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시도 조, 무국적의 총잡이가 되다

권총은 나의 패스포트(拳銃は俺のパスポート, A Colt is My Passport, 1967)

노무라 타카시(Nomura Takashi) 감독



  여기 한 명의 배우가 있다. 배우로서 성공하겠다는 꿈을 가졌지만 그저 그런 단역들만 주어질 뿐이었다. 적당히 잘생긴 자신의 얼굴로는 좀처럼 기회가 주어질 것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는 결심한다. 성형 수술로 개성을 가진 마스크를 만드는 거다. 시시도 조(Shishido Joe)는 광대뼈 부분에 실리콘을 넣은 새로운 얼굴의 배우가 되었다. 성형 수술 이후 그의 양볼은 마치 사탕을 두어 개 물고 있는 것처럼 도드라져 보였다. 그런 이유로 그에게 '다람쥐'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다. 독특한 얼굴 덕분이었을까? 그는 액션 영화에서 총잡이 역할로 잘 나가기 시작했다. 영화 '권총은 나의 패스포트(A Colt is My Passport, 1967)'는 시시도 조의 대표작이다.

  시시도 조가 이 영화에서 맡은 역은 저격수 카미무라이다. 카미무라는 야쿠자 보스의 의뢰로 다른 조직의 야쿠자 보스를 암살한다. 그는 일이 끝나면 돈을 받고 외국으로 나가기로 되어있다. 하지만 조직은 카미무라를 적당히 써먹고 처리해 버리려고 한다. 카미무라는 파트너 슌과 함께 야쿠자들에게 쫓기는 신세가 된다. 부둣가 근처의 선술집으로 숨어든 두 사람, 그곳에는 거친 밑바닥 삶을 사는 여성 미나가 있다. 미나는 카미무라에게 동질감을 느낀다. 카미무라는 미나의 도움으로 밀항의 기회를 잡지만, 그러는 사이 슌은 야쿠자들에게 끌려간다. 슌을 풀어주는 대신 자신이 야쿠자들과 대면하기로 한 카미무라. 폐허의 매립지에서 고독한 총잡이는 야쿠자들을 상대로 마지막 결전을 벌인다.

  총잡이와 일본 영화라니, 무언가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영화는 스파게티 웨스턴(Spaghetti Western)의 전형적인 스타일을 그대로 모사했다는 인상을 준다. 엔리오 모리코네를 연상케 하는 영화 음악, 외로운 늑대처럼 방랑하는 총잡이, 그와 대적하는 악당, 그리고 마지막 결투까지 이것은 일본 스타일의 서부극이다. 이런 영화가 나오게 된 데에는 시대적인 배경이 있다. TV의 보급으로 1950년대 후반부터 영화 산업의 황금기는 점차 저물어가고 있었다. 일본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본의 영화사 Nikkatsu(日活)는 그런 시대적 흐름에 발빠르게 대응했다. 철저히 대중의 취향에 맞추어 영화의 오락적인 요소를 극대화한 것이다. 이시하라 유지로를 간판으로 한 태양족(太陽族) 영화부터 일련의 Borderless Action 영화를 제작했다. Borderless Action 영화는 말 그대로 웨스턴과 느와르의 장르적 요소를 과감히 차용한 무국적성을 특징으로 한다.

  '권총은 나의 패스포트'에서 카미무라는 전형적인 서부극의 반영웅(anti hero)라고 할 수 있다. 그는 기존의 사회와 그 어떤 접점도 가지고 있지 않은 인물이다. 그가 유일하게 믿는 사람은 파트너 '슌'이다. 슌은 카미무라를 '아니키(アニキ)'로 부른다. 이는 우리말의 '형님', 중국어로는 '따꺼(大哥)'의 어감이라고나 할까? 야쿠자들 사이의 일반적인 호칭이기도 한 '아니키'에는 서구인들이 이해하기 어려운 정서적 배경이 자리한다. 영어 자막에는 '아니키'가 여지없이 'Boss'로 번역되는데, 이 부분이 영 어색하게 읽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것이다. 친형제는 아니지만 목숨을 내어줄 정도로 가까운 사이. 그러므로 미나는 카미무라에게 슌이 친동생인지 물어보기까지 한다. 슌에게 '아니키'로 불리는 카미무라는 기꺼이 그 말에 합당하게 행동한다.

