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이다. 제주도에 간다 하니 후배 녀석이 이 책을 선물했다. 제주도 가기 전에 읽고 이곳에 한 번 꼭 들러보라고. 내가 이 책을 선물 받았을 때에 비하면 김영갑과 그의 갤러리는 이제 너무도 유명해졌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제주도에 갈 때마다, 김영갑을, 두모악을 떠올린다. 내게 두모악은 시간이 나면 꼭 들르는 제주도 필수 코스가 되었다. 모든 게 다 이 책 한 권 때문이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제주도에 관한, 제주도에 미친 사진작가의 이야기다. 이 책 속에 담긴 사진과 글의 주인인 김영갑은 1982년부터 서울에서
제주도를 오가며 제주도의 자연 풍경을 담던 중 제주도의 매력에 흠뻑 빠져 1985년 아예 제주도로 내려간다.
멋진 카메라를 어깨에 멘 사진작가가 제주도에 내려가 제주도 사진만 찍는다는 말만 들으면 어쩐지 낭만적인 풍경이 떠오른다.
그러나 김영갑의 생활은 낭만과는 거리가 멀었다. 매일 매일이 전투처럼 고달팠다. 사진 찍을 그 순간만 빼고는- 가진 것 없는
가난한 사진작가, 돈만 생기면 필름 사는 데 다 써버리니 사는 곳도 먹는 것도 변변치 않다. 남루한 옷차림에 이리저리 제주도
곳곳을 쏘다니며 어슬렁거리니 간첩으로 오해받아 경찰서도 자주 불려다녔다. 결혼도 안 하고 사진만 찍으며 허름한 곳에서 변변찮게
사니 가족은 물론 지인들 그리고 제주도의 이웃들까지 수군거리기 일쑤였다. 하릴없이 사진에 미쳐 장래는 생각도 안 하고 시간만
축내는 놈이라는.
1부에서는 제주도에 미친 그가 사진을 찍으며 제주도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자연 속의 소박한 삶에 관한 이야기가 펼쳐지고,
2부는 그러던 중 얻은 루게릭 병으로 병마와 싸우며 ‘김영갑 갤러리-두모악’을 만들게 된 과정이 그려진다. 세속적인 성공이나
안락함을 떠나와서 사는 사진작가의 외로움과 고독감이 절절하게 드러나는 장면도 있고, 좋은 카메라가 있어야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은 사진작가들에 대한 따끔한 비판도 가끔은 엿보인다. 무엇보다도 불치병에 걸린 중에도 ‘내가 죽으면 누가 내
사진을 나만큼 아껴줄까’하는 생각에 시골 폐교를 임대해 갤러리를 만들어 하나하나 손수 가꿔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끼니는 거를지언정, 필름 사는 돈은 아끼지 않았다는 김영갑- 투병 생활 6년 만인 2005년 그 갤러리에서 그는 끝내
숨졌고, 이제 두모악 갤러리는 해마다 많은 이들이 찾아와 제주도의 또 다른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돌아간다. 그리고 아울러 이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예술가로 산다는 것, 부와 명예 등 세속적인 성공에서 벗어나 자신이 진정 좋아하는 일에 미친 한 사람의
삶을 보여줌으로써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책 속에 담긴 그의 사진들을 보면, 무척이나 아름답지만 한없이 외롭다. 홀로 우두커니 서 있는 나무, 홀로 바다에 잠긴 듯한
섬…. 외롭고 쓸쓸하다. 그의 인생도 그렇게 느껴진다. 예술가로서 치열하게 아름답게 살았지만 한없이 외롭고 쓸쓸했던 삶-
배부르고 행복하면 좋은 예술 작품은 나오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있다. 정말 그럴까. 끼니를 거르더라도 책을 살 것이냐? 모든
사람들과 단절하고 어딘가 처박혀 글만 쓸 것이냐, 누군가 내게 그렇게 묻는다면 나는 그런 삶은 살고 싶지 않다고 말할 것이다.
그럴 자신도 없고(배고프면 책도 안 읽혀;). 예술가와 평범한 사람의 삶은 그래서 다른가보다.
<그 섬에 내가 있었네>는 읽고 난 뒤 여러 사람에게 선물해 주고 싶은 마음이 절로 든다. 그래서 결국 여러 권을 사두고 아끼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선물하게 된다. 제주도에 가게 되면 두모악에서 김영갑의 작품이 인쇄된 엽서를 사서 선물하기도 한다. 아마 내게 이 책을 건넨 후배 또한 그러했으리라. 올해도 제주도에 가게 되면 또, 다시, 두모악에 들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