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틀랜드인 제시카는 낯선 나라 콜롬비아에 잠시 머물고 있다. 여자의 여동생은 원인 모를 병으로 현지 병원에 입원했다. 여자는 한밤중에 이상한 소리에 깬다. '쿵, 쿵'하며 건물을 뒤흔드는 기분 나쁜 소리. 하지만 여자는 그 소리가 자신에게만 들린다는 것을 알아챈다. 그 소리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제시카는 사운드 디자이너를 만나본다. 낯선 도시의 일상, 소리의 근원을 찾아나선 제시카의 여정은 어느 산속 시골 마을에 이른다. 그곳에서 우연히 만난 주민은 제시카가 들었던 소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말하는데...

  'Memoria'는 태국 출신의 감독 아피찻퐁 위라세타쿤(Apichatpong Weerasethakul)의 2021년작이다. 그는 이전의 자신의 영화에 대한 태국 정부의 검열에 항의하며 태국에서의 영화 제작을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동성애자인 감독은 영화를 '자식'으로 표현하며, 자신의 아이를 건드리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해외에서 만든 첫 영화가 'Memoria'이다. 콜롬비아에서 촬영되었고, 주연은 틸다 스윈튼이 맡았다.

  영화를 보다가 살짝 졸았다. 러닝 타임 136분. 자신을 괴롭히는 소리의 정체를 알아내기 위한 제시카의 여정은 느리고 명상적이다. 감독은 이 영화를 보다가 관객이 잠드는 건 자신이 원하는 것이라고도 했다. 'Memoria'는 관객을 끊임없이 각성시키고 긴장시키는 영화가 아니다. 매우 천천히 흘러가면서 관객을 제시카가 머무는 낯선 나라 콜롬비아의 풍광, 사람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소리'들 한가운데로 이끈다. 제시카를 잠들지 못하게 만든 기괴한 소리부터, 사운드 디자이너가 제시카의 이야기를 듣고 재현해내는 소리, 우연히 만나서 듣게 되는 재즈 연주 악단의 소리, 깊은 삼림의 소리... 이방인으로서 제시카는 소리로 '콜롬비아'라는 낯선 나라의 시간과 공간, 역사의 주변부를 탐색해 나가는 존재이다. 이 영화에서 소리는 중요한 내러티브의 축이다.

  "그건, 당신의 기억들이 아니야(They are not your memories)."

  제시카가 듣고 느끼는 것들을 아주 잘 알고 있다는 이 남자는 사기꾼도, 주술사도 아니다. 제시카는 그가 자신의 팔에 손을 대었을 때, 끔찍한 비명 소리와 총소리며 참혹한 사건과 관련된 어떤 소리들을 듣는다. 그런데 그것은 전적으로 내면으로 듣는 소리이며, 바깥 풍경은 고요하고 평온하기만 하다. 제시카는 남자가 가진 기억과 소리를 감각적으로 지각한다. 시골 농부 에르난은 'antenna'라는 단어로 제시카에게 일어난 일을 설명한다.

  영화 속에서 제시카가 보게 된 고고학 발굴팀의 원주민 두개골은 주술의식에 의해 살해된 흔적을 가진 것으로 추정된다. 낯선 타국 콜롬비아에서 제시카가 느끼는 두려움과 불안은 단지 개인적인 것이 아니다. 어떤 면에서 그것은 칼 융(Carl Jung)의 '집단 무의식(collective unconscious)' 개념과 맞닿아 있다. 이는 개인의 무의식 깊은 곳에 자리한 공동체적 신념과 가치체계를 의미한다. 제시카는 그곳 사람들의 집단 무의식에 자신의 정신적 안테나로 '접속'하는 것이며, 에르난과의 만남은 그것을 확인시켜 준다.

  제시카가 에르난을 통해 들었던 소리들은 분명히 콜롬비아의 지난한 내전의 기억과 연결되어 있다. 1964년부터 시작된 콜롬비아 내전은 나라 전체를 피와 살육의 진창으로 만들었다. 2016년, 마침내 내전은 정부군과 FARC(콜롬비아 무장 혁명군)의 휴전으로 끝나는 듯 했다. 그러나 남은 전쟁의 불씨는 다시 불붙고 있다. 복잡하게 분파된 무장 군사 세력들이 토착화 되면서, 폭력과 범죄는 이 나라 사람들의 삶을 끈질기게 옥죄고 있다. 영화의 마지막, 제시카는 에르난의 집 창문을 통해 거대하고 오래된 숲을 응시한다. 바람 소리와 새 소리, 구름으로 가득찬 회색 하늘, 평온하게 펼쳐진 그 풍경 속에는 피와 살육의 기억이 잠들어 있다. 그렇게 스며든 고통의 역사는 그 땅의 사람들 뿐만 아니라 그저 잠시 머무는 이방인의 내면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영화 'Memoria'는 이제 타국에서, 자신이 잘 알지 못하는 언어로 영화를 만들어야 하는 감독의 내적 여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미국내 배급을 맡은 배급사 'Neon'은 이 영화를 스트리밍이나 DVD의 형태로 선보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오직 영화관 상영으로만 관객과 만나겠다는 뜻이다. 과감히 수익성을 포기하고 그러한 결정을 내린 배급사의 결단이 놀랍게만 보인다. 확실히, 아피찻퐁 위라세타쿤이 'Memoria'에서 풀어내는 소리와 영상의 깊이를 담아내기에 TV 화면은 적합하지 않다. 잔잔하게 깔리는 불안 속에 기이한 평화로움과 고요함이 공존한다. 영화는 소리의 근원을 찾아가는 이방인의 여정을 통해 낯선 땅의 자연과 역사성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사진 출처: en.unifrance.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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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무리 해둔 영화들 특집


O Pai Tirano(The Tyrant Father, 1941): António Lopes Ribeiro
La diosa arrodillada(The Kneeling Goddess, 1947): Roberto Gavaldón


