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의 미래 - 앨빈 토플러 (반양장)
앨빈 토플러 지음, 김중웅 옮김 / 청림출판 / 2006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중고생 때 나는 정보화 사회에 대해 배우면서 앨빈토플러에 대한 언급을 보았다. 앨빈토플러, 제3의물결, 권력이동 등. 이러한 키워드를 보면서 제3의 물결을 언젠가 한번쯤은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읽어보진 않았는데 그것은 처음엔 왠지 좀 어려울 것 같은 느낌때문이었을 것이고 이후엔 굳이 읽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을 것이다.




 부의 미래를 읽고, 예전에 제3의물결을 읽어보고 싶어했을 때 읽어볼걸..하는 생각이 들었다.

앨빈 토플러는 말을 괜히 어렵게 하는 작가는 아닌 것 같다. 전달력이 좋은 작가, 선생님이지 않을까. 덕분에 부에 대해서, 부의 심층 기반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다가 올 미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책을 읽기가 수월했고 재미도 있었다.




 이 책은 서문에 많은 것이 담겨 있다. 이 책의 요약문이라고도 할 수 있는데 이 요약문은 부의 미래 출간 당시 읽어야지 하면서도 여지껏 읽지 않고 있던 나에게 흥미를 당겨 주기에 충분했다. 얼마 전 서점에서 이 책의서문을 읽어보았는데, 서문만 읽었는데도 이 책이 재밌을 것 같고 또 책 내용이 궁금했었다. 그러니 급기야 이 책을 주문하여 읽게 되지 않았을까.




 여하튼 앨빈토플러는 "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자 한다.

경제, 경영에 대한 기사들은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야기인 "부"에 대한 이야기들은 누락되고 있다고 지적하며 저자는 이 누락된 부분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저자는 오늘날의 변화들에 대해, "오늘날 혁명적인 변화의 성격을 과소평가하는 것은 착각 속에 사는 것과 같다. 세계는 되돌릴 수 없을 정도로 극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부의 심층 기반이라고 하는 것이 나오는데 표면적으로 드러나는 부를 이루는, 부를 창출하는 시스템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 책에서는 부의 심층 기반으로 시간, 공간, 지식을 지목하고 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내가 청소년 때 시험 답안에 정보화사회 내지는 제3의물결을 써 넣었듯이 앞으로의 아이들은 부의 심층 기반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시간, 공간, 지식이라고 써 넣게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잠깐 해 보았다.




 시간에 대해서는 동시화와 비동시화라는 언급이 자주 나온다. 속도의 차이인 것이다. 적정한 속도의 차이는 진보와 혁신을 이루어내기도 하지만-모든것이 동시화되어 있다면 정지해 있는 것과 다르지 않을 수도 있고 함께 퇴화해 갈 수도 있다.-비동시화가 심화되면 경제적인 진보를 제한함은 물론, 심각한 위기를 초래할 수도 있다. 기업들의 속도와 정부기관의 속도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고 이것의 부의 미래를 발목잡을 지도 모른다. 앨빈토플러는 "창조적인 파괴자가 가장 먼저 찢어 버려야 할 것은 어제의 시간표이다."라고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빠르게,빠르게만을 외치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생태학적인 발레라는 이야기를 하며 생태계에서 빨리 번식하는 종, 느리게 번식하는 종들이 서로 어우러져 생태계를 이루듯이 모든 비지니스에도 각기 다른 속도로 움직이는 시간의 생태학이 있으며 이러한 조화를 잘 이루어낼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제2의물결인 대량생산체제에서는 근로자들의 표준근무시간이 정해져 있었다. 즉, 모든 근로자가 9시 출근 6시 퇴근을 하였다. 하지만 제3의물결에서는 각각의 맞춤시간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점점 더 예측불가능한 시대로 접어들게 되었다. 우리는 앞으로 친구와의 약속을 잡을 때 당연한 듯이 저녁 6시이후로 잡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이다. 부의 심층 기반으로 시간을 들고 있는 것은 이러한 시간의 변화로 인해 사소하게는 친구와의 약속 시간도 변화하는데 사회는, 그리고 부를 창출하는 시스템은 변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러하기에 시간이 부의 표층을 변화시키는 부의 심층 기반이 되는 것이다.




