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송 1
히라노 게이치로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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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2권 겉표지에 보면 '이것은 시대를 뛰어넘은 천재들의 영혼에 관한 이야기이다.'라고 적혀있다. 1권 700페이지나 되는 분량을 읽어 놓고도 이 구절에 동감하지 못했다. 2권을 다 읽은 후 책을 덮으니 이 구절이 내 눈 앞에 어때? 그렇지? 라고 하는 듯 보여졌다. 그래, 그랬다. 2권을 다 읽은 후 이 구절을 보면서 나는 맞는 말이야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보다 더 정확한 표현은 없으리라.

이 책은 딱히 누가 주인공이다, 라고 할 수가 없다.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주인공이 되어서 자신의 눈에 비친 타인에 대한 이야기와 이야기 도중 자신이 그 이야기를 하면서 느끼는 세세한 감정까지 1인칭으로 표현되어 있다. 각각의 인물에 따라서 말이다. 그래서 이 책은 이 책 속의 등장인물들을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 준다.

그리고 들라크루아의 경우, 지나치리만큼 세세한 감정까지 잡아낸다. 상대방과 예술에 대한 토론을 하면서도 상대방은 내 의도를 이렇게 받아들였군, 그러면 이렇게 이야기 할까 하다가 아니, 그냥 상대방이 받아들인대로 적당히 맞장구나 쳐 주자, 이런 생각에 지금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런 이야기까지 모조리 다 이야기 하고 있다. 그래서 들라크루아의 한 마디, 한 마디에 그가 어떤 심경으로 그런 말을 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이 책의 저자인 히라노 게이치로가 받아들인 클라크루아의 모습과 그 사람의 고뇌등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것이다. 아마, 이 들라크루아의 예술론과 그의 고독에 깊히 동화 되었기에 이런 장대한 책을 낼 수 있었겠지.

나는 끝내는 이 책의 주인공이 들라크루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쇼팽은, 만인에게 사랑받고 그 사랑으로 자신의 재능과 생활을 유지하는 인물로 그려진다. 이 소설 속에서는 마치 쇼팽이 주인공인 것 같다. 쇼팽과 그의 연인 조르주 상드, 그리고 그녀의 가족들, 쇼팽의 지인들, 이 모든 사람들이 쇼팽 주위를 감싸고 있고 이들을 위주로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들라크루아 쪽으로 시선이 넘어오면 그의 연인과 몇 장면, 사용인인 제니와 몇 장면, 가까운 친구들과 몇 장면, 하지만 이는 대부분 그의 예술에 대한 이야기들.
이야기의 흐름은 쇼팽을 따라가지만 정작 중요한 알맹이는 들라크루아가 쥐고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쇼팽의 죽음 부분에선 두 천재의 대비가 이루어진다. 그리고 이 쇼팽의 죽음을 앞에 두고 들라크루아가 보여 준 행동을 통해 이 책의 주인공은 들라크루아라는 나의 생각에 확신이 생겼다. 쇼팽은 만인에게 사랑 받고 그 만인에 의해 재능을 인정 받고 그 인정으로 그의 예술가적 지위와 생활, 그리고 죽을 때 까지의 안식처, 등을 제공받았으며 모든 이가 그의 천재를 위해 그를 아끼고 배려해 주었다. 하지만 들라크루아는? 들라크루아는 애초에 화단의 이단자로 분류되어 있어 그의 성장과 지위에는 불안요소가 존재했다. 하지만 들라크루아는 그때마다 적절한 처세로 자신의 창작 활동 앞에 나타난 난관들을 헤쳐나간다. 그리고 화가로서 자신의 작품이 오래도록 안전하게 보관 될 수 있는 모든 지혜를 짜 내며 자신의 화가로서의 생명력을 자기 스스로가 키워 나갔다. 이는 나에게 냉혹한 천재의 모습으로 비쳤다.

