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생각이란 어떤 생각일까? 아마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평균적인 가치관이나 이데올로기에 반하는 생각들일 것이다. 다윈의
진화론은 신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믿었던 사람들의 가치관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것이었기에 ‘위험한 생각’이었으며 우주의 중심에
지구가 있다고 믿었던 천동설을 반박했던 갈릴레이의 주장 역시 ‘위험한 생각’이었다.
그렇다면 당대 최고의 석학 110명에게 물었다는 ‘위험한 생각’에는 찰스 다윈의 진화론이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처럼 ‘위험한
생각’들이 잔뜩 들어있을까? 결코 그렇지 않다. 사실 뭔가 엄청난 ‘위험한 생각’을 기대하고 책을 펼쳤던 이에게는 조금
실망스러운 책일 수도 있다. 특히 나처럼 ‘자연과학’적 지식이 그다지 많지 않은 사람에게는 생소한 용어도 많고 그다지 흥미로운
‘위험한 생각’을 안겨주지는 않을 것 같다.
이 책은 과학자와 사상가들의 모임인 '엣지재단' 회장 존 브록만이 110명의 석학들에게 ‘현재 당신이 갖고 있는 가장 위험한
생각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한 답을 모아 하나의 책으로 엮은 것이다. 그런데 110명의 명단에 올라간 사람들이
이름과 약력을 보면 대부분이 진화생물학, 컴퓨터 과학, 신경생리학, 심리학, 물리학 등의 분야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임을 알 수
있다. 때문에 그들이 내놓은 ‘위험한 생각’이라는 것도 거의 그 분야의 ‘위험한 생각’들이므로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적 접근은
좀 미흡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또한 <이기적 유전자>, <만들어진 신>의 리처드 도킨스, <이웃집 살인마>, <욕망의
진화>로 유명한 데이비드 버스 등 주로 진화생물학, 진화심리학자들의 의견이 많아 너무 그쪽으로만 치우친 느낌도 든다.
게다가 110명이 내놓는 위험한 생각이란 ‘난 이렇게 생각한다’ 자기 생각을 던져놓고 마는 경우가 많아서 솔직히 그래서 뭐
어쩌라고?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런 개인적 비판에도 불구하고 공감 가는 ‘위험한 생각’들도 종종 있고 미처 몰랐던 놀라운 발견 등도 있는데 주로 다음과 같다. (특히 우울증 치료제의 부작용이란...!)
그런데 나는 왜 진화심리학을 위험한 것으로 보는가? 그것은 나 자신과 침팬지나 원숭이 같은 나의 동류 인간들을 유전자 조종줄 위에서 춤추는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으로 여기게 되는 것이 두렵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스스로가 더 나은 개인이 되고자 하고, 더 공정하고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내고자 하는 엄청난 자유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싶다. 설사 유전학이 운명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우리가 진화론적인 생각의 포위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것도 아니다. 유전학은 정말로 우리의 변화하려는 능력을 억제할 수도 있는 걸까? 만일 그렇다면, 진화심리학의
몇몇 주장은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을 것 같은 행동에 대해 변명거리를 허락할 것이다. 이 변명거리는 편리하지만 위험하다. 예를
들어 여자를 희롱하는 남성이, 자신의 행동이 진화론적으로 이치에 맞는 것이라고 변명하기란 너무 쉽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우리가 진화론적 유산을 극복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리처드 도킨스 일파의 길을 따라 ‘이기적인 유전자의 횡포에 거역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면 어찌 되겠는가?
-제리 코인 ‘인간은 유전자의 꼭두각시다’
데이비드 버스의 <욕망의 진화>를 읽고 내가 딱 이야기 하고 싶던 부분이 바로 저 부분이다. 실제로 이
책에서도 데이비드 버스는 ‘악의 진화 – 우리는 살인으로 진화한다’라는 칼럼을 통해 인간은 생존과 번식을 위해 경쟁을 벌이는
무자비한 진화 과정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살인을 저질러 왔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인간 본성에 이미 어두운 면이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고 한다. 문화나 빈곤, 정신 병리, 미디어의 폭력에 노출되는 것 같은 현대적인 질병
탓이 아니라고 한다. 그런 것으로 원인을 돌린다고 인간의 어두운 본성이 사라지지는 않는다고 주장한다. 데이비드 버스의 이런
주장이라면 인간은 오로지 번식과 생존을 위한 본능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존재인가? 하고 되묻고 싶어진다.
