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라도 주어진 듯한 한적한 한 주다.

더운 날이면 여행이라도 다녀오는 것보다

에어컨 빵빵한 일터에서 가지는 여유가

내겐 더할나위 없는 피서방법이었다.

 

무작위로 책을 읽고 있다.

여행기에서 에세이로, 동화에서 요리책으로

소설도 읽었다가 실용서로 넘어가기도 한다.

대체 무얼 원하는지 알 수 없다는 마음이 들면서도

계속 무언가를 조금씩 읽어나간다.

 

무언가를 얻겠다,

그런 목적이 없는 행위라는 것이 마음에 든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의 나가 달라진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겠지만

오래된 책들을 정리하는 지금의 독서에서는

책을 덮어도 여전히 나는 그대로다.

 

꼭 읽을 필요가 있을까 

혹시 모른다는 마음이 책장을 열게 하고,

이왕 시작했으니 하는 마음이 끝까지 밀고 나가게 만든다.

오랫동안 무뎌져있던 독서 근육을 조금씩 키우고 있다는 느낌이다.

 

자잘한 잔근육들이 늘어나고 있다.

책이란 사물이 하루라는 시간 사이사이 끼어들곤 한다.

이전에는 책을 읽어야해 라는 마음가짐을 가진 후 책을 읽었다면

지금은 빈 시간에 자연스럽게 책이 스며드는 기분이다.

그런 느낌이,

좋다.

 

오히려 인터넷 하는 시간이 많이 줄어들었다.

그나마 가끔 하던 쓰는 시간마저 줄었다.

업데이트가 없고 잘 들르지 않으니

사이버 자아는 점점 희미해져간다.

오래도록 중요한 공간이라고 생각해왔는데

멀어지고보니 사실은 별 것 아닌 곳이었다.

 

목적없는 읽기,

소모하는 시간,

사라지는 이름.

이렇게 지내도 괜찮을까,

소심이가 걱정스럽게 가끔 묻곤 하고,

아무렴 어때,

기쁨이가 밝게 답을 한다.

 

뭐,

아무렴 어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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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17 18: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쁘고 산만한 시간 속에서 책에 집중할 수 있을 때가 제일 좋습니다. ^^

느긋느긋 2015-07-19 16:00   좋아요 0 | URL
늘 알차게 틈틈이 책을 읽고 글을 쓰고 계시는 cyrus 님께는 언제나 감탄이!
 

얼마 전 고모 생일이었고,

열살 터울인 고모는 고등학교 국어선생님.

제작년 고모는 내게 시사인 정기구독을 신청해줬었고,

나는 요리잡지 정기구독을 신청해줬었다.

올해도 해줄까 물었더니

책을 볼때는 의지 100%인데 실천력은 0%라며

다른 책을 선물해달라했다.

아, 문득 떠오른 책은 조정래 대하소설 시리즈

 

 

 

 

 

 

 

 

마침 그 책을 살 때를 놓쳤던 고모는

아주 좋아했고

묵직한 그 세트들을 오랫만에 책꽂이에서 빼내었다.

6년이 지났는데도 아직 새 책이나 다름없다.

어쩐지 서글퍼졌다.

 

태백산맥 1권만 누군가 펴본 흔적이 희미하게 있고,

책등에는 고양이가 이빨로 몇 번 깨문 흔적만이 남아있다.

보내기전에 다시 읽어볼까 했지만 엄두가 나지 않는다.

대학 시절에 읽어본 것이 정말 다행이다 싶었지만

내용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일생에서 대하소설을 읽을 기회는 날이 갈수록 희미해진다.

때문에 대학교때 꼭 읽어야할 권장도서로

그렇게 많이들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오래전 그 책들에 빠져 있던 방학기간이 떠올랐다.

그때 나는 무턱대고 민주노동당에 가입했었고,

때때로 시위에 나갔으며,

엄청난 경험을 가진 어른들과 매일 술을 마시며

내 무지를 깨달았고, 모진 세상에 분개했고,

낮에는 가끔 이 책들에 빠져있곤 했다.

책을 읽을때의 어떤 전율 같은 것이 내 몸 어딘가에는 새겨져 있다.

동시에 이 책에는 그 당시의 기억이 얼룩처럼 번져있다.

 

그 시기는 잠깐이었지만 빠르게 사라져버렸다.

