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하지 않는 사람들 - 감시, 조종, 거짓에 맞서 싸운 디지털 미디어 시대의 영웅들
매슈 대니얼스 지음, 최이현 옮김 / 포레스트북스 / 2019년 11월
평점 :
품절


20대 시절에는 나도 꽤 행동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수요집회를 비롯해 이런저런 ‘운동’에 직접 참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사회운동에 회의감이 들어 이제는 그냥 먼발치에서 지켜보는 처지, 방관자가 되고 말았다. 사람들이 무리지어 모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게 되면서 더 그렇게 된 것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정의감은 살아 있는지 약자나 소수자에 대한 차별이나 사회의 불합리하고 부당한 점을 목격하게 되면 참지 못하고 욱하고는 한다. 예전처럼 거리로 나가는 일은 거의 없지만 스마트폰이나 컴퓨터 화면을 통해 그런 소식들을 접할 때면 ‘리트윗’을 한다거나 ‘좋아요’를 누른다거나, 그런 뉴스 링크를 내가 아는 이들에게 전해주면서 참여를 종용하기도 한다. 때로는 인권이나 동물권 등 약자를 위해 활동하는 단체에 기부금을 내기도 한다. 그 정도가 내가 여전히 할 수 있는, 사람다운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작은 참여 중의 하나이다.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과 같은 책을 읽는 일도 어떤 의미로는 그런 참여에 속하기도 한다. 이런 책을 읽음으로써, 아직 이 세계에는 변화를 꿈꾸며 행동하는 이들이 존재하고, 그런 이들 때문에 세상은 좀 더 진보하고 있다고, 그 열정을을 간접적으로 경험한다. 그리고 그런 정의로운 세상을 꿈꾸는 일을 멈추지 않으려고 애쓴다. 이 책은 저자 매슈 대니얼스를 비롯해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작은 영웅’들의 이야기가 빼곡히 실려 있다. 그리고 그들은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인스타그램 등 오늘도 내가 익숙하게 사용한 평범한 기술을 이용해 세상의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매슈 대니얼스는 법학박사 겸 인권 운동가로 오늘날 자신의 목소리를 이렇게 세계에 알릴 수 있는 위치가 되었지만, 어린 시절은 참혹하기 짝이 없었다. 뉴욕 할렘 지역에서 태어난 그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던 어머니가 퇴근길에 괴한의 공격을 받고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야 했다. 학교를 오가는 길, 그의 소원은 오직 하나. 강도를 만나지 않는 것이었다. 흉기로 위협받고 헤아릴 수 없이 물건을 빼앗겼으며, 일상처럼 살인 현장을 목격하기도 한다. 칼로 난자당해 죽은 시체에서 흘려진 피는 그가 살던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고, 그는 그 트라우마를 간직한 채 살아간다. 그 지역을 벗어나도 악몽에 시달린다. 그러다가 그는 그 악몽을 통해 어떤 깨달음을 얻는다. ‘나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받는 사람들을 살피라는 명령’을. 악몽은 그에게 다른 삶을 살아보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그는 마침내 “아무도 혼자여서는 안 되며, 타인의 고통은 우리 자신이 고통만큼이나 중요하다.” 라는 말을 이해하게 되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실천하는 삶을 시작한다.

그토록 참혹한 성장 배경을 딛고 일어서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는 저자의 이력도 감동적이지만, 이 책에 그려진 평범하지만, 세상에 큰 변화를 불러온 다른 이들의 삶은 더 큰 울림을 준다. 아프리카에 100여개가 넘는 우물을 선물하고 세상을 떠난 꼬마, 모기장을 만들어 세네갈 가구의 80퍼센트를 살린 엄마와 딸, 히잡을 벗고 춤추는 동영상을 매주 올리는 여성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면서도 운전하는 동영상을 찍어 올리는 여성 등등. ‘나’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좀 더 나은 세상, 좀 더 많은 이들이 평등하게, 자유로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이들의 작은 저항이 일으킨 커다란 변화를 읽노라면 그들의 용기와 행동에 숙연해지기도 한다.
 
그중에서도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에게 운전할 권리를 찾아준 ‘알 샤리프’의 이야기는 가장 인상 깊다. 2011년, 볼일 때문에 외출해야 했던 알 샤리프는 적절한 교통수단을 찾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른다. 사우디아라비아는 대중교통 수단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다. 그럼 운전하면 되잖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 운전이 금기시된 나라이다. 더욱이 사우디아라비아 여성들의 법적 지위는 미성년자와 같기 때문에 가야할 곳이 있으면 무조건 남성을 대동해야만 했다. 그녀는 자동차는 물론, 세계 어디에서나 쓸 수 있는 국제운전면허증이 있는데도 이동의 자유만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사우디아라비아 여성에게 운전이 허용되지 않는 이유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곧 법 어디에서도 여성 운전이 불법이라고 명시되어있지 않음을 알게 되고 드디어 직접 운전을 하고 밖으로 나간다. 그리고 직접 운전하는 자신의 모습을 페이스북에 올린다.

