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순사건과 4.3항쟁이 결과적으로 '순정한?' 대한민국을 만들기는 했지만 그 결과에 따라 여순사건과 4.3항쟁을 이승만정권의 '대한민국 만들기'로만 제한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듯하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이 분야에 대한 연구서가 나온건 의미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스크랩해둔다. 

 

[한겨레신문 2009.6.17] 

 

 

 

 

 

 

 

 

‘빨갱이’ 몰아 민간인 죽인 여순사건
지배권력 위기때마다 반대세력 매도
“생각 다르면 좌빨…반공 내면화 결과”


 

여순사건을 상징하는 사진 한 장이 있다. 학교 운동장처럼 보이는 넓은 공터에 주민 수천 명이 양쪽으로 패를 나눠 앉아 있다. 두 무리를 나눈 폭 3미터 남짓한 중간지대에는 무장 군인들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는데, 담장 뒤편 시가지에서 치솟는 검은 연기가 주민들이 맞닥뜨릴 운명의 가혹함을 예고하는 듯하다. 당시 <동아일보>를 통해 ‘피난민 수용소’로 소개됐지만, 실은 여수 진압 직후 여수 서국민학교에서 벌어진 좌익 협조자 색출 장면이다. 오른쪽에 모여 앉은 사람들은 부역 혐의자들로, 사진 촬영 직후 89명이 학교 뒤편으로 끌려가 즉결처분됐다. 운동장을 가로지른 중간지대는 양민과 혐의자의 편의적 구분선이 아닌, 삶과 죽음의 절대적 경계선이었다.

“진압군이 시가지를 점령한 뒤 가장 먼저 한 게 주민을 한곳에 모아놓고 ‘빨갱이’를 골라내는 일이었습니다. 경찰 생존자와 우익 인사들이 대열을 훑고 다니다 ‘저놈’ 하고 지목하면 그걸로 끝이었습니다. 주민들은 이것을 ‘손가락 총질’이라고 불렀어요. 그들을 기다리는 건 무자비한 몽둥이질과 총살, 참수형이었습니다.”

<‘빨갱이’의 탄생>을 펴낸 김득중(44)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는 여순사건의 핵심적 의미를 ‘대한민국 국민 만들기’에서 찾는다. 출범 두 달을 갓 넘긴 이승만 정부에 여순사건은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 조건”을 심사하는 계기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누군가를 ‘국민’으로 승인하는 것은 항상 ‘국민이 아닌 자’를 구분하고 배제하는 과정을 동반하는데, 이승만 정부한테 ‘비국민’은 ‘빨갱이’였다.

“빨갱이란 말은 일제 때부터 있었고, 해방공간에서도 공산주의자를 지칭하는 용어로 빈번하게 사용됐어요. 그런데 여순사건을 거치며 그 의미가 변합니다. 단순히 공산주의 사상을 가진 자가 아니라 ‘양민을 학살하는 살인마’ ‘같은 하늘 아래서 살지 못하는 인간 이하의 존재’라는 악마성을 획득하게 된 것이죠. 부역자 색출 작업이 벌어진 학교 운동장은 양민과 빨갱이, 인간과 비인간, 국민과 비국민을 준별하는 공간이었던 겁니다.”

물론 우익의 ‘빨갱이 사냥’은 봉기 기간 좌익이 벌인 학살행위가 빌미가 됐다. 실제 반군이 장악했던 여러 지역에서 반군과 좌익세력에 의해 경찰과 우익 인사들이 대량으로 살해됐다. 하지만 글쓴이는 좌·우익의 살상행위를 동일선상에서 비교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한다. 학살의 규모나 대상, 지속 기간에서 차이가 뚜렷하기 때문이다.

“여수지역사회연구소 조사를 보면, 전체 희생자 1만여명 가운데 95%가 국군과 경찰에 의해 죽었습니다. 지방 좌익과 반군이 죽인 사람은 500명 정도예요. 그리고 행위의 정당성 여부를 떠나 좌익의 학살은 표적이 분명했습니다. 친일 경찰과 한민당 세력, 좌익 탄압에 앞장섰던 청년단원들이었지요. 그런데 우익은 달랐어요. 반란을 일으킨 14연대 군인들과 반군 점령기에 인민위원회 활동을 한 남로당원뿐 아니라 그들에게 밥 해준 사람, 분위기에 휩쓸려 부화뇌동한 학생, 반군이 남기고 간 소지품을 갖고 있는 모든 사람이 변변한 자기변론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살해당했습니다. 복수심 때문이라고 보기엔 정도가 지나쳤습니다.”
실제 희생자 중에는 평소 경찰과 사이가 안 좋았던 검사, 좌익에 온정적이었던 여중 교장 등 우익 명망가도 있었다. 이들은 반군에 협조한 증거가 없었는데도 심증만으로 잡혀가 처형됐다. 전 시민을 적으로 간주하는 초토화 진압작전의 산물이었다. 그들은 빨갱이라서 죽은 게 아니라, 죽은 뒤에 빨갱이가 된 경우였다.