들라크루아의 천재는 들라크루아로 하여금 자신의 가족의 죽음, 가까운 지인의 죽음, 심지어는 쇼팽의 죽음마저 외면하게 만들었다. 쇼팽이 위독한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그의 곁에 있지 않았다. 이유는? 언제 죽을 지를 몰라서. 지금 당장 죽을 지 저 상태로 얼마나 있다 죽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는 한번 그 곁에 있으면 쇼팽의 임종까지 그 옆을 지켜야만 한다. 그 기간동안 자신은 창작활동을 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그는 쇼팽의 죽음을 외면하고 그의 창작을 위한 활동을 하게 되고 결국 그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채, 그의 부음을 받고 파리로 돌아오게 된다. 돌아와서 조차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파리를 떠난다. 그의 죽음, 그의 부재에 대한 슬픔을 감당하기 너무 힘들어서? 아니, 그 슬픔으로 인해 자신이 창작활동을 하지 못할까봐. 죽기 직전의 쇼팽을 외면한 것과 다르지 않은 이유로 쇼팽의 죽음이라는 슬픔까지 외면해 버린 채 파리를 떠나 창작활동에 몰두 하게 된다. 들라크루아는 냉혹한 천재이다.

아니, 그의 천재가 그에게 너무 냉혹했다. 그를 철저히 사용해서 그 천재를 드러낸다. 이 두 천재, 자신의 천재를 자신의 통제아래 두려고 했던 쇼팽과 그 자신의 천재에 휘둘려버린 들라크루아. 쇼팽은 연주에 있어 모든 걸 그의 통제아래 두기를 원했고 자신의 요구사항이 수용되지 않으면 그의 창작활동에 악영향을 끼칠 줄 알면서도 거부했다. 자신의 예술적 재능이 정치를 위해 사용되길 바라지 않았고 정치에 부응한 적도 없다. 그는 그의 천재를 지극히 조심스럽게 대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천재를 끝내 모두다 사용하지 못하고 젊은 나이에 죽어야만 했다.

하지만, 들라크루아는 자신의 창작활동을 위해 그 시대의 정치적 상황을 교묘하게 이용하기도 하고 그 시대의 정권교체에 유연하게 대응해 모든 정권에서 그의 창작활동을 보장받았다. 쇼팽은 모든 이가 그의 재능을 조심스레 다루어 쇼팽이 원하는 상황에 맞춰 주었지만 들라크루아는 본인이 그러한 상황을 만들어 갔다. 쇼팽은 쇼팽 스스로 그의 천재를 사용하고 통제했지만, 들라크루아는 그의 천재가 그를 사용했기에 쇼팽은 끝내 그의 천재를 모두 다 사용하지 못했고 들라크루아는 창작의 고뇌와 고통 속에서도 끊임없는 창작을 해 내야만 했다.

아, 말이 무지 길었다. 어쨌든 이건, 냉혹한 천재 들라크루아의 이야기이다. 나는 이 책의 주인공은 들라크루아라는 냉혹한 천재였다고 생각한다. 그의 천재로 인해 그의 지인들의 죽음과 죽음 후의 슬픔까지 외면해야만 했던, 그렇게 자신의 천재 앞에 자기 자신을 모조리 바쳐야만 했던 한 천재의 이야기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그리고 어쩌면 히라노 게이치로는 진정한 천재가 되고 싶어하는 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본다. 천재적인 재능만 갖춘 그런 천재 말고, 그 재능을 세련된 기술로 펼쳐내 보일 수 있는 그런 천재 말이다. 히라노 게이치로의 성실성을 염두에 둔다면 그리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다. 히라노 게이치로. 요, 이쁜 녀석. 일본에 가면 내가 널 가만두지 않을테야! 

 

오타 신고.

2권 p45

고뇌하는 그녀 -> 고뇌하는 그 (문맥상 그녀가 아니라 그,일걸요.)

