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과 환상의 경계:

City of Pirates(1983), After Hours(1985), Stranger than Fiction(2006)
 


1. 망명자 감독이 써내려간 초현실주의적 'Vanitas', City of Pirates(1983)

  정신분석학 입문 강의의 첫 번째 과제물은 '자유 연상(Free association)'에 따라 떠오르는 생각들을 적어내는 것이었다. 자유 연상, 말 그대로 머릿속에서 일어나는 생각들을 그 어떤 통제나 검열없이 털어놓게 함으로써 무의식에 접근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그러한 정신분석학적 도구를 발빠르게 수용한 것은 초현실주의자들이었다. 프랑스의 작가로 초현실주의를 주창한 앙드레 브르통(André Breton)은 무의식의 표현을 위한 '자동 기술법(automatic writing)'을 착안해냈다. 비현실적 환상으로 채워진 영화 세계를 보여주는 칠레 출신의 감독 라울 루이즈(Raúl Ruiz)의 '해적들의 도시(City of Pirates. 1983)' 시나리오도 그런 방식으로 쓰여졌다. 라울 루이즈는 자신에게 떠오르는 무의식적 사고들을 종이 위에 무작정 써내려갔다. 그리고 그것을 가지고 영화를 찍었다.

  영화는 '해외의 땅, 종전 1주일 전'이라는 의문의 자막으로 시작된다. 이시도르(Isidore)라는 이름의 젊은 여자는 어느 섬에서 어머니, 의붓아버지와 살고 있다. 이시도르는 불안과 우울에 사로잡힌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관객들은 그 이유들 가운데 하나가 의붓아버지의 성추행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괴로워하는 이시도르는 방에 숨어든 어린 소년 말로를 만나게 된다. 가족들이 모두 살해당했다는 말로는 이시도르에게 약혼을 제안한다. 어린 약혼자 말로, 버려진 성에 사는 또 다른 추방자 토비, 이시도르는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기이한 여정에 나서는데...

  자동기술법에 따라 쓰여진 시나리오를 관객이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방식으로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영화는 라울 루이즈의 머릿속에서 일어났던 생각의 파편들을 이어붙인 것이다. 100편이 넘는 영화를 만든 이 다작 감독은 결코 대중적인 작품을 만든 이는 아니었다. 이 감독에게 있어서 생의 결정적인 사건은 칠레의 정치적 격변이었다. 피노체트의 쿠데타는 라울 루이즈가 칠레를 떠나 프랑스에서 살도록 만들었다. 이 영화를 보면 망명자로서 그가 느끼는 조국에 대한 부채의식, 무지막지한 독재자에 대한 분노가 느껴진다.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피와 칼의 이미지가 그것을 입증한다.

  이시도르의 어린 약혼자 말로는 가족들을 살해하고 값비싼 보석들을 훔쳐서 달아난 사이코패스 살인마로 나온다. 소년은 이시도르의 의붓아버지를 살해하고, 이시도르에게 자유를 선물한다. 어떤 면에서 고통받는 이시도르는 감독 자신의 영화적 자아일 수도 있다. 라울 루이즈는 고국을 떠나 타국에서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자신의 상황을 조난자, 내지는 해적들에 의해 납치된 비운의 승객으로 여겼던 것인지도 모른다. '해적들의 도시'는 영화 속에서 그 어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이시도르는 섬을 떠나지 못하고, 영화가 끝날 무렵에는 해골에 가까운 모습으로 나이를 먹고 늙어간다.

  이 영화를 줄거리로 파악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무익하다. 라울 루이즈는 다양한 색들을 사용한 필터로 촬영된 바다의 풍경들, 살바도르 달리와 같은 초현실주의 회화에서 차용된 이미지들로 내러티브를 만들어 나간다. '해골'의 이미지가 여러 번 등장하는데, 이것은 이 영화가 일종의 '바니타스(Vanitas, 유한한 인생의 허무함을 일깨워주는 그림)'로 기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라울 루이즈는 변화시킬 수 없는 조국의 현실에 대한 무력감과 고통, 독재자를 향한 독설을 뒤틀린 환상의 세계로 표현한다. 그는 망명한 예술가로서의 책무를 잊지 않았다. '해적들의 도시'는 해외의 땅에서 내면의 전쟁을 치루는 자신에 대한 보고서인 동시에 조국 칠레를 향해 쏜 비탄의 화살이기도 하다.


2. 작가와 등장인물의 만남, Stranger than Fiction(2006)

  라울 루이즈의 '해적들의 섬'이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그린 매운 맛 영화라면, 마크 포르스터의 2006년작 'Stranger than Fiction'은 순한 맛이라고 할 수 있다. 영화는 주인공 해롤드 크릭(윌 패럴 분)의 일거수 일투족을 설명하는 내레이션과 함께 시작된다. 국세청 직원으로 오로지 숫자와 씨름하며 정해진 규칙대로 사는 그의 삶에는 '재미'라고는 눈꼽만큼도 없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이상한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자신의 행동을 실시간으로 설명하는 여자의 목소리 때문에 해롤드는 미쳐버릴 것 같다. 게다가 그 목소리는 해롤드의 죽음을 예고한다. 정신과 의사에게 찾아갔더니, 조현병(정신분열증; 주요한 증상은 환청, 환각을 비롯해 망상과 같은 이상 지각이다)이라고 말한다. 자신은 절대로 미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해롤드는 문학 교수에게서 도움을 구하는데...   
 
  해롤드에게 들리는 목소리는 전지적 시점의 내레이터, 즉 해롤드를 주인공으로 글을 쓰는 작가이다. 영화는 두 개의 이야기가 동시에 진행된다. 한 축에는 글을 쓰다 막힌 작가 카렌(엠마 톰슨 분)과 글쓰기를 돕는 출판사 직원 페니, 그리고 또 다른 축에는 카렌이 써내려가는 해롤드의 삶이 자리한다. 평행선을 달리며 결코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은 작가와 등장인물은 해롤드가 자신의 예고된 죽음을 거부하면서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해롤드는 결코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 처음으로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고,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고, 그렇게 자신이 정한 규칙들을 깨가며 삶을 즐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작가와 등장인물과의 만남, 영화 'Stranger than Fiction'의 플롯은 무척 기발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게 새롭지도 않다. 루이지 피란델로(Luigi Pirandello, 1867-1936)의 희곡 '작가를 찾는 6인의 등장인물'에는 작가가 창조한 희곡 속 등장인물들을 두고 모델이 된 실제 인물들의 싸움이 리허설 장면에서 펼쳐진다. 현실과 허구를 오가는 이 독특한 희극은 우리의 삶에서 '무엇이 진짜인가'에 대한 진지한 질문을 던진다. 영화 속에서 작가 카렌이 만들어낸 등장인물 해롤드는 진짜 현실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카렌은 그때까지 써냈던 소설의 주인공에게 늘 그러했듯 죽음으로 끝을 내려한다. 해롤드가 살 수 있는 방법은 작가를 찾아가 결말을 바꾸라고 부탁하는 것 뿐이다. 그런데 해롤드는 그 작가가 누구인지 모른다. 해롤드가 작가를 찾아가는 여정, 그것이 이 영화를 흥미롭게 만든다.

