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반양장)
앨빈 토플러 지음, 김중웅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중고생 때 나는 정보화 사회에 대해 배우면서 앨빈토플러에 대한 언급을 보았다. 앨빈토플러, 제3의물결, 권력이동 등. 이러한 키워드를 보면서 제3의 물결을 언젠가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읽어보진 않았는데 그것은 처음엔 왠지 좀 어려울 것 같은 느낌때문이었을 것이고 이후엔 굳이 읽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부의 미래를 읽고, 예전에 제3의물결을 읽어보고 싶어했을 때 읽어볼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앨빈 토플러는 말을 괜히 어렵게 하는 작가는 아닌 것 같다. 전달력이 좋은 작가, 선생님이지 않을까. 덕분에 부에 대해서, 부의 심층 기반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다가 올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책을 읽기가 수월했고 재미도 있었다.




 이 책은 서문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요약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요약문은 부의 미래 출간 당시 읽어야지 하면서도 여지껏 읽지 않고 있던 나에게 흥미를 당겨 주기에 충분했다. 얼마 전 서점에서 이 책의서문을 읽어보았는데, 서문만 읽었는데도 이 책이 재밌을 것 같고 또 책 내용이 궁금했었다. 그러니 급기야 이 책을 주문하여 읽게 되지 않았을까.




 여하튼 앨빈토플러는 "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경제, 경영에 대한 기사들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인 "부"에 대한 이야기들은 누락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저자는 이 누락된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저자는 오늘날의 변화들에 대해, "오늘날 혁명적인 변화의 성격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착각 속에 사는 것과 같다. 세계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부의 심층 기반이라고 하는 것이 나오는데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부를 이루는, 부를 창출하는 시스템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는 부의 심층 기반으로 시간, 공간, 지식을 지목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청소년 때 시험 답안에 정보화사회 내지는 제3의물결을 써 넣었듯이 앞으로의 아이들은 부의 심층 기반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시간, 공간, 지식이라고 써 넣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깐 해 보았다.




 시간에 대해서는 동시화와 비동시화라는 언급이 자주 나온다. 속도의 차이인 것이다. 적정한 속도의 차이는 진보와 혁신을 이루어내기도 하지만-모든것이 동시화되어 있다면 정지해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고 함께 퇴화해 갈 수도 있다.-비동시화가 심화되면 경제적인 진보를 제한함은 물론,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기업들의 속도와 정부기관의 속도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고 이것의 부의 미래를 발목잡을 지도 모른다. 앨빈토플러는 "창조적인 파괴자가 가장 먼저 찢어 버려야 할 것은 어제의 시간표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빠르게,빠르게만을 외치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생태학적인 발레라는 이야기를 하며 생태계에서 빨리 번식하는 종, 느리게 번식하는 종들이 서로 어우러져 생태계를 이루듯이 모든 비지니스에도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시간의 생태학이 있으며 이러한 조화를 잘 이루어낼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제2의물결인 대량생산체제에서는 근로자들의 표준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즉, 모든 근로자가 9시 출근 6시 퇴근을 하였다. 하지만 제3의물결에서는 각각의 맞춤시간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점점 더 예측불가능한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우리는 앞으로 친구와의 약속을 잡을 때 당연한 듯이 저녁 6시이후로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부의 심층 기반으로 시간을 들고 있는 것은 이러한 시간의 변화로 인해 사소하게는 친구와의 약속 시간도 변화하는데 사회는, 그리고 부를 창출하는 시스템은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하기에 시간이 부의 표층을 변화시키는 부의 심층 기반이 되는 것이다.




