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정원에서 - 죄악과 매혹으로 가득 찬 금기 음식의 역사
스튜어트 리 앨런 지음, 정미나 옮김 / 생각의나무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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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작년, 아니 재작년부터? 어쩌면 훨씬 전부터 읽고 싶었던 책을 이제서야 읽었다.
벼루고 벼루던 터라 엄청 재밌을 것이라 기대했었지만 읽고 난 소감은 그다지..재밌지 않았다고 할까.

재미라기 보다는 뭔가 경악, 어처구니 이런 단어가 더 생각났었다.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7대 죄악과 동일한 항목으로 구성된 이 책은 이브가 따 먹었다는 선악과에서부터 시작한다. 선악과라고 하면 언뜻 사과를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애초에 선악과라고 해서 딱히 정해진 과일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과일이라고 언급했던 것을 후에 사람들이 자신의 목적에 맞게 사과에 그 누명을 씌웠다고나 할까. 이 책이 전적으로 옳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이러한 사실들을 추적해 가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사과가 애초에 선악과라는 개념이 있었고 그 개념에다가 자신의 목적에 맞게 이 과일 저 과일을 끼어 맞추는 과정에서 선악과의 누명을 쓰게 됐다면 초콜렛이나 핫초코 등은 사람들이 무지했던 탓에 이런 저런 누명을 쓰게 되기도 하고 금지 당하기도 하고 선호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리고 미식가들이 즐겨 먹던 음식들이 나올 땐 정말 기겁할 지경이었다. 별의 별 음식이 다 있었다. 그 음식들은 음식 그 자체 보다는 그 음식의 재료와 조리방법 먹는 방법 등이 더 인상적이었다.

 

 이 책은 그저 재미로 읽을 수도 있고 이 책을 통해 음식에 얽힌 이런 저런 역사, 에피소드 등을 알 수도 있겠지만 나는 무엇보다도 음식 속의 권력에 대해 눈길이 갔다. 일찍이 지도와 권력을 읽어서일까?

굳이 이 책을 읽지 않았다고 할지라도 힘의 우위에 위치해 있던 민족이 다른 민족의 음식에 의도적으로 불경한 혐의를 씌우거나 지배층이 피지배층의 지배와 억압을 목적으로 특정 음식을 제한, 권장하기도 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흥미로웠던 점은, 프랑스에서 일어났다 빵 폭동?에 관한 것인데 이는 마리앙뜨와네트의 빵이 없으면 케이크를 먹지 그래요?라는 말 때문에 더 유명한 일이기도 하다. 이 과정을 나는 시민들의 혁명이라고만 알고 있었는데 이 책에서는 그보다는 빵에 대한, 그야말로 빵 그 자체에 대한 투쟁이었다고 나와 있었다. 우리에게도 지배층이 먹는 것과 같이 희고 속이 말랑말랑한 맛있는 빵을 적정한 가격에 팔아라,가 그들의 요구였다니 말이다. 후에 평등한 빵을 만들자는 노력까지 있었다고 하니, 프랑스 국민들 정말 빵에 목숨거는 구나 싶기도 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한 가지 깨달음은 나는 정말 요리를 싫어하는 구나 하는 것이었다.

음식에 얽힌 역사랄까 에피소드 등이 나오면 관심있게 보면서도 음식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나 조리법 등에 대한 이야기는 어찌나 지루하게 느껴지던지...책 속에 실려 있는 조리법은 단 한개도 읽지 않았다. 내가 이거 만들 일 있겠어?이러면서 그냥 패스~굳이 만들지 않더라도 레시피를 보면서 재밌어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정말 그 레시피 읽는 게 시간아깝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하. 이정도면 좀 심각하지 않을까. 어찌됐건, 오래도록 읽고 싶던 책을 읽고 나니 속이 다 시원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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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아시아의 힘
KBS 인사이트아시아 유교 제작팀 엮음 / 예담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시작한다.
아시아에 있어서 유교는 어떤 의미이고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를 알아보고, 현대 사회의 폐해에 대한 대안을 유교에서 찾고자 한다.
 