  'Stranger than Fiction'은 작가가 만들어낸 등장인물이 실제의 삶을 살고 있다는 설정으로 관객들을 유인한다. 여기에 해롤드의 로맨스, 작가의 존재를 특정해 나가는 추리의 과정, 등장인물에게 신과 같은 작가의 현실적 고뇌가 겹쳐진다. 관객들은 그 모든 이야기가 말도 안되는 소설이라고 생각하지만, 이 영화가 설계한 환상의 세계 그 자체에 몰입하게 된다. 과연 카렌은 삶과 죽음, 그 둘 중 어떤 것을 해롤드에게 선사할 것인가? 이야기의 완결성을 생각한다면 해롤드는 죽어야 하고, 해롤드의 새로운 인생을 위해서라면 어떻게든 삶을 이어가게 해야한다. 여러분이 카렌이라면 해롤드의 운명을 어떻게 써내려갈 것인가? 이 영화는 작품성과 흥행 모두 좋은 성과를 냈다. 마크 포르스터는 소설과 현실을 오가는 독특한 이야기를 대중적인 입맛에 맞추어 무난하게 연출했다.


3. 마틴 스콜세지가 그려낸 뉴욕 환상 특급, After Hours(1985)

  어렸을 적에 TV에서 방영된 '환상 특급'이라는 외화 시리즈는 참으로 기괴하고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차 있었다. 마틴 스콜세지의 1985년작 '특근(After Hours)'을 보면서 그 '환상 특급'을 떠올렸다. 영화는 평범한 직장인이 경험한 악몽과도 같은 하룻밤의 모험담을 그렸다. 늘 판에 박힌 지루한 일상을 살아가던 데이터 입력자 폴은 카페에서 우연히 만난 매력적인 여성 마시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소호(Soho)를 찾는다. 총알 택시 기사의 난폭운전에 20달러를 잃은 것부터 어째 조짐이 좋지 않다. 어떻게든 마시를 꼬셔보려는 폴의 시도는 무산되고, 집으로 돌아가려는데 돈이 없어서 지하철도 못탄다. 다시 마시에게로 돌아와 보니, 여자는 죽어있다. 그 와중에 절도범으로 몰린 그는 분노한 소호 자경단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과연 그는 무사히 집에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영화를 만들 무렵의 마틴 스콜세지는 무척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었다. 그의 이전 작품들은 비평적으로는 좋은 평가를 받았으나, 흥행 수익 면에서는 그렇질 못했다. 그 때문에 그는 제작사들에게 'box-office bomb(흥행 실패작)' 양산자로 여겨졌다. 제작사들의 외면을 받는 괴로운 시기에 스콜세지는 독립 영화를 만드는 심정으로 'After Hours'를 후다닥 만들었다. 그를 움직인 것은 매력적인 시나리오였다. 조셉 미니언의 각본에 스콜세지가 수정을 가한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처음에는 결말도 정해져 있지 않았다. 촬영 내내 스콜세지는 지인들에게 결말에 대한 조언을 구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엔딩은 정말이지 꽤 괜찮다.

  영화의 주인공 폴이 대변하는 중산층 인텔리 직장인의 작은 일탈은 예기치 못한 사건들로 이어진다. 시작은 '헨리 밀러(Henry Miller, 외설적인 내용의 소설로 유명)'의 소설책에서부터 였다. 카페에서 그 책을 읽고 있는 폴에게 마시가 접근한다. 처음에 폴의 머릿속에는 가볍게 하룻밤 보낼 상대를 찾을 심산이었다. 그렇게 해서 마시가 머무는 조각가 친구 키키의 집이 있는 소호에 가게 된다. 그러나 소호에서 만나는 여자들은 모두 폴의 성적인 추동(sexual drive)을 좌절시켜 버린다. 죽어버린 마시, 도난범으로 모는 카페 여종업원 줄리, 폴을 추적하는 자경단을 이끄는 게일, 그를 자경단에게서 숨겨준다며 급기야 회반죽으로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들어버린 준까지. 폴의 수난은 그렇게 이어진다.

  마틴 스콜세지는 폴이 겪는 성적인 좌절감에 더해 실존적 위기를 덧붙인다. 마시의 죽음을 알리기 위해 폴은 키키가 있는 클럽 베를린에 들어가려고 한다. 그러나 험악한 인상의 클럽 문지기는 다른 사람은 입장시키면서 폴은 들어갈 자격이 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부분은 스콜세지가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의 소설 '심판'의 일부분에서 따왔다. 법정으로 들어가기 위해 갖은 애를 쓰지만 문지기에 의해 번번히 거부당하는 남자의 이야기. 그처럼 폴도 클럽 베를린과 소호의 구성원이 되지 못한다. 억지로 우겨서 들어간 클럽에서 그는 강제로 삭발을 당하는 수모를 겪는다. 그곳은 폴에게 악몽과 같은 경험을 선사하는 끔찍한 공간이 된다.

  그렇게 영화는 '소호'라는 장소에 일탈과 공포, 불안정성과 과격함을 부여함으로써 비현실적 공간으로 만든다. 영화의 마지막, 폴은 결국 아침 일찍 열리는 직장의 철문을 통과해 사무실 자신의 자리에 앉아서 주변을 둘러본다. 그것은 단지 소호에서 직장으로의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환상에서 현실로의 복귀이며 정체성의 회복을 의미한다. 'After Hours'는 마틴 스콜세지의 필모그래피에서 상대적으로 과소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스콜세지가 선사하는 기기묘묘, 요절복통 '환상 특급'인 이 영화의 매력을 좀 더 많은 관객들이 발견하길 바란다. 

 

  

*사진 출처: usa.newonnetflix.info



**사진 출처: slantmagazine.com      영화 '특근(After Hours)', 영화 음악을 맡은 하워드 쇼어의 클래식에서부터 다양한 팝 음악에 이르는 선곡, 오리지널 스코어가 무척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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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Duel(1971), 1970년대 자동차 영화의 계시 

  그는 12살에 자신의 첫 홈무비를 찍었다. 나중에 영화학과에 들어갔으나 학교를 다니다가 그만 두었다. 그리고 곧바로 영화사의 TV 프로덕션 부서에 입사했다. 23살 때의 일이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걸고 첫 TV 방영용 영화를 찍은 것이 25세,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자 제작사는 영화 상영을 위해 추가 촬영을 해서 극장에 내걸었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첫 작품 'Duel(1971)'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이 영화를 보고 있노라면, 스필버그가 지닌 영화적 재능은 천부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영화의 줄거리는 아주 간명하다. 중년의 샐러리맨 데이비드는 고객과의 만남을 위해 장거리 출장길에 나선다. 고속도로에 진입한 그는 거대한 탱크로리와 마주친다. 길을 막아서는 탱크로리를 어렵사리 추월하고 가려는데, 어느 순간부터 이 탱크로리가 데이비드를 계속해서 따라잡으며 위협을 가한다. 그렇게 데이비드와 얼굴이 보이지 않는 탱크로리 기사와의 고속도로 '결투(Duel)'가 시작된다. 오직 두 대의 차가 벌이는 숨막히는 추격전, 주인공과 탱크로리 기사의 심리전, 스필버그는 러닝타임 90분 동안 관객의 시선을 단단히 붙들어 놓는다.

  'Duel'에서 집채만 한 탱크 로리가 무시무시한 속도를 내며 주인공의 차를 따라잡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스턴트맨이 낸 속도는 '30mph', km로 환산하면 '48km/h'이다. 그러니까 스필버그는 오직 촬영과 편집만으로 위압적인 속도를 창출해낸 것이다. 처음에는 별것 아닌 경주로 생각했던 샐러리맨은 죽일 듯이 달려드는 트럭에 공포감을 느낀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고속도로에서 그는 철저히 혼자다. 악마같은, 미친 운전자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고 아무리 말해도 믿는 이도, 도와주는 사람도 없다. 영화에서는 그 당시 미국 중산층이 느끼는 심리적 압박감과 사회적 피로감이 감지된다. 'Duel'에서의 기계들의 대결은 스필버그의 출세작 '죠스(Jaws, 1975)'의 인간과 식인 상어와의 대결로 비슷하게 재현된다.