이런 ‘빨갱이 만들기’에는 언론과 문인들의 구실이 컸다는 게 글쓴이의 분석이다. 실제 신문들은 정보 획득의 통로가 제한된 상황에서 정부와 진압군의 발표 내용, 시중에 떠도는 소문들을 여과 없이 보도했고, 시찰단 자격으로 현지를 방문한 시인과 소설가들 역시 공산주의자의 비인간적 잔인성을 부각시키는 글을 경쟁적으로 발표했다. 이를 통해 ‘빨갱이’란 기표에 담긴 ‘살인마’ ‘비인간’의 이미지는 국민의 의식회로 안에 견고하게 자리잡았다. 이제 대한민국 국민이 되려면 반공의식을 내면화해야 했고, 이렇게 내면화한 반공논리는 대한민국 60년사를 통해 지배권력이 위기를 맞을 때마다 빨갱이라는 유령을 어김없이 불러냈다.

“인터넷에서 ‘좌빨’(좌익빨갱이)이란 표현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누리꾼들을 볼 때마다 가슴이 서늘해집니다. 대북 강경책에 반대하고 집회·시위와 사상의 자유, 노동자의 파업권을 옹호한다는 이유로 거침없이 빨갱이 딱지를 붙이려 드는 이들의 사고 구조에는 여전히 양민과 빨갱이, 국민과 비국민을 나누는 이분법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여순사건은 아직도 진행형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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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푸코를 읽어야할 이유가 있어 스크랩해둔다. 특히 그의 강의록 중 아래에서 강조하고 있는 '자유주의 3부작'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안전,영토,인구>, <생명정치의 탄생>은 반드시 읽어야할 저서다.  

 

[한겨레 2009.7.8]

미셸 푸코(1926~1984)가 돌아왔다. 최신 사조에 목마른 계간지들이 연이어 그의 사상을 재조명하고 있는 가운데, 대중들을 상대로 한 ‘푸코 강좌’도 성업 중이다. 대체 무엇 때문에, 유행에 민감한 한국의 지식시장은 25년전 에이즈로 사망한 이방의 철학자를 다시금 주목하는가.

개인의 인간형 자체를 바꾸는
신자유주의 시스템 통찰력에
‘생명권력’ 등 후기담론 새 빛

푸코에 관한 최근의 논의들은 계간 <문화과학>을 중심으로 펼쳐지고 있다. 임동근 문화과학 편집위원과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가 2008년 여름호와 2009년 봄호에 푸코의 ‘통치성’ 개념에 관한 분석글을 잇따라 실었다. 철학아카데미와 다중지성의 정원, 문화사회연구소 같은 강의·연구모임도 지난 겨울부터 푸코 세미나와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출판계는 또 어떤가. 김영사가 최근 지식인마을 총서로 푸코를 다룬 데 이어, 하반기에는 <푸코, 인간의 초상>(폴 벤느, 산책자), <자유의 의지, 자기계발의 의지>(서동진, 돌베개) 등의 연구서와 <미셸 푸코의 파르헤지아>(사계절), <안전, 영토, 인구> <생명정치의 탄생>(난장) 같은 푸코 강의록들이 출간을 기다리고 있다. 말 그대로 ‘푸코의 재림’이다.

기실 한국에서 푸코의 전성기는 1990년대였다. 마르크스주의가 승하던 80년대 한국에서 푸코는 비주류요 이단자였다.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를 계기로 <감시와 처벌>(1989년), <성의 역사 1·2·3>(1990년) 같은 대표작들이 잇따라 번역되기는 했지만 90년대 후반 질 들뢰즈, 슬라보예 지젝 같은 재기발랄한 후학들이 무섭게 치고 들어오자, 그 역시 한때의 유행을 선도한 서구 사상가의 한 명으로 지식의 최전선에서 쓸쓸히 퇴역해야 했다.

반전은 2000년대 중반 ‘생명권력’ ‘생명정치’와 관련된 푸코의 후기 담론들이 뒤늦게 주목받으면서 찾아왔다. 여기엔 권력의 새로운 지배구조와 그에 대한 저항 가능성을 생명권력·생명정치 개념을 통해 해명한 네그리·하트의 <제국>과, 생명정치라는 틀에서 서양 정치구조를 해부한 조르조 아감벤의 <호모 사케르> 연작의 영향이 컸다. 

