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뒷세이아 - 그리스어 원전 번역 원전으로 읽는 순수고전세계
호메로스 지음, 천병희 옮김 / 도서출판 숲 / 201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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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리아드를 통해 아킬레우스라는 영웅을 알았다. 이번에는 오뒷세우스를 알아 볼 차례이다. 오뒷세우스는 트로이의 목마를 통해 트로이를 함락시키는데 공을 세우기도 했지만 전쟁이 시작하기도 전, 전쟁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전쟁을 피하려던 아킬레우스를 참전시키는 꾀를 짜내기도 했다. 여장을 하고 숨어있는 아킬레우스 앞에 상인으로 변장하여 아킬레우스로 하여금 장신구가 아닌 무쇠를 손에 들게 했던 것이다. 이로써 정체가 탄로 난 아킬레우스는 전쟁에 참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오뒷세우스는 그의 뛰어난 지략으로 아킬레우스와 아가멤논 등과 함께 전쟁을 승리로 이끈다.




 이렇게 전쟁에 공을 세운 영웅은 보무도 당당하게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와야 하겠지만 익히 우리가 알고 있다시피 그는 20년을 떠돌다 거지의 행색으로 귀향하게 된다. 그가 고난을 당하며 떠돌고 있을 때, 그의 집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는지 살펴보자.




 오뒷세우스에게는 페넬로페라는 아름다운 아내와 출전 당시 갓난아이였던 텔레마코스라는 아들이 있다. 오뒷세우스가 귀향하지 못하고 어느 바닷길, 혹은 어느 이름 모를 섬에서 떠돌다 죽었을 거라는 소문이 퍼지자 오뒷세우스의 집은 페넬로페의 구혼자들로 넘쳐나게 된다. 그들은 파렴치하게도 주인 없는 집에서 먹고 마시며 오뒷세우스의 재산을 탕진하고 있었다. 처음 구혼자들이 몰려들었을 때, 누군가가 페넬로페에게 지혜를 주었으니, 그녀로 하여금 옷을 한 벌 짓도록 한 것이다. 그녀는 옷을 완성하면 누구든 한 명을 정해 결혼을 하겠다고 했고 구혼자들은 이에 따르기로 한다. 그리고 그녀는 3년을 내리 낮에는 옷을 짜고 밤에는 그 실을 풀어버리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이윽고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던 어느 여인이 이를 구혼자들에게 고하자 페넬로페는 옷을 다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옷을 다 지은 후에도 어린 텔레마코스를 방패삼아 결혼을 하지 않고 있던 페넬로페는 어린 아들이 장성하게 되자 또 다른 시련에 부딪히게 된다. 구혼자들은 어느 한 사람 정해서 결혼을 하지 않는 한 오뒷세우스의 집에서 떠나지 않겠다며 그녀에게 결혼할 것을 요구하고, 장성한 아들은 주인 없는 집에서 아버지의 것이자 장차 자신의 것이 될 재산을 탕진하고 있는 구혼자들에게 분개하고 있었다. 이때에 아테네가 등장한다. 아테네는 오뒷세우스의 친구인 멘토르로 분해 텔레마코스에게 접근하여 오뒷세우스의 행방을 수소문 할 것을 주문한다. 그리하여 오뒷세우스가 살아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분하더라도 일 년을 더 참고 견딜 것을,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게 되면 격식에 맞게 장례식을 치르고, 어머니는 새 남편에게 보낸 후, 구혼자들을 응징할 지략을 궁리해 보라고 한다. 이에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하러 떠나게 된다.




 그럼 이 때에 오뒷세우스는 어디에 있었는가. 오뒷세우스 또한 이즈음에는 귀향길과 멀지 않았다. 그는 칼륍소의 동굴에서 탈출한 후, 파이아케스족의 나라에 가게 되고 그 곳에서 성대한 대접을 받은 후 많은 선물들과 함께 고향으로 호송 될 것이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 파이아케스족의 나라에서 우리는 그동안 오뒷세우스에게 무슨 일이 어떻게 일어났었는지에 대하여 들을 수 있다.




