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슴벌레 여자 - 윤대녕 장편소설
윤대녕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01년 4월
평점 :
품절


다른 이의 기억으로 살아간다고 했다. 가능한 일일까?

어느날 갑자기 내 기억이 사라져 버린다. 내가 누군지를 모르게 되는 것이다.

굳이 기억의 문제가 아니더라도 자신을 잃어버렸을 경우, 다른이의 기억을 안고 살아간다는 게

가능한 일이야? 아니면, 가능 불가능을 묻기 전에 그렇게라도 살아야 한다는 거야?

 

이미 다른이의 기억으로 살아가고 있는 여자, 서하숙.

그녀는 아침에 일어나면 11시 정도까진 아무말도 하지 않는다. 프로그램이 작동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린다고 할까. 자신이 아닌 다른 이로 살아가려면 그 준비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어느날 갑자기 기억을 잃어버린 후 서하숙의 집에 얹혀 사는 남자, 누구씨.

그는 서하숙의 권유에 따라 다른이의 기억을 이식받게 된다. 하지만 뜻하지 않게 그 사람의

감정까지 이식받게 되어 불의의 사고가 발생한다. 그리고선 다시 포맷. 뭔가 사이버틱 하다.

하지만 이 속에서도 리얼리티는 있었느니 어느 영화관 앞에서 그의 회사 동료가 그를 알아보게

되어 그는 가족을 만나게 된다. 하지만 가족들은 결국엔 그를 견뎌내지 못한다. 정신병원으로

보내버리려는 가족들에게서 도망쳐 나와 그가 간 곳은 다시 서하숙의 집.

진짜인 자기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누군지 모르는 자기는 받아들여 졌다.

그는 그렇게 자기 있을 곳을 찾았다. 그가 있을 곳은 서류상의 가족의 곁이 아니라 자신과

같은 곳에 같은 사슴벌레 문신을 가지고 사는 사람 곁이었던 것이다. 자신을 유일하게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 아무런 기억이 없는 자신을 그런 자신인 대로 받아줄 수 있는 사람.

자신과 같은 상처와 같은 아픔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야 하는 사람.

 

동질감이라는 건 무시하지 못할 일인 것 같다. 아무리 건강하고 밝은 사고를 가졌고 모든이에게

친절하고 그야말로 이상적인 사람이라 할 지라도 어느 한 조각의 아픔조차 지녀 본 적이 없다면

그는 과연 상처받은 이들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이해하고 싶다고, 혹은 이해한다고 착각은 할 수 있겠지만 그 아픔 과연 같이 나눌 수 있을까? 그 아픔 함께 아파 하고 치유해 가면서 살아갈 수 있는 걸까? 왠지 그 사람의 아픔을 들여다 보고 나누기 이전에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신에게서 아픔을 느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

 

여하튼, 그래서 이 남자, 기억을 잃어버린 남자는 자신과 몇십년이고 함께 살아온 가족이 아닌

자신과 같은 아픔을 지니고 있는 서하숙을 택한 것이다. 뭐, 이미 가족이 기억을 잃어버린 자신을 받아들여 주지도 않았지만.

 

공유된 기억이란 그런 거다. 한 순간 가족조차도 등을 돌릴 수 있고 처음 보는 타인이라

할지라도 영원히 함께 하고자 할 수도 있고. 어느 먼 옛날 같은 별을 보며 거리를 걸었다는

것만으로도 앞으로 남은 생, 함께하고자 할 수도 있고.

 

 

여하튼 이 책은 자신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람들조차 자신과 비슷한 사람을 찾아,

그 사람들끼리 의지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준 탓에 왠지 좀 씁쓸했다.

인간이란 어쩔 수 없는 거구나..하는 그런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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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pin 2007-03-10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글쿤~
본좌는 이런 책을 고르는 능력이 없는데, 아니 어쩜 이런 책은 무시했는지도, 리뷰보니 쫌 짠한 마음이 생기네요~

근데 왜 사슴벌레 여자에여?

skyceti 2007-03-11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기..리뷰 잘못 올려서..ㅎㅎ
댓글은 다시 자기앞의 생에다가 달아죠요..ㅋ

Chopin 2007-03-12 00: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ㅡㅡ
 
말더듬이 자크
소르주 샬랑동 지음, 이주영 옮김 / 아고라 / 2007년 2월
평점 :
품절


 

말더듬이라고 그저 그런 말더듬이라고 보이는 자크라는 아이는 남들이 보기엔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겠지만 자기 안에서는 이 말더듬이에 대한 컴플렉스와 무서운 아버지에 대한

압박감으로 때로는 현실도피의 차원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기도 하고 때로는 이 말더듬이를

고쳐 보고자 약초를 찾아 나서기도 하는 둥, 가슴 속에는 상당한 갈등과 괴로움과 외로움을

지닌 아이이다.


이 자크라는 아이에게는 '봉지'라는 친구가 있다.

이 친구에게만은 자신의 모든 것을 털어놓을 수 있으며 둘 만의 비밀도 만드는 둥,

외로운 자크에게 있어 자신의 외로움을 스스로 소화하게끔 해 주는 존재이자 오히려

자크를 자기 안에만 가둬두는 존재이기도 하다.

