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제왕의 생애 (반양장)
쑤퉁 지음, 문현선 옮김 / 아고라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이 책을 읽고 나서, 결국, 우리의 삶인 것이다-라고 말하기를 거부하겠다. 작가가 하고자 하는 말이 과연 이것이 결국 우리의 삶인 것이다-였을까? 

이미 작가는 서문에서 밝히고 있듯이 세월을 자신이 직접 살아내기 보다는 다관에 나앉은 늙은 손님처럼 세상의 모든 일과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끊임없이 흘러가는 세월을 모두 자신의 눈으로 지켜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래서 주인공이 단문이 아니라 단백인 것이다.

단문의 시선으로 이 책을 읽었다면 나는 결코 평정심을 유지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남의 삶을 들여다 보듯이 이 책을 볼 수 없었을 것이다. 단문의 입장에서 단백을 분개하고 단문의 와신상담을 지지하며 하루 빨리 단문이 제왕이 되기를 빌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인공은 단백이었고, 노회한 여우의 희생물이 된 단백이었고, 어린 주제에 잔인하기까지 했던 단백이었고, 귀뚜라미를, 새를 좋아하던 단백이었고, 기어이 광대가 되고야 만 단백이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이야기들을 나의 삶이 아닌, 타인의 삶을 들여다 보는, 그저 다관에 나앉아 흘러가는 세월을 무심히 지켜보는 시선으로 이 책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그러한 단백이 현재가 아닌 과거를 말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니까 작가는 하필이면 단백을 주인공으로, 그리고 하필이면 과거 회상조로 단백을 작중 화자로 만들어 버렸고 거기에다 친절하게 서문에 다관의 늙은 손님의 시선까지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나의 삶으로, 우리네 삶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작가는 모든 기교를 이용하여 이 책을 최대한 무심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래서 나는 단백의 잔인함 앞에서도 크게 분노하지 못했고 혜비와의 사랑도 그다지 간절하게 느끼지 못했으며 폐왕이 된 단백에게서 측은지심을 느끼지도 못했으며 끝내는 광대의 꿈을 이루어 낸 단백에게 박수를 쳐 줄 수도 응원을 해 줄 수도 없었으며, 오히려 그게 서글프지도 않았다.

그냥 모든 것이 아, 그렇구나. 아, 그랬군요. 그래서요...? 이, 그래서요..? 에서 작가는 무슨 말이 하고 싶었을까? 많은 이들이 말하는 대로 결국에 우리네 삶은 그런 것, 이런 것일까?

작가는 삶이란 슬픔과 기쁨, 괴로움과 즐거움이 갈마드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아, 그렇군요, 우리네 삶은 그런 것이군요, 그러니 우리가 느끼는 기쁨, 우리가 느끼는 슬픔, 즐거움, 괴로움 모두 당연한 것이군요,가 아니라 그러니 우리는 그저 타인의 삶을 구경하듯이 우리네 삶도 크게 슬퍼할 것도 크게 노여워 할 것도 없군요..크게 욕심부릴 것도 없이 그저 떠도는 광대처럼 이 한 세상 즐거이 살다 가면 되겠군요..때로는 우리가 왜 사는 지도 모르면서 그저 살라니 살고 죽으라니 죽는 듯이 그렇게 이 한 세상 머물다 가면 되겠군요..내가 나비였을까, 나비가 나였을까, 하면서 그저 이 한 세상 꿈꾸듯 살다 가면 되겠군요..라는 생각을 했다.

책은 빨리 읽히지도 늦게 읽히지도 않았다. 한참을 내달리며 읽다가 어느 순간 딱 맥이 끊어지고, 그러다 또 몰두하여 읽다가 또 맥이 끊어지고를 반복했다. 그래서 순간, 쑤퉁의 이야기 솜씨가 이 책에서는 다 발휘되지 못한 것인가 하는 의구심을 가졌지만 다 읽고 나서 생각해 보니, 그 맥이 끊긴 사이사이, 나는 내 나름대로 이 책을 소화시키면서 내 나름의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어쩌면 그 잠깐 잠깐의 공백이 이 책을 좀 더 맛있게 읽을 수 있게 해 준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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