 오뒷세우스는 파이아케스족에게 트로이아를 떠났을 때 제우스가 오뒷세우스에게 지웠던 고난에 찬 귀향에 대해 이야기를 한다. 바람은 오뒷세우스를 일리오스로부터 키코네스족의 나라인 이스마로스로 실어다 주었고, 그 곳에서 이들은 약탈을 하다가 키코네스족에게 제압당해 배마다 전우들을 여섯 명씩 잃었다. 그곳으로부터 벗어나 다시 항해를 계속해 도착한 곳은 로토파고이족의 나라였다. 로토파고이 족은 그들에게 로토스를 먹으라고 주었는데 이를 먹은 자는 귀향은 잊어버리고 그 곳에서 로토스를 먹으며 로토파고이족 사이에 머물고 싶어 했다. 오뒷세우스는 이들을 억지로 데려다 배 안에 묶은 후에야 항해를 계속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도착한 곳은 퀴클롭스들의 나라였는데 퀴클롭스는 오뒷세우스의 전우들로 저녁식사를 준비하였다. 이 끔찍한 광경을 본 오뒷세우스는 앞이 캄캄했지만 곧 꾀를 내어 기다란 나무 끝을 뾰족하게 다듬어 놓고 퀴클롭스에게 포도주를 먹여 취하게 한 후, 그의 눈을 찔러 눈을 멀게 만든다. 그리고 그들은 숫양의 배에 매달려 퀴클롭스의 동굴을 탈출하게 된다. 하지만 바로 이 대목이 오뒷세우스가 20년을 떠돌게 된 이유이다. 이 퀴클롭스는 다름 아닌 포세이돈의 아들이었던 것이다. 퀴클롭스는 오뒷세우스에게 당한 뒤, 포세이돈에게 오뒷세우스가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해 달라고 기도하게 되고 포세이돈은 이 기도를 들었다.




 퀴클롭스들의 나라를 떠난 뒤, 오뒷세우스 일행은 아이올로스 섬에서 그들이 신에게 미움 받고 있음을 확인했고, 라모스 왕의 가파른 도시 라이스트뤼고네스족의 텔레퓔로스에서는 또다시 전우가 점심식사로 당하는 일이 벌어졌다. 그들은 급히 길을 떠나 달아날 수는 있었지만 이미 많은 전우들을 잃었다. 그리고 도착한 곳은 아이아이에 섬이었는데 그곳에는 인간의 음성을 가진 무서운 여신, 머리를 곱게 땋은 키르케가 살고 있었다. 이곳에서 전우들은 돼지로 변하게 되는 수모를 겪게 된다. 오뒷세우스는 전우를 찾으러 나섰고 이런 오뒷세우스 앞에 헤르메스가 나타나 키르케에게서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는 계략을 알려주어 전우들을 되찾고 키르케에게 성대한 대접까지 받게 된다. 그렇게 먹고 마시며 일 년이 지난 뒤, 오뒷세우스 일행은 다시 귀향을 생각했고 키르케에게 돌아갈 것을 이야기하지만 키르케는 그들에게 또 다른 시련이 준비되어 있음을 알려준다.




