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수(術數)와 결합된 동아시아의 전통과학]


동아시아 전통과학에서의 진정한 의미 찾기


                                              박권수(서울대 과사철 협동과정 박사과정)




1920~1930년대 중국에서 의고풍(疑古風)의 학술사조를 주도했던 고힐강(顧詰剛)의 『진한의 방사와 유생』이라는 책으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해보자. 1935년에 초간된 이 책은 음양오행과 참위에 바탕한 술수적(術數的) 관념이 진한시대의 정치와 문화, 학술 전반과 얼마나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었는지를 잘 보여주는 책으로서, 관련분야를 연구하는 학자라면 한번쯤은 읽어봐야 할 듯하다. 이 책을 읽다보면 한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저자 고힐강이 본문에서 대가답게 힘있고 단호한 어투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면서도 가끔씩 자신의 논의에 대한 ‘의미부여’를 상당히 방어적인 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방어적인 어투는, 그가 당대인들로부터 ‘도대체 왜 오늘날에는 전혀 중요하지도 않은 고대의 망설들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논하는가?’라는 식의 비판을 받을 것을 계속 염두에 두면서 이 책을 써내려 갔기 때문에 나온 것이다.

 


물론 고힐강의 염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다. 그는 『고사변(古史辯)』을 바탕으로 음양오행과 참위와 같은 오래된 관념들이 전설 속의 성인들로부터 유래하는 것이 아니라, 전국 말에서 진한시대를 거치면서 방사와 유생들에 의해 창안되었고 유교경전과 결합하였으며 성인에게 가탁된 것임을 밝혔다. 하지만 1920년대 이후 고조된 전통타파와 유학타파ㆍ미신타파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는 참위와 술수의 관념에 대한 학술적 논의 자체가 분명 부담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이런 부담감은 그가 개정판의 서문을 쓴 1954년까지도, 어쩌면 문화혁명이 끝나고 난 뒤까지도 한동안 사라지지 않았던 것이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이렇게 길게 늘어놓는 것은, 그가 느꼈던 부담감이 동아시아 과학사 연구자들의 고민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과학사가 처한 상황 자체를 잘 설명해준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애초 고힐강이 시작한 의고풍의 학문경향은 그가 살아온 시대의 소산물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온 지난 100여 년간의 시간 또한 술수나 참위 등의 관념들을 전근대적이며 비과학적인 미신이라고 부정하면서 근대적인 것ㆍ과학적인 것ㆍ서구적인 것을 강조하고 지향하던 시기이다.

 


생각해보면 그도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동아시아 사회는 19세기 후반 이후 서구의 침략에 (일본을 제외하곤) 힘없이 무너졌고, 그러한 무기력을 극복하고 독립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동아시아 사회 전체가 ‘자기부정’의 과정과 더불어 서구화와 근대화의 과정을 겪어야 했기 때문이다. 20세기 중반 동아시아 사회가 독립과 해방을 성취한 이후에도 서구의 물질적 풍요를 따라잡기 위해서 서구화와 근대화의 과정을 계속되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 속에서 근대성과 과학성을 지향하고 비과학적인 미신을 부정하는 주장들은 단순히 표면적인 구호의 차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전체의 절실하고 진지한 요구를 반영하고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술수나 참위에 대한 연구는 그것이 비록 학술사적인 목적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할지라도, 주위로부터 의심과 회의의 시선을 받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한 술수적 관념


동아시아 전통과학사는 이와 같은 근대화ㆍ서구화를 이뤄내기 위한 동아시아 사회전체의 ‘자기부정’과 ‘자기재규정’의 과정을 통해 발전한 분야이며, 나아가 그 과정에서 핵심적 역할을 담당한 분야이다. 여기서 ‘자기부정’이란 전통과학과 문화의 다양한 요소들 중에서 비과학적인 또는 ‘미신으로 보이는 것들을 분리하여 부정하는 형태’로 이루어졌다. 그 결과 천문(天文, 占星)과 풍수(風水), 점술(占術), 명리(命理, 연단(煉丹), 상수(象數) 등의 술수적 형태의 과학활동들이 여타의 것들로부터 분리되고 동아시아 과학사 서술에서 축소되거나 배제되었다. 한편으로는 두 번째의 과정, 즉 전통문화 속에서 ‘과학적인 것’, 그러므로 ‘근대적인 것’들을 별도로 추출하여 확대, 강조하는 ‘자기재규정’의 작업이 진행되었다. 그 결과 전통과학의 여러 분야들 중에서 수리천문학과 수학, 의학, 지도제작 등의 분야가 ‘근대과학’에 적합한 것으로 여겨져 중시되고 동아시아 과학사 서술의 대부분을 차지하게 된다. 현재까지도 동아시아 과학사의 여러 분야 중에서 천문학과 의학에 관한 연구가 양적, 질적으로 여타의 분야를 압도하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풍수, 점성, 점술, 명리, 연단 등의 분야에 관한 연구는 여전히 미미하며 관련 연구물 또한 일천한 상황이다.

 


한편 하나의 과학분야로서 인정받지 못하고 과학사의 목록에 포함되지 못한 음양오행, 풍수, 점성, 명리, 연단, 상수, 역학 등에 대한 지식들은, 각각 단편적인 부분들로 해체되어 그 중 ‘과학적인’ 내용들만 추출되어 천문학, 수학, 화학, 지리학 등의 ‘정통’ 과학사 분야들 속에 편입되는 운명을 겪었다. 이와 같이 전통시대의 여러 지식들과 유물들 중에서 과학적인 것들을 추출해서 역사를 서술하는 태도는 결국 동아시아 과학사를 고고학사나 유물사에 가까운 모습을 띠도록 만들었다. 게다가 이런 식의 동아시아 과학사의 서술방식은, 동아시아 각국의 근대화의 과정 속에 진행된 동아시아 각국의 ‘민족주의적 기획’과도 부합하는 것이었다. 즉 유물과 지식들에 관한 역사를 자기 민족의 역사적 유구성과 민족적 우수성을 잘 드러내는 증거로서 적극 활용하였던 것이다.

 

 



술수적 관념을 포용하고 바라보아야


역사란 당대인에 의해 작성된 글이 아닌 후대인들에 의해 쓰여진 글이다. 그러다 보니 역사를 서술할 때면 흔히 역사가의 개인적 욕망이나 시대적 분위기가 ‘역사관’이라든지 ‘시대적 사명’의 이름으로 자연스럽게 끼어 들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지난 시기 동아시아 과학사의 서술에 끼어 든 주된 욕망과 시대적 요청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곧 동아시아 전통과학사로부터 ‘근대’와 ‘계몽’, ‘과학’의 흔적을 찾아 부풀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의 과거사로부터 전근대적인 부분을 일체 부정하고자 하는 이중적 욕망의 소산이었다. 그러므로 동아시아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과거사를 대면하면서 한편으로는 강하게 부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강하게 긍정해야만 하는 모순적인 상황에 처해왔던 것이다.

 

 

다행히 1980년대 이후 경제적 발전을 거듭하면서 동아시아 사회는 그동안 서구사회에 대해 지녔던 오랜 콤플렉스로부터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되었다. 물론 일부에서는 동아시아 사회가 여전히 ‘근대성’을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거꾸로 ‘근대의 대안’으로서 ‘동아시아적인 것’을 제시하고 탐구하는 논의들도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역사학계에서는 ‘근대의 맹아’나 ‘자본주의 맹아’를 찾으려는 시도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과거처럼 대규모의 연구프로그램으로 진행되지는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역사에서 ‘근대’와 ‘계몽’의 흔적을 찾으려는 욕망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이후 동아시아 과학사의 서술은 어떠한 형태를 띠게 될까?

 


아마도 이런 식의 미래의 전망에 대한 질문만큼 대답하기 난감한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한가지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우리가 동아시아 전통사회에서 과학이라고 부를 만한 것들이 대부분 비과학적인 것, 술수적인 것들과 뒤섞여서 결합된 형태로 존재했음을 솔직히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는 점이다.

