헨리 제임스(Henry James)문학의 영화적 변용 3부:
The Heiress(1949), William Wyler 감독



 "넌 잘난 것이 아무 것도 없어. 아, 한가지 예외가 있기는 하지. 자수 하나는 잘 놓더군."

  딸은 아버지에게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한다. 그러나 아버지가 보기에 사윗감이라며 딸이 선보인 남자는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아무래도 딸이 나중에 상속으로 받게 될 재산을 보고 들이댄 놈팽이가 분명하다. 남자가 노리는 것이 '돈'이라고 말하지만, 딸은 믿지 않는다. 아버지는 결국 뼈아픈 독설을 퍼붓는다.

  윌리엄 와일러 감독의 1949년작 'The Heiress'는 Augustus Goetz의 동명 희곡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희곡의 원작은 헨리 제임스의 소설 '워싱턴 스퀘어(Washington Square, 1880)'이다. 영화가 시작되면 관객은 부유한 저택의 한 아가씨 캐서린을 보게 된다. 그런데 손에 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살 것 같은 아가씨가 생선 장수에게서 생선을 사들고 온다. 들어오는 길에 아버지와 마주친 캐서린은 아버지를 위해 요리할 싱싱한 생선을 샀다고 말한다. 그런 딸을 대하는 아버지는 다소 거리감이 있고 냉담하게 느껴진다. 아버지 슬로퍼 박사는 그런 건 직접 할 게 아니라 배달을 시키고, 제발 밖에 나가서 사람 좀 만나라고 말한다. 원작 소설에는 없는 이 장면은 캐서린이 아버지의 권위에 순종적이고, 그 애정을 갈구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영화에서 캐서린 역을 맡은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Olivia de Havilland)는 헐리우드 고전기를 대표하는 미녀 배우였다. 그런데 영화 속 캐서린은 큰 이모네 집에서 열린 파티에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한다. 내키지 않은 표정으로 예의상 춤 신청을 했던 남자는 곧 캐서린을 내버려 두고 다른 아가씨와 춤을 춘다. 뭔가 좀 이상하다. 아니, 저 미녀 아가씨를 왜 외면하는 거지? 그런데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원작의 캐서린은 키가 작고 얼굴도 평범하며 아무런 매력이 없는 여성으로 묘사된다. 그런 캐서린을 미녀 배우가 연기하는 데에서 오는 간극을 주연 배우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는 잘 극복해낸다.

  그 파티에서 아주 잘 생긴 청년 모리스 타운젠트가 캐서린에게 접근한다. 조각 같은 얼굴을 가진 미남 배우 몽고메리 클리프트가 연기한 모리스는 소설 속에서도 수려한 외모를 지닌 인물로 나온다. 그가 못생긴 캐서린(관객은 하빌랜드를 그렇게 억지로 생각해야만 한다)에게 접근하는 데에는 다 속내가 있다. 캐서린은 장차 엄청난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녀이기 때문이다. 아버지 슬로퍼 박사가 가진 재산은 물론이고, 이른 나이에 세상을 뜬 모친이 남긴 돈은 온전히 캐서린의 것이다. 별 다른 직업도 없이, 그나마 조금 받은 유산마저 탕진한 이 남자는 무엇보다 '돈'이 절실하다. 그에게 캐서린은 안락한 삶을 보장해주는 은행 계좌처럼 보인다. 타고난 외모와 세련된 매너로 그는 곧 캐서린을 사로잡는다.

  영화 속에서 모리스는 캐서린의 집 응접실에서 자신의 피아노 연주를 들려준다. 프랑스 작곡가 Martini의 '사랑의 기쁨(Plaisir d' amour)'. 이 가곡의 제목이 모순적인 이유는 노래의 내용에 있다. 사랑의 기쁨은 사라지고, 슬픔만이 영원히 남아있네... 노래는 이후 캐서린이 맞닥뜨릴 고통과 시련의 시간들을 예견한다. 모리스가 낭만적으로 캐서린에게 구애하는 이 장면 또한 원작 소설에는 없는 장면이다. 이처럼 영화는 소설과는 다른 방식으로 내용을 가공하고 변형시켜 버린다. 그럼에도 '상속녀'에는 원작의 본질적인 부분이 살아있음을 보게 된다. 바로 캐서린과 아버지 슬로퍼 박사의 대립과 갈등이다.

  순종적이고 착한 딸이었던 캐서린은 모리스에 대한 사랑의 감정을 느끼면서 한 여성으로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기 시작한다. 캐서린은 슬로퍼 박사가 바라보는 것처럼 둔하고 합리적인 판단 능력도 없는 딸이 아니다. 슬로퍼 박사는 모리스를 돈만 밝히는 속물로 취급하며 딸의 마음을 돌리려고 애를 쓴다. 하지만 캐서린의 결심은 굳건하다. 소설에서 슬로퍼 박사가 딸에게 보이는 경멸과 조롱, 무시는 그가 얼마나 편협하며 냉담한 인물인지를 드러낸다. 슬로퍼 박사를 연기한 랠프 리차드슨(Ralph Richardson)은 비교적 온건하게 그 부분을 표현했음에도 관객은 그가 모리스를 반대하는 이유가 진심으로 딸을 위한 것인지 의구심을 품게 된다. 그는 자신이 물려줄 유산을 가지고 캐서린을 압박한다. 딸에 대한 온전한 통제력을 갖는 것, 그것이 박사에게는 매우 중요하다. 결국 그의 의도대로 캐서린은 모리스와 결별하게 된다.