결과는 참혹했다. 그녀는 9일 동안 구금됐고, 일자리에서 쫓겨난 것은 물론 입에 담기조차 끔찍한 욕설을 들어야 했으며, 감옥에 간 것으로도 모자라 태형에 처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다. 사형을 주장하는 이들도 있었다. 결국 그녀는 고국을 떠나야만 했다. 그러나 그녀는 멈추지 않고 페이스북을 통해 ‘우먼 투 드라이브(#Women2Drive)’ 운동을 이끌어 나갔고, 마침내 사우디아라비아는 여성 운전을 허용하기에 이른다. 알 샤리프가 운전 영상을 올린 뒤 7년이 지난 후였다. 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고국에 돌아갈 수 없으므로 이 소식을 나라 밖에서 들어야 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이런 조치는 여전히 남성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하는 억압적 현실을 호도할 뿐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여성이 운전해서 병원에 가는 것은 허용됐지만 여성은 남성 후견인의 허락이 없으면 의료보호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여성이 운전해서 은행이나 직장, 공항에 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시설은 남성의 공간이므로 여성은 남성의 허락이 있어야만 시설을 쓸 수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에는 여전히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이다. 알 샤리프는 이에 대해 “우리가 바라는 것은 운전이 아니라 자기 운명의 주인이 되는 것이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에서 남성 후견인 제도가 종식되는 것, 즉 여성이 완전하고 독립적인 시민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비판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현실은 아직도 답답하고 갈 길이 멀지만 여성들은 이제 운전하고 이동할 수 있다. 알 샤리프 같은 여성이 존재하는 한 저 드높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장벽도 조금씩 허물어지지 않을까?

우리와 밀접한 이야기도 등장한다. 북한 인권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탈북민인 태영호 전(前) 주영 북한 대사관 공사의 말을 빌려 북한 인권의 참혹한 현실을 소개한다. 태영호는 외교관 신분으로 다른 세계를 접하면서 북한이 얼마나 잘못된 체제인지 깨닫고, 자식들에게는 그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아 목숨을 걸고 탈북을 시도한다. 그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은 외부 정보에 철저히 차단되어 있어 자신이 사는 세계의 모순을 깨달을 기회가 없다고 한다. 그렇기에 다른 세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는데, 실제로 그런 이유로 북한 주민에게 다른 세계의 삶이 담긴 USB를 보내는 운동이 벌어지고 있음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인터넷이 차단된, 감시와 검열이 일상화된 세계에 내부 붕괴를 유도하는 이 방식은 참 기발하다고 생각했다.


북한 주민들에게 북한 밖의 생활을 알려주고 싶지 않으세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USB를 노 체인 포 노스코리아(no chain for north korea)에 기증하세요. 기증하신 USB는 대한민국에 보내져 드론이나 열기구, 물병 등을 통해 북한에 전달됩니다.


<침묵하지 않는 사람들>은 이렇게 디지털 비디오, 위성 영상, 모바일 기술 등을 이용해 정부의 가혹한 억압과 검열에도 불구하고 자신과 타인의 이야기를 온 세계에 전하고 큰 변화를 일구어낸 기적 같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기술은 선한 목적으로 싸우는 이들이 승리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게 해주었다. 때문에 저자는 ‘인터넷은 좋은 생각 바이러스를 퍼뜨리고 보편적 인권 운동의 추진력을 마련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도구’라고 말한다. 물론 기술은 나쁘게 쓰일 수도 있다. 인터넷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해방하는 데 사용되기도 하지만 나쁜 선전을 퍼뜨리고 테러리스트를 모집하고, 사생활을 침해해서 국민을 억압할 때도 이용된다. 그래서 저자는 어떻게 ‘인터넷의 악용을 막고 선용을 늘릴’지를 고민하기도 한다.