나는 어느 순간 슬그머니 발을 빼고 안전한 지대에 머물렀다.

나와 함께 들어갔던 친구는 여전히 그 자리에서 지금도 활동 중이고,

친구는 아주 가끔씩 연락을 해온다.

나는 많이 변해버렸다.

지금 다시 읽는다면 그 전율은 다시 느껴질까.

그러지 않을것 같아 아마 다시 이 책을 펴들지 않을 것이다.

 

이 책을 읽은 후

전국을 자전거로 여행하던 중

보성군에 위치한 태백산맥 문학관에 들렀던 적이 있다.

비가 오던 날이었고, 문학관에는 사람이 없었다.

손으로 쓴 원고지가 높이 쌓여있던 모습을 경탄하며 오래 바라보다

폐점시간이 다가왔다.

몹시도 가난했던 나는 당시 노숙을 하며 여행을 하고 있었고,

주로 초등학교에 몰래 들어가 조례대에서 자곤 했다.

근처 초등학교의 위치를 묻는 내게

관리하는 분은 뒷편 조그만 방에 묵고 가라며

내게 친절을 베풀어 주었다.

젊고 다정했던 관리인 아저씨에게 나중에 꼭 감사인사를 드리러 와야지

꿈처럼 하룻밤을 편히 묵은 나는 떠나며 그런 다짐을 했었다.

알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친절로 나는 지금까지 살아왔다.

그러나 나는 아직까지 그곳을 다시 가지 못했다.

 

내게 이 전집을 둘러싼 기억은 결국 책 내용보다 이런 것들이다.

6년 동안 펴지지 않은 책은 고모 집으로 갈 것이다.

그 집에서도 아마 이 책들은 오래도록 펴지지 않을 것이다.

세 세트를 함께 담은 박스는 아주 묵직했다.

다시 읽지 못한 이 책의 무게는 내 허세의 무게와 닮아있었다.

그 묵직한 허세의 무게는 오직 택배아저씨가 짊어지겠지

어쩐지 죄송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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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감기한이란 건

확실히 쪼는 맛이 있다.

이를 활용해 얼마 전부터 읽는 전법을 바꿨다.

 

정리할 책들을 우선 중고책으로 모두 올려놓고

주문이 들어오는 책들 먼저 읽어버리는 식이다.

두꺼운 책이라도 괜찮다 싶으면 기를 쓰고 읽어나가고

아니다 싶으면 반 정도 읽고 금방 덮게 되니 판단도 빨라졌다.

주문이 안 들어오면 읽고싶은 책을 천천히 읽어나간다.

 

주문은 가끔 들어오는 편이니

쪼였다가 풀렸다가 하는 주기가 마음에 든다.

 

모두들 읽고 싶은 한 권만 배송료를 내며 주문하는 걸 보면서

기를 쓰고 무료배송 금액을 맞추던 내가

참 이상한 사람이란 걸 깨닫고 있는 요즘이다.

하지만 버릇이란 건 쉬이 고쳐지지 않기에

알라딘 주문 금액은 늘 3만원, 또는 5만원이 기준 ㅠㅠ

난 호구였던 겁니까?

 

참, 이거 정말 궁금했던 건데,

혹시 글 읽으시는 소수의 분들 중에

5만원 이상 사면 주는 추첨권 당첨되신 분 계세요?

지금까지 스무 번은 한 것 같은데,

어찌 한 번도 당첨이 안되는지,

알라딘, 너무하는 거 아니니 ㅠㅠ

 

1

 

 

 

 

 

 

 

 

 

 

 

 

'아프니까 청춘이다'와 그 후속작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읽고싶어하는 분들 때문에 사놓았던 책이었는데,

역시나 많이들 봐서 표지가 닳아있던 책이기도 했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는 이제 더 읽을 사람이 있을까 싶었는데

중고로 내놓았더니 금방 팔려서 으응? 놀라웠다.

이제는 전국민적인 조롱의 대상이 되는 책인데

아직도 보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다.

재미있는 건 '천번을 흔들려야 어른이 된다'는 똥값에 내놔도 팔리지 않는다.

같은 저자 책이라도 베스트셀러로 이름을 날린 책과 아닌 책은 대접이 다른 걸까

 

'아프니까'도 그랬지만 '천번을'도 내게는 남는 것이 없는 책이었는데,

'천번을'은 조금 달랐다.