42nd Street(musical, 2019): Bonnie Langford, Tom Lister, Clare Halse 출연
Hamilton(musical, 2020): Richard Rodgers Theater, 오리지널 캐스트, 2016년 공연

A Cop Movie(2021): Alonso Ruizpalacios



1. 포르투갈의 고전 코미디 영화: O Pai Tirano(The Tyrant Father, 1941)

  'O Pai Tirano'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폭군 아버지'쯤 되겠다. 영화의 제목은 영화 속 주인공이 연습하고 있는 연극의 제목과 같다. 포르투갈에서 1941년에 만들어진 영화다. 리스본 백화점 직원 치코는 동료 직원 타탕을 좋아한다. 하지만 타탕은 가진 것 없는 치코를 무시한다. 아마추어 극단 배우인 치코는 집에서 틈만 나면 상연할 연극 연습을 한다. 연극 속 그의 배역은 귀족의 아들이다. 같은 하숙집에 머무는 타탕은 치코의 방에서 연극 연습을 하는 소리를 듣게 된다. 치코를 진짜 귀족으로 착각한 타탕. 극단 배우들은 현실에서 연극 속 배역을 맡아 치코의 사랑을 엮어주려고 노력하는데...

  영화가 생각보다 꽤 재미있다. 슬랩스틱적인 요소도 있고, 무엇보다 현실과 연극이 뒤섞이면서 끊임없이 웃음을 만들어 낸다. 외국인의 시선에서는 가벼운 코미디 영화처럼 보이지만, 포르투갈 영화사에서는 매우 중요하게 언급된다. 영화 곳곳에는 귀족과 평민, 부르주아와 하층민의 계급/계층 갈등에 대한 풍자가 깔려있다. 주인공 치코가 일하는 백화점을 방문하는 고객들은 부유한 이들이다. 역시 그곳에서 일하는 타탕은 화려한 부유층의 삶을 선망한다. 그런 타탕에게 가난한 치코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는데, 귀족의 아들로 착각한 이후로 둘의 사이는 급진전한다.

  포르투갈의 현대사는 독재자 살라자르(António de Oliveira Salazar)의 오랜 폭정으로 얼룩져 있다. 그가 권좌에 있던 1932년부터 1968년까지, 포르투갈은 종교와 민족주의, 가족, 전통의 가치를 강조한 'Salazarism'의 영향을 받았다. 그러한 우익 보수 이데올로기는 오랫동안 문화와 예술 작품에도 영향을 끼쳤다. 'O Pai Tirano'에서도 그 흔적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 속 거리에는 경찰들이 마치 행인처럼 곳곳에 깔려 있다. 시민을 감시하는 경찰 국가의 일면은 그렇게 숨은 그림처럼 존재한다. 독재 국가에서 코미디는 가장 각광받는 안전한 장르이다. 즐거운 웃음 속에 현실의 괴로움과 문제를 잊게 만드는 것. 이 영화가 가진 유머 코드는 포르투갈 사람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고, 시대를 뛰어넘어 반복적으로 변주되었다.


2. 멕시코 영화 황금기의 대표작: La diosa arrodillada(The Kneeling Goddess, 1947)

  영화의 제목 '무릎을 꿇은 여신'은 영화를 지배하는 조각상을 가리킨다. 부유한 사업가 안토니오는 아내 엘레나 몰래 바람을 피우고 있다. 매혹적인 외모의 가수 라켈은 안토니오에게 아내와 헤어질 것을 요구하지만, 남자는 가정에 충실하기로 마음먹는다. 그런 그가 아내를 위한 선물로 구입한 조각상은 내연녀 라켈을 꼭 빼닮았다. 안토니오에게 실망한 라켈은 멀리 연주 여행을 떠나고, 그 사이 안토니오의 아내가 갑자기 죽는다. 안토니오와 라켈은 화려한 결혼식을 올리지만 전처의 죽음을 둘러싼 의심과 불안이 두 사람의 결혼 생활을 흔든다.

  로맨스와 미스터리가 기묘하게 결합한 이 영화는 주인공 라켈 역을 맡은 여배우 마리아 펠릭스(María Félix)의 매력에 크게 의존한다. 1940년대와 1950년대 라틴 아메리카 영화계를 대표한 여배우 마리아 펠릭스는 유럽에까지 진출해서 영화를 찍었다. 영화 속 조각상은 육감적인 여성의 나신을 묘사한 것으로 상영 당시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오늘날 관객의 시각에서 보아도 무척 대담하다 싶을 정도로 적나라한데, 당시 관객들에게는 더했을 것이다. 여성 단체는 영화 상영을 항의하는 시위까지 벌였다. 한마디로 영화는 마리아 펠릭스가 가진 모든 것을 쥐어짜내며 관객들을 불러 모은다. 이 여배우의 고혹적인 외모, 춤과 노래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영화를 감상할 충분한 이유가 된다. 

  복잡하게 뒤틀린 영화의 멜로 드라마 서사는 허술하기 짝이 없다. 그럼에도 이 낯선 멕시코 영화는 당시 관객들의 취향과 영화 제작 풍토를 가늠하게 해준다. 'The Kneeling Goddess'는 낭만적인 로맨스에 춤과 노래를 결합한 볼거리를 제공함으로써 영화의 오락적인 기능을 극대화한다. 이 영화는 1930년대에서 1950년대를 아우르는 멕시코 영화의 '황금 시대(Golden Age)'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꼽힌다. 


3. 뮤지컬 특집: 42nd Street(musical, 2019), Hamilton(musical, 2020)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기원은 Pre-Code 시대의 영화 '42nd Street(1933)'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0년에 Harry Warren과 Al Dublin에 의해서 뮤지컬로 탄생한 이후로 이 작품은 많은 사랑을 받았다. Bonnie Langford, Tom Lister, Clare Halse가 출연한 West End 공연 버전은 그야말로 영국 뮤지컬의 저력을 입증한다. 놀라운 탭 댄스와 아름다운 뮤지컬 넘버를 기가 막히게 소화해 내는 배우들을 보는 것이 그저 즐거울 따름이다. 화려한 의상과 정교하게 구성된 무대 장치는 감탄을 자아낸다. 거기에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는 배우들의 공연은 그들이 리허설에 쏟아부은 시간과 열정을 떠올리게 만든다.