디지털 시대에는 보내기, 트윗하기, 게시하기, 게제하기 등의 버튼을 누르거나 마우스를 클릭해서 누구나 다른 사람을 위협하고 괴롭히며 따돌리는 사이버 폭력을 행사할 수 있다. 그러나 똑같은 행동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기도 하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 자유를 선사하기도 한다. 꼭 거리로 나가서 구호를 외치지 않아도, 자신의 집에서, 카페에서, 지하철에서 등등 장소에 얽매이지 않고 더 나은 세계를 만드는 데 동참할 수 있는 것이다. 저자는 “악이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은 훌륭한 사람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라는 에드먼드 버크의 말을 인용하면서 글을 마무리 짓는다. 폭로하는 사람이 없으면 계속해서 아동 노동 착취가 늘어날 것이고, 여성은 차별당할 것이며, 소녀들은 교육받을 권리를 박탈당할 것이라는 그의 말, ‘타인의 죽음을 간과할 때 우리의 품격은 손상된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일은 자신의 인간성을 상실하는 것과 같다’는 그의 말을 마음에 새기면서 좀 더 열심히 인터넷으로라도 세계 변화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비록 거리로 나가 소리 높여 구호를 외치지는 않더라도 손가락마저 침묵하지 않겠다고.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oolcat329 2019-12-21 18: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꼭 읽어보고 싶네요. 글 잘 읽었습니다 👍

잠자냥 2019-12-22 11:41   좋아요 0 | URL
이 세상에 그래도 희망을 품게 하는 책이었어요. ㅎㅎ
 
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서보 머그더의 <도어>를 읽는 내내 심적으로 조금 힘들었다. 작품이 폭력적이거나 끔찍한 것은 전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나’와 ‘에메렌츠’라는 두 여성의 특별할 것 없는 일상의 기록이라 어느 땐 조금 지루하기도 하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마음이 힘들었을까? 책을 다 읽은 뒤 며칠이 지난 뒤에야 깨닫는다. ‘에메렌츠’라는 사람, 바로 그녀 때문이라고.

상반기에 읽은 책 중 가장 인상 깊은 캐릭터를 누군가가 묻는다면 <아일린>의 ‘아일린’을 주저 없이 꼽겠다. 그런데 ‘에메렌츠’는 그 아일린에 버금갈 정도로 강렬하게 개성적이다. 하반기에 읽은 책 가운데 가장 인상 깊은 인물이랄까. 그렇지만 ‘에메렌츠’를 좋아할 수 있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고개를 저을 것 같다. <도어>의 화자이자 작가의 분신 또는 서보 머그더 그 자신이라고 볼 수 있는 ‘나’는 이 ‘에메렌츠’와의 20여 년 동안 특별한 관계를 쌓아가고, 그 기억을 중심으로 이 작품을 써나간다.

유명 작가인 ‘나’는 집필에만 전념하고자 집안일을 도와줄 사람을 구한다. 친구는 ‘에메렌츠’라는 여성을 추천하는데, 묘한 말을 남긴다. ‘그녀가 널 받아들여줬으면 좋겠’다니, 뭔가 주객전도 느낌이다. 아니나 다를까 에메렌츠는 마치 자신이 주인으로 모실 사람을 고르듯이 ‘나’와 ‘나의 남편’을 꼼꼼히 심사한다. 그것으로도 모자라 먼저 일을 해보고 나서 급료를 직접 정하겠단다. 게다가 자기 근무 시간 외에는 절대로 성가시게 해서도 안 되며, 그 어떤 고마움의 표시나 사례 따위도 거절한다고 고집스럽게 말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에메렌츠는 ‘나’의 집안일을 해주기로 승낙한다. 거의 말이 없고, 괴팍스러우며, 고집불통인 이 에메렌츠는 ‘나’의 집안일에 대해서도 직접 규칙을 세운다. ‘나’는 자기 집의 주인이면서도 에메렌츠의 규칙을 말없이 따라야 한다. 그런 상황에 묘하게 반감이 들고 짜증이 나면서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녀가 정말이지 일을 너무나 잘하기 때문이다. 요리면 요리, 청소면 청소, 빨래면 빨래……. 일하는 티도 나지 않는데 놀라울 정도로 집안은 잘 정돈되고 ‘나’와 ‘남편’은 그런 에메렌츠의 방식에 만족하게 된다.

그런데 이 여인은 여러 면에서 남다른 구석이 있다.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마을 사람들의 집안일을 거들어 주면서 꽤 많은 돈을 모은 것 같은데, 홀로 매우 검소하게 수도승처럼 살아간다. 심지어 자기 집안으로 절대 그 누구도 초대한 적이 없다. 에메렌츠의 집 ‘도어’는 누구에게나 늘 굳게 닫혀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 괴팍한 여성을 마을 사람들은 좋아해서 종종 그녀를 방문하는데, 그럴 때면 에메렌츠는 자신의 집 마당에 식탁을 차려놓고 방문자들을 맞이한다. ‘나’ 또한 에메렌츠와 관계를 쌓아가면서 이 마당에 차려진 식탁에 초대받는다. 그러나 늘 거기까지이다. 그녀의 집안으로 들어가는 ‘문’은 절대로 열 수 없다. 에메렌츠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기에 그토록 문을 굳게 걸어 잠그고 외골수처럼 살아가는 것일까? 이 책의 첫 번째 재미는 바로 이 에메렌츠의 비밀을 알아가는 데 있다.