  스필버그의 'Duel'은 어떤 면에서 1970년대 자동차 영화의 계시였는지도 모른다. 물론 이 영화 이전에 존재한 선구자격의 영화는 있었다. 스티브 맥퀸이 주연한 형사 스릴러물 '블리트(Bullitt, 1968)'는 잘 짜여진 플롯과 함께 스릴 넘치는 멋진 자동차 추격 장면이 들어있다. 피터 예이츠 감독은 샌프란시스코를 배경으로 시내에서 교외로 이어지는 놀라운 추격신을 보여준다. 자동차 안에서 실제 속도감을 느낄 수 있게 촬영된 장면은 관객들에게 마치 자신이 운전자석에 앉은 것 같은 느낌을 준다. 그즈음 촬영 장비들의 휴대성과 성능이 좋아짐에 따라 감독의 연출 폭이 훨씬 더 넓어질 수 있었다. 제작비의 열 배에 달하는 흥행 수익을 낸 '블리트'의 성공은 메이저 스튜디오에 영감을 주었음이 분명하다.


2. 속도에의 열망

  '블리트'가 보여준 볼거리로서의 차가 가진 가능성은 1970년대 영화에서 내러티브의 주요한 축으로 확장된다. 그런 면에서 1971년에 나온 두 편의 영화는 마치 영혼의 쌍둥이처럼 보인다. 몬티 헬만의 'Two-Lane Blacktop(1971)'과 리처드 C. 사라피안의 'Vanishing Point(1971)'는 자동차가 영화 전체를 지배한다. 두 영화 속 주인공들은 대사도 거의 없다. 그들에게 자동차와 운전은 생계를 위한 것이 아니다. 별 의미도 없는 경주에 자신을 내던지며 도로를 달린다. 식음도 전폐해 가며 도로를 내달리는 이들, 그들은 자동차가 내는 속도에 중독되어 있다.

  이러한 '속도에의 열망'을 보여주는 일련의 영화들의 시작점에 데니스 호퍼의 '이지 라이더(Easy Rider,1969)'가 자리한다. 히피 오토바이족들의 일탈을 그린 이 로드 무비는 젊은 관객들의 취향과 크게 공명했다. 영화사 입장에서는 길바닥에 달리는 무언가만 세워놓아도 돈이 될 것만 같았다. 제임스 구에르시오의 'Electra Glide in Blue(1973)'에 나오는 할리 데이비슨 오토바이와 히피족들의 초상은 그 단적인 예이다. 오토바이 영화의 짧은 전성기는 끝났지만, 자동차 영화는 자신의 제국을 확장해가고 있었다.

  속도가 주는 짜릿한 쾌감을 선사하는 이러한 영화들이 제작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자동차 회사들의 적극적 마케팅도 작용했다. 그 시기 영화들에 나오는 차들의 차체는 오늘날의 차들에 비해 훨씬 크고, 연비가 아닌 주행 속도에 맞추어 개발이 이루어졌다. 어떻게 하면 더 크고 멋진 차로 빠른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인지가 중요했다. 'Two-Lane Blacktop'의 '70 Pontiac GTO, 'Vanishing Point'의 '70 Dodge Challenger와 같은 클래식 카들은 아직도 자동차 애호가들에게 회자된다. 오늘날, 이런 자동차 영화들을 면밀하고 주의깊게 다루는 매체는 의외로 자동차 관련 잡지들이다.

  그러나 계속해서 성장해나갈 것만 같았던 자동차 산업은 뜻밖의 복병을 만난다. 1973년 가을에 시작된 '석유 파동(Oil crisis)'이었다. 중동 전쟁이 촉발한 심각한 세계 경제적 위기 속에서 미국은 가장 큰 타격을 받았다. 정부는 자동차의 속도를 제한함으로써 석유 소비량을 줄이고자 했다. 그해에 이미 여러 주에서 속도 제한 법령을 도입했고, 1974년에는 닉슨의 승인으로 미국 전역에 '전국 최고 속도 제한법(National Maximum Speed Law, 제한 속도 55 mph)'이 시행되었다. 자동차 회사들은 차체를 줄이고, 속도 보다는 연비 향상에 신경을 썼다. 베트남전의 패배가 남긴 상처, 석유 파동이 가져다준 경제적인 한파, 그 모든 것이 미국인들의 삶을 우울하게 만들었다.


3. 문화와 감성을 덧입힌 자동차 영화

  어려운 시절에 잘 나가던 시절을 그리워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조지 루카스는 그 점을 가장 잘 알고 있었다. 그가 만든 'American Graffiti(1973)'는 정확히 그 10년 전인 1963년의 좋았던 시절로 미국인들을 안내했다. 영화는 한마디로 미국인들의 심장을 강타했다.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자동차와 향수 가득한 팝송이 흐르는 이 영화는 기록적인 흥행 수익을 냈다. 루카스는 돈방석에 앉았고, 그것을 밑천으로 스타워즈 시리즈를 내놓을 수 있었다.

  'American Graffiti(1973)'는 자동차 영화의 확장성을 보여주었다. 자동차 영화에서 '속도'는 여전히 중요했지만, 특수한 '감성'과 계층 '문화'를 담는 것이 보다 많은 관객을 끌어들일 수 있었다. 어떻게든 돈이 되는 영화를 만드는 것, 그것은 1970년대 메이저 스튜디오들의 생존 과제였다. 영화는 더이상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아니었다. TV 앞으로 몰려간 사람들은 영화관으로 좀처럼 오지 않았다. 수익성의 확대를 위해 관객층을 세분화한 제작 마케팅이 이루어졌다. 흑인 관객층을 겨냥한 'Blaxlpoitation' 필름이 그 단적인 예였다. 마이클 슐츠(Michael Schultz)의 1976년작 'Car Wash'는 바로 Blaxploitation 자동차 영화였다.

  영화 속 배경은 LA의 'Dee-Luxe'란 이름의 세차장이다. 'Car Wash'는 당시 흑인 하위 문화를 총집합해 놓았다. 영화 내내 세차장에서 틀어놓는 지역 라디오 방송국 DJ의 걸쭉한 입담과 노래들은 자동차와 대중 음악의 밀접한 문화적 연결성을 입증한다. 흑인 동성애자 직원, 창녀, 흑인들을 상대로 돈을 버는 사기꾼 설교자, 거만하고 수선스러운 중년의 백인 여성 손님, 'Car Wash'는 세차장을 통해 미국 사회의 주변부를 조망한다.

  백인 사장과 흑인 종업원들의 관계는 미국 사회 내부의 인종적, 계층적 갈등을 암시한다. 마오쩌둥의 어록을 들고 다니며 직원들과 함께 하려는 사장 아들의 행태는 비웃음의 대상이 된다. 영화는 피상적인 이상주의로 접근하는 백인 지식인들에 대한 멸시를 은연중에 드러낸다. 그것은 결근을 이유로 해고당한 흑인 직원 압둘라가 총을 들고 세차장을 털려고 하는 장면과 대비된다. 혁명가를 자처하는 압둘라의 과격함을 막아서는 것은 나이 많은 온건한 흑인 동료이다. 그는 압둘라를 체제 순응적인 삶의 자리로 돌려놓는다.

  할 니드햄 감독의 'Smokey and the Bandit(1977)'은 'Car Exploitation' 영화가 가진 관객 확장성을 극대화시켰다. 8만 달러를 받고 맥주 400상자를 로데오 경기장에 총알 배송하기 위해 두 명의 친구가 나섰다. 트럭 기사 친구가 미친 듯이 페달을 밟아 도로를 달리는 동안, 'Bandit(버트 레이놀즈 분)'은 자신의 자동차로 단속 경찰을 따돌리는 임무를 맡는다. 그는 가는 도중에 결혼식장에서 도망친 신부(샐리 필드 분)를 태운다. 신부의 시아버지가 되는 보안관은 그 둘을 필사적으로 쫓는다. 이 간단명료한 줄거리의 영화가 그해 미국 영화 수익률에서 두 번째를 기록했다. 1등이 그 유명한 '스타 워즈'였다.

