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라리부와지에르에서, 지금과 똑같은 공포와 불신 속에서, 똑같은 방식으로, N.의사의 판정을 기다렸던 순간이 떠올랐다. 그러니까 내 삶은 오기노 방식과 1프랑짜리 자판기 콘돔 사이에 자리한다. 이것이 삶을 가늠하는 적절한 방법이다. 심지어 그 무엇보다 더 확실한. (아니 에르노, <사건>, 12쪽)
마거릿 생어의 <여성과 새로운 인류 Woman and the New Race>를 읽고 책을 덮을 즈음, 아니 에르노의 <사건>이 떠올랐다. 1920년에 여성의 피임할 권리를 외치던 마거릿 생어, 그로 인해 여성은 피임을 하며 예전에 비해 자유로운 성생활을 하지만 그럼에도 늘 걱정에 시달려야 한다. 베란일을 계산하고 콘돔에 의지해도 임신의 공포를 피할 수 없는 것이다. 그 자유로울 것 같은 영혼 아니 에르노조차도. 에르노는 피임에 실패해 임신을 하고 낙태를 하기 전까지 지옥 같은 나날을 보낸다. <사건>은 그 고통의 기록이다. 프랑스는 1970년대 중반에야 낙태를 합법화했기 때문에 그전까지 미혼 여성의 임신은 사회적 자살이나 마찬가지였다. 특히 노동자와 소상공인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교육을 받으며 계층 이동의 열망을 품었던 에르노에게 혼전 임신은 실패의 낙인이자, 하층계급으로 돌아가야 함을 뜻하기도 했다.
임신 후 에르노는 전처럼 수업을 듣고, 학생 식당에 가고, 학생들만 다니는 바에서 커피를 마시지만 이제 그들과 자신은 다른 처지이다. 에르노는 그들과 자신이 더는 같은 세상에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임신 때문에 다시 나락으로 떨어진 것 같다. 그녀는 ‘그때 내 안에서 자라나던 무언가는 어떻게 보면 사회적 실패라는 낙인이었다.’고 회상한다. 공부를 좋아하고 미래를 꿈꾸던 총명한 대학생은 이제 ‘이념의 천국’에는 다가갈 수 없다. ‘그 아래로 구토하며 진창에 빠진 자신의 육신을 질질 끌고 다닐’ 뿐이다. 지식이란 습득해 봐야 결국 무너져 내릴 허울 같은 구조물처럼 보일 뿐이고 논문조차 도저히 쓸 수 없다. 그녀의 수첩에는 이런 단어들이 적혀 나간다. ‘아무것도 쓸 수 없다. 공부도 되지 않는다.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
더 큰 세상을 꿈꾸던 총명한 대학생이 임신으로 말미암아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 모습은 임신과 출산이 사회적 존재로서 여성에게는 재앙과도 같은 일임을 내다본 마거릿 생어의 주장과 맞닿아 있다. 생어는 간호사로 일하면서 원치 않는 임신과 거듭된 출산으로 고통받는 여성들을 수없이 목격한다. 보다 못한 그녀는 1916년 뉴욕 브루클린에 피임클리닉을 열어 피임법을 가르쳤는데 이것이 불법이라는 이유로 체포된다. 이후 법정 싸움을 통해 산아제한과 법 개정, 여성 인권 운동을 시작하고 이 운동에 동참했던 그레고리 핀커스는 연구를 시작해 1960년 경구 피임약을 발명하게 된다. 생어의 인생은 산아제한(birth control)을 통한 여성 해방의 길 그 자체였다.