두 번째 재미는 작품 초반에 보이는 문장 ‘에메렌츠를 죽인 것은 나였다. 그녀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구원하고자 했다는 말도, 여기서는 그 사실 관계를 바꿀 수 없다.’(10쪽) 때문이다. ‘나’는 정말로 에메렌츠를 죽인 것일까? 만일 그랬다면 어떤 방식으로 죽였을까? 죽이고 싶었던 게 아니라, 구원하고자 했다는데, 과연 에메렌츠에게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녀를 ‘구원’하려고 죽이게 됐을까 등등. 이 한 문장으로 온갖 의문이 머릿속에 떠오르면서 에메렌츠의 과거를 좇는 일과 두 여성의 관계 변화를 흥미롭게 지켜보게 된다.

‘나’는 에메렌츠에 대해 얼마 지나지 않아 중요한 사실을 몇 가지 알게 된다. 주변 사람들을 통해 듣게 되기도 하지만, 때로는 에메렌츠 스스로, 절대로 열 것 같지 않았던 그 무거운 입을 열기도 한다. 이는 그만큼 ‘나’를 여느 사람과 달리 봤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사실 ‘나’는 작가라는 신분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책과 언어의 세계에서 사는 ‘지성인’이자 ‘교양인’으로서 에메렌츠가 이제까지 상대해온 이들과는 조금 다른 세계에 사는 사람이다. 그러나 에메렌츠가 ‘나’에게 매우 투박한 방식으로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것은 ‘나’가 그런 지성인이기 때문은 아니다. 오히려 에메렌츠 그녀에게 섣불리 질문하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성격. 또 그러면서도 인간이기에 에메렌츠에게 기분 나쁘거나 상처받거나 화가 나면 어떤 식으로든 표현하게 되는 그 솔직함 때문에 에메렌츠가 ‘나’를 한 사람으로, 자기의 비밀을 털어놓고 그것을 들어줄 줄 아는 사람으로 점찍게 된 것은 아닐까.

에메렌츠의 세상에는 ‘빗자루질을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으로 대표되는 두 부류가 있다. 그녀가 생각하기에 ‘빗자루질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어떤 짓도 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나’가 속한 세계, 그러니까 책을 많이 읽고, 언어로 뭔가를 만들어 내고, 방송에 나와서 유식한 소리를 떠드는 ‘지성인’들은 빗자루질을 하지 않는 사람이기에 ‘가짜’와도 같다. 에메렌츠가 보기에 ‘나’와 같은 사람이 왜 그런 가짜 세계에 속해 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이렇듯 에메렌츠는 문학이나 영화처럼 ‘빗자루질’ 없이 이루어지는 세계는 모두가 가짜이며 오히려 노동과 실천으로 이루어진 삶이 진짜라고 믿는다. 그래서 에메렌츠는 ‘나’에게 선물 받은 텔레비전으로 가짜 세계를 보느니, 마당에 나가서 내린 눈을 조용히 쓸 뿐이다. 이렇게 자신이 직접 뭔가를 함으로써 다른 사람의 삶을 좀 더 나아지게 만들고, 주변의 길 잃은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쏟으며 그녀는 자신이 생각하는 ‘진짜 삶’을 묵묵히 살아간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이 그녀를 어려워하면서도 좋아하는 것이리라.

에메렌츠의 비밀을 알게 되면, 그녀가 왜 그토록 자기 집의 문은 물론 마음의 문도 닫아버리고 살아왔는지 충분히 이해하게 된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가 힘들다. 그런 사람이 곁에 있다면 꽤 스트레스 받을 것 같다. 그러면서도 서서히 인간적으로 끌리게 될까? ‘나’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의 관계는 ‘나’의 씻을 수 없는, 치명적인 실수로 인해 걷잡을 수 없이 파국으로 치닫는다. 그때 이미 ‘나’와 ‘에메렌츠’는 단순한 고용주와 고용인의 관계를 뛰어넘어 그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둘도 없는 친구처럼, 또 때로는 엄마와 딸 같은 단단한 애정으로 이루어진 관계가 되어 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나’는 에메렌츠의 그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게 되고, 그로 인해 둘은 파국을 맞는다.

