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하루 - 피란델로 단편 선집
루이지 피란델로 지음, 정경희 옮김 / 본북스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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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여름에 사둔 이 단편집을 왜 이제야 읽었을까! 진작 읽었더라면 올해 내내 그의 모든 작품을 다 읽었을 텐데! 체호프와 모파상을 절묘하게 섞은 듯한 그의 단편. ‘유모’와 ‘침묵 속에서’ 단 두 작품만으로도 그의 진가를 알 수 있다. 그가 쓴 단편 250편을 모두 읽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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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알벨루치 2018-12-30 07: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또 낚인다. ㅜㅜ

잠자냥 2018-12-30 10:34   좋아요 1 | URL
낚여보세요! ㅎㅎ 전 이미 이 작가 다른 책 장바구니에 잔뜩 넣어두었습니다!

목나무 2018-12-30 14:0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나도 낚였다. ㅋㅋㅋ
잠자냥님 덕분에 조용히 숨어있던 명저들 알게 되는 기쁨이 쏠쏠합니다. ㅎㅎ

잠자냥 2018-12-30 16:46   좋아요 1 | URL
한 사람이라도 더 좋은 책을 알게 된다는 게 또다른 재미네요. ㅎㅎ
 
아름다움의 선
앨런 홀링허스트 지음, 전승희 옮김 / 창비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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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한강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노벨문학상만큼이나 유명해진 맨부커상. <아름다움의 선>은 2004년 맨부커상 수상작이다. 이 작품이 맨부커상을 받았을 때 일간지들은 일제히 그 소식을 대서특필했단다. ‘게이소설이 맨부커상을 수상하다’, ‘영국 게이들의 삶 이야기가 최고의 문학상을 받다’ 등등. 우리나라에 처음 소개 된 작가, 앨런 홀링허스트의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역겨움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아니, 게이 주인공을 내세운 작품을 읽으면서 역겹다니! 이런 호모포비아적 발언을 아무렇지 않게 하다니! 흥분하는 이들도 있으리라. 그러나 그 역겨움은 주인공인 게이 청년 닉의 사랑에서 비롯하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그가 속한 영국 상류층의 속물스러움과 허위와 가식, 정치적 올바름을 가장했지만 그 속은 저열하기 짝이 없는, 비열한 민낯을 속속들이 들여다보는 데에서 기인한다.

닉은 이제 막 옥스퍼드를 졸업했다. 학벌 좋고 집안도 좋은, 상류층 게이의 러브스토리인가 생각할 수도 있다. 어느 정도는 맞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점이 예상과 다르다. 사실, 닉의 집안은 아주 평범하다. 그의 말에 따르면 ‘흔해빠진 부모의 흔해빠진 아들’일 뿐이다. 그런  그가 어떻게 상류층에 진입했을까? <아름다움의 선>은 상류층에 머물면서도 거기에 속하지 않은 주인공 ‘닉’의 부유하는 듯한, 겉돌 수밖에 없는 위치와 시선이 작품을 밀도 있게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다. 닉이 만일 완벽한 상류층이었다면 이 작품은 영국 상류사회의 위선과 허위, 가식을 그토록 섬세하면서도 날카롭게 파헤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는 얼마쯤 깊이 발을 담그고 있으면서도 그 일원은 될 수 없는, 되고 싶어도 절대 될 수 없는 위치에 속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리를 둔 관찰자로서의 역할이 가능하다.

마거릿 대처가 재집권에 성공한 1983년 여름, 옥스퍼드를 졸업한 닉 게스트는 대학원 진학을 앞두고 그의 옥스퍼드 동기이자 짝사랑의 대상인 토비 페든의 집에 ‘게스트’로 머물게 된다. 친구 집에서 하숙을 한다고나 할까. 그런데 하필이면 이 친구 집이 정계와 재계 인사들이 안방처럼 드나드는 그야말로 상류층 집안인 것이다. 노팅힐의 부유한 저택에 사는 토비의 아버지 제럴드는 전도유망한 보수당 초선의원이며, 어머니 레이철은 부유한 은행가 가문 출신이다. 이 집안의 한 가지 골칫거리라면 조울증을 앓고 있는 토비의 여동생 캐서린 정도랄까. 그런 집안에서 네 집처럼 생각하라면서 덜커덕 방 한 칸을 닉에게 내준 것이다.