 공간에 대해서는 지리적인 측면에서 유럽에서 아메리카 그리고 아시아로 부가 이동하고 있으며 예전 좋았던 시절의 굴둑이 있던 곳들도 현재 다른 지역들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리고 여기에는 여러가지 첨단 기술들이 기여했다. 그리고 세계시장에 대한 이야기, 세계화, 글로벌 기업, 화폐의 이동, 황사를 비롯한 세계적인 차원의 환경오염 등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공간 파트에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우주에 대한 논의이다. 공간 이동에 대해 지구적 차원에서 부가 이동하는 것, 화폐가 이동하는 것, 그리고 세계화 뿐만이 아니라 우주적 차원에 대한 이야기까지 하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인류는 우주라는 공간, 그리고 우주라는 공간을 연구, 탐험하기 위해 개발한 기술들의 다양한 적용의 혜택을 보게 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우주는 개척되지 않은 신세계인 것이다.




 그리고 지식이다. 시간과 공간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듯 느껴져서 부의 심층 기반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할지라도 지식에 대해서는 누구나 부의 심층 기반이라고 느끼고 있을 지도 모르겠다.

저자는 지식의 특징으로 지식이 비경쟁적(수백명이 사용해도 감소되지 않으며 누구나 똑같은 지식을 사용할 수 있다.)이라는 것, 형태가 없다는 것, 직선적이지 않다는 것, 관계적이라는 것, 다른 지식과 어우러진다는 것, 이동이 편리하다는 것, 상징, 추상적인 개념으로 압축 가능하다는 것, 점점 더 작은 공간에 저장될 수 있다는 것, 밀봉하기 어렵다, 즉 퍼져나간다는 것을 들고 있다.

이러한 지식의 특징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석유와 지식의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보다 석유는 쓸수록 줄어들지만 지식은 사용할수록 더 많이 창조된다는 것이다." 이다.

이 지식의 장에서 중요한 용어 하나가 나오는데 바로 "무용지식(obsoledge)"이다. 저자가 만들어낸 신조어인데 무용한과 지식의 결합어라고 한다. 모든 지식에는 한정된 수명이 있기 마련인데 바로 그 수명이 끝난 지식을 무용지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리고 현대는 지식에서 무용지식으로의 이동하는 속도가 무척 빠르다. 지식의 반감기라고도 하는데 경영학은 특히나 그 수명이 더 짧은 것 같다.

바로 이 지점에서 내가 앨빈 토플러에게 감동하는 것이다. 30년이상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책을 펴낼 수 있다는 것. 그러한 지식을 제공해 줄 수 있다는 것. 앨빈 토플러의 이러한 통찰력이 나를 감동시켰다.

