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44
존 밴빌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아끼는 밴드의 좋아하는 노래 중 이런 가사가 있다. “Since I was born I started to decay” 태어난 이래로 내내 썩어가기 시작했다는, 부패하기 시작했다는 그런 가사… 이 노래를 처음 들었던 시절-그러니까 중2병 시절이라고 하자. 그때도 크게 공감했지만 살아갈수록 늙어갈수록 저 가사는 정말 명언이 아닌가 싶어진다. ‘Teenage Angst’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1996년에 발표되었다. 이 음악을 처음 들을 당시의 나는 사회적 기준으로는 한창 성장 중인, 자라나고 있는 나이였다. 그러나 정말 그런가? 인간은 사실 태어남 자체가 부패의 과정, 죽어가는 과정, 썩어가는 과정, 소멸하는 과정 그리하여 죽음에 이르는 과정이 아닌가.  

<영원히 계속되다가 끝이 난다>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 등 최근 읽은 책들이 유독 죽음과 상실을 다루고 있어서 저 노래가 가사가 떠오른 것 같기도 하다. 어제 읽기를 마친 존 밴빌의 <바다>마저도 그럴 줄이야. “사물들은 지속된다, 살아가는 것은 조금씩 퇴보하지만.”(p.16) 이렇게 말하는 <바다>는 죽음과 상실의 이야기 그 자체이다. <오래된 빛>을 읽고 존 밴빌의 문장에, 스타일에 흠뻑 반해 사두고 안 읽은 지 수 년째인 <바다>를 드디어 집어 들었다. 이 책은 도대체 언제 사 둔 것일까? 구매리스트를 검색해 보고 깜짝 놀랐다. 2016년 12월 13일. 무려 십 년 전에 사둔 책이다. 10년 전 나는 이 책을 어쩌다가 사두었을까? 기억은 이토록 허술하다. 망각도 잦다. <바다>는 또한 기억과 망각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반스의 <떠난 것은 돌아오지 않는다>가 그러했듯이… 인간에게 죽음과 상실, 소멸, 기억, 망각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그림자인가보다.

<바다>에서 죽음은 이르게 찾아온다. 미술사학자인 맥스는 아내를 읽는다. 암으로 투병 중이던 아내의 곁을 지키다 아내가 떠난 후 그 슬픔을 달래고자 어린 시절 한때를 보낸 바닷가 마을을 찾는다. 죽음을 마주하고 생이 끝나갈 즈음의 인간은 과거의 장소, 특별한 기억이 머문 장소를 찾기 마련인 것일까? 맥스에게는 이 바닷가가 그러하다. 이 바다에서 그는 ‘시더스’라는 이름의 여름 별장에 머물며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에 관한 책을 쓰려고 한다. 죽은 아내와 또 언젠가는 죽어갈 자신, 그리고 자기 생의 흔적으로 남겨질 책 한 권….

그런데 왜 하필이면 아내와의 추억이 깃든 곳도 아닌, 이 유년의 바다일까. 이 바다는 그 여름의 소년 맥스에게 특별한, 지울 수 없는 기억을 안겨준 곳이기 때문이다. 부유한 아내 ‘에나’를 만난 덕분에 “태어나기를 딜레탕트로 태어”난 그래서 에나를 만나기 전까지 “부족한 것이라고는 자산뿐”이라고 말하던 이 남자 맥스는 이제는 화가에 관한 책을 쓰면서 유유자적 생을 누릴 수 있는 미술사학자가 되었으나 그 시절에는 참혹하게 가난했다. 스스로 가난하다는 사실을, 자기의 낮은 계급을 누구보다 잘 인지했기에, 또 그렇기에 “내 힘으로 할 수만 있는 일이라면, 나를 망신시킨 부모를 그 자리에서 지워버렸을 것”이라고 서슴지 않고 말한다. “뚱뚱하고 작고 헐벗은 얼굴의 어머니와 돼지기름으로 만든 듯한 몸을 가진 아버지를 바다의 물보라가 일으킨 거품처럼 터뜨려버렸을 것”(p.41)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그는 이처럼 빈곤과 계급에 민감한 아이였다. 

