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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신의 기원 - 언어, 국가, 대의제, 그리고 통화 ㅣ 이매진 컨텍스트
가라타니 고진 지음, 송태욱 옮김 / 이매진 / 2006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책 제목만으로는 그 내용을 파악하기 힘들다. 책 제목만으로 느껴지는 책의 내용은 일본정신의 기원을 언어, 국가, 대의제 그리고 통화를 통해 파악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알라딘 리뷰에도 이렇게 되어있다). 물론 일본문학작품을 통해 논리를 전개하고 있어 이러한 작품들이 일본정신이라 할 수는 있겠으나 꼭 그렇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새로운 대안세계의 제시를 위해 일본문학작품을 예로 들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자본제=내이션=스테이트의 지양과 어소시에이션'이라 할 수 있다.
책 순서와는 상관없이 먼저 일본정신의 기원과 밀접히 관련되는 제2장의 일본정신의 기원은 '상상의 공동체'인 내셔널리즘의 중요한 요소인 언어(문자)를 통해 일본인의 자아 구조의 성립을 살펴보고 있다. 일본어의 특징인 한자를 음과 훈으로 읽는다는 것,그리고 한자와 가나를 병용하는 것이 '거세의 배제'(원리적이고 체계적인 것에 의한 억압이 없었다는 것)를 통하여 외래문화를 일본 속에 내면화하면서도 외래화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이 점이야 말로 '일본적'이라고 파악한다.
더 나아가 천황제의 오랜 존속은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관계에 의해 이루어진 것으로 파악한다. 즉 일본에서의 천황제의 존속이 천황제의 뿌리깊은 신화적인 힘때문이 아니라 한번도 이민족에게 직접 지배당하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곧 조선이라는 존재가 일본의 정치적 문화적 형태를 크게 규정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점 또한 '거세의 배제'가 있게한 역사적인 요인임을 지적한다. 참고로 고진은 조선에서의 이민족 침략의 거듭된 경험이 '억압'과 '주체'를 강화해 중국보다 더 원리적이고 체계적이려는 경향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의미있는 지적이라 생각된다.
한편 고진은 근대사회를 분석하면서 근대 국가는 자본제=내이션=스테이트라고 불러야 하며 이 셋은 서로 보완하고 보강한다고 한다. 즉 경제적으로 자유롭게 행동하고 그것이 계급적 대립이나 모순을 초래할 때(자본제), 그것을 국민의 상호부조적인 감정에 의해 넘어서며(내이션) 의회를 통한 국가권력에 의해 규제하고 부를 재분배하는 방식이다(스테이트). 이 세가지는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각기 다른 '교환'원리(국가-수탈과 재분배, 시장경제-화폐에 의한 교환, 내이션-호혜제)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에 자본주의만을 타도하려고 하면, 국가적인 관리를 강화하게 되거나 내이션의 감정에 발이 채이게 된다.
또한 국가나 내이션(공동체)에 의해 제어하려고 하면 국가나 내이션이 강화된다. 그리고 그런 시도는 국가간 대립을 낳고, 결국 자본을 지원하는 형태로 귀결될 것이다. 자본제=내이션=스테이트는 삼위일체 구조로서 존재하므로 구조의 '내부'에서 아무리 발버둥쳐도 소용없다. 따라서 이러한 자본제=내이션=스테이트에 대한 대항의 장을, 그 삼위일체의 '외부'인 어소시에이셔니즘에서 찾으면 된다는 것이 고진의 주장이다.
따라서 고진은 이러한 어소시에이셔니즘의 내용을 일본문학작품에서 단서를 찾아 설명하고 있다. 즉 기쿠치 칸의 '투표'를 통해 대의제 민주주의의 비민주성을 밝히고 모든 사람이 정치에 참여할 수 있는 추첨을 통한 참여민주주의를 제시하고 있으며, 다니자키 쥰이치로가 쓴 '작은 왕국'을 통해 윤리적이고 경제적인 시민통화의 유통을 제기한다. 이러한 교환의 원리, 또는 어소시에이션이 확산될 때, 세 개의 교환 원리에 뿌리를 둔 자본제=내이션=스테이트는 그 기반을 잃고 소멸할 것이라고 결론내린다.
이상과 같이 이 책의 전체적인 내용은 일본정신의 분석 또는 일본의 정신분석과 그를 통한 미래사회의 대안을 제시한다. 또한 실천도 더불어 전개하고 있다. 이러한 고진의 운동이 얼마나 현실적인지는 잘 모르겠다. 고진은 이 운동이 수세기가 걸릴지도 모른다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먼 도정이라 하더라도 그 길만은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오늘날과 같이 불확실한 현실에서 미래에 대한 전망은 허황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