  귀에 착착 감기는 멜로디 중심의 전통적 뮤지컬과는 전혀 다른 지점에 뮤지컬 'Hamilton'이 있다. Lin-Manuel Miranda는 미국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 정치인 알렉산더 해밀턴(Alexander Hamilton)의 일생을 뮤지컬로 탄생시켰다. 그는 빠르고 강렬한 랩, 재즈와 소울 음악으로 이 뮤지컬의 넘버들을 만들었다. 한마디로 전위적 뮤지컬인 '해밀턴'은 2시간 반 동안 기가 막힌 라임(rhyme)으로 가득한 랩들이 폭포처럼 쏟아져 내린다. 배우들이 그 가사들을 어찌 다 외우는지 그저 신기하게 여겨질 정도. 린 마누엘 미란다는 뮤지컬의 작곡자이면서 본인이 주연을 맡아 오리지널 캐스트 멤버로 공연까지 했다.

  이 뮤지컬에는 흑인 배우들이 대거 출연한다. 해밀턴의 정적이었던 애런 버(Aaron Burr)를 비롯해 대부분의 배역들을 흑인 배우들이 소화한다. 어떤 면에서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뮤지컬의 변모일 것이다. '해밀턴'에서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흰색 옷을 입고 등장하는 코러스 배우들이었다. 그들의 존재는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를 떠올리게 만든다. '해밀턴'의 코러스는 합창과 춤으로 극의 진행을 이끌면서 주연 배우들을 보조한다. 진화하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의 흥미로운 단면을 '해밀턴'에서 확인할 수 있다. 
 

4. 다큐인가 영화인가: A Cop Movie(2021)

  'A Cop Movie(2021)'는 밤 거리를 순찰하는 경찰 테레사를 비춰주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테레사가 무전으로 출동 명령을 받고 간 곳은 범죄 현장이 아니라 어느 가정집의 출산 현장이다. 구급차를 불러도 오지 않자 테레사는 출산을 돕는다. 멕시코 경찰의 고단한 삶의 현장을 찍은 다큐인가 보다, 라고 생각하며 관객들은 테레사의 일상을 따라간다. 대낮 길거리에서 맞닥뜨린 범죄 용의자는 지하철로 도망친다. 테레사를 급박하게 따라가는 카메라가 용의자를 안정적으로 화면 안에 담을 때, 좀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든다. 저거 진짜인가...
  
  멕시코 출신의 감독 Alonso Ruizpalacios가 만든 'A Cop Movie(2021)'는 다큐와 극영화, 그 둘 중에 어느 범주에 넣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든다. 제목의 'movie'는 이 다큐 영화를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감독은 실제 멕시코 경찰의 모습을 담기 위해 많은 경찰들을 인터뷰 했다. 그래서 선정된 이들이 경찰 부부인 테레사와 몬토야였다. 그 두 사람이 들려준 이야기를 바탕으로 배우들이 실제인 것처럼 연기를 했다. 그런데 그 배우들은 경찰 직무를 이해하기 위해 경찰 학교에 가서 전문적인 극기 훈련까지 받았다. 진짜 '경찰(cop)'의 이야기와 '영화(movie)'의 결합. 이것은 로브 라이너의 모큐멘터리(mockumentary)영화 '이것이 스파이널 탭이다(This Is Spinal Tap, 1984)'와 닮아있다. 로브 라이터는 어느 록 그룹의 결성과 해체를 다큐멘터리적인 방식으로 재현한다.

  'A Cop Movie'의 배우들이 보여준 리얼리티는 직접 소화해낸 경찰 학교 과정에서 나온 것이다. 주연 배우들은 경찰 부부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 경찰 업무, 연애의 과정을 각각 구술한다. 감독 루이즈팔라시오스는 실제와 영화적 현실의 간극을 보여주기 위해 일종의 트릭을 썼다. 테레사와 몬토야 부부의 이야기를 녹음해서, 그것을 배우들의 입 모양에 합성한 것이다. 그 결과, 다큐 중간 중간에 싱크가 맞지 않는 장면이 나온다. 연극적 '소격 효과(疏隔效果)'처럼 보이는 그런 기법은 관객이 다큐 속 인물들과 거리를 두게 만든다.

  과연 'A Cop Movie'의 그러한 실험적 시도는 성공적일까? 이 작품은 지금 시대의 다큐멘터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진화를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표현 방식에서 뿐만 아니라 다큐멘터리의 근원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새로운 방향성을 만들어 내고 있다. 많은 술꾼들을 인터뷰해서 출연자를 뽑은 다음에, 하룻밤 술집을 빌려 진창 술을 마시도록 해서 찍은 'Bloody Nose, Empty Pockets(2020)'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런 면에서 'A Cop Movie'는 다소 낯설고 어설퍼 보이기는 해도, 그 실험 정신은 나름대로 칭찬할 만 하다.


*사진 출처: amensagem.pt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배우 마리아 펠릭스(
María Félix)



***사진 출처: letsgotothemovies.co.uk



**** 다큐 'Bloody Nose, Empty Pockets(2020)' 리뷰   

https://sirius1001.blogspot.com/2021/10/bloody-nose-empty-pockets2020.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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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금광 도시의 영화적 연대기



  1978년, 캐나다 유콘에 위치한 소도시 Dawson City에서는 오래된 건물의 해체 작업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오랫동안 도시의 체육관으로 쓰였던 건물의 지하 동토층에서는 무더기로 매몰된 필름들이 발견된다. 무려 533개에 달하는 무성 영화 필름 릴들이 물과 시간의 힘을 견뎌내고 세상과 만나는 순간이었다. 도대체 왜 그 필름들은 버려졌을까? 다큐멘터리 제작자 Bill Morrison은 필름이 잠들어 있던 도슨 시티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그에 얽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캘리포니아의 Gold Rush는 1850년대 아주 짧은 기간 동안 일어났다 사그라 들었다. 하지만 미국민들의 일확천금에 대한 열망은 결코 잠들지 않았다. 1896년, 알래스카에 걸쳐 있는 유콘 강(Yukon River)에서 또 한 번의 거대한 금 열풍이 불었다. 'Klondike Gold Rush'였다. 미 전역에서 금을 찾아 나선 사람들이 그야말로 물밀듯이 몰려들었다.

