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기차 안에서 만난 두 사람의 대화에서부터 시작된다. 대학생 이와가키와 그의 친구 마키타의 삼촌은 고향 와카마츠로 돌아가는 길이다. 이와가키는 2년 만에 고향 친구들과 재회한다. 친구들은 각자의 삶을 버겁게 살아내고 있다. 여관집 아들로 가업을 잇고 있는 미네무라, 어머니의 술집 일을 도우며 바텐더로 일하는 마키타, 목공예 장인인 아버지에게 일을 배우는 마스기, 몰락한 무사 집안의 자손으로 노조일에 앞장서는 테시로기, 이들은 오랜만에 만난 이와가키와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러나 곧 이 친구들의 우정에는 금이 가기 시작한다. 키노시타 케이스케(木下惠介) 감독의 1959년작 '봄날이여 안녕(惜春鳥, Farewell to Spring)'은 와카마츠 현의 시골 마을 청년들의 이야기를 통해 전후 젊은 세대의 불안한 초상을 그려낸다.

  이와가키를 집안이 운영하는 여관에 머물게 한 미네무라는 친구들의 술자리에 게이샤들을 불러 환대한다. 게이샤 미도리는 비감한 백호(白虎)춤을 선보인다. 영화 속에서 이 '백호'의 노래와 이야기는 주요한 테마가 된다. 1868년, 존황양이파와 막부파의 결전이 아이즈 번에서도 일어났다(아이즈 전쟁, 会津戦争). 막부파의 호위 부대였던 아이즈 번의 무사들(白虎隊, White Tiger Unit)은 처절하게 싸웠으나 패배하고 말았다. 끝까지 저항한 19명의 청년 사무라이들은 할복으로 생을 마감했다. 무사도를 보여준 이들의 이야기는 '신선조(新選組)'와 함께 일본 대중 문화에서 자주 다루는 이야기로 자리매김한다. 미도리가 추는 백호춤을 보며 청년들은 좋았던 과거와 자신들의 현재의 모습을 함께 떠올린다.

  '봄날이여 안녕'에는 전후 청년 세대가 당면한 현실적 갈등이 드러나 있다. 백호춤과 노래는 전통적 가치와 과거의 향수를 상징한다. 영화 속 다섯 명의 친구들은 '우정'이라는 가치로 단단하게 결속되어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들 각자가 처한 현실은 그 우정이란 것이 얼마나 깨지기 쉬운 것이며 영속되기 어려운 것인가를 분명하게 드러낸다. 대학생 이와가키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지만, 실상 그는 사기꾼이 되어 경찰의 수배를 받고 있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우정을 이용하기까지 한다. 가장 가까운 친구 마스기에게는 훔친 카메라를 전당포에 대신 맡겨달라고 하고, 미네무라에게도 학비에 쓴다며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마키타는 마음에 둔 요코를 두고 친구 테시로기와 경쟁하는 사이가 된다. 테시로기는 몰락한 무사 가문의 자손으로 집안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에 부잣집 딸 요코와의 혼담을 거절하지 않는다.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좋았던 순수한 시절은 이미 지나가 버렸다.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은 전후 세대의 물질적 욕망을 자신의 영화들에서 중요하게 다루었다. '바람 앞의 등불(風前の灯, 1957)'과 '오늘 또 오늘(今日もまたかくてありなん, 1959)'이 그런 작품이다. 역시 이 영화에서도 주인공들이 처한 경제적인 어려움들이 드러난다. 사기꾼이 된 이와가키는 말할 것이 없고, 가난한 테시로기는 노조 운동의 대의명분에 투신하고 있지만 결혼을 가문의 위신 회복을 위한 수단으로 여긴다. 술집 여주인의 사생아 아들 마키타, 여관집 아들 미네무라는 계층적으로는 주류에 진입할 가능성이 그다지 크지 않다. 이들 보다 더 안좋은 처지에 있는 이는 마스기이다. 한 쪽 다리가 불편한 마스기는 부친의 칠기 공예일을 잇고 있다. 값싼 중국산 목기가 수입될 것이라는 소식은 마스기의 미래를 어둡게 만든다.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이 그려낸 전후의 풍경은 어둡고 절망적이기까지 하다. 폐병을 앓는 마키타의 삼촌은 게이샤 미도리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다가 실패한 적이 있다. 그는 하루종일 누워만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 같다. 새출발을 꿈꾸며 연인들은 다시 만난다. 한밤중, 백호대 비석이 있는 산 중턱에서 남자는 백호춤을 추는 연인을 위해 북을 치며 노래를 부른다.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은 할복으로 죽음을 택했던 백호대 사무라이들의 비극적 최후와 겹쳐진다. 마키타는 삼촌과 미도리의 동반자살 소식을 듣는다.