  사회의 주변부로 밀려나서 음지에서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이들. 영화는 전후 고도 경제 성장을 이룬 일본 사회의 그늘진 부분을 부각시킨다. 카미무라와 대척점에 서있는 야쿠자들 또한 예외가 아니다. 합법과 불법의 회색지대에서 기생하는 야쿠자 대부분은 하층민 출신이었다. 부둣가 선술집 미나의 경우도 일종의 차별적 천민 집단에서 나고 자랐음을 암시하는 대사가 나온다. 그 때문에 미나의 과거는 그곳을 매번 떠났다가 돌아오는 일로 점철되어 있다. 카미무라처럼 미나도 떠나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들의 목적지는 일본 너머의 바깥 세상이다.

  경계에 자리한 이들의 탈주 욕망. 이것이 좀 더 구체화된 모습으로 드러난 영화는 니카츠 제작 영화 '나는 기다린다(俺は待ってるぜ, I Am Waiting, 1958)'이다. 전직 권투 선수인 시마키(이시하라 유지로 분)는 브라질 이민을 꿈꾼다. 그는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살인과 수감 생활의 고통스런 기억에서 벗어나고 싶어한다. 브라질행은 시마키에게 유일한 희망이다. 먼저 브라질로 떠난 형은 정착 후에 시마키를 부르기로 했다. 하지만 형은 감감무소식이다. 야쿠자에 의한 형의 죽음, 결국 시마키의 꿈은 산산조각이 난다. 시마키 형제에게 닥친 비극은 일본 사회 하층 계급의 좌절된 욕망을 보여준다.  

  슌과 미나가 부산행 여객선에 몸을 실은 것과는 달리, 카미무라는 황량한 매립지에 홀로 서있다. 그를 지탱해주는 것은 총 한 자루뿐이다. 방탄 차량에 탄 야쿠자들이 카미무라를 향해 돌진한다. 도저히 이길 수 없을 것만 같은 결투. 마침내 고독한 총잡이가 자신의 일을 끝마치고 적들이 죽었음을 확인한다. 절뚝이며 걷는 이 남자가 살아갈 세계는 이제 '일본'이 아니다. 총과 먼지 바람, 악당들, 그리고 언젠가 가게 될지 모르는 이국의 땅까지. 카미무라, 아니 시시도 조는 '권총은 나의 패스포트'로 Borderlss Action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으로 각인된다.


*사진 출처: criterio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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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편 Apocalypto
6편 Pretend Daddy

Season 1 완결

*이 글은 다큐 시리즈 'The Rehearsal'의 세부 항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1. 양육 리허설의 파국: 5편 Apocalypto

  에피소드 5에서 네이선은 안젤라의 양육 방식에 도전하기로 결심한다. 매우 보수적인 기독교 신자 안젤라는 아들 아담도 자신과 같은 신앙을 가지길 바란다. 유대인인 네이선은 갈등을 피하기 위해 이제까지 안젤라에게 반대하지 않았다. 하지만 네이선의 모친은 네이선에게 아담을 유대인으로 키워야 한다고 충고한다. 네이선은 아빠 역을 연기하는 자신에게도 아담의 종교 교육에 대한 권리가 있음을 새삼스럽게 인식한다. 안젤라는 네이선의 그런 의향에 동조할 생각이 없음을 밝힌다. 멜 깁슨의 감독 연출작 'Apocalypto(2006)'을 좋아한다고 말하는 안젤라를 보며 네이선의 표정은 굳어진다. 그 영화가 개봉될 당시, 멜 깁슨은 유대인 혐오 발언으로 곤욕을 치룬 적이 있다.

