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rkfors 부부의 다큐 두 편;

Raising a School Shooter(2021)와 Pervert Park(2014)


1. 학교 총기 난사범을 키운 것은 누구인가, Raising a School Shooter(2021)

  "나는 그 아이가 그곳에서 죽었기를 바랬습니다."

  자신의 아들이 죽는 것을 바라는 부모가 있을까? Sue Klebold는 그랬다. 수의 아들은 1999년에 있었던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Columbine High School massacre)의 주범인 Dylan Klebold였다. 구스 반 산트의 '엘리펀트(Elephant, 2003)'는 그 사건을 극영화로 만든 것이다. Frida Barkfors와 Lasse Barkfors의 2021년작 다큐 'Raising a School Shooter'는 학교 총격 사건 주범을 아들로 둔 세 부모의 이야기를 담는다. 이 다큐는 BBC Four의 다큐 프로그램 'Storyville'에서도 방영되었다.

  딜런 클레볼드와 친구 에릭 해리스가 저지른 총기 난사로 15명이 죽었고, 24명이 부상을 입었다. 자신의 아들이 주범일 거라는 소식을 들었을 때, 수는 차라리 아들이 그곳에서 죽기를 바랬다고 말한다. 딜런과 에릭은 그 자리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건 이후, 수에게는 총격범을 키워낸 엄마라는 비난과 분노가 쏟아졌다. 1988년, Atlantic Shores Christian School에서 니콜라스 엘리엇은 3개의 화염 폭탄, 반자동 권총 및 200발의 탄약을 가져가 교사 1명을 죽이고 다른 1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니콜라스의 아버지 클레런스는 무기징역을 받고 복역 중인 아들을 30년 넘게 기다리고 있다. 2001년의 'Santana High School shooting' 사건의 주범인 15살 앤디 윌리엄스는 총기로 2명의 학생을 죽이고, 13명에게 부상을 입혔다. 제프는 50년 형을 선고받고 투옥 중인 앤디의 아버지이다.

  '당신들이 자식을 잘못 키운 거야'라고 그 세 명의 부모를 비난하는 것은 사건을 이해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다. 그러나 이 다큐멘터리의 제작자들은 좀 다른 관점을 채택했다. '과연 그것이 온전히 그 부모만의 잘못일까?', 그런 질문에서부터 이 다큐는 출발한다. 물론 목숨을 잃은 희생자와 평생을 안고 갈 후유증을 얻게된 부상자들이 존재하는데, 총격범의 부모도 피해자라는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Raising a School Shooter'는 범인들 부모의 개인적인 일상을 담담히 응시한다. 그들 부모에게도 살아가야할 남은 시간들이 있다. 설거지를 하고, 쓰레기를 비우고, 동네 술집에 들르고, 마트에 가는 일상의 시간들... 그러나 사건이 발생하고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그들은 과거의 그림자에서 결코 벗어날 수 없다.    

  세 명의 부모 가운데 가장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딜런의 엄마 수 클레볼드이다. 총격 사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아들의 장례식을 치룰 때, 수는 관에 누워있는 아들의 손을 어루만지며 '제발 너를 이해할 수 있게 해달라'며 울었다. 경찰이 사건 발생 6개월 후 수사 결과를 발표하기 전까지, 수는 아들의 범행이 계획적이라는 것을 부인했다. 어떻게 자신의 아들이 그런 일을 저지를 수 있는지 도무지 믿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안의 모든 것들이 다 죽어버렸어요. 하느님도, 진실에 대한 내 믿음도, 내 가족과 딜런이 누구인지에 대한 믿음조차도요. 모든 것이 산산조각이 난 거죠."
 
  세 명의 부모들은 대중과 언론의 비난을 받았고, 자신들이 속한 지역 공동체에서 배척당하는 고통을 겪었다. '총격범의 부모'라는 낙인은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딜런의 엄마 수가 사건의 원인으로 아들의 정서적 문제와 성격적 결함에 대해 깊이 성찰하는 것과는 달리, 다른 두 총격범의 부모 클레런스와 제프는 좀 다른 입장에 서있다. 그들은 자식이 저지른 범행이 크나큰 범죄라는 것은 인정하지만, 거기에는 학교 폭력이라는 문제가 자리하고 있음을 이야기한다. 니콜라스와 앤디는 모두 학교에서 또래 아이들의 지속적인 괴롭힘을 받았다.

  클레런스는 자신의 아들에 대한 가혹한 형량과 가석방 신청이 6번이나 거부된 것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미국 사회에서 '흑인'이 겪는 인종적 편견과 사회적 약자로서의 위치를 에둘러 표현한다. 30년 넘게 감옥에 있는 아들이 나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는 70대 노인의 바램은 뻔뻔한 것일까? 어쩌면 그는 살아있는 동안 감옥 밖에서 아들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   

  앤디의 아버지 제프는 새로운 반려자를 만나서 삶을 꾸려감으로써 자식이 드리운 과거의 고통에서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었다. 수는 딜런의 성장과정에서 자신이 알아채지 못한 정서적 고통과 성격적 결함을 깊이 성찰했고, 그것을 통해 자신이 해나갈 바를 찾아냈다. 청소년들의 정신 건강에 대한 부모의 지속적인 관심을 촉구하는 데에 목소리를 냈다. 책을 펴내고 강연도 했다. 이 강인한 엄마는 살아왔던 지역 공동체를 떠나지 않았다. 요가를 하고, 댄스 수업을 듣는 수의 일상을 보는 것은 관객에게 복잡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수는 총격범의 엄마로서 평생을 안고 살아가야할 죄책감과 함께, 아들의 죽음으로 자신과 가족이 겪었던 심리적 고통에 대해 이야기한다.

  관객은 수와 제프, 클레런스, 이 세 명의 총격범 부모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질문과 마주한다. 과연 '학교 총격범을 길러낸 것(Raising a School Shooter)'은 누구인가? 결국엔 '만약(if)'으로 시작되는 가정문의 질문들을 던질 수 밖에 없다. 만약 그 부모들이 청소년 자녀의 정서적 문제를 좀 더 일찍 알아차리고, 적절한 치료를 받게 했더라면 어떠했을까? 만약에 아이들이 학교에서 겪었던 괴롭힘과 폭력의 문제를 학교 당국이 좀 더 적극적으로 해결에 나섰더라면? 그리고 마지막으로 던지게 되는 질문은 이것이다. '만약에 그들이 쉽게 총기에 접근할 수 없었더라면...'

  다큐가 시작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의 자막이 뜬다. '1970년 이후 미국의 학교에서 발생한 총기 사건은 1677건이며, 598명이 사망했고 1626명이 부상했다. 총격 사건 주범의 연령은 18세 이하이다.' 2012년에 '샌디훅 총기 난사 사건(Sandy Hook Elementary School shooting)'이 발생했을 때, 나는 그 사건이 미국 사회에 총기 규제에 대한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사건은 오히려 역설적으로 미국 사회에서 총기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드러냈다.

  자기 보호의 수단으로서의 '총기의 소유에 대한 자유'는 미국 수정 헌법 2조에 보장되어 있다. 미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 자경권의 법적 개념, NRA(전미 총기 협회)의 막강한 로비력, 총기에 대한 미국민들의 격렬한 찬반 양론, 그 모든 것이 총기 문제에 축약되어 있다. 합리적이고 획기적인 방식의 총기 규제 정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다큐에 나온 부모와 같은 이들, 그리고 학교에 총을 들고 가는 것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아이들이 계속 나올 수 밖에 없다. 그렇게 Frida Barkfors와 Lasse Barkfors의 이 통찰력 있는 다큐는 관객들로 하여금 청소년의 학교 총기 범죄를 개인적 차원에서 사회적 문제로 확장시켜 성찰하게 만든다.