  "인생에 변하지 않는 절대적인 것은 없어. 우정 보다 생존이 중요한 거야."

  테시로기의 신고로 이와가키는 체포되고, 친구들은 이를 두고 말다툼을 벌인다. 그들의 변질되고 조각난 우정은 회복될 수 있을까?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은 그 청년들에게 쉽사리 장밋빛 미래를 선물할 생각은 없어 보인다. 영화의 마지막, 마스기는 이와가키가 선물해준 붉은 목도리를 내팽개친다. 미네무라는 그것을 주워서 건네지만 목도리는 다시 한 번 땅바닥에 버려진다. 그래도 그 목도리는 결국 친구의 손에 들려있다. 버려지지 않은 목도리는 롱쇼트 속에서 붉은 점처럼 보인다. 그것은 어쩌면 결코 버릴 수 없는 희망의 한 조각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전후 청년 세대의 불안을 그려낸 이 영화는 다소 밋밋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봄날이여 안녕'이 인상적인 이유는 다른 데에 있다. 영화의 초반부, 마스기는 이와가키가 왔다는 소식에 반가운 마음으로 여관에 달려 온다. 온천탕에 벗은 채로 있는 이와가키를 마스기는 열렬하게 끌어안는다. 그 장면은 남자들의 진한 우정을 보여주는 장면치고는 뭔가 생경한 느낌을 준다. 학창 시절, 몸이 불편한 마스기를 괴롭히는 아이들과 이와가키는 많이 싸웠다. 둘 사이는 친구 이상으로 강하게 결속되어 있다. 이와가키가 마스기에게 건넨 붉은 목도리가 마치 연정의 징표처럼 보일 정도이다.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은 동성애자였다. 영화 속 두 친구가 보여주는 관계 묘사를 두고 일본의 평론가들은 감독의 '영화적 커밍아웃(coming out)'으로 평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영화를 퀴어 영화의 범주에 두기 보다는, 키노시타 케이스케 감독의 전후 일본 사회에 대한 내면적 탐구의 연장선상에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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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의 삶과 작품 세계를 다룬 다큐 3편


1. BBC 다큐 'Francis Bacon : A Brush with Violence(1997)', 1시간19분

2. The South Bank Show 제작 'Francis Bacon(1985)', 55분

3. 미국 휴스턴 미술관(The Museum of Fine Arts, Houston) 제작, Francis Bacon: Late paintings(2020), 55분


* 위 세 편의 다큐들은 모두 유튜브에서 검색 가능함.


  1945년, 런던의 전시회에 걸린 그의 삼면화(triptych, 세 개가 이어진 그림으로 주로 가톨릭의 제단화에 쓰였음)는 관객들에게 공포를 불러 일으켰다. 2차 대전이 막 끝난 직후여서 사람들은 가급적 고통스럽고 두려운 것들을 보고 싶어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화가는 기괴하게 변형된 신체와 인물의 이미지들을 자신의 그림 속에 계속해서 변주해 나갔다. 그는 동성애자였으며, 술과 도박에 빠져 지냈고, 그림으로 누릴 수 있는 명예와 부를 생전에 다 누렸다. 죽어서도 그의 그림을 비롯해 쓰레기 같은 잡동사니 소장품이 엄청난 가격에 팔리고 있다.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아마도 그의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도 벨라스케스의 '교황 인노첸시오 10세'를 무시무시한 이미지로 그려낸 초상 연작은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1997년에 BBC에서 제작한 다큐는 화가 베이컨의 일대기와 작품, 그의 주변 지인들의 인터뷰를 충실하게 담고 있다. 이 다큐는 '프랜시스 베이컨'이라는 화가의 작품 세계에 입문하려는 이들에게 아주 좋은 안내자가 되어준다. 거칠고 폭력적인 아버지와의 불화, 베를린과 파리에서 지냈던 20대 초반의 시절, 인테리어 디자이너로 시작했던 경력의 초창기, 독학으로 그림을 그려가며 자신만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30대, 그리고 그의 동성 연인들의 이야기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베이컨은 자신의 성적 지향을 드러내는 것에 무척 솔직했다. 동성애는 그의 예술 세계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1950년대를 함께 했던 동성 연인 피터 레이시는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었다. 유리잔을 베이컨의 얼굴에 던져서 눈이 찢어지는 큰 부상을 입고도 베이컨은 그를 떠나지 못했다. 결국 레이시가 모로코의 탕헤르(당시 국제 관리 지역인 탕헤르는 동성애자들의 천국이었다)로 떠나면서 종결될 수 있었다. 가학적이었던 레이시와의 관계가 끝난 후, 베이컨이 안착한 새로운 인물은 조지 다이어였다. 이스트 엔드의 그저 그런 술꾼이었던 다이어는 베이컨의 모델로 1960년대 그려진 주요한 그림들을 채우게 된다. 이 관계에서 베이컨은 연인 레이시에게 피학적인 입장이었던 것과는 달리, 지배적이고 우세적인 위치를 점한다. 베이컨의 그림 속 다이어의 이미지는 파괴적인 절단과 변형을 보여준다. 베이컨은 다이어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끌어내었지만, 그럴수록 다이어는 피폐해져갔다. 그리고 그것은 비극적이고 참혹한 결말로 끝났다.