 공간에 대해서는 지리적인 측면에서 유럽에서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로 부가 이동하고 있으며 예전 좋았던 시절의 굴둑이 있던 곳들도 현재 다른 지역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여러가지 첨단 기술들이 기여했다. 그리고 세계시장에 대한 이야기, 세계화, 글로벌 기업, 화폐의 이동, 황사를 비롯한 세계적인 차원의 환경오염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공간 파트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주에 대한 논의이다. 공간 이동에 대해 지구적 차원에서 부가 이동하는 것, 화폐가 이동하는 것, 그리고 세계화 뿐만이 아니라 우주적 차원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인류는 우주라는 공간, 그리고 우주라는 공간을 연구, 탐험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들의 다양한 적용의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주는 개척되지 않은 신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지식이다. 시간과 공간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듯 느껴져서 부의 심층 기반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지식에 대해서는 누구나 부의 심층 기반이라고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지식의 특징으로 지식이 비경쟁적(수백명이 사용해도 감소되지 않으며 누구나 똑같은 지식을 사용할 수 있다.)이라는 것, 형태가 없다는 것, 직선적이지 않다는 것, 관계적이라는 것, 다른 지식과 어우러진다는 것, 이동이 편리하다는 것, 상징, 추상적인 개념으로 압축 가능하다는 것, 점점 더 작은 공간에 저장될 수 있다는 것, 밀봉하기 어렵다, 즉 퍼져나간다는 것을 들고 있다.

이러한 지식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석유와 지식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보다 석유는 쓸수록 줄어들지만 지식은 사용할수록 더 많이 창조된다는 것이다." 이다.

이 지식의 장에서 중요한 용어 하나가 나오는데 바로 "무용지식(obsoledge)"이다. 저자가 만들어낸 신조어인데 무용한과 지식의 결합어라고 한다. 모든 지식에는 한정된 수명이 있기 마련인데 바로 그 수명이 끝난 지식을 무용지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현대는 지식에서 무용지식으로의 이동하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 지식의 반감기라고도 하는데 경영학은 특히나 그 수명이 더 짧은 것 같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내가 앨빈 토플러에게 감동하는 것이다. 30년이상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책을 펴낼 수 있다는 것. 그러한 지식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 앨빈 토플러의 이러한 통찰력이 나를 감동시켰다.

지식도 점점 변해가고 있다. 산업시대 원칙의 울타리를 부수고 지식을 재직하며 명확하게 구분된 지식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여러분야에 걸친 지식을 요구하는 직업이 늘어나고 있다. 오로지 전문직을 외치던 시대에서 이제는 천문생물학자, 바이오물리학자, 환경기술자, 법률전문회계사처럼 두 단어의 조합으로 나타나는 직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 나는 또 나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데, 나의 고민은 언제나 전문성 부족이었다. 애초에 경영학을 선택했을 때, 나는 '전문'이라는 단어를 버렸다. 나는 다양하고 많은 것을 접하고 싶었고 여러분야에 걸쳐 공부하고 싶었다. 각각의 깊이는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크게 그려보고 그 속에서 어떠한 시사점을 끌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경영학을 택한 나는 보통 다시 대학을 가거나 하면 전문적인 걸 하기 마련인데 너는 왜 그러느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경영학과를 갔으며, 복수전공으로는 정치외교를 게다가 교직이수까지 신청했다. 그리고 일본어 공부를 했고, 언어는 앞으로도 5년에 하나씩 새로운 언어를 배워나가고 싶다. 여하튼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공부들이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느 한 가지만을 정해서 오로지 그것만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어쩌면 회계사시험을 쳐서 회계사가 되겠다던지, 공무원시험을 쳐서 공무원을 되겠다던지, 마케팅을 전공해서 마케팅업계에서 일하겠다던지 등, 이러한 길을 모색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론은 나는 하고 싶은 걸 다 해야겠고 그것은 우선순위, 어느 것을 먼저 하느냐의 문제이고 그 속에서 선택과 집중은 필요하겠지만 선택과 포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내가 하나하나 해 나가는 공부들이 언젠가는 다 내게 도움이 될 거란 막연한 믿음도 있었다. 하다 못해 내가 열광하는 드라마, 영화, 책, 만화들도 다 내게 지식이 되어 남을 수도, 영감이 되어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러한 것들을 아우르는 일이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모든 역량을 아울러 내가 해 낼수 있는 일을 아직 찾지 못했지만 이것은 그러한 일을 찾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던 간에 내가 그렇게 해 나가면 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나는 어떤 일을 하든지 조금 더 잘 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직이 요구하는 전문적인 지식 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배워보고 싶고 알아가고 싶은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미래 사회는 여러 분야가 결합되고 여러 분야의 결합된 지식을 요구하는 직업이 많이 생겨날 것이고 그러한 역량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니, 나 혼자만의 자위인지도 모르겠으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무의미한 일 만은 아닌 것 같아 조금 위로가 되었다.