2. 변태 공원의 그들, Pervert Park(2014)

  미국 플로리다주의 Saint Petersburg에 가장 위험한 트레일러 공원(Trailer Park, 이동식 주택 단지)이 있다. 'Pervert Park'라고 불리는 이곳에는 100여명의 출소한 성범죄자들이 모여서 살고 있다. 각각 덴마크와 스웨덴 출신인 부부 제작자 Frida Barkfors와 Lasse Barkfors의 2014년작 'Pervert Park'는 우리말로 번역하면 '변태들의 공원'쯤 될 것이다. 그곳에는 성범죄자의 사회복귀와 재활을 돕는 민간인들이 있다. 20년 전, 아들이 체포된 이후에 성범죄자들에게 관심을 갖게 된 자선 사업가는 그들이 출소한 이후에 겪는 주거 문제를 도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렇게 해서 조성된 곳이 바로 그 'Pervert Park'였다. 다큐는 그곳의 거주자들과 거기에서 일어나는 일상의 모습을 담았다.    

  성범죄자와 이웃이 되고 싶은 사람이 있을까? 마땅히 살 곳을 구하지 못해 'Pervert Park'에 모인 이들은 모두 성범죄자들이다. 이 다큐를 보려는 이들은 우선 정신줄을 단단히 붙잡아 두어야만 한다. 온갖 종류의, 차마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성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이 다큐도 역시 BBC 채널 Four의 'Storyville'을 통해 2019년에 방영이 되었다. 공영방송으로서 BBC는 자신들이 가진 사명감에 대해 잘 인식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얼핏 보기에 성범죄자들이 나오는 이런 다큐를 공중파를 통해 내보낸다는 것은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깊이있는 다큐는 관객들에게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가져온다. 그런 관점에서 과감하게 이 다큐의 편성을 결정한 'Stroyville' 제작진이 대단하다고 말하고 싶다.

  일종의 느슨하게 연결된 공동체로 운영되는 그곳에는 거주자들을 위한 집단 심리 상담 프로그램을 비롯해 취업 지원과 생활 지원이 이루어진다. 상주 상담가는 자신이 왜 그곳에서 일을 시작하게 되었는지를 들려준다. 성범죄 피해자들을 도왔던 그는 한 명의 성범죄자를 재활시킨다면 10명의 피해자들을 막을 수 있다는 신념이 생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가 진행하는 집단 상담에서 거주자들이 말하는 범죄 경력은 충격적이다 못해 참혹하기 이를 데 없다. 성추행 범죄자, 소아성애자, 강간범들은 무미건조하게 범죄와 삶의 이력을 털어놓는다. 성범죄자들은 남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여자도 있다.

  "결국엔 다 자기변명일 뿐이죠. 모두들 한다는 말이 다 어린 시절에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거야. 그런 일 겪었다고 모두 성범죄자가 되나?"

  동성애자로 자신도 성범죄자인 남자는 상담에 참여한 이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그도 그럴 것이 다큐에서 인터뷰에 나오는 이들이 들려주는 어린 시절의 기억은 거의 대부분 끔찍한 성학대와 추행으로 얼룩져 있다. 마치 악습이 대물림되듯 성범죄 피해자였던 그들은 성인이 되어 가해자의 위치로 쉽게 자리바꿈을 한다. 아마도 이 다큐에서 가장 비극적인 경우는 아버지에게 강간당한 여자가 자신의 어린 아들에게 같은 방식으로 저질렀던 범죄일 것이다. 여자는 아들과 격리되어 감옥에서 살다 나왔고, 그 아들은 커서 비행을 저지르다 소년원에 수감되었다. 정말이지 범죄와 트라우마의 악순환이라고 밖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얼마 안되어 성범죄로 감옥에 다녀온 20대 엘리트 성범죄자도 있다. 미성년자 추행죄로 1년을 살다 나온 그는 그곳에 있는 이들이 대부분 5년, 10년 살다 나온 것에 비하면 자신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라고 안도한다. 그러나 평생을 두고 자신을 따라다닐 성범죄 이력은 이 청년을 불안하게 만든다. 그곳에서 관리자 일을 하고 있는 40대의 남자는 살아온 인생 절반에 해당하는 20년을 감옥에서 보냈다. 과연 'Pervert Park'에 사는 그런 이들에게 재활, 사회로의 복귀는 실현 가능한 명제일까?

  결국 다큐가 던지는 질문은 그런 것이다. 성범죄자들을 감옥에 영구격리할 수 없다면, 어떻게 그들의 재범 확률을 낮추고 사회 복귀를 도울 것인가? 또한 그런 과정을 거쳐서 사회에 들어온 이들을 일반인들은 이웃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가? 생각해 보면 모두 다 쉽지 않은 질문들이다. Frida Barkfors와 Lasse Barkfors의 '사회적 낙인 3부작(trilogy of social stigma); Pervert Park(2014), Death of a Child(2017), Raising a School Shooter(2021)'의 시작인 이 작품은 그들이 이후 제작할 다큐의 청사진으로 자리한다. 공동 제작자로서 Barkfors 부부는 범죄가 개인과 사회의 연결망 속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키는지에 대해 탐구한다. 다큐의 마지막에는 인터뷰했던 'Pervert Park' 거주자들의 범죄 이력이 차례대로 제시된다. 다큐 이후에 그들은 '변태 공원'을 떠나 사회 속으로 돌아갔을까? 'Pervert Park'는 사회가 그들을 위한 생존의 자리를 내어주어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떠안고 있음을 일러준다.



*사진 출처: filmaffinity.com


**사진 출처: spectacularoptical.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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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드라이브 마이 카'를 관람하지 않은 독자를 위해 최대한 스포일러를 넣지 않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글의 전개상 어쩔 수 없이 들어간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불편한 독자들은 나중에 영화를 본 후에 이 글을 읽기 바랍니다. 


1. 영화를 보기 전에

  누군가 영화 사이트 게시판에 이런 질문글을 올린 것을 읽었다.

  " '드라이브 마이 카'를 보려고 하는데, '바냐 아저씨'를 읽고 가야 하나요?"

  영화를 본 사람으로서 내 대답은 이렇다. '네, 그래요.' 3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 동안 안톤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의 대사들이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그러니 그 희곡을 모르면 이 영화를 온전히 감상해낼 재간이 없다. 그럼 인터넷으로 줄거리 요약이나 독서 유튜버가 축약 설명하는 동영상을 보는 것으로 괜찮을까? 안타깝게도 그것으로는 부족하다. '드라이브 마이 카'를 만나려는 관객은 영화를 보기 전에 안톤 체호프와 마주해야만 한다. 과연 하마구치 류스케는 관객에게 강제로 독서하게 만드는 감독일까?

  "나는 그저 '바냐 아저씨'를 읽고, 또 읽었습니다(하마구치 류스케, filmcomment.com과의 인터뷰 가운데)."

  하마구치 류스케가 '드라이브 마이 카'의 제작이 결정되고 나서 한 일이 그것이었다. 그러니 관객은 체호프를 읽는 것 외에 별 뾰족한 수가 없다. 이 영화는 원작이 되는 소설이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2013년에 문예춘추에 아주 짧은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ドライブ・マイ・カー)'를 발표했다. 하마구치 류스케는 그 단편을 토대로 자신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갔다. 소설이 대강의 뼈대를 제공했다면, 체호프는 거기에 덧붙여진 건축 자재들이다. 그것을 조화롭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축조해낸 하마구치 류스케는 영화라는 틀 안에 문학을 녹여낸 하이브리드 장인인 셈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단편과 함께 언급해야할 또 다른 희곡은 영화 초반부에 주인공 카후쿠가 출연하는 연극 '고도를 기다리며'이다. 사무엘 베케트의 이 희곡은 오지않는 '고도'를 기다리는 '디디'와 '고고'의 이야기를 통해 부조리한 인생을 살아야만 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연극 사랑은 영화 '아사코(Asako I & II, 2018)'에서도 드러난다. 헨릭 입센의 희곡 '들오리(The Wild Duck)'와 안톤 체호프의 '세 자매(Three Sisters)'는 그 영화를 이해하는 주요한 열쇠가 된다. 거기에 고초 시게오(牛腸茂雄)의 사진집 'Self and Others'도 추가된다.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 감독은 연극을 사랑하며, 특히 체호프의 광팬임이 분명하다. 