  네이선은 은밀하게 아담의 유대교 입문 교육을 진행한다. 그는 아담과 수영을 간다고 하고서는, 유대인 회당과 유대교인 가정 교사에게 데려간다. 그리고 집에 돌아갈 때는 아담의 머리에 물을 뿌려서 수영을 다녀온 것처럼 가장한다. 아담에게 거짓말을 시키는 일도 잊지 않는다. 사실 리허설의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아동 연기자에게 리허설의 장면이라 하더라도 거짓말을 하게 만드는 것은 괜찮은 걸까? 과연 아담을 연기하는 아역 배우는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리허설이 만들어내는 현실과 허구의 모호한 경계는 아동의 현실 인식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것은 이전에 6살 아담을 연기한 레미에게서 나중에 문제가 된다.


  네이선의 비밀 종교 교육은 가정 교사 미리암의 개입으로 전환점을 맞는다. 미리암은 네이선에게 더이상 회피하지 말고 안젤라와 맞서야 한다고 말한다. 네이선은 미리암의 도움을 받아 안젤라를 설득하고자 한다. 두 명의 강한 여자들이 각자의 신념을 내세워 대립하는 동안 네이선은 뒤로 물러서 있다. 이 리허설은 네이선이라는 인물의 성격을 입체적으로 드러낸다. 그는 갈등을 싫어하고 회피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다. 그런 그가 안젤라에게 대항하기로 결정한 일은 리허설의 파국으로 이어진다. 집에서 찍은 영상 속의 안젤라는 대부분의 시간을 아담의 엄마가 아닌 빈둥거리는 독신녀로 지내고 있었다. 네이선은 안젤라가 본인이 주인공인 리허설에 충실하지 않았다며 비난한다.

  "이 리허설의 진짜 주인은 바로 네이선 당신이에요. 내가 아니라."

  안젤라의 이 말은 어떤 면에서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다. 안젤라는 아이가 좀 더 큰 다음의 양육 과정을 리허설하고 싶어했다. 그러나 네이선은 십 대 청소년이 된 아담을 감당할 수 없다며 6살 아이로 되돌렸다. 그는 안젤라의 양육 방식에 도전했고, 그것은 피할 수 없는 갈등으로 이어졌다. 네이선은 단지 평화롭게 그럴듯한 아빠 역을 리허설하기로 한 처음의 다짐에서 벗어나서 진짜 유대인 아빠 네이선으로 변모해갔다. 분명 네이선은 이 양육 리허설을 현실의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끌어가는 중이었다. 안젤라는 그런 네이선의 리허설 세계에 결별을 고한다. 마침내 네이선은 홀가분한 표정으로 아담과 크리스마스 대신에 하누카(Hanukkah, 유대교의 축제)를 축하한다. 홀로 남은 네이선의 양육 리허설, 그 끝에는 무엇이 있을까?


2. 리허설은 끝나지 않았다: 6편 Pretend Daddy

  엄마 안젤라가 떠나도 양육 리허설은 계속 진행된다. 이제 6살 아이는 9살로 바뀐다. 그런데 문제가 생긴다. 6살 아담을 연기했던 레미는 네이선과의 이별을 힘들어한다. 레미는 네이선을 계속해서 '아빠(daddy)'라고 부르면서 울음을 터뜨린다. 레미의 엄마는 싱글맘이었다. 그 때문에 어린 레미는 네이선과의 리허설을 감정적으로 진짜처럼 받아들였을 것이다. 네이선은 당황한다. 도대체 자신이 이 리허설에서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마치 심리적 해부를 하듯, 네이선은 자신과 레미를 찍은 영상들을 찬찬히 살펴보며 문제를 파악하려고 애쓴다. 아이에게 거리를 두고 좀 더 냉정하게 연기했더라면 어땠을까? 진짜 6살 아이가 아니라 그 나이보다 성숙한 연령대의 배우를 썼다면 어땠을까? 네이선은 9살, 10대 청소년, 20대 청년 배우를 아담으로 분장시킨다. 심지어 인형까지 아담으로 분장시키고 매번 다르게 리허설한다. 그렇게 네이선은 레미와 보낸 시간을 복기해 본다.

  어린 레미가 겪은 혼란만큼이나 네이선도 감정의 미궁에 빠진다. 네이선은 레미에 대한 미안한 마음과 균열이 생긴 리허설의 세계를 수리하고자 하는 열망 사이에서 고군분투한다. 만약에 엄마 역의 안젤라가 있었다면 레미가 겪은 혼란은 덜했을지도 모른다. 그는 비로소 안젤라의 중요성을 자각한다. 그리고 안젤라를 가혹한 방식으로 자신이 밀쳐냈음을 깨닫는다. 네이선은 안젤라를 찾아가 사과한다.