 이 책에서 또 한 가지 시사하는 바는 프로슈밍이다. 프로슈머. 소비생산자. 생산자임과 동시에 소비자인 이들.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프로슈머이다. 가정 주부, 손자들을 돌보아 주는 노인들,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 영화나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사람들, 이 외에 모든 유용한 정보를 올리는 블로거들 등 모두가 살아가면서 각자 프로슈밍을 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슈머 경제는 측정되고 있지 않다. 즉 비화폐의 프로슈머 경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 측정 불가능한 프로슈머 경제는 실질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나 경제학에서는 이를 다루고 있지 않다.

가사, 보육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봉사활동이라고 부르는 것도 프로슈밍이다. 무보수로 우리의 노동력을 제공해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점차 늘어나게 될 노인층들은 유용한 프로슈머들이 될 수 있다. 또 의료와 교육분야에 있어서 프로슈머의 유용함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어릴 때부터 기본적인 해부학과 생리학,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 일반적이고 간단한 질병과 어떤 질병이 전문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등의 의료지식을 습득함으로써 프로슈머들이 보건의료 분야에 어마어마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기업들이 소비자들을 프로슈머로 만들어 자사의 비용절감을 이루어 내고 있는데 예를 들면 은행의 인터넷뱅킹이나 현금입출기등이다. 고객들에게는 고객이 기다리는 시간이 줄었다면 자신들이 그러한 서비스를 행함으로서 가능해 진 일이라며 수수료까지 챙기면서 의기양양해 하고 있지만 인터넷뱅킹고 현금입출기도 어느정도 고객의 수고를 요구한다. 이 대가로 은행은 수납창구 여직원을 줄일 수 있었으며 이는 비용절감으로 이어졌다. 요즘 기업들은 점점 더 고객들을 교육시켜 고객이 자신들의 일을 대신하게끔 하고 있다. 수퍼마켓의 발전도 처음에는 일종의 바 형식으로 되어 있어 직원이 앞에서 주문을 받아 창고에서 찾아서 가져다 주는 시스템이었는데 이제는 소비자가 직접 물건을 찾아서 가져와야 한다. 이것을 이 책에서는 일 떠넘기기라고 표현해 놓았다. 물론 이러한 예에는 다른 측면들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점점 소비자들이 생산에 많이 관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소비자이면서 생산자인 프로슈머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요구와 소비자의 요구의 절묘한 조화인지도 모른다. 주문제작 또한 소비자가 색상, 디자인,등 요구사항을 전해주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킴과 동시에 소비자를 설계에 참여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슈밍은 점점 사회에 기여한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무료공유 소프트웨어라고 불리는 리눅스가 좋은 예이다.

 

 이 책에서는 프로슈머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러한 프로슈머에 대한 글을 읽고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일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 책에서 나는 마르크스를 떠올렸다. 경제학적 측면에서 마르크스도 이 책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그 경제학적 측면이랄까 자본론 말고 마르크스가 그렸던 유토피아에 대해서 떠올렸다. 낮에는 농부이고 저녁에는 시인이 될 수 있는 세상. 이것을 프로슈머를 통해 이루어 낼 순 없을까?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보고 있자면 자급자족과 물물교환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는 되돌아간다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또 다른 변형으로서 발전해가는 느낌이다. 화폐경제체제도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비경제체제에 속하는 프로슈머 경제의 혜택을 누리거나 또는 프로슈머 경제가 비화페 경제에서 화폐 경제로의 적절한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프로슈밍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직접 생산해 낼 수 있을 것이고 또 그러한 것들은 서로 물물교환이 이루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들었던, 산업시대에 노동력을 팔던 것과는 다른 느낌인 것이다. 그리고 산업시대에는 노동력을 팔기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하는 것을 많이 했을 테지만 이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러한 결과물을 서로 공유, 교환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런식으로 사회가 발전하다 보면 마르크스가 말했던 낮에는 농부이고 저녁에는 시인인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빈곤, 가난, 기아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자.