  '해피 아워(Happy Hour, 2015)'의 5시간 17분을 견딘 관객이라면, '드라이브 마이 카'의 3시간은 가볍게 느껴질 것이다. '해피 아워'로 알 수 있듯, 하마구치 류스케는 압축과 생략의 방식을 통해 영화를 간결하게 만들기 보다는, 하나의 이야기가 결말에 이르는 여정을 자세하게 풀어서 보여주고 싶어한다. '드라이브 마이 카'의 러닝타임 3시간의 주요한 부분은 주인공 카후쿠가 연출하는 연극 '바냐 아저씨'의 리허설 과정이 차지하고 있다. 일본어와 한국어를 비롯해 표준 중국어(Mandarin), 한국 수화(手話)가 섞인 다국적 언어의 연극은 영화의 주제와 맞닿아 있다. 각자 다른 언어로 말하는 배우들이 공연하는 '바냐 아저씨'를 통해 하마구치 류스케는 언어의 형식을 뛰어넘은 '감정의 소통'과 '상처의 치유'에 대해 이야기한다.


2. 상실의 시간으로서의 중년, 그리고 치유의 여정

  서로 다른 삶의 배경과 이야기를 지닌 두 명의 등장인물이 있다. 주인공 카후쿠와 미사키가 그들이다. 그들이 만나기 이전의 카후쿠의 이야기를 하마구치 류스케는 프롤로그(prologue)의 형식으로 보여준다. 오프닝 크레딧은 바로 그 40분 정도의 프롤로그가 끝날 무렵에 뜬다. 연극 배우이며 연출가인 카후쿠는 글을 쓰는 아내 오토와 단란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카후쿠는 연극 대본을 아내의 낭독으로 녹음한 테이프를 자신의 차에 늘 틀어놓고 연습한다. 어느 날, 해외 출장을 가려고 공항에 도착한 카후쿠는 날씨가 좋지 않아 비행기 예약이 미뤄졌다는 통보를 받는다. 어쩔 수 없이 집에 돌아온 그는 아내가 낯선 남자와 잠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발견한다. 아내가 눈치채지 못하게 조용히 집을 나온 카후쿠는 그 일에 대해 이후로도 일체 내색을 하지 않고 지낸다. 그러다 그는 아내의 갑작스런 죽음을 겪는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서막에 해당한다.

  그로부터 2년의 시간이 흐른 후, 카후쿠는 히로시마 연극제의 초빙 연출가로 다국적 언어로 공연되는 '바냐 아저씨'를 맡는다. 공연에 출연할 배우들은 오디션으로 뽑는데, 그 오디션에서 카후쿠는 아내의 내연남이었던 젊은 배우 타카츠키와 마주한다. 그는 아내의 장례식에서 타카츠키를 본 기억을 떠올린다. 주연인 바냐 아저씨를 카후쿠가 할 것이라는 주위의 기대와는 달리 그는 그 배역을 타카츠키에게 준다. 타카츠키는 극에서 47세인 바냐 역할을 젊은 자신이 떠맡은 것을 불만스러워 하면서도 연극에 참여한다. 그렇게 카후쿠와 타카츠키의 뜻밖의 인연이 이어진다.

  한편, 연극제에서는 초빙 예술가의 안전을 위해 카후쿠에게 전담 운전기사를 붙여준다. '미사키'라는 이름의 골초이며, 과묵한 젊은 여성 운전자는 그렇게 카후쿠의 오래된 수동 클래식 자동차를 몰게 된다. 차 안에서 틀어놓는 '바냐 아저씨' 대본 테이프를 매개로 두 사람은 조금씩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다. 히로시마에서 새롭게 만나게 된 미사키와 타카츠키를 통해 카후쿠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보게 되는데...

  관객은 영화의 초반부에서 주인공 카후쿠가 겪고 있는 상실을 바라보게 된다. 갑작스런 자동차 사고로 병원에 가게 된 카후쿠는 녹내장을 진단받는다. 약물로 시기를 늦출 수는 있지만, 결국에는 시력의 손상을 감수할 수 밖에 없다. 아내와 함께 죽은 딸의 기일을 절에서 보내는 장면에서는 그가 오래전에 자식을 잃었음을 알 수 있다. 거기에 그는 아내의 부정(不貞)을 알게 된 것에 뒤이어 죽음을 목격한다. 카후쿠가 연기하는 연극 속의 '바냐 아저씨'는 아무 것도 이룬 것 없이 중년이 되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며 고통스러워 한다. 젊음도, 사랑도 이미 지나가 버렸다. 원래는 누이의 것이었지만, 누이의 죽음으로 매형 소유가 된 영지와 저택을 근근이 꾸려오는 동안 그의 시간은 손가락에서 빠져나가는 모래처럼 사라졌다. 그는 한탄한다.


  "난 마흔 일곱이야. 아마 예순 살까지 살겠지. 13년이나 남았어. 내겐 영원과도 같아. 어떻게 그 13년을 견디지? 내가 어떻게? 그 시간을 무엇으로 채우냔 말이지..."

(I am forty-seven years old. I may live to sixty; I still have thirteen years before me; an eternity! How shall I be able to endure life for thirteen years? What shall I do? How can I fill them?)

  체호프의 그 희곡 대사를 외울 때, 카후쿠는 바냐 아저씨가 아니라 그 자신이 된다. 또한 그는 공연 도중에 '바냐 아저씨' 1막의 대사, '그 여자의 정조란 가식이며 부자연스러운 것(such fidelity is false and unnatural)'이라고 말할 때에 북받히는 감정으로 대사를 더 잇지 못하고 무대에서 퇴장한다. 자신이 목격한 아내의 불륜이 그에게 수치스런 상처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점차로 카후쿠에게 '바냐 아저씨'는 연기해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자신의 이야기를 공연해야하는 무거운 숙제로 다가온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을 초빙한 연극제 주최 측의 바람과는 달리 바냐 아저씨 배역을 포기한다. 대신에 그것을 아내의 내연남이었던 타카츠키에게 넘긴다.

  무엇보다 카후쿠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아내의 죽음과 관련된,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못한 비밀스런 죄책감이다. 그는 갑작스런 뇌출혈로 세상을 뜬 아내의 죽음을 자신이 막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의 상처는 운전 기사 미사키가 들려주는 상실의 트라우마와도 기이하게 겹친다. 산사태로 엄마를 잃고 자신은 살아남은 미사키는 과거의 재난이 드리운 깊고 무거운 그림자 속에서 살고 있다. 미사키 또한 엄마의 죽음에 대한 마음의 빚을 털어내지 못한다. 두 사람은 그렇게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가까워진다.

  카후쿠와 미사키가 나누는 감정의 색깔은 사랑일까? 가까워진 남녀의 사이를 '연인'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어쩌면 편협한 시각일 것이다. 그들은 서로의 상처를 이해하고 보듬어줄 수 있는 친구, 또는 어떤 단어로 규정할 수 없는 가까운 관계가 되었다. 그 관계를 통해 두 사람은 자기 앞의 생을 담담히 응시하고 앞으로 나아갈 힘을 얻는다. 그리하여 카후쿠와 미사키는 각자의 삶에서 치유의 여정을 시작한다.

  카후쿠는 갑작스런 타카츠키의 하차로 연극이 취소될 위기에 처하자 바냐 아저씨 역을 마지못해 떠맡는다. 마침내 연극이 상연된다. 무대 정면의 스크린에 다국적 언어의 자막이 뜨는 가운데 카후쿠는 청각 장애인 배우 윤아가 맡은 소피아와 함께 극의 마지막 장면에 이른다. 영화 속에서 수화로 표현되는 소피아의 대사는 잔잔한 감동을 준다.

  "우리가 무얼 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우리는 살아가야만 해요. 그래요. 우린 살아야 해요. 우리 앞에는 길고 긴 밤과 낮으로 이어지는 여정이 기다리고 있어요. 우리는 운명이 우리에게 떠안긴 짐을 견뎌야 하죠. 쉼없이 누군가를 위해 일해야만 할 거에요. 그렇게 우린 늙어갈 거에요. 마침내 우리의 마지막 시간이 왔을 때, 비로소 무덤 너머의 것과 겸손하게 마주하게 될 테지요. 우리는 지난 삶을 돌아보며, 충분히 고통스러웠고 눈물을 흘렸으며 그것이 우리의 인생이라고 말할 거에요. 그리고 신은 그런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겠지요. 아, 바냐 삼촌, 우리는 결국 아름답게 빛나는 삶을 만나요. 우리의 슬픔이 있던 이 자리를 기쁨으로 돌아보면서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그렇게 쉬게 되겠지요. 바냐 삼촌, 난 그런 열렬한 소망을 갖고 있답니다."