  베이컨이 그림을 시작한 계기는 피카소의 전시회였다. 그는 피카소의 그림을 보며, 자신도 저 정도는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피카소가 누린 명성과 평생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했다. 1971년, 프랑스 파리 Grand Palais에서 열린 회고전은 베이컨 인생의 정점과도 같았다. 그것은 그가 서양 현대 미술에서 거장으로 인정받게 됨을 의미했다. 그러나 그 순간, 예기치 못한 사건이 터진다. 전시회를 앞두고 파리의 호텔에서 같이 머물던 다이어가 죽은 상태로 발견되었다. 사건이 가져올 파장을 생각해서 신고는 이틀 동안 미루어졌다. 전시회가 끝난 후, 약물 과다 복용으로 인한 자살로 대충 마무리되었지만 사건은 베이컨에게 커다란 상흔으로 남았다. 시신을 발견하고도 신고를 하지 않았다는 윤리적인 비난, 연인의 죽음을 목격한 정신적인 충격, 사건 이후 속죄와 고통의 감정이 베이컨의 그림 주제가 된다.

  영국 ITV의 프로그램 The South Bank Show에서 1985년에 제작한 다큐는 Melvyn Bragg이 베이컨과 했던 인터뷰가 주를 이룬다. 술을 좋아하는 베이컨을 위해 여러 술집에서 이루어진 솔직하고 재기 넘치는 인터뷰를 통해 베이컨의 뛰어난 말솜씨를 엿볼 수 있다. 진행자 Bragg은 절제되어 있지만 직설적인 질문을 던지는 데에 주저하지 않는다. 다이어의 죽음에 대한 베이컨의 생각을 비롯해, 화가가 직접 설명하는 그림 속 테마의 의미도 들을 수 있다. 왜 그의 그림에서 '입'을 반복해서 그리는지에 대한 질문에 베이컨은 '아름답기 때문'이라고 단순명료하게 답한다. 술을 좋아하는 이유로는 자신은 술집의 분위기를 좋아하며, 그곳에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덧붙인다. 미국의 현대 미술 작가 마크 로스코와 잭슨 폴록을 비웃는 베이컨의 모습도 나온다.

  "사람들은 선생의 그림에서 공포를 봅니다. 선생의 그림은 공포에 대한 것입니까?"
  "공포는 우리의 일상 어디에나 있어요. 매일 보는 신문, 방송의 사건 기사를 보세요. 나는 내 그림 속에 공포를 담지 않습니다. 내가 그리고자 하는 것은 삶이에요. 삶 그 자체입니다. 이미지의 충격으로 보는 이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내가 그림을 통해 추구하는 바입니다."