  잭 런던 또한 금을 찾아 나선 이들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금을 찾는 행운은 소수의 사람들의 것이었고, 잭 런던은 몸만 상하고 빈손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그는 그때의 경험을 소설로 써냈다. '야성의 부름(The Call of the Wild, 1903)', '화이트 팽(White Fang, 1906)'은 그 시절의 산물이었다. 앤소니 만 감독의 1954년작 영화 'The Far Country'도 바로 '클론다이크 골드 러시'를 배경으로 한다. 제임스 스튜어트가 주연을 맡은 이 영화는 확장된 서부의 공간 속에 부패한 사법 권력과 개인의 대결, 공동체적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 놓는다.

  도슨 시티는 그 열풍의 중심지에 세워진 도시였다. 다큐는 간결한 자막과 공문서, 뉴스 릴, 도슨 시티의 무성 영화들에서 발췌한 장면들로 도시의 연대기를 구성해 나간다. 거기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Alex Somers가 담당한 음악, 그리고 사운드 디자인이다. 마치 굽이치는 물결처럼 그 모든 자료들이 역동적인 소리와 함께 엮어져 있다. 가끔 좋은 영화란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해 보는데,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그것은 좋은 흐름을 가진 영화이다. 그런 면에서 이 다큐는 꽤 괜찮은 리듬감을 갖고 있다. 

  금과 사람들로 흥청거리는 도시에서 도박과 매춘, 여관 사업은 아주 잘 나가는 사업이었다. 트럼프 가문의 거대한 부는 도슨 시티에서 벌인 그 사업에서부터였다. 그러나 금의 소진과 함께 도시는 급격한 쇠퇴기에 접어든다. 1900년대 초, 도슨 시티는 많은 사람들이 빠져나가면서 활기를 잃었다. 그럼에도 록펠러 가문에 의해 대규모의 기계식 채굴 사업이 진행되었고, 도시도 유지될 수 있었다. 체육관을 비롯해 레크리에이션 센터가 들어섰다. 나중에 영화 센터로 변모한 체육관은 그 시기에 무성 영화 제작의 요람이었다. 초창기 무성 영화는 온갖 것들을 다 찍었다. 아이들과 자연, 서커스, 마라톤 대회, 경주, 비행기와 배, 해외의 온갖 인종과 풍물에 관한 것까지. 그 자료들은 '움직이는 사진'인 영화에 대한 당시 사람들의 흥분과 열망을 보여준다. 곧 영화는 '기록'에서 발명된 '이야기'로 나아간다.

  초창기 질산염 필름(nitrate film)의 가장 큰 문제점은 인화로 인한 화재의 위험성이 크다는 데에 있었다. 영화관을 비롯해 필름 보관소의 대규모 화재는 자주 일어나는 일이었다. 도슨 시티에서도 잦은 화재로 필름이 소실되곤 했다. 그럼에도 이 도시는 일종의 필름 수장고의 역할을 떠맡게 되면서 계속해서 필름들이 쌓여갔다. 개봉 영화가 2년에서 3년을 떠돌다 마지막에 도착하는 곳이 도슨 시티였다. 배급업자들은 영화들의 최종 종착지인 이 외진 북부 도시에서 필름을 찾아가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필름들이 보관할 곳을 찾지 못해서 버려졌다. 유콘 강에 내던져 지고, 때론 불태워 졌으며, 땅에 파묻혔다.

  필름들이 그렇게 버려지는 장면과 함께 무성 영화 속 장면들이 제시된다. 비탄과 놀라움을 보여주는 여인들의 표정은 다큐를 보는 관객들의 마음과 같다. 체육관의 수영장 바닥을 메꾸는 데에도 필름들이 들어갔다. 다큐는 도시의 역사를 개관하면서 영화사, 미국사의 주요한 사건들을 훑어 나간다. 1914년의 노동자들의 파업과 1차 세계 대전의 시작, 1917년의 흑인들의 차별 반대 시위, 토키(talkie)의 보급과 함께 시작된 유성 영화의 등장, 2차 세계 대전으로 이어지는 역사적 사건들. 그 기간 동안 도슨 시티는 작은 시골 도시로 변모했다. 1950년대에 그곳의 인구는 900명 정도에 불과했다.

  1957년, 칸 영화제에서 상영된 단편 다큐 한 편이 도슨 시티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을 환기시켰다. Colin Low와 Wolf Koenig가 만든 'City of Gold(1957)'는 초창기 도슨 시티에서 살았던 사진가 Eric A. Hegg의 사진 자료로 도시의 역사를 개관한다. 카메라의 'zooming'과 'panning'을 통해 사진을 마치 움직이는 것처럼 만드는 이 다큐의 기법은 훗날 미국 역사 다큐멘터리 제작자가 된 Ken Burns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잊혀진 금광 도시의 진정한 보물은 여전히 땅 밑에 숨겨져 있었다. 1978년, 건물 해체 과정에서 발견된 무성 영화 필름은 복원과 보존 작업을 거쳤다. 무성 영화 시대의 소중한 자료를 품었던 도슨 시티는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를 세상에 알렸다. 빌 모리슨은 '필름'이라는 도구를 통해 금광 도시의 연대기를 독창적으로 직조해 나간다. 금을 향한 사람들의 지독한 열병으로 세워진 도시, 무성 영화의 탄생과 죽음, 그리고 복원과 재생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은 사뭇 감동적이다. 결국 이 다큐가 보여주는 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영화'라는 매체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이다. 황금에 대한 선망은 이야기를 영화로 남기려는 예술적 열망과 비슷하다. 그렇게 도슨 시티는 그 열망을 화석처럼 보존한 곳으로 남았다.       