이 책을 덮고 나서도 질문은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비록 그것이 내가 판단하기에 좋지 않은 선택이라고 해도, 사랑하는 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게 가장 좋은 것인지,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이에게 가장 좋을 법한 것을 해주는 게 그를 위한 최선인지. 누군가의 마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일은 기꺼이 즐겁고 행복한, 기적 같은 일이 되기도 하지만 거기에는 늘 여러 의미의 고통이 따를 수밖에 없는 일임을 <도어>는 여실히 보여준다. 그리고 ‘에메렌츠를 죽인 것은 나였다. 그녀를 죽이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구원하고자 했다는 말도’ 이 문장의 의미를 마침내 깨닫지만, 에메렌츠 처지에서는 그것이 과연 구원이었을지 ‘나’의 회한 어린 기록 속에 여전히 묵직한 질문으로 남는다.



댓글(8) 먼댓글(0) 좋아요(3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다락방 2019-12-20 16: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너무 읽고 싶네요.. 잠자냥 님 리뷰 읽으면 너무 다 읽고 싶어지는 거 큰 문제입니다...

잠자냥 2019-12-20 16:19   좋아요 0 | URL
그러면 해결책이 있습니다! 사두신 책을 다 읽을 때까지 제 리뷰를 읽지 않는 것입니다! ㅎㅎㅎ

다락방 2019-12-20 16:20   좋아요 1 | URL
그러면 저 지구에서 사라질 때까지 잠자냥 님 리뷰를 읽지 말아야 하는걸요... 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ㅠ

잠자냥 2019-12-20 17:17   좋아요 0 | URL
아니 대체 책을 얼마나 사두신 겁니까!!!!!!!!!!!!!! (라고 말할 처지는 저도 아닌 것 같군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coolcat329 2019-12-21 18: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잠자냥님 리뷰 보다보면 읽고 싶은 책이 자꾸 생겨서 심적으로 부담이 갑니다ㅠ 에메렌츠란 여인에게 급 관심이 가네요. 이 책 도서관 갈 때마다 신착도서 칸 늘 같은 자리에 꽂혀 있어요. 표지색이랑 제목이 좀 지루한 느낌이 들어 그냥 넘어갔는데 새해에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잠자냥 2019-12-22 11:42   좋아요 1 | URL
ㅎㅎㅎ 문학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을 만한 그런 책 같았어요. 에메렌츠의 비밀이 뭘까 궁금해서 책장도 잘 넘어가는 편이고요.

Falstaff 2020-04-20 11:3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고 책 사서 지금 막 다 읽었습니다. 알라딘하고 프시케의 숲에선 잠자냥님한테 상 줘야 해요!
아, 참 좋은 책. 헝가리에 소설 잘 쓰는 사람이 많네요.

잠자냥 2020-04-20 11:47   좋아요 1 | URL
참 좋은 책입니다. 헝가리 작가들 더 많이 소개되면 좋겠어요.
에메렌츠가 또 떠오르네요. 왠지 오늘 날씨 같은 사람... ㅠㅠ
 
인생은 짧고 고양이는 귀엽지 - 어린 고양이들의 귀염뽀짝 성장 스토리
이용한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고양이는 귀엽고 작가의 글은 빛나지.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생명체 고양이, 그 고양이의 빛나는 한때인 아깽이 시절을 담은 사진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힐링이 된다. 사은품으로 주는 탁상달력과 함께 선물용으로 구입했는데, 앉은자리에서 다 읽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8)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포도주병 공장 야유회 ff 시리즈 5
베릴 베인브리지 지음, 채세진 옮김 / 꿈꾼문고 / 2019년 12월
평점 :
절판


회사를 다니며 노동자로 일해 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대부분은 이런 경험이 있을 것이다. 회사에서 야유회를 가거나, 단체로 등산을 가거나, 1박 2일로 워크숍을 떠나거나, 그도 아니면 체육대회를 한다든가 등등.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이 땅에서 노동자로 일하는 이들 중 이런 경험이 없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일을 끔찍이 싫어하는 나만해도 지금까지 회사 생활을 하며 저 모든 것들을 경험해봤으니, 참 대단한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회사에서 벌이는 행사를 끔찍이 싫어하지만 모든 직원들이 그렇다고 볼 수는 없다. 어떤 이들은 야유회, 체육대회, 워크숍을 좋아하기도 한다. 믿을 수 없겠지만 실제로 그런 이들이 존재한다. 그렇지 않은가? 회식만 해도 그렇다. 다들 꺼리는 것 같지만 누군가는 고대한다. 회사 돈으로 맛있는 걸 먹고, 술을 마시고 워크숍이라 부르며 여행을 떠나고, 야유회를 가장해서 그날 하루 일하지 않고 먹고 마시고 떠들고, 체육대회에서 공을 차고 먹고 마시고……. 혹시라도 사내에 누군가 마음에 둔 이라도 있다면, 그런 자리를 틈타 관계 발전을 꾀해 볼 수도 있으리라……. 이와 같은 기대를 안고 이런 행사를 기다리는 이들도 분명 있다.