  2020년, 휴스턴 미술관에서 제작한 다큐는 미술관 큐레이터 Alison de Lima Greene이 1970년대 이후 베이컨의 후기 작품에 대한 분석을 들려준다. 앞서 언급한 두 다큐를 보았다면 편하게 볼 수 있다. 베이컨이 사진을 바탕으로 작업한 방식, 초창기 영화사와 관련이 있는 사진가 마이브리지(E. Muybridge)의 영상물 작업을 응용한 것을 비롯해 회화사의 대가들 작품을 어떤 식으로 차용했는지도 알 수 있다. 베이컨의 화풍은 독자적 실험 속에서 완성된 것이지만, 그 작업은 이전의 미술사와 깊은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격렬한 폭력과 외설, 파괴적 이미지로 점철되었던 베이컨의 중기 회화는 말년에 이르러서는 부드러워진다. '늙음'은 이 예술가에게도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비서이며 그의 작업에 필요한 사진을 담당했던 존 에드워즈는 노년의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말년에 만난 젊은 연인 호세와의 결별은 베이컨에게 생의 마지막 불꽃과도 같았다. 호세를 만나겠다며 찾아간 스페인에서 베이컨은 생을 마감한다. 그의 최종 유산 상속자는 존 에드워즈가 되었다.

  3개의 다큐를 통해 들여다 본 화가 베이컨의 삶은 여전히 거대한 수수께끼처럼 느껴진다. 그의 스튜디오는 마치 hoarder(온갖 물건과 쓰레기들을 모아서 쌓아두고 사는 이들)의 쓰레기집을 연상케 한다. 한 번도 청소하지 않은 것 같은 화구통의 붓에는 먼지들이 켜켜이 쌓여있고, 책과 잡지를 비롯해 사진 자료들이 거대한 탑을 이루고 있다. 캔버스 앞에서 겨우 그림 그릴 정도의 통로가 확보된 기이한 스튜디오. 이곳을 상속자 에드워즈는 영국 정부에 기증했고, 새로운 기념관을 만들기 위해 스튜디오를 해체하는 과정은 그의 예술 세계를 이해하는 원천이 되었다.

  베이컨이라는 화가가 성취한 명성은 그의 재능과 내적인 광기, 인간적 특성만으로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전후의 불안과 고통은 실존주의 철학을 낳았고, 그러한 시대적 배경은 베이컨이 그려낸 충격적인 이미지들과 강력하게 공명했다. 다큐에서 본 그의 많은 작품들 가운데,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작품은 베이컨의 마지막 유작이었다. 흰 배경의 캔버스 위쪽에 희미한 이미지의 황소가 사각형의 창을 뚫고 나오려는 것처럼 서있다. 그는 동성애자로 평생 자신의 시대와 불화했고, 술과 도박으로 삶의 위안을 찾았다. 그의 인생은 마치 폭주기관차 같았다. 그림은 어쩌면 그 열차의 창 밖으로 그가 바라본 바깥의 풍경과 자신의 내면을 결합시킨 창조적 산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프랜시스 베이컨의 초상 사진(1950년대)


**그림 출처: en.wikipedia.org    Three Studies for Figures at the Base of a Crucifixion, 1944(영국 테이트 갤러리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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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내 그림은 왜 훔쳤어요?"
  "그러니까, 그건... 그림이 아름다워서요."

  화가는 전시를 위해 화랑에 걸어 두었던 그림 2점을 도둑맞았다. 감시 카메라에 찍힌 두 명의 강도는 곧 경찰에 붙잡혔다. 재판정에서 자신의 그림을 훔친 도둑과 마주친 화가는 그림의 모델이 되어줄 것을 부탁한다. 벤자민 리 감독의 2020년작 다큐 '화가와 도둑(The Painter and the Thief)'은 그림을 두고 생겨난 화가와 도둑 사이의 기이한 유대를 담는다. Photorealism (사진을 바탕으로 다양한 매체적 이미지로 재현하는 예술) 화가 바르보라와 그의 그림을 훔친 도둑 칼의 이야기가 3년에 걸친 시간 동안 펼쳐진다.

  도둑의 몸에는 눈에 띄는 많은 문신들이 새겨져 있었다. 마약 중독자로 이미 전과가 있는 이 남자는 신진 작가의 그림을 훔쳤다. 화가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자신의 그림을 왜 훔쳤는지 궁금해 한다. 그림이 아름다워서 그랬다는 답이 바르보라의 마음을 움직였다. 남자는 화가의 요청대로 모델이 되었고, 그러는 동안 두 사람은 친구처럼 인간적으로도 가까워진다. 과연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칼을 범죄자로 인식하는 관객들이 화가에게 생길 수 있는 안좋은 일에 대해 떠올리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 대담한 화가는 칼을 처음 본 순간부터 범죄자가 아닌 상처받은 인간으로 보았다. 바르보라가 그린 칼의 초상화는 그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준다. 그림을 보고 그가 흘린 눈물은 거짓처럼 보이지 않는다. 화가와 도둑의 예기치 않았던 예술적 협업 관계는 그런 신뢰 속에 지속된다.
 