최근의 ‘푸코 르네상스’는 생명정치와 함께 후기 사상의 핵심을 이루는 ‘통치성’이란 주제와 관련된다. 푸코가 통치성이란 개념을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은 1970년대말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 했던 강의들이다. 여기서 푸코는 18세기를 전후해 유럽에서 등장한 새로운 권력관계(통치)의 특성을 지칭하기 위해 이 개념을 사용하는데, 그것의 핵심은 “행동방식 혹은 행실에 대한 통솔”이다.

통치는 법이나 규범을 통해 특정 행위를 ‘금지’하거나, 감시·처벌·훈육을 통해 개인의 신체를 ‘규율’하는 차원에 머무르지 않는다. 가장이 가족 구성원의 건강과 가계의 부를 관리하고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과 유사하게, 근대 국가의 통치는 생명을 가진 주민 전체(인구)에게 일정한 자유를 허용하면서 그들의 건강과 안전, 복지를 증진하기 위해 개인적·집단적 수준의 행동과 실천을 유발하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이런 통치를 위한 기술적 수단이 ‘폴리스’로 불리는 행정관리 기구들이며, 여기에 수반되는 지식이 ‘경제적 인간’을 대상으로 삼는 정치경제학(고전경제학)이라는 게 푸코의 분석이다.

푸코가 말하는 이 새로운 통치성의 다른 이름이 ‘자유주의’다. 주목할 만한 점은 푸코가 1978~79년 강의록인 <생명정치의 탄생>에서 오늘날 우리가 직면한 ‘신자유주의’에 관해 언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푸코에게 신자유주의는 자유주의 통치성의 또다른 형태다. 자유주의가 ‘인구에 대한 통치방식’을 고안하고 실천했다면, 신자유주의는 개인의 ‘인간형 자체’를 변형하는 데 관심을 둔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이다. 푸코가 볼 때 신자유주의 통치성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노동자는 신체 뿐 아니라 자신의 모든 행위를 ‘자본’으로 다루는 기업가의 위치를 부여받는다. 이른바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탄생이다. 이런 푸코의 분석에서 도출되는 교훈은 무엇인가.

“푸코는 신자유주의를 좁은 의미의 이데올로기나, 특정한 역사적 시점부터 조성된 불가역적 현실로 간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한다. 신자유주의는 신고전파 경제학이나 합리적 선택론 같은 학술 담론뿐 아니라, 일상의 자기계발 담론이나 노동자의 책임과 권한을 강화함으로써 생산적 주체를 형성하려는 경영담론까지 포괄하는, 사회를 통치하고 삶을 조직하는 방식이란 점을 인식해야 한다는 얘기다.”(서동진 교수)

이세영 기자 monad@hani.co.kr  

 

‘계급성’ 넘어 ‘통치성’


‘생명권력’ ‘생명정치’ 담은 푸코 강의록 8권 출간
프랑스 라발 등 사회과학 전 분야로 확대·적용


“최근 사회과학 논문 제목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것이 ‘통치성’이란 단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푸코의 ‘통치성’ 개념은 서구 인문사회과학계의 열쇳말로 자리잡았다. 푸코는 1970년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에 취임한 뒤 1984년 사망할 때까지 이곳에서 강의했다. ‘푸코 르네상스’의 진원지는 그의 제자들이 푸코가 남긴 메모와 녹취 테이프를 편집해 1997년부터 출간하고 있는 강의록들이다.

14권으로 예정된 푸코의 강의록은 지금까지 8권이 출간됐는데,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이 ‘자유주의 3부작’으로 불리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1975~76년 강의록), <안전, 영토, 인구>(1977~78년), <생명정치의 탄생>(1978~79년)이다. 여기서 푸코는 ‘생명권력’과 ‘통치성’이란 주제에 매진하면서,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하는 신자유주의 시스템에 대한 예견적 통찰력을 보여줬다는 평가를 받는다.

말년의 푸코가 천착했던 통치성이란 주제에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니콜라스 로즈, 피터 밀러, 콜린 고든 등 영국의 사회과학자들이었다. 이들은 <푸코 효과>(1991년)라는 책에서 푸코의 통치성 이론을 처음 소개한 데 이어, 영국 사회과학 저널인 <경제와 사회>를 통해 통치성 이론을 경제·사회·정치·사회심리학·행정학·생명공학 등의 분야로 확대했다.