그러나 행사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올 때쯤의 그 텅 빈, 공허한 마음은 어찌할까. 야유회를 즐긴 이들의 얼굴에서조차 피로감은 지워낼 수가 없다. 잔치가 끝나고 돌아갈 무렵은 언제 다들 그렇게 웃고 떠들었냐는 듯이 황량하기 짝이 없다. 뒹구는 나무젓가락과 종이컵, 음식물이 잔뜩 묻은 일회용접시들, 술잔……. 널린 담배꽁초. 주고받았던 의미 없는 말들. 회사 로고와 행사 이름, 날짜가 박힌 볼품없는 기념품. 얼굴은 벌겋게 익고, 운동화에는 누렇게 먼지가 내려앉고, 그날 하루를 위해 차려 입었을 게 틀림없는 새 옷은 땀 냄새와 고기냄새가 불쾌하게 스며있다. 그렇게 돌아간 뒤에는 어제와 똑같은 노동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월급이 오르는 것도 아니고, 고용주 또는 상사와 어깨를 마주하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눈 것 같아도 일개 사원, 한낱 노동자로서의 위치는 별반 달라지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그런 처지에 ‘야유’를 보내고 싶어질 뿐이다.

‘노동자 계급의 섬뜩한 비극을 묘사하는 심리소설로 유명’한 베릴 베인브리지의 <포도주병 공장 야유회>에는 바로 그런 모습이 신랄하게 그려진다. ‘프리다’와 ‘브렌다’ 두 여성은 포도주병 공장 노동자이다. 공장주인 ‘파가노티’가 이탈리아인이라 그런지 이 공장 노동자들은 거의 이탈리아계다. 거기에 이 두 영국 여성은 젠더와 국적 면에서 조금 이질적이다. ‘영국 백인 남성’이 아닌 아일랜드인이나, 여성, 이탈리아인들로 이루어진 이 공장은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하층 노동자들의 유일한 생계수단이나 마찬가지이다. 때문에 이곳 이탈리아 노동자들에게 파가노티 씨는 단순한 고용주를 넘어서 거의 그들을 ‘산악 지대의 메마른 경사지에서 구해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내려놓은 현명한 아버지이며 파드로네(주인이라는 뜻의 이탈리아어)’나 마찬가지이다. 그런 이들에게 직설적인 성격의 프리다는 말한다. 당신들이 얼마나 착취당하고 형편없는 급여를 받고 있는지 아느냐고. 그러나 그들에게 이 말은 들리지 않는다. 그들 대부분은 밀과 옥수수, 포도를 재배하던 소작농이었는데, 이제는 파가노티 씨 덕분에 얼마나 손쉽게 돈을 벌고 그때보다 편하게 사는가. 게다가 이제 곧 야유회도 간다. 저 두 명의 영국 여성들과 함께 말이다!

사실 이 야유회 제안은 프리다가 했다. 프리다는 같은 회사의 직원이자 파가노티 씨의 조카인 수습 매니저 ‘비토리오’를 짝사랑한다. 아니, 사랑이라기보다는 그를 통해 어떻게든 이 비루한 생활에서 벗어나기를 꿈꾼다. 그와 어떻게 하면 엮일까 궁리중이다. 비토리오도 딱히 마음이 없는 것 같지는 않다. 그러니 이 야유회는 그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아주 좋은 기회가 되리라. 운이 좋으면 야유회에서 사람들 무리를 살짝 벗어나 그의 손을 잡고 단둘이 산책할 기회를 얻을 수 있을 테고, 또 더 운이 좋으면 그날 밤 비토리오를 집으로 초대해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그러고 나서……. 아, 그런데 그러기에는 걸림돌이 있다. 거의 한방을 쓰는, 아니 한 침대를 쓰는 사이인 룸메이트 ‘브렌다’가 문제다. 저 답답한 인간 브렌다가 눈치 빠르게 방을 비워줘야 할 텐데!