  관객들은 전반부에는 화가 바르보라의 시점으로, 후반부에는 도둑 칼의 시점에서 그 관계의 전모를 탐색할 수 있다. 칼의 초상화를 그리면서 바르보라는 그의 불우했던 인생에 대해 알게 된다. 어린 나이에 겪었던 부모의 이혼, 외로웠던 성장기와 그로 인해 겪은 정서적인 문제, 그 모든 것이 칼의 현재를 만들어 냈다. 화가는 모델의 고통에 깊이 감정이입을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가 침묵하는 훔친 그림의 행방에 대해 집요하게 캐묻는다. 그는 당시에 약물 중독 상태여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다는 말만을 반복할 뿐이다.

  "바르보라가 나를 보는 것처럼, 나도 바르보라를 바라봅니다. 그런데 종종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같아요."

  도둑인 칼은 자신이 바라본 화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는 이 화가와 그림에 꽤 오랫동안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바르보라에게는 고통스런 과거가 있었다. 전 남자 친구의 폭력에 시달렸던 체코 출신의 화가는 현재의 노르웨이인 남자 친구를 만나고 나서야 회복의 여정에 들어설 수 있었다. 칼은 바르보라의 그림에 내재된 죽음과 고통의 의미에 공감했다. 화가와 도둑은 각자가 가진 인생의 상처를 그림을 통해 들여다 보았던 것이다.

  이 독특한 인간적 유대는 결코 순탄하게 흘러가지 않는다. 칼은 마약 중독의 악순환에 다시 빠지고, 치명적인 차사고를 겪는다. 바르보라는 칼과 자신의 미술 작업을 이해하지 못하는 연인과 문제가 생긴다. 과연 바르보라가 칼을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화가는 남자 친구와 함께 한 커플 심리 치료 session에서 타인의 고통을 응시하면서 그것을 그림의 미학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거기에 착취적(exploitative)인 면이 전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바르보라와 칼은 어떤 면에서는 서로 의지하기도 하고, 격려하면서 친구로서의 우정을 쌓아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서로에게 보여주지 않은, 또는 보려고 하지 않은 내면의 모습이 있다. 칼은 공예학교에서 목공을 전공했고, 뛰어난 운동 선수이기도 했다. 그는 바르보라가 그런 사실 보다는 자신에게 관심있는 어두운 고통만을 보려고 했다고 말한다. 그렇게 다큐는 둘 사이에 생긴 인간적 유대에 군데군데 비어있는 틈과 뒤틀린 부분을 보여준다.

  벤자민 리 감독은 '화가와 도둑'을 마치 추리 소설을 읽듯 영화적 내러티브를 도입해서 흥미와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진행되는 사건의 현재 시점에서 돌아가 과거를 들여다 보게 하는 비선형적 시간 구조는 다큐에 긴장감을 부여한다. 또한 구로사와 아키라의 '라쇼몽(羅生門, 1950)'처럼 각자의 관점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관계의 숨겨진 면모를 바라보게 한다. 바르보라가 칼이 말해주지 않은 그림의 행방을 추적하면서, 결국 한 점을 찾아내는 과정은 스릴러물 같은 짜릿함을 선사한다.

  거기에 칼이 수감된 노르웨이 감옥의 현실은 관객의 놀라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마치 호텔방 같은 1인실에서 편안히 지내면서, 체력 단련실에서 운동을 하고 상주 심리 치료사의 도움을 받는 칼은 출소할 즈음에는 '밖이 두렵다(!)'고 말한다. 범죄자에게 충분한 재활의 기회를 주고 사회적 안착을 적극적으로 돕는 나라. 어떤 면에서 이 다큐가 보여주는 기이한 우정의 연대기는 '노르웨이'라는 나라의 평화롭고 안정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나 가능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뜻밖의 결론에 다다른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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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노 타케시가 만들어낸 잔잔한 감동의 파고,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A Scene at the Sea, あの夏、いちばん静かな海。1991)