 이에 앞서 이 책은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하려고 했는지 유교의 대표적인 사상인 '효'의 극단적인 모습들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극단적인 모습을 보여준 후, 하지만 실상 효는 이러한 의미였으니 극단적인 모습이 아닌, 그 본질을 이어받아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어서, 동아시아에서 이룩한 눈부신 경제성장을 두고 의문을 가진다. '사농공상'을 떠올려 볼 때, 유교는 이익을 천시했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유교가 정말 이익을 천시했는지, 만약 동아시아의 발전이 유교의 영향 때문이라면 세계화의 압력을 받는 지금 유교에서 시사점을 찾을 수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 알아보기로 한다. 즉 그 첫번째 화두는 "유교는 경제는 어떻게 보았는가?"이다.
 
 이 첫번째 화두에 답하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그들은 공자가 경제를 천시하지 않았으며 군비보다 앞서 식량을 생각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실제로 공자의 제자 중에는 대부호도 있었으며 공자는 그런 제자를 천대했던 것이 아니라 인정해 주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즉 이 과정에서 "경제의 중요성을 자각한 공자, 스스로 경제 전문가였던 공자, 그런 공자의 사상이 담긴 유교"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번엔 "유교가 유교 문명권에 속한 동아시아에 구체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알아볼 차례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 베트남, 일본, 한국 등의 거상들을 살펴보며 그들의 상도에 대해 알아보았고 그들의 상도 속에는 "견리사의"의 정신이 흐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서양에서는 생각하지 못했지만 동양, 유교에서는 이미 2500년 전에 보이지 않는 손에 윤리성이 전제되어야 함을 간파했다는 식으로 말을 하고 있는데 유교의 입장에서 유교를 치켜세우는 것을 이해할 수는 있지만 애덤스미스가 국부론에 앞서 도덕감정론에서 보이지 않는 손의 윤리성에 대해 언급했다는 것은 왜 무시하고 있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인과 의에 대해서 알아보았고 다음은 예의 차례이다. 예를 거추장스럽게 생각하기도 하지만 예 속에는 타인에 대한 배려가 담겨 있음을 이야기 하고 있고, 현대에 와서 예의 거추장스러움을 간소화하는 과정에서 예의 형식이나 절차 뿐만이 아니라 그 정신이 파괴된 것을 안타까워 하고 있다.
 
 그리고 동아시아 발전의 원동력으로 지목되는 "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다.
논어의 첫장은 "배우고 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로 시작한다고 한다. 이것이 논어의 첫 문장이라는 것을 볼 때 공자가 배움에 대해서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가난한 선비의 가정에도 책은 쌓여 있었고 누구나 배우기를 열망하였다. 후일, 과거의 폐단, 그리고 그 과거의 폐단이 이어져 내려온 입시의 폐단으로 인해 그 배움의 정신이 퇴색된 것은 사실이다. 이는 배움을 인격수양으로 보지 않고 출세의 수단으로 본 것에 따른 폐단이다. 이를 지적하고 진정한 선비라면, 배움이라면 전 생애를 두고 하나씩 깨달아 가는 인격수양으로서 배움을 행할 것을 이야기 하고 있다. 공자가 말한 배움, 그리고 실제로 조선 시대 서당과 고급 교육기관에서 행해지던 교육과정을 살펴보면 선비들이 앉아서 책만 읽은 것이 아니라, 예체능 등 다양한 방면에 있어서 배움을 행했음을 알 수 있다. 즉, 전인교육인 것이다. 이는 지금의 입시교육과는 너무나도 다른 반면, 그 폐해로 인해 대안으로 찾고자 하는 대안들과는 닮은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살펴볼 때, 우리가 알고 있는 유교는 효의 폐단, 사농공상의 폐단, 예의 폐단, 과거제도의 폐단 등으로 보이는 유교에 가깝다. 하지만 진정 유교를 파고 들어가 본다면 우리가 유교의 폐단이랍시고 다른 대안을 제시했을 경우, 그 대안이 오히려 더 유교에 가까울 정도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유교가 현대 사회의 대안이 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한다.
 
