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역사
니콜 크라우스 지음,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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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책을 한 권 선물 받았다. 책 선물쯤이야 흔한 일 아닌가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정말 예상하지 못한 뜻밖의 사람이 보낸 선물이라 그 기쁨은 더 컸다. 선물을 보낸 이는 알라딘 서재의 거물이자, 여왕이자, 유명인사이자 셀럽(으응?)인 다락방 님이다. 다락방 님이 최근에 쓴 <에이미와 이저벨> 관련 글에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책을 한 번도 읽은 적이 없는데, 이 페이퍼를 보니 흥미가 당긴다고 댓글을 달았는데, 덜컥 그 작가의 또 다른 작품인 <올리브 키터리지>를 기프티북으로 보내신 것이다. <올리브 키터리지>는 입소문은 들었으나 이상하게 흥미가 일지 않아 여태 읽기를 미뤘던 책이다. 그러나 언젠가는 읽어야지, 하는 생각으로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터라 선물 받은 기쁨은 더욱 컸다.

그 후로 나는 ‘알라딘 기프티북’의 유용함을 알게 되어, 다락방 님에게도 답례로 책 한 권을 보냈고, 카프카를 좋아하는 친구에게도 최근 출간된 현대문학 세계문학단편선 <프란츠 카프카>를 한 권 보냈다. 친구 또한 기프티북의 간편함에 놀라며, 또 갖고 싶던 책을 선물 받은 행복감에 그날 하루를 기쁘게 보낸 것 같다. 이런 이야기를 구구절절 하는 까닭은 책 한 권이 누군가에게는 때로 그 어떤 것보다 더 큰 행복감을 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책으로도 얼마든지 소중한 인연이 만들어지고, 또 그런 인연을 깊이 있게 가꿔나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다. 더욱이 최근 <사랑의 역사>를 읽고 나니 책 한 권으로 이루어진 인연을 그 어느 때보다 더 생각해 보게 되는 것 같다.

<사랑의 역사>에는 도무지 아무런 상관이 없을 것만 같은 사람들이 여럿 등장한다. 나는 처음에 이 책을 제목만 읽고는 구구절절한 남녀 간의 사랑을 다룬, 어쩌면 흔한 러브스토리이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 읽기시작하자마자 조금 당황했다. 주인공은 ‘레오 거스키’라는 노인으로, 죽음을 앞둔 이 팔십대 노인이 독백처럼 자기 이야기를 시작한다. 젊은 남녀의 사랑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했던 내게는 참 뜻밖이다. 그런데 이 노인은 곧 자신의 소년 시절, 첫사랑 이야기를 꺼낸다. 레오 거스키에게 ‘앨마 메러민스키’는 첫사랑이자 유일한 사랑이다. 레오와 앨마는 어린 시절 폴란드의 한 마을에 살았다. 레오가 서툴지만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모두가 앨마를 위해서였다. 두 사람의 사랑은 조금씩 자라났지만 곧 2차 대전이 일어나고, 나치의 위협이 심해질 무렵, 앨마는 먼저 미국으로 떠난다. 독일의 침공으로 집과 가족을 모두 잃은 레오는 몇 년 동안 떠돌이 생활을 하다 뒤늦게 앨마가 있는 미국으로 떠난다.

아, 그래, 이 노인의 지극하고 절절한 사랑이야기인가 보구나 싶어질 때 또 다른 뜻밖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이번에는 ‘앨마’라는 이름의 열 네 살 소녀가 화자로 등장한다. 이건 또 무슨 조화일까 궁금하다. 이, 앨마가 그 앨마인가? 그런데 보아하니 소녀의 이름은 ‘사랑의 역사’라는 책의 여주인공인 ‘앨마’에서 따왔다고 한다. 그러니까 이 책의 제목인 <사랑의 역사>는 책 속의 책인 ‘사랑의 역사’의 제목이기도 한 셈이다. 소녀는 엄마와 남동생과 살고 있다. 이미 세상을 떠난 아빠는 아주 오래 전에 엄마에게 스페인어로 쓰인 ‘사랑의 역사’라는 책을 선물하면서 책 앞에 이렇게 썼다. “샬럿, 나의 앨마에게 내가 글을 쓸 줄 알았다면 당신을 위해 이런 책을 썼을 거야. 사랑을 담아. 다비드”. 앨마 그녀는 누구였을까. 자기에게 이름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인 앨마라는 사람이 소녀는 궁금하다. 엄마는 앨마가 모든 사람, 누군가가 사랑한 적 있는 모든 소녀, 모든 여자라고 말하곤 한다. 소녀는 생각하면 할수록 어쩐지 앨마가 그냥 소설 속 인물이 아닌 것 같다. 작가가 직접 사랑에 빠지지 않았다면 사랑에 대해 어쩌면 이렇게 쓸 수 있었을까. 특정한 누군가와 사랑에 빠져보지 않았다면 도저히 이런 글을 쓸 수 없었으리라.