남몰래 짝사랑해온 토비와 한집에 산다니! 그것만으로도 황홀할 텐데, 상류층의 라이프스타일이 닉에게 덤으로 주어진다. 그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상류사회를 이루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사회에 젖어 들어가게 된다. 토비의 가족은 너그럽고도 자연스러운 태도로 닉을 친구이자 가족처럼 흔쾌히 받아들인다. 제럴드나 레이철, 토비가 집을 비울 때는 닉이 캐서린의 보호자겸 친구 역할을 한다. 그래서 그런 걸까? 캐서린은 이 집에서 유일하게 닉의 정체성을 알고 있다. 그가 블라인드 데이트를 나가기 전에 상대의 사진과 편지를 보여주면 이런저런 조언을 해줄 정도로 닉의 성적기호 앞에 그녀는 허물이 없다.

1983년 대처 시절이 호황기를 누리듯, 닉의 인생 또한 전성기를 구가한다. 그는 페든 가의 일원으로 상류층 인사들의 파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그들처럼’ 지내고, 토비를 비롯해 남몰래 동경하던 옥스퍼드 동기들과 친밀하게 교류한다. 또 그 해에는 잊을 수 없는 첫사랑, ‘리오’도 만난다. 그들은 만난 첫날부터 섹스를 한다. 둘이 마땅히 사랑을 나눌 공간이 없기에 공원 한구석에서 말이다. 정신없이 사랑에 빠지는 닉과 리오. 그들에게는 절실하게 ‘그들만의 공간’이 필요하다. 리오의 집은 철저하게 호모포비아적인 어머니가 두 눈 부릅뜨고 계시며, 닉은 방 한 칸을 빌려 쓰고 있는 하숙생일 뿐이다. 어찌하랴? 뜻밖에도 이 관대하시며 한없이 정치적으로 올바르신 페든 가의 제럴드와 레이철은 닉의 연애 상대가 남자, 그것도 흑인이라는 사실에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이 집으로 언제든 데리고 와도 좋다고 허락하신다. 오, 놀라워라!

그 전까지 닉은 자신의 정체성을 들킬까 두려워하고 전전긍긍했다. 소년 남창과 재규어에 있던 걸 들켜서 사임한 외무부 차관의 스캔들을 페든 가 일원을 비롯해 상류층 사람들이 화제 삼아 이야기할 때는 ‘갑자기 스스로를 의식하며 마치 재규어에서 발각된 것이 자신이라도 되는 듯 얼굴’을 붉히기도 했다. 동성애가 화제에 오르면 종종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되었다. 페든 집안의 너그러운 분위기 속에서도, ‘무심히 나왔을지 모르는 말-그냥 감수하면 되는 간접적인 모욕이나 그저 그렇게 웃어넘길 만한 농담’에도 그는 두려움에 몸이 굳어버리곤 했다. 그 때문에 닉은 때때로 외로웠으며 자신은 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그들에게 속하지 않는다는 공포에 가까운 느낌을 받곤 했다. 그런데 이제, 연인을 집에 데려올 수 있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세상인가!

리오가 거침없이 닉을 찾는 전화를 걸었을 때 제럴드는 순간적으로 ‘동성애자 사이의 실제 통화를 마주하리라고는 상상해본 적도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곧 다정하게 전화를 바꾸어줬으며, 레이철은 또 레이철대로 “얼마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와 함께 있는 동안은 여기가 닉의 집”이라면서 언제든 리오를 초대하라고 말한다. 실제로 제럴드의 식구들이 집을 비우던 날 드디어, 마침내 닉은 리오를 집으로 데리고 온다. 그때 리오는 문 앞에서 서성이며 이렇게 묻는다.



“그런데 집에 동성애자가 있어도 상관없는 건가? 저 귀족 분들 말이야.”
“물론 전혀.” 닉이 말했다. “절대로 괜찮아.”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대놓고 말만 안하면’이라고 캐서린이 단서를 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어느 정도 과장해서 말을 이었다. “그 사람들도 동성애자 친구들 많아. 사실 너를 데려와도 좋다고 하던걸, 달링.”
“아.” 리오가 레이철에 버금갈 미묘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아름다움의 선>, 243쪽)