 

친구들의 놀림과 아버지의 폭력앞에 자크는 스스로를 고립시켜 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는 불행한 어린시절을 보내야만 했던 아이들이 가장 많이 선택하는 사항이지

않을까? 왜,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지 않느냐고, 왜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느냐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겨내기엔 힘이 부치는 아이들이 그 불행한 상황을 견뎌내기

위해 자기 안의 고립을 선택한 것이다.

 

그리하여 자크는 말더듬이가 되었고, 말더듬이가 된 자크는 점점 더 자기안에 고립되어 갔다.

이런 자크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 바로 마뉘 선생님.

자기 안에만 고립 되어 있는 자크를 세상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는 따뜻한 가슴을 지닌

마뉘 선생님. 이 책이 프랑스에선 선생님이 될 사람이라면 꼭 읽어봐야 하는 책이라

일컬어진다고 하던데, 바로 이런 따뜻한 마음을 말하는 거겠지.

 

자크가 말더듬이를 고쳐줄 수 있는 약초를 찾아 나서겠다고 해서 빚어지는 약초 소동이랄까,

말더듬이에 대한 컴플렉스로 아예 입을 닫아 버리고자 하는 결심에서 빚어지는 이야기,

아버지의 매를 피하기 위해 하게 되는 거짓말 등, 이렇게 일을 벌여 놓은 자크를 마뉘 선생님은

따뜻한 가슴으로 이해해 주고 감싸주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자크의 아이다운 상상이랄까, 말더듬이를 고치기 위해 행하는 일들이랄까,

재밌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지만 이 이야기에 그리 깊이있게 몰입하지는 못했던 것 같다.

내가 더 이상 아이가 아니기 때문일까? 어린 시절, 제인에어에 깊이 몰입해 동화감까지

느껴가면서 꽤 열심히 읽었던 것 같은데 이 책에 대해서는 그리 몰입할 수 없었던 것이

아쉬운 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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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pin 2007-02-26 19: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은 어렸을 때 읽었어야 했을 듯 ...
잘 지내시죠?
리뷰를 많이 쓰시네여~

skyceti 2007-02-26 19: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 읽을때마다 아이들은 이 책을 무슨 생각을 하면서 볼지 참 궁금하기도 해요.

Chopin 2007-02-27 18: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자신과 자크를 동일시 하진 않을까요?

skyceti 2007-02-27 18: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네, 저도 그러면서 위로도 받고 용기도 내고 그랬으면 좋겠어요.^^
 
천년여우 여우비
이성강 원작, 하은경 글 / 예담 / 2007년 1월
평점 :
절판


너무나 사랑스러운 여우비.

 

이 책을 읽는 내내 내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생각은 어서 빨리 사촌동생에게

이 책을 가져다 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참 가슴 아픈 이야기였지만 또 참 사랑스럽고 감동적인 이야기라서

내 사촌동생도 이런 기분을 느껴봤으면 싶고 내 사촌동생에게도 이런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

 

사실, 이야기 구성은 뻔하지만 뻔해도 눈물 나는 건 어쩌라는 건지.

여우비의 마음이 내 마음에 와 닿아서, 금이의 마음또한 내 마음에 와 닿아서

그들의 마음과 내 마음이 맞닿아서 너무 슬프고, 너무 이쁜 이야기가 되었다.

 

 

어린 나이에 엄마를 잃고 외계에서 온 털보숭이 '요요'라는 생물체와 함께 살아 온

여우비는 어느 덧 인간 세계의 사춘기라고 할 만한 시기를 맞이하게 되고 이와 더불어

호기심 많던 여우비는 인간 남자애를 좋아 하게 돼.

이 남자애는 금이라고 하는데 이 아이를 좋아하게 된 여우비는 이 아이를 보기 위해,

이 아이와 친구가 되고 싶어 금이가 다니는 학교엘 나가게 돼.

그 속에서 여우비를 질투하는 여자애와 구미호 사냥꾼을 만나게 되어 여우비는

여러번 곤란에 처하게 되지. 결국 사냥꾼에 의해 궁지에 몰리게 되고 그 뒤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

 

 

 

 

 

구미호는 아무리 인간에게 마음을 주고 잘 해 주어도

결국엔 인간에게 배신당한다고 했던가.

 

하지만 이 이야기는 끝내 서로를 배신하지 않았고

또 서로를 목숨 걸고 지키려고 했다는 것.

그렇지만 둘이 잘 맺어지진 않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럽고 예쁜 이야기가 되었다는 것.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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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일 나다 - 첨단 패션과 유행의 탄생
조안 드잔 지음, 최은정 옮김 / 지안 / 2006년 12월
평점 :
품절


스타일 나다. 태양왕 루이 14세가 제대로 스타일 낸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가 낸 스타일들이 현재까지 이어져 온다거나, 그 기원이 되었다거나,

기폭제가 되었다거나 한 이야기들이다.