지식도 점점 변해가고 있다. 산업시대 원칙의 울타리를 부수고 지식을 재직하며 명확하게 구분된 지식의 경계를 허물고 있다.여러분야에 걸친 지식을 요구하는 직업이 늘어나고 있다. 오로지 전문직을 외치던 시대에서 이제는 천문생물학자, 바이오물리학자, 환경기술자, 법률전문회계사처럼 두 단어의 조합으로 나타나는 직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기서 나는 또 나의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되는데, 나의 고민은 언제나 전문성 부족이었다. 애초에 경영학을 선택했을 때, 나는 '전문'이라는 단어를 버렸다. 나는 다양하고 많은 것을 접하고 싶었고 여러분야에 걸쳐 공부하고 싶었다. 각각의 깊이는 떨어질지도 모르지만 크게 그려보고 그 속에서 어떠한 시사점을 끌어내고 싶었다. 하지만 경영학을 택한 나는 보통 다시 대학을 가거나 하면 전문적인 걸 하기 마련인데 너는 왜 그러느냐는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경영학과를 갔으며, 복수전공으로는 정치외교를 게다가 교직이수까지 신청했다. 그리고 일본어 공부를 했고, 언어는 앞으로도 5년에 하나씩 새로운 언어를 배워나가고 싶다. 여하튼 지금 이렇게 하고 있는 공부들이 과연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에 대해서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어느 한 가지만을 정해서 오로지 그것만을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어쩌면 회계사시험을 쳐서 회계사가 되겠다던지, 공무원시험을 쳐서 공무원을 되겠다던지, 마케팅을 전공해서 마케팅업계에서 일하겠다던지 등, 이러한 길을 모색하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결론은 나는 하고 싶은 걸 다 해야겠고 그것은 우선순위, 어느 것을 먼저 하느냐의 문제이고 그 속에서 선택과 집중은 필요하겠지만 선택과 포기는 아니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렇게 내가 하나하나 해 나가는 공부들이 언젠가는 다 내게 도움이 될 거란 막연한 믿음도 있었다. 하다 못해 내가 열광하는 드라마, 영화, 책, 만화들도 다 내게 지식이 되어 남을 수도, 영감이 되어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나는 바로 이러한 것들을 아우르는 일이 하고 싶은 것이다. 이러한 모든 역량을 아울러 내가 해 낼수 있는 일을 아직 찾지 못했지만 이것은 그러한 일을 찾는 문제가 아니라 어떤 일을 하던 간에 내가 그렇게 해 나가면 되는 문제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나는 어떤 일을 하든지 조금 더 잘 할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전문직이 요구하는 전문적인 지식 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도 배워보고 싶고 알아가고 싶은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미래 사회는 여러 분야가 결합되고 여러 분야의 결합된 지식을 요구하는 직업이 많이 생겨날 것이고 그러한 역량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하는 듯 하니, 나 혼자만의 자위인지도 모르겠으나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들이 무의미한 일 만은 아닌 것 같아 조금 위로가 되었다.




 이 책에서 또 한 가지 시사하는 바는 프로슈밍이다. 프로슈머. 소비생산자. 생산자임과 동시에 소비자인 이들. 이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우리 모두는 프로슈머이다. 가정 주부, 손자들을 돌보아 주는 노인들, 자식을 키우는 부모들, 영화나 책을 읽고 리뷰를 쓰는 사람들, 이 외에 모든 유용한 정보를 올리는 블로거들 등 모두가 살아가면서 각자 프로슈밍을 행하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슈머 경제는 측정되고 있지 않다. 즉 비화폐의 프로슈머 경제인 것이다. 그리고 이 측정 불가능한 프로슈머 경제는 실질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으나 경제학에서는 이를 다루고 있지 않다.

가사, 보육 뿐만 아니라 우리가 흔히 봉사활동이라고 부르는 것도 프로슈밍이다. 무보수로 우리의 노동력을 제공해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점차 늘어나게 될 노인층들은 유용한 프로슈머들이 될 수 있다. 또 의료와 교육분야에 있어서 프로슈머의 유용함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어릴 때부터 기본적인 해부학과 생리학,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 일반적이고 간단한 질병과 어떤 질병이 전문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 등의 의료지식을 습득함으로써 프로슈머들이 보건의료 분야에 어마어마한 기여를 할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기업들이 소비자들을 프로슈머로 만들어 자사의 비용절감을 이루어 내고 있는데 예를 들면 은행의 인터넷뱅킹이나 현금입출기등이다. 고객들에게는 고객이 기다리는 시간이 줄었다면 자신들이 그러한 서비스를 행함으로서 가능해 진 일이라며 수수료까지 챙기면서 의기양양해 하고 있지만 인터넷뱅킹고 현금입출기도 어느정도 고객의 수고를 요구한다. 이 대가로 은행은 수납창구 여직원을 줄일 수 있었으며 이는 비용절감으로 이어졌다. 요즘 기업들은 점점 더 고객들을 교육시켜 고객이 자신들의 일을 대신하게끔 하고 있다. 수퍼마켓의 발전도 처음에는 일종의 바 형식으로 되어 있어 직원이 앞에서 주문을 받아 창고에서 찾아서 가져다 주는 시스템이었는데 이제는 소비자가 직접 물건을 찾아서 가져와야 한다. 이것을 이 책에서는 일 떠넘기기라고 표현해 놓았다. 물론 이러한 예에는 다른 측면들도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점점 소비자들이 생산에 많이 관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즉, 소비자이면서 생산자인 프로슈머가 되어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기업의 요구와 소비자의 요구의 절묘한 조화인지도 모른다. 주문제작 또한 소비자가 색상, 디자인,등 요구사항을 전해주기 때문에 기업에서는 고객의 욕구를 만족시킴과 동시에 소비자를 설계에 참여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러한 프로슈밍은 점점 사회에 기여한다는 것 뿐만이 아니라 사회를 변화시키게 될 것이다. 무료공유 소프트웨어라고 불리는 리눅스가 좋은 예이다.