2권 p300

거슬리는 부분이 겁니다. -> 거슬리는 부분이 (있는) 겁니다.  (있는,이 빠진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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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드러커 자서전
피터 드러커 지음, 이동현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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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피터드러커 자서전이라고 하는 이 책에 정작 피터드러커 자신에 대한 기술은 없다. 하지만 그는 그 스스로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기 보다는 다른 이들에 대한 서술을 하면서 은근슬쩍 자신을 내비치는 방식을 택했다. 자서전에 대한 이러한 방식은 스스로를 관찰자라고 칭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 책 속에서 가장 피터드러커에 대해 잘 설명해 주는 글은 그가 스스로 개정판을 내며 쓴 글이다. 그 글 속에서 그는 크리스마스 일화를 들어 스스로를 관찰자라 칭하는데 이 일화 속에는 관찰자로서의 피터드러커뿐만 아니라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경영학자에 대한 자질까지 엿보인다. 이 일화 하나로 바로 피터드러커라는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를 관통해낸다.  

 이 책 속에는 피터드러커가 만난 사람들에 대해 기술되어 있는데 그 중 가장 흥미로웠던 사람은 그의 할머니였다. 아, 나는 이 할머니가 너무 좋다. 그의 할머니는 참 재밌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상당히 합리적인 사람이었다. 쓸모없게 된 물건들을 은행 계좌에 넣어달라고 했던 할머니는 거절당하자 그 지점의 계좌를 없애 버린다. 그리고서는 같은 은행의 다른 지점에 계좌를 개설한 후 물건들은 집어 넣지 않는다. 왜 굳이 같은 은행을 선택했냐는 질문에 그 은행이 좋은 은행이니까라고 답한다. 그러면 왜 다른 지점에는 물건들을 맡기지 않았냐고 물으니 그 지점에서는 자신에게 빚진 것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할머니의 생각에는 오래전부터 거래하던 지점은 자신에게 빚진 것이 있었고, 때문에 자신의 물건들을 맡아 줄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 일화를 보면서 파울로 코옐료의 호의 은행이 떠올랐다. 이 할머니는 인간관계 속에 서로 주고 받은 호의까지 거래의 대상에 포함시켰던 것이다. 그리고 자신과 마찰을 빚은 치과의사에게 계속해서 치료를 받는데 자신과의 마찰은 마찰이고 그 의사의 실력이 뛰어난 것은 뛰어난 것이기 때문이라 했다. 이 할머니는 이성적으로 문제의 본질을 구별해 내어 그에 맞는 행동을 선택했던 것이다. 나는 이러한 할머니의 모습에서 피터드러커를 생각했는데, 그의 경영학적인 자질은 어쩌면 할머니로부터의 유전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할머니부터 시작해서 피터드러커가 성장해가며 만났던 인물들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이 책은 자연스레 피터드러커가 살았던 시대의 흐름과 같이한다. 전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했고 전쟁 후의 폐허 속에서 살아가야했던 걸 생각하면 저 시대가 불행했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피터드러커가 부럽기도 했다. 그들의 세대가 부럽기도 했다. 그들의 윗세대가 전쟁으로 인해 많이 죽었고, 때문에 그 빈 자리를 채워야 했기에 이들은 상대적으로 어린 나이에도 주요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좀 더 많은, 그리고 좀 더 파격적인 기회가 있었던 것이다. 이 점이 참 부러웠다.  

 나치 시절로 들어서면 헨슈와 셰퍼라는 사람이 나오는데 이들에 대한 비유도 인상적이었다. 헨슈는 악을 자신의 야망에 이용하겠다고 한 사람으로, 셰퍼는 더 나쁜 것을 막기 위해 악과 손을 잡은 사람으로 나오는데 결론은 둘 다 그 악의 도구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 시대에 나치와 손 잡은 많은 사람들이 이 두 유형 중의 하나이지 않았을까?

 버키 풀러와 마셜 맥루안에 대한 이야기도 인상적이었는데 버키는 자신을 따르는 사람 하나 없이 황무지에서 40년을 보내면서도 자신의 비전에 헌신한 사람이었고, 마셜은 비전을 찾는데 25년을 소비한 끝에 자신의 비전을 붙잡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의 공통점은 자신의 시대가 왔을 때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럴 수 있기를 바랬다. 나 또한 25년이 걸리더라도 나의 비전을 붙잡을 수 있기를, 그리고 그 비전에 헌신할 수 있기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시대가 왔을 때 그 시대에 영향을 줄 수 있기를 바랬다.

