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하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모든 것은 도박이나 다름없어요. 그건 미지의 세계에 자신을 던지는 일입니다."

  아흔에 가까운 예술가가 매일 작업하는 스튜디오 근처에는 정신 병동이 있다. 젊은 시절부터 앓았던 정신 질환은 이 예술가를 자주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았다. 중년 이후로는 정신 병동에서 거주하면서 창작 작업을 해나갔다. 미치지 않기 위해서, 살아남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그리고 만들었다. 광기가 자신을 삼켜버리도록 만드는 대신에, 그것이 주는 두려움과 공포를 창작의 주제로 삼았다. 그가 그리는 무한한 점과 끝없이 이어진 세계는 마침내 자신을 구원했고, 사람들을 매혹시켰다. 아마도 그의 이름을 알지 못하는 이들도 검정색 점들이 촘촘히 박힌 커다란 노란 호박을 한 번쯤 보았을 것이다. 헤더 렌즈(Heather Lenz)의 2018년작 다큐 '쿠사마 야요이: 무한의 세계(Kusama: Infinity)'는 일본 출신의 현대 미술 작가 쿠사마 야요이(Kusama Yayoi)의 삶과 예술 세계를 담았다. 다큐는 작가 본인을 비롯해 미술사가와 큐레이터, 지인들의 인터뷰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의 생애 전반을 다루면서, 작품 세계의 변화 과정과 그것이 가지는 의미를 들여다 본다. 

  마츠모토 시의 부유한 종묘상의 딸로 태어난 쿠사마 야요이는 어렸을 적부터 미술에 소질을 보였다. 그러나 보수적인 부모는 자식의 예술적 재능에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아버지의 여성 편력은 딸에게 남성에 대한 혐오를 심어주었고, 억압적인 모친은 늘 미술을 그만 둘 것을 종용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야심있는 여성 예술가에게 숨이 막힐 정도로 답답한 곳이었다. 27살, 마침내 쿠사마 야요이는 혈혈단신으로 미국으로 건너간다. 가기 전에 그때까지 그렸던 자신의 그림들을 모두 폐기했다. 그리고 다짐한다. 이 그림들 보다 반드시 더 좋은 작품을 만들어 내겠다고...

  뉴욕에 정착한 초창기의 쿠사마 야요이를 기억하는 지인들은 그가 무척 '패기가 넘치는(aggressive)' 사람이었다고 회고한다. 넘쳐나는 창작열로 그 시기에 많은 그림을 쏟아냈다. 그림 뿐만 아니라 도발적인 설치 예술 작품도 선보였다. 독창적이고 새로운 작품으로 뉴욕 예술계에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그러나 쿠사마 야요이의 아이디어를 동료 남성 작가들은 거리낌없이 베끼기도 했다. 쿠사마 야요이가 천으로 제작한 소파 작품을 보고 올덴버그(Claes Oldenburg)는 섬유를 창작 소재로 쓰기 시작했다. 앤디 워홀은 쿠사마 야요이의 전시회에서 본 사진 작업을 곧바로 자신의 작품에 써먹었다. 아무리 열심히 그리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어도 이 비주류의 외국 여성 예술가에게 현실은 버겁기 짝이 없었다. 작품은 거의 팔리지 않았다.

  "그 당시에 나는... 너무나도 가난했어요."

  그 시절을 회고하는 노예술가의 눈가에는 눈물이 어린다. 백인 남성 작가들이 우대받는 1960년대의 미국 현대 미술계에서 쿠사마 야요이는 그야말로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했다. 무용인들과 함께 하는 행위 예술과 영상물 제작, 베트남 전쟁에 반대하는 누드 퍼포먼스 시위까지 이 여성 예술가는 끊임없이 변화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러한 파격은 고국 일본과 자신의 집안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웠다. 특히 반전 시위에 참가한 쿠사마 야요이의 나체 사진은 자국 내에게 큰 논란거리가 되었다. 돈이 많았던 쿠사마의 집안에서는 마츠모토 시내의 서점과 가판대에서 모조리 신문과 잡지를 사들여서 감추기까지 했다. 작가는 일본에서 골칫덩이에 수치스런 인물로 여겨졌다.