  레미가 조금씩 리허설의 충격에서 벗어나는 동안에도 네이선의 자아 성찰 리허설은 계속 된다. 그는 레미의 엄마로 자신을 분장시키고 9살 아담 역을 맡은 아역 배우 리암을 레미로 분장시켜서 리허설을 진행한다. 네이선의 이 리허설은 기괴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는 기꺼이 여장까지 하고 양육 리허설의 문제점을 찾고 싶어한다. 그런 네이선의 바람은 놀라운 통찰로 이어진다. 네이선의 지독한 완벽주의와 뛰어난 아역 배우 리암의 재능이 만나 빛을 발한다. 네이선과 리암의 리허설은 마치 심리 정신극인 사이코드라마(psychodrama: 환자 내면의 문제점을 즉흥극을 통해 드러내도록 함)처럼 전율을 느끼게 만든다.

  레미의 엄마가 된 네이선은 흐느껴 우는 아들을 부드럽게 달랜다. 아빠인 척 했던 남자(네이선을 지칭)가 결코 상처와 혼란을 주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고 거듭해서 강조한다. 그러한 네이선의 모습은 레미에 대한 부채의식을 드러낸다. "그도 결점이 있는 한 인간일 뿐이란다." 네이선은 레미 엄마 역의 리허설을 통해 자신의 한계를 겸손하게 인정한다. 아역 배우 리암이 연기한 레미는 네이선의 진심을 받아들인다. 그리고 엄마는 아들을 따뜻하게 안는다. 네이선은 자신이 언제까지고 아들을 지켜줄 '아빠'라고 강조한다.

  "나는 엄마로 알고 연기하는 건데요?" '아빠'라는 단어에 당황한 리암은 속삭이듯 말한다. "아냐. 난 네 아빠란다." 리허설의 이 도발적인 결말은 짜릿한 감동과 충격을 주기에 충분하다. 네이선의 'The Rehearsal'은 딜레마에 빠진 누군가를 돕기 위해 시작되었다. 그의 리허설이 리허설을 의뢰한 이들의 삶에 진정으로 도움이 되었을까? 분명한 것은 이 리허설이 네이선 자신에게 매우 유용한 작업이었다는 점이다. 그는 리허설을 진행하면서 현실에서는 좀처럼 드러낼 수 없는 자신의 내면과 마주했다. 거기에는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 이혼남의 상처, 갈등을 회피하는 평화주의자, 그리고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는 소망까지 포함되어 있다. HBO는 Season 2 제작을 확정지었다. 네이선 필더는 이미 Season 1의 6편으로 진정한 자신의 출세작을 만들어냈다.


*사진 출처: oregonlive.com


 

**The Rehearsal(HBO TV series Season 1, 2022)
  1, 2, 3편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8/the-rehearsal-hbo-tv-series-season-1.html
  4편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8/the-rehearsal-hbo-tv-series-season-1_29.html



***이 다큐 시리즈는 documentarymania.com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영어 자막이 제공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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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밥 아직 안된 거야?" 신문에 고개를 파묻은 남자는 아내를 향해 무심한 표정으로 묻는다. 여자의 속마음이 독백으로 흘러나온다. '매일 밥을 짓고, 미소된장국을 끓여서 낸다. 365일이 항상 똑같은 일상이다.' 하츠노스케(우에하라 켄 분)와 미치요(하라 세츠코 분) 부부는 권태기에 들어섰다. 집에서 남편의 관심사는 '밥'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내는 하루의 대부분을 식사 준비와 집안일로 동동거리면서 보낸다. 꼬리가 뭉툭한 길고양이 '유리'를 보살피는 것이 미치요의 유일한 낙이다. 아내 미치요를 힘들게 만드는 것은 단지 남편의 무관심뿐만이 아니다. 증권 중개인으로 일하는 남편의 월급은 미치요를 돈에 쪼들리게 만든다. 전당포에 물건을 맡기는 일도 익숙하다. 건너편 집에는 술집 마담이 살고 있고, 좀도둑들이 출몰해서 살림살이를 훔쳐가기도 한다. 미치요는 지루한 결혼 생활과 하층민으로 전락해가는 자신의 삶에 염증을 느낀다.