* 이 글은 영화의 결말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오래전,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선생의 인터뷰를 국악방송에서 들은 적이 있다. 어떻게 가야금을 시작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일화가 무척 인상적이었다. 6ㆍ25 동란이 터지고 부산에서 잠시 보냈던 피난 시절, 중학생이었던 선생은 갑자기 쏟아지는 비를 피해 어느 집의 처마밑에 서있었다. 그런데 그 집에서 들리는 가야금 소리가 선생의 마음을 가만히 사로잡았다. 그것이 그가 평생을 두고 함께 할 가야금과의 시작이었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의 청각 장애인 청년 시게루는 쓰레기 수거업체에서 일한다. 어느 날, 해변가의 쓰레기를 치우던 그는 부서져서 버려진 서핑 보드를 발견한다. 그렇게 시게루는 서핑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다. 기타노 타케시 감독의 1991년작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닷가(あの夏、いちばん静かな海。)' 는 농아 청년 시게루와 연인 타카코의 잊지 못할 여름날의 이야기를 담는다.

  주워온 서핑 보드를 시게루는 정성껏 수리한다. 스티로폼과 스카치테이프로 이어붙인 보드를 들고 무작정 바다로 가서 매일 연습을 하는 시게루. 그의 곁에는 언제는 여자 친구가 함께 한다. 둘 다 농아인 이 커플은 말 대신에 마음으로 이야기한다. 타카코는 아무렇게나 벗어놓은 시게루의 옷을 개켜놓고, 연인이 있는 바다를 흐뭇하게 바라본다. 그러나 같은 해변가의 서핑 클럽 회원들의 눈에 시게루는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테이프로 칭칭 감은 변변찮은 보드에 서핑복도 없이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드는 시게루를 그들은 비웃고 한심하게 바라본다. 

  '소나티네(1993)', '하나비(1997)'로 자신의 이름을 알린 기타노 타케시 감독은 폭력과 유혈이 난무하는 어둠의 미학을 보여준다. '기쿠지로의 여름(1999)'은 그의 영화들 가운데 좀 이례적이다. 전직 야쿠자와 이웃집 소년의 한바탕 유쾌한 이 로드 무비는 마치 중간의 쉼표 같은 느낌이다.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 또한 비슷하게 보이지만, 이 영화는 보다 묵직한 감정의 울림을 전달한다. 대사는 매우 절제되어 있고, 끊임없이 들이치는 파도 소리와 푸른 바다, 농아 연인의 감정의 울림이 영화를 채운다. 관객들은 원시적이고 순수한 무성 영화적 감성을 만난다.

  결국 거센 파도에 다시 부서지고 만 서핑 보드, 시게루는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새 보드를 산다. 타카코와 집으로 돌아오기 위해 버스를 타려는데, 기사는 보드를 들고 탈 수 없다고 제지한다. 시게루는 하는 수 없이 집까지 걸어가고, 타카코는 버스를 탄다. 타카코와 좀 더 빨리 만나기 위해 시게루는 무거운 서핑 보드를 들고, 뛰고 걷기를 반복한다. 타카코는 거의 모두가 내린 빈 버스 안에서도 자리에 앉지 않고 내내 서서 온다. 힘들게 걸어올 남자 친구를 생각하면 그냥 편하게 앉을 수가 없다. 그리고 마침내 두 사람이 어둑해진 거리의 정류장에서 만났을 때, 그들이 느끼는 재회의 기쁨은 화면에 넘실거린다. 이렇게 두 연인은 말하지 않아도 눈짓과 손짓, 마음으로 소통한다.

  그러나 영화는 시게루와 타카코가 보여주는 순수하고 아름다운 사랑의 모습만을 비춰주지 않는다. 기타노 타케시는 자신의 영화적 각인을 분명히 새겨넣는다. 장애인이며 주변인의 삶을 사는 시게루에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는다. 그를 매혹시키는 서핑과는 달리 쓰레기 수거일은 지루하고 힘든 일이며, 그를 대하는 주변의 시선은 냉소와 멸시가 섞여있다. 두 명의 동네 녀석들은 시게루를 귀머거리라고 부르며, 그에게 돌을 던져 도발하기도 한다. 서핑 가게 주인의 권유로 처음으로 대회에 나가게 되었지만, 듣지 못하는 그에게 함께 나간 클럽 회원들은 출전 순서를 알려주지도 않는다. 시게루는 대회가 끝난 텅 빈 바닷가에서 혼자 서핑을 하고 온다. 서핑에 정신이 팔려 일도 빼먹는 그에게 나이든 동료는 정신차리라며 손찌검을 하려고 든다. 그는 서핑복에 맨발 차림의 시게루를 억지로 끌고 가서 일을 시킨다.