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책은 이 부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현재에도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11억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18세기 초반 프랑스의 전형적인 한끼식사가 1965년 당시 르완다 수준이었던 것, 한때는 가장 잘 사는 나라의 경제 규모도 최빈국의 2배에 불과했던 것 등을 볼 때 현재 인류는 빈곤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이야기 하면서 아시아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빈곤 국가들에 나타난, 의도하지도 않았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트리클 다운' (낙수효과라고도 하며 부유층의 소비 증가가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로 연결 돼 전체적인 경기 부양 효과가 나타나는 현상)효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컴퓨터와 부의 혁명이 이러한 빈곤퇴치에 기여했다고 본다. 중국 또한 빠르게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부를 통해 중국은 내부적으로 양극화와 각 층의 갈등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중국은 빠른 속도로 빈곤에서 벗어났고 이제는 전체적으로 잘 사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자본주의는 양 면의 칼이지 않을까. 애덤 스미스의 덕성은 무시한 채 시장만 바라보고 정신 못 차리면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불리는 것들에 의해 사람들이 피폐해지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부를 통해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 보다도 빠르게 빈곤에서 벗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몇일 전 신문에 보니 빌 게이츠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언급 하면서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말을 하고 있던데 이를 통해 빌 게이츠는 기업들이 빈곤 퇴치에 앞장 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인류의 빈곤 퇴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수많은 자본주의의 폐해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전체적으로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고 또 그렇게 나아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앨빈 토플러의 낙관적인 시각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낙관론 앞에 앞으로 미래사회는 어떠할 것이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느점에서 미래사회에는 무수한 잠재적인 위협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위협으로 인해 미래 사회는 무시무시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 그러한 모든 것들을 염두에 두고서도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앨빈 토플러의 시각이 좋았다.

 

 그리고 앞으로 농업의 미래에 있어 바이오 경제학을 제시하고 있다. 미래에는 농업 분야가 석유 분야와 같은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석유를 대신해 유전자가 많은 원자재와 제품의 핵심 원천이 되는 바이오 기반 경제체제로 나아갈 것을 시사한다. 팀 스미트는 "우리가 식물을 통해 철근이나 케블라보다 강한, 새로운 합성물질을 만들 수 있으며, 모든 나라가 각국의 고유한 식물로부터 진보된 물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이오 정유소는 원자재 출처와 가까운 곳에 지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농촌의 미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선배 중에 유전육종학을 전공 하는 선배가 있는데 장난 삼아 앞으로의 식량산업의 미래가 선배 어깨에 달려 있다고 한 적이 있는데 식량산업의 미래는 그가 짊어져야 할 미래의 일부분인지도 모르겠다. 식량 뿐만이 아니라 산업 원자재 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물질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 "유전자의 다양성이 가진 잠재적인 가치"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이 참 매력적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는 부의 혁명에 따른 사회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많은 혁신이 필요하다. 이는 기업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기술 진보와 경제 발전 속에서 사회 제도는 어떠한가. 사회 제도는 발전하는 시대상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과학자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발견을 이루어 내고 기술의 진보를 이루어 낸다. 기업가들은 빠르게 그 기술들을 적용시켜 새로운 제품, 서비스 등을 내어 놓는다. 그렇다면 정부는? 각 기관은? 학교는? 사회 제도는? 이러한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가. 그리고 적절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가. 앞으로의 미래 사회는 과학자나 기업가 뿐만이 아니라 사회학자 등 각 분야에 있어서의 창의성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 제도에도 창조적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나는 이 부분을 주목했다. 어쩌면 내가 그러한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어떠한 기술을 개발해 낼 수는 없지만 그 기술이 사회에 적용되고 사회가 그에 따라 변해 갈 때, 사회의 각각의 제도들이 어떤 식으로 변화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좀 더 유용한 제도가 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생각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나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 준 책이었다. 그리고 이 책 한권 읽고서 당장 내 길을 찾았어! 이렇게 해야겠어! 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내가 공부를 해 나가고 직업을 가지게 되고 무엇이든 활동을 해 나감에 있어 늘 염두에는 둘 것 같다. 미래 사회에 대해서,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감명 깊었다고 하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악마의 정원에서 - 죄악과 매혹으로 가득 찬 금기 음식의 역사
스튜어트 리 앨런 지음, 정미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2월
평점 :
품절