*본문에서 언급한 작품들

Jack London의 소설: 야성의 부름(The Call of the Wild, 1903), 화이트 팽(White Fang, 1906)
The Far Country(1954): Anthony Mann 감독 
City of Gold(1957): Colin Low과 Wolf Koenig 제작, 단편 다큐 21분(유튜브에서 볼 수 있음)


**사진 출처: filmlinc.org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금을 찾으러 가는 여정, 18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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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린 영화들 특집:


Leave No Trace(2018) 

Bait(2019)

Isabella(2020)

The Father(2020)

Attica(2021)


 
  말 그대로, 영화를 보고 글을 쓰려다가 쓸 말이 별로 없어서 그냥 버려둔 영화들 특집이다. 


1. Leave No Trace(2018)

  데브라 그래닉(Debra Granik)의 2018년작 영화. 이라크전 참전 군인 윌은 PTSD(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다. 그는 국립 공원 깊은 산속에서 13살 딸과 함께 살아간다. 평화로운 일상의 어느 날, 공원 관계자들은 무단 점거를 이유로 부녀를 내쫓는다. 윌과 톰은 정부 지원으로 주거지를 지원 받아 사회 적응을 시작한다. 마음의 병 때문에 다시 산으로 떠나려는 윌, 그러나 딸은 사람들과 함께 하는 삶을 택한다.

  "아빠에게 나쁜 것이 나에게도 그런 건 아냐."

  사람들과 사회를 두려워 하는 아빠에게 딸은 그렇게 말한다. 잔잔하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영화. 산으로 올라가는 아버지와 딸이 작별하는 영화의 마지막은 찡하다. 그 장면은 시드니 루멧 감독의 '허공에의 질주(Running On Empty, 1988)' 결말을 떠올리게 하기도. '언젠가 우린 다시 만날 거야', 폭파 수배범인 부모와 피아니스트의 길을 걸으려는 아들은 그렇게 헤어진다. 'Leave No Trace'는 인물의 감정선을 잘 짚어낸 감독의 연출력이 돋보인다. 딸을 연기한 토마신 맥켄지의 연기가 참 좋다.


2. Bait(2019)

  영국 출신의 감독 Mark Jenkin이 구식 필름 카메라 Bolex 16mm로 찍은 1시간 29분의 장편 극영화.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는 어촌 마을. 마을은 관광객들과 외지인들에 의해 잠식되어가는 중이다. 영화는 외지인과 내지인의 경제적인 갈등, 정체성의 문제를 다룬다. 마크 젠킨은 이야기 중심의 내러티브가 아닌, 실험적인 방식으로 쇼트들을 분할하고 접합시킨다.

  IMDb에서 이 영화에 대한 리뷰는 우호적인 것과 혹평으로 양분되어 있다. 1970년대 영화과 학생들의 실험 영화를 떠올리게 만든다는 외국 리뷰어의 혹평도 있다. 그걸 읽으면서 그랬다. '이봐, 한국에서는 2000년대 초반까지 그걸로 영화과 학생들이 영화 찍었어', 하고 웃었다. 마크 젠킨은 번거로운 후시 녹음 작업에, 자기 스튜디오에서 직접 현상까지 해가며 열심히 영화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의 열의에 비해서 영화는 영 맥아리가 없다. 중요한 것은 필름이냐 디지털이냐가 아니다. 확실히 이제 이런 아날로그 방식의 실험적인 시도는 더이상 의미가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3. Isabella(2020)

  아르헨티나 출신의 감독 마티아스 피녜로(Matias Pineiro)의 영화. 친구 사이인 마리엘과 루치아노는 셰익스피어 연극의 오디션을 두고 서로 경쟁하며 때론 협력한다. 영화는 색면 분할 추상화로 유명한 '마크 로스코(Mark Rothko)'의 회화적 이미지를 중심으로 내러티브를 구성해 나간다. 비선형적인 시간 구조를 가지고 있는 이 영화를 이해하는 것은 쉽지 않다. 연극과 현실이 뒤엉키는 가운데 두 인물들 사이의 역학 관계도 변해간다. 감독의 전작들과 연장선상에 있기 때문에 '이사벨라'를 제대로 보려면 전작을 보아야 한다. 알렝 레네, 자끄 리베트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들이라면 이 영화도 취향에 맞을 것이다. 알랭 레네의 '지난 해 마리앙바드에서(1961)'와 '히로시마 내 사랑(1959)'에 넌더리를 내었던 나에게 이 영화는 괴로운 영화 보기였다.


4. The Father(2020)

  플로리안 젤러(Florian Zeller)는 자신이 쓴 희곡을 가지고 이 영화를 찍었다. 치매를 앓고 있는 노인 앤소니(앤소니 홉킨스 분)의 시점에서 전개되는 노년의 슬픔과 고독에 관한 이야기. 영화는 치매로 손상된 인지능력을 가지게 된 앤소니가 바라보는 현실을 찬찬히 펼쳐서 보여준다. 그가 바라보는 딸과 사위의 얼굴은 수시로 바뀌고, 자신을 비롯해 그가 말하는 가족과 과거에 대한 이야기는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가 없다.

  마침내 요양원에서 간병인의 도움을 받으며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앤소니의 모습은 언젠가 우리 모두가 맞이하게 될 미래이기도 하다. 엄마가 보고 싶다며 아이처럼 우는 노인을 보는 것은 가슴 아픈 일이다. 앤소니 홉킨스는 영화 속 치매 노인 앤소니이면서, 모든 것을 이룬 예술인 앤소니 홉킨스 경으로서 유종의 미가 무엇인지 입증한다. 연기의 달인처럼 보이는 그도 못당해낼 배우를 만난 적이 있기는 하다. 역사극 '겨울의 라이온(The Lion in Winter, 1968)'에서 함께 공연한 캐서린 햅번이다. 햅번은 피터 오툴, 티모시 달튼은 물론이고 앤소니 홉킨스의 존재감을 가볍게 뛰어넘는다. 그 영화로 캐서린 햅번은 세 번째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거머쥐었다.