  소설에서 캐서린은 모리스와의 결별 이후 자신의 아픔과 상처를 표현하지 않으려고 애를 쓰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 이유는 모리스에 대한 자신의 판단이 정확하고 옳았다는 박사의 자부심을 더하게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모리스의 거짓된 사랑, 아버지로부터 받은 상처와 모멸감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캐서린의 내면을 변화시킨다. 17년이란 시간은 영화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박사의 임종을 앞두고 영화 속 캐서린이 아버지와 극렬히 대립하는 장면은 그 변화를 압축시켜서 보여준다. 박사는 캐서린에게 자신이 죽은 이후에도 모리스와 결혼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해달라고 말한다. 캐서린은 그 약속을 하기는 어렵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박사는 이전에도 그랬듯 '유산'을 주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캐서린은 종이와 펜을 들고 온다. 유언장을 뜻대로 작성하시지요, 하며 아버지를 압박하는 캐서린의 결기는 이전과는 달리 주체적인 한 인간으로서의 변화를 의미한다. 이 장면도 원작에는 나오지 않는 부분이다.

  영화의 도입부에서 관객은 캐서린이란 캐릭터가 아버지 슬로퍼 박사가 보는 것처럼 그저 순진하기만 하고, 합리적 판단력이 부족한 여성이라는 인식을 공유하게 된다. 캐서린은 입에 발린 말을 늘어놓는 모리스의 구애를 진정한 사랑으로 여기며, 아버지의 유산 없이도 모리스가 자신과 결혼해줄 것이라 믿었다. 과연 캐서린은 세상물정 모르는 바보 아가씨였을까? 영화의 초반부에 캐서린이 주문한 의상을 입어보는 장면은 하나의 단서를 제공한다. 그 의상은 매우 화려한 크리놀린 스타일(Crinoline Style, 19세기 중반에 유행한 밑단이 넓게 펼쳐지는 스타일)의 드레스였다. 소설에서는 '진홍색(crimson)' 드레스로 묘사되는데, 흑백 영화에서는 눈에 띄는 그 색을 표현할 수 없으니 크게 부풀리고 장식이 들어간 드레스로 대체했다. 과감한 색상의 드레스로 남들의 주목을 끌고 싶어하는 캐서린은 드레스를 못마땅하게 여기는 아버지의 비아냥에도 굴하지 않는다. 진홍색 드레스는 어떤 면에서 캐서린이 자아를 찾는 여정의 시작점에 자리한다.

  영화 '상속녀'가 1960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었을 때의 제목은 '사랑아 나는 통곡한다'였다. 그때 지어진 제목은 6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도 통용되고 있다. 영화는 좌절된 사랑의 상처와 슬픔을 그려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영화의 원작이라고 할 수 있는 헨리 제임스의 'Washington Square'에는 그러한 표면적 내러티브와는 달리 다채로운 의미들이 내포되어 있다. 아버지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있던 여성이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해 나가는 여정, 그리고 계급의식에 대한 성찰까지 들어있다.

  소설의 제목 '워싱턴 스퀘어'는 캐서린과 슬로퍼 박사가 살고 있는 거리의 이름으로, 1850년대 당시 뉴욕의 상류층 거주지였다. 변변찮은 집안 배경을 가진 슬로퍼 박사는 '의사'라는 전문직을 가진 이후에 부유한 상속녀와 결혼함으로써 상류층에 진입할 수 있었다. 그가 캐서린의 결혼을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직업도 돈도 없는 모리스가 중산층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점이 크다. 아마도 그는 모리스의 모습에서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더욱 싫어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영화에는 그러한 슬로퍼 박사의 계층적 인식을 비롯해 모리스의 출신 배경이 삭제되어 있다.

  영화의 마지막, 캐서린의 집 밖에서는 다시 나타난 모리스가 캐서린의 이름을 부르며 맹렬히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캐서린은 들리지 않은 것처럼 등불을 들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오른다. 돌처럼 냉담한, 어쩌면 지친 표정의 이 상속녀는 살아있는 동안 '사랑'을 가질 수는 없는 운명이었다. 아버지 슬로퍼 박사는 평생동안 딸을 아둔한 아이로 여기고 경멸했다. 모리스는 그를 계층 상승과 부를 위한 발판으로 여겼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이 여인이 보여주는 얼굴의 표정에는 그 지난한 세월을 견디게 만든 의지와 독립심이 드러난다. 외롭지만 비참하지는 않다. 영화 '상속녀'는 원작을 압축시키고 생략한 영화적 변용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을 잘 살려내고 있다.       