  버트 레이놀즈가 보여주는 유쾌하고 신나는 방랑자 캐릭터, 희화화된 시골 보안관, 끊임없이 이어지는 트럭과 자동차들의 질주, 'Smokey and the Bandit'은 자동차 영화가 보여줄 수 있는 오락성을 최대한으로 끌어냈다. 제작사 Universal Pictures는 욕심을 부렸고, 추가로 제작된 2편과 3편 또한 혹평에도 불구하고 짭짤한 수익을 냈다. 20세기 폭스사가 홍콩의 골든 하베스트사와 손잡고, 감독 할 니드햄을 내세워 만든 영화가 'The Cannonball Run(1981)'이다. 우리나라 중장년층 관객들에게 '성룡의 캐논볼'로 기억에 남은 영화다. 이 영화 역시 인기가 있어서 추가로 후속편이 두 편 더 제작되었다.


4. The Driver(1978), 작가주의적 관점과의 결합

  'Bullitt(1968)'의 조감독 보조(크레딧에 올라가지 않음)로 참여한 월터 힐(Walter Hill)은 당시 피터 예이츠의 자동차 장면 연출 방식에 큰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그로부터 10년 뒤인 1978년에 자신만의 자동차 영화를 내놓았다. 'The Driver'는 1970년대 자동차 영화의 대단원을 장식하는 작품으로 보기에 손색이 없다. 이 영화의 플롯은 장 피에르 멜빌(Jean-Pierre Melville)의 '사무라이(Le Samouraï, 1967)'를 거의 그대로 차용했다. 알랭 들롱이 연기한 살인 청부업자 제프는 라이언 오닐의 'driver' 역으로 대체되었다. 'The Driver'의 등장 인물들은 모두 이름이 없다. 영화는 그러한 도시인의 익명성과 함께 도시의 차가움과 고독함을 재현하는 데에 촛점을 맞춘다. 미국 화가 '에드워드 호퍼(Edward Hopper, 1882-1967)'가 그림으로 도시인의 소외와 고독을 보여준 것처럼, 월터 힐은 공동체와 단절된 개인과 금속 덩어리인 자동차를 결합해 그것을 보여준다.   

  'Love Story(1970)'로 스타덤에 오른 배우 라이언 오닐에게 이 영화는 실질적인 경력의 끝자락에 자리한다. 자기 관리에 실패했고, 자신에게 맞는 배역이 더이상 들어오지 않으면서 이 배우의 전성기는 너무나 빨리 끝나버렸다. 그 때문인지 'Le Samouraï'의 알랭 들롱이 보여준 냉혹함과는 달리, 오닐에게서는 무거운 침울함이 번져나온다. 그가 연기한 영화 속 'driver'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것은 오직 극한의 자동차 스턴트로 구현된 장면들에서이다. 'driver'는 신출귀몰할 운전 실력으로 강도들의 도주를 돕는다. 그는 자신의 실력을 의심하는 강도들에게 그들의 차를 미친 듯한 운전으로 망가뜨려가며 납득을 시킨다. 월터 힐은 엉성한 플롯의 빈자리를 자동차를 이용한 놀라운 추격 장면으로 메꾸어 넣었다.     

  'The Driver'에서 인물들의 행동과 대사는 모두 절제되어 있다. 심지어 음악조차 별로 나오지 않는다. 영화를 지배하는 이미지는 '자동차'이며, 그것이 내뿜는 모든 것이다. 관객의 귀를 강타하는 거친 차량 배기음, 그것들이 충돌할 때에 내는 폭발음, 차체에 반사되어 끊임없이 흘러내리는 도시의 네온 불빛, 그 모든 것들이 내러티브가 된다. 'driver'를 체포하기 위해 혈안이 된 형사는 그를 '카우보이(cowboy)'라고 부른다. 그것은 자신이 만든 영화들은 모두 '서부극(Western)'이라고 한 월터 힐의 말과 연결된다. 이 영화는 서부의 공간성을 '도시'로, 카우보이의 총을 '자동차'로 치환한다. 가족도, 정해진 주거지도 없는 떠돌이 카우보이처럼 'driver'는 그렇게 도시를 부유한다. 그의 유일한 소지품은 '자동차'이다. 그리고 그것으로 그는 자신을 위협하는 이들과 맞선다.

  월터 힐의 이 미니멀리즘 도시 서부극은 당시의 관객과 비평가들에게 낯설고 재미없는 것이었다. 다소 황당하게 느껴지는 이 영화의 결말을 포함해 'The Driver'에는 허무주의가 베어져 나온다. 그리고 이는 1970년대 미국인들이 느꼈던 국가와 자유주의에 대한 실망감과 맞닿아 있다. 그런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보수주의자들은 정치적으로 집결했고, 레이건의 시대가 열릴 참이었다. 정체성을 찾고, 새로운 모험을 기대하며 길 위로 쏟아져 나왔던 미국인들과 그들의 자동차, 그 영화의 시대는 분명 저물고 있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갈 시간이었다.

  "Go home!"

  영화 속 'driver'는 자신을 죽이려고 한 강도를 제거한 후, 풋내기 부하를 살려 보내며 그렇게 말한다. 'Bullitt(1968)'의 차가운 도시 남자와 자동차의 물리적 결합은 월터 힐의 작가주의적 각인이 찍힌 'The Driver'로 재탄생했다. 동시에 그것은 자동차 영화 시대의 고별을 의미하기도 했다. 제한 속도에 묶여버린 무한 질주에의 욕망, 경제 침체, 확장된 개인주의, 그러한 요인들을 자양분으로 1970년대의 자동차 영화는 번성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 시대의 자동차 영화들은 단순히 멋진 기계로서의 자동차들의 전시와 질주가 아니라, 시대적 욕망과 사회적 풍경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그 영화들을 보는 것은 1970년대 미국의 펄떡이는 심장부로 직진하는 일이기도 하다.    



*사진 출처: tcm.com      'Bullitt(1968)'의 스티브 맥퀸



**그림 출처: en.wikipedia.org   에드워드 호퍼 'Nighthawks(1942)', 시카고 미술관 소장




***본문에서 언급한 영화들

Le samouraï(1967), 장 피에르 멜빌

Bullitt(1968), 피터 예이츠
Easy Rider(1969), 데니스 호퍼


Two-Lane Blacktop(1971), 몬티 헬만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1970-two-lane-blacktop-1971.html
The Duel(1971), 스티븐 스필버그
Vanishing Point(1971), 리처드 C. 사라피안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at-full-speed-vanishing-point-1971.html
Electra Glide in Blue(1973), 제임스 구에르시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2/hippie-movement-electra-glide-in.html
American Graffiti(1973), 조지 루카스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5/american-graffiti-1973.html

Car Wash(1976), 마이클 슐츠  
Smokey and the Bandit(1977), 할 니드햄 
The Driver(1978), 월터 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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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글은 하나의 도형 그림으로 시작하려고 한다.





  *그림 출처(en.wikipedia.org)


  여러분은 위 그림에서 두 개의 주황색 점 가운데 어느 쪽이 더 크다고 생각하는가? 대다수는 오른쪽이라고 답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 두 점의 크기는 똑같다. 다만 그 주변을 둘러싼 원들의 크기가 보는 이의 판단에 영향을 미쳤을 뿐이다. '에빙하우스 착시 또는 티치너 원(Ebbinghaus illusion or Titchener circles)'이라고 불리는 이 도형 그림은 인지 심리학(cognitive psychology)에서 잘 알려진 '맥락 효과(Context Effect)'를 입증한다. 그것은 주변의 환경적 요인에 따라 하나의 자극에 대한 인식이 영향을 받는 것을 의미한다.