  나루세 미키오의 1951년작 영화 '밥(Meshi, Repast)'하야시 후미코(林
芙美子)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다. 작가는 영화가 개봉된 그 해에 세상을 떴다. 나루세 미키오는 이후 하야시 후미코의 소설을 여러 편 영화로 만들었다. 여성과 하층민의 가난한 삶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이 작가의 소설은 나루세 미키오를 만나 깊이있는 울림을 낸다. 영화 '밥'의 주인공 미치요는 목까지 차오르는 불만과 권태에 질식 직전이다. 그 때, 도쿄에서 남편의 조카 사토코가 온다. 사토코는 결혼을 재촉하는 고루한 아버지에게서 이제 막 도망나온 참이다. 그런데 이 철딱서니 없는 아가씨는 미치요의 인내력을 시험한다. 집에서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남편에게 너무 스스럼없이 행동한다. 군식구가 하나 느니까 쌀독도 금새 바닥이 난다. 남편이란 작자는 아내의 고민 따위는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한다. 멋진 새 구두를 사고, 조카를 데리고 오사카 관광에 나선다.

  이쯤 되면 관객은 미치요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다고 결론내릴 법도 하다. 모처럼 도쿄의 친구들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 미치요는 아내의 삶이 자신의 기대와는 어긋나 있음을 깨닫는다. 눈치 없는 조카 사토코를 도쿄에 바래다 준다는 명분으로 미치요도 친정으로 가버린다. 아차, 곰 같은 남편 하츠노스케도 무언가 마음이 뜨끔해진다. 아내는 그에게 단단히 화가 난 듯하다.

  미치요는 남동생과 올케, 엄마가 있는 친정에서 모처럼의 휴식을 만끽한다. 그런데 미치요가 친정집에서 보여주는 행동은 사토코의 그 철없고 제멋대로인 행동과 닮아있다. 나루세 미키오는 달라진 미치요를 친정집 방안의 정경으로 보여준다. 처음에 깔끔했던 방은 옷가지며 물건들이 제멋대로 놓여있다. 미치요는 늘어지게 잠을 자고, 여기저기 쏘다니며, 돈도 아끼지 않고 쓴다. 아직까지 자신을 좋아하는 마음을 내비치는 사촌과 유쾌한 데이트도 한다. 미치요는 이혼녀로 살아갈 이후의 삶을 가늠해 본다. 

  '당신의 존재는 나에게 괴로움을 더해주었을 뿐이에요.' 도쿄에서 미치요는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를 쓴다. 그런데 편지를 부치러 갔다가 우체통 앞에서 망설인다. 헤어지는 것이 답일까? 혼자 살아가려면 직업이 있어야 한다. 패전 이후 일본의 경제는 서서히 기지개를 켜고 있는 중이었다. 이 영화에서는 당시 일본의 상황을 보여주는 상반되는 풍경들이 나온다. 하츠노스케가 접대받는 술집에서는 무희들의 화려한 공연이 펼쳐진다. 그런가 하면 직업 소개소를 찾아간 미치요의 눈 앞에서는 끝없이 줄을 선 구직자들이 보인다.