5. Attica(2021)

  Traci Curry와 Stanley Nelson이 만든 이 다큐멘터리는 1971년 9월에 있었던 '아티카 감옥 폭동(Attica Prison Rebellion)'을 다룬다. 비인간적이고 열악한 교도소의 환경 개선을 요구하며 죄수들은 감옥을 점거했다. 주정부는 무장 진압으로 맞섰고 그 과정에서 수감자와 교도관들이 죽어나갔다. 50년이 지난 시점에서 당시 수감자들을 비롯해 교도관의 가족, 법률가, 방송 관계자들이 사건에 대해 증언한다. 이전에도 아티카를 다룬 다큐가 있었지만, 이 다큐는 다양한 관계자들의 생생한 증언을 통해 사건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준다.

  수감자들과 교도관의 가족들은 주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진행했고, 그것은 2000년대 초반에서야 거액의 합의금으로 마무리되었다. 실제 진압 작전에 참여해 살상을 저지른 주정부군을 비롯해 명령을 내린 이들 가운데 처벌을 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아티카 폭동을 계기로 미국 교도소의 여건은 표면적으로는 나아진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레이건 정부 시대 들어서 범죄와의 전쟁으로 교도소와 수감자 관리는 더 엄격해졌다. 오늘날 미국은 교도 행정을 적극적으로 민영화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그로 인해 발생하는 수감자에 대한 노동력 착취와 비인격적인 처우 문제는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다. 폭압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아티카 진압 유혈극이 일어난지 50년. 이 다큐는 과연 미국이 그 사건에서 무엇을 배우고 얼마나 나아졌는가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      


*사진 출처: hotcorn.com      Bolex 16mm로 'Bait'를 찍고 있는 감독 Mark Jenkin



**사진 출처: altenateend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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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다 요지(山田洋次, Yamada Yoji) 감독의 영화 속 목소리들(Voices)


고향(同胞, The Village, 1975)
학교(学校, Gakko, 1993)
어머니(母べえ, Kabei: Our Mother, 2008)
작은집(小さいおうち, The Little House, 2014)



1. 1970년대 농촌 청년의 목소리: 고향(同胞, The Village, 1975)
 
  내가 가지고 있는 글쓰기 책에는 소설을 잘 쓰기 위한 여러가지 비법들이 적혀 있다. 그 가운데 한 가지는 누군가에게 들려주 듯이 쓰라는 것도 있다. 사람의 온기를 지닌 목소리. 영화에서는 그것이 작중 화자의 내레이션이 된다. 뛰어난 이야기꾼이며 역사적 통찰력을 가진 일본의 감독 야마다 요지는 그 '목소리'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의 1975년작 영화 '고향(同胞, The Village)'은 이와테현의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한다. 영화에서 관객들에게 내레이션을 들려주는 주인공은 마을 청년회 회장 타카시이다. 그는 고단한 농촌의 삶에 지쳐있다. 그런 그에게 도쿄 극단의 히데코가 찾아온다. 히데코는 마을 주민들에게 단합의 기회가 될 거라며 뮤지컬 공연을 하고 싶다고 말한다. 히데코의 제안은 좋지만, 공연비 65만엔을 티켓 판매로 마련해야 하는 상황은 청년회에 부담으로 다가온다. 과연 이 시골 마을에서 극단의 공연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내성적이고 소심한 타카시는 자신이 사랑하는 아가씨에게 고백도 못하고 있다. 그에게는 부인과 사별한 후 두 딸을 키우는 형과 어머니가 있다. 농사와 목축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농촌의 삶은 버겁고 힘들다. 마을 젊은이들에게 도쿄는 꿈의 도시이다. 농사에 마음에 없는 그에게 형은 닥달을 하고, 좋아하는 여자는 도쿄에서 살겠다며 떠나버린다. 1970년대 일본은 고도 성장으로 이룬 경제적 발전과 함께 급격한 도시화가 진행되고 있었다. 비대해진 도시의 기능과 생산 인력의 충원을 담당한 것은 농촌과 도시 근교 지방의 젊은이들이었다. 영화 속 타카시와 마을 청년들은 생계 때문에 몸은 농촌에 매여 있지만, 마음은 도시로 향해 있다. 야마다 요지는 거센 도시화의 물결에 직면한 농촌의 문제를 다루기 위해 농촌 청년 타카시의 목소리를 택한다.

  러닝타임 2시간 7분 동안 전반부에는 공연을 올리는 문제를 두고 토론하는 청년회의 모습, 후반부에는 마을에서 이루어지는 도쿄 극단의 뮤지컬 공연이 펼쳐진다. 극영화와 다큐멘터리적 양식이 혼합된 이 독특한 영화가 강조하는 것은 자연과 함께 하는 농촌의 삶, 그 소박함과 아름다움에 대한 찬미이다. 노래와 연극, 탭댄스와 춤이 결합한 극단의 뮤지컬 공연의 제목은 '고향(ふるさと)'이다. 농촌이 싫어 떠났던 청년들이 결국 다시 고향으로 돌아온다는 이야기의 극을 보며 주민들은 울고 웃는다. 청년회의 젊은이들은 공연을 올리기까지 자신들이 애썼던 과정을 통해 정체성을 새롭게 하고 삶의 의지를 다진다.
 
  "실패는 두렵지만, 실패하더라도 시도해보는 것이 낫다구."

  영화는 두 개의 삶을 병치시킨다. 도시로 떠나 중국 음식점 직원과 미용사로 살아가는 외롭고 고단한 삶과 아름다운 자연 속에 공동체적 유대를 이루는 고향의 삶. 무엇이 더 낫다고 말하기는 힘들다. 다만 야마다 요지는 농촌의 삶이 젊은 세대들에게도 충분히 가치있고 의미있는 것일 수 있음을 상기시킨다. 그리고 그것은 히데코가 이끄는 도시 극단의 예술적 열정에 의해 일깨워진다. 그렇게 영화 속 타카시의 목소리에는 감독 자신이 동시대의 일본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가 실린다. 야마다 요지의 영화를 통한 이러한 사회적 관심사와 발언은 '학교(学校, Gakko, 1993)'에서도 나타난다.


