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걸작
오노레 드 발자크 지음, 김호영 옮김 / 녹색광선 / 201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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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자크의 작품을 많이 읽지는 않았다. 지루했다고 해야 할까. 몇몇 작품을 읽은 뒤 큰 감흥을 받지는 못했다. 이제까지는 그랬다. 그런데, <미지의 걸작>으로 나는 발자크를 다시 본다. 수도사 차림으로 독한 커피를 달고 살면서(살아생전 그가 마신 커피는 거의 5만 잔에 달한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엄청난 강도로 글을 쓴 작가. 그의 <인간 희극>은 90여 편이 넘는 작품들로 구성되며, 등장인물만 2,000명에 이른다. 나폴레옹이 이루지 못한 것을 자신은 펜으로 이룰 것이라고 장담했다는 발자크. 평민의 아들이었으면서도 자기 이름에 귀족을 뜻하는 ‘드(de)’를 넣어 ‘오노레 드 발자크’로 불리기를 고집했던 사람.

그는 왜 그토록 미친 듯이 글을 썼을까? 발자크가 꽤 속물적인 사람이었다는 사실은 그의 작품에 실린 작가 소개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이 책은 그 사실을 ‘먼저’ 지적하고 시작한다. <미지의 걸작>은 앞부분에 츠바이크의 <발자크 평전>을 인용하면서 발자크라는 한 인간을 소개한다. 츠바이크에 따르면 발자크는 속물인 동시에 결핍으로 가득 찬 사람이었다. 발자크가 서른두 살에 어머니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성공을 바라는 야심 가득한 청년을 만날 수 있다. 발자크는 말한다. “조만간 나는 한 재산 장만할 겁니다. 문필가로서, 아니면 정치계에서, 아니면 언론계에서, 아니면 결혼을 통해서, 아니면 어떤 사업상의 일확천금을 통해서 말입니다.”

발자크는 생애 내내 그 무엇보다 돈을 원했다. 부를 통해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다. 오래 전 나는 돈을 간절히 바라는 것 자체가 속물이며 인간으로서 부끄러운 짓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면 발자크의 지적은 거의 맞다. 이 세계는 부를 쌓을수록 누릴 수 있는 자유도 많아진다. 그렇지 않은가? 게다가 발자크는 경제적으로 쪼들렸다. 귀족 출신도 아니며 가진 것이라곤 글 쓰는 재주뿐이고, 사업에도 번번이 실패하고, 그로 말미암아 생긴 엄청난 빚을 다시 글을 써서 번 돈으로 갚고, 그렇게 번 돈을 또 사업에 투자하고 실패하고, 다시 작업실에 자신을 가둔 채, 광적으로 글을 쓸 수밖에 없었던 삶. 그렇기에 발자크는 결혼을 통해 자신의 채무를 갚아주고 신분상승을 이뤄줄 귀족 여인을 평생 찾아 헤맨다. 그의 꿈은 이뤄졌을까? 놀랍게도 쉰 살이 넘어서 드디어 그는 귀족 여성과 결혼함으로써 그 자신의 오랜 바람이었던 상류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게 된다. 그런데 인생이란 참으로 덧없으니, 과로로 쓰러진 발자크는 결혼한 지 몇 달 만에 허무하게 삶을 마감한다.

작품이 아닌, 발자크의 삶을 이렇게 구구절절 이야기하는 까닭은,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이야기는 발자크의 삶을 알 때 좀 더 이해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 또한 츠바이크의 발자크론을 인용하면서 시작한 게 아닐까. <미지의 걸작>에 실린 짧은 두 편의 이야기, ‘영생의 묘약’과 ‘미지의 걸작’에서는 평생 손에 잡히지 않는 성공, 상류층이라는 신분 등 자신이 애초에 지니지 못했던, 그래서 결핍을 느꼈던, 때문에 더 간절히 바라고 욕망하게 되는, 그러나 끝끝내 가질 수 없었던 그 신기루와도 같은 것을 추구했던 발자크의 초상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도매상인에게 세상은 봇짐이거나 유통 중인 지폐 뭉치다. 대부분의 젊은 남자들에게 세상은 여자다. 일부 여자들에게 세상은 남자다. 그리고 어떤 영혼들에게 세상은 거실이고, 집단이며, 동네이고, 도시다. 하지만 돈 후안에게 세상은 그 자신이었다! (‘영생의 묘약’, 43쪽)