 
 현대에 맞게 형식이 변화될 순 있겠지만 그 정신은 이어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정신이란 것도 그 시대가 요구하는 것과 우선시 하는 것에 의해 맞지 않는 것이 있을 수도 있겠다. 타인에 대한 배려보다는 자신의 욕구를 우선시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개인을 중시하는 서양의 사상에서도 남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개인을 우선시하라고 하지는 않는다. 즉,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인 인이 바탕에 깔리고서, 자기 자신도 돌보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유교를 대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온고지신의 정신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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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와 권력
아서 제이 클링호퍼 지음, 이용주 옮김 / 알마 / 200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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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여기서 분명한 것은 지도가 단순히 객관적 사실을 묘사한 기하학적 도식이 아니라 제작자의 의도와 관점을 투영하는 정치적 도구라는 사실이다." -p305

 

 위의 구절이 이 책의 핵심일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제국주의가 19세기 후반에 유럽에서 지리학을 학문 분야로 발전시킨 것은 우연이 아니다. 독일의 대학들은 1874년 지리학과를 만들기 시작했다. 영국의 경우, 대학에서 최초로 지리학자가 임용된 것은 옥스퍼드 대학이 1887년, 케임브리지 대학은 1888년이었다. 1892년 파리에서는 시민을 대상으로 한 지리학 강좌가 개설되었다. 이 시기에 지도는 사회와 경제적 요인들에 관한 제국주의적 관점을 반영하기 시작했고, 바람이나 해류 같은 물리적 힘들에 관해서는 관심을 덜 쏟았다. 지도학은 보다 교훈적인 성향을 띠게 되었으며, 머지않아 지정학이라고 알려지게 될, 지리학과 국가 권력을 연결하는 도구가 되었다." -p148

 

 

 처음에 지도는 뱃길을 위해서 만들어졌다. 그래서 대륙보다는 바다가 중심이 되었다. 무역의 이점을 위해서 지도의 보안은 철저하게 지켜졌다. 그러다가 신대륙 발견 붐이 일면서 이제는 지도가 국가의 국력이 되었다. 좀 더 자세하고 정확한 지도를 가지고 있는, 그러한 지도를 만들 줄 아는 나라는 다른 나라들에 앞서 신대륙을 발견할 수 있었고 그 대륙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었다. 이러한 국가는 국력이 신장됨과 동시에 지도 분야에 있어서도 앞서 나감으로써 지도에 자신의 이해를 투영시킬 수 있었다. 유럽이 윗쪽에 있는 지도, 자신의 대륙을 더욱 두드러지게 그려낸 지도 등이 있는데 이는 그 자신의 대륙만을 왜곡해서 보여준 것이 아니라, 어떤 기법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지도가 달라지는 문제였고 자신의 국력과 기술을 앞세워 자신의 대륙이 더욱 도드라져 보이는 기법을 선택할 수 있었기에 지도는 제작자의 의도와 관점을 투영하는 정치적 도구가 되었다고 하는 것이다.

 

 

 사실 지도 속의 권력구도랄까, 지정학이랄까 하는 것들이 낯선 분야는 아니었기에 보는데 어려움이 있다던지, 당연한 듯 생각되었던 것이 달리 생각된다던지 하지는 않았다. 물론, 지도는 유럽이 아랫쪽에, 아프리카가 윗쪽에 위치할 수도 있다. 또 그러한 지도가 나온다고 해도 크게 신경쓰이지도 않는다. 다만, 일찍이 유럽이 이룩한 성과로 인해 현재의 지도가 보편적이고 알아보기 쉽다는 점에 있어서 지도 속의 권력 구도에 대해 고찰하는 것은 좋지만 굳이 지도를 뒤바꿀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각 나라마다 자신의 나라를 중심으로 한 지도를 만들어서 보급할 수는 있지만 전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지도가 현재 유럽이 윗쪽에 위치한 지도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고 또 각국이 시간이나 단위 등에 대해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한 가지 기준을 정한 것과 마찬가지로 지도 또한 각 나라가 쓰는 것과는 별개로 세계적으로 통용되는 지도로써 현재의 지도를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없다.

 

 

 지도 속의 권력 구도에 대해 고찰해 본 것과 같이 어떠한 사물이든 현상이든 그 사물이, 현상이 어떻게 생겼으며 어떻게 자리잡고 또 그 속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서 알아보는 작업은 흥미로운 것 같다. 굳이 지도를 바꾸자고 하지는 않겠지만 지도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고 앞으로 이러한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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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뒷세이아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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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리아드를 통해 아킬레우스라는 영웅을 알았다. 이번에는 오뒷세우스를 알아 볼 차례이다. 오뒷세우스는 트로이의 목마를 통해 트로이를 함락시키는데 공을 세우기도 했지만 전쟁이 시작하기도 전,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전쟁을 피하려던 아킬레우스를 참전시키는 꾀를 짜내기도 했다. 여장을 하고 숨어있는 아킬레우스 앞에 상인으로 변장하여 아킬레우스로 하여금 장신구가 아닌 무쇠를 손에 들게 했던 것이다. 이로써 정체가 탄로 난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뒷세우스는 그의 뛰어난 지략으로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 등과 함께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이렇게 전쟁에 공을 세운 영웅은 보무도 당당하게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야 하겠지만 익히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그는 20년을 떠돌다 거지의 행색으로 귀향하게 된다. 그가 고난을 당하며 떠돌고 있을 때, 그의 집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살펴보자.




