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와는 먼 익명의 존재로 떠들 곳이 필요했다.
이 서재가 그런 곳이었다.
좋은 책에 대해서는 어디서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쁜 책에 대해서는 부담감을 느낀다.
거침없이 말할 수 있는 익명의 존재가 필요했던 셈이다.
가장의 이름 뒤로 숨겠다는 비겁함.
불쾌한 책에 대해서는 쓰는 시간마저 아깝기 마련이다.
어중간한 책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그럴 시간에 좋은 책에 대해서 좀더 고심해 좋은 말을 쓰는 게 훨씬 낫다,
그렇게 오랫동안 생각해왔다.
최근 들어 생각이 좀 바뀌었는데,
책을 살때 알라디너들의 평에 많이 기댄다는 사실을 알아챈 것이다.
고르는 자신만의 기준도 있지만
그 관문을 통과하고 나서는
알라디너들의 100자평과 페이퍼들을 유심히 살펴본다.
그동안 많은 책들을 사면서 얻게된 기준이라면
- 비슷한 시기에 올라온 여러개의 리뷰들은
출판사의 협찬으로 그 마감기간에
겹쳐진 것들일 가능성이 많으므로 제외한다.
- 구매 표시가 있는 알라디너들의 평은 더 믿음이 간다.
- 추종하는 스타알라디너들의 좋은 평이 있으면 그냥 사는 수 밖에 없다.
입성한지 얼마 되지 않은 새내기 알라디너라 아직 많이 알지는 못해
현재 가장 신뢰하는 스타 알라디너는 다락방님과 하이드님.
좋아하는 분야가 비슷해서 그런가 어딜 가나 두 분의 평은 자주 마주친다.
어찌 그 많은 책들을 읽고 평을 남기시는지는 늘 감탄인 동시에 앞으로도 미스테리.
또다른 신뢰하는 분들이 있으시면 새내기 알라디너에게 추천 부탁드려요~
- 좋은 평보다 한두개 있는 낮은 평점의 평을 더 유심히 읽는다
수긍할만한 평이라면 과감히 그 책은 제외된다.
그러다보니 여차하면 살뻔한 이상한 책들을 거르는데
많은 도움을 그동안 받아왔다.
언론 인터뷰에 많이 등장하시는 로쟈님이
서평가의 역할에 대해 하는 말씀 중 아직도 내게 남아있는 것이
희생에 대한 것이었다.
읽지 말아야 할 책들까지도 먼저 읽고,
이 책은 절대 읽지마!! 외치는 순교자적 역할이랄까.
물론 출판사에게는 장사를 방해하는, 정말이지 미운 존재일테지만
독자들에게는 여전히 책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정말로 소중한 존재가 아닐수 없다.
신경숙 논란만 들여다봐도
가치보다 수익을 우선시하는 출판사가 크게 된다는 슬픈 사실을 직면할 수 있을 정도니,
희생하는 서평가만 있어도 봉이 되는 건 그나마 피할 수 있지 않으려나.
그런 희생하는 이들의 도움을 많이 받아오고 있으니
나도 운이 없게 그런 책을 접하면 적어도 읽지 마세요 라는 말 정도는 해야하지 않나,
요즘 들어 이상한 책들을 많이 읽어서 그런가
그런 마음가짐마저 가지게 되었다.
얼마전 <노란 화살표 방향으로 걸었다> 를 읽을 때
정말이지 심하게 분노했고, 종종 책을 집어던지기까지 했었다.
그럼에도 끝까지 다 읽었지만
그 시간을 돌려달라고 누군가에게 따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욱 놀란 건 개정판 책정보에 들어갔을때
별 4~5개 평들만 있다는 점이었다.
경악했다. 그때 비로소 결심을 했던 것 같다.
별 한 개 주는 일도 해보자.
실제로 별 한 개를 매길 때는
어쩐지 출판사와 작가에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걸 보고
로쟈님이 얼마나 어려운 길을 오래도록 걷고 있었는지
새삼 감탄하기도 했다.
그리하여 익명의 존재 뒤로 숨기 위해 싹 엎고 새롭게 시작을.
비겁하지만 그게 나의 한계로구나.
이곳에서만은 철저히 익명으로 남아
타당한 독설도 마음껏 하는 존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