 

 이 책에서는 프로슈머에 대해 다양한 측면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이러한 프로슈머에 대한 글을 읽고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일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부"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이 책에서 나는 마르크스를 떠올렸다. 경제학적 측면에서 마르크스도 이 책에서는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그 경제학적 측면이랄까 자본론 말고 마르크스가 그렸던 유토피아에 대해서 떠올렸다. 낮에는 농부이고 저녁에는 시인이 될 수 있는 세상. 이것을 프로슈머를 통해 이루어 낼 순 없을까? 이 책에서 하는 이야기들을 보고 있자면 자급자족과 물물교환의 시대로 돌아가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지만 이는 되돌아간다는 느낌이라기 보다는 또 다른 변형으로서 발전해가는 느낌이다. 화폐경제체제도 존재하지만 한편으로는 비경제체제에 속하는 프로슈머 경제의 혜택을 누리거나 또는 프로슈머 경제가 비화페 경제에서 화폐 경제로의 적절한 방법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프로슈밍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은 직접 생산해 낼 수 있을 것이고 또 그러한 것들은 서로 물물교환이 이루어 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들었던, 산업시대에 노동력을 팔던 것과는 다른 느낌인 것이다. 그리고 산업시대에는 노동력을 팔기 위해 자신이 하고 싶은 것보다는 해야하는 것을 많이 했을 테지만 이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그러한 결과물을 서로 공유, 교환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런식으로 사회가 발전하다 보면 마르크스가 말했던 낮에는 농부이고 저녁에는 시인인 인생을 살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빈곤, 가난, 기아에 대해서 이야기 해 보자.

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는 이 책은 이 부분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현재에도 하루 1달러 미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11억명이나 된다는 사실을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는 것은 아니다. 18세기 초반 프랑스의 전형적인 한끼식사가 1965년 당시 르완다 수준이었던 것, 한때는 가장 잘 사는 나라의 경제 규모도 최빈국의 2배에 불과했던 것 등을 볼 때 현재 인류는 빈곤에서 빠르게 벗어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를 이야기 하면서 아시아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빈곤 국가들에 나타난, 의도하지도 않았고 예상하지도 못했던 '트리클 다운' (낙수효과라고도 하며 부유층의 소비 증가가 저소득층의 소득 증대로 연결 돼 전체적인 경기 부양 효과가 나타나는 현상)효과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리고 컴퓨터와 부의 혁명이 이러한 빈곤퇴치에 기여했다고 본다. 중국 또한 빠르게 경제 성장을 하고 있는데 이러한 부를 통해 중국은 내부적으로 양극화와 각 층의 갈등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중국은 빠른 속도로 빈곤에서 벗어났고 이제는 전체적으로 잘 사는 사회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 자본주의는 양 면의 칼이지 않을까. 애덤 스미스의 덕성은 무시한 채 시장만 바라보고 정신 못 차리면 자본주의의 폐해라고 불리는 것들에 의해 사람들이 피폐해지지만 한편으로는 이러한 부를 통해 인류 역사상 그 어느 때 보다도 빠르게 빈곤에서 벗어나고 있으니 말이다. 몇일 전 신문에 보니 빌 게이츠가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언급 하면서 "창조적 자본주의"라는 말을 하고 있던데 이를 통해 빌 게이츠는 기업들이 빈곤 퇴치에 앞장 서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측면에서 인류의 빈곤 퇴치를 긍정적으로 보고 있다. 수많은 자본주의의 폐해에도 불구하고 인류는 전체적으로 점점 더 나은 방향으로 가고 있고 또 그렇게 나아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이는 앨빈 토플러의 낙관적인 시각이기도 하지만 이러한 낙관론 앞에 앞으로 미래사회는 어떠할 것이고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사회로 나아갈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다느점에서 미래사회에는 무수한 잠재적인 위협이 존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위협으로 인해 미래 사회는 무시무시할 것이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 그러한 모든 것들을 염두에 두고서도 어떻게 하면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는 앨빈 토플러의 시각이 좋았다.

