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버튼 전시회는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아이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니고 있었고,

그 뒤를 부모들은 진지한 얼굴로 따르고 있었다.

 

팀 버튼의 어릴 적 작품들은 기괴했다.

다듬어지지 않아 거칠게 뿜어져나온 그림들은

한계에 부딪혀보려고 하는 듯

이러저리 자유롭게 튀어다니고 있었다.

 

어릴때 저런 기괴하고 끔찍하고 잔인한 상상은

한번쯤은 해보지 않을까.

다만 그것을 표현해낼 수 있는 용기와

그것을 허용해주는 환경이 잘 어울러져

지금의 팀 버튼이 탄생했다.

 

이제 부모의 나이가 되어서 그런지

나는 그 환경이란 것을 오래도록 생각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이런 그림들을 엄숙한 얼굴로 보여주는 저 부모들은

자신의 아이들이 정작 이런 그림을 그리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

(혹시 언젠가 생길지도 모를) 내 아이가 이런 그림을 그리고 와 자랑스럽게 내밀면

나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

 

눈에 핀이 꽂힌 아이나

굴소년을 낳은 부모가 자신들의 잠자리를 위해 아들 굴을 잡아먹는 이야기,

죽기만을 바라는 우울한 멜론 소년 같은.

 

아아, 잘 그렸네, 우리 아이 잘했어,

아이 앞에서는 이런 말을 해줄지 모르지만,

아이 뒤에서 오랫동안 아내와 고민하며 때로는 다투기도 할 것이다.

이 아이를 정신과에 보내야 하는게 아닐까,

우리 양육에 문제가 있는건 아닐까.

 

잔혹동시 논란에서도

그 동시집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있는그대로 그려버린 일러스트에 있지

아이의 표현은 정직해서 '좋았다'고 생각했지만,

논란은 아이의 표현을 잡아먹는 결과로 나아갔다.

그 아이는 이제 다시는 그런 표현을 쓰지 못하겠지.

 

오랫만에 다시 이 책을 다시 읽는데도

여전히 아리송하다.

이런 작품을 만드는 아이를

나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이래야한다'는 기준에서 벗어나는 걸

나는 과연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일까.

그것은 오로지 닥쳐봐야지만 알 수 있는 일일 것이다.

 

아쉬운 것은

잘 길들여진 나는 이런 상상력을 잃어버렸다는 점,

쓸쓸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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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나가 후미 작품들에서는

시큰둥하거나 건조한 표정들이 많은데다

늘 어떤 시큰한 울림이 있다.

어디서 이런 게 오는걸까

먹먹해하며 생각해봤지만

그저 신기할 따름이다.

 

어쩌면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의 넓이 때문일지도.

후미의 작품에서는 늘 당혹스런 설정들이 나온다.

엄마가 갑자기 딸보다 어린 남자와 재혼을 하지 않나,

가학적인 관계만을 반복하는 여학생이라든지,

동성애도 즐겨 다루는 관계.

 

 그 관계들은 아주 낯설어 당혹스럽게 하거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불쾌감마저 들게 하는데,

그럼에도 계속 읽어나가다 보면

그 관계들을 이해하게 되는 시점이 온다.

두 사람의 상황이 그런 것일뿐,

결국은 사랑받고 싶고, 복잡한 세상에 휘둘리며 사는

똑같은 사람살이란 걸 확인하게 되는 순간이 있는 것이다.

그때 아무리 내가 납득하지 모하고 불쾌하는 관계일지라도

그럴수도 있겠구나 라고 받아들이는 순간의 기분이란

실로 묘하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이야기는 사야코.

착하고 주변 사람들이 기댈 수 있고, 성실한 사야코라는 아가씨는

아픈 할아버지를 간호하느라 혼기를 놓쳤지 뭐람.

결국 할머니 주선으로 선을 보기 시작하는데,

남자들은 꼭 한 부분씩 자신과 맞지 않는 부분이 있고, 

더군다가 갈수록 이상한 남자들만 선자리에 나타나.

 

그러다 다리가 불편한데다 어머님 성격도 이상한 남자를 만나는데,

배려할 줄 아는 그 남자가 제일 마음에 들지 뭐니.

어쩜 그런 남자를 선자리에 데려오는거냐며 화를 내는 할머니에게

사야코는 이렇게 말해.

'아주 마음이 아름다운 사람이었어요.'

 

사야코는 그를 몇 번이나 더 만나. 그럴때마다 빠져드는 걸 느끼지.

그렇게 이어지는듯 했지만

결국 사야코는 자신이 사랑을 할 수 없는 사람이란 걸 깨닫지.