작년, 아니 재작년부터? 어쩌면 훨씬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벼루고 벼루던 터라 엄청 재밌을 것이라 기대했었지만 읽고 난 소감은 그다지..재밌지 않았다고 할까.

재미라기 보다는 뭔가 경악, 어처구니 이런 단어가 더 생각났었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7대 죄악과 동일한 항목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이브가 따 먹었다는 선악과에서부터 시작한다. 선악과라고 하면 언뜻 사과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애초에 선악과라고 해서 딱히 정해진 과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과일이라고 언급했던 것을 후에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에 맞게 사과에 그 누명을 씌웠다고나 할까. 이 책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추적해 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사과가 애초에 선악과라는 개념이 있었고 그 개념에다가 자신의 목적에 맞게 이 과일 저 과일을 끼어 맞추는 과정에서 선악과의 누명을 쓰게 됐다면 초콜렛이나 핫초코 등은 사람들이 무지했던 탓에 이런 저런 누명을 쓰게 되기도 하고 금지 당하기도 하고 선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미식가들이 즐겨 먹던 음식들이 나올 땐 정말 기겁할 지경이었다. 별의 별 음식이 다 있었다. 그 음식들은 음식 그 자체 보다는 그 음식의 재료와 조리방법 먹는 방법 등이 더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그저 재미로 읽을 수도 있고 이 책을 통해 음식에 얽힌 이런 저런 역사, 에피소드 등을 알 수도 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음식 속의 권력에 대해 눈길이 갔다. 일찍이 지도와 권력을 읽어서일까?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힘의 우위에 위치해 있던 민족이 다른 민족의 음식에 의도적으로 불경한 혐의를 씌우거나 지배층이 피지배층의 지배와 억압을 목적으로 특정 음식을 제한, 권장하기도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점은, 프랑스에서 일어났다 빵 폭동?에 관한 것인데 이는 마리앙뜨와네트의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지 그래요?라는 말 때문에 더 유명한 일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나는 시민들의 혁명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보다는 빵에 대한, 그야말로 빵 그 자체에 대한 투쟁이었다고 나와 있었다. 우리에게도 지배층이 먹는 것과 같이 희고 속이 말랑말랑한 맛있는 빵을 적정한 가격에 팔아라,가 그들의 요구였다니 말이다. 후에 평등한 빵을 만들자는 노력까지 있었다고 하니, 프랑스 국민들 정말 빵에 목숨거는 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 가지 깨달음은 나는 정말 요리를 싫어하는 구나 하는 것이었다.

음식에 얽힌 역사랄까 에피소드 등이 나오면 관심있게 보면서도 음식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나 조리법 등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나 지루하게 느껴지던지...책 속에 실려 있는 조리법은 단 한개도 읽지 않았다. 내가 이거 만들 일 있겠어?이러면서 그냥 패스~굳이 만들지 않더라도 레시피를 보면서 재밌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그 레시피 읽는 게 시간아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하. 이정도면 좀 심각하지 않을까. 어찌됐건, 오래도록 읽고 싶던 책을 읽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한 달 후, 일 년 후
프랑수아즈 사강 지음, 최정수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7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이 책을 딱 5줄 읽고 반했다.
 

"베르나르가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 그는 네온 불빛 때문에 일그러진 모습으로 보이는 몇몇 손님의 눈길을 받으며 잠시 망설이다가, 계산 담당 여직원에게 다가갔다. 그는 호사스럽고, 당당하고, 몽상에 빠져 있다가 돈과 성냥갑들이 오고 갈 때 간간이 그 몽상에서 빠져나오는, 바의 계산 담당 여직원들을 좋아했다."