첫 번째 이야기인 ‘영생의 묘약’은 호색한의 대명사 돈 후안의 삶을 그린다. 끊임없이 여자를 유혹하고 그 여자를 얻게 되는 순간, 냉혹하게 여자를 버리는 행위를 거듭하는 돈 후안. 발자크가 돈 후안과 같았다는 소리인가? 묻는 이도 있으리라. 그러나 발자크는 이 바람둥이 돈 후안의 이야기에 조금 색다른 창작의 손길을 덧붙인다. 한순간의 쾌락만을 뒤쫓던 돈 후안, 그도 진실로 얻고자 했던 것이 있으니, 다름 아닌 ‘불멸의 삶’이다. 쾌락에 대한 끝없는 욕구와 그런 삶을 뒷받침해 줄 수 있는 넉넉한 재산을 지닌 돈 후안이지만 그런 그에게도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있었으니, 바로 영원히 끝나지 않는 젊음이다. 그토록 많은 재산과 쾌락을 끝없이 누리려면 그는 죽지 않고 오래 살아야 한다. 그것도 영원한 젊은이로. 그러나 그게 가능한 인간이 과연 존재할 수 있을까! 그런데 그는 뜻밖의 기회를 통해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묘약, 이른바 ‘영생의 묘약’을 손에 넣게 된다. 돈 후안은 영원한 젊은이로 이 삶을 누릴 수 있을까?

두 번째 이야기인 ‘미지의 걸작’은 ‘미술’을 소재로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걸작을 완성하고자 하는 천재 화가 프렌호퍼가 등장한다. 프렌호퍼는 발자크가 그려낸 상상 속 인물이지만 이 작품에서 그와 대화를 나누는 포르뷔스를 비롯해 푸생은 실존 인물이다. 거기에 발자크는 시대를 풍미했던 루벤스, 렘브란트, 티치아노, 라파엘로 같은 실제 대가들의 화풍을 언급하면서 프렌호퍼의 입을 빌려 자신의 해박한 미술론을 한껏 펼쳐 보인다. 그런데 프렌호퍼의 예술론을 듣고 있노라면 ‘그림과 화가’라는 관계를 통해 ‘문학과 작가’ 또는 ‘소설과 소설가’의 관계에 대한 발자크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즉, 이 작품에서 미술은 하나의 상징처럼 다뤄지면서 문학을 비롯한 어떤 예술 작품 전체에 대한 예술가의 태도, 그에 대한 발자크의 사상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부서지기 쉬운 우리의 감정들 중 그 어떤 것도, 영광과 불행으로 점철되는 운명의 감미로운 형벌을 시작하는 예술가의 젊은 열정 같은 사랑과 닮은 것은 없다. (‘미지의 걸작’, 71쪽)

“위대한 시인이 되기 위해서는 통사법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만으로, 언어적 실수를 범하지 않는 것만으로 충분치 않아!” (‘미지의 걸작’, 77쪽)


포르뷔스가 보기에 프렌호퍼는 예술에 열정적으로 빠져 있으며 다른 화가들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보는 인물이다. 그는 색채와 선의 절대적 진실성에 대해 깊이 성찰할 줄 안다. 프렌호퍼가 보기에 이미 유명해진 화가들은 아직도 진실한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애송이들에 지나지 않으며 그들의 작품은 그럴듯하게 그려지긴 했으나 살아 있지 않다. 그에 비해 자신의 그림은 “영혼을 지니고 있”다. 그는 자신의 그림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하나의 감정이고, 열정”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는 “예술에는 신념이 필요하지. 이와 같은 창조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선 오랫동안 작품과 함께 살아야만 하네. 이 몇 개의 음영들을 위해서도 나는 많은 작업을 해야 했지.(...) 내가 이 효과를 재생하기 위해 믿을 수 없는 고통을 치렀을 거라 생각되지 않나?”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프렌호퍼의 이런 말들은 발자크가 자기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처럼 보인다. 나는 위대한 작가이고, 내 작품은 영혼을 지녔으며 이런 놀라운 작품을 쓰기 위해 나는 믿을 수 없는 고통을 치렀다고, 치르고 있다고.