그녀가 간호했다던 할아버지 있지?

그 할아버지가 심지굳은 마르크스주의자로 평생 살아오신 신망받던 분이셨는데,

어릴때부터 사에코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대.

"사에코

절대로 사람을 차별해선 안 된다다.

어떠한 이유가 있다 해도

사람을 차별해선 안 돼.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대해주렴."

 

사에코는 그 말을 마음깊이 새겼었나봐.

너무 착하다는 이야기를 들을 정도로 그 말을 지켜오며 살아온거지.

그런데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느낀 순간 깨달아 버린거야.

이건 자신이 지금까지 지켜온 원칙과 위배된다는걸.

한 사람을 사랑한다는 건

사람을 차별하는 일이었던거야.

사랑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다니 놀랍지 않아?

 

그 이야기에서 또하나 쓸쓸하게 남았던 건 할아버지의 말이었어.

평생 마르크스주의자로 살았다고 아까 말했지?

그런데 베를린 장벽을 무너지는 걸 TV로 보던 할아버지는 이렇게 말씀하셨대.

"사야코,

내가 50년간 올바른 거라 믿고 있던 생각은 잘못된 건지도 모르겠구나"

담담하게 말했지만 그렇게 말하던 할아버지의 내면은 어떠했을지 짐작이 가니?

그런데 말야,

사에코는 할아버지처럼 신념을 무너뜨릴수는 없었던걸까?

 

결국 사에코는 그 남자와 이별을 택해.

그리고는 자신의 길을 선택하는데 그 결정이 굉장히 놀라워.

그건 혹시나 이 책을 읽을지 모르니 비밀로 남겨둬야겠구나.

하지만 그야말로 자신의 신념을 잘 이어갈수 있는 자신만의 길이었어.

남자와의 이별은 안타깝지만 박수를 쳐줄수밖에 없더라니까.

 

책을 덮엎는데

사야코라는 그녀는 아직 남아있는 느낌이야.

이상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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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 12

호빗을 읽다.

아직 어린 사촌동생들에게 줄 책들을 뽑아내면서

그런 책들을 읽는 요즈음.

 

호빗은 국민학교 시절 읽었던 책이었다.

그런 책을 초등학교 다니는 사촌동생에게 선물하려 한다.

오래도록 읽히는 책에는 이런 사람들의 추억도 켜켜이 쌓여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금 그 녀석들은 책을 읽으면서 영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겠지.

읽기나 할까 의심스럽기도 하지만 그건 그녀석들의 선택일 것이다.

 

당시 난 성당을 열심히 나가던 소년이었고,

성바오로출판사에서 운영하는 서점을 자주 갔었다.

어쩐 일인지 성바오로출판사에서는 판타지소설을 많이 번역해놓았었는데,

그곳에서 나는 호빗과 나니아연대기 등등의 책들을 읽을 수 있었고, 

특히 나니아연대기는 몇 번이고 다시 읽을 정도로 좋아했었다.

 

호빗이라는 책의 질감을 아직도 기억한다.

종이는 얇고 부드러웠으며, 펼칠때마다 기분좋은 내음이 스며들었다.

다만 책 안의 삽화에 그려진 호빗은 끔찍하게 못생겨서

아마 이 이야기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던 큰 이유가 그 삽화 때문이었을 거라고

다시 읽으면서 생각했다.

삽화 없이 이번에 다시 읽을때는 무척이나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톨킨이 이야기를 펼쳐나갈때 강약중간약 리듬을 만들어내는 게 느껴져서

아아, 이 양반은 정말 이야기꾼이로구나,

무척이나 이야기라는 걸 듣고 말해주기를 좋아하던 양반이었을 것이라는 느낌이었다.

더군다나 유명한 언어학자답게

언어를 조물조물 가지고 노는 걸 굉장히 즐거워한다는 인상이었다.

수수께끼도 자주 나오고 많은 종족들이 틈만 나면

시를 만들어 노래하는 걸 즐긴다.

룬 언어까지 스스로 창조해낼 정도였다니

이 양반 1세대 오타쿠가 아니었을까.

 

가장 전율이 오던 지점은

골룸이 등장했을 때였다.

자신과 대화하는 이중적인 자아를 만든다는 상상은 어떻게 한거지.

축축하고 서늘하고 섬뜩한 동시에

빌보와 수수께끼로 대결한다는 건 또 흥미로운 지점.

 

읽는 동안 톨킨이 이 세계를 만들어내는 동안 얼마나 즐거웠는지가 전해져서

또다른 의미로 재미가 가득했던 책이었다.

아마 네 번째 읽는 책일텐데 다 커서 읽으니 색다른 재미가.