  아무리 노력해도 예술가로서의 명성은 먼 곳에 있었고, 가난은 발목을 잡았다. 급기야 2층 창문에서 몸을 내던지고, 겨우 목숨을 건졌다. 1973년, 결국 깊은 좌절감과 슬픔을 안고 일본으로 돌아온다. 중년의 예술가는 정신 병동을 집으로 삼았고, 그곳에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20년 가까이 쿠사마 야요이는 현대 미술계에서 잊혀진 이름이 된다.

  1989년, 뉴욕 국제 현대 미술 센터(CICA)에서 쿠사마 야요이의 회고전이 열렸다. 그것은 쿠사마 야요이의 부활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1993년의 베니스 비엔날레는 예술 경력의 새로운 분기점이 된다. 호박과 거울을 이용한 설치 예술 작품은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 세계 곳곳에서 열리는 전시회들은 관람객으로 넘쳐났다. 특히 거울과 LED 조명을 사용한 설치 예술은 관람객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작품의 일부분을 이룬다. 예술 작품과 감상자가 이렇게 쌍방향으로 소통하는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들에는 작가 자신의 신념이 투영되어 있다.

  "예술이 나에게 삶을 열어주었던 것처럼, 내 작품에서 사람들이 희망을 찾길 바랍니다."

  그의 작품 세계를 특징짓는 무수한 점들, 그리고 그것으로 연결된 무한의 그물은 생존을 위해 찾아낸 희망의 도구이다. 광기를 견뎌내며, 그것과 함께 살아가는 자신을 표현해 내는 방법으로서 쏟아낸 점들은 빛의 세계를 이룬다. 그것은 그저 의미없는 반복과 단조로운 리듬이 아니라 삶에 대한 거대한 찬가와 맞닿아 있다. 쿠사마 야요이의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무한히 이어진 점들의 세계 속에서 새로운 생의 감각을 발견한다. 다큐의 끝부분에서 노작가는 영원히 살고 싶다고 말한다. 예술가는 오직 자신의 작품을 통해서만 그것이 가능하다. 생의 끝자락에 서있는 쿠사마 야요이에게 그것은 이미 성취된 꿈일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theguardian.com


**사진 출처: icamiami.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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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 일본 하층민의 암울한 생존기, 붉은 부두(赤い波止場, Red Pier, 1958)와 '태양의 묘지(太陽の墓場, The Sun's Burial, 1960)'


  "죽긴 왜 죽어. 분하다면 살아서 복수를 해야지.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건 바보같은 짓이야!"

  하나코는 앙칼진 목소리로 유약한 타케시를 비웃는다. 타케시는 친구 갱단원이 데이트 커플을 습격할 때 옆에 있었다. 하나코는 그 모든 상황을 냉소적으로 방관한다. 여자 친구를 보호하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남자가 자살한 것을 알게 된 타케시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다. 어쩌다 오사카 뒷골목의 갱단에 들어가기는 했지만, 타케시에게 폭력과 살인을 일삼는 그곳의 삶은 결코 익숙해지지 않는다. 오시마 나기사 감독이 영화 '태양의 묘지(The Sun's Burial, 1960)'를 만들었을 때의 나이는 스물 여덟이었다. 패기 넘치는 젊은 감독은 이 영화에서 자신의 조국에 대한 실망과 분노를 날 것 그대로 쏟아낸다. 오시마 나기사는 오사카 밑바닥 삶을 전전하는 하층민들의 모습을 통해 패전 후 일본이 결코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이면의 진실에 대해 탐구한다.

  오사카의 랜드마크인 츠텐카쿠(通天閣) 탑이 멀리 보이는 도야 거리(ドヤ街, 판자집이 이어진 빈민가를 일컫는 말), 작은 갱단의 리더 신은 매춘업과 갈취로 먹고 살아가고 있다. 갱단원 야스에게 얻어맞고 억지로 신입 단원이 된 타케시. 그는 곧 갱단이 저지르는 착취와 살인, 폭력을 목도하게 된다. 리더 신은 지역의 보스 오마하의 눈을 피해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는 중이다. 한편 야스의 여자 친구 하나코는 낮에는 매혈 사업을, 밤에는 매춘을 하며 생존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타케시는 조직을 벗어나려는 야스의 처참한 죽음을 보고 갱단 생활에 깊은 환멸과 혐오를 느낀다. 매혈 사업을 위해 신과 손을 잡은 하나코, 그러나 신이 자신을 밀어내자 지역의 보스 오마하에게 밀고를 하는데...