 


전통과학의 모습을 보다 자세히 개괄해보면 이 점이 분명해진다. 즉, 오늘날의 관측천문학에 해당하는 천문(天文)은 점성(占星)과 재이(災異)에 관한 논의와, 수리 천문학에 해당하는 역법(曆法)은 길흉(吉凶)의 일시(日時)를 결정하는 명과학(命科學)과, 수학은 수에 대한 신비적 관념이나 상수학적 논의들과, 의학은 무속적 치료의 전통들과, 지리학은 길한 땅을 고르는 풍수와 각각 결합되거나 중첩되어 있었다.

 


여기에다 음양오행, 상수학(象數學), 역학(易學) 등의 지식들은 대부분의 과학분야들에 기본적인 이론과 개념들을 제공했다. 물론 우리가 보기에는 ‘과학적인’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역법과 수학, 관측천문, 의학 등의 지식들이 항상 술수, 참위, 상수적 관념들에 얽매여 있었던 것은 아니며, 나름대로의 분야적 독립성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들 지식들이 비과학적ㆍ술수적 관념들과 무관한 채로 존재했던 것도 결코 아니다. 결국 우리가 동아시아 전통과학을 장식하고자 하는 희망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사료들을 바라본다면, 전통과학은 분명 비과학적인 술수와 미신과 함께 혼재된 채로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음양오행과 참위에 바탕한 술수적 관념이 진한시대의 정치와 문화, 학술 전반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었음을 잘 보여준 고힐강의 논의는, 중국 고대의 지적인 풍토를 솔직하고 정확하게 드러내준 것이다. 만약 우리가 ‘과학’이라는 용어를 의미를 보다 넓혀서 사용한다면, 당시의 음양오행과 참위에 바탕한 갖가지 술수들이 당시 과학의 주류를 형성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한편 이러한 상황에 대한 인정은, 단순히 서구과학에 비해 동아시아 전통과학의 상대적 저열성을 다시 한번 인정함을 의미하진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이전처럼 서구과학을 준거로 삼아서 동아시아의 전통과학을 ‘과학적인 것’과 ‘비과학적인 것’으로 양단하는 작업의 위험성을 인식하는 일이 된다. 사실 서구과학, 혹은 근대과학이 ‘서구사회’라고 하는 특정공간 속에서 형성된 특정시대의 역사적 산물임을 이해한다면, 그것과 전혀 다른 역사적 공간 속에서 발달해온 동아시아의 전통과학을 서구과학의 잣대로서 재단하는 작업이 얼마나 ‘몰역사적’인 행위였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몰역사적인 태도를 극복하고서 동아시아 전통과학이 술수적, 혹은 비과학적 관념들과 혼재된 채로 존재해왔음을 인정하는 일은, 결국 동아시아 전통과학과 문화의 풍부한 내용들을 제대로 이해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만약 우리가 동아시아 과학사 서술에서 술수와 같은 비과학적 지식들을 외면하거나 제대로 분석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분명 그것과 결합되어 있는 전통사회의 과학과 문화, 역사의 엄청나게 풍부한 내용들을 통째로 놓치거나 아니면 오독하게 될 것이다.

 



(연세대학교 대학원 신문 116호 - 2002년 10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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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도반 2006-12-04 21:2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른바 '동양적인 것'에서 제 입맛에 맞는 것들을 이리저리 취합하여 그럴 듯 하게 포장해서 판매하는 이들, 그리고 이들에게 현혹되기 쉬운 자들이라면 마땅히 경청해야 할 제언이다.
 

투쟁, 한 달 그리고 첫 눈

노조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대우건설빌딩 노동자들

 
이꽃맘 기자 iliberty@jinbo.net

 

콘크리트 더미에 사람의 향기를 불어넣은 노동자들의 투쟁 30일

투쟁 30일, 대우건설빌딩을 다시 찾았다. 청소한 죄밖에 없는 노동자, 그저 콘크리트 더미일뿐인 빌딩을 돌아가게 만들고 깨끗하게 만들었다는 죄밖에 없는 노동자들이 그곳에서 30일째 일하기 위해 싸우고 있다.

생존권 사수를 위한 투쟁, 한 달

매일 바쁘게 문자가 온다.

“조합원 분열책동 노조파괴 공작 앞장서는 우리자산 항의 농성 돌입”
“신규보안업체 오늘 자정까지 개별 근로계약 요구 이후 즉시 현장 침탈 예상”

‘dw project'라는 이름으로 노조를 파괴하려는 대우건설의 책동에 노동자들은 하루하루를 힘겹게 버티고 있다. 대화를 하자고 노동자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 14층에 위치한 대우건설 자회사인 우리자산관리와 24층에 위치한 대우건설 사장실을 찾아간다. 하지만 그들은 대답하지 않는다. 그저 어떻게 하면 노조를 없앨까에만 혈안이 되어 있다.

우리자산관리에서는 조합원 한명한명을 따로 불러 노조를 탈퇴하면 계약체결 해주겠다라며 조합원들을 회유하고 있다. 이도 'dw project'에 이미 밝혀져 있던 것이다. ‘dw project'에서는 “보안, 미화를 포함한 신규업체는 현장인원에게 대전제로 현재의 인원을 전원 흡수해 고용을 보장한다‘는 안내문을 통해 단시일 내에 고용승계하고 일정기간에 따라 채용조건에 어긋나는 경우(고령자, 자격미달자 등) 타사업장으로 전보 발령해 근무토록 하여 고용불안을 없게 하고 불법행위의 명분을 불식시킬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대화하자고 아무리 요구해도 묵묵부답의 대우건설

권옥분 조합원

이런 우리자산관리의 행동에 조합원들은 마음이 불안하다. 어느 조합원은 사측의 회유를 못 이겨 농성장에 며칠 얼굴을 비치지 않기도 했다.

“솔직히 걱정이 태산 같아. 이래야 할지 저래야 할지. 마음이 많이 답답하고 걱정스러워. 30일 째인데, 일했던 것 보다 더 지쳤어”

권옥분 조합원은 솔직한 마음을 전했다. 사측의 회유에 혹 하지 않을 사람은 없다. 더러운 꼴 보지 않고, 맘 고생하지 않고 그냥 그들이 시키는 대로 조용히 일하면 쫓겨나지도 않고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사측은 이런 조합원들의 마음을 파고들고 있었던 것이다.

“투쟁을 계속하면 조금이라도 진전이 있어야 하는데 저 놈들이 꿈쩍도 하질 않아. 우리 지도부들은 대화하자고 공문도 보내고, 점거도 하고, 농성도 하고 하는데 안 만나줘”

어떤 사람들은 떠든다. 노동자들이 대화를 거부하고 일방적으로 자기 입장만 가지고 강경하게 움직인다고... 하지만 진짜 강경하게 대화를 거부하는 것은 언제나 사측이다. 노동자들을 대화 상대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가 너네를 직접 고용하지도 않았는데 왜 우리가 만나야 하는가. 용역업체 사장하고 잘 얘기해서 해결해라” 대우건설은 노조를 만날 이유가 없다고 얘기했다. 문제는 항상 원청이었다. 하청을 줬기 때문에 자신들은 책임이 없다고 했지만 문제는 항상 원청이다. 원청이 대화하지 않으면 하청 업체랑 대화해도 변하는 것은 없기 때문이다. 포항의 건설노동자들이 그랬고, 청주의 하이닉스매그나칩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그랬고, 대우건설빌딩 미화, 보안 노동자들이 그렇다.


“나는 여기서 30년 가까이 일했어. 서른다섯에 왔지. 현관 청소를 했어. 왜 우리가 이런 취급을 당해야 하는 거지. 너무 억울해. 정년을 정해서 그 때 되면 알아서 나가게끔 하면 되는 건데. 없는 사람한데 이렇게 해도 되는 거야? 속상하고 서운하고... 분이 안 풀려.”

권옥분 조합원은 이제 60살이 되었지만, 그동안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렸다. 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정년까지 열심히 일하고, 일한 만큼 받을 수 있는 권리가 아니라 비정규직, 계약직, 계약해지라는 이름뿐이었다.
 