 

 딱 이 5줄만 읽고도 나는 이 작가가 좋았다.

 

 이 책은 통속적인 사랑이야기이다. 젊은이들에게 상냥한 노부부 역할을 하고 있는 알랭부부와 이들 부부의 조카 에두아르, 그의 맹목적인 사랑을 받고 있는 아름다운 동시에 난폭한 베아트리스, 베아트리스의 욕망이 뿜어내는 아름다움의 양면을 간파한 졸리오, 사랑이 한달후, 일년후 시간이 흐를수록 변해간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하지만 담담하게 받아들이며 현재의 열정에 마주할 줄 아는 아름다운 조제, 그 조제를 사랑하는 조제의 닮은꼴인 베르나르, 그리고 조제의 연인인 젊은 의학도 자크, 그리고 베르나르의 아내 니콜.

 

 이 아홉남녀의 얽히고 섥힌 사랑이야기이지만 그렇게 질척거리진 않으니 보는데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아홉명이나 등장하는데 그 감정들이 너무나 질철거린다면 좀 곤란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들의 감정이 정말 질척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이들의 통속적인 사랑이 질척거리지 않았던 것은 순전히 사강의 명확한 표현들 덕분이었다.

 

 예를들면, 사강은 이런 식으로 말한다.

 

 "그들이 저지른 실수는 너무나 부조리했고 이상하리만큼 정직했다."

 

"그때 그는 베아트리스를 향한 자신의 열정이 그녀의 등에 붙박인 눈길로 요약되리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상징, 사람들은 그것을 스스로 만든다, 그것도 일이 잘 안돌아갈 때, 시기가 나쁠 때에."

 

 참으로 매력적인 문장이지만 동시에 작가가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만들어 놓고서 짠~하고 내보이는 느낌이기도 하다. 두번째 문장의 상황에서 에두아르가 베아트리스의 등을 바라보는 모습만 묘사해 두었다면 독자들은 이 장면에서 앞으로 에두아르의 처지가 그 눈길로 요약되리라는 것을 짐작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사강은 친절하게도 명확하게 제시해 주고 있다. 바로 그렇게 요약된다고. 그래서 이 점이 아쉬웠냐고? 아니, 나는 독자의 상상력을 약간 제한했다 할지라도 이런 명확한, 그리고 당당한 그녀의 문장이 좋았다. 5줄 읽고 무작정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계속해서 읽은 그녀의 문장들은 내 직감이 맞았다고 확인해 주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상상력을 자극한다던지, 어떤건지는 알겠는데 모호한 무언가를 표현해 내는 능력 또한 탁월했다.

 

 "우리는 모두 사랑의 열정이 대도시의 한가운데에 만들어내는 이런 조그마한 구역들을 알고 있다."

 

 "젊음이 맹목에 자리를 내줄 때, 행복감은 그 사람을 뒤흔들고 그 사람의 삶을 정당화하며, 그 사람은 나중에 그 사실을 틀림없이 시인한다."

 

 책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토록 명확하게 표현해 내고 있는 그녀의 당당한 표현력에 감탄할 것이다.

 

 이 책은 아홉남녀의 사랑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맨 마지막 장이지 싶다.

 

 "다음 월요일, 말리그라스 부부는 봄이 되고 나서 처음으로 평소에 열던 그들의 저녁 모임을 다시 열었다. 베르나르와 니콜, 당당하면서도 겸손한 태도를 하고 있는 베아트리스, 에두아르, 자크, 조제 등이 참석했다. 무척 즐거운 저녁이었다. 알랭 말리그라스는 조금 비틀거렸지만, 아무도 그것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

 한순간 베르나르가 조제 옆에 있게 되었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바라보면서 벽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

 베르나르가 조제에게 뭐라고 질문하자 조제가 턱짓으로 파니의 후원을 받고 있는 젊은 음악가를 가리켰다. 피아노 앞에 앉아 있던 그 음악가가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조제가 속삭였다.