고심해서 후속작을 쓴 건 알겠는데,

왜 내게는 이렇게 와닿는 것이 없는 것이냐, 미련없이 훌훌 읽어나갔는데

마지막 에필로그에서 이 책이 조금은 마음에 들어버렸다.

100% 리얼한 이야기라며 김난도 교수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써놓았는데

그 솔직함이 너무 마음에 들었던 것이다.

 

그가 교보문고 에세이 코너에서 책 구경을 하고 있는데

대학생 두 명이 <도대체, 사랑>을 보며 킥킥대고 있기에 말을 걸었단다.

그 책 어때요?

제 얘기 같아서 찔렸어요,

그런데 마침 옆에 자기 책 '아프니까 청춘이다'가 있기에 용기내어 물었단다.

이 책은 읽어봤어요?

알긴 아는데 안 읽었어요. 김난도씨를 안 좋아해서요.

그 사람 알아요? 왜 안 좋아해요?

예, 저는 깊이 있는 책을 주로 읽거든요.

 

여기서 빵 터져버렸다. 이런 걸 스스로 고백하는 솔직함이라니,

아아, 내가 다 얼굴이 달아오른다.

그런데 그 학생이 읽는 깊이 있는 책은 어떤 책일까,

 

결국 김난도는 어색하게 웃다가 이렇게 말하며 자리를 떴다.

다음엔 좀더 깊이 있게 써볼게요

 

아아, 그러니 이 책은 얼마나 부담이 됐을 것인가.

'깊이에의 강요'란 쥐스킨트 작품도 생각나고,

그래서 어쩐지 그 이야기를 읽고나니 짠해졌던 것이라

책에 대한 평가가 별 한개 정도 올라가버렸다.

그렇다고 깊이라는 게 추구한다고 얻어지는 건 아니라는 잔인한 현실도

책을 보며 통감을.

새로운 시각이 없는 평범한 에세이입니다.

에필로그만 읽을만 해요.

 

이후 가끔 그 이야기를 떠올린다.

그 학생은 김난도 책이 깊이 없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책을 직접 읽지 않았을 때는

다른 이의 판단을 자기 것으로 그대로 받아들인 것 뿐이 아닐까.

읽지 않고 평가하는 것은 과연 온당한 일일까.

내 의견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다른 이의 의견을 복제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실은 나 스스로도 그런 짓을 많이 하기에

이런 질문을 던질때마다 움찔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읽지 않은 책에 대해서는 침묵할 것.

다른 이의 의견을 내 것인양 흉내내지 말 것.

똥인지 된장인지 내 입으로 반드시 확인해볼 것.

그런 다짐을 하면 할수록

무언가 쓰고 말하는 게 더 어려워지는 이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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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혜윰 2015-07-09 0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딱풀 당첨 됐다가 기한이 있어 다시 구매를 서둘렀다는요ㅠㅠ

느긋느긋 2015-07-12 17:21   좋아요 0 | URL
오오, 딱풀!! 다음에는 저도 딱풀에 한번 도전해봐야겠어요,
그런데 당첨돼도 받을 수 있는 기한이 있나보네요 ㅠㅠ
당첨돼도 뭔가를 또 사야하는겁니까?!! 허걱 ㅎㅎㅎ

그렇게혜윰 2015-07-12 18:33   좋아요 0 | URL
그래서 전 담부턴 물건은 안할려구요ㅠㅠ

cyrus 2015-07-09 18: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라딘 추첨권에 당첨해본 적이 없어요. 그래서 운이 필요한 이벤트를 좋아하지 않아요. ㅎㅎㅎ

느긋느긋 2015-07-12 17:21   좋아요 0 | URL
아아 cyrus 님도 당첨된 적이 없다니, 어쩐지 위안이 되는 건 뭘까요 ㅎㅎㅎ
저도 운이 필요한 이벤트는 어찌 인연이 ㅠㅠ

다락방 2015-07-10 08: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당첨된 적 없어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슬픔 ㅋㅋㅋㅋㅋ

느긋느긋 2015-07-12 17:23   좋아요 0 | URL
아앗, 다락방님 마저 당첨된 적이 없다니,
매일 당첨완료라고 뜨는 건 대체 어떤 분들 당첨인건지,
알라딘 내부소행이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ㅎㅎㅎㅎ
 

 

 

 

커피를 맛있게 내리는 사람은

커피콩을 갈고 뜨거운 물로 커피를 내리는 동안

그 옆을 떠나지 않는다.

