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평전 - 세계적인 석학 자크 아탈리의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예담 / 200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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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우선, 나는 이 책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막연한 두려움이 아니라, 이미 마르크스의 사상이라는 책을 읽어본 터라 한번 겪어본 감정을

또다시 겪진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 두려움을 안고서 이 책을 대했지만

읽는 동안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후반부로 갈수록 이 책에 대한 신뢰감이 생겼다.

이전에 읽었던 책들에서는 마르크스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움찔하며 마르크스가 비판하고

있는 이론이나 상황들에 나 자신을 대입해 보면서 괜히 상처 받았던 반면, 이 책을 읽으면서는

그런 것은 느낄 수 없었다. 그만큼 주장, 어떤 것이 옳다는 주장보다는 마르크스라는 한 개인의

삶과 그가 주장 했던 이론들을 담담히 서술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나는 지난 번과 같은

심적 타격을 입은 것이 아니라, 마르크스에 대해서, 그의 사상에 대해서 이해가 좀 더

깊어졌음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자크 아탈리의 견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책은 총 7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6장까지는 사실에 대한 추적과 설명을 주로 하고 있다.

마르크스의 집안배경부터 시작해서 마르크스의 출생에서 죽음까지, 그의 개인적인 생활과

정치적인 행동들, 저술활동, 그의 친구, 그의 적, 그를 둘러싼 음모, 등등을 다루고 있다.

물론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마르크스의 사상과 그 사상의 뿌리, 그리고 마르크스가 그 속에서

어떻게 생각을 키워가고 발전시켜나갔는지이다.

 

그리고 7장에서는 마르크스 사후 그의 원고들의 행방과 그의 가족, 그와 관련된 사람들의

행보에 대한 이야기와 이후 마르크스를 변질 시켰던 사람과 그들의 거짓말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 그를 변질시킨 거짓말쟁이들에 대해

자크 아탈리의 견해가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부분을 불편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지만, 세계적인 석학이라는 자크 아탈리는

이 마르크스라는 사람의 생에를 추적하고 그의 이론들을 해독하며 그의 평전을 내 놓으면서

결국엔 마르크스에 대해 인간적으로 어떻게 느끼고 있으며 마르크스의 이론에 대한

자크 아탈리의 견해는 어떠한지 알아 볼 수 있다는 것도 나쁘진 않다.

 

 

이 책을 읽는 내내 마르크스와 비교되는 인물이 있었는데 그는 바로, 반 고흐이다. 

반 고흐와 마르크스의 인생 배경과 그들을 지원해준 조력자, 그리고 당사자들의 인생과

지원자들에 대한 태도가 너무 닮아 있다고 할까.

반 고흐에게는 동생 테오라는 조력자가 있어 그의 재정과 예술활동 지원했으며

마르크스에겐 엥겔스라는 친구가 있어 그의 재정과 정치, 저술 활동을 지원했다.

그리고 마르크스에겐 평생의 동반자 아내 예니와 그의 아이들이 있었지만 어쩌면 이로 인해

마르크스가 더욱 비난받고 마르크스 사상이 더욱 변질되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여러 과학자들. 다이너마이트를 만든 노벨, 원자폭탄의 이론을 제공해 준 아인슈타인등의

과학자들.이들은 학자로써의 연구를 했을 뿐이고 나쁘게 이용하려고 만든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 그들의 결과물들은 다른 이의 손에 의해 인류 역사에 나쁜 방향으로 사용되었던 것이다.

마르크스 또한, 최선의 인류를 꿈꾸었지만 그의 사후, 세계역사는 그의 기대가 아닌,

그의 우려대로 펼쳐졌다.

 

 

마르크스 평전을 읽으면서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내가 그의 이론들을

어떻게 받아들였느냐 하는 것.

이 책을 읽음으로써 단순히 지적호기심을 충족시킨 것에 만족할 수도 있겠지만 좀 더 나아가

마르크스, 그의 생각을 쫓아 나 또한 생각을 해 보자면, 우선,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 시대는 

일본의  정치학자 프랜시스 후쿠야마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가 쟈유주의나 민주주의 앞에

굴복한 오늘날이야말로 ‘역사의 종언’ 때이다” 라고 말했듯이 인류 역사의 마지막 시스템으로서의

자본주의가 아닌, 공산주의로 가는 과정으로서의 자본주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이다.

 

현재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자본주의의 온갖 부조리가 드러나고 있으며 자본주의로 인해

양극화가 심화되어 계층간의 갈등 또한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이 속에서 세계화는 현재진행형이다.