그런데 이토록 자신만만하게 타인의 그림을 평가하고 거의 완벽에 가까운 예술론을 펼치는 프렌호퍼. 그 자신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최고의 회화 실력을 지녔다는 프랜호퍼는 아직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걸작 <카트린 레스코>를 10년에 걸쳐 비밀리에 그려왔다. 포르뷔스와 푸생은 나날이 그의 걸작이 궁금해진다. 그리고 마침내 프렌호퍼의 걸작을 마주하게 되는데! 포르뷔스와 푸생은 경악할 수밖에 없다. 포르뷔스와 푸생이 본 그림은 프렌호퍼가 이야기했듯이 절대적으로 완벽한 회화이자, 그 누군가의 회화와도 견줄 수 없는 영혼이 살아 숨 쉬는 진실한 그림일까?

이런 질문 속에서 눈치 빠른 독자라면 프렌호퍼의 회화가 어떤 그림일지 예상 가능할 것이다. 마치 영원한 젊음, 불멸의 삶을 꿈꾸었던 돈 후안의 소망이 좌절되듯이, 아니 그럴 수밖에 없었듯이, 프렌호퍼의 뮤즈 카트린의 초상을 담은 회화는 포르뷔스와 푸생의 기대를 크게 무너뜨린다.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을 꿈꾸었던 돈 후안과 프렌호퍼. 이 두 사람의 모습은 끊임없이 성공을 바라며, 신분 상승을 꿈꾸었던 발자크 그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돈 후안도 프렌호퍼도 그들이 욕망했던 것을 끝내 이루지 못한다. 오노레 드 발자크의 ‘드(de)'를 진실로 이룰 수 있는 삶, 귀족으로서의 삶을 눈앞에 두고 허무하게 죽어버린 발자크의 삶과도 묘하게 겹치는 부분이다.

그러나 조금 다른 부분이 있다면 발자크는 자신이 꿈꾸던 세속적인 부와 명예, 신분 상승 등은 손에 잡을 만하면 놓치고 말았지만 예술가로서의 명성은 결국 이루고 말았다는 사실이다. “사랑의 열매는 빨리 없어지지만, 예술의 열매는 불멸한다네.”(‘미지의 걸작’, 122쪽) 라는 이야기처럼 사랑이나 성공, 귀족이라는 신분은 한없이 덧없기만 하다. 그러나 예술을 영원하다. 그리고 발자크는 자신의 걸작으로 불멸하고 있다. 세속적 욕망은 언젠가 이루더라도 결국 허무하게 사라지고 말리라, 그러나 예술만큼은 영원하다는 것을 <미지의 걸작>은 말하고 있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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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19-07-22 12:2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도서관에서 빌렸다가 못 읽고 반납했는데... 다시 빌려야 하나요.

잠자냥 2019-07-22 12:33   좋아요 0 | URL
재미있습니다. 그리고 사실 펼쳐 보시면 알겠지만 본 내용은 짧아서 금세 읽으실 수 있을 거예요.

Falstaff 2019-07-22 14:2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앗!
또 발자크가 나왔군요. 포착되면 언제나 고민하게 만드는 작가가 아휴, 발자크입니다. ㅡㅡ;;
근데 단편 두 편의 가격이 좀 심하네요.

잠자냥 2019-07-22 14:43   좋아요 0 | URL
네 이 책은 아마 폴스타프 님이 직접 보시면 화낼 거예요. ㅋㅋㅋ 게다가 앞뒤로 이런저런 설명이 덧붙여져 있어서 본문 내용은 정말 얼마 되지 않습니다. 양장본에 책에 옷을(말 그대로 천을 입힌) 장정이라 아주 비싸게 받는 것 같습니다. 이 시리즈가 다 그래요(츠바이크 ‘감정의 혼란‘까지 두 권 나왔습니다만).

coolcat329 2019-07-23 1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 자체도 고급스럽던데 귀족의 삶을 꿈꾸던 오노레 ‘드‘ 발자크가 봤으면 좋아했을까요?ㅎ 저도 읽을 책에 추가하네요^^

잠자냥 2019-07-23 14:09   좋아요 0 | URL
ㅎㅎ 자기한테 어울린다고 좋아했을 법한 고급스러운 책이긴 합니다. ㅎㅎ

카알벨루치 2019-07-23 14: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커피 오만잔이 심장을 발자크~ㅋㅋ글 잘 읽고 갑니다 ㅎ

잠자냥 2019-07-23 15:29   좋아요 1 | URL
커피를 그렇게 마셔대고 밤새 글을 썼으니 죽을 수밖에요;;; 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