2. 일본 사회 주변인들의 목소리: 학교(学校, Gakko, 1993)

  야마다 요지 감독을 시리즈의 대가로 알린 영화는 '남자는 괴로워(男はつらいよ, 1969–1995)'연작이었다. 무려 48부작에 이르는 이 영화적 대장정은 방랑 상인 '토라상'의 모험담으로 이루어져 있다. 매 편마다 소박하고 유쾌한 에피소드로 구성된 이 영화가 어떻게 그토록 오랫동안 이어질 수 있었을까? 거기에는 전후 중장년층 관객들의 티켓 파워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들에게 즐겁게 변주되는 토라상의 이야기는 과거에 대한 추억과 함께 자신들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연작으로 이야기를 구성하는 탁월한 능력을 지닌 이 감독은 1993년에 처음으로 선보인 '학교(学校, Gakko)'를 4편까지 이어간다. 그 시리즈의 첫 번째 영화는 야간 중학교 교사와 그의 제자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문맹인 재일 조선인 김 어머니, 알콜중독자 아버지와 함께 사는 비행 소녀 유키, 건물 청소일로 생계를 잇는 카즈, 학교 가기를 거부하는 여중생 에리코, 중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를 둔 장, 뇌성마비로 의사소통이 불편한 오사무, 막노동을 하며 경마에 빠져 사는 이노상, 그리고 담임 쿠로이 선생. 영화는 그들의 이야기를 차례대로 펼쳐보이며 관객을 낙오자들의 '학교'로 데려간다. 이 영화에는 여러 주인공들이 각자의 내레이션으로 쿠로이 선생과의 만남이 어떻게 그들의 인생을 바꿔놓았는지를 들려준다. 2시간이 넘는 이 영화를 결코 지루하지 않게 만드는 것은 바로 그 목소리들이다.

  이 영화의 리얼리티는 야간 중학교 졸업생들의 수기를 엮은 원작에서 나온다. 야마다 요지는 그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일본 사회의 주변부를 조망한다. 쿠로이 선생이 지도하는 학생들은 일본 사회에서 열외적인 존재들이라고 할 수 있다. 어찌보면 보이지 않는 차별과 냉대 속에 놓인 이들, 그런 그들을 돕는 쿠로이상은 따뜻한 마음과 올바른 신념을 가진 교육자이다. 그는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일방적으로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다. 스스로 배우고 싶다는 의지를 일깨우는 것, 그리고 그런 과정을 통해 그의 학생들은 인생을 바꿀 내면의 힘을 얻게 된다.

  과연 배움이 우리 인생을 구원할 수 있는가? 영화는 가난한 하층민 이노상의 갑작스러운 죽음을 통해 관객에게 그러한 질문을 던진다. 무더운 여름날, 쿠로이 선생은 이노상의 집을 방문한다. 그런데 찜통같은 이노상의 집 창문은 닫혀있다. 쿠로이 선생이 창문을 열자 지나가는 기차의 굉음이 들린다. 소음 때문에 문도 열지 못하고 사는 이노상의 열악한 주거 환경, 그런 곳에서 막노동으로 살아온 그는 중병에 걸렸음을 알게 된다. 그를 진단한 의사는 이노상의 몸은 '그가 살아온 험한 삶의 흔적'으로 가득하다고 쿠로이상에게 말한다. 그의 부고 소식을 듣고 학생들은 그가 야간 중학교에서 보낸 1년이 무슨 의미가 있었는가를 두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노상은 과연 그 시간이 행복했을까에 대해.

  "행복이란 무엇일까요?"

  쿠로이 선생이 학생들에게 던지는 그 질문은 감독이 관객들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하다. 여러분은 과연 '돈'이 아닌, 대답할 다른 무언가를 갖고 있는가? 우리 모두는 '인생'이라는 학교에서 그 대답을 찾아가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러한 실존적 의미에 대한 성찰과 함께 야마다 요지는 '학교'에서 사회의 하층민들과 주변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영화는 그들 또한 일본 사회의 구성원이며,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3. 전쟁을 관조하는 여성의 목소리: 어머니(母べえ, Kabei: Our Mother, 2008), 작은집(小さいおうち, The Little House, 2014)

  야마다 요지는 일본의 과거사와 관련해 올곧은 목소리를 내는 사회적 원로이기도 하다. 영화 '어머니(母べえ, 2008)'와 '작은집(小さいおうち, 2014)'은 일본의 과거 침략 전쟁에 대한 감독의 비판적 성찰을 보여준다. 야마다 요지는 두 영화에서 모두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이야기를 펼쳐 놓는다. 영화 속 여성들은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전쟁이 각자의 삶에 남긴 상흔에 대해 털어놓는다. 두 영화는 침략 전쟁의 병참 기지로서 '국내 전선(Home Front)'의 일본 여성들이 감내해야 했던 고난이 미시사적 관점에서 구술된다.

  영화 '어머니(2008)'는 1984년에 노가미 테루요가 발표한 '아버지의 레퀴엠'이라는 단행본을 원작으로 한다. 원작자는 일본의 제국주의 전쟁을 비판했던 자신의 아버지가 수감된 후에 가족이 겪은 고난을 써냈다. 영화에서 내레이션을 들려주는 이는 막내딸 테루미이다. 9살 테루미는 12살 언니, 그리고 엄마와 함께 감옥에 있는 아버지가 풀려나기만을 기다린다. 사상범으로 체포된 아버지는 전향을 거부하고, 혹독한 수감 생활을 감내한다. 아버지의 제자 야마자키, 고모 히사코는 2년이란 시간을 가족과 함께 하며 힘이 되어준다.