어쩌다 룸메이트가 됐지만 브렌다와 프리다는 성격이 거의 정반대이다. 프리다가 건장한 체구만큼이나 직설적이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에너지 넘치는 성격의 소유자라면 브렌다는 프리다가 보기에 ‘타고난 피해자’이자 언제나 ‘화를 자초’하는 유형이다. 누구에게도 나쁜 소리를 하지 못하고, 싫다 좋다 표현도 확실하게 하지 못하고, 답답하고 수동적이고 소심하고 내성적이기 짝이 없는 그런 성격이다. 남편을 견디다 못해 집을 나와 이렇게 공장 노동자로 살며, 프리다와 좁은 집에서 룸메이트로 지내는데, 그곳까지 브렌다의 시어머니는 찾아와서 소동을 피운다. 브렌다는 묵묵히 당한다. 심지어 공장에서는 유부남 ‘로시’에게 매일같이 성추행을 당하는데도 싫다고 말하지 못한다! 정말 답답하기 짝이 없는 성격이다. 때문에 프리다가 야유회를 고대하는 것과 달리 브렌다는 그 귀찮은 행사를 피하고만 싶다. 그곳에서 로시는 또 얼마나 몸을 비벼댈까, 생각만으로도 괴롭다.

이 작품은 거의 중반까지는 이렇게 프리다와 브렌다의 애증 섞인 관계를 묘사하며, 공장의 주변 인물을 세밀하게 그려나간다. 그러면서 온갖 인물들이 벌이는 소소한 사건들이 끊임없이 독자를 낄낄 웃게 만드는 재미가 있다. 특히 프리다와 브렌다가 서로를 갈구면서 주고받는 신랄한 대화가 웃음을 자아낸다. 둘의 관계는 얼핏 보기에는 그야말로 앙숙 같은데, 그러면서도 서로 나름대로 의지한다. 특히 프리다는 어떤 면에서는 브렌다의 보호자와도 같다. 브렌다가 로시에게 성추행당하는 사실을 알고는 그에게 가서 공장주에게 일러바치겠다고 협박하는 일도 프리다의 몫이다. 그래서 나는 중반까지 읽었을 때는 이 작품이 그러니까, 이 두 여성이 연대해서 공장 노동자로서의 어려운 삶을 잘 이겨내는 유쾌한 작품인가 생각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중반 이후에 완전히 그 방향을 달리한다. 섬뜩할 정도이다. 그레이엄 그린이 이 작품을 일컬어 “충격적일만큼 우스우면서 공포스러운 소설”이라고 했다는데, 정말 그렇다. 바로 그날, 프리다가 그토록 고대했던 ‘야유회’를 기점으로 작품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지면서 희극에서 비극으로 치닫는다. 프리다처럼 야유회를 기다리던 몇몇 이들은 공장이 아닌, 밖으로 나가 먹고 마시고 떠들면서 한껏 즐기고 오면 뭔가 다른 삶, 그러니까 한결 끈끈해진 유대관계나, 자신이 마음에 둔 이성과 좀 더 은밀하게 관계 진전을 이루거나 등등 무언가 변화를 희망했을 텐데, 그 희망은 가차 없이 무너지고 남은 것은 먼지가 잔뜩 내려앉은 신발과 피곤에 절은 저녁, 그리고 어제와 똑같은 내일이 있을 뿐이다.

10월의 야유회는 출발부터 순조롭지 않다. 다행히 비는 내리지 않지만 겨울을 코앞에 둔, 춥고 바람이 부는 우중충한 날씨에 심지어 전화로 예약한 밴은 끝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자동차 몇 대에 나눠 타기로 하지만, 자동차가 좁아 그 모든 인원이 갈 수는 없다. 결국 몇몇 사람들은 떠나지도 못한다. 잔뜩 기대에 차 드레스를 입고 온 사람도 있는데 말이다! ‘쓸모없게 된 미리 준비한 음식, 이른 새벽의 기대와 아침의 환멸’이 출발 전부터 그들을 휘감는다. 로시는 떠나지 못하는 이들을 가리키며 그들은 실망에 익숙하다고 말하며 위안을 삼는다. 그러나 그 말이 왠지 더 비극적이다.

우여곡절 끝에, 처음 점찍은 장소와는 전혀 다른, 엉뚱한 곳에 도착해 을씨년스러운 야유회가 시작된다. 그래, 그래도 괜찮다. ‘그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이 책을 읽을 이들을 위해 ‘그 사건’을 밝힐 수는 없지만, ‘그 일’은 혹시 내가 뭔가 잘못 읽은 것은 아닌가, 문장을 여러 번 다시 읽어야 했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진실이 밝혀지고 모든 게 내 바람대로 공정하게 처리되기를 원했지만 그런 일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리고 ‘그 사건’을 맞닥뜨린 인물 저마다의 태도를 이토록 날카롭게 보여주기 위해서 이 작품 전반부의 묘사가 그토록 생생하고 개성 넘쳤음을 깨닫게 된다. 야유회를 떠나기 전 프리다와 브렌다, 비토리오, 로시, 패트릭 등등이 빚어내는 소소한 사건들은 모두가 ‘그 사건’을 위해, 치밀하게 짜여 있던 것이다. 그 놀라운 구성에 진심으로 감탄하게 된다. 하다못해 ‘그 일’이 일어난 뒤 그들이 함께 동물원에 가는 설정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그들을 풍자하는 매우 상징적인 장치가 아닌가.