한편 소녀 ‘앨마’에게는 또 다른 임무가 있다. 몇 년 전 세상을 떠난 아빠를 도무지 잊지 못하는 엄마를 위해 새로운 사람을 찾아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던 중 번역가인 엄마에게 신비로운 편지가 도착한다. ‘제이컵 마커스’라는 정체 모를 남자가 비용은 얼마든지 지불할 테니 ‘사랑의 역사’를 영어로 번역해달라는 것이다. 앨마는 이 정체불명의 남자와 엄마를 이어주면 어떨까 상상을 하다가 곧 작전을 짠다. ‘제이컵 마커스’라는 남자의 정체를 알아낼 단서를 찾기 위해 그가 보낸 편지와 엄마가 번역한 책을 뒤지던 소녀는 점점 책 속에 등장하는 소녀, 자신에게 이름을 준 ‘앨마 메러민스키’가 실존 인물일 것이라고 확신하게 된다. 소녀는 엄마와 제이컵 마커스를 이어줄 수 있을까? 소녀에게 이름을 준 ‘사랑의 역사’ 속 앨마 메러민스키는 정말 실존 인물일까? 독자도 궁금증이 일어난다.

이쯤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레오 거스키’가 ‘사랑의 역사’를 쓴 작가가 아니겠느냐고, 그러니까 소설 속 여주인공 이름이 ‘앨마 메러민스키’가 아니겠느냐고, 너무 쉬운 이야기잖아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그렇게 쉽사리 답을 주지 않는다. ‘사랑의 역사’를 쓴 작가는 ‘레오 거스키’가 아니라 ‘즈비 리트비노프’라는 이름의 무명작가로 그의 이력을 보면 1941년 폴란드에서 칠레로 도피했고 유일하게 출간한 책은 스페인어로 된 ‘사랑의 역사’ 그 한 권뿐이다. 레오 거스키는 폴란드에서 태어나기는 했지만 칠레에 간 적이 없다. 게다가 ‘사랑의 역사’의 서문은 ‘즈비 리트비노프’의 아내인 ‘로사’가 썼다. ‘앨마’와는 전혀 다른 인물인 것이다. 리트비노프는 그토록 절절한 사랑 이야기를 쓰면서 평생 ‘앨마’를 그리워한 것 같은데, 왜 결혼은 로사라는 여자랑 했을까? 앨마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 작품은 이렇게 서로 전혀 관계없는 다양한 인물들이 ‘사랑의 역사’라는 책 한 권으로 맺어지게 된 인연을 따라가며 한 개인의 역사와 그 한 사람의 삶을 때로는 완전히 뒤바꿔버리는 이 세계 역사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나간다.