  우크라이나의 영화 제작자 세르게이 로즈니차(Sergei Loznitsa) 감독의 2021년작 다큐 'Babi Yar. Context' 제목에 바로 그 '맥락(Context)'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다. 'Babi Yar'는 우크라이나 수도 키에프(Kyiv)에 있는 협곡의 지명이다. 그곳에는 숨겨진 학살의 역사가 자리한다. 1941년 9월 29일부터 30일, 그 이틀 동안 바비 야르에서는 키에프 거주 유대인이 독일군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죽임을 당했다. 밝혀진 희생자의 숫자만 33,771명이다. 1943년 11월, 소련군이 키에프를 탈환할 때까지 최소 10만 명 이상의 유대인이 추가로 학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 바비 야르 학살은 나치가 저지른 유태인 학살의 기록 가운데 단시일에 가장 많은 인명을 살상한 것으로 여겨진다. 도대체 1941년 9월의 끝자락에 키에프에서는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감독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개인적인 의문은 그렇게 'Babi Yar. Context' 제작으로 이어졌다.

  다큐는 귀를 찢는 듯한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시작된다. 다리가 무너져 내리고 시커먼 포연이 한가로워 보이던 키에프 교외의 풍광을 집어잠킬 것만 같다. 1941년 6월, 폴란드를 점령한 데에 이어 독일군은 우크라이나로 진격했다. 황급히 퇴각하던 소련군은 키에프 곳곳에 폭약을 설치했고, 그렇게 망가진 도시를 독일군에게 넘겨줄 심산이었다. 무너진 것은 건물만이 아니었다. 당연히 키에프 시민들의 희생이 잇따랐다. 9월 19일에 키에프를 장악한 독일군은 그것을 유대인 절멸의 기회로 보았다. 1923년의 관동대지진에 재일 조선인들이 희생양이 되었던 것처럼, 유대인들이 그 모든 파괴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다. 일단 목표가 정해지자 나치는 신속하게 학살 계획을 수행했다.

  당시 키에프에 주둔한 독일군 장병과 장교들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었던 카메라와 영사기로 그 일련의 상황들을 기록으로 남겼다. 로즈니차는 아주 다양한 경로로 자료들을 입수했다. 흑백과 컬러 사진들, 8mm와 16mm, 35mm 네가티브 필름들의 품질은 제각각이었다. 다큐를 위해 일부는 복원 과정을 거쳤고, 그가 무엇보다 공을 들였던 것은 '사운드'였다. 실제 연설 장면을 제외한 대부분의 소리는 만들어진 것이다. 사실성을 부여하기 위해 배우나 성우가 아닌 일반인들의 목소리로 녹음해서 사운드를 가공했다. 그러한 사운드 디자인에는 배경 소음도 포함되었다. 예를 들어 학살지 근방에 커다란 짐짝처럼 쌓인 유대인들의 옷가지를 찍은 스틸 사진들이 제시될 때, 새소리와 바람 소리가 들어간다. 그 장면에서 관객들은 마치 Babi Yar 협곡에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다큐에는 직접적인 학살 장면이 들어있지 않다. 영화의 제목에 들어있는 'Context'가 의미하듯, 이 다큐는 'Babi Yar 학살 사건'의 전후 맥락만을 제시할 뿐이다. 독일군의 키에프 침공과 점령, 유태인들이 나치의 소집 명령에 따라 협곡으로 끌려가는 과정, 그리고 학살이 이루어진 이후의 풍경, 소련군의 키에프 탈환, 그리고 학살 주동자 재판까지 여러 자료 화면들이 겹겹이 덧붙여 이어진다. 내레이션은 없으며, 중간중간 실제 역사적 사실이 자막으로 제시된다. 로즈니차가 보여주는 이러한 편집 방식은 매우 건조하고 중립적이다. 그는 과거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제작자의 관점을 관객에게 제시하기 보다는, 자신을 독자적으로 발굴한 풍성한 역사적 사료의 제공자로 자처한다. 그러므로 자료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으로 남게 된다.

  "내 목표는 관객들을 특정한 역사적 사건과 마주하고 경험하게 하는 것입니다. 당시 사건의 주변 분위기를 마치 그곳에 있었던 것처럼 느끼게 하는 것이죠. 나는 그러한 영화적 방식이 일종의 통찰력을 제공해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My aim is to make the spectator 'face' and 'experience' the events and the atmosphere of the time, as if he/she was there in-person. I believe that cinema is capable of stimulating and generating this kind of insight)." - The Times of Israel과의 인터뷰 가운데 

  'Babi Yar. Context'에서 관객들이 목도하게 되는 것은 학살 그 자체가 아니라, 학살을 둘러싼 여러 복잡한 상황들이다. 키에프에 진입하는 독일군에게 꽃다발을 주면서 환영하는 시민들(동원된 관중이 아니라 자발적으로)의 모습은 관객들의 입장에 따라 다르게 보일 것이다. 러시아인들에게 1941년의 그 키에프 시민들은 배신자들이며, 국외자인 관객들에게는 의문의 대상이 된다. 찢겨져 나가는 스탈린의 초상 대신 창문에 빳빳하게 붙여진 히틀러의 사진을 비롯해 독일 장군의 연설에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 왜 그들은 독일군을 해방군으로 인식했는가? 거기에는 국외자가 잘 알지 못하는 '우크라이나'라는 지역이 가진 역사적 특수성과 함께 스탈린의 폭정이 복합적으로 작용한다. 키에프 시민들은 스탈린의 압제 하에서 굶어죽는 것 보다는 차라리 나치 치하에서 보다 나은 생존을 기대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다큐는 키에프 시내의 유대인들이 시민들에 의해 건물에서 끌려나오고 모욕과 함께 가혹한 린치를 당하는 장면도 가감없이 보여준다. 구경꾼들은 더러 웃기도 하면서, 포식자에게 쫓기는 짐승처럼 울부짖고 두려워하는 유대인들을 무감각하게 바라본다. 그렇게 쫓겨난 유대인들 소유의 집과 귀중품들은 그곳의 시민들에게 약탈과 은닉의 대상이 되었다. 학살의 주모자는 분명히 나치 독일군이지만, 다큐는 상당수 키에프 시민들이 적극적 또는 암묵적 동조자였음을 보여준다. Babi Yar 학살 사건은 그러한 시민들의 협조 속에 이루어졌다.

  독일군은 키에프 시민들을 동원해 Babi Yar 협곡 주변을 파게 했다. 그곳은 곧 학살지와 거대한 암매장지가 된다. 나치의 공고문에 따라 신분증과 귀중품, 약간의 소지품을 들고 나섰던 유대인들은 영문도 모른 채 협곡으로 실려갔다. 영상에 담긴 대다수 유대인들은 자신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죽음을 예감한 어느 여인은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매장을 용이하게 하기 죽기 직전에 옷을 벗게 했으며, 다큐는 그렇게 들판의 무수한 짚단처럼 쌓인 옷가지들로 죽은 이들의 숫자를 가늠하게 만든다.

