고골 작품집 <코, 외투, 광인일기, 감찰관>을 읽었다. 세 편의 단편과 희곡 한편(감찰관)이 담겨 있는데 그 중 단편 <외투>가 계속 기억에 남는다. <외투>는 읽을 때도 좀 짠-했는데, 읽고 나서도 생각할수록 슬프다. 현진건의 <빈처>나 <운수 좋은 날>이 떠오르기도 한다.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소시민의 가련한 삶이랄까, 그런 느낌.


<외투>의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정서업무를 담당한 9등관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말단 공무원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자신의 일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몇몇 자모를 쓰는 순간이면 거의 몰아지경에 빠져버릴’ 정도로 글씨 쓰는 일을 좋아하는 전형적 소시민이다.


정서업무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는 그에게 어느 날 큰 사건이 일어난다. 몇 년을 입어 닳고 닳아버린 외투가 그만 찢어지고 만 것. 아카키예비치는 이 낡은 외투를 살리고자 안간힘을 쓴다. 혹한은 다가오고 새 외투를 살 돈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투가 너무 낡아 수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청천벽력이다! 어쩔 수 없이 새 외투를 맞추는데 필요한 돈을 계산하고 그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거의 먹지도 쓰지도 않고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일찍이 ‘목표’ 따위는 없던 인생이었던 아카키예비치에게 새 외투 장만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생겼고, 그는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일종의 희열감까지 맛본다. 드디어 고대하던 그날이 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멋진 새 외투가 자신의 것이 되었다! 그는 이 외투를 입고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른다. 낡은 외투로 늘 놀림을 받던 그는 관청 동료들에게 부러움과 함께 주목을 받게 된다. 새 외투와 관련해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지고 웃고 그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기까지 한다. 동료들은 축하 파티를 해야 한다며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까지 한다. 존재감이 미미했던 그에게 새 외투로 인해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진다.

그런데 어쩐지 <외투>를 읽고 있노라면 불안 불안한 기분이 든다. 아카키가 새 외투를 입고 그저 행복하게 살아갈 것만 같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멋지게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새 외투를 강도들에게 빼앗기고 만다. 아뿔싸! 이렇게 외투를 빼앗긴 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외투 찾는 일에 골몰하던 그는 불행하게도 절망감에 빠져 숨을 거두고 만다.

그까짓 외투 때문에 죽어?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카키예비치의 외투에 대한 집념과 그 물건에 대한 숭배(사랑)의 감정이 절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때문에 그가 외투를 잃고 절망감에 빠지는 모습이 꽤 설득력 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이 무척 애잔하다. 그토록 노력해 장만한 외투를 입고 동료들의 관심을 받으며(인정과 애정의 욕구를 충족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전에 없던 자신감까지 생긴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삶에 대한 색다른 느낌도 받는다. 그런데 그 외투를 빼앗기고 말았으니 그토록 허망할 수가. 다시금 그 외로움과 무의미한 날들로 돌아가야 하는가!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타인과 있어도 관심 받지 못하면 한없이 외로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쓸쓸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이 옛날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묘하게 겹친다. 고작 글씨 쓰는 일에 그렇게도 열광하는(그것이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이며,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9등 사무관- 꼭 갖고 싶은 외투가 생겼고, 그 외투를 갖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간다. 어쩐지 일을 해서 월급을 타면 ‘무엇 무엇을 질러야지’하고 마음 먹는 현대 직장인의 삶과 닮지 않았는가. 멋진 물건을 소유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혹은 인정받는다고 착각하는) 모습까지도 닮았다.

‘외투’라는 단순한 소재를 통해 니콜라이 고골은 인간의 외로움과 욕망(소유의 욕망, 인정받고 싶은 욕망,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소설 작법은 다소 거칠게 느껴지기도 하지만(중간에 뜬금없이 작가가 화자로 나타난다거나, 갑자기 환상적인 요소가 개입된다든가 등등) 왜 도스토예프스키가 "모든 러시아 문학은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평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고골의 <광인일기>에서, <분신>은 <코>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두 작품을 비교해서 읽어봐도 재미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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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야 외 열린책들 세계문학 126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석영중 외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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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콤하지만 씁쓸하고 이기적이며 때로는 기만적인 사랑의 속성. 그럼에도 그 사랑에 빠져 허우적거리기를 매번 주저하지 않고 바라고 또 바라는 것은, 그 사랑이 잠못 이루는 백야처럼 우리를 살게하고 행복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비록 아주 짧은 순간 일지라도 그 행복이 인간의 한 평생에서 잊지 못할 무언가를 던져주기에....

도스토예프스키의 <백야>에는 그런 사랑의 속성이 고스란히 그려진다. 짧지만 역시 대가의 작품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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