소년은 그래서 부를, 부의 지표를 동경한다. 이 가난을 벗어나리라, 이 계급을 벗어나리라, 높은 곳으로 날아가고 말리라 열망한다. 그런 소년 앞에 나타난 그레이스 가족. 부부와 쌍둥이 남매로 이뤄진 가족, 그들은 소년에게 마치 ‘신’처럼 보인다. 신을 동경하며 그 주변을 배회하는 작디작은 인간 맥스는 열심히 그 곁을 얼쩡댄 덕분인지 그들과 가까워진다. 신들과 가까워진다. 소년의 애정 또는 동경은 처음에는 이상한(?) 방향으로 흐른다. 소년은 그레이스 부인의 육감적인 매력, 성숙한 매력에 반해 그녀에게 속절없이 빠져든다. <오래된 빛>의 그 소년처럼…. 밴빌의 취향이, 경험이 그랬던 것일까? 아니면 저 시절의 소년들이 친구의 엄마에게 반하는 것은 흔한 일, 일종의 통과의례인가? 잠시 의문을 품어보기도 한다. 물론 소년의 애정은 이윽고 제 자신에게 어울리는 대상으로 향한다. ‘클로이 그레이스’. 그 소녀에게로. 이렇게 시더스, 이 여름 별장이 있는 그 바닷가는 소년 맥스에게 새로운 세상-신들의 세상-이자 첫 경험들-갑작스러운 격렬한 포옹, 더듬거리며 영원한 사랑을 고백한 순간, 피 맛이 나는 첫 키스, 첫 사랑의 기억과 추억을 안겨준 공간이다. 

그러나 노년의 맥스는 이 추억들을 떠올리며 말한다.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 가운데 일부, 또는 전부가 실제로 일어났던 것은 분명하다. 처음 손을 잡고, 포옹을 하고, 고백한 순간이 틀림없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처음들은 점차 사라져가는 겹겹의 과거 속에 묻혀 잊혀버렸”노라고….(p.134) 그는 이런 자기에게 놀라 되묻는다. “어떻게 그 애는 한순간은 나와 함께 있다가 그다음 순간에는 사라질 수 있을까? 어떻게 다른 곳에, 절대적으로 다른 곳에 있을 수 있을까? (....) 일단 내가 있는 자리에서 사라지면 그 애는 당연히 허구, 내 기억 가운데 하나, 내 꿈 가운데 하나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든 증거로 보건대 클로이는 비록 나와 떨어져 있다. 해도, 늘 견고하고, 고집스럽고, 불가해하게 그녀 자신으로 남아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실제로 떠난다, 실제로 사라진다. (,,,) 나 역시도 떠날 수 있다. 아, 그래, 나 역시도 당장에 떠나서는 본래 있지도 않았던 것처럼 되어버릴 수 있다.”(p.133) 제아무리 아름다운 기억과 추억일지라도 망각과 소멸은 불가항력이다.

바닷가에서, 이 여름 별장에서 그는 이처럼 과거의 기억을 헤맨다. 딸인 클레어가 “과거 속에서 사시네요.” 핀잔을 줄 정도이다. 그는 왜 이토록 늦은 나이에 들어서 과거에, 그 오래된 기억에 집착하는 것일까. 그가 생각하기에 ‘삶, 진정한 삶이란 투쟁, 지칠 줄 모르는 행동과 긍정, 세상의 벽에 뭉툭한 머리를 들이대는 의지, 그런 것’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는, 적어도 어린 시절의 맥스는 그렇지 못한 사람이었다. 돌아보니 그의 ‘에너지의 많은 부분은 늘 피난처, 위안, 아늑함, 그런 것들을 찾는 단순한 일에’ 흘러들어가버렸다. 그는 ‘숨겨지고, 보호받는 것, 그것이 진정으로 원하던 것이었’노라고 털어놓는다. 그는 ‘자궁처럼 따뜻한 곳으로 파고들어 거기에 웅크리는 것, 하늘의 무심한 눈길과 거친 바람의 파괴들로부터 숨는 것’을 갈망했다. 그리고 바로 과거가 그에게 그러한 은둔처이다. 그렇기에 그는 “손을 비벼 차가운 현재와 더 차가운 미래를 털어내며 열심히 그곳”(p.62), 과거로, 기억 속으로 돌아간다. 

언제나 자기의 출신을 부끄러워했던 아이. 애초부터 훌륭해지려고 노력했던 아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다른 사람이 되고 싶었던 아이. 그런 소년이 그레이스 가족에게, 클로이 그레이스에게 원했던 것은 그가 말한 대로 그 가족의 우월한 사회적 지위와 같은 수준에 올라가보려는 것이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는 열심히 노력해서 그 ‘올림포스 산을 기어올라’가는 데 성공한다. 에나라는 부유한 여인을 만나 그 성공에 폭죽을 터뜨린다. 생의 불꽃을 태워 올린다. 그러나 공허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게 일평생 살아온 나, 딜레탕트로 태어나 딜레탕트로 살아가는 자기, 노년의 맥스는 과연 누구란 말인가? 