*사진 출처: facebook.com





**헨리 제임스 문학의 영화적 변용 1부  'The Wings of the Dove(1997)'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2/henry-james-1-wings-of-dove-1997.html
 

  헨리 제임스 문학의 영화적 변용 2부 'The Last Moment(1947)'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2/lost-moment1947.html

*** 올리비아 드 하빌랜드 주연의 영화 '새장 속의 여인(Lady in a Cage, 1964)'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2/lady-in-cage.html
 

****소설에서 캐서린이 받기로 되어 있는 유산의 액수는 현재 달러 가치로 환산하면 약 백만 달러에 달한다. 슬로퍼 박사는 캐서린이 모리스와 결혼하면 자신의 재산을 남겨주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모리스가 캐서린과 결혼할 경우, 캐서린의 모친이 남긴 유산을 받는 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모리스는 더 많은 유산을 받고자 하는 욕심에 결혼 약속을 파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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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Henry James)문학의 영화적 변용 2부
The Lost Moment(1947), Martin Gabel



*이 글에는 영화 'The Lost Moment(1947)'의 결말이 들어있습니다.


  알프레드 히치콕의 '레베카(Rebecca, 1940)'. 가난하고 별 볼 일 없었던 젊은 아가씨는 부자와 결혼하는 행운을 잡는다. 그리고 남편의 대저택에 입성하는데, 그곳에서 위압적인 여집사 댄버스 부인과 마주한다. 영화 'The Lost Moment(1947)'의 주인공 출판업자 루이스 베너블은 줄리아나 보데로의 집에서 줄리아나의 조카 티나와 마주한다. 수잔 헤이워드가 연기한 티나는 마치 그 댄버스 부인을 연상케 한다. 뻣뻣하고 오만한 태도로 티나가 요구하는 저택의 하숙비는 터무니없이 높지만, 루이스는 기꺼이 지불하기로 한다. 물론 그에게는 나름의 속셈이 있다. 그곳에서 루이스는 유명 작가 제프리 애스펀의 숨겨진 연애 편지를 찾으려 한다. 애스펀의 편지를 받았던 주인공 줄리아나는 이제 백발의 노파가 되어 있다.

  영화 'The Lost Moment'는 헨리 제임스의 '애스펀의 러브레터(The Aspern Papers, 1888)'를 원작으로 만들어졌다. Leonardo Bercovici가 맡은 각색은 제임스 소설의 기이한 변용을 보여준다. 백발의 노파 줄리아나 역을 맡은 아그네스 무어헤드(Agnes Moorehead)는 5시간이 넘는 특수분장을 한 후에 연기를 했다. 거의 살아있는 해골에 가깝게 늙어버린 줄리아나는 마치 사악한 마귀 할멈처럼 비춰진다. 줄리아나의 대저택은 고딕 소설의 음산한 건축물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곳에 편지를 찾기 위해 잠입한 용사 루이스는 곧 자신이 구해야할 대상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어느 날 밤, 루이스는 저택의 버려진 방에서 피아노를 연주하는 티나를 발견한다. 루이스를 반갑게 맞이하는 티나는 스스로를 젊은 날의 이모 줄리아나로 여긴다.

  '애스펀의 러브레터'는 헨리 제임스가 아끼는 작품이었다. 잊혀진 러브레터에 대한 집념으로 출판업자(소설 속에서는 이름이 없다)는 미국에서 베니스까지 여행을 한다. 편지를 꼭꼭 숨기고 내놓지 않는 줄리아나 대신 그는 조카 티타(영화 속 이름 티나)에게 접근하기로 마음먹는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닌 영화 속 티나와는 달리 소설의 티타는 아무 매력도 없는 노처녀이다. 곧 티타는 그의 친절을 사랑으로 받아들이지만, 이모의 뜻을 존중한다며 편지를 찾는 일에는 나서고 싶어하지 않는다.

  영화는 애스펀의 편지를 찾고자 하는 출판업자의 집착과 열망을 로맨스와 스릴러 장르에 이식시킨다. 루이스는 티나와 사랑에 빠진다. 두 사람은 모두 줄리아나의 영향력 아래에 놓여 있다. 조카 티나는 젊은 날의 줄리아나에 빙의되어 있으며, 루이스는 줄리아나가 갖고 있는 애스펀의 편지에 매혹되어 있다. 사악한 마녀로 여겨지는 줄리아나로부터 어떻게 달아날 것인가? 놀랍게도 영화 속에서 그 해법은 '화재'이다. 마치 마녀가 불에 화형되는 것을 연상케 하는데, 줄리아나의 실화(失火)로 인한 그 화재로 편지는 모두 불에 타 없어진다. 

  원작 소설은 값나가는 편지에 대한 어느 출판업자의 욕망과 윤리적 당위성 사이의 고민이 주된 테마를 이룬다. 편지에 눈이 먼 그는 자신의 신분과 의도를 철저히 숨긴다. 티타의 환심을 사서 편지를 찾는 것도 여의칠 않자, 줄리아나의 방에 침입해서 뒤지기까지 한다. 티타는 그런 그의 기만과 거짓을 드러내며, 편지를 얻고 싶으면 자신의 청혼을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줄리아나가 죽은 후 편지는 자신이 물려받았고, 결혼으로 가족이 된다면 편지 또한 그의 것이 될 것이라고 하면서. 그 편지들 때문에 못생긴 노처녀와 결혼해서 평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고 그는 생각한다.