  파이를 굽기 위해 얇은 반죽으로 겹겹이 층을 내듯, 독일군은 한 무리의 유대인들을 총살시킨 후 그 위에 또 다른 무리를 몰아놓고 시신을 쌓아 나갔다. 협곡은 말 그대로 죽음의 계곡이 되었다. 소련군이 키에프를 탈환한 후에 이루어진 학살자 재판에서 증인으로 나온 생존자 여성은 자신이 살아남기 위해 암매장당한 시신들 속에서 죽은 척 연기를 했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쌓인 시신 대부분은 유대인들이었지만, 그 가운데에는 집시와 정신질환자, 우크라이나 민족주의자, 소련군 포로도 포함되어 있었다. 나치에게는 모두 제거해야 마땅한 열등 분자들이었다.

  히틀러의 군대를 환영했던 키에프 시민들의 입장은 1943년 11월에 바뀌었다. 소련군은 키에프를 탈환했고, 1946년 1월에 전범 재판을 열어 주동자들을 키에프의 칼리닌 광장에서 공개처형했다. 다큐 속 영상에는 그들의 처형을 구경하기 위해 구름처럼 몰려나와 환호하는 시민들의 모습이 담겨있다. 로마 시대 콜로세움의 관중들처럼 시민들은 전범들의 처형을 바라본다. 더러는 가까이에서 자세히 보려고 사람들을 헤집고 높은 곳에 매달리기도 했다. 시민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흥미로운 이벤트였다. 이후 Babi Yar에 묻힌 원혼들의 존재는 잊혀지기 시작했다. 권좌를 지켜낸 스탈린은 어떤 식으로든 전쟁과 학살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것을 원하지 않았으므로, 계곡의 이름을 언급하는 것은 금기시 되었다.

  1952년에 Babi Yar가 홍수로 범람하자, 키에프 시는 벽돌 공장에서 나오는 토사 부산물로 계곡 일대를 메꾸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또 한 번, 죽은 이들은 오물을 뒤집어 쓰고 세월의 망각 속에 잊혀져 갔다. 로즈니차는 그것을 'Chronocide(time killing, 시간에 의한 죽음)'라고 말한다. 철저한 무관심 속에 역사적 사실이 그대로 매몰되길 바라는 것은 가해자와 압제자가 바라는 것이다. 거기에 반대하여 다큐 제작자로서 그는 오늘날의 관객들에게 자신이 엄선한 역사적 영상 자료를 가지고 잊혀진 학살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한다. '와서 보고 느끼시오. 키에프의 협곡 Babi Yar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를...' 그 어떤 학살의 장면이 나오지 않는, 'context'만으로 구성된 이 다큐를 보는 관객들은 각자가 처한 자신들의 입장에서 'Babi Yar'의 실체적 진실을 인식하게 된다.




*'Babi(y) Yar'는 러시아어의 로마자 음차 표기이다. 우크라이나어의 로마자 표기는 'Babyn Yar'이다. 벨라루스 출신으로 우크라이나 키에프에서 성장기를 보냈던 그는 러시아 국립 영화학교(VGIK)에서 공부했다. 그리고 현재는 독일에서 거주한다. 그가 왜 우크라이나어식 표기가 아닌 러시아어 음차 표기를 제목으로 썼는지 궁금하기는 하다. 인터넷 검색시 'Babyn Yar'로 치면 더 많은 공식적인 자료들을 접할 수 있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 '스탈린의 장례식'을 다룬 세르게이 로즈니차의 2019년작 다큐 'State Funeral'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1/great-farewell1953-state-funeral2019.html



****사진 출처: independent.co.uk     감독 세르게이 로즈니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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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미국 중산층의 불안과 공허: Come Back, Little Sheba(1952)  



 사무엘 베케트의 희곡 '고도를 기다리며(Waiting for Godot, 1954)'에는 '고도(Godot)'라는 이름의 사람을 기다리는 두 명의 남자 디디와 고고가 등장한다. 이 기념비적인 실존주의 희곡에서 디디와 고고가 애타게 기다리는 그 '고도'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니엘 만(Daniel Mann) 감독의 'Come Back, Little Sheba(1952)'에서도 제목에 나오는 'Sheba'는 영화 속에서 볼 수 없다. 주인공인 중년 부인 롤라는 키우던 강아지 시바를 몇 달 전 잃어버렸다. 너무나 아끼는 사랑스러운 강아지였기에 롤라는 생각이 날 때면 현관 문 앞에서 자신의 강아지를 애타게 부른다. '고도를 기다리며'의 '고도'가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듯, 이 영화에서도 잃어버린 강아지 이름 '시바' 또한 상징성을 가진다.

  영화는 중년의 주부 롤라가 새 하숙인 마리에게 방을 안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젊음과 아름다움을 가진 여대생 마리와 집주인 롤라는 모든 것이 대비된다. 마치 자다가 곧바로 일어나서 손님을 맞이하는 듯한 매무새의 롤라. 척추지압사(chiropractor)인 남편은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지만, 롤라를 대하는 태도가 매우 냉담하다. 관객은 곧 이들 부부에게 어떤 문제가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 문제들 가운데 큰 부분이 닥의 알콜 중독과 관련되어 있음이 드러난다. 부부는 알콜 중독자 치유 모임 'AA(Alcoholics Anonymous)'에 참여하는데, 그곳에서 닥은 금주 1주년을 기념하는 케이크를 받는다.

  어렵게 술과 멀리하고 있기는 하지만 닥의 상태는 불안정하게 보인다. 그는 하숙인으로 들어온 마리의 존재에 관심을 갖는다. 그런데 이 발랄한 아가씨는 집안으로 남자 친구를 끌어들이는 것을 별로 주저하지 않는다. 마리의 남자 친구 터크의 잦은 방문은 닥과 롤라 부부의 일상에 기묘한 긴장과 불안을 불러일으킨다. 닥은 어느 날 저녁, 거실에서 두 사람이 키스를 나누는 것을 목격한다. 마리에게 자신의 젊은 날과 순수함을 투사했던 닥은 실망하고, 결국 찬장 안에 숨겨둔 술을 꺼내는데...

  극작가 William Inge는 1950년, 2막으로 구성된 첫 희곡 작품 'Come Back, Little Sheba'를 발표한다. 희곡은 곧 무대에 올려졌고, 꽤 인기가 있어서 190회에 달하는 상연 기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2년 뒤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연극의 주연 배우였던 셜리 부스(Shirley Booth)가 롤라 역을 그대로 맡았고, 닥 역은 버트 랭커스터에게 돌아갔다. 사실 랭커스터는 그 역을 맡기에는 무척 젊은 나이였다. 상대역인 셜리 부스는 그보다 15살이 더 많았다. 그럼에도 랭커스터는 배역에 욕심을 냈고, 매우 의욕적으로 연기에 임했다. 좀 낯설게 보이기는 하지만, 랭커스터는 과거에 대한 회한으로 괴로워하는 알콜 중독자 역을 나름대로 잘 소화해 냈다.

  랭커스터가 연기하는 '닥'이라는 인물이 술에 빠지게 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영화는 닥과 롤라의 대화를 통해 관객에게 그들의 과거를 알려준다. 의대생이었던 닥은 롤라와 사귀다 아이가 생기는 바람에 억지로 결혼했다. 그러나 아이는 유산되고, 닥은 결혼 때문에 의대를 끝마치지 못하고 척추지압사가 되었다. 닥은 그 모든 불운과 고통을 아내 롤라의 탓으로 여기면서 술에 의지한다. 롤라는 그런 남편에게 매우 의존적이며 순종적으로 행동한다. 별다른 희망도 없이 살아가는 롤라의 일상은 라디오 청취와 이웃들에 대한 관찰과 수다로 채워진다.