  발길을 돌이켜 하릴없이 강둑을 걷는 미치요의 옆으로는 젊은 연인들이 웃으면서 지나간다. 미치요와 남편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다. 그러다 미치요는 그곳에서 친구를 발견한다. 미치요의 친구는 어린 아들을 데리고 길바닥에서 신문을 팔고 있다. 전쟁터에서 실종된 남편을 기다린다는 이 친구는 혹시나 생환 소식이 나올까봐 아직까지 라디오를 듣는다고 했다. 남편의 부재로 곤궁한 친구의 모습은 이혼을 생각하는 미치요에게 근심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 이렇듯 미치요에게 도쿄에서의 체류는 일종의 자아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과연 미치요는 가부장적 결혼 제도에 얽매인 피해자일까? 나루세 미키오는 오사카에 홀로 남은 하츠노스케의 모습을 통해 다르게 생각해 볼 만한 단서들을 제시한다. 그는 자신을 이용하려는 증권 작전 세력의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적어도 이 남자는 일을 하는 데 있어 분별력을 지닌 사람이다. 미치요에게 자신과 조카 사토코의 허물없는 사이를 오해받기는 했지만, 여자 문제에 있어서도 아내에 대한 신의를 지킬 줄 안다. 그는 도쿄의 새 일자리를 제안받고도 아내의 의향을 먼저 물어봐야겠다고 말한다. 하츠노스케의 그런 면면들은 그가 남편으로서 괜찮은 자질을 갖추었음을 보여준다.

  마침내 하츠노스케는 아내를 만나러 도쿄에 온다. 미치요는 남편과 함께 집으로 돌아갈까? 원작 소설을 미완성으로 남긴 하야시 후미코가 어떤 결말을 원했을지는 알 수 없다. 제작사 도호(Toho)는 영화의 결말로 '이혼은 안된다'는 방침을 밀어붙였다(출처: ja.wikipedia.org). 어찌 되었든 간에 당시 일본 사회의 습속에서 '이혼'은 그다지 바람직하지 못했다. 미치요는 결국 남편과 함께 오사카로 돌아가는 기차에 탄다. 이 결말은 한편으로는 여성 주인공이 인습적 가부장제와 불행한 결혼 생활에 자신을 억지로 구겨넣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미치요의 결정은 어디까지나 자발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할 필요가 있다. 미치요는 기차의 창문 밖으로 차마 부치지 못한 결별의 편지를 찢어서 날려버린다. 그리고 옆자리의 잠든 남편을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이 아내는 이제 그 남자를 삶의 동반자로 새롭게 인식한다. 나루세 미키오는 흥행에 성공한 영화 '밥'으로 전후에 이어진 슬럼프에서 벗어나 전성기에 들어서는 문을 연다.


*사진 출처: themoviedb.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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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다큐 시리즈 'The Rehearsal'의 세부 항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4편 The Fielder Method


가짜 연기와 진짜 현실의 사이에서


  오리건의 집에서 안젤라와의 양육 리허설이 진행되는 동안, 네이선은 LA에 자신의 연기 강좌를 개설한다. 리허설 프로그램에 출연할 배우들을 채용하기 위해서였다. 네이선이 창안한 이른바 '필더 메소드'는 이러하다. 모방하려는 대상(primary)이 있고, 수강생은 그 대상의 일거수 일투족을 관찰하며 자신의 것으로 체화시킨다. 수강생들은 정육점, 주스 전문점, 카센터, 건물 안내 요원과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현실 연기를 습득한다. '그건 스토킹(stalking)같은 건가요?' 처음에 수강생들은 네이선의 낯선 연기 방식에 당황하지만, 수업을 거듭할수록 '필더 메소드'의 핵심에 다가선다. 

  네이선은 자신이 직접 필더 메소드를 시연한다. 수업에서 무언가 불편해 보이는 수강생 '토마스'의 삶을 단편적으로나마 재현해보기로 한 것이다. 그것을 위해 네이선은 토마스로 분장하고, 자신과 수강생들의 대역을 뽑아 연기 강좌 리허설을 진행한다. 그러니까 이 에피소드에서 네이선의 진짜 현실 강의와, 네이선이 토마스가 되어 참여하는 수업 리허설이 병치된다. 네이선이 토마스를 선택한 이유는 아주 간명하다. 네이선은 토마스의 모호한 표정이 마음에 걸렸다. 그는 토마스가 필더 메소드 수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너무나도 궁금했다.   

  정작 수강생 토마스의 입장이 되고보니, 연기 수업의 모든 것은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다. 부담스러운 방송국 촬영팀의 카메라, 복잡한 양식의 촬영 동의서, 도대체 무얼 해야할지 모르는 이상한 연기 수업... 네이선의 '토마스 되어보기'는 수업을 리허설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토마스를 하숙집에 머물게 하고, 자신은 토마스의 방에서 지낸다. 마치 인공 지능 컴퓨터가 데이터를 수집하듯 네이선은 토마스가 입는 옷, 먹는 음식, 좋아하는 취미, 그 모든 것을 체험하고 머릿속에 담는다. 그는 점차 모방과 조작의 달인이 되어간다.