(What can we do? We must live our lives. [A pause] Yes, we shall live, Uncle Vanya. We shall live through the long procession of days before us, and through the long evenings; we shall patiently bear the trials that fate imposes on us; we shall work for others without rest, both now and when we are old; and when our last hour comes we shall meet it humbly, and there, beyond the grave, we shall say that we have suffered and wept, that our life was bitter, and God will have pity on us. Ah, then dear, dear Uncle, we shall see that bright and beautiful life; we shall rejoice and look back upon our sorrow here; a tender smile—and—we shall rest. I have faith, Uncle, fervent, passionate faith.)


3. 비어있음의 미학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은 카후쿠가 다국적 언어로 연출하는 연극 '바냐 아저씨'이다. 서로 다른 국적의 연기자들, 거기에 청각 장애인 배우까지 그들은 각자의 언어로 대사를 소화한다. 오디션 장면에서 타카츠키가 아스트로프를, 대만 여배우 재니스가 엘레나를 맡아 극의 한 장면을 연기한다. 관객은 어떻게 상대방의 언어를 모르는 상태에서 연기를 해낼 수 있을까 흥미진진하게 지켜보게 된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것이 이루어진다. 몸짓과 감정 표현에서 나오는 에너지가 배우들 사이에서 바로 그대로 전달된다는 느낌을 받는다.

  언어를 넘어선 그런 교감의 연기는 야외에서 이루어진 재니스와 윤아의 연습 장면에서도 재연된다. 재니스는 중국어로, 윤아는 수화로 연기하는 그 장면은 '바냐 아저씨'에서 의붓 엄마 엘레나와 전처 소생의 딸 소피아가 나누는 대화이다. 엘레나는 소피아가 자신에게 가지고 있는 오해와 불편한 감정을 풀기 위해 노력한다. 두 사람은 마침내 마음을 열고 가까워지는데, 그 연기 장면에서의 따뜻함이 관객들에게도 전해진다.

  자신의 영화 시나리오를 대부분 직접 쓰는 하마구치 류스케는 인터뷰에서 늘 '대사'가 갖는 중요성에 대해 강조한다. 어떻게 하면 대사가 배우들에게서 자연스럽게 표현될 수 있는지, 배우들이 그 대사에서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에 중점을 두고 다듬는 작업을 한다고 밝혔다. 그에게는 등장인물의 캐릭터와 배우 개인이 가진 특성 사이의 간극을 메꾸는 것이 연출의 주요한 작업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하마구치 류스케는 배우에게 자신이 요구하는 연기를 하도록 지시하는 것이 아니라, 배우가 가진 역량에서 최대한의 것을 끌어내기 위해 협의와 공감을 바탕으로 작업한다. 이것은 그의 영화 경력 초창기 때 생긴 어려움에서 습득된 것이다. 연기력이 부족한 배우와 영화를 찍게 되었을 때 감독으로서 어떻게 할 것인가가 그의 고민이었기 때문이다.

  배우에게 연기를 위한 자리를 내어주는 것, 이런 하마구치 류스케의 연출 방식은 '드라이브 마이 카'에서 카후쿠가 타카츠키에게 설파하는 연기론과도 맞닿아 있다. 타카츠키는 언어가 다른 배우들이 함께 연기를 하는 것에 회의를 내비친다. 앞서 언급한 재니스와 윤아의 야외 연기 장면도 그런 타카츠키에게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카후쿠는 타카츠키가 가진 자아의 경직성에 대해 이야기 한다. 텍스트에 적힌 대사 그 자체에만 의미를 한정짓지 말라고 하면서 이렇게 일러준다.

  "텍스트에 여백을 주게. 그래서 그것이 스스로 이야기할 수 있도록 말이지."

  감독이 자신이 생각한 연출 의도를 배우에게 밀어붙이는 것이 아니라, 배우에게 자기 표현의 자리를 주는 것. 그리고 희곡 대본의 활자 자체에 얽매이지 않고 거기에 여백을 허용하는 것. 그 두 가지 경우 모두 '비어있음의 미학'과 연결된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속 인물들에서 드러나는 '자연스러움'은 바로 거기에서 나온다. 관객들은 그가 만들어낸 인물들이 영화나 책 속에서나 볼 수 있는 허구의 인물이 아니라, 우리 현실의 일상 어딘가에서 존재하는 사람들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나에게 그것이 가장 생생하게 다가온 캐릭터는 '우연과 상상(Wheel of Fortune and Fantasy, 2021)의 세 번째 에피소드에서 였다.

  텍스트에 여백을 허용하지 못하는 경직성, 자신이 우선으로 하는 신념과 가치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것을 허용하지 못하는 편협함. 결국 타카츠키의 닫힌 캐릭터는 스스로에게 파국을 가져온다. 여백을 허용하는 것은 포기가 아니라 자발적으로 자리를 '내어주는' 의지적 행위이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에서도 적용된다. 인생의 구멍과도 같은 상처와 상실을 억지로 메꾸려고 하는 대신, 그곳으로 시간과 아픔이 흘러가도록 바라보는 데에는 용기가 필요하다.

  영화의 마지막, 한국에서 지내는 미사키의 모습이 비춰진다. 마트에서 장을 보고 돌아가는 미사키의 차는 카후쿠의 것이다. 그리고 그 차에는 귀여운 레트리버 한 마리가 함께 한다. 청각 장애인 배우 윤아의 집에 미사키가 카후쿠와 초대받았을 때, 미사키의 마음에 들었던 레트리버가 이제 옆에 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미사키는 이제 자신의 차가 된 카후쿠의 차를 운전하면서 평온한 미소를 짓는다. 나는 그 장면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카후쿠에게 히로시마에서의 연극 '바냐 아저씨'와 미사키와의 만남이 치유의 시작점인 것처럼, 카후쿠와 그의 연극을 통해 미사키도 같은 여정에 들어선 것처럼 여겨졌다. 나는 이 영화를 걸작이라고 말하지는 않겠다. 꽤 괜찮은, 참으로 보기 드문 재능을 가진 감독이 우직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음을 증명하는 이정표 같은 영화라고 말하고 싶다.  


영화 '우연과 상상(Wheel of Fortune and Fantasy, 2021)'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1/2021-2-bad-luck-banging-or-loony.html

영화 '아사코(Asako I & II, 2018)'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0/asako-i-ii-2018.html

영화 '해피 아워(Happy Hour, 2015)'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1/chilly-scenes-of-winter1979-happy.html


*글 속에 인용한 희곡 대사 부분은 직접 번역했다.
   
**사진 출처: tiff.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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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와 만난 바냐 아저씨, 세 편의 영화로 만들어진 Uncle Vanya


바냐 아저씨(Дядя Ваня, 1970),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감독, 1시간 44분 
바냐 아저씨(Uncle Vanya, 1991), 그레고리 모셔 감독, 2시간 10분
42번가의 바냐(Vanya on 42nd Street, 1994), 루이 말 감독, 1시간 59분

 


1. 들어가며

  희곡 대본을 가지고 영화를 만드는 일은 과연 쉬울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미 작품성이 검증된 대본이 나와있으니 쉬울 것이라 생각한다. 심지어 평론가들조차도 연극 공연을 그냥 영화로 찍는 것이라고 여기는 경우가 있다. 시드니 루멧이 1962년에 유진 오닐의 희곡 '밤으로의 긴 여로(Long Day's Journey into Night)'를 영화로 만들어 내놓았을 때도 그런 반응이었다. 루멧은 자신의 경력을 Off-Broadway(브로드웨이의 소규모 극장에서 공연되는 연극) 감독에서부터 시작했다. 그랬기 때문에 그는 연극적 공간과 그 의미를 잘 알고 있었고, 또 뛰어난 영화 감독으로서 영화 제작의 메커니즘도 꿰뚫고 있었다. 그런 그의 연극에 대한 애정으로 만든 '밤으로의 긴 여로'는 개봉 당시 평론가들의 냉대를 받았다. 그들의 눈에 루멧의 영화는 공연되는 연극을 카메라 한 대 놓고 찍은 것처럼 보였던 모양이다.