좋은 눈빛으로 주시하고 집중한다.

그런 사람이 내리는 커피는 이미 마시기도 전에

맛있다는 생각을 머릿속 가득 채워준다.

 

 

 

이 문장이 내게는 부끄러움이었다.

자신이 냉소적이라는 것에 대해 자주 생각하는 요즘

아마도 내 눈빛은 이런 문장에 가까웠다.

 

검은 눈빛도 있다. 생기를 거부한 듯한,

검은 것만으로도 모자라 좀처럼 상대의 눈과 마주치지 않으려는 눈빛.

쓰임새를 만나지 못해 열의를 드러내지 않는,

자신감도 그 어떤 선명함조차도 담고 있지 않은

죽은 눈빛 앞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지 않아서 얼른 자리를 마치고 싶은 눈빛.

 

좋은 눈빛을 가진 때가 있었지,

노인처럼 그런 말을 중얼거렸다.

언제인지 생각해보니 그저 아마득했다.

그 눈빛을 앗아가버린 건 이 세상이었다 같은 말은 구차한 변명이었다.

눈빛을 사그라들게 만든 건 결국 나 자신,

이런 문장에 의문을 던지는 나쁜 눈빛을 한 냉소적인 자신.

 

음식도 그렇고 일도 그렇고,

좋은 눈빛을 가진 사람은 잘되게 되어 있다.

잘하겠다는 그 마음이 눈빛으로 옮겨가면서 마침내 좋을 수밖에 없는 결과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좋은 눈빛이 좋은 결과를 내는 세상이라면

그저 좋겠다.

내 좋은 눈빛은 어디에 숨어버렸나.

 

최근 읽은 책 중 가장 마음에 든 첫 문단은 이런 것이었다.

 

 

꽤 오래전에 이발소 주인이 내게

"머리카락에 딱히 흥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네"라고 말한 적이 있다.

 

"가위로 손님의 머리카락을 자를 뿐이지.

아침에 가게 문을 열고 밤에 문을 닫을 때까지

쉬지 않고 싹둑싹둑 가위질을 하는 거야.

손님의 머리가 말쑥해지는 걸 보면 물론 기분이야 좋아지지만,

 딱히 머리카락을 만지는 게 좋아서 하는 일은 아니라는 소리네."

그는 그날로부터 닷새 뒤에 노상강도에게 배를 찔려 죽고 말았는데,

물론 그런 말을 할 때만 해도 그는 자신의 죽음을 짐작조차 하지 못했을 터라

목소리는 쾌활하고 생동적이었다.

"그런데 왜 이발소를 하는 거지?" 하고 되묻자, 그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일이니까."

그 대답이야말로 나의 생각과,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나의 철학과 매우 일치한다.

 

나는 왜 이 일을 오래도록 하고 있는가.

요즘 이 질문을 자주 던진다.

"일이니까"

이발소 주인의 그 대답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하고 싶었던 일'도 하다보면 어느 순간 '그저 일'이 되어버린다.

그저 일이니까 라고 대답하는 게 좋은 것인가 나쁜 것인가 생각해보지만

아직도 잘 모르겠다, 라는 것이 솔직한 답이다.

 

그나저나 알라딘 서재는 왜 이렇게 글쓰기가 불편한 것인지,

몇 번 더 쓰다보면 적응이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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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7-06 14: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북플로 글을 써본 적이 없어요. 서재로 접속해서 글을 길게 쓰는 것이 적응되어서 북플은 댓글을 달 때만 접속합니다.

느긋느긋 2015-07-06 15:51   좋아요 0 | URL
pc로 쓰는 건데도 왜이리 어려울까요 ㅠㅠ
아직 2G폰을 쓰는 낡은 이다보니 아이패드만 쓰는데
북플은 아이패드에서 화면도 제대로 안 떠 지워버리고 말았어요 ㅠㅠ
cyrus님은 어찌 그리 잘 정돈되고 깔끔한 글을 서재에서 잘 써내시는지
아아, 그저 대단하시다는 말밖에 안 나옵니다!
 

실제와는 먼 익명의 존재로 떠들 곳이 필요했다.