리오는 그렇게 닉이 살고 있기는 하지만 그의 집은 절대로 아닌, 그의 방으로 들어서고 그날 그들은 뜨겁게 사랑한다. 그렇게 아름다운 1983년의 어느 밤이 저물어간다. 그리고 이야기는 1986년과 1987년으로 이어진다. 닉 게스트는 레이철이 말했듯이 페든 가를 그의 집처럼 여기면서 실제 가족의 한 사람처럼 1986년과 87년에도 행복하게 잘 살아갈까? 만일 그렇다면 이 작품은 소설이 될 수 없었으리라. 그럼에도 1986년의 닉은 한층 더 상류사회에 젖어 들어있다. 가난한 유색인 애인 리오가 아닌 레바논 출신 부유한 사업가의 귀염둥이 외아들 와니로 갈아탔고, 그가 주는 물질적, 성적 쾌락에서 헤어 나오지 못한다. 1986년의 닉 게스트는 그야 말로 성(性)과 코카인, 돈이 주는 안락함에서 비롯된 방종과 탕진으로 이어진 삶을 살아간다.

<아름다움의 선>은 1983년과 1986년, 1, 2부로 나뉜 이야기들이 너무 섬세하고 길게 이어지는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세밀하게 그려진다. 무분별한 성적 난교와 상류층의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는 속물적 삶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묘사하는 일이 언제까지 계속 되는 걸까? 가끔 한숨이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 모든 이야기들은 1987년, 3부를 위해 마련된 장치였음을 곧 알게 된다. 그렇게 써졌어야만 했다. 1,2부의 이야기들이 촘촘히 모아져서 3부에서 드디어 폭발하는데, 가히 탄성을 자아낼 정도이다. 그러니 만일 이 책을 읽어볼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1,2부가 과하다 싶은 생각이 들더라도, 꾹 참고 읽어나가시라. 그리하면 마침내 3부에서 보상을 받게 될 터이니.

그렇다고 1부와 2부의 이야기들이 지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내부자도 아닌, 그렇다고 외부자도 아닌 닉 게스트의 어정쩡하지만 관찰자일 수밖에 없는 시선으로 그려지는 상류층 이야기들은 진저리가 날만큼 사실적이며, 닉의 첫사랑과 두 번째 사랑, 그 틈바구니에서 묘사되는 그 자신의 정체성의 혼돈, 게이라는 정체가 드러날까 봐 두려워하는 공포, 뜻밖의 커밍아웃과 얼마쯤의 안도감, 상대 때문에 숨겨야만 하는 사랑과 연애, 그로 인한 외로움과 고독함 등이 놀라울 정도로 섬세하게 그려진다. 아마도 작가 ‘앨런 홀링허스트’가 게이로 살면서 느끼고 겪었을 일들이 고스란히 닉에게 투영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렇게 안 해도 되면 좋겠어.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어. 사람들에게 공개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한 사람에게 말하면 모든 사람에게 말하는 거나 마찬가지야.” 와니가 말했다. “그냥 <텔레그래프>에 전면 광고를 하고 말지.”
“우리가 무슨 짓을 하는지 사람들이 알게 되면 이렇게 함께 파티에 참석할 수 있을 거 같아?”
“나는 한 번도 동성애자가 아닌 척한 적 없어. 그러고 있는 건 너지. 지금은 1986년이야. 세상이 달라졌다고.”
“그래, 동성애자들이 무더기로 죽어나가고 있지.” (<아름다움의 선>, 347쪽)


공포는 마약 때문이 아니라 두 사람이 수상하게 가까워 보인다는 점 때문이었다. 문이 잠겼다는 사실은 그런 관점에서 보면 특히 의심스러운 일이었고. (<아름다움의 선>, 349쪽)


