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귄클래식코리아의 니콜라이 고골 작품집 <코, 외투, 광인일기, 감찰관>을 읽었다. 세 편의 단편과 희곡
한편(감찰관)이 담겨 있는데 그 중 단편 <외투>가 계속 기억에 남는다. <외투>는 읽을 때도 좀
짠-했는데, 읽고 나서도 생각할수록 슬프다. 현진건의 <빈처>나 <운수 좋은 날>이 떠오르기도 한다.
가난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아등바등 살아가는 소시민의 가련한 삶이랄까, 그런 느낌.
<외투>의 주인공 아카키
아카키예비치는 정서업무를 담당한 9등관이다. 우리나라로 치면 말단 공무원이라고 해야 할까? 그는 자신의 일을 너무나도 사랑한다.
‘자신이 좋아하는 몇몇 자모를 쓰는 순간이면 거의 몰아지경에 빠져버릴’ 정도로 글씨 쓰는 일을 좋아하는 전형적 소시민이다.
정서업무 외에는 별다른 일이 없는 그에게 어느 날 큰 사건이 일어난다. 몇 년을 입어 닳고 닳아버린 외투가 그만 찢어지고 만 것.
아카키예비치는 이 낡은 외투를 살리고자 안간힘을 쓴다. 혹한은 다가오고 새 외투를 살 돈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투가 너무
낡아 수리를 하는 것은 불가능하단다. 청천벽력이다! 어쩔 수 없이 새 외투를 맞추는데 필요한 돈을 계산하고 그는 이 거대한
프로젝트에 몰입하기 시작한다.
거의 먹지도 쓰지도 않고 돈을 모으기 시작한다. 일찍이 ‘목표’ 따위는 없던
인생이었던 아카키예비치에게 새 외투 장만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생겼고, 그는 이 프로젝트를 실행하면서 일종의 희열감까지 맛본다.
드디어 고대하던 그날이 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멋진 새 외투가 자신의 것이 되었다! 그는 이 외투를 입고 행복해서 어쩔 줄
모른다. 낡은 외투로 늘 놀림을 받던 그는 관청 동료들에게 부러움과 함께 주목을 받게 된다. 새 외투와 관련해 사람들이 한마디씩
던지고 웃고 그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기까지 한다. 동료들은 축하 파티를 해야 한다며 그를 저녁 식사에 초대하기까지 한다.
존재감이 미미했던 그에게 새 외투로 인해 전혀 다른 삶이 펼쳐진다.
그런데 어쩐지 <외투>를 읽고 있노라면
불안 불안한 기분이 든다. 아카키가 새 외투를 입고 그저 행복하게 살아갈 것만 같지 않다. 아니나 다를까 그는 동료들과 저녁
식사를 멋지게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새 외투를 강도들에게 빼앗기고 만다. 아뿔싸! 이렇게 외투를 빼앗긴 채 삶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외투 찾는 일에 골몰하던 그는 불행하게도 절망감에 빠져 숨을 거두고 만다.
그까짓 외투 때문에 죽어?
하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아카키예비치의 외투에 대한 집념과 그 물건에 대한 숭배(사랑)의 감정이 절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때문에 그가 외투를 잃고 절망감에 빠지는 모습이 꽤 설득력 있다. 그리고 이런 일련의 과정이 무척 애잔하다.
그토록 노력해 장만한 외투를 입고 동료들의 관심을 받으며(인정과 애정의 욕구를 충족하며) 외로움을 달랜다. 전에 없던 자신감까지
생긴다. 사람들과 어울리며 삶에 대한 색다른 느낌도 받는다. 그런데 그 외투를 빼앗기고 말았으니 그토록 허망할 수가. 다시금 그
외로움과 무의미한 날들로 돌아가야 하는가!
아무것도 아니었던 그가 사람들의 관심을 받으면서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타인과 있어도 관심 받지 못하면 한없이 외로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쓸쓸한 기분이 든다. 게다가 이 옛날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의 모습과 묘하게 겹친다. 고작 글씨 쓰는 일에 그렇게도 열광하는(그것이 유일하게 자신의 존재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 길이며, 인정받을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9등 사무관- 꼭 갖고 싶은 외투가 생겼고, 그 외투를 갖기
위해 아등바등 살아간다. 어쩐지 일을 해서 월급을 타면 ‘무엇 무엇을 질러야지’하고 마음 먹는 현대 직장인의 삶과 닮지 않았는가.
멋진 물건을 소유하고 그로 인해 사람들에게 인정받는(혹은 인정받는다고 착각하는) 모습까지도 닮았다.
‘외투’라는
단순한 소재를 통해 니콜라이 고골은 인간의 외로움과 욕망(소유의 욕망, 인정받고 싶은 욕망, 사랑받고 싶은 욕망)을 세밀하게
표현하고 있다. 소설 작법은 다소 거칠게 느껴지기도 하지만(중간에 뜬금없이 작가가 화자로 나타난다거나, 갑자기 환상적인 요소가
개입된다든가 등등) 왜 도스토예프스키가 "모든 러시아 문학은 고골의 <외투>에서 나왔다."고 평했는지 고개가
끄덕여진다. 특히 도스토예프스키의 <지하생활자의 수기>는 고골의 <광인일기>에서, <분신>은
<코>에서 출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두 작품을 비교해서 읽어봐도 재미있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