최근엔 프랑스 사회학자 크리스티안 라발의 작업이 돋보인다. 그는 푸코의 통치성 이론과 신자유주의 분석에서 영감을 얻어 신자유주의의 기원을 지성사적으로 분석한 <경제적 인간-신자유주의의 뿌리에 관하여>를 2007년 출간했고, 올해는 철학자 피에르 다르도와 함께 신자유주의 사회의 형성과 구조를 분석한 <새로운 세계이성-신자유주의 사회에 관한 시론>을 냈다.

라발은 신자유주의를 좁은 의미의 경제학 담론이나 이데올로기로 간주하는 통념을 비판한다. 신자유주의는 경제만이 아니라 사회·정치·행정·교육·문화 등 자본주의 사회의 전 분야를 총체적으로 조직하는 ‘새로운 합리성’이며, 인간을 경쟁을 통해 이익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경제적 동물로 호명하는 ‘새로운 주체 형성의 원리’라는 것이다.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를 계기로 확산되던 ‘신자유주의 종언론’이 최근 세계경제의 완만한 회복세와 더불어 빠르게 위축되고 있는 현실은 ‘푸코 학파’의 신자유주의 분석에 담긴 의미가 녹록지 않음을 실감케 한다. 이세영 기자

도움말 서동진 계원디자인예술대 교수·진태원 고려대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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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비가 억수같이 퍼붙고 있다.  

몇 년째 겪어보지 못했던 물난리가 전국 방방곳곳에 났건만 '국민의 대표'라고 하는 작자들의 구역질나는 작태는 국민을 외면하고 또 저질러지고 말았다.

뭐라고 형언할 수 없는 자괴감에 휩싸인다.

그냥 그렇게 보고, 분노하고, 행동하고...

그리고 또 희망을 품어야 하는가? 

비속을 가르며 오는 길에 들리던 음악소리가 나를 깨운다. 

에피톤 프로젝트의 '희망고문'... 

희망이란건 정말 우리에게 고문과도 같다.   

근대의 속성이라고 하는 양가성을 들먹이기 싫지만 또 그렇게 고개를 끄떡이게 한다.

꿈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는 달콤한 환상은 어김없이 비켜간다. 

그래도 우리는 또 꿈, 희망을 버리지 못한다.  

그러나 어쩌면 희망, 꿈은 애초부터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아니 명백하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는... 

수많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서울대를 원하지만 4천명만이 허락되고 

수많은 노동자가 자본가이기를 원하지만 1%만 허락되는  

그런  철저히 위계열화된 획일적인 사회에서는 말이다. 

하지만 이 사회를 유지하고자 하는 1%의 기득권 층은 그런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신화를 만들고 환상으로 장벽을 친다. 

너희들도  열심히 살면 나처럼 된다고.

그리고 그렇게 된 사람들을 미디어는 강박적으로 재현한다. 

박지성, 김연아, 비, 하인스워드.

이처럼 이루어질 수 없는 허황된 꿈을 우리에게 심어주는 것이 근대고 권력이고 현실이다.

온갖 권력자들이 아무리 멋떨어지게 선전한다고 해도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중요한 방편이며 도구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암울하게 우울하게 옴짝달싹할 수 없이 죽어야만 하는가?