 뒷 부분에 가면 GM에서 만났던 사람들에 대해 많은 기술을 하고 있는데 피터드러커가 만났던 사람들 모두가 그러하듯이 모두 그 나름대로 의미 있고 또 읽는이에게 시사할 만한 점이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다. 이 책은 피터드러커 자서전인 동시에 그가 살면서 만났던 사람들 중 인상적이었던 사람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함으로써 그가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했듯이 독자들도 그 속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예전에 읽었던 '피터드러커의 마지막 통찰'도 그랬는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또 그 답을 스스로 생각해보기를 바란다고나 할까. 때문에 이 책은 나에게 있어 읽으면 재밌으면서도 스스로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보게 만드는 책이 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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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 크래커스
한나 틴티 지음, 권영미 옮김 / 문학동네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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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눈에 잘 안 들어왔어. 그런데 읽다보니 너무 재밌는 거 있지! 그래서 난 너무 좋아서 혼자 베실베실 웃어도 보다가 얼굴에 책을 묻고 종이 냄새를 한껏 맡아 보다가 그랬어.

동물과 사람이 어쩌고 저쩌고 기괴하고 어쩌고 그런 건 잘 모르겠어. 그런데 왜, 어떤 여자랑 남자가 있는데 그 남자가 여자 집에 다녀갈 때마다 여자는 달력에다가 엑스 표시를 했대. 그게 거의 매일이었다가 이틀, 삼일 걸러서였다가 일주일에 한번 한달에 한번 하더니 어느새 몇 달째 엑스를 긋지 못한거야. 그래서 그 여자는 거울을 가만히 들여다 보다가 얼굴에다가 엑스 표시를 해 버렸어. 알지? 어떤 느낌인지? 이런 식이야. 이런 식으로 말 해. 이 작가는. 그래서 난 너무 좋아서 어쩔 줄을 몰라 했어.

그리고 말이야 어느 살인청부업자가 있었어. 그런데 그 바닥이 다 그렇잖아. 젊을 때 단물 다 빨아먹고 나면 언젠가는 자신과 같은 업종에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했던 그대로 당하는 거~ 그래서 이 남자도 결국엔 그런 순간이 올 줄 알았고 그런 순간이 왔어. 이 남자는 피하지 않아. 다만, 자신이 자란 빵집에 가서 돌아가신 분이 남긴 빵집을 운영하다가 그 분의 레시피를 한가로이 보다가 어느 순간 기척을 느껴. 온 거지. 그래, 기다린 순간이 온 거야. 그 때 이 남자는 이런 생각을 한다? 어린 시절 자신이 즐겨 먹던 달콤한 설탕과자. 그 맛이 떠오르고 그 감촉을 느끼기 위해 밀가루도 살짝 만져봐. 와, 충만해, 이제. 그래서 이 남자는 한번에 심장까지

관통 할 수 있도록 허리를 쭈욱 펴지. 이런 식이야.

그래서 이 책이 난 너무 좋았다. 원래는 대충대충 읽을려고 했는데 사실, 대충대충 읽고 있었는데 결국 난 사로잡히고 만 거지. 이 작가가 그다지 친절하진 않기 때문에 아마 내가 놓친 것들이 많을 거야. 하지만, 내가 잡아 챈 부분만으로도 난 충분히 좋았어. 이 책은 이 작가의 데뷔작이래. 소설집인데 기다려 지는 거 있지. 이 작가의 다음 작품이. 언제 나오지? 인연 닿으면 꼭 봐야지, 싶은 작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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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제왕의 생애 (반양장)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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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결국, 우리의 삶인 것이다-라고 말하기를 거부하겠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과연 이것이 결국 우리의 삶인 것이다-였을까? 

이미 작가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세월을 자신이 직접 살아내기 보다는 다관에 나앉은 늙은 손님처럼 세상의 모든 일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모두 자신의 눈으로 지켜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단문이 아니라 단백인 것이다.

