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책을 읽고 있고,
그만큼 많은 책들이 잊혀져가는 날들.
짧게라도 기록해둬야지
매번 생각하면서도
이내 귀찮아져서 다른 책을 집어든다.
그런 날들이 오래되다보니
짧게라도 쓰겠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누구를 위한 걸까, 그런 질문을 마주하곤 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런 모든 건
결국,
아무런 의미가 없다,라는 말로 이어져
편해지기도, 슬퍼지기도.
삶은 고통이다,
이 명제를 받아들이는 때가 오고 나면
평온한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라는 걸 깨닫고 만다.
주인공인 츠치다가 마지막 하는 나레이션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우리들의 이 흔해빠진 일상은 실은 아주 망가지기 쉬워서
끝내 잃어버리지 않는 건 기적이다.
우리의 생활은 매일이 일상
세이가 웃고 있다는 것,
내가 웃고 있다는 것.'
일상에서 시작된 만화는 많은 일을 거친 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 끝을 맺는다.
츠치다가 생활비를 더 벌기 위해
레오타드 펍(그건 어떤걸까??)을 부업으로 뛰다가 몸까지 팔았다가
들통이 나서 그만뒀다가 예전 무척 사랑했던 남자와 바람도 피웠다가
써보니 참으로 지독한 일들이었구나 싶은데
키리코 나나난이란 작가는 무척이나 평화롭고 잔잔하게
그런 모습들을 그려놓은 것이 인상적.
읽고 있으면 잔잔한데도 어떤 감정이 차올랐다가
서서히 가라앉는다.
누군가와 함께 산다는 건 정말이지 어려운 일이다.
서로 함께 웃는 일상이야말로 의외로 흔치 않은 일이란 걸 깨닫는 요즘.
끝내 잃어버리지 않는 건 정말,
기적일 것이다.
그걸 깨닫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기적을 이룰 수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책을 덮으며 잠깐 했더랬지.
다니구치 지로 작품을 모두 모았다가
하나씩 팔고 있는데,
다시 읽어보면 팔기 싫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최흡 만화전문가의 추천글에서
정작 일본에서는 다니구치 지로가
높은 인지도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하던데
의외라는 생각이.
지로의 만화는 나이가 들어갈수록
다시 읽으면 더 좋은 만화란 생각이 든다.
중년부터 노년의 주인공들이 많고,
나이가 들어서도 여전히 삶이란 건 괴롭히기 일쑤다.
어떻게 살아야하는지 그런 고민은 여전하지만
좀더 현명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되는 것이
나이의 축복이란 걸
지로의 만화를 읽으면서 다시금 생각하곤 한다.
청소하기 힘들다는 이웃들의 불평에도 오래된 나무를 지킬 줄 알며,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끝까지 자기 힘으로 서려고 하며,
늙어서도 설레는 연애를 멈추지 않는
그런 고집불통 노인네로 늙을 수 있길.
무슨 우연인지 이와오카 히사에 작품을 연달아 세 권 읽게 됐다.
토성맨션은 뮤지션이자 작가인 오지은 번역이라 해서 집어들었고,
고양이동네는 주문이 들어와서 다시 읽다보니 그림체가 익숙하네, 확인해보니 같은 작가.
아아, 이 작가 그림체는 동글동글 너무 귀여우면서도
이야기도 잘 만드는데다
종종 빵빵 터지게도 훌쩍거리게도 만들어서 너무나도 애정하는 작가가 되어 버렸다.
고양이동네도 너무 애정하던 만화책이었는데 다시 봐도, 아아 ㅠㅠ
아마도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이라면 고양이를 키우기 시작했던 시점부터
지금까지를 돌아보며 아아, 그랬었지 하며 흐뭇한 웃음을 가득 머금고
따뜻함이란 걸 마음껏 품을 수 있게 만든다.
팔기 싫어, 팔기 싫어, 다시 사야할려나.
히사에 작가는 전작을 달려보겠다고 일단 위시리스트에 써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