  전후 일본은 한국 전쟁의 군수 물자 생산 기지로 경제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1950년대 후반 일본은 고도의 경제 성장 국면에 진입하지만, 그럼에도 하층민의 삶은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었다. 오시마 나기사는 마치 다큐멘터리를 찍듯 오사카의 인력 시장과 하층민 거주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는다. '태양의 묘지'가 보여주는 최하층 밑바닥의 삶은 부흥하는 일본 경제의 이면과도 같다. 비참한 처지의 매춘 여성들, 그들을 착취하며 기생하는 갱단, 가난한 이들의 피를 사들여 돈을 버는 하나코, 거기에 군국주의의 망령 같은 퇴역군인은 부랑자들에게 전쟁이 터질 거라며 두려움을 불어넣는다. 영화가 펼쳐놓는 슬럼가의 지옥도는 끔찍하기 짝이 없다. 살인과 폭력, 사기와 착취가 일상인 그곳의 삶에 적응하지 못하는 타케시와는 달리 하나코는 뛰어난 생존자이다.

  이 강인한 여성 캐릭터는 자신의 사업을 위해 갱단의 세력 다툼을 이용한다. 오시마 나기사는 갱단에게 학대당하는 매춘 여성들과 대비되는 하나코의 모습을 보여준다. 매혈 사무소를 손에 넣으려는 퇴역 군인과 갱단 리더에 맞서고, 생존을 위한 폭력과 살인도 용인한다. 하나코는 자신이 가진 성적 매력과 두뇌로 치열하게 자신을 지켜내기 위해 노력한다. 이 물불 안가리는 밑바닥의 여성 전사는 그 무엇에도 지지 않는다. 결국 신의 갱단이 전멸하고, 빈민가의 폭동 속에 일어난 화재로 모든 것이 불타는 상황에서도 하나코는 살아남는다.

  붉은 석양이 츠텐카쿠에 걸려 있는 풍경 속에 하나코는 화재로 스러지는 자신의 집을 떠난다. 오직 돈에 대한 욕망으로만 추동되는 하나코가 손을 붙잡고 같이 떠나는 사람은 채혈을 할 수 있는 늙은 사업 파트너이다. 하나코에게 같이 살던 아버지의 생사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가족은 해체되었고, 믿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 신은 자신의 유사 가족이라고 할 수 있는 갱단을 이끌어가지만, 그것은 우세한 폭력 집단에 의해 와해된다. 리더 신과 하나코에게 인간적 유대를 갈구하는 타케시의 소망은 헛된 것으로 판명된다. 돈은 그 어떤 인간적 가치 보다 우선한다. '태양의 묘지'에서 오시마 나기사는 자본주의적 욕망에 삼켜진 일본의 현실을 조롱한다.

  마스다 토시오 감독의 1958년작 '붉은 부두(Red Pier)'에서도 전후 일본 사회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가 감지된다. 고베 항구의 '왼손잡이 지로(이시하라 유지로 분)'는 살인을 비롯한 여러 범죄 혐의에도 증거가 없어서 노로 경관의 감시를 받고 있다. 갱단원으로 뒷골목의 삶을 살아가는 그에게 벼락같은 사랑의 감정이 찾아온다. 그 대상은 지로가 죽게 만든 마약상의 여동생 케이코이다. 영화는 지로와 케이코의 사랑 이야기를 그리면서, 지로를 둘러싼 암흑 세계의 암투를 보여준다. 시원하게 트인 미항 고베의 풍광 속에 야쿠자들과 이국적 분위기의 나이트 클럽, 매춘 호텔이 등장한다.

  케이코는 도쿄에서 대학을 다니다 오빠의 죽음을 계기로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로는 케이코와의 미래를 꿈꾸지만, 더러운 세계에서 벗어나 손을 씻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보스의 죽음을 둘러싼 내분으로 지로는 조직에서 제거되어야할 운명에 처한다. 지로에게 조직은 집과 같았고, 조직원들은 형과 동생들이었다. 그 조직의 배신은 지로를 가장 고통스럽게 만든다.

