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읽은 책 두 권이 한없이 우울해서 그런지 월요일 오전 일어나 노동자로 출근하는 기분이 그 어느 날보다도 힘겨웠다. 토요일에는 조지 손더스의 신간 <패스토럴리아> 읽기를 마쳤고(이 책은 지난주 내내 붙잡고 있었다. 좀 난해한 면도 있고, 심적으로 발랄해진다거나 카타르시스를 느낄 만한 책은 아니라서 진도가 잘 나가지 않았다. 단편집이라는 것도 한몫했고), 이런 책을 읽고 나니 뭔가 묵직한 장편을 읽고 싶어서 일요일 오전에 그간 사두고 그 두께 때문에 선뜻 집어 들지 못했던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아메리카의 비극>(상하 각 800여 페이지)을 읽기 시작했다.

<아메리카의 비극>은 읽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 캬, 감탄과 찬탄을 연발하기 시작했다. 역시 이거지, 하는 심정. 시어도어 드라이저의 작품은 정직하다. 꾸밈이 없다. 미국의 에밀 졸라라고 해야 할까. 헌데 나는 에밀 졸라보다는 드라이저 쪽이 더 재미있는 것 같기도 하다. 자연주의소설이라 그렇겠지만 작품 안에서 어떤 기교를 부리기보다는 있는 그대로 사실을 목도한 것처럼 써내려 간다. 그런데 재미있다. 졸라가 그렇듯이. 어쩌면 내가 조지 손더스의 ‘기교’에 질려서 이 꾸밈없는 단순한 문장들이 그 어느 때보다 더 좋게 다가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좋은 건 옛날 작가들이 이미 다 시도했기 때문에 현대의 작가들은 차별화를 꾀하다 보니 이렇게 무리를 할 수밖에 없는 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들었다.

전달 방법이나 기교면에서 차이가 있지만 <아메리카의 비극>이나 <패스토럴리아> 둘 다 공교롭게도 ‘미국의 비극’을 다룬 작품들이다. 하나는 20세기 초 그리고 또 다른 하나는 21세기의 미국- 미국의 비극이기도 하지만 미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비극이기도 하다. 더 답답한 쪽은 조지 손더스의 <패스토럴리아>에서 그려지고 있는 세계이다. 이 단편집에 실린 대부분의 인물들의 미국의 최하층 계층에 속한다. 표제작이면서 중편으로 이 책에서 가장 분량이 긴 ‘패스토럴리아’를 보자. 이 작품은 굉장히 불친절해서 독자는 처음에 이게 무슨 소리인가 어리둥절해진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겨우 아, 이것이 어떤 가상의 공간, 테마파크 같은 곳을 배경으로 한다는 걸 인지하게 된다.

선사시대를 조악하게 재현한 이 테마파크에서 한 남자와 여자는 가짜 동굴 안에서 동굴 인간을 연기한다. 대체 왜? 아, 그것은 그들의 밥벌이 수단이다. 이들은 염소 고기를 해체하는 쇼를 하기도 하고(그런데 이 모습은 동양의 최하층 계급이었던 백정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벌레를 잡아먹는 척하기도 하는 등 저 먼 시대의 유인원이나 했을 법한 행동을 모사하면서 그렇게 번 돈으로 근근이 먹고살아간다. 그런데 그들은 감시당하고 있으며 서로를 감시해야 한다. 그렇게 처참하게 일하면서도 그 일자리는 금방 누군가에게 대체되기 쉽다. 동굴에 갇혀 일하면서 그 동굴을 벗어나 지상에서의 안온한 삶 자체를 꿈꿀 수가 없다. 마약에 취한 아들, 병들어 기댈 곳 없는 부모 등등 그들 가족들의 생활도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동굴을 나간다 한들 더 암울한 절망이 그들을 기다리는 것 같다. 과연 이들이 동굴을 벗어날 수 있을까? 최하층 계급에서 좀더 나은 계층으로의 이동은 아예 불가능해 보인다. 적어도 이 ‘목가적’인 세계에서는 그렇다.