유럽이 통합되어 가고 각 지역이 통합되어 가고 진정한 의미의 세계화가 온다면 그리고 그 속에서

자본주의의 온갖 부조리로 인해 혁명이라도 일어나게 된다면 그 결과물이 마르크스가 말했던

모든 것과 일치 하진 않더라도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는 가능하리라는 생각이다.

자본주의 이후의 사회가 마르크스가 말했던 것과 꼭 들어맞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현재의

시대가 그 과정이라는 것에는 동의한다는 것이다. 그러하기에 아직까지도 정치경제학, 사회과학,

철학등에서 마르크스의 이론들이 유효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이런 생각의 밑바탕에는 인간을 모든 것의 중심에 놓아야 하며 인간은

기대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깔려 있는 것이다.

 

 

 

 

 

 

오자 신고.

p124 바싼 --> 비싼

p279 1952년 --> 1852년

p644 마르크스과 예니가 --> 마르크스와 예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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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합본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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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권을 읽었다. 우리 도서관엔 합본으로 나온 건 없고 5권짜리로 나온 게 있던데

빌려 읽기엔 5권 짜리가 낫지 싶다. 합본으로도 나왔겠다, 5권 다 읽고 한꺼번에 쓰려고 했는데

막상 읽어보니 그냥 그때그때 읽고 쓰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권에선 무슨 레스토랑으로 간다고 하니 말이다. 각 권마다 포커스가 다른 것 같아서.

이 책은 큰 스토리 속에 사소한 풍자들이 반짝이는 책이다.

첫 무대는 아서라는 사람의 집 앞인데 의회에서 일방적으로 결정해 버린 우회도로 건설을 위해

아서의 집이 철거당할 예정이다. 물론, 아서로서는 황당할 노릇. 불도저 앞에 드러누워 버린다.

그리고 곧 포드라는 은하계 히치하이커가 나타나는데 이 포드가 아서를 구출하게 된다.

어디로부터? 은하계 우회정거장 건설을 위해 일방적으로 철거 당한 지구로부터.

그렇게 갑작스레 지구를 철거해 버린 자들의 비행접시를 얻어 타게 되고..어쩌고 저쩌고..하는

이야기들. 큰 틀은 그리 중요한 게 아니야,,이 책은 소소한 재미가 있어서 좋다.

도서관에서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초등학생이 이 책을 참 재밌게 읽더라고 했다.

궁금했다. 아이의 호기심과 상상력으로 본 이 책은 과연 어땠을까.

아는가, 모든 문명은 인간의 상상력으로부터 시작된다. 이미 어떠한 발견 내지는 발명에 대한

예언이 있었고 그 예언은 대개 문학작품 속에 나타난다. 그렇게 생각하니 이 책의 어느 한 부분

쯤은 몇십년, 몇백년, 몇천년 후에는 그 시대 살게된 존재들의 일상이 될 수도 있겠다 싶었다.

내가 이런 자잘한 상상을 했다면 아이들은 오죽 하겠느냔 말이지. 이 책에서 풍자, 냉소의 코드를

읽고 즐거워 하는 사람도 있겠고, 혼자만의 상상의 나래를 펴며 즐거워 하는 사람도 있겠다.

어느 쪽이 됐든 간에 일단은 재밌단 말이지!

 

 

 

 

2권을 읽었다. 나눠서 리뷰를 쓰려고 했던 나를 반성했다.

나눠서 쓸 수 있는 책이 아니다.

3권까지 읽었다가 여러가지 바쁜 일로 인해 좀 제쳐뒀다가 4,5권을 마저 읽었다.

히치하이커를 읽는 동안에 오만가지 망상들에 시달리기도 하고 유쾌하기도 했는데

이 책 읽기를 중단하고 나서 다시 팍팍한 생활을 하다 보니 그 오만가지 생각들이

딱 멈춰버렸다. 역시, 히치하이커라는 책은 사람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많이 자극해 주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말이지...

 

그래서, 대체 결말이 어떻게 된 거야??

마지막에 성냥갑이 어쩌고 했는데 그게 뭔지 이해를 못했단 말이야.

5권까지의 대장정을 마쳤는데 대체 결말이 뭐냔 말이다!!

아, 이건 정말이지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 답단 말이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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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라니아 이야기
호아킴 데 포사다 지음, 안진환 옮김 / 시공사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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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아킴 데 포사다의 자기계발서 1탄인 마시멜로 이야기를 읽으면서 난 오히려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가 생각났다. 비교적인 차원에서 폰더씨 이야기가 훨씬 낫다는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이번 호아킴 데 포사다의 자기계발서 2탄인 피라니아 이야기를 읽으면서는

폰더씨 이야기가 피라니아 이야기 보다 조금 더 낫다는 생각을 했다.