‘즈비 리트비노프’가 쓴 ‘사랑의 역사’는 그다지 대단한 작품은 아니다. 이 작품에서는 책 속의 책인 ‘사랑의 역사’ 몇몇 구절을 종종 볼 수 있는데, 즈비 리트피노프의 ‘사랑의 역사’는 딱히 내가 좋아하는 류의 글은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 것일까. 이 ‘사랑의 역사’라는 책은 ‘초판본 이천 부 중에서 일부는 구매되어 읽혔고, 다수는 구매되어 읽히지 않았으며, 일부는 선물로 주어졌고, 일부는 서점 진열장에 놓인 채 바래가면서 파리들의 착륙장이 되었고, 상당수는 폐지 압축기에 들어가 아무도 읽지 않거나 원하지 않는 다른 책들과 함께 재생지 원료로 갈가리 찢’기는 역사를 이루며 서서히 소멸의 길을 걸어갔다. 그러나 그럼에도 최소 한 부는 누군가의 인생을, 한 사람 이상의 인생을 바꾸게 된다. 적어도 소녀의 아빠 다비드는 이 책을 무척 좋아해 사랑하는 이에게 선물하고, 그 여자와 결혼해 딸의 이름을 책의 주인공 이름을 따서 짓지 않았는가. 어떤 이는 크게 주목하지 않아도 또 다른 이에게는 생을 뒤흔들 만큼 강력한 영향을 주는 책. 책이란 참 그렇게 놀라운 존재이다. <사랑의 역사>에서 나는 그런 인연의 힘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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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연 2020-07-07 14: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홍~ 완전 행복하셨겠다는^^
<올리브 키터리지>는.. 개인적으로 정말 누구에게나 추천하고픈 좋은 책이라고 생각해서... 얼른 읽기를 강추합니다!!!

잠자냥 2020-07-07 15:02   좋아요 0 | URL
네, 정말 기분 좋고 행복하고 그랬어요. ㅎㅎ
<올리브 키터리지> 곧 읽겠습니다! ㅎㅎ

페넬로페 2020-07-07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알라딘 기프티북이 있는줄 몰랐어요~~
알라딘 홈에 있나요?
책선물 받으셔서 정말 좋았겠어요^^

잠자냥 2020-07-07 16:09   좋아요 1 | URL
네, 저는 눈여겨 보지 않아서 몰랐는데, 있더라고요.
선물할 책을 장바구니에 담으신 다음에 주문하기 바로 아래에 있는 ˝선택 상품 선물하기˝를 클릭하시면 기프티북 페이지로 연결되더라고요. 선물 받을 분의 정보는 핸드폰 번호/ 알라딘 서재 주소 / 이메일 / 카카오톡 이중 1개만 알고 있어도 가능해요. ^^

아니면 더 간단하게 특정 책 정보 페이지에서 장바구니 담기가 아니라 ˝선물하기˝를 누르시면 됩니다.

다락방 2020-07-07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아주 오래전에 이 책을 읽었거든요. 소녀가 엄마와 사는건 기억나는데-소녀가 ‘덜 사랑해주세요‘ 라고 혼자 생각하던 장면이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그런데 전체적으로 이런 내용인지는 전혀 기억이 안나네요. 기억도 안나는데.. 책은 뭐하러 읽는걸까요? 허무하네요... 니콜 크라우스의 다른 책을 아주 오래전에 사두고 읽지 않았는데... 책장 어딘가 뒤져보면 나올겁니다. 하하하하하. 독서인생 뭘까요? 물론, 책을 선물받는 것은 너무나 기쁜 일임에는 분명합니다!


-알라딘 서재의 거물이자, 여왕이자, 유명인사이자 셀럽(으응?)인 다락방 왔다갑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잠자냥 2020-07-07 16:12   좋아요 0 | URL
네, 이 책 안 그래도 구간 정보 찾아보니 알라딘 서재의 거물이자 여왕이자, 유명인사이자 셀럽인 다락방 님 글이 보이더라고요. ㅋㅋㅋ 예전에는 민음사에서 나왔고요, 그 페이퍼를 보니 다락방 님은 분명 이 책을 읽으셨고, 니콜 크라우스의 다른 책인(최근 출간되 제목은 <위대한 집>), <그레이트 하우스>도 갖고 계실 거 같습니다.

참 그리고 책은 원래 읽고 잊으라고 읽는 겁니다. ㅋㅋㅋㅋㅋ

다락방 2020-07-07 16:24   좋아요 1 | URL
맞아요!! 그레이트 하우스를 ‘갖고‘ 있습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syo 2020-07-07 2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ㅋㅋ거여유셀 다락방님 적확하다

잠자냥 2020-07-07 22:18   좋아요 0 | URL
ㅋㅋㅋㅋㅋ
이거 좋은데요! 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