  내가 당신을 가질 수 없다면, 나도 당신이 원하는 것을 빼앗아 버리겠어. 청혼을 거절당한 티타는 편지들을 모두 불에 태운다. 티타는 자신의 상심을 남자에게 그렇게 되돌려 준다. 헨리 제임스가 그려낸 지독한 욕망과 상실의 변주는 'The Lost Moment'에서는 연기처럼 사라져 버린다. 어떤 면에서 영화는 원작과 전혀 다른 작품처럼 보이기까지 한다. 음산한 대저택, 백발의 흉측한 노파, 귀신 들린 미녀, 그 모든 것의 원흉이 되는 노파와 대저택을 불사르는 화재, 그리고 사랑의 완성. 이 기이하기 짝이 없는 고딕 스릴러 로맨스 영화는 당시 흥행에도 실패했고 비평가들에게도 외면받았다.

  과연 이 영화는 버림받아 마땅한 영화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원작자 헨리 제임스는 기막힌 각색을 못마땅해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소설이 그려낸 인간 내면의 어둡고 축축한 욕망을 영화는 다른 장르적 방식으로 비틀어서 보여준다. 영화 속 줄리아나는 애스펀이 떠나갈 것이 두려워 자신이 살해했다고 고백한다. 줄리아나의 고통받는 자아를 대변하는 조카 티나의 정신병적 징후는 줄리아나와 그 젊은 날을 상징하는 편지가 불과 함께 사라짐으로써 치유된다. 이 영화의 감독 Martin Gabel은 오손 웰스와 연극을 함께 했던 동료로 주로 연극 무대에서 활약했다. 그의 유일한 연출작으로 남은 'The Lost Moment'는 헨리 제임스 문학의 기이한 영화적 변용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christinawehner.wordpress.com   영화 속 줄리아나로 분장한 Agnes Moorehead가 자신의 사진을 들고 있다.



***영화의 원작 소설 '애스펀의 러브레터(The Aspern Papers)'는 2000년에 번역 출간되었으나 현재는 구할 수 없다. 저작권이 풀린 작품(Public Domain)이므로 영문본은 www.gutenberg.org에서 다운받아서 볼 수 있다.     
 
****헨리 제임스(Henry James)문학의 영화적 변용 1부
The Wings of the Dove(1997)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2/henry-james-1-wings-of-dove-1997.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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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제임스(Henry James)문학의 영화적 변용 1부:

The Wings of the Dove(1997), Iain Softley 감독
 


  "밀리는 죽어가고 있어. 그리고 당신의 사랑을 간절히 원하지."

  여자는 남자에게 비밀스럽게 속삭인다. 케이트와 머튼은 연인 사이이다. 현실적인 이유로 결혼을 미룬 둘은 비밀리에 약혼을 하고 주변을 속인다(영화에서는 약혼 사실이 나오지 않는다). 모든 것은 돈 때문이다. 가난한 케이트는 부유한 이모 집에서 기거하고 있는데, 이모는 케이트를 부자 귀족과 맺어주려고 한다. 머튼은 가진 것 없는 글쟁이 기자라서 이모 눈에는 들지도 않는다. 그런 케이트 앞에 미국인 상속녀 밀리가 나타난다. 피붙이 하나 없는 밀리는 죽을 병에 걸려 있다. 그런데 밀리는 케이트의 연인 머튼에게 마음을 뺏긴다. 밀리와 친구가 된 케이트는 속내가 복잡해진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밀리와 머튼을 결혼시키고 유산을 받게 하면 어떨까? 그리고 나서 자신이 머튼과 결혼하면 되지 않은가?

  과연 케이트는 악녀인가? 케이트를 사랑하는 머튼은 정직한 인물로 거짓말을 혐오한다. 그런 그에게 연인 케이트는 다른 여자에 대한 '거짓 사랑'을 강요한다. 그것도 죽어가는 여자를 상대로 유산을 얻어내라고 말이다. 밀리가 원하는 사랑을 주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지 않냐고 남자를 구슬린다. 남자는 연인에 대한 집착과 환멸 사이에서 갈등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공모자가 된다.

  헨리 제임스(1843-1916)는 독특한 이력을 가진 작가였다. 미국인으로 태어났으나 유럽을 동경했고, 결국 영국으로 이주해서 그곳에서 생을 마감했다. 살아생전에 소설과 희곡을 비롯해 많은 작품을 남겼으나 동시대에 명성을 얻지는 못했다. 그는 부유한 집안 출신으로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창작 활동을 해나갈 수 있었다. 그의 작품이 재평가되기 시작한 것은 1940년대에 이르러서 였다. 그즈음 미국 출판계에서 선집 형태로 나오기 시작하면서 헨리 제임스는 새롭게 부각되었다. 연극과 영화로도 여러 번 만들어졌다. '비둘기의 날개(The Wings of the Dove, 1902)'는 무려 9번이나 각색되었다. 1997년에 Miramax에서 제작한 이 영화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소설을 영화로 만들 때 거치는 과정은 '압축'과 '생략'이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다. 헨리 제임스의 문체는 부연 설명이 많고 장황한 만연체에 가깝다. 영문본을 읽다 보면 다시 이전의 문장으로 돌아가서 읽게 될 때가 많다. 영화로 만들어진 '비둘기의 날개'에서는 그런 제임스의 흔적을 기술적으로 삭제해 버렸다. 보수적인 빅토리아 시대에서 시간은 1910년으로 건너뛴다. 불필요하다고 생각되는 등장인물들은 내쳐졌으며, 밀리가 미국 특파원으로 온 머튼을 만나서 반했다는 소설 속 설정도 바꾸었다. 영화에서 밀리는 런던에서 처음으로 머튼을 보게 된다. 영화는 무엇보다 케이트와 머튼의 육체적 끌림에 좀 더 비중을 둔다. 점잖은 빅토리아 시대 소설을 읽었다고 생각하는 독자들은 영화의 선정성에 꽤나 놀랄 것이다. 헐리우드의 뻔한 장삿속이 불쾌하다고 느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영화는 원작 소설이 지닌 본질을 망가뜨린 걸까?