사촌동생들도 이런 재미를 느끼면 좋으련만 으흥.

 

좋았던 문장은 이런 것이었다.

참 이상하지만,

갖고 싶던 좋은 것들과 지내기에 쾌적하고 좋은 날들은 얘기할 것도 들을 것도 별로 없어서,

금방 이야기를 다 해 버리게 된다.

반면, 불안하고 가슴 두근거리고 심지어 무시무시한 것들은

좋은 이야깃거리가 되어 어떻게든 길게 얘기하게 된다.

 

최근 너무 익숙한 것들에 둘러쌓여있단 생각을 종종 한다.

그것들이 내게 더 이상 느낌을 주지 않는단 사실이 슬플 때도 있지만

무서운 점은 스스로 그 안락함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한다는 점이다.

점점 겁쟁이가 되어간다.

내 세계는 점점 더 좁아지고 감각은 퇴화하고 있다.

불평만 늘어가는 투덜이.

늘 투덜투덜거리면서 바꾸려고 하지는 않는다.

떠나는 걸 싫어하고 늘 그자리에 머물기를 좋아하는 호빗족처럼.

 

어릴 때 호빗에서 가장 이상했던 부분은

모든 모험을 끝내고 힘겹게 빌보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였다.

때마침 집에서는 빌보가 죽었다고 여기고

그의 모든 물건들을 파는 경매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 있던 친척들은 빌보의 귀환에 기뻐하는 게 아니라

싸게 산 물건들을 돌려줘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탐탁찮아하던 점이었다.

더군다나 다른 세계에서는 전해지는 이야기로 남게 된 빌보가

오히려 자신의 마을에서는 이상한 사람으로 여겨져

사람들이 기피하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이제는 이해가 간다.

톨킨의 그 날카로움에 감탄하게 됐다.

좁은 세계에 갇혀사는 사람은

넓은 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빌보 친척들의 위치에 서게된 것은 아닐까

책을 덮고 그런 걸 자꾸 묻고 있다.

내 좁아터진 세계와 냉소적인 시선을 생각하며.

 

+

 

책을 읽는 일에 이유를 붙이기 시작하고,

평가하려 하기 시작했을때

어쩐지 독서가 재미없어지기 시작했다.

 

책에 대한 정보를 잘 정돈하고

어떤 것들이 좋고나빴는지를 쓰는 일은

아무래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잘 하고 있다.

그런 것들을 따라가기에는 나는 너무 뒤쳐져있어서

몇 번 해보고는 금방 내려놓는지도 모르겠다.

 

독후감이라면 나는 내게 일어난 '감'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그것은 아주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일지도 모르지만

그것이야말로 내겐 더할나위없이 가치 있다는 생각을 한다.

그런 것들을 정돈해보고자 이런 서재도 시작할 것인데

다른 사람들의 서재를 읽다보면 그런 것들을 쉬이 잊곤 한다.

 

사적인 공간에서 나만을 위한 글쓰기를.

그것은 온전한 내 소박한 바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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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5-09-12 22: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을 읽고 나서 생각나는 것, 쓰고 싶은 것, 그대로 쓴다는 일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에요. 기록을 하지 않으면 책에 대한 기억이 잊어버려요.

느긋느긋 2015-09-18 18:47   좋아요 0 | URL
정말 읽고있을때는 많은 생각이 들다가도 덮고 하루만 지나도 다 사라져버리더라구요 ㅠㅠ
써야지 마음을 먹어도 게을러서 그런지 쉽지 않은 일이던데,
cyrus님 글들은 읽을때마다 들이는 시간과 노고가 보여 늘 감탄하곤 합니다!!
 
바티스타 수술 팀의 영광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1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07년 1월
평점 :
품절


잘쓴 대화의 좋은 예. 핑퐁처럼 리듬 있게 주고받는 대화가 특히 흥미진진하다. 의학이란 낯선 분야에도 확 빠져들게하고, 많은 인물들이 나오는데도 개성을 잘 부여해 입체감이 뚜렷하다. 이 인물들의 또다른 이야기를 읽고싶다란 맘이 들게하는 매력적인 이야기. 소장가치 있음 하지만 절판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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붕대 클럽
텐도 아라타 지음, 전새롬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아픈 기억이 있는 장소에 붕대를 감는다, 이거 괜찮은데 - 막상 써보니 이야기로서는 약하군 좀더 고민해볼것 - 오랜 슬럼프 - 써놓은 거라도 내볼까 - 방송에 소개되더니 베스트셀러 - 작가도 내심 으응? 하지 않았을까, 쓰다만 듯한 아쉬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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