  러닝타임 2시간 12분은 꽤 긴 시간이다. 그럼에도 영화는 그다지 지루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야마다 요지는 이야기가 갖는 힘을 잘 알고 있는 감독이다. 아버지의 제자 야마자키가 가족의 버팀목이 되어주는 일련의 사건들, 어머니의 친척 아저씨가 여름에 와서 지낸 이야기, 경찰인 외할아버지와 어머니와의 갈등. 그런 이야기들 중간중간에 야마다 요지는 일본의 뒤틀린 국수주의와 천황제의 폐해를 부각시킨다. 거리에서는 사치가 죄악이라며 귀중품을 국가에 헌납하라고 캠페인을 벌인다. 기차역에서는 전쟁터로 떠나는 군인을 배웅하며 천황 만세를 외친다. 어머니가 선생으로 있는 초등 학교에서는 천황의 생일을 기념하고 아이들에게 그 은혜를 칭송하게 한다.

  영화 '어머니'에서 묘사되는 당시 일본인들의 모습은 집단적인 최면에 걸린 것처럼 보인다. 어머니가 참석한 반상회에서 마을 대표는 천황궁을 향해 절을 하자고 하는데, 천황이 별장에 머무르니 그쪽을 향해 절해야 한다며 논쟁이 벌어진다. 잡화상의 주인은 진주만 습격 소식을 듣고, 드디어 일본이 미국을 무찌르게 되었다며 크게 반색한다. 외부인의 시각에서는 미쳐 돌아가는 나라이지만, 당시 일본인들에게 그것은 거대한 제국주의적 이상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온전한 양심과 합리적 이성으로 상황을 판단하고 비판적으로 살았던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되었을까? 영화 속 테루미의 아버지는 결국 2년 만에 옥사한다(실제 원작자의 아버지는 전향 후 석방되어 나중에 대학 교수를 역임했다). 징집된 야마자키는 군함의 침몰로, 히로시마에 있던 고모 히사코는 원폭으로 사망한다.

  '어머니(2008)'에서 어머니를 연모하는 야마자키의 감정은 매우 절제되어 있고, 그것은 영화 속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지는 않는다. 이와는 달리 '작은집(小さいおうち, 2014)'의 경우에는 로맨스가 극의 내러티브를 이끈다. 이 영화도 원작이 되는 소설이 있다. 야마다 요지는 2010년에 나카지마 쿄코가 발표한 동명의 소설을 읽고 영화화하기로 결심했다. 1935년에 시골 출신의 타키는 도쿄 중산층 가정의 하녀가 된다. 영화는 노인이 된 타키가 자신의 과거를 회상하며 적어 내려가는 글에 따라 전개된다. 타키가 화자가 되어 들려주는 이야기는 주인 마님의 불행한 사랑 이야기이다.

  이 영화의 러닝타임도 2시간 17분으로 역시 길다. 아마도 요즘 관객들에게 이러한 긴 호흡의, 이야기 중심의 영화는 지루하게 느껴질 것이다. 게다가 주인 마님 토키코와 이타쿠라의 불륜이라는 것도 명확하게 드러나지 않는다. 타키가 토키코에게 품는 연모의 감정을 비롯해 중성적 매력을 지닌 토키코의 친구까지, 영화의 동성애적 코드는 기이한 자기검열처럼 삭제되어 있다. 아마도 노감독에게 그런 부분의 묘사는 영 내키지 않았던 모양이다. 사실 이 영화는 로맨스 보다 당시 전쟁이 중산층 계급에 미친 영향을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게 해준다.

  타키의 주인은 완구 회사에 다니는데, 그는 계속되는 일본의 전쟁 소식에 흥분한다. 일본의 식민지가 확장되면 그의 회사가 팔 수 있는 장난감 시장이 커지기 때문이다. 영화 속에서 노년의 타키는 자신이 쓴 자서전을 대학생 조카 켄지에게 읽어준다. 타키는 1937년 중일 전쟁 시기 일본이 난징을 함락했을 때의 축제 분위기를 적는다. 하지만 켄지는 난징에서는 대학살극이 벌어지고 있었다고 지적하며 그 기억이 맞느냐고 반문한다. 침략 전쟁이 극에 달했을 무렵에도 돈까스를 배달시켜 먹었다는 이야기도 켄지에게는 생뚱맞다. 타키는 조카가 모르는 그 시절의 암시장에 대해 들려준다.

  전쟁이 온나라를 쥐어짜내고 있었지만, 가진 사람들에게는 견딜만 했던 것이다. 야마다 요지 감독의 이 영화는 어딘지 모르게 제임스 아이보리의 '남아있는 나날(The Remains of the Day, 1993)'을 떠올리게 만든다. 영화는 2차 대전 시기에 부유한 귀족 가문의 충복으로 일하는 집사장 스티븐슨의 시선으로 상류층의 일상을 포착한다. 나치와 연계되면서 몰락하는 주인, 맹목적인 충성을 보였지만 결국 회한만 남은 노년의 집사장. 스티븐슨처럼 타키도 평생 독신으로 산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고독사였다.

  야마다 요지의 이 씁쓸한 전쟁 로맨스 영화에는 감독의 명확한 역사적 인식이 담겨져 있다. 영화의 마지막, 조카 켄지는 타키가 그토록 아꼈던 토키코의 아들 쿄이치와 만난다. 쿄이치는 전쟁 시기의 일본인들은 모두 원치 않은 선택을 강요받았다고 회고한다. 자발적으로 전쟁에 나섰던 이들조차도 자신이 원치않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시대. 그러나 과연 전쟁을 지원하고 수행했던 일본 국민들에게 원죄를 묻는다면 없다고 할 수 있을까? 조곤조곤하고 명징하게 울리는 여성의 목소리를 통해 관객은 천황과 군국주의에 대한 광신으로 점철된 침략 전쟁의 이면과 마주하게 된다.  



*사진 출처: en.wikipedia.org


**사진 출처: asianwiki.com



***사진 출처: asianwi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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