 "나 저 음악 알아요. 아주 아름답죠."

 베르나르가 말했다.

 "작년에 연주했던 것과 똑같군요. 당신 기억나요? 우리는 저기에 있었죠. 똑같은 모습으로. 그리고 저 음악가도 같은 곡을 연주하고 있었어요. 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아 보죠. 하기야 우리도 마찬가지예요."

 조제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녀는 거실 다른 쪽 끄트머리에 있는 자크를 바라보았다.

 베르나르가 그녀의 시선을 뒤쫓았다.

 "언젠가 당신은 그를 사랑하지 않게 될 거예요. 그리고 언젠가 나도 당신을 사랑하지 않게 되겠죠."

 그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리고 우리는 다시 고독해지겠죠. 그렇게 되겠죠. 그리고 해가 또 지나가겠죠......"

 "나도 알아요."

 조제가 말했다.

 그녀는 어둠 속에서 그의 손을 잡고 잠시 힘을 주었다. 그에게 시선을 돌리지 않은 채.

 그가 말했다.

 "조제, 이건 말이 안 돼요. 우리 모두 무슨 짓을 한 거죠?......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죠?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죠?"

 조제가 상냥하게 대답했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미처버리게 돼요."

 

 

 이 책은 이렇게 끝난다.

베르나르와 조제는 한 때 데이트를 즐겼고 어쩌면 연인이 될 수 있었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녀는 베르나르가 아닌 자크에게로 갔고 아내가 있는 베르나르는 그럼에도 조제를 사랑한다 말한다.

이런 베르나르와 조제. 일년이 지난 후, 조제는 베르나르와 함께 듣던 음악은 기억했으나 그 음악이 그와 함께 듣던 음악이라는 것은 기억하지 못했다. 그렇게 조제에게 베르나르는 의미를 잃어갔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크 또한 그녀에게 의미를 잃을 것이며 베르나르 또한 조제를 사랑하지 않게 될 날이 올 것이다. 이 모든 상황 앞에 이 모든 것에 무슨 의미가 있냐고 묻는 베르나르에게 조제는 상냥하게 말한다. "그런 식으로 생각하면 안 돼요. 그러면 미처버리게 돼요."

 

 나는 이런 조제가 좋다. 이미 사랑이 시간이 흐름에 따라 퇴색되어갈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 상황 앞에 혼란스러워 하지 않고 그 상황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렇다고 어차피 그러할 것이기에 사랑 앞에 냉소를 띠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랑 앞에 "당신이 필요해요"라며 당당하게 말한다. 미래에 퇴색될 사랑이라 할지라도 그 모든 것을 담담하게 받아들임과 동시에 현재의 열정에 마주할 줄 아는 조제. 난 그런 조제가 좋았다. 그리고 또 한명의 매력적인 여자 베아트리스. 그녀에게는 '아름다운 동시에 난폭한'이라는 수식이 붙었다. 남자에게 더 인기가 있을 듯한 수식이지만 난 그녀의 악마적인 매력 또한 좋았다. 음..그러니까 난 조제와 같이 사랑의 무의미함 앞에 담담할 수 있음과 동시에 현재의 열정에 마주할 수 있음과 동시에 '아름다운 동시에 난폭'했으면 좋겠다. 조제가 수채화라면 베아트리스는 유화일 것이다. 이 둘을 융합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으면서 개선문이라는 책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개선문의 주인공은 라빅이라는 남자와 조앙이라는 여자인데 개선문을 읽으면서도 여러 구절들에 공감했던 것 같다. 그런데 개선문을 읽으면서는 조앙이라는 여자가 매력적이긴 하지만 내가 남자라면 조앙이라는 여자와 연애는 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던 캐릭터였던 반면, 남자의 캐릭터는 매력적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하지만 '한달후, 일년후'에서는 반대였다고 할까. 조제는 너무나 사랑스럽지만 베르나르와는 연애하고 싶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 두 책이 머릿속에 동시에 존재했던 이유는 아마도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아무래도 파리는 사랑하기에 적당한 도시인 것 같다.'는 이미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EO 경제학 - Books for CEO
슐로머 메이틀 지음, 이용숙 옮김 / 거름 / 2001년 4월
평점 :
절판