단문의 시선으로 이 책을 읽었다면 나는 결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의 삶을 들여다 보듯이 이 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단문의 입장에서 단백을 분개하고 단문의 와신상담을 지지하며 하루 빨리 단문이 제왕이 되기를 빌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단백이었고, 노회한 여우의 희생물이 된 단백이었고, 어린 주제에 잔인하기까지 했던 단백이었고, 귀뚜라미를, 새를 좋아하던 단백이었고, 기어이 광대가 되고야 만 단백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이야기들을 나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는, 그저 다관에 나앉아 흘러가는 세월을 무심히 지켜보는 시선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단백이 현재가 아닌 과거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작가는 하필이면 단백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하필이면 과거 회상조로 단백을 작중 화자로 만들어 버렸고 거기에다 친절하게 서문에 다관의 늙은 손님의 시선까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나의 삶으로, 우리네 삶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작가는 모든 기교를 이용하여 이 책을 최대한 무심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단백의 잔인함 앞에서도 크게 분노하지 못했고 혜비와의 사랑도 그다지 간절하게 느끼지 못했으며 폐왕이 된 단백에게서 측은지심을 느끼지도 못했으며 끝내는 광대의 꿈을 이루어 낸 단백에게 박수를 쳐 줄 수도 응원을 해 줄 수도 없었으며, 오히려 그게 서글프지도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이 아, 그렇구나. 아, 그랬군요. 그래서요...? 이, 그래서요..? 에서 작가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많은 이들이 말하는 대로 결국에 우리네 삶은 그런 것, 이런 것일까?

작가는 삶이란 슬픔과 기쁨, 괴로움과 즐거움이 갈마드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 그렇군요, 우리네 삶은 그런 것이군요, 그러니 우리가 느끼는 기쁨, 우리가 느끼는 슬픔, 즐거움, 괴로움 모두 당연한 것이군요,가 아니라 그러니 우리는 그저 타인의 삶을 구경하듯이 우리네 삶도 크게 슬퍼할 것도 크게 노여워 할 것도 없군요..크게 욕심부릴 것도 없이 그저 떠도는 광대처럼 이 한 세상 즐거이 살다 가면 되겠군요..때로는 우리가 왜 사는 지도 모르면서 그저 살라니 살고 죽으라니 죽는 듯이 그렇게 이 한 세상 머물다 가면 되겠군요..내가 나비였을까, 나비가 나였을까, 하면서 그저 이 한 세상 꿈꾸듯 살다 가면 되겠군요..라는 생각을 했다.