  러닝타임 1시간 42분이 정말이지 순식간에 지나가 버린다. 1910년대를 충실히 재현한 세트와 의상, 베니스에서 찍은 로케이션 장면들은 눈을 뗄 수가 없다. 늘 관광객으로 미어터지는 베니스에서 어떻게 인파를 통제하고 영화를 찍었는지 내내 궁금해질 정도이다. 영화 '비둘기의 날개'는 헨리 제임스의 소설에 생기와 광채를 부여한다. 무엇보다 케이트를 연기한 헬레나 본햄 카터의 연기가 매혹적이다. 소설 속에서 케이트는 지적이고 아름다운 아가씨로 묘사되는데, 카터는 존재 그 자체로 관객을 사로잡는다.

  부에 대한 거칠고 들끓는 욕망으로 연인 머튼을 자신의 계획에 동조하게 만드는 케이트. 꽤나 주도면밀하고 냉정한 것처럼 보이지만, 자신의 남자를 다른 여자에게 밀어내는 속내가 편할 리가 없다. 머튼이 진짜 밀리를 사랑할까봐 두려워진 케이트는 흔들린다. 밀리의 재산을 노리고 결혼을 원하는 마크 경을 부추겨 머튼과 자신의 관계를 밀리에게 알리도록 한 것이다. 마침내 진실을 알게 된 밀리. 머튼의 사랑으로 잠시나마 행복을 느꼈던 밀리는 심한 충격을 받는다. 그럼에도 밀리는 죽음을 앞두고 자신의 재산을 머튼과 케이트에게 남긴다.

  "우린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 없어!
  (We shall never be again as we were!)"

  원하는 돈을 얻게 된 케이트는 행복했을까? 소설은 케이트가 머튼을 향해 외치는 그 말과 함께 끝난다. 세상물정 모르는, 그저 순전하게 빛나는 한 마리 비둘기로 묘사되는 밀리는 자신이 남긴 돈이 두 연인에게 결코 축복이 될 수 없음을 간파했는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밀리는 사랑을, 머튼은 평생 간직할 아픈 추억을, 케이트는 돈을 얻었다. 헨리 제임스가 그려낸 이 서늘한 사랑의 초상에서는 깊은 슬픔이 베어져 나온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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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살이 넘은 사람은 지원할 수 없다. 몸에 문신이 있는 사람도 안된다. 회사에서 3분 이내의 거리에 있는 기숙사가 제공된다. 방 하나에 4명, 최대 8명이 같이 쓴다. 구인 담당자들은 버스 터미널 앞에서 자신들이 요구하는 조건을 외친다. 캐리어를 끌고 이제 막 상경한 것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들은 그 조건들을 유심히 듣는다. 마침내 마음을 결정한 이들은 대형 관광 버스에 몸을 싣는다. Jessica Kingdon의 2021년작 다큐멘터리 'Ascension(登楼叹)'의 도입부는 대형 제조사들의 현장 구인 장면을 담는다. 다큐는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의 산업 현장과 노동자들, 그리고 다양한 사치 산업과 소비 행태를 통해 오늘날 중국 자본주의의 현실을 조망한다.      

  내레이션이 배제된 이 다큐는 이미지와 소리, 음악으로만 내러티브를 구성해 나간다. Dan Deacon이 맡은 음악은 군데 군데 전자음과 공장의 기계음을 합성했다. 때론 빠르게, 느리게 흘러가면서 음악은 다큐에 운율을 부여한다. 쉴 새 없이 기계에서 쏟아지는 플라스틱 부품들, 그것을 반복적으로 조립하는 공장 노동자들, 그들은 가끔씩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는다. 동료에게 왜 공장장에게 밥을 사지 않느냐며 말하는 이는 그에게 잘 보여야 일거리를 계속 줄 거라며 설득한다. 노닥거리지 말고 잡담도 하지 말라며 경고하는 관리자. 아마도 관리자의 자녀라고 생각되는 아이는 공장을 비추는 여러 대의 CC TV 화면이 보이는 책상 앞에서 간식을 먹고 있다. 이렇게 이 다큐에는 다층적 의미를 지닌 메시지들이 흥미롭게 숨겨져 있다.