패스토럴리아- 21세기의 미국은 시어도어 드라이저가 그린 20세기 미국의 초상보다 더 암담하게 느껴진다. <아메리카의 비극>은 시작부터 의미심장하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아이들 넷으로 이루어진 일가가 거리에 나선다. 이 남루한 차림의 일가가 특히 눈에 띄는 이유는 쉰을 넘은 듯한 남자, 이 집안의 가장임이 틀림없는 그의 손에 휴대용 손풍금이 들려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거리 한 가운데 도착해서 손풍금을 내려놓고는 찬송가를 부르며 지나가는 이들을 대상으로 전도를 하기 시작한다. 그 집의 맏이이자 큰딸로 보이는 아이가 손풍금을 켜면서 소프라노로 예수님과 하느님의 사랑을 찬양한다. 아직 어린 두 아이들은 어떤 동요도 없이  노래를 따라 부르지만 유독 한 아이, 그러니까 이 집의 둘째로 보이는 남자아이, 이제 막 십대 초반을 넘어선 것 같은 소년은 고개를 땅에 떨어뜨린 채 음울하게 서 있을 뿐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조차 이 일가 중에 저 큰 아들만큼은 지금 이렇게 거리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전도 행위를 하는 것에 불만이 많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이다.

소년의 이름은 ‘클라이드 그리피스’- 그는 이 가난이 싫다. 아버지의 무능함도 싫다. 그렇게 무능하면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이 거리 저 거리 전전하면서 전도하는 행동은 더 싫다. 그 또래 아이들이 자기 집안을 놀림거리로 삼는 것을 아버지는 도무지 알지 못한다. 그렇게 간절하게 하나님을 찾는데 왜 우리 집은 이렇게 형편없이 가난한 것일까? 그러던 중 누나가 먼저 집을 떠난다. 가출이다. 그것도 어떤 남자의 꾐에 넘어가서.... 소년은 돈을 벌어서 꼭 이 가난을, 이 집을 벗어나리라 결심한다. 그렇지만 배움도 없고 가진 것 없는 이 소년이 과연 어떻게 돈을 벌고 성공을 할 수 있을까. 동네 드럭스토어에서 조수 노릇을 하면서 몇 센트씩 푼돈이나 벌어서 언제 부자가 될까! 그러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다.

호텔의 벨보이로 취직하면서 그는 신세계를 접하게 된다. 저렇게 화려한 삶이라니, 힘들여 일하지 않았는데 고작 가방을 들어주고 신문을 사다줬다고 몇 달러씩 팁을 준다! 부자란 저런 것이구나! 소년은 성공에, 부에 더 갈증을 느낀다, 나도 저렇게 화려한 옷을 입고, 예쁜 여자와 함께 이런 곳에 와서 돈을 척척 쓰고 싶다.......... 클라이드는 이런저런 사람들을 접하면서 그들을 훔쳐보면서 세상을 속이는 법을 익혀나간다. 배움이 없어도 교양 있는 척, 가진 게 없어도 있는 척하는 법을 익혀나간다, 다행스럽게도 클라이드의 외모는 꽤 봐줄만 하다. 게다가 다행인지 불행인지 저 멀리에서 얼굴도 본 적 없지만 자신의 아버지와는 달리 꽤 성공한 큰아버지 일가가 살고 있다. 그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아메리카의 비극> 1권에서는 이 클라이드가 가난한 부모를 따라 거리에서 전도 활동을 벌이다가 동네 드럭스토어를 거쳐 호텔 벨보이로 일하며 조금씩 돈의 맛, 부의 위력을 깨닫게 되고 그렇기에 더 그 세계를 동경하고 갈망하게 되는 모습, 또 우연한 기회를 발판 삼아 조금씩 그 세계로 진입하는 과정이 그려진다. 물론 제목이 시사하듯이 클라이드의 이 길, 이 세상 대다수의 인간 그 모두가 가고자하는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은’ 그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이며 그렇기에 곧 비극으로 끝날 수밖에 없음을 독자라면 누구나 짐작할 수 있지만 1권 끝에 이르기까지 클라이드는 나름 승승장구해서 계층 이동에 성공하고 있는 듯이 보인다.