이 서재가 그런 곳이었다.

 

좋은 책에 대해서는 어디서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쁜 책에 대해서는 부담감을 느낀다.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익명의 존재가 필요했던 셈이다.

가장의 이름 뒤로 숨겠다는 비겁함.

 

불쾌한 책에 대해서는 쓰는 시간마저 아깝기 마련이다.

어중간한 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그럴 시간에 좋은 책에 대해서 좀더 고심해 좋은 말을 쓰는 게 훨씬 낫다,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최근 들어 생각이 좀 바뀌었는데,

책을 살때 알라디너들의 평에 많이 기댄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고르는 자신만의 기준도 있지만

그 관문을 통과하고 나서는

알라디너들의 100자평과 페이퍼들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동안 많은 책들을 사면서 얻게된 기준이라면

 

- 비슷한 시기에 올라온 여러개의 리뷰들은

출판사의 협찬으로 그 마감기간에

겹쳐진 것들일 가능성이 많으므로 제외한다.

 

- 구매 표시가 있는 알라디너들의 평은 더 믿음이 간다.

 

- 추종하는 스타알라디너들의 좋은 평이 있으면 그냥 사는 수 밖에 없다.

입성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알라디너라 아직 많이 알지는 못해

현재 가장 신뢰하는 스타 알라디너는 다락방님과 하이드님.

좋아하는 분야가 비슷해서 그런가 어딜 가나 두 분의 평은 자주 마주친다. 

어찌 그 많은 책들을 읽고 평을 남기시는지는 늘 감탄인 동시에 앞으로도 미스테리.

또다른 신뢰하는 분들이 있으시면 새내기 알라디너에게 추천 부탁드려요~

 

 - 좋은 평보다 한두개 있는 낮은 평점의 평을 더 유심히 읽는다

수긍할만한 평이라면 과감히 그 책은 제외된다.

 

그러다보니 여차하면 살뻔한 이상한 책들을 거르는데

많은 도움을 그동안 받아왔다.

 

언론 인터뷰에 많이 등장하시는 로쟈님이

서평가의 역할에 대해 하는 말씀 중 아직도 내게 남아있는 것이

희생에 대한 것이었다.

읽지 말아야 할 책들까지도 먼저 읽고,

이 책은 절대 읽지마!! 외치는 순교자적 역할이랄까.

 

물론 출판사에게는 장사를 방해하는, 정말이지 미운 존재일테지만

독자들에게는 여전히 책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정말로 소중한 존재가 아닐수 없다.

신경숙 논란만 들여다봐도

가치보다 수익을 우선시하는 출판사가 크게 된다는 슬픈 사실을 직면할 수 있을 정도니,

희생하는 서평가만 있어도 봉이 되는 건 그나마 피할 수 있지 않으려나.

 

그런 희생하는 이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오고 있으니

나도 운이 없게 그런 책을 접하면 적어도 읽지 마세요 라는 말 정도는 해야하지 않나,

요즘 들어 이상한 책들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

그런 마음가짐마저 가지게 되었다.

 

얼마전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를 읽을 때

정말이지 심하게 분노했고, 종종 책을 집어던지기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다 읽었지만

그 시간을 돌려달라고 누군가에게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욱 놀란 건 개정판 책정보에 들어갔을때

별 4~5개 평들만 있다는 점이었다.

경악했다. 그때 비로소 결심을 했던 것 같다.

별 한 개 주는 일도 해보자.

 

실제로 별 한 개를 매길 때는

어쩐지 출판사와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걸 보고 

로쟈님이 얼마나 어려운 길을 오래도록 걷고 있었는지

새삼 감탄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익명의 존재 뒤로 숨기 위해 싹 엎고 새롭게 시작을.

비겁하지만 그게 나의 한계로구나.

이곳에서만은 철저히 익명으로 남아

타당한 독설도 마음껏 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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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07-10 0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별을 한 개 준 적이 있었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별 두 개 준 적은 더러 있었어요. ㅎㅎㅎ
이를테면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 같은 것들.....

느긋느긋 2015-07-12 17:25   좋아요 0 | URL
푸핫, 야해서 난리라는 말에 사놓고는 아직 안 보고 있었는데
다락방님의 별 두 개라니 얼른 팔아버려야겠어요 ^^;;;
늘 좋은 길잡이가 되어주셔서 그저 감사드립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