 오뒷세우스에게는 페넬로페라는 아름다운 아내와 출전 당시 갓난아이였던 텔레마코스라는 아들이 있다. 오뒷세우스가 귀향하지 못하고 어느 바닷길, 혹은 어느 이름 모를 섬에서 떠돌다 죽었을 거라는 소문이 퍼지자 오뒷세우스의 집은 페넬로페의 구혼자들로 넘쳐나게 된다. 그들은 파렴치하게도 주인 없는 집에서 먹고 마시며 오뒷세우스의 재산을 탕진하고 있었다. 처음 구혼자들이 몰려들었을 때, 누군가가 페넬로페에게 지혜를 주었으니, 그녀로 하여금 옷을 한 벌 짓도록 한 것이다. 그녀는 옷을 완성하면 누구든 한 명을 정해 결혼을 하겠다고 했고 구혼자들은 이에 따르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는 3년을 내리 낮에는 옷을 짜고 밤에는 그 실을 풀어버리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이윽고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던 어느 여인이 이를 구혼자들에게 고하자 페넬로페는 옷을 다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옷을 다 지은 후에도 어린 텔레마코스를 방패삼아 결혼을 하지 않고 있던 페넬로페는 어린 아들이 장성하게 되자 또 다른 시련에 부딪히게 된다. 구혼자들은 어느 한 사람 정해서 결혼을 하지 않는 한 오뒷세우스의 집에서 떠나지 않겠다며 그녀에게 결혼할 것을 요구하고, 장성한 아들은 주인 없는 집에서 아버지의 것이자 장차 자신의 것이 될 재산을 탕진하고 있는 구혼자들에게 분개하고 있었다. 이때에 아테네가 등장한다. 아테네는 오뒷세우스의 친구인 멘토르로 분해 텔레마코스에게 접근하여 오뒷세우스의 행방을 수소문 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하여 오뒷세우스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분하더라도 일 년을 더 참고 견딜 것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격식에 맞게 장례식을 치르고, 어머니는 새 남편에게 보낸 후, 구혼자들을 응징할 지략을 궁리해 보라고 한다. 이에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하러 떠나게 된다.




 그럼 이 때에 오뒷세우스는 어디에 있었는가. 오뒷세우스 또한 이즈음에는 귀향길과 멀지 않았다. 그는 칼륍소의 동굴에서 탈출한 후, 파이아케스족의 나라에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성대한 대접을 받은 후 많은 선물들과 함께 고향으로 호송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파이아케스족의 나라에서 우리는 그동안 오뒷세우스에게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었는지에 대하여 들을 수 있다.




 오뒷세우스는 파이아케스족에게 트로이아를 떠났을 때 제우스가 오뒷세우스에게 지웠던 고난에 찬 귀향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바람은 오뒷세우스를 일리오스로부터 키코네스족의 나라인 이스마로스로 실어다 주었고, 그 곳에서 이들은 약탈을 하다가 키코네스족에게 제압당해 배마다 전우들을 여섯 명씩 잃었다. 그곳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항해를 계속해 도착한 곳은 로토파고이족의 나라였다. 로토파고이 족은 그들에게 로토스를 먹으라고 주었는데 이를 먹은 자는 귀향은 잊어버리고 그 곳에서 로토스를 먹으며 로토파고이족 사이에 머물고 싶어 했다. 오뒷세우스는 이들을 억지로 데려다 배 안에 묶은 후에야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퀴클롭스들의 나라였는데 퀴클롭스는 오뒷세우스의 전우들로 저녁식사를 준비하였다. 이 끔찍한 광경을 본 오뒷세우스는 앞이 캄캄했지만 곧 꾀를 내어 기다란 나무 끝을 뾰족하게 다듬어 놓고 퀴클롭스에게 포도주를 먹여 취하게 한 후, 그의 눈을 찔러 눈을 멀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숫양의 배에 매달려 퀴클롭스의 동굴을 탈출하게 된다. 하지만 바로 이 대목이 오뒷세우스가 20년을 떠돌게 된 이유이다. 이 퀴클롭스는 다름 아닌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퀴클롭스는 오뒷세우스에게 당한 뒤, 포세이돈에게 오뒷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게 되고 포세이돈은 이 기도를 들었다.