자본주의가 아직은 덜 극악했을 무렵인 그즈음, 클라이드가 살던 시대에는 가진 게 없고 배움이 없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기회를 잘 잡으면 계층 이동이 조금이나마 가능했음을 보여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물론 그 이동조차 클라이드 자력의 힘으로만 가능하지는 않다). 그러나 21세기, 신자유주의의 미국에서는 가진 것이라고는 몸뚱이 밖에 없는 이들이 계급 이동의 꿈은커녕 사다리도 없는 동굴에 갇혀 자기들끼리 아귀다툼을 벌이고 자본가는 그들의 싸움을 부추긴다. 그리고 동굴 속 인간들은 자본가들의 속내를 뻔히 알면서도 자기가 먼저 살기 위해 동료를 감시하고 꼰지르고 그 자리가 또 다른 하류 인생으로 대체되는 것을 물끄러미 지켜볼 뿐이다. 그리고 이 미국, 미국인의 비극은 내가 살아가는 이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아 월요일 아침 노동자로 밥벌이를 하러 나가는 길은 이토록 무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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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23-04-17 16:5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반차를 사용하겠다며 지난주에 결재를 올려 받아두었었는데요, 그런데 오늘 출근해보니 갑자기 처리해야 할 일들이 생겨 반차를 반납하여야 했어요. 반차에 나름 무얼할지 계획을 세워두었다가 일이 틀어지는 바람에 짜증이 났지만, 그보다 더 짜증이 난건 지금 당장 처리해야 할 일들이 생겼다는 것과 앞으로 또 상당히 바빠질 것이기 때문이었어요. 스트레스를 또 왕창 받고 여태 공공기관에 제출할 서류를 작성하고, 그런데 이걸 오늘 다했다고 끝이 아니고, 새로운 일을 해결해나가면서 또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 너무 답답하고 미치겠더라고요. 이 일을 그만두면 안될까? 일을 그만둘까? 늘 하는 생각이지만 오늘 또 욱- 하고 퇴사 생각이 간절해졌습니다. 퇴사할까? 이 모든 스트레스를 벗어나는 방법은 퇴사뿐인데. 퇴사할까?

그런데 퇴사하면 돈은? 돈은 어떡하지? 누가 나에게 돈을 주지? 저에게 돈을 줄 사람은 없습니다. 저는 제가 일을 그만두는 순간 수입이 끊깁니다. 저에게 용돈을 줄 사람이 없어요. 제가 아니라면 저는 굶어야 합니다. 그래서 또 욱 거리는 심정을 뭘로 달랠까, 치킨으로 달래볼까, 이러면서 궁둥이 붙이고 앉아있어요.

밥벌이, 오늘은 진짜 하기 싫으네요. 그만 하고 살고 싶네요. 그런데 그만하면 정말 밥을 못먹기 때문에.. 견뎌야 해요.


그나저나 벨보이 소년의 책 진짜 재미있을 것 같아요. 책이나 또 사러 가자!!

잠자냥 2023-04-17 17:20   좋아요 1 | URL
일요일부터 급 우울해지는 노동자의 삶! 한주간 해야 할 일 생각하면 마음이 무겁고 그렇죠. 그래도 또 월요일이 어찌 어찌 지나갔습니다. 맛있는 음식으로 좀 위안을 삼으시고…. 한주를 또 버텨봅시다.

<아메리카의 비극> 진짜 재미납니다. 2권도 기대…. 근데 이 책도 나름 스포일러가 있으니 다른 분들 리뷰라든가 사전 정보 찾아보지 마세요!

2023-04-17 17:28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다락방 2023-04-17 18:54   좋아요 1 | URL
말씀 감사합니다, 비댓 님.
오늘 너무 바빴는데 당분간 계속 바쁠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할 일도 많은데 업무가 많아 답답합니다. 오늘은 치킨에 와인 하고 잊어야지요. 감사해요!

Falstaff 2023-04-17 1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2권 읽으시면 좀 빡칠 듯.... 이미 지금쯤 그 상태가 되신 거 아닌 지 몰라요. -_-;;

잠자냥 2023-04-17 21:07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웃프네요.

coolcat329 2023-04-17 1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이 책 정말 갖고 싶은데 가격이 부담스럽네요.
확 지를까요?

잠자냥 2023-04-17 21:09   좋아요 2 | URL
네 지르세요! 쿨캣 님은 아주 재미나게 읽으실 거예요. 저도 이게 중고로 나오길 기다려도 안 나와서(판매지수 보면 안 나올 거 같긴 해요 ㅋㅋㅋㅋ) 걍 구매했습니다. 읽고 되팔았을 때 가격도 2700원이라 대부분 안 내놓지 싶어요.

coolcat329 2023-04-19 09:50   좋아요 1 | URL
일단 상권 질렀습니다!

잠자냥 2023-04-19 11:44   좋아요 1 | URL
금방 2권 궁금해지실 것입니다! ㅋㅋㅋㅋㅋㅋㅋ

독서괭 2023-04-18 14:39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오오 월요일의 노동자로 시작해 수미쌍관.. 밥벌이 나가는 노동자의 마음으로 끝나는 이 한편의 완벽한 글이라니..
미국의 비극이라고 하면 저는 조이스 캐롤 오츠의 <그들>이 생각나네요. <아메리카의 비극> 2권에서 클라이드가 어떻게 추락하게 될지 미리 안타까운 기분입니다.
이상 아픈 몸을 끌고 나온 노동자2였습니다.. ㅠ

잠자냥 2023-04-18 15:32   좋아요 2 | URL
아니 요즘 바쁘더니 몸이 축났군요? 왜 아파요?! ㅠㅠ
얼른 집에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