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마감기한이란 건
확실히 쪼는 맛이 있다.
이를 활용해 얼마 전부터 읽는 전법을 바꿨다.
정리할 책들을 우선 중고책으로 모두 올려놓고
주문이 들어오는 책들 먼저 읽어버리는 식이다.
두꺼운 책이라도 괜찮다 싶으면 기를 쓰고 읽어나가고
아니다 싶으면 반 정도 읽고 금방 덮게 되니 판단도 빨라졌다.
주문이 안 들어오면 읽고싶은 책을 천천히 읽어나간다.
주문은 가끔 들어오는 편이니
쪼였다가 풀렸다가 하는 주기가 마음에 든다.
모두들 읽고 싶은 한 권만 배송료를 내며 주문하는 걸 보면서
기를 쓰고 무료배송 금액을 맞추던 내가
참 이상한 사람이란 걸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버릇이란 건 쉬이 고쳐지지 않기에
알라딘 주문 금액은 늘 3만원, 또는 5만원이 기준 ㅠㅠ
난 호구였던 겁니까?
참, 이거 정말 궁금했던 건데,
혹시 글 읽으시는 소수의 분들 중에
5만원 이상 사면 주는 추첨권 당첨되신 분 계세요?
지금까지 스무 번은 한 것 같은데,
어찌 한 번도 당첨이 안되는지,
알라딘, 너무하는 거 아니니 ㅠㅠ
1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그 후속작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읽고싶어하는 분들 때문에 사놓았던 책이었는데,
역시나 많이들 봐서 표지가 닳아있던 책이기도 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이제 더 읽을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중고로 내놓았더니 금방 팔려서 으응? 놀라웠다.
이제는 전국민적인 조롱의 대상이 되는 책인데
아직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재미있는 건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똥값에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
같은 저자 책이라도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날린 책과 아닌 책은 대접이 다른 걸까
'아프니까'도 그랬지만 '천번을'도 내게는 남는 것이 없는 책이었는데,
'천번을'은 조금 달랐다.
고심해서 후속작을 쓴 건 알겠는데,
왜 내게는 이렇게 와닿는 것이 없는 것이냐, 미련없이 훌훌 읽어나갔는데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이 책이 조금은 마음에 들어버렸다.
100% 리얼한 이야기라며 김난도 교수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놓았는데
그 솔직함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가 교보문고 에세이 코너에서 책 구경을 하고 있는데
대학생 두 명이 <도대체, 사랑>을 보며 킥킥대고 있기에 말을 걸었단다.
그 책 어때요?
제 얘기 같아서 찔렸어요,
그런데 마침 옆에 자기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있기에 용기내어 물었단다.
이 책은 읽어봤어요?
알긴 아는데 안 읽었어요. 김난도씨를 안 좋아해서요.
그 사람 알아요? 왜 안 좋아해요?
예, 저는 깊이 있는 책을 주로 읽거든요.
여기서 빵 터져버렸다. 이런 걸 스스로 고백하는 솔직함이라니,
아아, 내가 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런데 그 학생이 읽는 깊이 있는 책은 어떤 책일까,
결국 김난도는 어색하게 웃다가 이렇게 말하며 자리를 떴다.
다음엔 좀더 깊이 있게 써볼게요
아아, 그러니 이 책은 얼마나 부담이 됐을 것인가.
'깊이에의 강요'란 쥐스킨트 작품도 생각나고,
그래서 어쩐지 그 이야기를 읽고나니 짠해졌던 것이라
책에 대한 평가가 별 한개 정도 올라가버렸다.
그렇다고 깊이라는 게 추구한다고 얻어지는 건 아니라는 잔인한 현실도
책을 보며 통감을.
새로운 시각이 없는 평범한 에세이입니다.
에필로그만 읽을만 해요.
이후 가끔 그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 학생은 김난도 책이 깊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책을 직접 읽지 않았을 때는
다른 이의 판단을 자기 것으로 그대로 받아들인 것 뿐이 아닐까.
읽지 않고 평가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 일일까.
내 의견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다른 이의 의견을 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실은 나 스스로도 그런 짓을 많이 하기에
이런 질문을 던질때마다 움찔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침묵할 것.
다른 이의 의견을 내 것인양 흉내내지 말 것.
똥인지 된장인지 내 입으로 반드시 확인해볼 것.
그런 다짐을 하면 할수록
무언가 쓰고 말하는 게 더 어려워지는 이 딜레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