  그 모든 노력에도 불구하고 네이선은 자신의 한계에 부딪힌다. 모방 대상에 대한 치밀한 관찰만으로 진짜 토마스의 행동과 감정을 예측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재현하려는 토마스가 단지 '추측(guess)'의 결과물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과연 우리는 타인의 입장에서 상황을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가? 네이선의 필더 메소드는 어쩌면 존재의 외양을 그대로 복사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분명 그가 고안해낸 리허설의 세계는 매우 놀랍고 창의적이다. 하지만 거기에는 가짜 연기와 진짜 현실의 명백한 간극이 존재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 점은 안젤라와의 양육 리허설에서 잘 드러난다. 네이선은 안젤라와 아담이 있는 오리건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 사이 아담은 15살이 되어 있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어색한 인사를 나눈다. 네이선에게도 이 상황은 낯설다. 이 리허설에서 그는 어린 아들이 십 대 청소년이 될 때까지 부재한 상태였다. 부자(父子) 사이의 유대감을 회복하기 위해 네이선은 아담과 대화를 나눈다. 아담을 연기하는 배우의 진짜 이름과 리허설의 아빠 네이선에 대한 솔직한 감정을 묻는다. 배우는 네이선이 자식을 외면한 무책임한 아빠이며, 그래서 자신은 증오심을 느낀다고 대답한다. 그 장면은 연기와 현실의 거리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거기에서 네이선은 양육 리허설을 수정한다. 그는 아담 역의 배우에게 실제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라고 주문한다.

  그러자 아담은 폭주하는 십 대 약물 중독자가 되어버린다. 네이선은 마약 과다 복용으로 방안에서 쓰러진 아담을 발견하고 절규한다(물론 이건 다 설정이다). 네이선은 안젤라에게 아담을 다시 6살 아이로 되돌리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해서 15살의 아담은 리허설에서 퇴장하고 다시 어린 아담이 네이선의 곁으로 돌아온다. 이 에피소드에서 관객이 만나게 되는 것은 리허설의 설계자 네이선의 진정성이다. 그에게는 사람의 마음을 알고자 하는 열렬한 호기심이 있다. 네이선은 리허설 세계에 자신을 밀어넣고 가짜로서 진짜에 도전하는 그 이상의 것을 성취하고자 한다. 아마도 어떤 관객에게 이 흉내내기의 세계는 그저 말장난에 지나지 않는 거짓부렁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아직 속단은 이르다. 결코 웃어버릴 수 없는 이 기막힌 리허설은 아직 2편이 더 남았다.   


*사진 출처: list23.com



**Nathan Fielder의 HBO TV series 'The Rehearsal' 1, 2, 3편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2/08/the-rehearsal-hbo-tv-series-season-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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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진 그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슬픔
 
두 개의 별(After the Rain, 2021)
판 지엔(Fan Jian), 104분



  그날은 비가 내렸다. 아이는 학교에 가기 싫다며 떼를 썼다. 할머니는 그런 아이를 달래어 억지로 학교에 보냈다. 그런데 그날, 천지를 뒤흔드는 엄청난 대지진이 발생했다. 학교 건물은 무너져 내렸고, 학교의 모든 아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네 언니가 죽은 그날, 나도 죽은 거나 마찬가지란다." 할머니는 Ranran에게 그렇게 말한다. 란란은 죽은 손녀딸의 여동생이다. 중국 정부의 엄격한 한 자녀 정책 때문에 Ying과 Ping부부는 둘째딸 란란을 시골로 보냈다. 언니의 비극적인 죽음 이후에 란란은 다시 부모 곁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란란은 자신의 존재가 언니의 대체품으로 여겨지는 것 같아 괴롭다.