  아마도 독자들은 여기까지만 본다면, 이 우울한 부부의 이야기가 무어 그리 대단할 것이 있겠는가 싶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영화는 당시 미국 사회를 조망할 수 있는 풍부한 상징성을 가지고 있다. 영화 속에서 닥은 마리에 대한 자신의 기대가 어긋나게 되자 좌절감에 다시 술에 손을 댄다. 그는 술에 취해 칼을 들고 난동을 부리며 아내를 죽이겠다고 위협한다. 당시 미국 영화의 자율적 검열 기준인 'Hays Code'는 과도한 음주와 관련된 부분 또한 규제의 대상에 넣었다. 그런 면에서 영화의 후반부에 버트 랭커스터가 보여준 알콜 중독자의 적나라한 실상은 당시의 관객들에게 어느 정도 충격적이었다. 이 영화가 다루는 알콜 중독의 문제는 이전에 제작된 1945년작 '잃어버린 주말(The Lost Weekend)'과 궤를 같이 한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그 영화도 알콜 중독자가 주인공이다. 

  술은 원작자 윌리엄 잉지를 괴롭혔던 문제이기도 했다. 영화 속의 닥처럼 그도 1948년에 알콜 중독자 치료 모임인 'AA'에 참여했다. 자신의 내면적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잉지는 그즈음에 프로이트 심리학을 공부하기도 했다. 'Come Back, Little Sheba'에는 그 시기 잉지의 개인적 경험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영화에 내재된 프로이트 심리학의 흔적은 매우 분명해서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 롤라가 거실에서 틀어놓는 라디오에서 진행자는 나른한 음악으로 일상에서 탈출하라고 말한다. 그 음악으로 채워지는 '15분간의 유혹'을 진행자는 '터부(taboo)'라는 말로 표현한다. 금기시 되는 유혹, 좌절된 과거의 고통과 상처는 닥과 롤라 부부를 중독으로 이끌었다. 닥은 '술'에, 롤라는 '잠과 나태함'에 중독되어 있다.

  그런데 롤라의 무료함과 게으름은 어떤 면에서 개인적인 문제로만 볼 수 없다. 2차 대전 시기에 다양한 산업 분야의 노동자로 종사하며 '국내 전선(Home Front)'을 지켰던 여성들은 종전과 함께 가정으로 복귀했다. 여성들이 떠난 자리는 돌아온 군인들로 채워졌다. 가정은 다시 여성들의 사적 노동의 장소가 되었다. 롤라는 이웃 코프만 부인과 잃어버린 강아지 시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코프만 부인은 그것은 지난 일이니 바쁘게 지내면서 잊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아이 넷을 키우느라 늘 바쁜 코프만 부인이 보기에 롤라의 한탄은 한가로운 잡담처럼 들린다. 그러나 아이가 없는 롤라는 잉여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할지 모른다. 롤라와 같은 중산층 주부의 남아도는 시간은 전후 부흥하는 미국 경제 체제 하에서 소비주의로 이어졌다.  

  'Come Back, Little Sheba'가 보여주는 또 다른 흥미로운 지점은 마리와 터크의 관계로 대변되는 성적인 개방성이다. 마리는 터크를 집으로 데려와 드로잉 모델을 하게 한다. 팔과 다리가 다 드러난 짧은 운동복 차림의 터크를 본 롤라는 당혹스러워 한다. 터크가 들고 있는 창은 길고 뾰족한 모양으로 프로이트 심리학에서의 '남근 상징(phallic symbol)'에 속한다. 영화에서는 마리가 터크의 집요한 유혹을 거부하는 것으로 나오지만, 그 드로잉 장면은 둘의 관계에 대한 은유적인 단서를 드러낸다.

  닥은 터크의 존재에 불만을 터뜨리며, 롤라에게 마리가 잘못되면 모두 롤라 탓이라고 엄포를 놓는다. 혼전 관계로 생긴 아이 때문에 억지로 결혼한 그들 부부에게 과거는 오점으로 남아있다. 닥이 술로 난동을 피운 후, 롤라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아버지의 방문을 요청하지만 거절당한다. 긴 세월이 흘렀음에도 부부는 롤라의 부모에게 용인되지 못한다. 롤라와 부모의 단절된 관계는 당시 기성 세대가 혼전 관계에 매우 보수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이제 관객들은 왜 롤라가 집 현관 앞에서 '시바야, 어서 돌아오렴!', 하고 그토록 애타게 잃어버린 강아지를 불렀는지 알게 된다. 시바는 단순한 강아지의 이름이 아니라, 롤라가 잃어버린 모든 것이다. 불운하게 잃은 아기, 젊음, 남편의 사랑, 그리고 생에 대한 열정까지... 시바처럼 그 모든 것들이 결코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롤라는 애절하게 외친다. 롤라 그 자체를 연기한 셜리 부스는 첫 출연한 이 영화로 그해 아카데미와 골든 글로브, 칸 영화제의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평생을 알콜 중독과 우울증으로 씨름했던 원작자 윌리엄 잉지는 예순이 되던 해, 스스로 삶을 마감했다. 그는 'Come Back, Little Sheba'에 전후 미국 사회와 중산층의 불안하고 공허한 내면 풍경을 심리학적 상징과 함께 펼쳐 놓는다.




*영화화된 William Inge의 작품: 1번과 2번은 희곡 원작, 3번은 오리지널 시나리오

1. 피크닉(Picnic, 1955): 윌리엄 홀덴 주연. 마을을 찾은 낯선 방문자가 일으키는 파문.
2. 버스 정류장(Bus Stop, 1956): 풋내기 로데오 선수의 사랑 찾기. 마릴린 먼로는 과거를 가진 술집 댄서로 나온다.
3. 초원의 빛(Splendor in the Grass, 1961): 나탈리 우드, 워렌 비티 주연. 청춘의 상처와 그늘을 담아낸 영화.



**알콜 중독과 관련된 전후 할리우드의 주목할 만한 작품

1. 잃어버린 주말 (The Lost Weekend, 1945): 빌리 와일더 감독. 알콜 중독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룬 1940년대 할리우드의 대표작.
2. 고독한 영혼(In A Lonely Place, 1950): 니콜라스 레이 감독. 험프리 보가트가 다혈질의 시나리오 작가로 나온다. 그의 심리적인 문제는 알콜 의존증과 깊은 관련을 가진다.


***사진 출처: britanni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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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는 파리 샹젤리제 거리를 가득 메운 인파들을 보여주는 것에서 시작한다. 2018년, 프랑스는 월드컵에서 20년 만에 우승컵을 거머쥐었다. 영화의 주인공 소년 Issa도 프랑스 국기를 몸에 휘감고 친구들과 기쁨을 나눈다. 그러나 그 기쁨은 잠시, 이사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시련이 펼쳐친다. Ladj Ly의 2019년작 영화 'Les Misérables'은 러셀 크로의 견디기 힘든 노래가 나오는 2012년작 뮤지컬 영화와는 제목만 같다.

  감독 라지 리는 말리 태생의 프랑스 이민자 가정 출신으로 영화 속 배경인 파리 교외의 Montfermeil에서 자랐다. 이 감독은 논쟁적인 이력을 가지고 있는데, 2011년에 '납치'와 '불법 감금'으로 실형을 선고받은 적이 있다. 영화는 어떤 면에서는 그 자신이 가장 잘 아는 지역 공동체와 사람들에 대한 자전적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인터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사람들은 '우리'라는 이름을 내걸고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하죠. 나 또한 내 이야기를 그런 방식으로 하고 싶었어요(cineuropa.org와의 인터뷰 가운데)"

  2005년, 파리 교외의 Clichy-sous-Bois에서 두 명의 무슬림 청소년들이 감전사로 죽었다. 경찰의 불시 검문검색을 피해 달아나려다 숨어든 곳이 변전소였다. 이 사건으로 약 3주간에 걸쳐 파리 근교의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인 방화와 폭력사태가 촉발되었다. 당시 프랑스는 국가 비상 사태를 선포할 정도로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갔었다. 외형적으로는 무고한 청소년들의 죽음에 분노해서 일어난 폭동이었지만, 거기에는 프랑스 사회의 구조적인 이민자 문제가 내재되어 있다. 영화는 그 사건을 모티프로 취했다.  