  시드니 루멧은 영화 평론가들의 무지와 한심함에 분개했다. 등장 인물들의 심리와 감정 묘사를 위해서 루멧은 다양하게 쇼트들을 구성했다. 표준 렌즈를 비롯해 장촛점 렌즈와 광각 렌즈를 번갈아 가며 공간의 깊이를 달리해서 보여줬는데, 그걸 알아차리는 평론가가 없었기 때문이다. 영화 촬영의 기본적인 메커니즘도 모르는 평론가들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루멧이 '밤으로의 긴 여로'를 통해 받았던 오해와 혹평은 희곡을 영화로 만드는 감독이 처할 수 있는 어려움의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다.

  러시아의 위대한 극작가 안톤 체호프(Anton Chekhov)의 희곡 '바냐 아저씨(Uncle Vanya)'는 1898년에 완성되었다. 그 이듬해인 1899년에 초연된 이후, 이 연극은 고전으로 자리잡으면서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당연히 영화로도 여러 번 만들어졌다. 그 가운데에서 나는 세 편의 영화를 뽑았다. 구 소련 시절 모스 필름(Mosfilm)에서 제작된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의 1970년도 영화, 1991년에 영국 BBC와 미국 WNET TV의 합작으로 만들어진 TV용 영화, 그리고 마지막으로 루이 말 감독의 1994년작 '42번가의 바냐(Vanya on 42nd Street)'이다. 이들 영화가 어떻게 서로 다른 방식으로 체호프의 희곡을 영화적으로 변주했는지 살펴 보려고 한다.


***바냐 아저씨 줄거리***

  47세의 이반(바냐 아저씨)은 어머니 마리아, 조카 소피아와 시골 영지 저택에서 살고 있다. 세상을 먼저 떠난 누이의 지참금이었던 저택은 매형 세레브리야코프 교수의 것이 되었다. 세레브리야코프는 25년 동안의 교수 생활을 뒤로 하고 젊은 아내 엘레나와 시골로 내려왔다. 바냐는 젊은 날 자신이 사랑했던 엘레나가 늙은 교수와 결혼해서 사는 것을 견딜 수 없다. 그는 엘레나에 대한 사랑을 호소하지만 엘레나의 마음은 딴 데 있다. 자신의 늙음과 병고로 신경질을 부리는 남편에게 지친 엘레나는 바냐의 집에 잠시 머무르는 마을 의사 아스트로프에게 매혹된다. 세레브리야코프의 딸 소피아는 아스트로프를 6년 동안 사모해왔지만, 아스트로프는 그런 소피아에게 무관심하다.

  아스트로프는 엘레나를 유혹하고, 바냐는 그 둘 사이의 관계를 눈치채고 절망한다. 소피아도 아스트로프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편 세레브리야코프는 보다 여유로운 삶을 위해 바냐의 저택과 영지를 처분하겠다고 선언한다. 적은 보수를 받고 그동안 영지에서 나오는 대부분의 수익금을 교수에게 보냈던 바냐는 자신과 조카의 삶이 무너질 수 있는 위기에 격분한다. 바냐는 교수를 비난하고 모욕을 주고, 어머니 마리아는 아들의 무능함을 지적하며 사위를 두둔한다. 바냐는 교수에게 총을 쏘지만 빗나간다. 그 모든 상황에 놀라고 정나미가 떨어진 세레브리야코프는 아내와 떠나기로 결심한다. 아스트로프도 떠난다. 소피아는 희망을 잃고 불안하게 흔들리는 바냐 삼촌을 위로하며, 주어진 삶을 최선을 다해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시드니 루멧의 '밤으로의 긴 여로(1962)' 리뷰 https://blog.aladin.co.kr/sirius7/12448507


2. 가장 러시아적인 콘찰로프스키의 '바냐 아저씨'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Andrei Konchalovsky) 감독은 친분이 있던 배우 이노켄티 스목투노프스키(Innokenti Smoktunovsky)와 체호프의 연극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스목투노프스키는 영화 배우이면서 연극 쪽에서 더 많은 공연을 했다. 모스필름은 콘찰로프스키의 제안을 받아들였지만, 전적인 지원을 하지는 않았다. 1970년에 제작된 이 영화에 컬러와 흑백 필름이 혼용되어서 사용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비싼 컬러 필름을 제공할 여력이 없었기 때문에 모스필름은 제공되는 필름의 일부분을 흑백 필름으로 떠넘겼다. 콘찰로프스키 감독은 하는 수 없이 두 종류의 필름을 가지고 촬영을 해야만 했는데, 그의 탁월한 감각으로 영화의 완성도는 오히려 높아졌다.

  콘찰로프스키는 희곡 대본이 갖는 연극적 공간의 평면성을 극복하기 위해 여러 방식을 사용했다. 장면에 따라 흑백과 컬러를 적절히 나누어 찍었고, 인물과 공간을 보여주는 쇼트들의 구성에도 변화를 주었다. 연극에서 '암전
(轉)'에 해당하는 막의 전환은 인물의 얼굴에 비추어지는 조명을 서서히 어둡게 함으로써 표현했다. 콘찰로프스키는 체호프의 희곡 대본에 충실하기는 했으나,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다 옮기지는 않았다. 그 예로 2막에 나오는 엘레나와 바냐의 독백 부분이 생략된 것을 들 수가 있다. 아마도 그는 그 부분이 너무나도 연극적으로 보여서 자연스럽게 대화로 이어지는 흐름에 방해가 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콘찰로프스키의 '바냐 아저씨'를 가장 러시아적인 것으로 만든 일등 공신은 주인공 바냐 아저씨 역을 연기한 이노켄티 스목투노프스키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낭비한 인생에 대한 회한과 과거에 대한 향수로 살아가는 '바냐 아저씨'란 캐릭터를 절제되고 깊이있는 연기로 보여준다. 배우들 사이의 연기 앙상블도 좋은 편이다. 의사 아스트로프 역을 맡은 세르게이 본다르추크(Sergei Bondarchuk)는 솔직히 그 배역과 그리 잘 어울리지 않는다. 감독으로도 유명했던 본다르추크는 원래 VGIK(러시아 국립 영화학교) 연기과 출신으로 배우로도 활약했다. 영화 속 본다르추크의 연기에는 다소 과하게 힘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문제는 그의 연기력이 아니라 감독의 연출 지시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데에 있었다.

  본다르추크는 의사인 아스트로프가 귀족 출신으로 표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값비싼 좋은 의상을 입고 싶어했다. 그와는 달리 콘찰로프스키는 후줄근하고 구깃구깃한 평상복을 입으라고 지시했다. 촬영 내내 사사건건 부딪혔던 두 사람의 갈등은 급기야 불미스럽게 끝났다. 영화를 끝내고 당 중앙위원회로 달려간 본다르추크는 콘찰로프스키의 이 영화가 반 러시아적이며, 반 체호프적인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이런 걸 속어로 표현한다면 '곤조 부린다'에 딱 맞는 말일 것이다. 그런 본다르추크의 어깃장과는 관계없이 영화는 해외 영화제에서도 수상하며 큰 호평을 받았다.

  안드레이 콘찰로프스키 감독의 '바냐 아저씨'는 체호프적인 것에 대한 진중한 고민을 영화로 잘 녹여서 보여준다. 연극적인 것과 영화적인 것이 상충되거나 어느 한 편에 과도하게 치우치지 않고 조화롭게 균형을 이룬 이 작품은 오리지널의 품격이 무엇인지를 입증한다. 어떤 면에서 체호프가 러시아어로 쓴 희곡의 의미와 그 정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들은 러시아인들일 것이다. 러시아의 현대 음악 작곡가로 1970년대 많은 소련 영화 음악을 담당한 알프레드 슈니트케(Alfred Schnitke)의 음악도 영화의 비감함을 부각시킨다.