 

태양왕의 스타일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프랑스 파리는 패션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리고 왕의 뜻에 부응한 사람들은 어느 한 분야의 장인이 되거나 마케팅 담당자가 되거나

하는 식으로 자기 자리를 찾아 갔다. 왕의 뜻과 그 뜻에 충실한 사람들이 빚어낸 프랑스 스타일.

그리고 태양왕의 거시적인 안목이 결합하여 프랑스를 특별한 나라로 만들어 버렸다.

 

루이 14세는 전체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협소하게 어느 특정한 것에만 집착한 것이 아니라

머리부터 발끝까지 조화를 이룬 전체적인 스타일을 원했던 것이다.

예를 들면, 현대인들이 티셔츠를 한 장 사면 그 티셔츠에 어울리는 바지가 필요하고

또 그 옷에 어울리는 신발이, 헤어스타일이, 악세사리, 등등이 필요한 것처럼

태양왕 루이 14세 또한 헤어부터 뮬에 이르기까지 그 어느 하나 놓친 것이 없었다.

그리고 그의 거시적인 안목이라 함은 이를 통해 돈을 벌어들일 수 있음을 알아챘고

실제로도 이로 인해 막대한 부를 창출했기 때문인다. 그리고 이는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사실, 책을 읽는 내내 태양왕의 사치에 입이 딱딱 벌어졌다.

파리 시민들이 빵 한 조각 살 돈이 없어 절규하고 있을 때 마리 앙투와네트가 그럼 케이크를

먹으면 되지 않느냐고 했던 말이 절로 생각날 정도로 가난한 시민들은 어찌하고 나라의 돈을

저리 축내나 싶을 정도로 루이 14세는 스타일에 막대한 돈을 쏟아 붓는다.

이에 대해 이 책에서는 태양왕의 이러한 취향으로 인해 결국엔 태양왕이 관심을 보인 분야가

세계 최고가 되었다는 것으로 그에게 면죄부를 주고 있다. 태양왕이 스타일에 관심이 있기도

했지만, 전략적으로 그 산업들을 부흥시켜 그저 그런 나라이던 프랑스를 패션의 중심지,

관광의 중심지로 만들고 그로 인해 막대한 부를 창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막대한 부를

가지고 끊임없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자신의 스타일을 위해 어마어마한 돈을 지불하는 등,

과연 그 면죄부가 얼마나 설득력이 있는 지는 의문이다. 이애 대해 또 이 책에서는 지금의

프랑스가 루이 14세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것으로 면죄부를 주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혼란스러웠다. 그만큼 많은 스펙트럼을 가진 책이라는 생각이다.

패션과 유행에 관련된 산업에 속한 사람이나 이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그들만의 시각으로

이 책을 바라볼테고 마케팅 관련 산업군에 속한 사람이나 이에 관심 있는 사람들은 또 그들만의

시각으로 이 책을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프랑스라는 나라와 문화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또

그들만의 시각으로 볼 수도 있을테고 소외 받는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또 그에

대한 생각이 많을테고. 나는 여러가지로 관심이 많아서 읽는 내내 머리속이 많이 복잡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정보는 정보대로 취하고-아, 이렇게 해서 이런 스타일이 형성 됐구나,

이런 산업이 발생했구나, 그대부터 이런 마케팅이 있었구나, 등등..- 생각은 생각대로-뭐 이런

것들이, 서민들은 굶어 죽어? 이러면서- 하면 되지.

 

여하튼 첨단 패션과 유행을 프랑스 태양왕 루이 14세를 키워드로 잘 풀어낸 책이니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재미도 있고 많은 도움도 될 법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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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시 : 유럽의 운명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114
앙리에트 아세오 지음, 김주경 옮김 / 시공사 / 2003년 1월
평점 :
품절


집시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내지는 가지고 있는 이미지는 유랑민.

이 외에 내가 집시에 대해서 아는 것은 없었다. 기원이 어떻게 되는지,

어떤 민족인지, 이들의 생활방식이 어떻게 되는지.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이러한 궁금증들이 풀렸느냐 하면,

이 책에 대한 한줄평으로 대신하자.

-그래서 뭐??

 

말 그대로다. 그래서 뭐? 궁금증을 풀어주기는 커녕 그래서 뭐란 말이냐, 하는 의문만

더해갔다. 이들의 기원에 대해 인도 북부의 소수민족이라고는 하는데 그러한 증거들이

어떠한 것들이 있는지에 대한 설명도 부족했고, 왜 어떠한 연유로 이동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들도 부족했다. 집시 연구 자체가 아직은 이러한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단계가 아닌 건가? 그리고 나는 집시들의 민족성이랄까, 그들의 생활방식, 가치관

이런 것들이 알고 싶었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는 별로 없었다.

그렇게 떠돌아 다니고, 많은 민족에게 시달림을 당했는데로 불구하고 그들이 유지하고

있는 정체성에 대해 대단하다고 평은 하면서도 그들의 정체성이 무엇인지, 어떻게 그들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는지, 그들이 지켜온 그들만의 신념은 무엇인지, 하는 것들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더욱 아쉬운 책이었다. 집시, 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대해 뭔가 좀

알 수 있을까 생각했는데 '집시'들이 주는 뭔지 모를 아련한 이미지처럼 이 책도 그랬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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