 

"만약 지는 한이 있어도 끝까지 함께 간다“

“아줌마들이 다 그래. 우리가 만약 지는 한이 있어도 같이 간다는 각오야. 어디를 가든, 설사 다른 용역업체로 가도 노조는 있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분산돼서는 절대 안돼. 악착같이 끝까지 해 볼꺼야”

대우건설빌딩에서 수십년을 일해 온 늙은 노동자들은 노조를 만들고 처음으로 최저임금을 받았다. 그리고 인간답게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다. 노동자로서 열심히 일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았다.

조합원들은 파업 수첩을 손에 꼭 쥐고 노래 가사를 따라 부른다.

첫 눈은 조합원들 머리에도 떨어졌다.

투쟁 30일차, 집중 투쟁을 하고 있던 서울역 앞에 갑자기 눈이 펑펑 오기 시작했다. 권옥분 조합원은 “기분이 이상해. 눈 맞고 비 맞아가면서 투쟁하는 내 모습이 처량하기도 해”라고 말하며 머리 위로 떨어지는 눈을 툭툭 털고 일어섰다.

“대우센터빌딩 하청투쟁 관련 보안 대체인력이 농성장 침탈! 서울역 앞 대우건설빌딩”

또 하나의 문자가 급하게 전화를 울렸다. 4일, 우리자산관리는 10여 명의 용역반원들을 고용해 14층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조합원들을 위협했다. 비상문도 잠그고, 엘리베이터 운행도 멈췄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노동자들은 또 하루를 1층 로비에 마련되어 있는 농성장에서 보냈다. 노조는 1층 농성장을 거점으로 문제해결이 될 때까지 싸움을 이어갈 것이다.

대우건설빌딩 미화, 보안 노동자들의 투쟁 30일.
대우건설빌딩 앞은 미화 노동자들의 파업으로 낙엽이 가득 쌓여있다. 노동자들은 생존권이 보장될 때까지, 노조를 인정할 때까지 이 낙엽을 치우지 않을 것이다.

또 문자가 왔다.

“경비용역 30명 상주 중 로비천막 침탈대비하고 대기 중”
대우건설, 24일 0시부로 조합원 전원 계약해지
“사람답게 살게 해준 노조, 뺏길 수 없다”
대우건설, 하청 노동자 노조 파괴 공작 드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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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즈는 한 사회를 바라보는 지표

에이즈를 대하는 운동진영의 자화상.. 그리고 수치스러움

권미란(나누리+) 

 

막내동생이 태어났을 때 나는 7살이었고, 둘째동생이 5살이었다. 막내동생에게 내가 뽀뽀를 하자 5살짜리 둘째동생이 내 입을 가로막으며 한 말이 있다. ‘언니가 자꾸 뽀뽀하면 막내동생이 에이즈에 걸려’라고. 7살짜리 아이에게도 에이즈는 어디선가 들어본 질병이었고, 그것은 아주 무서운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때가 82년이었다. 그리고 2006년, 25년이 지난 오늘 에이즈는 여전히도 무서운 질병이고 뽀뽀만 해도 감염되는 질병으로 남아있다.

 

12월 1일. 오늘은 세계 에이즈의 날이다. HIV/AIDS감염인과 감염인의 인권을 지지하는 활동가들은 에이즈의 날을 감염인 인권의 날로 만들자는 기조를 가지고 11월 28일부터 12월 1일까지 'HIV/AIDS감염인 인권주간 Positive Rights' 행사를 진행했다. 오늘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편견과 차별을 넘어’라는 제목의 기념행사를 했다.

 

우리는 기념행사에서 감염인의 목소리가 전혀 없는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고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과 사회적 차별해소방안’에 대한 감염인의 발언기회를 요구하였다. 정부의 답변은 오늘 아침 공문으로 전달되었다. "행사의 모든 것이 마무리되어 행사내용을 변경할 수 없으며 행사계획 시에 감염인의 발언을 미리 마련하지 못한 점을 양해바란다"는 내용이었다.

 

우리는 오늘 에이즈확산을 막고 감염인의 인권을 증진시키기 위해 유시민 복지부장관이 해야 할 일을 요구하기위해 기념행사에 참여하려고 하였다. 유시민 장관은 에이즈 확산을 막기 위해 감염인 인권을 증진시키고, 한미FTA협상을 중단해야하며, 그렇게 하지 않을 경우 유시민 장관이 바로 에이즈확산의 주범이 될 것임을 경고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1부 식순이 거의 끝나갈 무렵까지 행사장 진입을 차단당했고, 보건복지부 차관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려는 순간에도 대한에이즈예방협회 관계자는 항의서한을 빼앗았다.
 

 

에이즈 확산 주범 ‘부시’, 이를 칭찬하는 한국정부

오늘 정부는 ‘편견과 차별을 넘어’라는 제목의 에이즈의 날 기념행사에서 감염인의 목소리를 배제한 반면 버시바우 미국대사를 고이 모셨다. 버시바우 미국대사는 부시대통령이 2003년 에이즈구제를 위한 대통령긴급계획을 마련했고, 긴급계획을 통해 아프리카의 감염인을 위해 지원을 하고 있고,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국제기금에도 제일 많은 돈을 냈다며 에이즈확산을 막는데 미국이 최전선에 서 있음을 자랑했다. 그리고 한국정부가 올 초에 에이즈.결핵.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국제기금에 1000만 달러를 낸 것에 대해 칭찬했다.

 

부시대통령이 에이즈구제를 위한 대통령긴급계획을 통해 돈을 뿌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2003년 부시대통령은 에이즈구제를 위한 대통령 긴급계획(PEPFAR, 이하 긴급계획)을 발표하고, 150억 달러(약 15조)를 들여 5년에 걸쳐 계획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다. 부시는 긴급계획을 관장하는 미국 국제 에이즈 책임자로 제약회사 일라이 릴리(Eli Lilly)의 CEO였던 토바이어스(Tobias)를 임명했고, 그는 2004년 4월에 긴급계획에서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의약품에 괜한 안전성과 유효성 문제를 제기하면서 복제의약품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ACT UP, 2004). 복제의약품의 품질을 문제 삼는 이유는 거대제약사의 비싼 오리지널 의약품을 사용하게 만들기 위해서이다. 2004년 당시 67개국의 360여개 NGO들은 부시의 복제의약품 사용 차단에 대한 비판성명을 발표했다. 부시가 정치자금을 대는 거대제약사들에게 보상해주기 위해 수백만 명의 생명을 위협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HIV 예방을 연구하는 공중보건학자들이 금욕이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토바이어스는 일부일처제를 옹호하고 10대들의 성 행위를 늦추는 것이 콘돔사용보다 더욱 생산적이라며 예방을 위한 기금 중 2/3이상을 ‘결혼 전까지 오로지 금욕 프로그램(abstinence-only until marriage)’에 써야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부시의 긴급계획은 복제의약품 사용금지, 금욕 등을 옹호하는 국가에 직접 지원하는 형태를 고수하면서 자신이 원하는 보수적인 사회를 만들고, 초국적제약자본에게 이윤을 몰아주기 위해 에이즈를 이용하고 있다. 오늘 한국정부는 감염인을 에이즈를 퍼트리는 주범으로 내몰고 에이즈를 자신을 위해 악용한 부시를 칭찬하면서 에이즈의 날 기념행사를 마쳤다. 바로 에이즈 확산의 주범인 부시를 칭찬하면서 말이다.
 

 

감염인에 대한 차별, 과연 인간 본성의 문제인가?

보건복지부와 질병관리본부는 에이즈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전달하기 보다는 공포를 조장함으로써 에이즈에 대한 왜곡된 정보와 오해를 확산시켜왔으며, 에이즈확산의 사회구조적인 원인을 은폐한 채 그 책임을 감염인에게 묻고 시한폭탄과도 같은 관리대상으로 간주하여 감염인에 대한 차별과 인권침해를 확산하는 정책으로 일관해왔다.

 

11월 27일 현애자 의원과 HIV/AIDS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에서 주최한 ‘후천성면역결핍증 예방법 개정방향 모색 토론회’에서 보건복지부는 “에이즈 감염인에 대한 일반인의 편견과 차별은 법이나 제도, 정부정책에 기인된 것이라기보다 인간 모두가 가지고 있는 자신은 다르다는 차별의식 때문”이라고 했다.