 퀴클롭스들의 나라를 떠난 뒤, 오뒷세우스 일행은 아이올로스 섬에서 그들이 신에게 미움 받고 있음을 확인했고, 라모스 왕의 가파른 도시 라이스트뤼고네스족의 텔레퓔로스에서는 또다시 전우가 점심식사로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급히 길을 떠나 달아날 수는 있었지만 이미 많은 전우들을 잃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아이아이에 섬이었는데 그곳에는 인간의 음성을 가진 무서운 여신, 머리를 곱게 땋은 키르케가 살고 있었다. 이곳에서 전우들은 돼지로 변하게 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오뒷세우스는 전우를 찾으러 나섰고 이런 오뒷세우스 앞에 헤르메스가 나타나 키르케에게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는 계략을 알려주어 전우들을 되찾고 키르케에게 성대한 대접까지 받게 된다. 그렇게 먹고 마시며 일 년이 지난 뒤, 오뒷세우스 일행은 다시 귀향을 생각했고 키르케에게 돌아갈 것을 이야기하지만 키르케는 그들에게 또 다른 시련이 준비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키르케는 오뒷세우스에게 귀향에 앞서 그들은 하데스의 무서운 페르세포네의 집으로 가 예언자 테바이의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산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으로 여정을 떠났고 그곳에서 테바이의 테이레시아스에게 이미 정해진 그의 힘든 귀향을 예언해 주고 그에게 주의할 점을 일러준다. 그리고 이미 혼백이 된 부모와 전우들과 그 외 이름난 영웅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 그들은 키르케에게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주의사항을 듣게 된다. 그것은 주의사항이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했다. 그들의 전우가 또다시 죽음을 당하게 될 이야기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여섯 전우의 희생으로 그들을 길을 계속 갈 수 있다고 하니, 오뒷세우스의 귀향은 몸의 고난 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고난 또한 심했다고 하겠다. 그들은 먼저 아름다운 노래로 사람들을 호리는 세이렌 자매에게 가게 될 것인데 이때에 전우들의 귀에는 밀랍을 이겨 넣어 귀를 막았고 오뒷세우스 자신은 세이렌 자매의 노래는 듣되, 끌려가지는 않도록 돛대에 꽁꽁 묶였다. 이렇게 세이렌 자매들을 넘어선 그들은 스퀼라에게로 가게 되는데 머리가 여섯 개나 되는 이 괴물은 오뒷세우스의 전우 여섯 명을 물어가 버렸다. 그렇게 희생을 치른 뒤 도착한 트리나키에 섬에서는 또 다른 시험이 오뒷세우스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곳에는 헬리오스의 수많은 암소들과 양떼들이 있는데 일찍이 예언자 테바이의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에게 그 소들을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주의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소들을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오뒷세우스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지만 섬에서의 체류 기간이 한달을 넘어가고 그들이 가져온 양식이 바닥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다른 생각을 품게 된다. 오뒷세우스에게 고난을 주고 싶어하는 어느 신의 계략이었을까. 때마침 오뒷세우스의 눈꺼풀 위로는 잠이 쏟아졌고, 그의 전우들은 나쁜 계략에 빠져 소떼에 손을 댄 것이다. 오뒷세우스는 잠에서 깨어 울부짖는다. 황급히 그 섬을 떠나기는 했으나 예정된 운명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배는 산산히 조각 났고 전우들은 모두 죽게 되고 오뒷세우스 혼자만이 살아남아 우여곡절 끝에 어느 섬에 도착했으니, 그 섬이 바로 오뒷세우스가 파이아케스족의 나라에 도착하기 직전에 머물러 있던 칼륍소가 살고 있는 섬이었던 것이다.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를 들은 파이아케스족은 오뒷세우스에게 많은 선물을 주며 그를 이타케로 호송해 준다. 그 곳에서 오뒷세우스는 곧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거지로 변장을 한 채, 그의 하인들과 아들, 아버지, 아내 등이 자신을 잊지나 않았는지,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지를 시험해 본다. 그러한 시험이 끝난 후, 그는 아들과 몇몇 하인과 함께 구혼자들을 처단할 궁리를 하게 된다. 물론 이 모든 것에는 오뒷세우스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는 여신, 아테네가 함께 했다. 그는 아테네의 후원에 힘입어 구혼자들을 처단하고 자신의 지위를 되찾게 된다.