안톤 체호프의 희곡 'Platonov'를 각색한 니키타 미할코프의 영화(1977)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1/1977.html
안드레이 스목투프스키 주연의 영화 '차 조심!(1966)'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08/beware-of-car-1966.html



3. 영화적 메커니즘에 대한 몰이해가 낳은 범작, 영미 합작의 TV 영화 '바냐 아저씨'

  콘찰로프스키 감독의 '바냐 아저씨'가 희곡을 스크린에 멋지게 펼쳐놓았다면, 1991년에 만들어진 영미 합작의 TV 영화는 실패작에 가깝다. 감독 그레고리 모셔(Gregory Mosher)는 링컨 센터의 극장 감독으로 이 프로젝트를 맡았다. 원작 희곡의 각색자는 미국의 극작가이며 감독으로도 활동한 데이비드 메밋(David Mamet)이다. 재능있는 극작가답게 메밋이 다듬어낸 영어 대사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다. 이 영화는 영국과 미국 배우들이 함께 작업했는데, 그렇게 좋은 호흡을 보여준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뭔가 삐걱거리면서도 굴러가는 마차 같은 느낌이라고나 할까? 제작 기간이 좀 더 여유가 있었다면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아스트로프 역의 이안 홀름(Ian Holm)의 연기를 볼 수 있다는 점이 그나마 위안이기는 하다.

  이 영미 합작 영화의 가장 큰 문제점은 영화적 메커니즘에 대한 감독의 이해 부족에서 기인한다. 거의 대부분이 미디엄 쇼트와 클로즈업 쇼트로 구성된 이 영화는 말 그대로 영화 내내 등장인물의 얼굴 밖에 안보인다. 심지어 배우와 공간 전체를 다 잡은 풀 쇼트도 거의 없어서, 세트를 구성하는 집안의 구조가 어떻게 되는지도 파악이 안된다. 그렇게 화면을 구성했으니, 관객의 입장에서는 2시간에 이르는 러닝타임 동안 쏟아지는 지루함을 견딜 수 밖에 없다. 영국식과 미국식 억양이 뒤섞인 대사들도 조화롭지 못하다.

  그렇다면 이 TV용 '바냐 아저씨'는 그냥 걸러도(!) 괜찮은 영화인 걸까? 체호프의 열렬한 팬이라면 놓치기에는 아까운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안 홀름이 연기한 아스트로프가 무척 좋다. 원작에서 의사 아스트로프는 잘 생긴 외모의 중년 남자로 설정되어 있는데, 이안 홀름은 그와는 다소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머리가 희끗희끗한 비교적 작은 체구의 이 배우가 뿜어내는 카리스마는 바냐 역을 맡은 데이비드 워너의 비중을 압도한다. 솔직히 이 영화의 제목은 '바냐 아저씨'가 아니라 '의사 아스트로프'가 되어야할 것 같은 느낌이다.

  극 전체를 사로잡는 이안 홀름의 연기 때문에 다른 배우들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각색자 데이비드 메밋의 아내로 소피아 역을 맡은 레베카 피전의 뜬금없는 캐스팅도 아쉽기는 하다. 피전이 무리없이 배역을 소화해내기는 했지만, 자신만의 개성을 보여주는 것에는 실패했다. 이렇게 연기와 영화적인 구성 면에서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바냐 아저씨'는 연극을 영화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역설적으로 입증하는 경우라 하겠다.    


4. 영화 천재 루이 말의 마지막 역작, '42번가의 바냐'

  영화는 경쾌한 재즈 선율이 흐르는 가운데 뉴욕 42번가의 거리를 비춰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 독특한 영화는 연극 '바냐 아저씨'를 42번가의 버려진 극장에서 극단 배우들이 리허설하는 장면을 담아낸다는 설정으로 기획되었다. 루이 말(Louis Malle)의 '앙드레와의 저녁 식사(My Dinner with Andre, 1981)'를 즐겁게 보았던 이라면 이 영화도 놓칠 수 없다. '앙드레와의 저녁 식사'에서 같이 작업했던 두 연극인 앙드레 그레고리(André Gregory)와 월레스 숀(Wallace Shawn)이 '42번가의 바냐'에서도 나온다. 주인공 바냐 역은 월레스 숀이 맡았다. 영화에서 리허설 하는 장면의 연극 대본은 앞서 다룬 TV용 영화 대본을 각색했던 데이비드 메밋의 것을 그대로 썼다.

  극장으로 가는 길에 친구 앙드레를 만난 월레스는 자신이 기획한 연극 '바냐 아저씨' 리허설에 초대한다. 그렇게 앙드레와 그 지인들 몇몇이 모여 낡고 허름한 New Amsterdam Theater에서 이루어지는 연극 리허설을 구경하러 간다. 그들이 자리를 잡고 앉자 연극이 시작된다. 영화 속에서 리허설이 이루어지는 극장이 매우 눈길을 끈다. 1900년 초부터 대공황에 이르는 시기에 웅장하고 화려하게 건설되었던 뉴 암스테르담 극장은 쇠락기에 접어들면서 1970년대에는 흉물스런 건물이 되고 말았다. 연극 연출가 앙드레 그레고리는 가까운 사이의 배우들을 모아 '바냐 아저씨'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다. 루이 말은 소식을 듣고 그것을 영화로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영화를 위해 선택한 장소가 바로 그 42번가의 뉴 암스테르담 극장이었다. 그렇게 해서 '42번가의 바냐'가 탄생했다.

  이 영화에서 엘레나 역은 줄리언 무어가 맡았다. 무어의 좋은 연기력이야 두말할 필요가 없다. 영화 제작 당시 이제 막 전성기에 접어드는 이 여배우는 명민하고 세련된 자신만의 배역 분석을 보여준다. '앙드레와의 저녁 식사'에서 궁색한 연극 배우를 능청스럽게 연기했던 월레스 숀의 열정적이고 감성적인 '바냐 아저씨'는 그저 놀랍기만 하다. 다른 배우들도 모두 연극계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들이라 정말이지 뛰어난 연기호흡을 자랑한다. 그런 좋은 연기와 함께 내러티브도 개성적이다. '리허설'이라는 설정 때문에 1막이 끝나고 휴식 시간을 갖는 장면을 비롯해, 구경하는 지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매우 자연스럽다.

  배우들의 좋은 연기에 빛나는 화관을 얹어주는 것은 감독 루이 말의 감각적인 화면 구성 능력이다. 어떻게 같은 방식으로 구성된 쇼트들이 거의 없다. 그는 매번 카메라의 위치를 바꾸어 가며, 배우들의 동선과 공간을 다채롭게 보여준다. 한마디로 '이 사람은 영화 천재구나', 그런 감탄 밖에 나오지 않는다. 루이 말은 '바냐 아저씨'의 연극적 공간과 의미에 대한 영화적 탐구를 '42번가의 바냐'에서 멋지게 구현한다. 나는 아직까지 이 정도로 연극을 영화라는 매체적 특성에 부합하게 만들어낸 작품은 만나지 못했다. 만약 체호프의 희곡 '바냐 아저씨'를 만나고 싶어하는 독자가 있다면, 꼭 '42번가의 바냐'를 보길 바란다. 루이 말은 이 영화를 완성하고 이듬해에 세상을 떴다. 이렇게 좋은 작품을 천재 감독은 후대의 관객들에게 마지막 선물로 남겨두고 갔다.