 

차별과 편견이 생긴 것이 인간 모두가 차별의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는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에이즈 뿐 아니라 질병의 사회적 원인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감염인이 에이즈에 걸린 것도 감염인의 잘못이고, 에이즈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감염인에 대한 차별도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면 7살인 아이가 에이즈환자를 본적도 없는데 어떻게 에이즈를 알고 에이즈를 두려워했다는 말인가?
 

 

HIV/AIDS감염인에 대한 태도, 운동진영도 다르지 않아

이러한 태도는 운동진영이든 환자를 진료하는 의료인이든 크게 다르지 않다. 한미 FTA 3차 협상이 진행되고 있던 9월 9일, 탑골공원 앞에서 의료인, 보건의료노동자, 환자들은 ‘건강은 상품이 되어서는 안 된다’며 한미 FTA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다.

 

HIV/AIDS 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이하 공동행동)에서 참가자들에게 ‘No FTA’라고 적힌 스티커를 나눠주었는데, 실수로 한 노동자에게 에이즈예방법을 비판하는 스티커를 나눠줬다. 스티커 디자인이 너무 비슷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No FTA’스티커로 바꿔드렸더니, 무심결에 그 노동자는 “나는 더러운 사람이 아닌데 왜 이걸 주나 의아했다”는 말을 했다. “더러운 사람들이 에이즈에 걸리나요”라고 반문하자 노동자는 바로 “아 미안합니다”라고 했다. ‘누구나 건강할 권리’를 외치는 이들이 ‘누구나’에서 에이즈 환자를 배제하는 모습은 한미 FTA를 추진하고 있는 초국적제약자본과 닮아있다는 것을 그 노동자는 알게 되었을까?

 

11월 22일 민중총궐기가 있던 날 촛불집회에서 한 연사는 한미FTA의 폐해를 비유한다며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한미FTA가 몰려 온다”라고 말했다. HIV/AIDS감염인 인권증진을 위한 에이즈예방법 대응 공동행동에서도 감염인을 비롯한 활동가들이 이 자리에 있었고, 우리는 위 발언에 대해 정정요청을 했다. 그 이유는 에이즈는 공포스러운 질병이 아니며, 제약자본과 지배자들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에이즈를 공포스럽게 포장을 하고, 그 공포스러운 질병을 퍼트리는 이들이 HIV/AIDS감염인이라고 몰아붙이며 비난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이다.
 

 

차별, 빈곤, 신자유주의 세계화가 에이즈의 주범이다

최초로 에이즈가 미국에서 발견되었을 때 레이건 정부는 순결과 가족주의를 옹호하기위해 동성애자와 HIV/AIDS감염인을 공격했으며, ‘성적으로 문란하여’ 결국에는 ‘천벌’을 받은 것이라고 에이즈 발병원인을 규정했다. 이러한 미국의 정책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전 세계의 HIV/AIDS감염인은 예외 없이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당하고 건강권을 비롯한 인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에이즈를 게이돌림병 혹은 부도덕한 이들에 대한 천형으로 여기는 인식은 에이즈문제를 에이즈에 걸린 개인의 문제로 치부하기 때문에 사회적 책임을 묻지 않고, ‘에이즈환자에 대한 응징을 해야 하고 바이러스를 퍼트리는 주범을 통제해야 한다’는 식으로 해결책을 제시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나는 에이즈와 무관하다는 생각을 갖게 만들고,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을 비난하는 데 동참하게 만들었다. 흑인이, 동성애자가, 인도와 아프리카의 가난하고 덜 문명한 이들이 그리고 성 노동자들이 부도덕하고, 무식하고, 분별력이 없고, 덜 합법적이고, 비정상적이라고. 에이즈에 걸릴만한 짓을 하는 사람들이라고.

 

에이즈는 의학적으로 수혈과 성 행위를 통해서, 그리고 에이즈에 걸린 산모에서 태아에게 인체면역결핍바이러스(HIV)가 감염되어 면역력이 약해지는 질병이고, 사회적으로는 성차별, 인종차별, 성소수자 차별, 빈곤,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의해 확산되고 있는 전 세계적인 질병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회적 조건들에 의한 피해가 가장 심각한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 에이즈 발병률이 높은 것은 당연하다.
 

 

인권과 예방이 반비례한다는 입장은 에이즈를 더욱 확산시킨다

한국에서 HIV/AIDS감염인은 소수가 맞다. 현재 4천 명이 안 된다. 그러나 이들이 짊어지고 있는 사회적 문제는 이들 소수의 문제가 아니다. 에이즈 감염율이 높다는 것은 ‘부도덕하고 더러운 이들’이 많다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성 차별이 심하고 성소수 자차별이 심하고, 인종 차별이 심하고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폐해가 그만큼 심하다는 것이다. 에이즈는 단지 질병으로서만 이 사회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가 얼마나 비민주적인지, 빈곤과 차별, 신자유주의 세계화로 인한 폐해가 심각한지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에서 HIV/AIDS감염인은 소수일지라도 에이즈 운동은 이 사회를 바꿔나가는데 있어서 우리 모두의 운동과제여야 한다. 아프리카에서 여성운동주체들이 에이즈운동을 하고, 에이즈운동이 여성에 의해 주도되고 있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또한 에이즈환자들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인종차별정책에 반대하며, 부채탕감과 WTO 반대, 현재의 FTA 반대운동을 하고 있는 것은 필연적이다.

 

전 세계의 에이즈환자들은 에이즈 위기를 감염인의 관점으로 감염인의 방식으로 해결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감염인 인권과 에이즈예방이 반비례한다는 입장은 에이즈를 더욱 확산시킬 뿐이다. 이제는 ‘에이즈가 아니라 제약자본의 탐욕이 우리를 죽인다’고 외치는 감염인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전 세계 에이즈환자들이 왜 부시의 해로운 무역협상에 대해 No라고 말하는지(Say no to Bush's toxic trade deals), ‘에이즈가 아닌 차별이 우리를 죽인다’고 외치는지 들어야 한다. 한국에서의 에이즈운동은 한국의 노동운동, 사회운동, 인권운동이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에이즈보다 더 무서운 한미FTA’라는 발언이 자연스러운 우리의 운동과 누구나 건강할 권리에서 에이즈환자를 배제하는 우리의 모습은 수치다. 에이즈확산의 주범을 칭찬하는 한국의 에이즈의 날 기념행사는 수치다.
 
권미란 님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에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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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도반 2006-12-04 20: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성되는" 현실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려면, 부지런히 보고 듣고 읽고 행동하는 수밖에 없다. 그것이 이땅의 온갖 부조리와 모순을 體現하고 살아가는 이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에.
 

우리 경제사회 업그레이드를 왜 저들에게…

 

  [한미FTA 뜯어보기 122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16,끝)] 대안 만들기
  2006-10-17 오전 8:52:49
  지금까지 우리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여러 측면을 살펴보았고, 이것이 왜 반드시 본원적으로 제거되어야 하는지를 정치적, 경제적, 법적 측면에서 따져보았다.
 
 

  
  '지구정치경제'의 관점에서
  
  그런데 필자는 이 기획연재의 초두에서 이 문제를 '지구정치경제학(Global Political Economy)'의 관점에서 접근하자고 제안했고, 그렇게 하는 핵심적인 방법은 정치, 경제, 법으로, 그리고 다시 국내, 국제로 나누어 생각하는 데서 생겨나는 여러 칸막이들 가운데 어느 하나에 갇히지 말고 '전체로서의 사회적 현실'을 '흐림 없는 눈으로 보고 직접 판단'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제 마지막으로 지구정치경제의 차원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상황을 둘러보고, 다시 한 번 현재의 상태를 음미해보는 것으로 이번 기획연재를 마무리하자.

  
  말은 쉽다. 하지만, 어떻게 국내와 국제, 그것도 여러 갈래의 분과 학문들로 나뉘어 있는 현재 우리의 인식구조를 넘어서서 그러한 종합적인 인식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전체로서의 사회적 현실'이라는 것은 마치 큰 고래 '모비 딕'과 같아서 늘 닿을 수 없는 곳에서 아른거리는 존재가 아닌가? 그래서 이리저리 찔러대는 인간들의 좀스런 사회과학적 인식의 작살을 맞고 그 밧줄에 몸이 칭칭 감겨도 유유히 물을 내뿜으면서 심연과 같은 푸른 바다 저편으로 사라져버리곤 하는 존재가 아닌가?