  Sheng과 Mei 부부도 대지진으로 딸을 잃었다. 중국 정부는 자식을 잃은 부모들의 시험관 아기 시술(IVF)을 적극적으로 장려했다. 부부는 시술로 아기를 갖는 것은 실패했으나 곧 자연 임신으로 아이를 얻었다. 아들이었다. 태어날 아기가 딸이기를 열망했던 부부는 크게 실망한다. 아빠인 Sheng의 좌절감은 아들 Chuan에 대한 미움으로 이어진다. Mei 또한 아들에게 마음을 붙이기가 쉽지 않다. 추안은 어릴 적부터 자신이 죽은 누나 덕분에 태어났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이 가정에는 냉기와 무관심이 일상처럼 자리잡는다.  

  판 지엔은 '두 개의 별(After the Rain, 2021)'에서 2008년 쓰촨성 대지진으로 어린 자식을 잃은 두 가족의 삶을 따라간다. 무려 10년이란 시간 동안 그의 카메라는 결코 치유될 수 없는 재해의 트라우마를 기록한다. 죽은 자식에 대한 애도의 감정은 시간이 지나도 쉽게 옅어지지 않는다. Sheng은 딸을 구해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몸부림친다. 그는 마음의 고통을 술로 달랜다. 아들에게 냉랭하기 짝이 없는 Sheng은 아빠 노릇 좀 하라는 아내의 말에 역정을 낸다. 정작 아내 Mei는 Chuan이 아기 때에 여자 아이 옷을 입혀 키우기도 했다. Mei는 아들의 포동포동한 손이 죽은 딸과 똑같다고 말한다. 아빠의 사랑을 받지 못하는 아들이 안쓰럽지만 엄마는 그걸 해결할 방법이 없다.

  죽은 아이들은 부모의 가슴 속에서 생생히 살아있다. 다른 자식을 키운다고 해서 커다란 상처로 뚫린 마음이 메꿔지지는 않는다. 더 상황이 나빠진 경우도 있다. 어렵게 다시 얻은 아이가 장애아인 부부도 있었다. 원하는 딸이 아니라 아들이라서 괴로운 Sheng과 Mei 부부, 부모에 대한 원망으로 서먹해진 둘째딸과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애쓰는 Ying과 Ping 부부. 잊을 수 없는 죽음의 그림자는 아이들의 마음에도 드리워진다. 트라우마는 그렇게 세대 사이에 심리적으로 전이된다. 추안은 아버지에게 좀처럼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다. 란란도 매우 내성적인 아이로 성장한다. 그럼에도 이 소녀는 죽은 언니의 부재를 나름대로 메꾸기 위해 노력한다. 란란은 그렇게 부모를 향해 조금씩 마음을 열어간다. 

  중국 정부는 재해로 자식을 잃은 부모에게 아이를 갖게 하는 것을 최선의 대책으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놀랍게도 '두 개의 별'은 또 다른 자녀의 존재가 재난의 상흔을 덮어버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큐에서는 언급되지 않았지만, 지진으로 그토록 많은 아이들이 죽은 배경에는 학교의 부실 시공이라는 근본적인 문제도 있었다. 부모들이 느꼈던 엄청난 상실감과 애도의 감정은 제대로 치유되지 못했다. 무너진 학교는 다른 곳에 새롭게 지어졌다. 당국은 지진에 대한 기억을 차단하고 봉인하는 방식을 택했다. 그 때문에 몇몇 부모들은 성금을 모아 학교터에 추모비를 세우자는 목소리를 내기도 한다.

  추안과 란란이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성장 과정에 드리운 죽음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예기치 못한 대지진은 그 아이들의 삶의 궤도를 뒤틀리게 만들었다. 이 가슴아픈 다큐는 재해가 가져다준 상실의 고통에 대한 사회심리학적 통찰을 제공한다. 국가는 재난을 방지하고, 그것이 일어났을 때 적극적으로 개입해서 피해를 최소화해야만 한다. 복구의 과정에는 물질적인 면 뿐만 아니라 피해 당사자들의 내면을 살피는 것도 포함된다. '두 개의 별'은 대지진이 남긴 트라우마의 긴 연대기를 통해 정부의 책임과 동시대 사회 구성원들의 관심을 촉구한다. 


*사진 출처: eidf.co.kr




**사진 출처: brattlefilm.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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