 이 책은 오뒷세우스가 없는 이타케에서의 텔레마코스로부터 시작하여 오뒷세우스의 귀향 직전의 상황, 그리고 그 속에서 오뒷세우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그의 노정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다시 이타케로 돌아와 그가 구혼자들을 처단하고 다시 자신의 지위를 복원하는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있다. 예언과 회상이 적절이 섞여 있어 앞일을 짐작해 보기도 하고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일에 대해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 역추적 할 수도 있어 이 책을 읽는 동안 적절한 흥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누린 가장 큰 기쁨은 수식, 표현에 대한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이 책에 대한 예의상 줄거리를 요약해 놓은 것일 뿐이고 지금부터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 한다며 바다로 나아간다고 할 때,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면서 그를 말린다. “왜 쓸데없이 추수할 수 없는 바다 위를 떠돌며 사서 고생을 해요!”

‘추수할 수 없는 바다’라는 그 자체로도 멋지지만 확실한 성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텔레마코스의 항해와 그 고생을 ‘추수할 수 없는’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음에 무릎을 쳤다.

 

 그리고 내가 반해버린 문장이 있는데 이는 내가 해석한 문장이어야 내가 반한 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가 해석한 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떤 문장인가 하니,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이라는 구절인데, 환상적이지 않은가!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이라니. 도대체 어떤 빛일까? 대충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이 있긴 한데 그 장면을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이라고 표현하는 것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한참 고취되어 있다가 갑작스레 꿈에서 깨어났으니 전문은 이러했던 것이다.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 이럴수가. 한 마디로 내가 생각한 것처럼 저 문장은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이 아니라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었던 것이다. 이 문장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그 때마다 속이 쓰렸다. 흑,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이 더 멋지단 말이오! 호메로스가 살아 있다면 막 이렇게 생각했던 거죠?? 번역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죠?? 하면서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어찌됐건 이건 내 식대로 생각하기로 했으니 나는 그냥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을 생각하면서 환상에 젖어 있기로 했다.

 

 그리고 이 책의 표현 중에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들은 무슨 이야기나 회의를 하기 전에도 일단 서로 먹고 마시는 일부터 시작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랄까. 하인들이 물을 떠 오고 헌주를 하고 잔을 채우고 빵을 가져다주고 하는 장면이 한참 나오다며 이윽고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누가 뭐라고 이야기를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해서 본론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나그네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손님이 와도 호구조사부터 하고 신분을 제대로 확인 한 후에 들여보낸다든지, 먹을 것을 내온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식탁에 앉혀 먹을 것을 내 온 후 나그네가 허기를 면한 후에야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되었으니 이제 자기소개를 해 보시오, 하는 것이다. 신은 종종 나그네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인가 한다. 호메로스가 살던 시절에는 이것이 상식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리스로마신화 뿐만 아니라 예수도 종종 거지 또는 나그네로 등장하기도 함을 알 수 있다. 나그네를 대할 때 우선은 대접한 후에 그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던 상식과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와 그 경계를 풀 만큼 자기를 증명해 보인 후에야 사람을 대접하는 지금의 상식 사이에서 조금은 씁쓸했다.

 

 또 인상적이었던 표현을 보자면 소녀들을 이야기할 때, ‘이제 처음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쾌활한 소녀들’이라는 표현에서 그 소녀들의 나이와 그 소녀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페넬로페가 텔레마코스에게 ‘내 눈의 달콤한 빛’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그런 상대가 아들이 아니라,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하. 내 눈의 달콤한 빛! 이라고 칭할 수 있는 그런 남자. 줄거리를 요약한다고 머리가 팽팽 도는 줄 알았는데 내가 하고 싶던 이야기들을 하고 나니 괜히 행복해진 기분이다. 일리아스는 전쟁이야기를 하다 보니 괴기한 표현들이 많았지만 오뒷세우스에서는 신선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표현들이 많아서 보기에 좋았고 표현 속에 담긴 그들의 사상 또한 생각해 볼만한 것들이라서 읽기에 좋았다. 기회가 되시면 모두들 꼭 한번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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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성룡 - 설득과 통합의 리더
이덕일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07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조선 최고의 재상이라는 유성룡의 이야기이다.
유성룡은 임진왜란 당시, 선조 때의 재상이었다. 그러므로 그의 인생에 임진왜란이 빠질 수 없다.