  
  로버트 콕스(Robert Cox)는 지구정치경제학의 방법으로 '역사적 구조들(historical structures)'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이는 경제학자나 정치학자, 법학자 등이 제각각 멋대로 만들어낸 '모델'과 같은 이론적 구조가 아니다.

  
  실제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부대끼고 얽히다 보면 때로는 의도와 무관하게, 때로는 의도한 대로 만들어져 다시 사람들 자신의 행동에 조건으로 작용하는 어떤 삶의 틀이 생겨난다. 그 틀은 우리 가족 내부처럼 미시적인 차원에서도 만들어지지만, 전 지구라는 거시적인 차원에서도 만들어진다. 그 구조들은 분명히 우리 인간들이 집단적으로 만들어내는 것이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뒤에는 우리들이 할 수 있는 행동의 가능성과 방향을 상당부분 규정해버리는 단단한 것이기도 하다. 이런 것이 바로 '역사적 구조들'이다.

  
  '역사적 구조들'은 경제냐 정치냐 법이냐 하는 틀과 무관하게 직접 우리의 일상생활과 닿아 있는 아주 구체적인 삶의 일부분이다. 이러한 구조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또 소멸하면서 우리의 삶을 만들어 나가고, 또 그 삶에서 만들어지는지를 살펴보자는 것이 콕스가 제시한 방법의 골격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직간접으로 규정하는 구조들은 무수히 많고, 우리가 그것들을 모두 다 뒤질 수는 없다. 그렇다면 어떤 구체적인 사안을 연구할 때 과연 어떤 구조들이 그 사안과 관련해 의미가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그런 구조들을 연구대상 목록에 올려야 하는가?

  
  여기서 콕스에게 영감의 원천이 되어주었던 프랑스의 역사가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이 도움이 되는 열쇠말을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것은 '국면(conjuncture)'이다. 어떤 사건이나 상황이 있을 때 그것을 차분히 관찰하면 마치 백묵 위에 사인펜으로 찍어놓은 점이 수분의 삼투에 따라 퍼지며 여러 색으로 갈라지듯이 그 사안과 관련하여 그 사안을 규정하고, 또 그 사안에 의해 규정당하는 몇 개의 관련 있는 구조들을 분간해낼 수 있다. 그 구조들이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고 있으며, 어떤 순간에 어떻게 만나 어떤 결과를 낳느냐를 가늠하게 해주는 '국면'이라는 틀은 바로 이런 것이다.
 
 

  
  우리는 어떤 '국면'에 있는가?
  
  우리는 앞에서 이미 이런 방법의 틀을 빌어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규정하는 여러 가지 역사적 원천들이 1990년대라는 '국면'에서 어떻게 얽히면서, 어떻게 그 뒤의 지구정치경제의 역사를 만들어가고 있는지를 살펴본 바 있다. 그렇다면 2006년에 느닷없이 한미 FTA와 그 안에 포함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라는 사안에 맞닥뜨린 우리의 '국면'은 어떻게 이루어진 것이며, 또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앞에서 본 바 있듯이, 1980년대 이후 자본에 의한 지구화는 두 단계로 전개된다. 먼저, 냉전의 기간에 단단한 갑각류처럼 각각 자신의 고유한 국내 체제를 지키며 존재하던 다양한 국가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는 1980년대에 IMF와 세계은행의 활약으로 인해 대부분 '구조 조정'을 통해 그 단단한 껍질을 벗겨내게 된다.

  
  그 주요한 방법은 공기업의 민영화, 산업구조의 변동, 시장의 개방, 노동계급 등 사회세력들의 약화, 시장기율의 강화 등이었다. 이렇게 사회 전체가 근본적인 재구조화를 겪게 된 시점에 이번에는 외국 투자자들이 각국으로 들어가 그곳의 사회적 변화를 주도하거나 새로이 만들어나가는 두 번째 단계가 펼쳐진다.

  
  최근에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에 의해 시달리고 있는 여러 나라들을 이런 역사의 큰 흐름 속에 놓고 다시 바라보자. 이런 나라들 대부분은 한 번씩은 외채위기와 같은 외부충격을 겪었고, 이어 자본의 지구화가 요구하는 내부 사회체제 변동의 고통을 겪어야 했다.

  
  그리고 그러한 방향이 대세로 굳어진 1990년대 후반 이후에는 세계의 투자자들이 본격적으로 그런 나라들에 침투해서 주요한 산업 및 금융 인프라를 비롯해 가지가지의 기간시설과 산업부문을 장악했다. 여기서 나오는 힘을 기반으로 그들은 새로이 여러 가지 수익성 높은 '비즈니스'의 기회를 열었고, 이렇게 해서 새롭게 열린 투자의 기회가 또 다른 자본의 유입을 부르는 순환구조가 형성된 것이다.

  
  언젠가부터(아마도 김영삼 정부 때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이 계기였던 듯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유럽과 북미의 나라들을 우리의 정치적, 경제적 현실 판단에 사용하는 거울로 삼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우리의 현실을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개발도상국과 견주어보고 판단하는 데 대해 직감적인 거부반응까지 갖게 됐다. 멕시코보다는 캐나다의 케이스를, 대만보다는 일본의 케이스를 중시했고, 싱가포르보다는 네덜란드를 바라보고 이야기하고 싶어 하게 됐다.

  
  그렇지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대한민국 사회의 향방을 결정지은 침로가 과연 미국이나 일본 쪽에 가까운가, 아니면 아르헨티나나 멕시코 쪽에 더 가까운가를 냉철하게 생각해볼 때가 됐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결합으로 외환위기를 곧 극복해낸 슬기로운 국민' 운운하던 김대중 정부 시절의 수사학은 이제 그만두자. 몇 번의 거품과 흥청거림이 있었을 뿐, IMF의 충격은 갈수록 생생하고 뼈아프게 온 국민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양극화와 가계부채와 비정규직의 고용불안과 청년실업은 우리 모두 익히 아는 바 아닌가?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그와 같은 흐름에 휘말린 우리나라의 내부에는 어떠한 구조변동이 생겨났는가다. 전두환, 노태우 때까지 우리의 정치경제 체제를 작동시키던 기제와 관행과 원리는 급격히 사라지고 있다. 그 체제의 기둥이었던 금융체제, 산업구조, 기업 소유지배구조, 노사관계 등 모든 것이 그 후 근본적인 재구조화를 겪고 있다.

  
  IMF 사태 이후 변동을 겪지 않은 부문이 있는가. 은행은 거의 완전히 외국인 소유로 넘어갔다. 재벌기업들은 설비투자와 고용의 확대라는 행태를 버린 지 오래다. 공공부문의 굵직굵직한 공기업들은 민영화, 사유화의 흐름 속에서 구조적인 격동을 겪고 있다. 돈의 흐름이 바뀌었고, 투자의 행태도 바뀌었다. 의료, 교육, 교통, 지역발전 등 어느 한 군데라도 이 급격한 구조변동의 흐름에 휘말리지 않은 곳이 없다.

  
  이것은 바로 1990년대에 남미의 수많은 '외채위기 선배' 나라들이 겪었던 것이다. 불편하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우리 사회도 1990년대에 남미, 아프리카,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을 휩쓸었던 자본의 지구화라는 흐름 속에서 그동안 살아 왔다. 그간 우리 사회에 일어난 구조변동은 일본이나 스웨덴과 같은 세계의 흐름에 속한다기보다는 지구의 밑바닥을 흘러 온 흐름에 속한다고 생각된다. 바로 이 흐름이야말로 1997년 이후 2006년까지 한국사회의 운명을 만들어 온, 저항하기 힘든 지구정치경제 차원의 '역사적 구조'다.
 