사실 이 책은 교재이다.
그러니까 출판의 목적이 교재는 아니겠지만 어느 정도 교재의 역할을 한다고도 볼 수 있으며 실제로 우리대학의 CEO경제학이라는 과목의 교재이기도 하다. 이 강의는 내가 들으려고 하다가 인원제한에 걸려 미처 듣지 못한 강의였고 다행히도 이 책은 졸업을 앞 둔 어느 선배가 나에게 물려 준 책 속에 섞여 있었다. 방학을 맞이하여 전공 관련 서적도 탐독해 보자는 기특한 생각에 읽기 시작한 책이었다.

 

 이젝과 이콘이라는 용어를 처음 들어 보았는데 이젝은 경영자들을 가리키고 이콘은 경제학도나 경제학 교수를 가리킨다고 한다. 이 책은 저자가 이콘으로서 이젝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젝들에게 유효하다고 생각했던 경제학 내용들을 담고 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의 제목은 CEO 경제학인 것이다. 즉, CEO들이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 참고로 하면 좋은, 혹은 참고로 해야만 하는 경제학적 지식에 대해서 다루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은 목차를 보면 알 테니 생략하도록 하고,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것은 어떤 키워드에 대해 설명함에 있어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예를 들어서 설명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러한 예들은 벤치마킹이랄까 경영사례연구랄까 하는 부분에서도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예시가 되어 준다는 점이 좋았다. 좀 안좋다고 내지는 어렵다고 느꼈던 점은 나는 이미 배웠기에 이 글이 대충 어떤 걸 의미하는지 알고는 있지만 글로만 설명되어 있으니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이 책은 경영학도, CEO들을 상대로 한 책이고 그들과의 대화를 하고자 한 책이니 그냥 내가 공부하는 수 밖에. 이 책을 가지고 한 학기 동안 강의를 하기도 하는데 내가 이 책을 한번 읽어보고서는 다 알겠다, 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할 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저자의 십년간의 노하우가 담긴 책이지 않은가. 그리고 이 책은 좀 오래된 탓에 주로 대량생산체제, 그리고 규모의 경제와 범위의 경제의 결합체제 속에서의 의사결정을 다루고 있기는 하지만  각가지 상황별로 경영자들이 의사결정을 함에 있어서 경제학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가 담겨 있는 책이므로 익혀 두면 다 쓰일 때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해양고고학: 암초에 걸린 유물들 시공 디스커버리 총서 87
장이브 블로 지음, 윤은오 옮김 / 시공사 / 1998년 12월
평점 :
품절


암초에 걸린 유물들이라 해서 뭔가 재밌을 것 같고 해적이나 보물이야기가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에 홀딱 속은 건 나 뿐인 것일까?
한마디로 나는 이 책에 낚인 기분인데 그 이유는 이 책은 주구장창 배만 건져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선 이 배는 무슨 양식이고 저 배는 무슨양식이고 어쩌고 저쩌고...물론 그러한 작업도 의미는 있다만 여하튼 내가 무엇을 상상하든 그 외의 것을 보여 준 관계로 이 책은 나에겐 무의미했던 거지.

 

 누군가가 잠수를 해 보았고 그렇게 유물을 발견하기 시작하면서 보물은 찾는 작업은 매력적인 일로 여겨지게 되었고 그래서 잠수 장비는 나날이 발전하게 되었고..하지만 그런 잠수 작업을 하는 건 고고학자들이 아닌 주로 돈을 바라는 사람들의 작업인지라 한계가 있었고...요즘에는 고고학자들이 많이 참여를 하고 있고 그래서 배를 건졌는데 양식을 보니 어느 시대일 것 같고, 내지는 그 속에서 나온 유물이 어느 시대의 것이니 그 당시의 배 양식이 이러했구나, 등등.

 

 한마디로 이 책은 이 책이 딱히 잘못한 건 없는데 괜히 나에게 찍혀버린 불쌍한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