 키르케는 오뒷세우스에게 귀향에 앞서 그들은 하데스의 무서운 페르세포네의 집으로 가 예언자 테바이의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에게 물어봐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들은 산 사람이 갈 수 없는 곳으로 여정을 떠났고 그곳에서 테바이의 테이레시아스에게 이미 정해진 그의 힘든 귀향을 예언해 주고 그에게 주의할 점을 일러준다. 그리고 이미 혼백이 된 부모와 전우들과 그 외 이름난 영웅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다시 지상으로 올라온 그들은 키르케에게 앞으로의 여정에 대한 주의사항을 듣게 된다. 그것은 주의사항이기도 하지만 피할 수 없는 운명이기도 했다. 그들의 전우가 또다시 죽음을 당하게 될 이야기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여섯 전우의 희생으로 그들을 길을 계속 갈 수 있다고 하니, 오뒷세우스의 귀향은 몸의 고난 뿐만이 아니라 마음의 고난 또한 심했다고 하겠다. 그들은 먼저 아름다운 노래로 사람들을 호리는 세이렌 자매에게 가게 될 것인데 이때에 전우들의 귀에는 밀랍을 이겨 넣어 귀를 막았고 오뒷세우스 자신은 세이렌 자매의 노래는 듣되, 끌려가지는 않도록 돛대에 꽁꽁 묶였다. 이렇게 세이렌 자매들을 넘어선 그들은 스퀼라에게로 가게 되는데 머리가 여섯 개나 되는 이 괴물은 오뒷세우스의 전우 여섯 명을 물어가 버렸다. 그렇게 희생을 치른 뒤 도착한 트리나키에 섬에서는 또 다른 시험이 오뒷세우스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곳에는 헬리오스의 수많은 암소들과 양떼들이 있는데 일찍이 예언자 테바이의 테이레시아스의 혼백에게 그 소들을 절대 건드리지 말라고 주의를 받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소들을 절대 건드리지 말라는 오뒷세우스의 명령을 충실히 따르지만 섬에서의 체류 기간이 한달을 넘어가고 그들이 가져온 양식이 바닥나기 시작하면서 그들은 다른 생각을 품게 된다. 오뒷세우스에게 고난을 주고 싶어하는 어느 신의 계략이었을까. 때마침 오뒷세우스의 눈꺼풀 위로는 잠이 쏟아졌고, 그의 전우들은 나쁜 계략에 빠져 소떼에 손을 댄 것이다. 오뒷세우스는 잠에서 깨어 울부짖는다. 황급히 그 섬을 떠나기는 했으나 예정된 운명은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의 배는 산산히 조각 났고 전우들은 모두 죽게 되고 오뒷세우스 혼자만이 살아남아 우여곡절 끝에 어느 섬에 도착했으니, 그 섬이 바로 오뒷세우스가 파이아케스족의 나라에 도착하기 직전에 머물러 있던 칼륍소가 살고 있는 섬이었던 것이다.




 오뒷세우스의 이야기를 들은 파이아케스족은 오뒷세우스에게 많은 선물을 주며 그를 이타케로 호송해 준다. 그 곳에서 오뒷세우스는 곧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거지로 변장을 한 채, 그의 하인들과 아들, 아버지, 아내 등이 자신을 잊지나 않았는지,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지를 시험해 본다. 그러한 시험이 끝난 후, 그는 아들과 몇몇 하인과 함께 구혼자들을 처단할 궁리를 하게 된다. 물론 이 모든 것에는 오뒷세우스에게 승리를 가져다  주는 여신, 아테네가 함께 했다. 그는 아테네의 후원에 힘입어 구혼자들을 처단하고 자신의 지위를 되찾게 된다.




 이 책은 오뒷세우스가 없는 이타케에서의 텔레마코스로부터 시작하여 오뒷세우스의 귀향 직전의 상황, 그리고 그 속에서 오뒷세우스의 입을 통해 흘러나오는 그의 노정에 대한 이야기. 그리고 다시 이타케로 돌아와 그가 구혼자들을 처단하고 다시 자신의 지위를 복원하는 이야기로 마무리하고 있다. 예언과 회상이 적절이 섞여 있어 앞일을 짐작해 보기도 하고 이미 결과를 알고 있는 일에 대해 그 과정이 어떠했는지 역추적 할 수도 있어 이 책을 읽는 동안 적절한 흥미를 유지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이 책을 읽으면서 내가 누린 가장 큰 기쁨은 수식, 표현에 대한 것이다. 사실, 지금까지의 이야기들은 이 책에 대한 예의상 줄거리를 요약해 놓은 것일 뿐이고 지금부터가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이야기이다.




 텔레마코스가 아버지의 행방을 수소문 한다며 바다로 나아간다고 할 때, 누군가가 이렇게 말하면서 그를 말린다. “왜 쓸데없이 추수할 수 없는 바다 위를 떠돌며 사서 고생을 해요!”