 

  
  우리에게 가능한 것이 아직 많이 남아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역사적 구조'의 흐름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에 몸을 맡기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는 것인가? 여기서 다시 브로델과 콕스의 지혜를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브로델이 말한 대로, 현재란 결코 단선적 인과율로 무엇인가에 의해 일방적으로 규정되는 기계적 과정의 산물이 아니다. 현재는 그것을 이루고 있는 여러 '구조들'과 '흐름들'로 분해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분해된 구조들과 흐름들 중에서 우리의 역량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 브로델의 용어로 말하면 '가능한 것의 한계(limits of the possible)' 너머에 있는 것들과 우리의 힘으로 선택하거나 새로 만들어나갈 수 있는 것들을 신중하게 갈라내야 한다. 그리고 콕스가 말한 대로, 역사적 구조는 우리를 제약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만들어내는 것이기도 하다. 신중한 숙의와 선택을 통해 집단적 실천의지를 모아낸다면 우리는 새로운 '국면'을 열어나갈 수 있다.

  
  이제 우리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저항 없이 받아들여야 할 글로벌 스탠더드이며 역사적 당위'라고 당연시하는 것이 왜 적극적인 태도이기는커녕 가장 무기력한 숙명론적 태도인지를 알 수 있다.

  
  외채위기를 겪고 IMF와 세계은행에 의해 거시적 구조조정을 당했던 나라들이 바로 이렇게 '외국 투자자들이 들어와 국내의 산업구조와 금융체제 전반을 업그레이드시키는 것만이 살길'이라고 생각하여 그런 방향으로 흘러간 흐름이 이미 있었고, 그 종착역이 아르헨티나요 멕시코였다. 그 종착역은 자신들을 몰아가는 엄청난 힘의 흐름을 여러 구조들과 작은 흐름들로 분석하여 무엇이 가능하지 않고 무엇이 아직 가능한지를 따져가며 새로운 국면과 흐름을 열어내는 작업은 뒤로 한 채 그저 '그럼 무슨 대안이 있는가?'라는 대안 아닌 대안을 휘둘러댄 결과였다.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을 둘러보자. 그러한 '업그레이드'의 논리에 따라 은행도 산업구조도 공공서비스도, 심지어는 아주 기초적인 의료, 교육, 가족 등의 사회적 구조들조차 재편되고 허물어지고 있는 마당에 외국 투자자들을 불러들이고 그들에게 감히 우리 국가의 주권에까지 간섭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운명을 타개'하는 대안인가? 필자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르헨티나를 확실하게 뒤쫓아가는, 그러나 되돌아올 수 없는 편도 기차표(one-way ticket)일 뿐이다.

  
  지구정치경제 차원에서 오늘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국면' 속에는 외국 투자자들을 불러들여 그들에게 우리의 경제와 사회를 '업그레이드'시켜달라고 일임하는 대신 우리가 주체적으로 우리의 경제와 사회를 구축해나갈 수 있는 여지가 아직 대단히 많이 남아 있다.

  
  먼저 우리 사회의 최대 현안인 양극화와 만성적 실업을 막을 수 있는 구체적인 산업정책과 사회연대정책을 통해 새로운 산업구조와 사회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 그러한 정책과 구조가 제대로 작동하면서 인간과 자연이 최대한으로 풍요로워지고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문화적, 사회적 제도의 틀을 우리는 만들어낼 수 있다.

  
  그렇게 해서 포괄적인 하나의 '한국적 모델'이 만들어지면, 그것을 구체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한 공공서비스와 각종 기간시설 및 제도의 장기적 발전 방향, 그 조직 및 운영 원칙, 그 실현 방안을 골간부터 하나하나 세워나갈 수 있다. 그러한 포괄적 틀이 우리 사회 모든 구성원들의 토론 속에서 합의된다면, 그것을 사회에 안착시키기 위한 각종 법적, 제도적 장치를 정비하는 일을 시작할 수 있다.

  
  우리의 법체제, 공공서비스, 기간산업, 금융체제, 산업구조 등의 틀이 어느 정도 안정된다면, 그때 비로소 우리가 주인으로서 외국 투자자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확실하게 안정된 사회적, 정치적, 경제적 체제의 골간을 확보해 놓은 뒤에는 외국 투자자들도 그 안정된 틀 속에서 활동하게 될 것이며, 그러면서 그 틀에 힘을 불어넣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우리의 대안' 만들기에 나서자
  
  그때가 되면 비로소 우리도 외국 투자자라는 손님들에게 어떤 규칙과 어떤 한도 안에서만 영업을 하라고 책임 있고 분명한 태도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시행된다고 해도 터무니없이 온 사회가 휘둘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구조변동' 소용돌이의 한복판에 빨려들어 어지럽게 맴돌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배 위에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까지 들여놓는다면 그 배는 선체 조각조차 찾지 못할 정도로 산산히 부서져 흩어질 위험이 있다.

  
  이렇게 어지러운 구조변동의 혼란 속에 있는 대한민국이 살 길은 그 주도권을 미국 투자자들에게 맡기는 것뿐이라는 것이 현 정부의 인식은 대단히 잘못된 것이다. 그럼에도 산업정책도 공공서비스도 사회 각 부문의 관행이나 질서도 모두 미국식으로 일괄 통일하는 것이 현 정부가 생각하는 '업그레이드'인 것 같다.

  
  물론 1997년 이후 우리가 휘말려든 '역사적 구조'의 흐름에 맞서 우리가 우리 스스로의 질서를 만들어나가고 합의해나가는 일이 쉬울 수는 없다. 하지만 그야말로 다른 대안이 없다.

  
  먼저 우리가 원하는 산업구조와 산업정책, 우리가 원하는 정치경제 모델, 우리가 원하는 우리 사회의 모습, 그리고 우리가 원하는 인간과 자연이 온전하게 더불어 살아가는 삶 등에 대해 먼저 판단하고, 그런 것들을 먼저 만들어가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된다. 바로 이것이 필자의 생각에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라는 도전 앞에 선 우리에게 지구정치경제학의 관점이 던져주는 지혜다.

  
  일본 애니메이션 영화 <도깨비공주(物の怪姫)>를 보면, 옛날 옛적 숲과 동물과 평민과 무사와 권력자와 남자와 여자가 모두 서로 서로를 원수로 삼아 아귀다툼을 하는 나라가 나온다. 모두 다 할 말이 있고 모두 다 논리가 있다. 그런데 그렇게 모두들 자기 논리에 눈이 멀어 제각각 곤두박질을 친 결과 생겨나는 현실은 실로 아비규환이다.

  
  그래서 아이는 "흐림 없는 눈으로 세상을 보고 직접 판단을 하겠다"고 결심한다. 물론 그런다고 쉽게 답이 나올 리는 없다. 현실은 턱없이 복잡하고 상황은 갈수록 꼬여만 간다. 사람들은 아이를 비웃는다.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느냐고. 아이는 기를 쓰고 외친다. "그래도 함께 살아가는 일은 할 수 있어요!"

  
  결국 상황을 수습한 것은 산도 숲도 동물도 평민도 무사도 권력자도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 아이였다. 지금 우리가 진정 '흐림 없는 눈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를 스스로 반성할 수 있는 기준은 우리가 정말로 '함께 살아가는 일을 고민하고 있는지'일 것이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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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분쟁 관할권 이전은 '주권양도'

 

  [한미FTA 뜯어보기 121 :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정치경제학(15)] 법적 관할권
  2006-10-16 오전 9:04:12
  이번에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의 본질에 해당하는 '법적 관할권(jurisdiction)의 이동'이라는 문제를 들여다보자. 하지만 그에 앞서 '수용'과 '투자범위'에 관한 우리 정부의 입장을 먼저 살펴보자. 일단, 이 두 개념에 대한 정부의 대응 태도는 높게 평가할 만하다.
 
 

  
  '수용'에 대한 한국정부의 이견, 유지될 수 있을까?
  
  <한겨레> 9월 10일자 보도(사유재산 국가 '수용' 국제분쟁기구행 맞서)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 쪽 협상안에 들어 있는 '수용' 조항에 대해 "국내에서 많은 우려가 있고 국내법과 모순되는 문제도 있다"고 지적하면서 이 문제에 관련된 분쟁은 국제 조정심판이 아니라 한국 국내의 구제절차를 통해서만 제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한다.

  
  또 정부는 투자계약이나 투자인가의 위반도 국제 중재절차의 대상으로 삼자는 미국 측 주장에 대해서도 "분쟁 범위가 지나치게 넓어진다"는 이유로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이는 초특급의 속도로 한미 FTA 협상을 준비하고 진행하는 와중에서도 우리나라 정부 관리들이 그래도 예민하고 중요한 문제점들을 의식하면서 대응하고 있다는 일말의 기대를 갖게 하는 대목이다.