생어가 보기에 여성은 번식 능력을 통해 자신을 노예화하는 한편, 세상 사람들마저 속박하고 있었다. 낙태는커녕 피임조차 제대로 할 수 없던 시절에 여성들은 다산으로 대가족을 양산하고 그 수많은 아이들을 양육하느라 육체적·정신적인 힘을 낭비했다, 이는 여성의 사회적 죽음이나 마찬가지였다. 다산의 악순환에 빠진 여성은 심지어 번식 능력을 통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 독재국가의 설립과 존속까지 가능케 했다. 생어의 주장에 따르면 ‘군주제, 과두제, 공화제 아니면 폭정이든, 이 존재의 필연적인 요인은 바로 인간이라는 종족’이었다. 인구과잉은 전 인류의 재앙이었다. 생어는 “번식의 힘이 아니었다면 그 어떤 군주도 다른 나라를 정복하다 죽지 않았을 것이고, 어떤 강대국도 영토를 넓히려고 잔혹한 전쟁을 일삼지 않았을 것”이며 “노동자들이 저임금이나 실업의 고통을 겪지도 않았을 것이고, 죄수 노역이나 아동 노동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다산이 아니었다면 ‘신의 행위‘라는 미명하에 포장된 기근이나 전염병도 없었을 것”(<여성과 새로운 인류>, 19쪽)이라고 말한다.
이런 재앙의 고리를 끊기 위한 그녀의 결론은 명확했다. 더 나은 임금, 더 짧은 노동 시간, 노동 선진화를 위한 새로운 시스템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노동자 수를 줄여야 했다. 번식 중단. 여성이 재생산만 하다 죽는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그래서 생어는 전쟁과 기근, 전염병이 문제를 해결해 주길 기다리지 말자고 촉구했다. 원치 않은 아이들을 잠깐 이 세상에 데려와서, 그들이 고통받고 우리에게 짐만 더해주다가 죽게 하는 일을 그만 멈추자고 제안한다. 생어는 여성이 ‘자궁을 비우는 간단한 과정을 통해 전쟁도 종식될 것’(204쪽)이라고 내다보았다.
생어에게 산아제한은 여성이 기본적인 자유를 획득할 수 있는 수단이자, 복종을 통해 겪은 악을 뿌리째 뽑아버리는 방법이기도 하다. 이제껏 여성은 무지로 인해 자신도 모르게 사회적 재앙을 초래했기 때문에 자발적으로 현명하게 이 재앙을 원상태로 돌리고 새롭고 더 나은 질서를 만들어야 했다(21쪽). 그리고 그것은 여성이 어떤 상황에서, 언제 어머니가 될 것인지를 스스로 결정하는 일이기도 했다. 이것이 생어가 말하는 여성의 근본적인 저항이며, 여성에게 이 저항은 자유의 문을 여는 열쇠이다. 생어는 인류가 번창할지 아니면 쇠퇴할지 여부 또한 여성에게 달려 있다고 말하면서 자유라는 수단을 갖는 것은 여성의 의무이자 기본적인 인권이며, 여자는 자신의 자유에 대해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123쪽) 고 역설한다.
물론 생어는 사회가 여성들의 저항을 교묘한 수단으로 억압할 것 또한 예측했다. 여성을 단순한 재생산 도구로 삼고 저항하면 처벌할 수도 있고, 엄마가 될 것인지, 얼마나 많은 아이를 낳을 것인지를 선택하도록 몰아갈 수도 있다고. 그러나 생어는 정치권의 엉터리 대책과 사회적 만병통치약은 부가적인 수준에 그칠 뿐이며, 그런 처방으로는 절대 사회적 질병의 근원을 해결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여성이 자신의 삶을 가치 없게 만들 때 전쟁, 기근, 빈곤 및 노동자에 대한 억압은 계속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생어는 출산을 제한하고 인간의 삶이 더 이상 낭비되지 않을 때에만 비로소 이 모든 억압이 중단될 것이라고 말했다. 100년 전 생어의 이 주장들은 현재 한국 사회에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것 같다. 출생률은 0.78. 자살률은 OECD 국가 중 1위.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고 도리어 목숨을 끊는 사회. 정상적인 기능이 멈춘 지 오래인 이 사회에서 여성들은 아이를 낳지 않음으로써 침묵의 저항을 하고 있는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