  "야쿠자들에게 신의(信義) 따위가 있을 리가 있나. 다 얄팍한 속임수인 게지. 정신차려라, 지로!"

  오히려 왼손잡이 지로에게 인간적 유대를 보여주는 이는 노로 경관이다. 그는 투철한 직업적 사명감을 가진 사람이지만, 지로가 살아온 삶에 대해 연민을 가지고 있다. 전쟁 고아로 외롭고 거친 삶을 살아온 지로는 일본 사회의 그림자 속에 서있다. 폭력 조직의 일원인 지로의 정상적인 삶에 대한 희구는 잘못된 소망과도 같다. 그는 자신을 열렬히 원하는 화류계 여성인 클럽 댄서 마미 대신 도쿄 여대생 케이코(비록 마약상의 동생이지만)의 사랑을 갈구한다. 한 번도 가져본 적이 없는 진정한 '집'과 '가족'에 대한 지로의 열망은 케이코에게 투사된다. 그러나 그 꿈은 결국 좌절된다.

  그렇게 영화 '붉은 부두'와 '태양의 묘지'는 전후 일본 하층민의 삶을 보여준다. 그들이 생존을 위해 거래의 대상으로 내놓는 것은 '몸'이다. 피를 팔고 매춘을 하며, 손으로 누군가를 때리고 죽이며 거기에서 나오는 이익을 취한다. 무너진 가족, 폭력과 범죄에 대한 무감각, 물질에 대한 집요한 욕망, 배회하는 군국주의의 유령, 그 모든 것이 뒤엉켜 1950년대를 거쳐 1960년대까지 이어진다. 


*사진 출처: criterionchannel.com

 
   
**사진 출처: twitter.com   '붉은 부두'의 이시하라 유지로와 키타하라 미에. 부부인 두 사람은 함께 여러 영화에 출연했다.

 


*** '붉은 부두'와 '태양의 묘지', 두 영화는 모두 간사이 지방(고베, 오사카)을 배경으로 한다. 등장인물들이 구사하는 간사이 사투리가 영화에 독특한 지방색을 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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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누군 줄 알아?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인종차별주의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라구!"

  자신의 추종자와 함께 총을 들고 다니며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늙은 남자는 그렇게 소리친다. 미국 사우스 다코타(South Dakota) 주의 한적한 시골 마을 리스(Leith), 이곳에서는 소 방목업과 농장을 하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 2013년, 겨우 24명의 주민이 사는 이 작은 마을에 어느 날 흰머리에 긴 수염의 남자가 들어온다. 혼자 조용히 사는 사람이겠거니 생각했던 마을 사람들은 뜻밖의 사실과 마주한다. 남자의 이름은 크레이그 콥(Craig Cobb). 미국에서 잘 알려진 네오나치 운동의 열렬한 신봉자인 콥에게는 자신만의 꿈이 있다. 작은 마을 리스를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공동체로 만들려는 것이다. 그는 마을의 땅을 계속 사들이며, 자신의 추종자들을 그곳에 불러모은다. 네오나치 주의자들에게 리스는 성지가 되어가지만, 그것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다. 마이클 니콜스와 크리스토퍼 워커의 2015년작 다큐 'Welcome to Leith'는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과 대결하는 리스 주민들의 고군분투를 그려낸다.

  마을 초입에 '리스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소박한 나무 간판이 있는 마을, 그곳에 콥은 폭풍을 몰고 온다. 콥의 집 마당에는 마을 간판을 비웃기라도 하듯 'Village of the damned(저주받은 마을)'이라는 팻말이 걸려있다. 그의 집 앞에는 온갖 종류의 나치 문양과 백인 우월 단체의 깃발이 내걸리고, 미국의 스킨 헤드족들이 리스에 집결한다. 콥은 마을 주민 회의를 장악하고 그곳의 주인이 되어 자신이 지배하는 리스를 만들려고 한다.