  
  한국의 법 관행에서 '수용'의 의미와 관련해 헌법재판소는 "헌법에 의하여 보호되는 재산권은 사적 유용성 및 그에 대한 원칙적 처분권을 내포하는 재산가치 있는 구체적 권리이므로, 구체적인 권리가 아닌 단순한 이익이나 재화의 획득에 관한 기회 등은 재산권 보장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일관되게 판결해 왔다고 한다(송기호, 국가 제소권을 미국기업에 주는 것은 '위헌').

  
  이는 앞에서 보았듯이 사적 소유를 '사용가치', 즉 '소유와 점유(title and possession)'로 해석하는 옛날의 보통법(Common Law) 전통과 일치하는 것으로서, 소유를 '교환가치', 즉 자산가치로 해석해서 그것의 감소까지도 '수용'의 범위에 넣는 NAFTA 11장의 '간접수용' 개념과는 모순되는 것이다. 이 '간접수용'의 개념이 얼마나 포괄적으로 해석되어 얼마나 전반적으로 정부의 법적, 행정적 질서에 충격을 주었는가는 앞에서 살펴본 바 있다.

  
  따라서 정부가 넓은 의미의 '수용' 개념이 한국의 기존 법제도와 모순된다는 점을 미국 측에 정당하게 지적한 점은 높이 평가돼야 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투자계약이나 투자인가의 위반을 '수용'에 따른 배상의 대상이 될 경우 외국 투자자가 한국사회의 사회적, 법적 관계에 대해 지나치게 큰 권력을 갖게 될 위험이 있다는 점도 정부 관계자들이 인식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아직 마음을 놓기는 이르다. 이러한 정부의 태도가 결코 흔들리는 일이 없도록 끝까지 조야(朝野)가 하나가 되어 우리의 입장을 굽히지 말아야 할 것이다(그런데 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정부가 이 문제에 관해 한미 간에 오가는 모든 협상안과 관련자료를 공개하여 공론화시키는 것이다. 같은 <한겨레> 기사에 의하면 미국은 '수용'에 관한 자국의 원안을 한국 측에 넘겼다고 하나, 필자는 이것을 구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국민들이 힘을 합쳐 정부로 하여금 불퇴전의 협상자세를 벼릴 수 있도록 뒷받침하기란 난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우리가 앞에서 본 바 있는 오스트레일리아 상원 자문위의 보고서도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만약, 그러나 가능성이 높은 일이지만, 미국이 미국-싱가포르 및 미국-칠레 FTA를 '투자자 분쟁 메커니즘에 관한 주형(鑄型)이자 교두보'로 보고 있다면 미국 측 협상가들이 협상의 아주 말미에 가서도 이것을 오스트레일리아-미국 FTA에 도입하려 애를 쓸 것이고, 그렇더라도 오스트레일리아는 놀라서는 안 된다."

  
  그런데 이 올바른 정부의 태도에서 묘한 아이러니가 느껴진다. 정부는 미국 측이 요구하는 '수용'의 개념이 국내의 법적 제도 및 관행과 불일치할 가능성이 많으니, 이것의 법적 관할권을 한국 국내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미 FTA의 조항들과 모순을 일으킬 국내의 법적 제도와 관행이 과연 '수용'뿐인가. 분쟁이 벌어질 쟁점과 소지는 앞에서 보았듯이 무궁무진하다. 그렇다면 그 쟁점들이 국내법과 모순될 때마다 우리는 법적 관할권을 국내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해야 하는가. 그렇다면 애초에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허용하는 의미는 무엇인가.

  
  이 제도의 핵심은 바로 분쟁이 벌어졌을 때에 투자자를 투자대상국 법제도의 '횡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법적 관할권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것에 있지 않은가. 이제 잠깐 미루었던, 정부의 인식에서 나타난 가장 중대한 문제점을 논의할 때가 됐다.
 
 

  
  법적 관할권 이전은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핵심
  
  정부는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잘 정리되고 체계가 잡혀 있으며 정당한 절차와 규칙이 마련된 틀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래서 미리 조심해야 할 쟁점들을 잘 갈무리하여 사전에 충분한 논의와 협상을 거쳐 협정 문안에 '성문화'시켜 놓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식의 인식은 역사적으로나 이론적으로나, 또 실제로 진행되고 있는 현황으로 보나 이 제도의 성격과 핵심을 크게 오해한 데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우리는 이 제도가 근대 국제체제에 있어서 정규적인 국내 및 국제의 공법 및 사법 체계의 밖에 존재하는 국제 상업분쟁 조정(international commercial arbitration)에서 그 틀이 찍혀져 나왔음을 보았다. 그리고 중재심판소라고 하는 곳은 정규적인 법체계의 밖에서 문제를 푸는 곳이므로, 이곳을 지배하는 원칙은 오로지 분쟁의 조정, 그것도 오롯이 상업적 고려에 기반한 분쟁의 조정일 뿐이다. 몇 백억, 몇 천억 원에 달하는 돈을 놓고서 독기가 오를 대로 오른 양측이 다시 몇 십억 원의 비용을 쏟아부어가며 법률회사를 앞세우고 서로 자신이 휘두를 수 있는 모든 주먹을 다 휘둘러대는 곳이다.

  
  필자는 앞에서 국제 중재심판소의 이런 성격을 드러내기 위해 '두 당사자가 쇼부를 치는 곳'이라는 험한 표현을 사용한 바 있다. 하지만 국제 중재심판의 실제 사례들이 진행된 방식을 보면, 이 표현으로도 모자란다. 그냥 한마디로 이전투구, 즉 '개싸움'의 장(場)이라고 보는 것이 실제에 가깝다.

  
  이렇게 볼 때 어떤 나라가 자국과 외국 투자자 사이의 분쟁을 국제 중재심판을 통해 해결한다는 데 대해 동의한다는 것은, 그런 분쟁에 대한 법적 관할권(jurisdiction)을 완전히 국제 중재심판소로 넘기고 군말 없이 그 심판소의 판결에 따르겠다고 합의해주는, 돌이킬 수 없는 중대 결정이다. 이는 마치 창세기에 나오는, 팥죽 한 그릇에 맏아들의 권리를 동생에게 팔아버린 배고픈 형처럼 주권국가가 자신의 고유한 권한인 법적 관할권을 포기하는, 중대한 주권양도의 사안이다. 송기호 변호사는 이 점을 정확하게 지적하고 있다.

  
  "정부는 이 제도가 적용되지 않을 예외조항을 충분히 두면 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중재 제도의 본질을 모르는 말이다. 투자자-국가 소송제의 핵심 조항은 중재회부에 대한 포괄적이고 사전적인 동의간주 조항(consent to arbitration)이다. 대한민국 국내에서 중재법이 제정된 때가 이미 40년 전인 1966년이다. 그런데도 왜 중재가 아직 일반화되지 않았을까? 그것은 당사자의 동의가 없으면 중재법정으로 갈 수 없게 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재동의 조항이야말로 가장 핵심적인 조항이다.

  
  한미 FTA에서 중재회부에 대한 포괄적이고 사전적인 동의간주 조항을 두는 이상, 한국 정부는 언제든 중재에 회부될 수 있다. 아무리 많은 예외조항을 둔다고 해도 중재회부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송기호, 호주는 왜 '투자자-국가 소송제'를 거부했을까?, <프레시안> 7월 14일)

  
  그리고 일단 중재에 회부되면 아무리 정교하게 협정 문안을 짜고 예외조항을 달아둔다 해도 그 예외조항이 해당 사안에 적용되는지 아닌지를 판단할 권한은 바로 그 '개싸움'의 장인 중재심판소의 심판관과 양 당사자의 대표 등 3인에게 넘어간다. 이 3인이 과연 그 정교하고 나름의 온당한 이유를 갖춘 협정 문안과 예외조항의 정신을 충분히 감안해 판단을 내릴 것인가?

