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즈 엔드 열린책들 세계문학 98
E. M. 포스터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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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터의 작품을 읽는 일은 즐겁다. 책 읽기를 좋아해서 책 읽는 행위 자체가 즐겁기는 하지만, 유난히 그 즐거움이 더 큰 작품이 있다. E.M. 포스터가 그렇다. 그의 작품을 읽고 있노라면 고고하고 우아한 숲을 거닐고 있는 기분이 든다. 고고하고 우아한 숲이라는 게 존재할지 모르겠지만 그런 느낌이다. 아주 잘 짜인 지적인 소설을 읽는 기분도 든다. 실제로 그의 작품은 매우 지적이고 낭만적이면서도 아름답다. 그러나 우아하고, 도도하고, 아름답다고 해서 그 아름다움이 ‘허영’이나 괜한 의미 없는 멋부림과는 거리가 멀다. 진실한 아름다움이 담긴 작품, 포스터의 작품을 한 마디로 정의하자면 이렇지 않을까.  

그가 자신의 최고 작품으로 꼽았다는 <하워즈 엔드>를 읽는 동안 문장 하나하나에 감탄하고, 이야기 짜임에 감탄했다. 이 사람이 나중에 이런 역할을 하고, 저 사람이 이런 영향을 줄 줄이야! 이 사람의 인생이 이렇게 흐를 줄이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탄성을 자아냈다. 어떻게 보면 꽤 복잡한 이야기인데 이토록 군더더기 없이 매끄럽게 흐를 수 있다니. 작가에 대한 존경심이 절로 들었다.

게다가 그런 이야기 속에 담긴 주제의식 또한 가볍지 않다. 인물들이 툭툭 내던지는 대사나 대화에서 삶의 가치에 대해 이런 저런 고민을 해보게 된다. 포스터의 작품은 한 편의 잘 만들어진 고전 드라마를 보는 듯한데, 그저 한 편의 재미있는 드라마로 끝나는 게 아니라 어느 순간 의식의 깨달음을 얻게 되는 ‘사회성’까지도 겸비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포스터의 작품을 사랑하고 포스터를 좋아할 수밖에 없다.

<전망 좋은 방>에서도 포스터는 고루한 인습이나 전통과 싸우는 자유로운 개성을 가진 인물(애머슨 부자)을 내세워 그런 악습에 갇혀 사는 사람들을 인식을 일깨우는 데 힘을 썼다. <모리스>에 나오는 ‘모리스’ 역시 그런 인물이라고 볼 수 있다. 전혀 상반되는 기질을 가진 사람들을 내세워 그들의 대화를 통해 인생에서 소중한 것이 과연 전통과 인습을 지켜나가고, 그러느라 인간의 영혼과 삶이 자유롭게 날지 못하고 감금당하는 게 과연 옳은 일인가 질문을 던져 왔던 포스터. 그리고 그의 이런 질문은 <하워즈 엔드>에서도 계속 된다.

독일인과 영국인의 피가 흐르는 헬렌과 마거릿 자매는 말 그대로 ‘교양인’이다. 지적이고 똑똑하며 음악과 문학, 예술 등 ‘정신적인 세계’에 사는 사람들이다. 게다가 이상주의자이며, 페미니스트적 기질도 농후하다. 마거릿의 동생인 헬렌이 좀 더 이상주의자며, 마거릿에 비하면 더 격한(?) 페미니스트다. 그런데 이 두 자매는 여행을 갔다가 우연히 그들의 세계와는 정반대에 속한 삶을 살고 있는 윌콕스 부부를 만나게 된다.