  네오나치에 대해 들어본 적도 없는 마을 사람들은 침입자들의 정착을 막고자 갖은 애를 쓴다. 그러나 리스 주민들은 콥과 그 추종자들이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들의 권한을 극대화하며 마을을 집어삼키고 있음을 깨닫는다. 콥의 패거리들이 저지르는 패악을 견디다 못한 일부 주민들은 이사를 간다. 고향을 포기할 수 없는 이웃 주민들은 투쟁을 선택한다. 집에 감시 카메라를 설치하고, 총기로 무장한다. 그리고 주민들은 변호사와 함께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모색하기 시작한다.

  제작자 마이클 니콜스와 크리스토퍼 워커는 'Welcome to Leith'를 마을 사람들의 입장에서만 만들지 않았다. 다큐는 콥의 입장도 나름 공평하게 담는다. 관객들은 히틀러를 흠모하는 백발의 늙은 남자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이 나름의 논리로 무장하고 있음을 본다. 유색인종과 유대인 인권 단체가 있는 것처럼 자신들은 '백인 시민 단체'이며, '백인들만의 나라'를 건설하겠다고 선언한다. 콥과 추종자들에게 그것은 '정상적인 질서'로의 회복인 셈이다. 이 네오나치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는 결코 미친 사람이 아니다. 콥은 자신을 제재하지 못하는 법률의 한계를 명확히 인지하고 있으며, 스스로를 마을 사람들에 의해 핍박받는 희생자로 부각시킨다.

  "나는 리스 마을 사람들이 개방적이지 못하고 편협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나를 내쫓지 못해 안달하고 있어요."

  결국 총기를 들고 다니며 마을 사람들을 위협하던 콥과 추종자는 체포된다. 지리한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마을은 평화를 되찾는다. 주민들은 콥과 추종자들의 근거지를 부수고 불태우며 흔적을 없애려고 하지만, 나중에 콥의 석방 소식을 듣는다. 과연 리스 마을 사람들은 네오 나치주의자들로부터 마을을 되찾을 수 있을까?

  다큐는 콥과 마을 사람들의 대결을 서부 영화처럼 묘사한다. 황량하기 짝이 없는 리스 마을의 풍광, 그곳에 모여든 네오나치 주의자들의 그로테스크한 모습은 공포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거기에 음울한 음악까지 더해진다. 그러나 'Welcome to Leith'가 보여주는 극적인 긴장감은 재판이 끝나면서 동력을 잃는다. 무엇보다 이 다큐는 사태의 근본 원인에 대한 탐구나 성찰이 결여되어 있다.

  폭넓은 표현의 자유를 인정한 미국의 수정 헌법 1조는 네오나치와 극우 인종차별주의자들에게 방패막이가 되어왔다. 1977년, 이른바 스코키 판례(National Socialist Party of America v. Village of Skokie)로 불리는 미국 대법원의 판결이 내려진다. 스와스티카(swastica, 卐)를 내건 시위를 허용하는 것을 두고 일어난 법적 다툼은 결국 네오나치 주의자들의 승리로 끝났다. 'Welcome to Leith'는 혐오 단체의 활동 근거가 되는 수정 헌법 1조의 문제점에 대한 그 어떤 언급도 없으며, 공정성이라는 미명하에 콥의 이야기도 열심히 주워담는다.

  콥의 석방 소식을 들은 이웃 주민은 아내에게 사격 연습을 시킨다. 평범한 가정 주부는 자신과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총을 쥔다. 그 장면은 역설적이게도 미국의 관대하기 짝이 없는 표현의 자유가 총기 문제를 격화시킬 수 있음을 보여준다. 차별과 혐오의 발언, 그로 인해 발생하는 갈등의 대결 국면에서 총기는 효과적인 자기 방어 수단이 된다. 'Welcome to Leith'는 다인종 국가로 오늘날 미국이 안고 있는 근원적 고민을 드러낸다. 그것을 해결하는 일은 단순히 법적인 토대를 마련하는 것에서 끝나지 않는다. 인종적 다양성을 분열이 아닌 성장의 동력으로 만드는 일은 어떤 면에서 미국의 미래와도 이어져 있다.


*사진 출처: vultur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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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통금(After the Curfew, 1954)의 결말 부분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난 내가 외국인처럼 느껴져."