  이사가 사는 동네는 전형적인 슬럼가로 매우 '거친 곳'이다. 아이들은 훔치고 뺏는 것이 일상이며, 그곳을 지배하는 것은 지역 갱단들이다. 영화에 등장하는 경찰들도 그런 곳에서 자신들의 존재감을 과시하기 위해 무법자처럼 행동한다. 상스러운 욕설은 기본이며, 검문검색을 이유로 여학생을 희롱한다. '내가 곧 법이다'라고 소리치며 주민들 위에 군림하려는 경찰 크리스, 그리고 그것을 방조하는 동료 그와다의 행태는 온건한 신참 스테판에게 견디기 힘든 것이다.

  그런 경찰들에게 서커스단의 사라진 새끼 사자를 찾아내라는 임무가 떨어진다. 그들은 곧 이사가 범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고, 이사를 체포하려는데 같이 있던 아이들이 난리를 친다. 혼란스러운 와중에 그와다는 실수로 고무탄을 이사의 얼굴에 쏜다. 이사는 목숨을 건졌지만, 경찰들은 공중에 떠있는 드론이 자신들을 찍었음을 알고 패닉에 빠진다. 촬영자를 찾아나선 경비대장 크리스, 과연 그들은 드론의 주인을 찾아내어 자신들의 실수를 무마할 수 있을까...

  영화 속 이사가 사는 몽페르메일의 주민들은 대부분 이민자들, 서북부 아프리카 출신의 이슬람인들이다. 범죄와 폭력이 일상인 그곳에서 크리스를 비롯한 경찰들의 부조리하고 폭압적인 모습은 생존의 방식처럼 보이기도 한다. 비극은 그런 곳에서 사는 이들, 특히 어린 아이들이 보고 배우는 것이 희망과는 거리가 멀다는 데에 있다. 주인공인 이사는 그곳의 흔한 아이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도둑질과 갈취, 마약과 폭력이 공기처럼 스며든 곳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자신들을 적대시하는 경찰은 실체화된 악이며 반대자이다. 얼굴에 부상을 입은 자신을 내팽개치고, 오히려 입막음을 하려는 경찰에게 이사는 분노한다. 그 분노는 원초적인 형태의 복수로 나타난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 세 명의 경찰들은 아이들의 근거지를 순찰하다가 건물에 갇혀 죽을 위기에 내몰린다.

  감독 라지 리는 이러한 구조화된 폭력과 복수의 악순환을 감각적인 영상으로 담아낸다.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드론을 이용한 항공 촬영 장면이다. 드높은 상공에 떠있던 드론은 점차 수직으로 하강하며, 거시적인 시점에서 미시적인 시점으로 이동한다. 드론은 일종의 움직이는 현미경인 셈이다. 관객들은 드론이 보여주는 화면을 통해 도시의 숨겨진 이면을 마주한다. 작은 점들이 촘촘히 박혀있는 것처럼 보이는 잘 정비된 풍광의 도시는 온갖 불평등과 가난, 범죄와 폭력으로 점철된 복마전(伏魔殿)과 같은 장소이다. 아마도 라지 리는 그런 실체적 진실을 드러내면서 이렇게 묻는 것일지도 모른다. '당신들이 방리유(Banlieue)가 뭔지나 알어?'

  사실 이 영화가 프랑스 사회의 고질적인 '방리유(Banlieue, '교외'라는 뜻의 프랑스어)' 문제를 다룬 첫 영화는 아니다. 이 영화에서 마티유 카소비츠의 영화 '증오(La Haine, 1995)'의 기시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역시 이민자 가정 출신이라는 배경을 가지고 있는 카소비츠도 '증오'에서 방리유의 문제를 다루었다. 파리 근교의 이민자와 하층민 주거지를 뜻하는 '방리유'가 사회 문제로 고착화된 것은 오랜 기원을 가지고 있다. 1980년대부터 방리유는 범죄의 근원지로 인식이 되었는데, 이미 1981년 여름에 이민자 청소년들이 무려 수백 대의 차량을 전소시키는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연말에 차량에 불을 지르는 것은 그곳의 연례 행사처럼 여겨질 정도이며, 방리유의 일부 지역은 아예 마약 도시로 경찰의 진입이 불가능한 곳도 있다.       
 
  프랑스의 식민지 역사와 이민사는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1850년대 제정 프랑스 시절부터 외국의 값싼 노동력 도입이 정책적으로 이루어졌다. 제국주의 시대를 거치면서 식민지였던 서북부 아프리카 지역으로부터 많은 이민자들이 들어왔다. 다른 튀니지와 모로코와 같은 식민지와는 다르게 '프랑스령 알제리'는 본토로 인정되는 곳으로 알제리로부터의 상당수 이민자들이 프랑스에 정착했다. 2차 대전 이후에는 재건과 산업 인력의 수요로 인해 1950년대부터 정책적으로 이민이 장려되었다. 프랑스 정부는 이민자들의 주거지 문제를 방리유의 대규모 주택단지 건설로 해결했다. 그러나 방리유가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분리 구역으로 자리잡는 데에는 그다지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곳은 곧 계층과 직업, 종교, 인종에 있어서 차별을 감수해야 하는 열악한 주거지로 전락했다.

  라지 리가 '레 미제라블'에서 보여주는 방리유의 문제는 어쩌면 최신판의 모습일 것이다. 관객들은 이 영화에서 목도하는 폭력과 함께 몽페르메일 이민자 사회 내부의 모습에도 문화적 충격을 받는다. 그들의 독특한 이국적 복식을 비롯해 토착 풍습인 '계'를 하고 있는 여성들이 나오는 장면은 과연 저곳이 프랑스가 맞나, 하는 질문을 던지게 만든다. 이제 방리유의 다양한 인종적, 문화적 특징들은 파편화된 게토(ghetto)로 자리잡았고, 그것이 프랑스가 직면한 사회 갈등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하고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자유, 평등, 우애, 라는 공화국의 이상을 기치로 내걸고, 그 어떤 종교적 예외나 배려를 인정하지 않는 세속주의(laïcité)는 이슬람 이민자들을 더 분파적이고 방어적으로 만들었다. 2015년에 발생한 '샤를리 에브도(Charlie Hebdo)' 테러 사건은 그 극단의 예를 보여준다.

  “세상에는 그 어떤 잡초도, 무가치한 사람은 없습니다. 오직 나쁜 농부만 존재할 뿐입니다(There are no weeds, and no worthless men. There are only bad farmers).”

  영화는 빅토르 위고의 '레 미제라블'의 한 귀절을 인용하면서 끝난다. 결국 라지 리는 영화 속에서 펼쳐 보여준 모든 악덕과 폭력의 원흉으로 프랑스, 그것을 통치하는 지배 계층, 더 나아가 공화국의 이상을 지목한다.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고, 우애로 연대하는 그런 나라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고 그는 외친다. 그의 '레 미제라블'은 공화국의 이상에 더이상 기대를 갖고 있지 않은 이민자들과 하층민들인 셈이다. 자신의 이야기로 '우리의 문제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했던 감독의 바램은 그렇게 실현되었다.


이 영화와 함께 보면 좋은 영화

1. 증오(La Haine, 1995), 마티유 카소비츠
2. 똑바로 살아라(Do the Right Thing, 1989), 스파이크 리
3. 알제리 전투(The Battle Of Algiers, 1966), 질로 폰테코르보


*사진 출처: readthespiri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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