희망은 우리에게 고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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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총서 39
이승일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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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날카로운 이론적 비판과 명약관화한 역사적 증거없는 심정적이고 감정적인 비판은 상식을 얘기한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식상한 느낌까지 든다. 하지만 그렇다고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비판은 의미가 없는가? 아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저자 중 한 명인 정태헌이 지적하듯이 최근의 식민지 근대화론은 학문의 장에서 자신의 역사관을 주장하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역사관과 동일한 현 정권 하에서 권력과 결탁하여 '좌편향'의 역사관에 길들여져 있는 무지한 국민들을 '계몽'시키기 위해 정치운동으로까지 그 장을 확장하였기 때문이다. 그 실천이 '뉴라이트 운동'이며 이들은 최근 들은 대안 교과서를 통해 그들의 주장을 전파하고자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 책의 저자들은 비판의 날선 칼을 다시 식민지 근대화론과 그들의 이론적 입론인 경제성장론에 들이대고 있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식민지적 근대>>는 모두 7편의 논문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3편은 식민지 관습과 법, 일제시기 이데올로기장치인 경성신사, 그리고 강제동원에 관한 개별논문이다. 나머지 4편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이론적 토대인 경제성장론을 비판하는 글로 여기서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하는 4편의 글 총론격인 정태헌의 비판을 통해 그들의 비판지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전에 대체적으로 4편의 글이 어떤 비판에 집중해 있으며 개략적인 비판의 내용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식민지 근대화론을 비판하고 있는 4편의 글은 식민지 근대화론의 총론격인 경제성장론에 대한 비판(문영주, 정태헌)과 각론격인 인력개발론, 생활수준향상론에 대한 비판(정병욱, 허영란)으로 나누어져 있다. 우선 식민지기 성장한 인력은 해방 이후 한국경제의 성장 동력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인력개발론에 대한 비판으로 정병욱은 안병직과 에커트의 논의를 주로 비판하며 왜곡과 계급의식의 부재 단선적 역사관이라고 비판한다. 뿐만 아니라 역사학계의 비판인 단순히 식민지기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거나 해방 이후 '민중 기여론' 주장하는 또한 단선론적 시각과 '자기개발' 매커니즘 속에서 벗어나지 못한 적절치 못한 비판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적으로 인력개발론은 자본주의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며 이에 대해 "도움이 되었다", "식민지기에 생겨난 것이 아니다" 비판하는 것도 범주에서 결코 벗어난 것은 아니라고 꼬집으며 인력개발론의 질문을 인간의 관점으로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인의 삶의 역사에 자본주의는 어떠한 영향을 끼쳤으며 어떤 의미를 갖는가", "한국인이 자본주의와 맺는 관계의 특성은 무엇인가."

다음으로 일제시기 경제발전은 한국인들의 생활수준을 향상시켰다는 경제성장론의 주장에 대해 허영란은 '이미지'자체가 생활은 아니라며 "생활이야말로 경험의 토대"임을 강조한다. 그리고 생활수준향상론이 비교불가능한 조선후기와의 종적인 비교와 다른 나라와의 횡적인 비교를 통해 준거를 확보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용하는 통계의 문제점도 지적하며 "생활수준이 가장 악화되고 후대 사람들에게 강렬한 식민지 경험을 각인시켰던 1940년대를 포함하지 않는다는 " 역시 일제시기 생활수준 논의에 대한 신뢰도를 떨어뜨린다고 비판한다. 결국 생활수준향상론은 "'제국주의 시혜론' 맥락과 "치며 "식민권력 식민정책 중심의 관점을 견제하기 위해 '조선인의 자기개발'이라는 것을 하위 요소로 설정"하기도 한다고 비판한다. 한편 이에 대한 비판적 대응은 같은 논의(수탈과 개발)에서 제기되고 있어 좀더 생산적인 논쟁을 위해서는 식민지에 대한 "경험의 방식과 내용이 그만큼 혼성적"이었다는 것을 강조하며 "어떤 경제성장, 어떤 지배, 어떤 차별, 어떤 변화였는가" 현안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총론격인 경제성장론에 대한 비판은 정태헌에 의해 그 역사상의 연원에 대한 비판으로 제기된다. 구체적으로 정태헌은 경제성장론이 근대주의 역사인식이며 식민사학과 친연성을 지니고 있다고 한다. 나아가 경제성장론은 자본주의 만능론(시장만능론)을 주장하면서 식민지를 전혀 인식하지 않고 있으며 특히 자본에 대한 인식이라는 것도 너무나 자의적이라고 한다. 그가 가장 중요하게 비판하는 것은 자본과 국가와의 관계를 자의적으로 선택하고 있다는 점이다. 즉 경제성장론은 식민지상의 '근대문명론'을 주장하며 "국가없는 자본주의"를 강조하고 조선인 자본의 자발적인 성장을 주장한다는 것이다. 좀더 구체적으로 살펴 보면, '근대적 개인'론과 연관된 것인데 이 때 자본의 성장은 개인에 결부되어 있지 국가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정태헌이 지적하는 경제성장론의 더 큰 문제는 식민지기에는 국가와 자본의 관계를 별개 또는 전혀 고려하고 있지 않다가 해방 이후 갑자기 자본의 성장을 국가와 긴밀하게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곧 해방 이후 경제적 발전을 반북론을 근간으로 한 '대한민국 정통론'과 연결시킨다는 점이다. 결론적으로 경제성장론은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일제시기에는 '민족과 국가'를 괄호쳤고 해방 이후에는 ''을 괄호침으로써 한국 근현대사를 왜곡시켰으며 이러한 과정은 "민주화가 제도화되고 경제력이 높아지자 이러한 상황에 '불법편승'한 경제성장론의 근대주의가 반북론에 의지하여 침략을 근대문명으로 각인시키려는 식민사학과 친연성을 갖는 본질"을 드러낸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렇다면 결국 자본의 문제며 근대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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