  영화의 첫 장면, 어두운 밤길을 걷는 한 남자의 시선이 벽보에 멈춘다. 밤 10시부터 새벽 5시까지의 통금을 알리는 글이다. 4년에 걸친 치열한 전쟁이 끝났다. 조국은 원하는 독립을 쟁취했고, 그는 누구보다도 용감하게 싸운 전사였다. 이제는 군인이 아니라 일반인의 삶을 살아야 하는 이스칸다르는 딱히 머물 곳이 없다. 어쩔 수 없이 약혼녀 노르마의 집에서 신세를 진다. 하지만 그 집의 모든 것이 그에겐 불편하고 낯설게 느껴진다. 부유한 노르마의 집에서 이스칸다르는 그다지 환영받지 못한다. 노르마가 이스칸다르의 귀환 파티를 준비하는 동안, 돌아온 혁명 전사는 너무나도 달라진 현실과 마주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은 자신의 재단(The Film Foundation)을 통해 세계 영화사에서 보존될 가치가 있는 영화들의 복원 작업을 후원하고 있다. 인도네시아 영화로 그 프로젝트의 선정작이 된 영화 '통금(Lewat Djam Malam, After the Curfew, 1954)'은 2012년에 공개되었다. 이 영화는 자국의 엄혹한 독재 시절을 지나며 무려 50년 동안 잠들어 있었다. 초창기 인도네시아 영화사의 중심 인물인 우스마르 이스마일(Usmar Ismail) 감독은 1949년 독립 직후 조국의 혼란한 상황을 영화로 기록했다. '통금'은 그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로 혁명의 좌절된 이상을 제대 군인의 시각을 통해 보여준다.

  노르마의 아버지는 사윗감이 영 마뜩잖지만 딸을 생각해서 친구인 주지사의 사무실에 취직시킨다. 그러나 그곳에서 하루 만에 해고당한 그는 부대원이었던 가파르를 만나러 간다. 이스칸다르는 전쟁 때 자신이 죽였던 사람들의 비명이 아직도 들린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성공한 건축업자가 된 가파르는 그저 과거를 잊고 새출발을 해야 한다고 말할 뿐이다. 전직 혁명 전사의 머릿속 세계는 아직도 전쟁터에 머물러 있다. 그는 군대 사람들을 찾아보기로 한다. 부대장이었던 구나완은 큰 회사를 차려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구나완은 이스칸다르를 경쟁자인 외국 회사 경영자를 협박하는 일에 써먹으려 한다. 실망한 그는 부대원 푸자를 만나 본다.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푸자는 포주가 되어 도박이나 하며 살아가고 있다.

  혁명은 끝났다(인도네시아에서는 독립 전쟁을 '국민 혁명'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혁명의 과실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돌아간 것이 아니었다. 건축업자로 성공한 가파르, 사업가가 된 구나완은 지배 계층에 안착했다. 이전 시대부터 부르주아였던 노르마의 집안처럼 상류층의 삶은 혁명에 그다지 영향을 받지 않았다. 노르마의 집에서 열린 파티에 모인 이들은 마치 딴세상 사람처럼 보인다. 멋진 파티복에 값비싼 보석으로 장식한 여성들, 새로 산 자동차를 자랑하는 남자들, 그들은 춤과 노래로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그들을 보며 이스칸다르가 '외국인'처럼 소외감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것은 단지 계층적인 위화감 때문만은 아니다. 동료들로부터 용감한 군인으로 여겨졌던 이스칸다르는 살상의 기억으로 고통스러워 한다. 전쟁은 그에게 깊은 내면의 상처를 남겼다. 가파르가 들려준 과거의 진실은 이스칸다르를 뒤흔든다. 부대장 구나완이 무고한 이들을 반혁명분자로 몰아 처단시키고 그들의 재산을 빼돌려 축재했다는 것이다. 이스칸다르는 자신이 했던 혁명의 행위가 실상은 구나완이 저지른 범죄의 일부분이었음을 깨닫는다. 조국의 독립이라는 대의명분으로 뭉쳤던 이들이 모두 순수하지는 않았다. 그들 가운데에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혁명을 이용한 저열한 이들도 있었다. 이것은 분단과 전쟁, 독재와 민주화 과정을 거친 우리의 역사에서도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이다.   

