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리시즈 1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9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범우사 / 1997년 3월
평점 :
품절


  도서관의 문학 서가에서 늘 망설이게 했던 책들이 있었다. 제임스 조이스의 “율리시즈”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가 바로 그 책들이었다. 마치 멀리서 바라보기만 할 뿐, 갈 엄두를 내지 못하는 거대한 산처럼 참으로 오래전부터 그 책들을 지나쳐왔다. 그러다 이번에 조이스의 “율리시즈”에 도전했다. 10권으로 번역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 비하면 4권은 좀 수월하다고 생각했던 것일까? 그러나 막상 읽기 시작하니 소설의 본문과도 맞먹는 엄청난 주해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비로소 “율리시즈”가 단순한 책이 아니라 거대한 수수께끼이며 책 읽기의 모험 그 자체임을 실감했다.

 

  조이스는 자신이 보여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이 책에 쏟아 부었다는 생각이 든다. 파격적이고 탁월한 문체와 수사학적 실험들, 치밀하고 섬세한 묘사와 놀라운 문학적 상상력이 돋보이는 이 책이 20세기 문학의 최고봉이라고 불리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 “율리시즈”는 그 책이 나온 이후의 문학 작품의 모든 것의 원형이 되는 요소들이 빠짐없이 들어있다. 내가 놀라고 열광해마지 않는 빼어난 현대 문학 작품들의 시작이 바로 그 책에서부터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문학적 성취 이전에 “율리시즈”는 소설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독자가 난해하고 복잡한 글들 사이를 신나게 질주하게 만드는 이 책의 기이한 매혹이야말로 4권의 번역본을 전혀 긴 것이 아니라고 믿게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두 번씩 읽으면 그 빼어난 문체의 아름다움을 더 잘 느낄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율리시즈”를 읽는 것이 좀 버겁게 생각되는 독자라면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과 “더블린 사람들”을 먼저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하다. 두 작품 모두 “율리시즈”를 이해하는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읽는다’는 점이라는 생각이 든다. 산은 직접 올라가기 전에는 알 수 없는 것처럼 “율리시즈”도 읽기 전에는 결코 알 수 없는 무수한 놀라움들이 감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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