  관객들의 시선을 단번에 붙잡는 장면은 성인용 특수 인형(Sex Doll) 제작 현장일 것이다. 실리콘으로 제작되는 인형을 만드는 이들은 대부분 여성이다. 그들은 섭씨 400도가 넘는 고온의 성형 도구를 다룬다. 거기에 가려움증을 유발하는 유해한 염료와 가루와도 씨름해야 한다. 주문 고객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 최적의 색을 선정하고, 완제품의 세부를 사진으로 찍어서 주문자에게 보낸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국경을 뛰어넘는 성 상품 산업의 하부 구조를 부각시킨다.

  노동자들을 고용하는 회사는 전체주의적 방식으로 직원들을 훈련시키고 관리한다. 군복을 입고 제식 훈련을 받는 노동자들은 회사에 대한 충성심과 애사심을 되새긴다. '명령에 따르라'는 구호를 외친 후, 기숙사로 향하는 그들의 출입은 '지문'과 같은 생체 인식으로 통제되고 감시받는다. 그들이 만든 물건은 부의 창출을 위한 원재료가 된다. 개인 동영상 채널로 물건을 판매하는 판매자는 신상품을 사라고 외치고, 부자가 되기 위한 마케팅 세미나에서는 몇 년 이내에 몇 백억을 벌겠다는 허황된 다짐이 울려퍼진다.

  늘어난 부유층들의 수요에 맞추기 위해 생겨난 집사 교육 학원, 경호원 학교도 볼 수 있다. 경호원 학교의 교관은 잘 해내지 못한 훈련생을 무자비하게 질책하며 모욕을 준다. 진짜 돈 있는 사람들의 저녁 식사 장면도 포착한다. 외국 유학을 다녀온 그들은 미국이 중국을 상대로 벌이는 무역 전쟁에 불편한 속내를 보인다. 신장 지역의 인권 보다 중요한 것은 '생존'이라며 중국의 입장을 강변하기도 한다. 중국이 좀 어려움을 겪기는 하겠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을 다 이겨낼 것이라는 믿음. 그것은 대형 화장품 회사 사장의 연설에서 드러난다. 행사장의 홍보 영상에는 립스틱 생산 장면과 여군들의 행렬이 병치된다. 이 기이한 홍보 영상은 중국이 무역전쟁에서 필사적인 '군인 정신'으로 승리할 것이라는 자기 암시가 들어있다.   

  감독 제시카 킹던은 2017년에 10분 가량의 단편 다큐를 선보였다. 'Commodity City'는 다양한 소비재들의 판매 집결지인 중국 저장성의 'Yiwu(義烏) city' 상가의 일상을 담았다. 킹던이 그 단편을 찍으면서 가졌던 관심이 'Ascension'에서 좀 더 깊이있는 사유로 확장되었다. '상승'으로 번역되는 이 다큐의 제목은 킹던의 증조부가 지은 시 제목에서 따왔다. 다큐는 중국 각 지역의 51개 공장에서 촬영되었는데, 그 여정은 감독에게 자신의 뿌리를 들여다 보는 계기이기도 했다. 어머니가 중국인인 중국계 미국인으로서 킹던은 후난성에서 증조부의 자취를 발견한다(asiapacificarts.org와의 인터뷰 참조). 청나라 말기의 문인이었던 Zheng Ze, 그가 지은 시 'Ascension(登楼叹)'의 싯귀로 다큐는 문을 연다.

  "손에 칼을 쥐고 탑을 오르네
  근심이 사라지길 바라며 먼 곳을 바라보네
  하지만 내가 오르기에 탑은 너무 높아
  오히려 괴로움만 커질 뿐

  Hand on my sword, I ascend the tower.
  I gaze afar, hoping to relieve my worries.
  The tower is too high to climb;
  Instead, my troubles only grow."

  부를 향한 무지막지한 열망, 소비주의로의 질주. 오늘날 중국에서 노동자들의 계층 이동은 가능한가? 킹던은 대규모 워터 파크를 채운 인파, PC 게임에 몰두하는 젊은이들의 무료한 일상을 보여주며 그 질문에 답한다. 그들은 소비할 뿐, 더 높은 계층으로 가기 위한 사다리에 오르지는 못한다. 이 다큐는 우리말 제목 '중국몽'으로 나와있는데, 나는 그 제목이 다큐의 본질을 충분히 담아낼 수 없다고 생각한다. 'Ascension'의 중국어 부제는 '登楼叹', '망루에 오르며 한숨을 쉰다'는 뜻이다. 더 많은 돈을 벌고, 갖고 싶고, 쓰고 싶다는 극한의 물질적 욕망의 끝에서 결국 만나게 되는 것은 허망한 괴로움 뿐이라고 킹던은 시를 통해 강조한다.