  성공적으로 혁명 후의 세상에 적응한 가파르와 구나완, 매춘업자로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푸자, 이스칸다르는 그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현실에서 길을 잃었다. 약혼녀 노르마에게 이스칸다르는 혁명의 이상을 완수한 전사이지만, 그 전사의 내면은 죽은 자들의 비명과 죄책감으로 소용돌이치고 있다. 분노와 고통으로 비틀거리며 이스칸다르는 잘못된 선택을 하고 만다. 과거를 잊어야 한다고 말한 가파르의 충고를 무시하고, 혁명 전사는 과거의 기억 속에 자신을 매몰시킨다. 구나완을 죽인 그는 통금 시간대에 거리를 헤매다 총에 맞는다. 이스칸다르의 시간은 그렇게 혁명의 끝에서 멈추었다.

  과연 그것은 누구의 잘못인가? 구나완은 전쟁에서의 살상과 자신은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는 명령을 수행한 이스칸다르에게 피의 책임을 돌린다. 조국의 독립과 혁명의 완수를 위해 물불을 가리지 않았던 전사는 도달할 수 없는 이상과 일그러진 현실 사이에서 소멸을 택한다. 우스마르 이스마일 감독이 그려낸 이스칸다르의 초상은 혁명이 끝난 후 마주하게 되는 뼈아픈 진실의 시간과 맞닿아 있다. 누군가는 죽음으로 댓가를 치루었고, 누군가는 그 죽음으로 승승장구하며, 누군가는 평생을 고통 속에 살아간다. 영화 '통금'은 '혁명'이라는 이상 뒤에 가려진 폭력과 광기, 어리석음과 탐욕에 대해 깊이있는 성찰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criterionchanne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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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Liquid Sky(1982)'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이 영화는 뉴욕의 신데렐라에 관한 영화죠."

  영화 'Liquid Sky(1982)'의 촬영 감독 Yuri Neyman은 그렇게 대답했다(출처: modernmythology.net과의 인터뷰). 마약과 섹스, 동성애자와 양성애자, 외계인, 클럽의 네온 조명과 패션 모델, UFO와 과학자... 그 모든 요소를 다 섞어 넣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희한한 1980년대의 cult movie가 현대의 신데렐라 스토리가 될 수 있을까? 그런데 영화를 보고나면 그 대답이 얼마나 간명한 것인지 깨닫게 된다. 소련 출신으로 1976년에 미국으로 이주한 슬라바 추커만(Slava Tsukerman) 감독은 1982년에 자신의 아내와 공동 집필한 시나리오로 영화를 한 편 만들었다. 500만 달러의 예산으로 만든 이 영화는 관객들의 입소문을 타고 1700만 달러에 이르는 수익을 냈다. 2021년의 관객의 눈으로 보아도 기괴하기 짝이 없는 영화, 대체 'Liquid Sky'는 어떤 영화인가?

  영화는 뉴욕 뒷골목의 어느 클럽을 비춰주며 시작한다. 영화 전체를 지배하는 특이하고 중독성 있는 신디사이저 음향이 흐르는 가운데, 클럽의 사람들은 한창 춤에 빠져있다. 패션 모델로 마약 중독자이며 양성애자인 마가렛은 동성연인 에이드리언과 같이 살고 있다. 에이드리언은 클럽에서 음악 공연을 하기도 하지만, 본업은 마약상이다. 마가렛과 비슷한 외모의 지미(마가렛을 연기한 Anne Carlisle이 1인 2역을 한다)는 경쟁 관계에 있는 남자 모델이다. 지미는 마가렛을 괴롭히며 모욕감을 준다. 그런데 그들이 있는 클럽 건물의 상공에 정체불명의 비행체가 나타난다. 이 비행체는 외계에서 온 것으로 마가렛의 집 옥상에 자리잡는다. 한편, 독일에서 이 UFO를 추적하러 뉴욕으로 날아온 과학자 요한이 있다. 그는 우연히 만난 지미의 엄마 실비아의 집에 자리잡고 UFO와 마가렛의 동향을 관찰한다. 괴비행체가 마가렛의 근처에 자리잡고 나서 마가렛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는데...