닉 게스트는 ‘그들’의 말처럼 정말로 진짜 가족을 가질 수 없었기에 제럴드 가족에게 ‘기생’했던 것일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가 애초에 하숙생 신분으로 그 안락한 삶에 ‘기생’하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1983년의 닉, 리오를 사랑하던 그는 그래도 순수하게 느껴졌다. 어느 정도는 페든 가와 거리를 둘 줄 알아 보였다. 그러나 1986년의 닉은 완전히 그 사회에 젖어들어 그들과 함께 거의 ‘하나’가 되어 있다. 그런데, 비극은 ‘그들’은 결코 닉을 ‘하나’로 생각하지 않았다는 데 있다. ‘그들’과 달리 ‘아름다움의 선’을 제대로 보고 음미할 줄 아는 그였지만, 그 재능을 자기 스스로 갉아먹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남는다. 아름다운 한 시대는 저물어 가고, 이제 그의 앞에 놓인 삶은 ‘현실’ 그 자체이다. 그는 어쨌든 앞으로 살아남아야 할 터이고, 페든 가에서의 한 시절은 그에게 어떤 의미로든 쓰디쓴 약, 성장통이 되었을 것이다. 그는 이제 길모퉁이도 눈여겨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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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 - 2018 제12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한강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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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상 수상작인 한강의 ‘작별‘이 다른 작품에 비해 월등히 좋아서 나머지 작품은 기억에 잘 남지 않는 단점이 있다. 이런 수상 모음집의 장점이라면 뜻밖의 발견을 할 수 있다는 점인데 김혜진 <동네 사람>이 그런 작품 중 하나. 그리고 정지돈 작품은 여전히 비호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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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우리의 나날
시바타 쇼 지음, 권남희 옮김 / 문학동네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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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얼른 읽고 중고로 팔아야지(책이 더 많이 풀리기 전에) 생각했었다. 그런데 읽는 내내, 읽어갈수록, 그럴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결국 책꽂이에 꽂아둔다. 내겐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정말 인생의 책이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더욱이 이 책을 청춘이라 부를 나이에 읽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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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8-12-27 14: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차피 신간도 아니니 6개월 정도
더 기다렸다가 저는 중고로 구해서
읽어 볼까 합니다만.

잠자냥 2018-12-27 14:50   좋아요 0 | URL
ㅎㅎㅎ 그것도 좋은 방법입니다. 판매가 많이 되고 있는 책이라 중고에 곧 많이 풀리지 않을까 싶어요.

공쟝쟝 2018-12-27 20:3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흐흐저와같으시네요... 저도 팔려고 플래그 붙이며 읽다가 밑줄좍좍 그으며 보다가.. 그래도 젠더부분은 아쉽다가 ㅋㅋㅋ 그러나 청춘이 아련하고 결말도 좋아서.. 책장에 꽂아두기로! 청춘에 읽기 좋단 말에 동의동의합니다 ^.^

잠자냥 2018-12-27 21:41   좋아요 1 | URL
네 말씀하신 부분은 정말 좀 아쉽지요. 남자 작가의 어쩔 수 없는 한계랄까. ㅎㅎㅎ그래도 그 부분 빼고는 괜찮았어요.

카알벨루치 2018-12-27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야겠네요 중고온라인 금방다녀옴

잠자냥 2018-12-27 21:42   좋아요 1 | URL
와 벌써 중고서점에 나왔군요! 그걸 또 운좋게 잘 낚으셨네요! ㅎㅎ

카알벨루치 2018-12-27 21:47   좋아요 0 | URL
다녀오기만 했지요 헛수고였슴돠 ㅜㅜ

잠자냥 2018-12-27 21:53   좋아요 1 | URL
ㅎㅎ 저런~ 저처럼 팔려고 하다가 갖고 있기로 한 사람들이 많은가 봅니다. ㅎㅎ

카알벨루치 2018-12-27 21:56   좋아요 0 | URL
6개월 기다리면 레삭매냐님한테 빼앗길 것 같은데...저분 보통 분이 아니라...

coolcat329 2018-12-28 1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신기하네요. 팔려고 하다가 갖고 있기로 했다...안 읽으려고 했는데 조금 관심이 가네요

잠자냥 2018-12-28 10:45   좋아요 0 | URL
이 책이 또 재미있는 게 헌책방에 나온 책 한 권에서 시작된 이야기인지라. ㅎㅎㅎ
 














지구에 존재하는 수많은 언어 가운데 하루에도 여러 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단어로는 어떤 것이 있을까?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사랑이라는 단어도 열 손가락 안에 꼽히지 않을까? 이 순간에도 사랑은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와 어떤 이를 행복하게 만들고, 또 어떤 이를 절망에 빠트리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참 이상하다. 사랑을 말하는 이는 많아도, 그 사랑은 어딘가 비틀어져 보인다. 사랑불능의 시대. 지금 이 세계는 그런 곳이 아닐까. 연인에게 폭력을 가하고 그것도 모자라 목숨까지 빼앗는 일이 날마다 일어난다. 남자와 여자는 서로 혐오하고 증오한다. 결혼이 꼭 사랑의 증거는 아니지만, 결혼식 비율도 줄곧 최저치를 갱신한다. 이 땅에서 사랑은 점점 소멸해가는 게 아닐까? 사람들이 연애는 할지언정 사랑은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런 이들이 이 책들을 읽는다면 조금은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을 텐데, 안타까운 마음이 들기도 한다.