  '바냐 아저씨'를 세 편의 영화로 보다 보니, 나중에는 배우들의 동선과 대사까지 줄줄 꿰게 되었다. 체호프의 이 희곡은 계속 보아도 질리지가 않는다. 아마도 그런 질문을 던질 독자도 있을 것이다. 19세기 말 러시아 시골 귀족의 케케묵은 소동극이 무어 그리 볼 게 있겠느냐고... 체호프가 그려낸 인물들의 삶에 대한 고민과 문제의식은 시대를 뛰어넘는다. 고통받는 인간, 벗어날 수 없는 운명에 대한 회한, 늙음과 질병, 생계와 돈에 대한 압박, 환경 파괴의 문제, 이 모든 것이 '바냐 아저씨'에 들어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또한 '바냐 아저씨'의 등장 인물들이 보여주는 속성은 다면적이다. 왜 바냐 삼촌의 어머니 마리아는 그들의 저택과 땅을 팔겠다는 교수 사위의 편을 들까? 바냐 삼촌이 세레브리야코프에게 총까지 쏘게 되는 것은 매형에 대한 증오일까, 아니면 생을 낭비한 자신에 대한 절망일까? 소피아가 어떻게든 남아있는 날들을 살아가야 한다고 마지막에 읊조리는 것은 희망의 표현일까, 자신의 인생에 대한 체념일까? 그 모든 것을 곱씹게 되는 것이야말로 작가 체호프가 후대의 독자에게 남긴 아름다운 문학적 수수께끼이다.       


루이 말의 '앙드레와의 저녁식사(1981)' 리뷰 https://blog.aladin.co.kr/sirius7/12790460


*사진 출처: poetree.ru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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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친 서부, 환대받지 못한 사람들

7편 The Geography of Hope(1877-1887)   1시간 25분


  켄 번즈는 미국 역사를 새롭게 조망하는 일련의 다큐멘터리로 명성을 얻은 제작자이다. 그는 해설 위주의 건조하고 딱딱한 역사 다큐에 새로운 감각을 불어넣었다. 그것은 시적이고 문학적인 것이었다. 번즈는 시와 편지, 문학 작품에서 발췌한 글들을 내레이션에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또한 과거와 현재를 병치시키는 독특한 자료 화면 배열로 정적이고 지루한 다큐에 '재미'라는 요소를 더했다. 'The West'에서도 번즈의 이런 제작 스타일이 드러난다. 서부 개척 시대를 살았던 여러 다양한 인물들의 서간문, 일기, 소설의 문장들이 성우들의 목소리로 낭독된다. 주요 해설자의 흡인력있는 내레이션, 권위있는 연구자들의 부가 설명이 곁들여지면서 다큐의 내용은 강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이제 'The West'의 7편에서는 미국의 서부 정복이 완료된 이후의 후일담이 펼쳐진다. 인디언들을 내쫓은 땅에는 어마어마한 수의 이주민들이 계속 쏟아져 들어왔다. 거기에는 대륙 횡단 철도 건설의 주역이었던 중국인 노동자들도 있었다. 남북 전쟁이 끝난 후, 해방 노예들 또한 서부에서 기회를 찾고자 했다. 브리검 영 사후의 몰몬교도들은 어떻게 살아나갔을까? 그리고 보호구역으로 들어간 인디언들이 있었다. 인디언들이 원하는 평화는 주어지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땅을 뺏은 것으로도 모자라 원주민 문화마저 말살시키는 정책을 펼쳤다.

 1877년부터 1887년까지 무려 450만 명의 사람들이 서부로 몰려들었다. 서부에는 그렇게 정착한 이주민들이 세운 도시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났다. 그러나 그 땅에서 모두가 환영받는 것은 아니었다. 1877년, 마지막 연방군이 남부에서 철수했다. 연방의 뜻에 따른 남부 재건은 무너졌고, 새로운 남부의 주법이 제정되었다. 노골적인 흑인 차별의 움직임 속에 KKK단이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흑인들은 차별을 피해 아프리카나 캐나다로 떠나기도 했다. 서부 또한 희망의 땅이었다. 남부를 떠나는 흑인들은 자신들을 'exoduster'라는 이름으로 칭했다. 이른바 '남부 대탈출(exodus)'의 주요 목적지는 캔자스였다. 1880년까지 15000명의 흑인들이 캔자스에 정착했다. 네브래스카, 다코타도 흑인 이주민들이 선호하는 정착지였다.

  이주민들은 경작에 적합하지 않은 척박한 땅을 가꾸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홍수, 토네이도, 메뚜기떼, 가뭄, 폭풍... 그 모든 것을 견딜 수 있게 한 것은 보다 나은 삶에 대한 '희망'이었다. 정착민들은 그 희망의 감각을 결코 잃지 않았다. 땅을 빼앗기고 보호구역으로 내몰린 인디언들도 희망을 갖고 버티려고 했다. 그러나 현실은 참혹했다. 시팅 불(Sitting Bull)은 캐나다 변경에서의 떠돌이 생활을 끝내고, 스탠딩 록 보호구역(Standing Rock Reservation)으로 돌아왔다. 1887년에 블랙 힐스를 미 정부에 빼앗기고 4년이 흐른 뒤였다.

  보호 구역의 삶은 감옥에서 사는 죄수와 다를 바 없었다. 2주 마다 몇 마리의 버팔로가 제공되었다. 부족민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식량으로 인디언들은 굶주렸다. 인디언들은 보호 구역 밖으로의 외출과 여행도 허락되지 않았다. 1883년, 미 의회 의원들이 스탠딩 록을 방문했을 때 시팅 불은 울분을 터뜨리며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것은 대등한 관계에서의 의사 표현이라기 보다는 부족의 생존을 위한 간청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상황은 개선되지 않았다. 오히려 미국은 본격적인 인디언 동화 정책을 추진한다. 1883년, 선교사들에 의한 인디언 아동들의 학교 교육이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새롭게 지은 영어 이름으로 불렸고, 가족과 떨어져서 기숙사에 머물렀다. 81개의 기숙사 학교와 147개의 일반 학교가 생겨났다. 시팅 불의 자녀들 또한 그 학교에 다녔다. 다큐에서 나이든 인디언 여성은 영어가 아닌 인디언 말을 썼다고 자신의 입에 비누를 짓이겨 넣은 백인 여사감에 대해 증언한다.

  인디언들처럼 중국인들도 서부에서 환영받지 못했다. 대륙 횡단 철도의 건설 노동자로 들어온 중국인들은 30만 명에 이르렀다. 백인들의 중국인 이민자들에 대한 반감은 계속 커져갔다. 그 가운데 터진 일이 1871년 LA에서 일어난 'Chinese massacre'였다. 처음 시작은 여자 하나를 두고 벌어진 두 중국인 갱단원의 싸움이었다. 그것은 곧 백인들의 중국인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력과 방화, 살상으로 이어졌다. 28명의 중국인들이 사망했다. 타인종에 대한 명백한 테러이며 학살이었다. 1882년, 캘리포니아 의회는 중국인 이민 금지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자신들만의 적절하고도 야만적인 방식으로 중국인 이민자들을 배제시켰다.

  그 즈음, 몰몬교도들에 대한 미 연방 정부의 통제력도 강화되기 시작했다. 몰몬교의 도시 솔트 레이크 시티에도 많은 이민자들이 도착했다. 매춘업소가 생겨났고, 거룩한 사막 성전 도시는 타락에 물들어 갔다. 1882년, 에드먼드 법안(Edmunds Act)이 통과되었다. 이 법에 따라 일부다처제는 연방법에 의해 5년형의 구금에 해당하는 범죄로 규정되었다. 1300명의 일부다처 몰몬교 남자들이 투옥되었다. 몰몬교도들은 연방 대법원에 항소까지 했으나 패했다. 교회가 해체되고 소유 재산이 몰수당하는 지경에 이르자 몰몬교의 수장 윌포드 우드러프는 1890년, 일부다처제 교리를 공식적으로 포기했다. 몰몬교 지도부는 자산을 매각하고 정당을 해산하라는 정부의 요구를 받아들였다. 1896년, 유타주는 45번째로 연방에 가입한다.

  서부는 거칠고 황량한 땅이었다. 1886년의 극심한 가뭄, 그리고 1887년으로 이어지는 겨울에 최악의 한파가 서부를 덮쳤다. 많은 소들이 죽어나갔고, 그제서야 서부의 사람들은 그 땅과 기후를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서부라는 공간이 갖는 모험과 도전, 로맨스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는 시간이 갈수록 커져갔다. 버팔로 빌(Buffalo Bill)은 대단한 흥행사였다. 그의 'Wild West' 쇼는 서부에 대한 거대한 서사극이었다. 총잡이들과 군인, 인디언들의 싸움이 대중의 오락거리로 재탄생했다.