그는 자기 자신을 잘 알았다. 그리고 자기가 아는 스스로가 싫었다. “내가 싫어한 것이 나라는 사람, 그러니까 독특하고 핵심적인 나였던 것이 아니라” “내가 싫어한 것은 나의 출생과 가정교육이 개성 대신 나에게 부여한 정서, 경향, 수용한 관념, 계급적 집착 등의 덩어리”였노라 고백하는 맥스. 자신은 개성이라는 것을 가져본 적이 없노라고, 다른 사람들이 가지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또는 가졌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는 가져본 적이 없노라고. 자신은 늘 독특하게 아무것도 아닌 존재였으며, 가장 강렬한 소망은 독특하지 않은 어떤 존재가 되는 것이었노라고 말하는 맥스. “왜 당신 자신이 되려 하지 않아?” 에나의 이 질문은 평생 더 높은 곳을 꿈꾸었으나 진정한 자아는 망각한 한 남자의 본질을 건드리는 뼈아픈 물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너 자신을 알라” 유년의 바닷가를 찾아 과거의 기억 속을 거니는 이 늙은 남자의 사투는 그래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자기 자신을 찾는 여정일 것이다. 사별 후 슬픔에 젖은 그에게는 오직 과거만이 “견딜 수 없는 현재로부터 유일하게 가능한 시제”이자, 가장 생명력 있게 고동치는 “두 번째 심장”일 것이다. 그리고 그 기억에서는 지나간 생을 다시, 또 살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킬 것이다. 기억 속에서는 아내도 살아있으며 딸 클레어도 자신이 원하지 않는 놈과 사랑에 빠지지도 않았고, 첫 사랑인 그녀들로부터도 환대받았기에 영원히 안식하며 은둔할 수 있으리라..... “인생은 많은 가능성들을 잉태하고 있다.”(p.240) 잊히고 소멸하고 사라지고 사멸하는 것들도 기억에서는 과거에서는 되살아나 찬란히 빛나기도 하며 영원히 불꽃을 태우기도 한다. 그의 말처럼 “어쩌면 삶의 모든 것이 삶을 떠나기 위한 긴 준비에 불과한 것”(p.95)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소멸의 기나긴 여정에서 인간은 기억과 추억이 있기에 살아갈 의지를 찾는 것일지도.



댓글(12) 먼댓글(0) 좋아요(2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건수하 2026-04-28 13: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은지 4년이 지나긴 했는데 이제 거의 기억이 안 나요. 이래서 자세히 적어둬야 하나봐요... ^^
(그렇지만 별로 적고 싶지 않았다)

잠자냥 2026-04-28 14:07   좋아요 1 | URL
기억의 소멸... 망각은 인간의 숙명입니다!
(건수하 님 리뷰? 페이퍼 있던데요. 제가 하트 누름.... 이 사람 잊었네 잊었어...🤣ㅋㅋㅋㅋㅋ)

건수하 2026-04-28 14:10   좋아요 0 | URL
댓글 봤어요 ㅎㅎㅎ 그걸 읽고 잠자냥님껄 읽어봐도 기억나는게 별로 없지 뭐예요 ㅎㅎ

잠자냥 2026-04-28 14:12   좋아요 1 | URL
마지막에 반전이 있기는 했지만.... 사실 딱히 스토리가 없는 소설이긴 해요.

망고 2026-04-28 16:57   좋아요 2 | URL
저는 이 소설 번역서 제목이 이게 아니었을 때 읽었는데 전혀 기억이 안 나요🙄 근데 그땐 어려서 그랬는지 별 스토리가 없이 문장으로 음미하는 이 소설의 매력을 이해 못 하고 지루하다며 별 두개 줬더라고요ㅋㅋㅋㅋㅋ

건수하 2026-04-28 16:59   좋아요 2 | URL
오, <신들은 바다로 떠났다> 라고 나왔던 적이 있었군요. 역자는 같고...
저도 4개주면서 후하게 준다고 생각을 했었다는;

잠자냥 2026-04-28 17:20   좋아요 1 | URL
네 “신들은 바다를 떠났다”에서 그 신들이 그레이스 가족입니다. 스포일러 같은 제목이라 <바다>로 바꾼 거 같아요.

잠자냥 2026-04-28 17:22   좋아요 1 | URL
이 작픔 부커상 수상할 때 찬반 2:2로 팽팽히 갈렸다는데 반대한 2인은 이 작품 이야기도 뭣도 아니라고 했다고… 🤣

건수하 2026-04-28 17:24   좋아요 2 | URL
아하. 한국 특유의 스포일러 제목이군요 ㅋㅋㅋ 원제는 The Sea 이던데...

제가 그 2인과 같은 생각 =333

망고 2026-04-28 17:50   좋아요 0 | URL
저도 반대입니다👊ㅋㅋㅋㅋㅋ

잠자냥 2026-04-28 18:35   좋아요 1 | URL
망고 이별의 신들의 바다…..🤣

다락방 2026-04-28 20: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멋있어... 잠자냥 님 글 멋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