  비록 파도 소리는 듣지 못하지만 그저 좋은 바다와 타카코가 있는 시게루의 닫힌 내면 세계. 서핑은 청년을 조금씩 바깥 세상과 소통하게 만든다. 그의 노력과 열정에 클럽 회원들의 비웃음은 감탄으로 바뀐다. 두 번째로 나간 대회에서는 입상의 기쁨도 누린다. 그렇게 언제나 서핑과 함께 하며 행복할 것 같았던 청년은 비오는 날의 바닷가에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 기타노 타케시는 해변으로 홀로 되돌아온 서핑 보드로 시게루의 마지막을 알린다. 이 영화의 일본 개봉 당시 홍보 문구는 이랬다. '일생에 한 번, 이런 여름이 온다' 그 한 번 뿐인 여름의 바다 속으로 시게루는 떠나버렸다.

  그저 말 할 수 없는 청년과 바다를 담았을 뿐인데도 영화는 굽이치는 감정의 파고를 만들어 낸다. 거기에는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히사이시 조의 반짝거리는 재능도 함께 한다. 영화 음악이 어떻게 영화 그 자체가 되는지 관객들은 '그 여름 가장 조용한 바다'에서 확인하게 된다. 허무와 폭력, 피와 고통이 흘러 넘치는 기타노 타케시의 영화 세계에 이런 영화가 있을 것이라고는 나는 미처 알지 못했다. 그는 영화가 줄 수 있는 근원적인 감정에 접근한다. 이 영화가 주는 평온하고도 잔잔한 감동 속에는 서늘한 슬픔이 자리한다. 그리고 그것은 영화 속에서 시게루를 웃음짓게 하고 두근거리게 만들었던 파도처럼 보는 이의 마음에 들이친다.



*사진 출처: pennypost.org.u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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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P' 시기 소련의 흔들리는 풍경, 파트니츠카야의 선술집(Трактир на Пятницкой, The Tavern on Pyatnitskaya, 1978)


  10년 동안 경찰로 일했던 그는 서른 살에 퇴직한다. 그리고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추리 소설을 써내기 시작했다. 구 소련의 추리 소설 작가 니콜라이 레오노프 (Nikolai Leonov)가 1977년에 출간한 소설 '파트니츠카야의 선술집'은 이듬해에 영화로 만들어졌다. Aleksandr Faintsimmer 감독의 이 독특한 탐정물은 1978년의 흥행작 가운데 하나였고, 5400만명의 관객이 관람했다. 우리에게는 잘 알려지지 않은 소련의 1920년대를 배경으로 복고적 세트, 다양한 이력의 주인공들이 등장한다. 권력을 잡은 볼셰비키를 비롯해 차르 시대의 전직 관료와 귀족, 갱단과 거리의 소매치기가 나온다. 영화에서는 뭔가 느슨하면서도 혼란과 불안이 뒤엉킨 시대적 분위기가 감지된다.

  '그레이(Grey)'란 별명으로 불리는 갱단의 두목은 연이은 강도와 살인을 저지르며 모스크바 범죄수사국을 당혹스럽게 만든다. 수사국 신입 경관 파닌은 정보 수집을 위해 갱단의 은신처로 추정되는 파트니츠카야의 선술집에 웨이터로 잠입한다. 한편, 그레이는 강도 현장에서 경찰과 맞닥뜨리자 조직에 첩자가 있다고 의심한다. '프랑스인'으로 불리는 갱단의 조력자, '집시'라는 별명의 속내를 알 수 없는 부하가 의심의 대상이 된다. 그레이는 소매치기 '파슈카 아메리카'에게 정보력을 동원해 첩자 색출에 협력하라고 강요한다. 그러던 중에 신분이 드러날 위기에 처한 파닌을 구하려다 퇴직 경관이 목숨을 잃는다. 마침내 수사국은 갱단을 일망타진할 마지막 작전을 펼치는데...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이 성공하고 소련은 공산주의 국가가 된다. 그러나 볼셰비키 정권은 혁명에 저항하는 세력들과 치열한 적백 내전을 치룬다. 내전은 곧 진압되었지만, 그 후유증은 심각했다. 소련의 경제는 그야말로 파탄 상태였다. 레닌은 급격한 사회주의 경제 체제로의 전환을 유예하는 결정을 내린다. 1921년, 신경제 정책(New Economic Policy, NEP)이 시행된다. NEP는 부분적으로 사유 재산을 인정하고, 외국 자본의 유치를 비롯해 자본주의 경제 정책을 도입했다. 그 결과 소련의 경제는 놀랄 정도로 회복된다. 농업을 비롯해 상업이 크게 성장했고, 상당한 부를 축적한 이른바 'NEPmen'이라는 신흥 계층까지 생길 정도였다.