이 때는 당쟁이 시작되던 시기이기도 했는데 동,서인, 남,북인으로 갈리게 된 이야기와 그 당쟁 속에

휘말린 유성룡의 이야기가 나오긴 하지만 이 책에서는 그러한 당쟁보다도 임진왜란에 더 주목하고 있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지만 유성룡 인생의 키워드는 임진왜란, 이순신, 그리고 선조이다.

 

 이순신은 유성룡이 천거한 인물이다. 일찍이 이순신을 알았던 유성룡은 이순신의 기질을 알아보았고 그를 요직에 거듭 추천한다. 이순신의 승진에는 언제나 유성룡이 있었다. 그리고 이순신의 좌천에는 유성룡의 반대파와 선조가 있었다. 이들이 보여준 세력싸움과 질투심은 임진왜란이라는 국난 앞에서도 아랑곳 하지 않았다. 선조는 자신의 안위를 챙기기에 급급했고 사대부들 또한 이 혼란중에도 당쟁을 일삼고 있었다. 이 혼란 속에서도 중심 잘 잡고 나라를 지켜낸 이가 있으니 그가 바로 유성룡이다.

 

 그는 이순신을 천거한 탓에, 그리고 혼란한 조정을 잘 지켜낸 탓에 선조의 눈 밖에 나게 된다.

이순신을 다룬 책에서도 종종 선조의 질투심을 언급하고 있다. 전쟁 중에 도망가기에만 급급했던 왕을 백성들이 따를 리 없다. 선조에게는 백성들의 비난이, 하지만 이순신에게는 백성들이 칭송이 함께함을 알았던 선조는 이순신을 질투하게 된다. 그리고 그를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제거했을런지도 모른다. 유성룡이 파직당했음을 전해 듣고 이순신은 자신의 앞날 또한 예상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이순신의 죽음에는 자살이라는 의문이 따르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선조에게는 유성룡 또한 질투의 대상이었다. 유성룡은 문인임에도 군사전략에도 눈이 밝아 일찍이 이순신을 발탁하였고 유용한 전술을 생각해 낼 줄도 알았다. 게다가 백성의 입장에서 행정적인 업무 처리를 잘 하였으며 도망가려는 왕을 설득하고 다독이며 조정을 지켜내었다. 백성들은 안다. 누가 백성들을 위하는 사람인지. 백성들은 선조에게는 비난을, 유성룡에게는 칭송과 신뢰를 보였으니 질투의 화신인 선조 눈 밖에 날 수 밖에.  게다가 선조가 도망가려는 것을 번번히 제지하고 선조가 하고자 하는 것을 번번히 제지한 탓에 그는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토사구팽 당하게 된다.

 

 그는 숱하게 선조에게 버림받았지만 이순신이 백의종군 하던 것과 같이 벼슬 없이도 선조의 피난길을 따르기도 하고 또 선조가 다시 부르면 복직하기도 했다. 그렇게 자신이 해야할 일을 했다. 하지만 전쟁이 끝남과 동시에 파직 당한 후로는 선조가 아무리 불러도 응하지 않았는데 이 점에서 토사구팽 당한 후에 유성룡 또한 선조를 버렸다던가, 관직과 담을 쌓았다던가 하는 것 보다는, 유성룡이 정말 백성과 나라를 위하는 재상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선조를 보면서 몇번이고 관직을 벗어 던지고 싶어 했을런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전쟁 중, 그는 차마 백성과 나라를 버릴 수 없었다. 유성룡이 선조에게 답하지 않은 것은 전쟁 후였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전쟁, 그 혼란한 와중에는 개인의 감정보다는 백성과 나라를 구하는 것이 우선이었을 것 같다는, 그것을 자신에게 있어 더 우위에 두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유성룡의 일대기를 따라가고 있고 그 속에서 유성룡을 조명하고 있기에 많은 부분 임진왜란 당시 선조와 조정, 그리고 이순신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유성룡에 대해서, 그리고 임진왜란 중의 나라 상황에 대해서도 살펴볼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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