 

 그리고 앞으로 농업의 미래에 있어 바이오 경제학을 제시하고 있다. 미래에는 농업 분야가 석유 분야와 같은 중요성을 갖게 될 것이라고 하는데 이는 석유를 대신해 유전자가 많은 원자재와 제품의 핵심 원천이 되는 바이오 기반 경제체제로 나아갈 것을 시사한다. 팀 스미트는 "우리가 식물을 통해 철근이나 케블라보다 강한, 새로운 합성물질을 만들 수 있으며, 모든 나라가 각국의 고유한 식물로부터 진보된 물질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바이오 정유소는 원자재 출처와 가까운 곳에 지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는 농촌의 미래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선배 중에 유전육종학을 전공 하는 선배가 있는데 장난 삼아 앞으로의 식량산업의 미래가 선배 어깨에 달려 있다고 한 적이 있는데 식량산업의 미래는 그가 짊어져야 할 미래의 일부분인지도 모르겠다. 식량 뿐만이 아니라 산업 원자재 또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물질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다고 하니 말이다. 그리고 여기에 "유전자의 다양성이 가진 잠재적인 가치"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이 참 매력적인 것 같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서는 부의 혁명에 따른 사회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는 많은 혁신이 필요하다. 이는 기업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기술 진보와 경제 발전 속에서 사회 제도는 어떠한가. 사회 제도는 발전하는 시대상을 적절히 반영하고 있지 못하다. 과학자들은 계속해서 새로운 발견을 이루어 내고 기술의 진보를 이루어 낸다. 기업가들은 빠르게 그 기술들을 적용시켜 새로운 제품, 서비스 등을 내어 놓는다. 그렇다면 정부는? 각 기관은? 학교는? 사회 제도는? 이러한 속도를 따라가고 있는가. 그리고 적절한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가. 앞으로의 미래 사회는 과학자나 기업가 뿐만이 아니라 사회학자 등 각 분야에 있어서의 창의성을 요구하고 있다. 사회 제도에도 창조적 아이디어가 필요하다. 나는 이 부분을 주목했다. 어쩌면 내가 그러한 일을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어떠한 기술을 개발해 낼 수는 없지만 그 기술이 사회에 적용되고 사회가 그에 따라 변해 갈 때, 사회의 각각의 제도들이 어떤 식으로 변화해야 하는지, 어떻게 하면 사람들에게 좀 더 유용한 제도가 될 수 있는지 등에 대해서는 생각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이 책은 나에게 많은 시사점을 안겨 준 책이었다. 그리고 이 책 한권 읽고서 당장 내 길을 찾았어! 이렇게 해야겠어! 라고 하지는 않겠지만 앞으로 내가 공부를 해 나가고 직업을 가지게 되고 무엇이든 활동을 해 나감에 있어 늘 염두에는 둘 것 같다. 미래 사회에 대해서, 그리고 그 속에서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해서.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나에게 감명 깊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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