  영화 '파트니츠카야의 선술집'은 그 시기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레이의 갱단은 상점을 비롯해 부유한 이들의 저택을 턴다. 갱단이 훔친 값비싼 보석과 골동품들은 'NEPmen'의 소유였다. 영화 속에서 아주 흥미있는 장면이 있다. 술집에서 돈푼깨나 있어 보이는 이들이 질펀한 술자리를 갖는다. 그들 가운데 한 명이 술집의 늙은 기타 연주자에게 연주를 하라며 돈을 내던진다. 돈 있는 자들이 득세하는 시절, 그런 모욕을 받는 그레민은 차르 시대의 귀족 출신이었다. 곧 갱단의 일원인 '집시'가 나서서 모욕을 되갚아 준다. '집시'라고 불리는 이 남자의 배경도 독특하다. 그는 현실에 불만을 가진 사람으로 혁명에 찬동하지 않는 아나키스트처럼 보인다. 범죄 행각으로 사회 체제에 저항하고 그것을 무너뜨리고 싶어한다.

  'NEP' 시기의 소련은 희망과 불안, 번영과 혼란이 마구 뒤엉켜 있었다. 볼셰비키들은 구 시대의 잔재들을 어쩔 수 없이 끌어안아야만 했다. 거기에는 제정 러시아 시대의 귀족과 관료도 포함되어 있었다. 수사국의 책임자 클리모프는 갱단에 대한 수사 정보가 새어나가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그는 부하 직원 자이체프를 의심하는데, 자이체프가 제정 러시아 시대의 관료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가난한 술집 연주자로 전락한 귀족이 있는가 하면, 자이체프처럼 새로운 집권 세력에 협력해서 생존을 도모하는 이도 있었다. 뒷골목을 장악한 소매치기 '파슈카 아메리카'처럼 내전에 부모를 잃고 사회의 밑바닥으로 떨어진 청년도 나온다. 그가 활보하는 거리에는 전쟁 고아들이 넘쳐난다.

  '파트니츠카야의 선술집'은 그런 'NEP' 시기의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 뿐만 아니라, 추리물로서의 재미도 갖추고 있다. 과연 갱단 내부에서 수사국의 첩자로 활동하는 이가 누구인지 그레이와 함께 관객들은 끝까지 머리를 굴려야 한다. 이 영화는 어떤 면에서는 필름 느와르로서의 면모도 보여준다. 선술집의 여주인 이리나는 팜므 파탈로 강한 카리스마와 매력을 발산한다. 이리나는 그레이의 조력자로 장물을 처분하는 역할을 맡고 있으며, 경찰 애인을 압박해 수사 정보를 빼내기도 한다. 이리나는 오직 사랑만을 바라는 술집 여가수 바르바라와는 달리 물질적 욕망에 충실한 인물로 나온다.

  유예된 혁명 과업의 완수를 위해서 사회악은 반드시 제거되어야만 했다. 영화는 마지막에 이르러 갱단의 비참한 최후와 함께 새로운 소비에트의 희망찬 미래를 이야기한다. 소매치기의 삶을 살던 청년은 농촌 출신의 순박한 아가씨 알로냐와 함께 귀향 열차에 오른다. 과연 파슈카에게 어떤 삶이 기다리고 있었을까? NEP 시기 농업 생산량은 크게 증가했고, 그로 인해 농부들의 삶은 윤택해졌다. 그러나 농부들과 NEPmen의 좋은 시절은 1928년까지만 지속되었다. 스탈린의 집권과 함께 NEP는 폐기된다. 스탈린은 농촌을 집단 농장으로 개조시켰고, 소련을 공업 중심의 생산국으로 만들기 위해 국가적 역량을 총동원했다. '파트니츠카야의 선술집'은 추리물의 틀 안에 그러한 변화를 맞이하기 직전의 느슨하게 흔들리는 소련 사회의 풍경을 담아냈다.    



*사진 출처: vokrug.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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