헨리 윌콕스는 전형적인 사업가의 모습을 지닌 남자로 여자는 남자의 등 뒤에 있을 때 가장 행복하다는 식의 보수적인 세계관에 부자와 빈자의 차이, 계급 차이는 사회가 유지 되려면 ‘있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의 부인인 루스 윌콕스 역시 그런 남편의 등 뒤에서 ‘가정’을 지키며 사는 삶이 여자의 삶이라고 믿는다. 이렇게 한 눈에 보기에도 전혀 다른 성질을 지닌 사람들이 여행에서 우연히 만나고, 그 인연으로 헬렌과 마거릿은 윌콕스네 집 <하워즈 엔드>로 초대를 받게 된다. 소설은 <하워즈 엔드>를 둘러싸고 헬렌, 마거릿 슐레겔 자매와 윌콕스 가의 삶이 어떻게 우여곡절을 겪으며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이상적이고 정신적인 세계에 사는 ‘슐레겔’ 가문과 현실적이고 물질적인 세계로 상징되는 ‘윌콕스가’ 이 두 가문의 대비 속에 또 다른 흥미로운 인물이 존재한다. ‘레너드’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레너드는 음악회장에서 헬렌과 마거릿 자매와 우연히 만난다. 헬렌이 레너드의 우산을 자신의 것으로 착각 하고 가져가는 바람에 인연을 맺게 된 것. 헬렌은 실수로 음악회장에서 남의 우산을 자기 것으로 생각하고 가져가는 일이 많은 사람이지만 레너드는 그 우산 하나에(우산 가격에) 전전긍긍할 정도로 극빈층 계급에 속한다. 가난하지만 책이나 음악과 같은 문화적인 것과 늘 가까이 하고자 하고, 그런 것에 목말라 했던 그가 큰마음을 먹고 음악회에 갔고 거기서 ‘문화적인 소양을 잘 갖춘 여유로운 중산층 계급’의 헬렌, 마거릿 자매를 만나게 된 것이다.

이런 인연으로 그 두 자매와 우정을 쌓게 된 레너드는 그녀들의 집을 방문할 때마다 문화적으로 충족되는 기분이 들지만 한편으로는 도저히 자기가 감히 건널 수 없는 벽, 차이가 있음을 실감하고 좌절하기도 한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 속에서 책과 음악을 소비하며 교양인이 되고자 노력하는 것은 여유로운 중산층 계급이 어릴 때부터 항상 문화적 환경에 둘러싸여 자라나며 쌓아 온 그것과는 엄연한 차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축적해온 교양과 문화에 대한 폭넓은 이해력을 레너드가 따라가기엔 한계가 있었고 그는 그것을 뼈저리게 절감한다.

<하워즈 엔드>는 이렇게 최상류층은 아닌 중산층 계급 중에서도 좀 더 부자인 윌콕스가, 넉넉한 재산이지만 윌콕스 가문보다는 경제적으로 수준은 낮은, 그러나 문화적 소양은 넘치는 슐레겔 자매, 마지막으로 경제적으로 최하 수준에 머물고 있지만 문화적으로는 어쩌면 윌콕스가 보다는 소양이 있는 레너드를 등장시켜 이 세 계급(중산층 내에서도 상, 중, 하를 이루는)이 어떻게 얽히고설켜 그들의 삶이 변화하는지 보여준다. 그 안에서 계급차이, 남녀문제, 경제적 상황이 개인의 인성에 미치는 영향 등을 날카롭게 포착한다.

줄거리가 상당히 의외의 방향으로 흐르기에 세세히 설명은 못하지만(결정적 스포일러가 될 위험이 다분히 있다), 앞서 언급했듯 한 편의 드라마를 보듯 상당히 재미있다. 게다가 포스터는 각 계급에 대해 어떤 계급의 삶이 더 낫고 옳은지 섣불리 개입하여 판단을 내리지 않는다. 실제로 그들은 서로의 삶에 매혹되기도 하고 때로는 자신들과는 정반대되는 삶에 격렬하게 거부감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은 책을 덮을 즈음에는 어떻게 사는 삶이 좀 더 인간답게 사는 삶인지 판단을 내릴 수는 있을 것이다.

“모두가 애정에 달린 문제에요. 애정요. 모르겠어요? 아시겠죠. 저는 헬렌을 아주 좋아해요. 하지만 당신은 별로 그렇지 않죠. 맨스브리지 씨는 아예 헬렌을 모르고요. 그게 다예요. 애정은 서로 주고받을 때 권리가 생기는 법이에요. 맨스브리지 씨. 수첩에 적어 두세요. 유용한 말이니까요.” (37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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