작품 시작 부분에 프리다와 브렌다가 나누는 대화들, 찻잔으로 점을 쳐 앞날을 볼 수 있다는 마리아가 들려준 이야기들- “키 큰 남자. 여행, 흰 드레스, 제복을 입은 남자들과 질주하는 말들, 육지와 바다로 긴 여행” 등등. 아무것도 아닌 듯한 말들이 실은 매우 의미심장한 복선이었음을 알게 되고, 작가의 절묘한 솜씨에 여러 차례 경탄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은 작품 자체에 대한 감탄일 뿐이다. 책을 덮고 나면 삶의 비애감이, 그 씁쓸함이, 뒷맛이 매우 떨떠름한 와인을 마셨을 때처럼 입안에 껄끄럽게 남아 쉽게 가시지 않는다. 프리다가 ‘그저 다가올 좋은 시간의 모든 기쁨과 영광’만을 생각했던 그 야유회는 오직 ‘삶에 대한 채울 수 없는 목마름’(97쪽)만 남긴 채 끝나고 만다.

야유회 같은 행사가 끝나고 나면 뒷정리는 결국 그 잔치에 초대받은, 그래서 마치 환대받은 듯 착각에 빠지고, 삶의 환상을 잠시나마 품었던 노동자들의 몫이다. 뒹구는 쓰레기를 치우 일도, 그날의 피로감도 온전히 노동자들의 몫이다. 고용주는 차를 타고 유유히 빠져나갈 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야유회 동안 뭔가 좋은 일이 있었던 것처럼 하나의 꾸며진 기억을 안고 다시 일에 매달린다.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고 오히려 피로감에 삶은 더 무겁게만 느껴진다. 야유회 기념 날짜가 박힌 수건이 시간 흐른 뒤에는 걸레로 쓰이듯 너덜너덜해진 피로감만 그들에게 남는다. 프리다가 우스개처럼 부르던 그 노래는 그래서 너무나도 씁쓸하다. 생쥐는 잘도 빠져나가고 시궁창 같은 이 삶을 껴안고 살아가야 하는 것은 온전히 노동자 그들의 몫이므로. <포도주병 공장 야유회>는 그 뼈아픈 진실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거기에 앉아 있는 여자를 향해 말했네.
의자 밑에 있는 생쥐를 봐요.
아주 커다란 모자의 자그마한 여자는
그 생각을 견딜 수가 없었네.
그녀는 일어나 극장을 떠났고
남자는 행복해졌네. 생쥐는 안 보였고. (<포도주병 공장 야유회>, 261~262쪽)



댓글(4) 먼댓글(0) 좋아요(2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목나무 2019-12-16 18:16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오마낫. 제목만 보고는 별관심이 없었는데 잠자냥님 리뷰보니 이건 꼭 읽어봐야겠다 싶어요.
요런 리뷰 써주신 잠자냥님께 감사를... ^^

잠자냥 2019-12-16 20:21   좋아요 2 | URL
이 작가 너무 뒤늦게 한국에 소개된 거 같아요~ 부커상 최종 후보에만 5번인가 올랐던 작가라고 하네요! 꼭 읽어보세요!

esprit 2019-12-16 19: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 정말 좋네요. 잠자냥 님 리뷰 읽고 한 번 더 읽고 싶어졌습니다.

잠자냥 2019-12-16 20:20   좋아요 1 | URL
네 이 작품 정말 좋았는데....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읽어서 또 다른 작품이 번역되면 참 좋겠습니다~
 
도어
서보 머그더 지음, 김보국 옮김 / 프시케의숲 / 2019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나와 관계가 있는 사람만이 내게 고통을 안겨줄 수 있다’. 신분도 성격도 가치관도 전혀 다른 두 여성의 특별한 관계. 그 안에서 묻는 사랑의 의미.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가 바라는 대로 하는 것일까, 그가 바라지 않아도 그에게 좋을 법한 일을 하는 것일까. 닫힌 문을 여는 데는 늘 대가가 따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