  다큐의 끝부분, 중국의 자원 무기인 희토류 광산과 함께 상품을 실은 컨테이너 선박이 바다를 가로지르는 장면이 나온다. 버스 터미널에서 시작한 다큐의 여정은 그렇게 마무리 된다. 자본주의에 대한 이 매혹적인 영상 서사시를 만든 제시카 킹던, 그의 부친은 성공한 헤지 펀드 매니저이다. 분명 '궁핍함'과는 거리가 먼 삶의 배경을 지닌 부유한 다큐 제작자는 어쩌면 자신이 가장 잘 아는 부의 숨겨진 본질에 대해 말하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이 다큐는 documentarymania.com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영어 자막이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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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Gaku: Our Sound(2019), Kenji Iwaisawa
The Summit of the Gods(2021), Patrick Imbert
Flee(2021), Jonas Poher Rasmussen


1. 일본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바람, On-Gaku: Our Sound

  하고 싶은 일이 없어도 괜찮은 걸까? 고등학생 켄지와 오타, 아사쿠라는 학교 동아리방에서 비디오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을 죽이고 있다. 한주먹하는 켄지에게는 싸움을 걸고 싶어하는 오바와 그 패거리들이 골칫거리다. 그러나 켄지는 '짱'이 되는 일에는 별 관심이 없다. 어느 날, 길을 가던 켄지에게 누군가 잠깐 일렉 기타를 맡긴다. 그때부터였다. 켄지가 음악을 하기로 마음 먹은 것은. 민머리, 각진 눈, 뚱뚱한 외모를 지닌 아웃사이더 3총사는 그렇게 밴드를 결성한다. 이 밴드, 과연 연주는 할 수나 있을까?     
 
  이와이사와 켄지는 2019년에 독특한 애니메이션 영화를 내놓았다. '음악(音楽)'이란 제목의 'On-Gaku: Our Sound'는 제작에 7년이란 시간이 걸렸다. 모든 작화를 직접 손으로 그린 71분의 이 작품을 만드는 동안 그의 나이는 마흔을 넘겼다. 아마도 이와이사와 켄지에게 이 애니메이션은 반드시 해내야만 하는 중요한, 의미있는 작업이었을 것이다. 'On-Gaku'는 상업성과는 거리가 먼 지점에 자리한다. 단순하고 간결한 작화, 건조한 유머, 실험적 음악,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서 꽤 괜찮은 울림을 만들어 낸다.

  켄지는 자신들의 밴드에 '고무술(古武術, Kobujutsu)'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그저 단음으로 베이스 기타를 치고, 드럼으로 두들겨 대는 음악을 하면서도 자신들이 록 정신을 구현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연주는 학교 음악 동아리 리더 모리타를 감동시킨다. 두 밴드는 합심해서 곧 열릴 록 페스티발에 참가하기로 한다. 삼총사 밴드가 연주하는 단음의 연주, 모리타의 노래에서 느껴지는 손발 오그라드는 발라드적 감성. 남들이 보기에는 우습기 짝이 없다. 하지만 정작 그들 자신은 매우 진지하며 최선을 다해 음악을 하고 있다. 이 '자기 중심성'이야말로 청소년기를 이끄는 중심 추동력이다.  

  "음악이 없다면, 난 아무 것도 아냐."

  공부는 구제불능이라며 자조하는 모리타. 학교 생활은 재미가 없고, 다들 자기가 뭘 하고 싶은지 알지 못한다. 이와이사와 켄지는 불안하게 흔들리는 주변부 청소년의 초상을 그려낸다. 'On-Gaku'가 그려낸 십대 아웃사이더들의 모습에는 기이한 활력과 희망이 보인다. 그 이유가 뭘까? 음악이 있기 때문이다. 어쩌다가 그냥 해보게 된 음악이 그들의 꽉 막힌 일상에 숨구멍을 만들어 준다. 비록 최고가 되지 못한다고 해도 견딜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여린 음성(여성 성우가 담당)으로 말하던 모리타는 강한 목소리의 록커로 변신하며, 켄지는 단음만 내는 베이스 기타를 때려 부수고 리코더로 기막힌 음률을 연주해 낸다. 그리고 마음에만 둔 여자 친구 아야에게도 자신의 진심을 전할 수 있게 된다. 비주류적 감성이 넘쳐나는 이 애니메이션은 썰렁하지만, 그 이면에 온기를 지니고 있다. 'On-Gaku'에서는 일본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바람이 느껴진다.  


2. 멈출 수 없는 여정, The Summit of the Gods(2021)

  Netflix의 마케팅 전략은 '돈 되는 것은 무조건 다 해 본다' 같다. 자체 제작 다큐를 비롯해 예술 영화, 애니메이션 배급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프랑스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The Summit of the Gods(2021)'는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다. 이 작품은 유메마쿠라 바쿠(夢枕獏)가 쓴 '신들의 봉우리(神々の山嶺)'를 원작으로 한다. 다니구치 지로가 생생한 작화로 그려낸 만화책도 나와있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라 실사 영화 '에베레스트 신들의 봉우리(2016)'로도 개봉되었는데, 관객들의 평은 그렇게 높지 않다. 그렇다면 애니메이션은 어떨까?

  이 프랑스 애니메이션은 좀 밋밋하고 둔중한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는 등장인물이 일본인들인데 프랑스어 더빙으로 만들어졌다는 데에 있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에 익숙한 우리나라 관객들에게 그 차이가 좀 더 크게 다가오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인물과 대사가 따로 노는 이 기묘한 불일치성은 극의 몰입을 방해한다. 거기에 이 프랑스 애니메이션의 그림체는 정교하고 세밀한 일본 애니의 작풍과도 거리가 있다. 그럼에도 등반 장면을 비롯해 에베레스트의 풍광을 재현한 모습은 실사 영화만큼이나 사실적이다.