책은 빨리 읽히지도 늦게 읽히지도 않았다. 한참을 내달리며 읽다가 어느 순간 딱 맥이 끊어지고, 그러다 또 몰두하여 읽다가 또 맥이 끊어지고를 반복했다. 그래서 순간, 쑤퉁의 이야기 솜씨가 이 책에서는 다 발휘되지 못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맥이 끊긴 사이사이, 나는 내 나름대로 이 책을 소화시키면서 내 나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그 잠깐 잠깐의 공백이 이 책을 좀 더 맛있게 읽을 수 있게 해 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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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경영 서돌 CEO 인사이트 시리즈
이나모리 가즈오 지음, 김형철 옮김 / 서돌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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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르마 경영. 늘 책을 받을 때마다 느끼는 설레임을 안고 배송 박스를 뜯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책 앞에 띠지가 둘러져 있는데 그 띠지에 이런 문구가 있었다. ‘삼성 경제 연구소 선정 <CEO가 휴가 때 꼭 읽어야 할 책>’. 헉, 불쌍한 CEO. 휴가 때조차 편히 쉴 수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음..이나모리 가즈오라는 사람은 엄하면서도 인자하게 생겼네, 교세라 그룹이 어디지? 라는 생각을 하면서 이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 책은 경영서적이라기 보단 철학 서적이라고나 할까. 철학 이야기를 하는데 그 이야기를 쉽게 하기 위해서 경영이라는 예를 택한 느낌이었다. 경영이라는, 그리고 그 창업자의 인생을 통해 철학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이 책의 입장은 유신론이다. 일본인은 원래 산천초목 실개성불, 정령사상 등으로 유일신은 믿지 않지만 세상에 신이 존재한다는 걸 믿는 민족이다. 이는 우리네 옛 조상들과도 비슷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웃집의 토토로에 보면 먼지 뭉치에게도 령이 있다고 믿는 등, 그야말로 만물에 령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민족이 일본인 인 것이다. 이에 비춰 보면 이나모리 가즈오의 신에 대한 철학은 특별하달 것은 없었다. 하지만 이나모리 가즈오가 특별할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믿음 하에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고 하늘을 감동시켰다는 것일 게다. 신념이 있는 사람이었다. 이나모리 가즈오는. 이론으로만 무장된 사람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오로지 경험에만 의지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하에 최선을 다했던 사람이었고, 그러한 경험들이 인생이라는 큰 틀 안에서 언젠가는 보상 받았다고 믿었기에 그러한 믿음을 아직까지도 유지할 수 있었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다. 요즘 젊은이들은 젊은이로서의 패기와 신념을 가지기 이전에 세상에 통용되는 단기적인 시점에서의 편법을 먼저 배우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구체적으로 이나모리 가즈오는 어떤 말들을 했는가? 내가 감명 받은 이야기들을 중심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 우선 이 책의 프롤로그에 보면 ‘이 세상을 살아가는 의미는 영혼을 닦아나가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인상적인 견해이다. 언젠가 내가 존경하는 이외수 선생님께 들은 이야기 중에 우리는 자기완성을 도모하기 이 세상에 온다는 말이 있었다. 갑자기 그 말이 떠오르면서 역시 인생에 있어 깊은 성찰을 하신 분들이 내 놓는 의견은 일맥상통 하는구나 하는 걸 느낄 수 있었다. 각자 인생의 출발선은 다르지만 저마다 다른 출발선 상에서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적용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의 영혼일 것이다. 영혼은 가난한 자든 부자든 사회적 지위에 차별 받지 않고 그 사람이 닦아 나가기 나름이기 때문이다. 인생을 살아가는 의미를 영혼의 수양에 두고 있기에 자신만의 도덕률, 신념을 한 평생 지켜가며 살 수 있었으리란 생각이다.





그리고 이나모리 가즈오는 사고방식을 중요시한다. 이나모리 가즈오의 인생의 방정식을 보면‘인생(일)의 결과 = 사고방식 * 열의 * 능력’ 이라고 되어 있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고방식이다. 사고방식에는 마이너스도 있기 때문이다. 이 간단한 수식 하나로 사람들의 마음가짐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나타내었다. 경영인다운 효율적인 방법이었다고나 할까.


사고방식과 더불어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노력이다. 이나모리 가즈오가 말하는 노력은 단순히 남보다 열심히 했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집중해서, 오로지 그 한 가지에만 집중해서, 그 정도에 있어서는 신이 도와주고 싶을 정도라니 과연 그는 한 평생을 살아오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면서 살았던 것일까? 꾸준히 노력하지 않는 사람들은 집중력으로 승부한다는 말을 종종 하곤 하지만 이나모리 가즈오는 그 집중력에 꾸준한 노력까지 말하고 있으니 이나모리 가즈오가 성공할 수 없었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이 책은 경영인들을 위한 책이라지만, 띠지엔 CEO들이 휴가에 가서 읽어야 하는 책이라고 되어 있지만 오히려 요즘 젊은이들이 읽어야 하는 책이지 않을까? 이렇다 할 신념도 없고 어떻게 열심히 해야 하는지도 모르고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 원하는 것을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테크닉은 알고 있을지 모르나 어떤 마음가짐이어야 하는지 모르는 젊은이들이 읽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젊은이가 하고 싶은 분야가 어느 분야이든 이나모리 가즈오의 철학을 바탕으로 해서 한 세상 살아간다면 적어도 그가 원하는 분야에서만큼은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이루면서 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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