생각과 느낌은 뇌가 육체와 상호작용하고, 육체가 뇌에게 말하는 것을 뇌가 듣게 될 때 일어난다. 그리고 뇌가 세계를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은 뇌가 육체를 통제하는 경험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뇌가 실제로 행하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하도록 만들고, 육체와 뇌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전통적인 방식에 대해 의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뇌와 육체가 분리돼 있지
않다는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의사들도 마음의 상태와 육체의 건강이 서로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보통의
의학에서는 이와 반대로 육체와 뇌가 분리돼 있다고 보고 있다. 우리는 또 사랑에 빠졌을 때의 감정 같은 것에 대해서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사랑의 감정은 마음에만 있는 게 아니라, 육체에도 그만큼의 크기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략)
사랑과 긴밀한 유대 같은, 인간의 가장 친밀한 감정에서도 육체와 마음은 상호작용을 한다. 그러한 상호작용은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이라는 두 가지 호르몬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 들쥐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이 호르몬들은 연구원들이 표현하듯이 “교미
과정에서 촉각이 연장됨으로써 얻어지는 쾌락”의 결과로 방출되며, 뇌 속의 쾌락 센터를 거쳐서 성적 파트너가 서로에게 죽을 듯이
몰두하도록 만든다. 쥐에 비하면 인간은 확실히 더 지적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들의 뇌 스캔 사진을 보면, 옥시토신과 바소프레신
수용체가 있는 곳에서 활동이 증대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옥시토신은 오르가슴과 성적 흥분을 느끼는 동안에도 올라가는데, 손으로
만지고 마사지할 때도 그렇다. 자폐증이 있을 경우 옥시토신 수용체에도 결함이 감지되었다. 그리고 옥시토신 호르몬은 다른 사람들에게
대한 신뢰감을 높여주는 역할을 한다.
-앨렌 앤더슨 ‘뇌는 육체 없는 마음이 될 수 없다’
앨렌 앤더슨의 이 ‘위험한 생각’을 읽으면 인간에게 있어 뇌와 마음을 분리하는 생각, 예를 들어 정신적인
사랑(흔히 고결함의 표상처럼 일컫는 플라토닉 러브), 혹은 그와 반대로 육체적인 사랑 이런 분리가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프로작과 같은 세로토닌을 촉진하는 우울증 치료제는 낭만적인 사랑의 감정, 배우자나 파트너에 대한 애착의 감정, 생식력과
유전적 미래를 위태롭게 할 수 있다. …. 우선 SSRI(선택적인 세로토닌 재흡수 촉진제)는 세로토닌을 증가시킬 때 뇌 안의
도파민 경로도 억제한다. 낭만적 사랑은 도파민 경로의 증대된 활력과 관련되기 때문에, SSRI는 열렬한 낭만적 사랑의 감정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 SSRI는 또한 낭만적 사랑의 핵심적인 특성인 강박적인 사고를 억제하고, 감정을 둔하게 한다. … 내
생각이 위험한 이유는 거대한 의약품산업이 이러한 약품의 판매에 투자를 많이 했다는 사실 때문이다. 현재
세계적으로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그 약들을 복용하고 있다. 그리고 그 약들이 일반 명칭으로 판매될 때, 더욱 많은 사랑을
시작하고 사랑을 지속하는 능력을 억제당하면서 그 약들을 복용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인간의 사랑 패턴이 근본적으로 바뀌게 되면,
온갖 종류의 사회적, 정치적 잔학 행위가 늘어날 수 있다.
- 헬렌 피셔 ‘사랑과 섹스의 패턴이 뒤바뀐다’
놀라운 것은 헬렌 피셔만이 아니라 사무엘 바론데스 또한 ‘개성을 바꾸기 위한 약물 사용’이라는 칼럼을
통해 프로작과 같은 우울증 치료제의 부작용을 이야기 한다는 점이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우울증을 그 어느 때보다 더
심하게, 자주 앓고 있으며 손쉽게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한다. 그렇다면 우울증 치료제를 복용함으로써 사랑과 같은 자연스러운
감정을 느끼는 것은 억제당하고… 억제당하니까 다시 우울해지고… 악순환의 연속이 아닌가. 머지 않은 미래에는 감정을 스스로 통제하고, 자연스 감정을
잃어버린 인간들의 디스토피아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닐까, 이런 상상도 잠깐 해보았다.
어린이들이 학교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그들이 학교에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즉 누가 자신을
좋아하는지, 누가 지기들에게 비열하게 구는지, 어떻게 해야 자신의 지위를 높이게 되는지, 어떻게 하면 교사에게 잘 보여서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는지 등등. 어린이들은 학교에서 이런 생각만 하고 있다. 유감스럽게도 오늘날의 학교는 지난 수백 년과 아주 똑
같은 방식으로 조직화되어 있다. 물론 그 지난 수백 년 동안 철학자 등은 학교가 정말로 나쁜 곳이라는 점을 지적했다.‘우리는 10년이나 15년 동안 학교 교실이나 대학 강의실에서 감금되어 있다가, 마침내 많은 어휘들만을 익힌 채, 하지만 세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학교 문을 나서게 된다.'
-랠프 왈도 애머슨
학교는 우리가 알고 있는 방식으로 존재하기를 멈춰야 한다. 정부는 교육 비즈니스에서 벗어나야 한다. 정부는 어린이들이 알아야만 하는 게 무엇인지를 알고 있다고 자신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어린이들이 숟가락으로 받아먹은 것을 제대로 토하고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어린이들을 테스트하는 것을 중단해야 한다.
- 로저 생크 ‘아이들은 학교에서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