폰더씨의 위대한 하루를 읽어보지 못한 사람이라면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다. 폰더씨 이야기 쪽은 많은 에피소드와 그 에피소드를

다룸에 있어서 어느 정도의 무게감을 가지고 있으나 피라니아 이야기는 그 무게감이 좀

떨어진다는 것. 하지만 이 점이 역으로 피라니아 이야기의 장점이 될 수도 있는데

폰더씨의 이야기가 그리 읽기 어려운 책은 아니지만(사실 잘 읽히는 책이지만 피라니아에

비한다면 상대적으로 묵직한 책임)그 정도의 책 마저도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다면

이 피라니아 이야기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면서도 쉽게, 또 술술 잘 넘어간다는 것이다.

예로 든 내용들이 어찌보면 허무맹랑해 보이기도 하고 너무 간단하고 쉽게 설명하려다 보니

그 중요성이 떨어지는 듯 느껴지지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본질에는 변화가 없으므로

일단 독자들에게 읽히기는 쉬우면서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이야기 또한 잘 전달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그 나름대로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

그리고 마시멜로 이야기는 너무 날로 썼다는 듯한 인상을 지우기 어려웠는데, 그리고 오로지

마시멜로라는 한가지 키워드 만으로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도 마음에 안 들었고.

이번 피라니아 이야기에서는 좀 더 잘 짜여진 구성을 가지고 성공에 다다르는 몇 가지 포인트를

잘 집어주고 있다. 이 점은 마시멜로 이야기 보다 개선된 점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나의 감상.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반성을 한다. 책을 읽고 감동을 느끼지 못하면

절반은 독자에게 잘못이 있다. 난 크게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 또한 성공에 대한 의욕도

느끼지 못했다. 이는 내가 성공에 관심이 없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책을 읽고서

그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적어도 이 책은 나에게 있어선 실패작인 것 같다.

안타깝고, 또 반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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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행복한 카시페로 마음이 자라는 나무 9
그라시엘라 몬테스 지음, 이종균 그림, 배상희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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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화랄까, 동화랄까, 소설이랄까.

주인공은 개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의 개 버전.(사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읽어보지도 않았음)

주인공 개의 생에를 다룬 작품으로써 강아지 시절의 배고픔과 애완견시절의 수모과 비애,

떠돌이 개 시절의 에피소드 등을 다루고 있다. 개로 다루었으니 망정이지 사람을 상대로 이런

인생을 이야기 했다면 정말이지 지지로 복도 없고 없친데 덮친 격에 그래도 이 인간은

굴하지 않고 인생의 회전목마가 좋은 방향으로 돌아가기를 소망하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인

인간상이었을테다. 강아지의 생에를 다루었기에 이는 우리에게 교훈을 주기도 하기만 우리를

각성시키기도 한다. 인간들이 개에게 하는 짓들을 상상해보라. 이 책에선 중인공을 사람이 아닌

개로 설정해 놓고 그 개의 수난사에 인간이 큰 영향을 끼침으로써 인간에게 하여금 이 개의 생에를

통해 교훈을 얻게도 하지만 동시에 반성을 하게끔도 만드는 것이다.

그래도 이 책의 타겟연령이 좀 낮아서인지 희망적으로 결말을 짓고 있다.

물론, 영원한 행복이 어딨겠냐는 식의 방어벽은 친다만은.

역시나, 이런 책을 볼 때마다 이 책의 타겟연령에 있는 내 사촌동생이랄까

미래의 내 아이랄까, 그런 아이들이 이 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어떻게 읽을까,

재밌어는 할까? 무슨 생각을 하며 읽을까, 무지하게 궁금하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내 사촌동생에게 주련다. 이 책에 대한 반응이 궁금해서만은 아니다.

내 사촌동생에게 권해줘도 될 만하다 싶은 작품이기에 권하는 것이다.

물론, 그 아이가 이 책을 읽고 무슨 생각을 할 지는 궁금하지만.

오히려 아이이기에 주인공 개에 대해 연민을 느끼기도 하고 강아지를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의

반성이랄까, 나는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 다짐이랄까, 이런 귀여운 짓도 하지 싶다.

그런 의미에서보면 재미와 함께 교육적인 측면도 갖춘 책이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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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윌리엄 슈니더윈드 지음, 박정연 옮김 / 에코리브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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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성경을 칭할 때 성경이라 칭해 본 적이 없다.