  인디언들이 백인들을 괴롭히고 무찌르는, 현실의 피해자가 가해자 노릇을 하는 기이한 쇼였다. 그럼에도 당시의 관객들은 열광했고, 버팔로 빌은 유럽 순회 공연까지 하며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빅토리아 여왕까지 버팔로 빌의 공연을 보고 극찬했다. 버팔로 빌은 시팅 불을 쇼에 출연시키기도 했다. 시팅 불은 높은 출연료를 받고 쇼에 얼굴을 내밀었다. 그는 버팔로 빌을 아주 좋아했으며, 와일드 웨스트 쇼에 나오는 여성 명사수 애니 오클리(Annie Oakley)를 수양딸로 삼기도 했다. 비록 패배한 원주민족 추장이기는 했으나 미국인들 사이에서도 그의 명성은 널리 퍼졌다. 그렇게 라코타족 추장의 영욕의 생애가 저물고 있었다.
 
 
*사진 출처: pbs.org        뛰어난 흥행사 버팔로 빌(
Buffalo Bi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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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olex 16mm. 1학년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주로 썼던 카메라 기종이다. 지금 영화 공부하는 학생들은 아마도 디지털 기기로 공부하고 작업할 것이다. 내가 배울 당시에 영화에서 디지털이란 저예산, 실험 영화에서나 시도되는 것이었다. 디지털이 필름을 막 밀어내는 시기였다. Bolex로 찍은 16mm 필름을 현상해 보면, 거칠고 누런 색감이 났다. 마치 굵은 모래 뿌려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16mm=학생용=단편=실험 영화, 이런 공식이 적용되곤 했다. 그렇다고 이 카메라가 구닥다리에 우습게 볼 기종이냐 하면 그런 것도 아니다. 영국의 Mark Jenkin은 'Bait'란 장편 극영화(1시간 29분)를 그 Bolex로 찍었다(조만간 이 영화에 대해 글을 쓰려고 한다). 2019년작이다. 영화를 만드는 데에 중요한 것은 장비가 아니다. 작가적인 관점에서의 성실한 관찰과 깊이있는 사유이다.  

  최근 몇 년 동안의 다큐멘터리 제작 경향에서 두드러지는 점은 LGBT를 소재로 한 작품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것이다. 'No Ordinary Man(2020)'은 남장 여자의 삶을 살았던 재즈 뮤지션 Billy Tipton의 삶을, 'The Sound of Identity(2020)'는 트랜스젠더 바리톤 가수 Lucia Lucas의 이야기를 담았다. 두 다큐 모두 소재에 있어서 파격성이 돋보인다. 중요한 것은 소재가 주는 반향을 뛰어넘어 그것을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으로 얼마나 잘 변주해 내느냐일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 두 작품 모두 매우 실망스러웠다.

  'No Ordinary Man'은 지금의 시대를 사는 동성애자, 트랜스젠더들이 나와서 빌리 팁튼과 자신의 삶을 견주어 이야기한다. 성적 다양성에 닫혀 있었던 1950년대와 60년대를 통과한 팁튼의 삶은 대충 훑어보고 만다. 일종의 메타적 방식(meta documentary)을 적용한 셈인데, 결과적으로는 난삽하고 경박스러운 것이 되고 말았다. 'The Sound of Identity'는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 수술을 받은 바리톤 가수 루시아 루카스의 Tulsa Opera단 데뷔 공연 준비과정을 따라간다. 최초의 트랜스젠더 오페라 가수라는 점에만 집중한 나머지 흥미 위주의 가벼운 접근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두 다큐는 중심 소재가 되는 인물의 사회적, 문화적 맥락에 대한 탐구가 결여되어 있다.

  캐나다 출신의 젊은 여성 감독 Sarah Baril Gaudet의 2020년작 다큐 'Passage(2020)'는 앞서 언급한 두 다큐에 비한다면 분명한 자기 색깔과 나름의 성찰을 담고 있다. 다큐의 주인공은 시골 마을의 두 친구이다. 캐나다 퀘벡주의 가장자리에 자리한 Temiscamingue은 감독 자신이 나고 자란 곳이기도 하다. 끝없이 이어지는 평원과 나즈막한 산들로 둘러싸인 그곳은 전형적인 시골이다. 이제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18살의 Yoan과 Gabrielle는 친한 이성 친구이다. 동성애자인 Yoan은 단조로운 시골에서 벗어나 대도시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탐험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려고 생각 중이다. 동물을 좋아하는 Gabrielle은 말 사육장에서 일하면서, 동물 관리와 치료에 대한 공부를 해볼까 생각한다. 그러러면 집을 떠나 100km 떨어진 낯선 도시의 대학에 가야한다.

  'Passage'는 그 두 친구의 일상을 담담하고 고요한 시선으로 따라간다. 그들의 고향은 평온하고 아름다운 풍광을 간직하고 있다. 다큐의 지배적인 이미지는 그 Temiscamingue의 자연이 차지한다. 넓게 펼쳐진 녹색의 평원, 차들이 거의 다니지 않는 도로, 한가롭게 수영을 하며 시간을 보내는 청년들... 그렇지만 그곳의 풍광과는 달리 가브리엘과 요안의 마음은 진로와 앞날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으로 물결이 일렁인다.

  동네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요안은 도시에서의 삶을 위해 준비 중이다. 게이 커뮤니티 구성원들과 인터넷으로 소식을 주고 받으며 친분을 쌓는다. 거주할 곳을 정하는 것에서부터 어떤 일자리를 얻을지도 고민한다. 요안의 조부모는 낯선 도시로 떠나게 될 손주가 걱정스럽지만, 기꺼이 응원한다. 가브리엘은 직업을 위해 진로를 결정했지만, 부모와 남자친구가 있는 고향땅을 떠나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가브리엘과 요안은 그러한 고민들을 진솔하게 나누면서 마음의 짐을 덜어낸다. 가브리엘이 자신보다 8살이나 많은 남자친구에게 느끼는 세대차와 둘 사이의 미래에 대한 걱정을 털어놓을 때, 요안이 해주는 말들은 전문 상담가 못지않다. 남자친구와 솔직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방법을 찾아보라고 말하는 속깊은 친구 요안. 가브리엘과 요안이 그렇게 의지하고 격려하는 모습에서 관객들은 '친구'라는 단어의 온기를 느낀다.

  '통과'라는 의미의 제목답게 다큐는 요안과 가브리엘이 어른의 세계로 나아가는 여정을 그린다. 그들의 마을을 지나는 길고 한적한 도로변의 풍경도 자주 나온다. 진로, 성정체성, 연애, 가족과의 관계, 그 모든 것이 두 친구가 나아가는 길 위에 놓여있다. 어찌보면 답답하고 무겁게 느껴지기도 하는 걱정들이지만, 그들이 사는 곳의 자연은 그 모든 것을 넉넉히 품고 감싸안는다. 그것은 도시에서 사는 그 또래 청년들에게는 주어지지 않는 특권인지도 모른다. Sarah Gaudet 감독 자신에게도 Temiscamingue의 자연이 준 평화로움과 사유의 지평은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정체성과 연결되어 있다. 그런 이유로 'Passage'에는 감독의 고향땅과 그곳의 젊은이들의 이야기가 담겼다.       

  다큐는 요안과 가브리엘이 새로운 곳에서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것으로 끝난다. 그들은 이제 막 인생의 작은 길목을 통과했다. 감독 자신에게도 의미있는 첫 장편이 된 'Passage'는 젊은 다큐 제작자로서 앞으로 내놓을 작품들에 대한 희망의 빛을 던진다. 이 소박하지만 아름다운 다큐는 영상물 창작자가 갖추어야할 덕목이 무엇인가에 대해 성찰하게 만든다. 자신만의 시선으로 대상을 관찰할 것, 그리고 그것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하고 효과적인 방식으로 표현할 것. 좋은 작품이란 이 간명한 원칙이 구현된 결과물이다. 그것을 제대로 해내는 이들이 드물기 때문에 우리가 '좋은 영화'를 만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기도 하다.  



*사진 출처: f3m.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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