  1924년, 조지 말로리와 앤드류 어바인은 에베레스트 등정 과정에서 실종된다. 그로부터 70년이 지난 1993년, 일본 기자 후카마치는 말로리가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되는 카메라를 손에 넣는다. 만약 말로리가 정상에서 찍은 필름을 찾을 수 있다면, 에베레스트 최초 등정 기록이 바뀔 것이다. 백방으로 수소문해 본 결과, 카메라를 발견한 일본 산악인 하부 조지가 필름을 가지고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그런데 하부는 동료를 비운의 조난 사고로 잃은 후 행방이 묘연한 상태이다. 하부와 필름의 행방을 찾아 네팔로 떠난 후카마치, 그는 자신이 찾는 진실에 다가설 수 있을까...

  역사적 사실과 허구를 절묘하게 결합한 이 작품은 산에 대한 집념과 열정을 지닌 한 산악인의 인생 여정을 따라간다. 목숨을 내걸고 신들의 봉우리에 다가서려는 사람들, 무엇이 그들을 산으로 이끄는가? 그것을 일반인의 관점에서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신들의 봉우리'는 그 이유가 단지 높은 곳에 오르기 위한 야망 때문이 아니라고 말한다. 산을 오르는 여정, 일단 그 길에 오르면 멈출 수 없는 사람들. 결국 이 작품은 그 도저한 열망과 집념에 대한 이야기인 셈이다. 그리하여 우리의 인생에서 그렇게 치열하게 추구하는 가치가 있는지 돌아보게 만든다.


3. 이야기가 가진 진정한 힘, Flee(2021)

  '난민'은 팬데믹 시대에도 여전히 세계 각지에서 진행되는 주요한 사건이다. 덴마크에서 만들어진 이 애니메이션은 희망을 찾아나선 아프간 난민의 기나긴 여정을 들려준다. 주인공 '아민'의 이름은 가명이지만, 이 작품은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실사와 애니메이션, 실제 뉴스 화면이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으로 짜임새 있게 구성되어서 이야기의 핍진성(逼眞性)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린다.            

  아민의 이야기를 듣는 감독은 마치 임상 심리학자 같다. 떠올리기 싫은 과거의 기억을 편안하게 털어놓기 위해 카메라 앞에 선 아민은 침대에 눕는다. 눈을 감고 이야기를 하던 그는 때로 일어나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차마 말을 잇지 못할 때도 있다. 1989년, 소련의 아프간 철군과 함께 어린 아민과 가족은 고국을 떠날 처지에 놓인다. 관료였던 아버지는 무자헤딘에 의해 체포되어서 생사를 알 수 없다. 어머니와 두 누나, 형과 함께 소련으로 탈출했지만 그때부터 시련은 시작되었다. 불법 체류자 신세로 소련 경찰의 추적을 피해 집안에서 지내야만 했던 것. 일찍 고국을 떠나 스웨덴에 정착한 큰 형이 밀입국 비용을 마련할 동안 아민의 가족들은 기다리는 수 밖에 없었다. 먼저 떠난 두 누나는 겨우 죽을 고비를 넘기고 소련을 빠져 나갔다. 그 뒤를 이어 아민과 형, 어머니도 밀입국 길에 오르는데...

  이 애니메이션 영화가 가진 힘은 '이야기'에서 나온다. 아프간에서 평화로운 어린 시절을 보내던 아민이 어떻게 소련에서 고립된 몇 년의 세월을 견뎠는지, 첫 번째 밀입국 시도가 얼마나 무모했는지, 그리고 마침내 유럽에서 난민으로 인정받기까지의 과정이 마치 소설처럼 펼쳐진다. 그것은 흥미진진한 모험담이 아니라, 피와 뼈를 가르는 극심한 고통과 두려움 속에서 건져올리는 과거의 기억이다. 자유를 찾아 떠난 난민이면서 동성애자로서 아민이 겪었던 정체성의 혼란도 겹쳐진다.        

  이제는 학자로서, 그리고 삶의 동반자를 만나 안정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민. 난민으로 지냈던 시절의 트라우마는 여전히 남아있고, 가족들은 여러 나라에 흩어져서 서로의 신분을 숨긴 채 살아가고 있다. 어떤 면에서 아민의 이야기는 탈출에 성공하지 못한 그 시절 많은 아프간 난민들의 가려진 삶을 떠올리게 만든다. 아민은 먼저 고국을 떠나 유럽에 정착한 형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탈출이 가능했다. 얼마나 많은 난민들이 자유를 찾는 과정에서 다치고 죽었는지 알 수 없다. 'Flee'는 아민의 힘겨운 탈출기를 통해 분쟁 지역의 사람들이 처한 생존의 위기, 그로 인해 발생하는 난민의 문제, 그들을 바라보는 우리들의 시선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사진 출처: gkids.com



**사진 출처: themoviedb.org



***사진 출처: flimspeak.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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