‘추수할 수 없는 바다’라는 그 자체로도 멋지지만 확실한 성과가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텔레마코스의 항해와 그 고생을 ‘추수할 수 없는’이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음에 무릎을 쳤다.

 

 그리고 내가 반해버린 문장이 있는데 이는 내가 해석한 문장이어야 내가 반한 게 된다. 그래서 나는 그냥 내가 해석한 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어떤 문장인가 하니,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이라는 구절인데, 환상적이지 않은가!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이라니. 도대체 어떤 빛일까? 대충 머릿속에 그려지는 장면이 있긴 한데 그 장면을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이라고 표현하는 것 또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한참 고취되어 있다가 갑작스레 꿈에서 깨어났으니 전문은 이러했던 것이다.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 이럴수가. 한 마디로 내가 생각한 것처럼 저 문장은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이 아니라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 손가락을 가진, 새벽의 여신’이었던 것이다. 이 문장은 반복적으로 나오는데 그 때마다 속이 쓰렸다. 흑,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이 더 멋지단 말이오! 호메로스가 살아 있다면 막 이렇게 생각했던 거죠?? 번역하다 보니 이렇게 된 거죠?? 하면서 따지고 싶은 심정이다. 어찌됐건 이건 내 식대로 생각하기로 했으니 나는 그냥 이른 아침에 태어난 장밋빛을 생각하면서 환상에 젖어 있기로 했다.

 

 그리고 이 책의 표현 중에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라는 말이 많이 나오는데 이들은 무슨 이야기나 회의를 하기 전에도 일단 서로 먹고 마시는 일부터 시작한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랄까. 하인들이 물을 떠 오고 헌주를 하고 잔을 채우고 빵을 가져다주고 하는 장면이 한참 나오다며 이윽고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되었을 때, 누가 뭐라고 이야기를 한다든지 하는 식으로 해서 본론으로 들어간다. 이것은 나그네를 대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낯선 손님이 와도 호구조사부터 하고 신분을 제대로 확인 한 후에 들여보낸다든지, 먹을 것을 내온다든지 하는 것이 아니라 일단은 식탁에 앉혀 먹을 것을 내 온 후 나그네가 허기를 면한 후에야 먹고 마시는 욕망이 충족되었으니 이제 자기소개를 해 보시오, 하는 것이다. 신은 종종 나그네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인가 한다. 호메로스가 살던 시절에는 이것이 상식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그리스로마신화 뿐만 아니라 예수도 종종 거지 또는 나그네로 등장하기도 함을 알 수 있다. 나그네를 대할 때 우선은 대접한 후에 그의 이야기를 듣고자 하던 상식과 낯선 사람에 대한 경계와 그 경계를 풀 만큼 자기를 증명해 보인 후에야 사람을 대접하는 지금의 상식 사이에서 조금은 씁쓸했다.

 

 또 인상적이었던 표현을 보자면 소녀들을 이야기할 때, ‘이제 처음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은 쾌활한 소녀들’이라는 표현에서 그 소녀들의 나이와 그 소녀들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페넬로페가 텔레마코스에게 ‘내 눈의 달콤한 빛’이라고 말하는데 나는 그런 상대가 아들이 아니라, 남자가 있었으면 좋겠다. 하하. 내 눈의 달콤한 빛! 이라고 칭할 수 있는 그런 남자. 줄거리를 요약한다고 머리가 팽팽 도는 줄 알았는데 내가 하고 싶던 이야기들을 하고 나니 괜히 행복해진 기분이다. 일리아스는 전쟁이야기를 하다 보니 괴기한 표현들이 많았지만 오뒷세우스에서는 신선하고 반짝반짝 빛나는 표현들이 많아서 보기에 좋았고 표현 속에 담긴 그들의 사상 또한 생각해 볼만한 것들이라서 읽기에 좋았다. 기회가 되시면 모두들 꼭 한번 읽어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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