 

몽테를랑의 <소년들>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숱하게 책장에서 쏟아진다. 소년들이 다니는 학교의 규칙은 많이 사랑하기, 많이 포옹하기, 많이 기도하기일 정도이다. 거기에 충실하려는 듯이 알방세르주를 끔찍이도 사랑한다. 사랑불능 시대를 극복하기 위해 고작 어린 소년들의 사랑을 다룬 책을 처방한다니, 실망하는 이도 있으리라. 그러나 <소년들>의 사랑은 그 어떤 어른의 사랑보다도 순수하고 숭고하다. 그리고 뜨겁다. 세르주와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만 하는 순간에 알방은 그를 포기할 줄 안다. 오직 사랑하는 이가 더 좋은 사람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한걸음 물러날 줄 안다. 알방은 그전부터 세르주를 향한 생각과 욕심을 버리려고 했으며, 그가 올바른 길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 간절히 기도한 바 있다. 그리고 그 마음을 행동으로 실천한다.

 

많은 연인들이 헤어지고도 그 사람을 포기하지 못해서, 미련을 거두지 못해서 상대를 괴롭힌다. 헤어지기 전부터 자신만의 고통과 괴로움에 사로잡혀, 그 욕심과 뒤틀린 욕망 때문에 이별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런데 열여섯 살 소년 알방은 내가 아닌 다른 존재더 훌륭하게 만들고싶은 마음에 그 존재를 위해 자기 인생의 가장 귀한 보물을 희생할 줄 안다. 그런데도 그저 이 사랑을 고작 십대 소년들의 풋내기 사랑이라고 가볍게 볼 수 있을까.

 

이토록 숭고하게 희생정신이 빛나는 사랑의 모습 말고도 <소년들>에서는 사랑과 관련한 주옥같은 말들을 만날 수 있다. ‘애정은 무슨 선물꾸러미처럼 피에르에게 줄 걸 다시 가져가서 폴에게 주는, 그렇게 주문에 따라 옮길 수 있는 게 아니’(119)라는 말이나, ‘우리의 사랑은 얼굴에 대한 사랑이 아닙니다. 우리의 사랑이 강렬함과 영속성, 그리고 자아에 대한 망각으로 어느 정도 절대적이 될 때, 그 사랑은 신의 사랑과 매우 가까워지고 피조물은 우리를 창조자에 이르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듯 느껴지지요.’(281) 이런 말들을 읽노라면 당신과 나, 우리 모두의 사랑은 과연 어떤 모습이었으며, 또 어떤 모습인지 돌아보게 한다.

 

<소년들>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사랑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면, <세기아의 고백>은 이렇게 사랑하면 절대 안 된다는 것을 알려준다. 재능 넘치는 시인이자 낭만주의자였던 뮈세와 사랑의 여신 조르주 상드의 실제 사랑을 바탕으로 쓰인 이 작품에서 뮈세는 열정적이면서도 광기 어린 사랑을 한 편의 시처럼 절절히 고백한다. 뮈세의 페르소나인 옥타브는 첫사랑 여인의 배신으로 삶의 의미를 잃어버린 채 방황한다. 그러나 다시는 사랑이 없을 것만 같던 그의 인생에 또 한 번 사랑이 들이닥친다. 두 번째 연인 브리지트’. 어렵사리 사랑을 시작한 두 사람이지만, 순탄하지만은 않다. 첫사랑에 실패한 옥타브이기에, 그 사랑의 그림자가 쉽사리 걷어지지 않는다. 의심과 질투, 불안이 그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첫사랑 연인을 완벽하게 믿었으나 그 신뢰가 깨져버리자 이제, 연인을 온전히 믿기가 불가능해진 것이다. 행복 속에서도 질투와 의심이라는 망상이 그의 뇌리를 파고든다. 의심에 빠진 모든 사람들처럼 그 또한 감정과 생각을 따로 떼어놓고는 사실과 다투고, 의미 없는 말에 집착하면서 자기 사랑의 대상을 분석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의심과 질투는 찬란했던 사랑을 파국으로 몰아간다.