  
  여기서 메탈클래드 대 멕시코 사건의 경우를 본보기로 삼아야 한다. 우리 정부는 NAFTA에 이미 환경문제에 관한 조항이 있으므로 NAFTA 회원국 정부가 선량한 의도에서 환경 관련 규제를 하는 것을 NAFTA의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저해하는 일은 없다고 말한다.

  
  물론 NAFTA에 환경문제의 중요성과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는 것은 사실이다(1114조). 하지만 막상 분쟁사건을 맡은 중재심판소의 3인이 이 조항을 무시하기로 한다면 그것은 아무런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한다. 아무리 '개싸움'의 장이라고 해도 그렇지, 협정에 명시돼 있는 조항을 그렇게 완전히 무시할 수 있을까? 하지만, 실제로 그랬다. 그리고 멕시코 정부의 환경보호 조치가 온당한 것이었는지 아닌지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다.

  
  중재심판소는 메탈클래드 사건에서 문제가 된 멕시코 정부의 환경보호 조치에 대해 "그 의도와 동기를 판정하거나 고려할 필요가 없다"고 간단명료하게 말한다. 메탈클래드 사건에 대해 중재심판소가 채택한 판단기준은 오로지 소송의 대상이 된 멕시코 정부의 조치가 투자에 끼친 충격의 규모였을 뿐이다.

  
  지금 미국은 한국 국내의 공공부문 구성과 공기업 민영화 문제에 대해 '시장원리'로 풀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여러 가지 주장과 요구를 하고 있다. 정부는 이에 대해 여러 차례의 협상을 통해 구체적인 합의에 도달하고 그 합의를 협정에 반영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그렇게 원만하게 협상이 성공한다고 하자. 하지만 그 후에 분쟁이 실제로 벌어질 경우 협정의 여러 문안과 조항들을 고려할 것인지, 고려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는 누가 결정하게 되는가? 한국 정부와 국민들이 중재심판소에 보낸 일개 법률적 대표를 통하는 방법 말고 그 심판소의 결정에 참여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다른 방법을 갖고 있을까?
 
 

  
  "적용이 철저할 수도, 느슨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중국 작가 노신(魯迅)은 언젠가 중국 사법제도의 난맥상을 다음과 같이 풍자한 적이 있다.

  
  "두툼한 법령집이 있다. 학자들을 각국에 파견하여 현행법을 조사한 뒤 그 정수만을 뽑아 엮은 것인 만큼 어느 나라 법보다도 완벽하고 정교하다. 첫 페이지는 백지다. 앞서 아직 인쇄되지 않은 사전을 봤던 사람만이 백지에서 글자를 읽어낼 수 있다. 첫 세 조항은 이렇다. 일, 관대히 처분할 수도 있다. 이, 엄중히 처분할 수도 있다, 삼, 어떤 때는 전혀 적용하지 않을 수도 있다."

  
  노신의 이 풍자를 음미해보면, 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가 한미 FTA 협상에서 가장 결정적인 부분으로 다루어져야 하는지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이 제도가 각별히 위험하고 반드시 제거되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을 포함한 한미 FTA를 체결하는 것은 이 무역협정 전체의 법적 관할권을 엉뚱한 곳으로 옮겨놓는다는 문서에 제 손으로 도장을 찍어주는 주권양도라는 데 있다.

  
  어떻게 협상을 하여 어떻게 협정 조항을 마련하고 예외규정을 명문화한다 해도, 이 제도를 포함한 한미 FTA가 체결된 뒤에는 분쟁이 일어날 경우 그런 협정 조항과 예외규정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할 것인지에 대한 결정은 중재심판소의 권한에 속하게 된다. 그래서 한국정부는 주권국가의 존엄을 버리고 심판소라고 불리는 '사각의 정글'로 올라가 악착같고 교활하기 그지없는 초국적 자본과 홀홀단신으로 '개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리고 그 '개싸움'의 결과에 따라 그 모든 '아름다운' 조항과 규정들이 '철저하게 적용될 수도, 느슨하게 적용될 수도, 전혀 적용되지 않을 수도' 있게 된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민들이 미국과의 FTA 협상에서 덕지덕지 복잡하게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수정하고 제한하는 규정을 붙이는 방법을 왜 거부했는지를 이제 음미해볼 수 있겠다. 앞에서도 보았지만, 국내 여론의 반발에 직면한 오스트레일리아 정부의 수석 협상대표 스티븐 데디(Stephen Deady)가 "오스트레일리아의 국가이익이 반영되도록 문구(language)를 잘 짜 넣을 수도 있다"고 빠져나가려고 하자, 노동당의 무역담당 의원인 스티븐 콘로이(Stephen Conroy)는 이렇게 몰아붙였다. "그런 식의 법적 정의를 엄격히 해봐야 그걸 뒤바꾸는 것을 업으로 삼는 변호사들 앞에서는 무용지물이다. 그들은 돈만 주면 흑을 백이라고 우기면서 소송을 만들어내는 이들이며, 또 종종 흑이 백이라는 주장을 관철시키고 만다." 투자자-국가 소송제 자체를 아예 협정에서 빼라는 요구였다.

  
  오스트레일리아 국민들은 분쟁이 생기더라도 미국 투자자는 철저하게 오스트레일리아 국내법의 절차에 따라 분쟁해결의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전통적인 국제 공법 및 사법의 방식을 고집했다. 그 결과로 오스트레일리아와 미국 사이에서는 설사 중재심판이 벌어진다 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두 나라 정부 간의 중재심판이 되므로, 어디까지나 두 주권국가 정부가 애초에 협정 조항들을 마련했던 정신과 이유를 놓고 담판을 벌이는 장이 된다. 요컨대 오스트레일리아라는 국가는 법적 관할권을 끝까지 손에서 놓치는 일이 없게 된 것이다.

  
  군사 분야에 비유하면, 법적 관할권은 곧 작전 통제권에 해당하는 것이리라. 그렇다면 분쟁이 생기는 순간(게다가 그 분쟁은 외국 투자자의 일방적인 의사에 따라 생겨나는 것이다) 곧바로 법적 관할권이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데 대해 국가가 제 손으로 합의를 해준다는 것은 곧 평화시가 아닌 전쟁시에는 그 즉시 작전 통제권을 다른 곳으로 넘겨준다는 데 대해 국가가 제 손으로 합의해주는 것과 같다고 볼 수 있다.

  
  '전시'의 작전 통제권이 아닌 '평화시'의 작전 통제권이야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그래서 현 노무현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전시'의 작전통제권을 환수하려고 하고, 이것의 환수야말로 진정한 자주국방과 주권회복의 열쇠라고 외치고 있지 않은가. 그런 노무현 정부가 어째서 다른 손으로는 투자 문제에 대한 법적 관할권을 다른 곳으로 넘겨주는 조약에 자발적으로 서명하려고 하는 것인가?

  
  투자자-국가 소송제는 한미 FTA 협상안에서 반드시 원천적으로 확실하게 제거해야 한다. 이 제도를 놔둔 채로는 한미 FTA가 실제로 체결된 뒤에 그것이 거시적으로, 미시적으로, 또 정치, 사회, 문화, 환경, 보건 등 모든 분야에 걸쳐 어떤 방향으로 튈지를 그 누구도 확실하게 예측할 수 있다.

  
  NAFTA의 경우도 그것이 체결되기 전에 투자자-국가 소송제가 멕시코와 캐나다에 어떠한 영향을 끼치고 그 결과로 어떤 충격을 미치게 될지를 제대로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NAFTA가 체결된 후 10년이 다 되어가는 시점에는 심지어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관리들까지도 이 제도가 어떠한 충격을 가져올지를 자신들도 예측하지 못했음을 통감하게 됐다는 사실은 앞에서 소개한 바 있다.

  
  "협상을 잘 하면 된다"거나 "그것은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식의 설익은 낙관론과 어설픈 당위론을 들이댈 계제가 아니다. 향후 최소한 10년 간에 걸쳐 한국경제의 투자구조와 제도의 향방을 우리가 우리 뜻으로 예측하고 준비해나갈 수 있기 위해서도 현재의 지상과제는 한미 FTA 정부 협상안에서 투자자-국가 직접소송제를 본원적으로, 반드시 제거하는 것이다.
 
   
 
  홍기빈/국제정치경제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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