 

교회에 다닐 때조차 늘 성경책 가져왔어? 내지는 성경책 읽어보자, 이런 말을 많이 했고

또 많이 들어봤다. 물론, 성경 보자, 이런 말도 들어본 적은 있겠다. 하지만 이 때의 '성경'

이라는 것은 성경'책'을 지칭한다는 걸 말하는 이도 듣는 이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게다가 양 쪽 다 이 '성경' 이라는 단어가 '토라' 그 자체를 뜻하는지 '토라가 기록된 책'을

뜻하는 지 고민해 본 적 없으며 그걸 고민해 볼 만한 배경지식 또한 없었다.

 

이제, 내겐 성경이란 단어를 들을 때 '성경' 그 자체를 떠올려야 할 지,

'성경책'을 떠올려야 할 지를 고민해 볼 만한 배경지식이 생겼다.

물론, 어느것이 옳다, 그르다, 하는 문제는 아니다. 그냥, 그걸 고민해 볼 만 해 졌다는

것이다. 이는 곧, 아는 것이 힘이자, 병이라는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그럼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 에 대해 저자는

사람들의 이기심과 권력추구, 기록파와 전승파 간의 경쟁을 통해 보고 있다.

이 경쟁에서 기록파가 이겼고, 성경은 성경책으로써 지위와 권위를 부여 받게 된다.

요는 결국엔 성경은 글로써 기록되어 전해지게 되었다, 이지만

이 책의많은 부분은 고대에 글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지,

그 글은 어떤 사람이 어떤 목적으로 사용했는지, 시대가 변함에 따라 그 글도 어떻게

변해갔는지, 또, 유대 내,외부적으로 글을 기록할 수 있는 상활들이 어떻게 변해갔는지 등,

상당히 많은 부분은 '글' 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 기술하고 있다.

덕분에 읽는 동안 주제가 약간 흐려지기도 했다. 그 과정들이 결론을 이끌어 내기 위한

과정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리고 이 책은 한걸음 물러서서 봐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고 있을 때만 해도 이 책이 과연 반기독교 서적인지에 대해 고민해 봤었고

이 책을 읽으면서, 그리고 다 읽고 나서도 성경이란 사람의 손을 참 많이 탔고

성경을 집필, 편집, 재편집 하는 과정에서 자신의 의견을 추가해 넣은 것,

애초에 해석을 잘못한 것, 번역을 잘못한 것 등, 성경이란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자

성스러운 것이라고 여겨지기 보다는 애초의 토라의 바탕에 사람들의 이해관계에 맞물려

재창조된 또 다른 하나의 책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이 점을 집요하게 파고 든다면

반기독교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기독교인으로서는 성경의 성스러움을 침해 당한

것만으로도 반기독교적이라 여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리뷰를 쓰기 위해 한숨 돌리고 차분히 생각해 보니,

그리고 이 책의 제목대로 성경은 어떻게 책이 되었을까를 생각해보니

이 책을 그리 반기독교적으로 몰고 갈 만한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말씀으로 전해지던 것이 어떻게 책이 되었는가를 서술해 놓은 것이지 않은가.

그리고 그 속의 사건들은 저자가 지어낸 것이라기보단 고고학적으로 밝혀내고 증명해

낸 것들이지 않은가. 그것들을 종합해서 성경이 책이 된 과정을 엮어낸 것.

 

어찌됐건 한발짝 물러서서 성경이 책이 된 과정을 살펴보니,

애초 글이라는 건 왕실, 서기관들의 전유물이었으나, 문자가 널리 보급되면서

구전되던 말씀이 기록되기 시작하였고 이 와중에도 기록파와 구전파간의 갈등과

경쟁이 있었는데 결국엔 기록파가 승리하여 그 말씀은 성경책이라는 책으로 엮어

이어지게 되었다. 뭐 이런 이야기 아닌가?

 

그리고 그 시기에 있어서 여러가지 고고학적 자료와 히브리어의 변화, 기록된 언어의

변화로 유추해 봤을 때, 어떤 것은 기원전 7세기쯤? 어떤 것은 기원전 2세기쯤? 하는 식으로

성경이 상당히 오랜 기간에 걸쳐져 집필, 편집, 재편집 되었다는 것.

 

이런 이야기들을 하고 있다.

또한 저자가 서문에 밝혀놓았듯이 전문적인 내용임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의 교양차원에서

볼 수 있도록 책으로 엮어 낸다고 하지 않았던가. 저자의 의도는 최대한 일반인들이 보기 쉽게

풀어 쓴다는 것이었지만 저자의 기대와는 달리, 그리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었지만.

 

여하튼 이 책은 성경이 어떻게 책이 되었는지의 과정을 기술하겠다는 것과

일반인들에게 그러한 교양을 제공하겠다는 것.

이 두가지 목적은 달성했다고 보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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