 

브리지트의 말처럼 사랑은 행복이거나 고통이다. ‘사랑이 행복이라면 사랑을 믿어야한다. 그러나 의심과 질투와 망상으로 깨져버린 이 사랑은 아무리 애정이 남아있다 하더라도 더는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다. 옥타브는 세상에 존재하는 유일한 행복을 스스로 포기한 셈이다. 신뢰로써 사랑하는 그 행복을. 브리지트의 저주와도 같은 예언처럼 아마도 그는 이제 영원히 누군가를 오롯이 믿고 사랑하는 순수한 사랑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저 눈에 보이고 손가락으로 만져지는 사랑만이 그에게 남겨지리라. 그런데, 이 모습은 누군가를 사랑하고 서로 연인이 되고, 연애하는 오늘날 사람들의 사랑과 닮았다. 연인을 완벽하게 믿는 사람들이 세상에 얼마나 존재할까? <세기아의 고백>아름답긴 하지만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꿈꾸며 오늘도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을 이들에게 사랑의 의미를 되짚어보게 한다. 인간에게 사랑은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나의 사랑은 어떠한지.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에서 그려지는 사랑은 <소년들>의 순수함과 <세기아의 고백>의 열정적인 모습을 두루 갖추고 있다. 아르세니예프가 리카를 처음 만난 날은 주위의 모든 것이 달라 보인다. 그날 그는 모든 것에 반한다. 땀 흘린 작은 소년에게까지……. 그녀와 함께한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사랑의 시작은 항상 괜히 즐겁고 에테르에 취한 것과 비슷’(285)하므로. 사랑에 빠진 연인들은 결혼으로 하나의 결실을 본다. 그러나 결혼이 사랑의 끝이 아니기에, 오히려 또 다른 삶의 시작이기에 그 삶을 잘 가꾸지 못하면 사랑은, 그 새로운 삶은 파국을 맞이할 수밖에 없다. 많은 이들이 사랑을 얻은 뒤로는 한때 간절히 바랐던 열망을 쉽게 잊고는 자신만의 삶이 더 소중해지고 자유를 꿈꾼다. 그렇지 못한 다른 한 사람은 상대에게 원망 서린 한숨을 내쉬며 그의 삶에서 빠져나간다. 사랑을 계속 유지하기란 그토록 어렵다. 아르세니예프와 리카의 사랑도 그런 수순을 밟는다. ‘어리석은 희망과 꿈에 대한 환멸과 모욕이 극에 다다랐음을 깨닫고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 곁을 떠나는 것이다.

 

<아르세니예프의 인생>에서 사랑은 곧 삶이다. 사랑 없는 삶은 죽음이며, 산다는 것은 곧 사랑함을 뜻한다. 끊임없이 누군가를 사랑했던 아르세니예프는 아침이슬이나 저녁놀, 고요한 어스름, 흰 눈, 끝없는 평원처럼 부드럽고 여성적인 것들을 사랑한다. 아름답지만 영원할 수 없는 것들을 유난히 사랑한다. 사라지기에 더 아름다울 것들을……. 아르세니예프는 말한다. ‘나는 나의 삶이나 다른 이들의 삶이 낮과 밤, 일과 휴식, 만남과 대화, 이따금 사건이라 불리는 기쁨과 불쾌함의 교차임을 깨달았다. 그리고 삶이란 인상, 장면과 형상들의 무질서한 축적이고, 이 가운데 가장 하찮은 것들만이 우리 마음속에 남는다는 사실을 알았다.’(235). 사랑은 그 모든 것들 가운데서도 우리 마음속에 가장 강력한 흔적을 남길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렇게 물을 수도 있으리라. 그토록 순수하고, 그토록 뜨거우며, 또 그토록 깊고 향기 그윽한 사랑이 현실에서도 존재할 수 있느냐고, 문학에서나 가능한 일이 아니냐고. 그러나 알방과 세르주, 옥타브와 브리지트, 아르세니예프와 리카 세 쌍이 그리는 저마다 다른 사랑의 풍경은 모두 작가 자신의 삶에서 비롯되었다. 그렇기에 뒤늦은 회한이든 깨달음이든 읽는 이의 마음을 더없이 진솔하게 울린다. 순수한 마음으로 상대를 먼저 생각하면서 사랑할 것, 사랑받기보다 사랑할 것, 그 사랑을 의심하지 말 것, 그 사랑을 잘 가꾸어 나갈 것, 누군가의 마음을 얻은 일 자체가 끝이 아니므로. 그 사랑이 생활의 때가 묻어 조금씩 빛바래져가는 듯해도 그것을 그 나름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영원함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사랑은 퇴색한다하더라도 형태와 애정의 모양을 달리해서 삶에 여전히 머물 것이므로. 사랑불능의 시대를 넘길 지혜가 이 책들에서 조용히 빛을 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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