  이 영화의 줄거리를 파악하는 일은 영화가 시작하고 1시간쯤 지나야 어느 정도 가능해진다. 'Liquid Sky'는 편집이 무척 특이하다. 일반적인 헐리우드의 영화 문법과는 다른 양상을 보여준다. 그것은 이 영화를 촬영한 소련 출신의 Yuri Neyman이 '쿨레쇼프 효과(Kuleshov effect)'라고 불리는 러시아 몽타주 기법을 쓴 데에서 기인한다. 이 기법은 별개의 의미를 가진 쇼트를 연속적으로 이어붙여서 새로운 의미를 파생시킨다. 영화는 전혀 관련이 없는 서로 다른 인물들의 이야기를 바로 이어 붙인다. 예를 들면 마가렛과 지미의 대화 장면에 마약 중독자 폴과 그 아내의 이야기가 바로 이어진다. 이런 개연성 없는 생뚱맞은 편집에 대해 Neyman은 사건의 동시성을 보여주기 위한 방법이라고 언급했다. 

  그런 편집과 더불어 외계인의 시점(외계인은 사물이 아니라 에너지의 형태로 존재한다)에서 보여지는 특수 효과 장면, 등장 인물들의 펑크 의상과 분장, 영화 전편을 흐르는 신디사이저 음악(주요 테마는 감독이 작곡가에게 직접 제시했다)은 관객의 눈과 귀를 단단히 붙잡는다. 마치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롤러코스터를 탄 것처럼 영화는 계속 출렁거린다. 주인공 마가렛은 신데렐라가 계모와 두 의붓자매에게 온갖 구박을 받는 것처럼 주변 사람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학대와 모욕, 심지어 여러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강간까지 당하는 마가렛. 그런데 기이하게도 마가렛과 관계한 이들은 모두 죽는다. 마가렛은 자신을 보호해주는 혼령이 한 일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외계 생명체에 의해 일어난 일이었다. 마약을 에너지원으로 하는 외계인은 뉴욕에서 더 효과적인 에너지원을 사람들에게서 발견한다. 성에너지를 탈취당한 이들은 모두 죽지만, 불감증이었던 마가렛은 살아남는다.

  이 괴상망측한 독립 SF영화는 1970년대에 활성화된 미국의 심야 영화관(주로 컬트 공포 영화를 상영)에 내걸리면서 꽤 짭짤한 흥행 수익을 냈다. 어떤 면에서 'Liquid Sky'는 그러한 'Midnight Movie'의 끝물을 화려하게 장식한 영화였다. 1982년에 만들어졌으나 영화는 그 시대를 한참이나 앞질러간 유행 감각을 보여준다. 특히 젠더의 경계를 넘나드는 등장 인물들은 이 영화가 지닌 비주류적 감성을 드러낸다. 물론 마약과 외설스런 장면에 거부감을 지닌 관객들에게는 시간의 힘도 그것을 누그러뜨리기는 어렵다. 영화의 제목 'Liquid Sky'는 헤로인을 칭하는 비속어이다. 슬라바 추커만 감독은 이민자로 자신이 관찰하고 탐구한 뉴욕의 하위 문화를 극한의 방식으로 영화에 재현한다.

  이제, 영화의 촬영 감독 Neyman의 설명이 조금은 와닿을지 모른다. 'Liquid Sky'는 1980년대 뉴욕 클럽의 펑크 신데렐라 마가렛이 호박마차(UFO)를 타고 왕자님(외계 생명체)과 함께 떠나는 이야기이다. 제작비의 압박 때문에 호박마차로 쓰인 UFO는 크게 만들 수가 없었다. 큰 접시 크기의 비행체를 보고 있노라면 웃음이 터져나오기도 하지만, 관객의 영화적 상상력은 언제나 효율적으로 작동한다. 이 '선 넘은' 신데렐라 스토리는 거칠고 소란스러우며, 뒤틀리고 특이한 유머 감각을 보여준다. 사람들이 드나드는 길목에서 수수께끼로 사람들을 낚길 기다리던 스핑크스처럼 'Liquid Sky'는 오늘도 자신의 관객을 기다리는 중이다. 



*사진 출처: newtimesslo.com  영화 속 지미와 마가렛을 연기한 Anne Carlis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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