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inar network 새움” 기획 강연 1




 하종강, 노동운동의 희망을 이야기하다




 이번 강연이 한국 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어떤 처지에 있으며 이러한 처지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왜 노동운동이 되어야만 하는지에 공감할 수 있는, 또한 자연스럽게 적대적으로 변해가는 일반인들의 노동운동에 대한 시각을 바꾸어가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강사 소개 : 한울노동문제연구소장, 한겨레 객원 논설위원

               <그래도 희망은 노동운동>,<철들지 않는다는 것> 의 저자

일시 : 7월 5일 (목) 오후 7시

장소 : 2호선 신촌역 1번 출구 새움 세미나실

        (신촌역 1번출구->KFC에서 우회전->신보건약국 골목->이박사 칼국수 건물 3층)









누구나 자유롭게 참여할 수 있습니다. 참가비는 없습니다.


* 주최 : seminar network 새움 http://club.cyworld.com/seumnet

* 문의: 011-9270-6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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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옥에서 사후인생을 보내는 근대성에 반하는 근대론자”

 

이광수 다시보기: 민족과 문학사

 

신동준 코넬대 교수 master@dambe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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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99회째 만남을 마치고 대망의 1백회 모임을 앞두고 있는 부산대 인문학담론 모임이 인문학의 논쟁적 담론의 수혈지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담당하고  있다. 지난번 석굴암 재해석 논문 이후 이번 99회째에는 이광수에 대한 다시 읽기를 통해 문화론적 민족주의 해석의 한 모델을 선보였다.
아래의 글은 신동준 코넬대 교수가 지난 5월 17일 모임에서 발표한 글이다. 신 교수는 한국에 연구년으로 나와 이광수에 관한 단행본 준비를 하면서 그 책의 기본 골격과 메시지를 요약해 발표했다. 아래에 그 전문을 소개한다./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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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년간 미국 역사학계에서 일어난 핵심 논쟁 중 하나는 잘 아시다시피 문화학(cultural studies; 혹은 포스트모던이즘)과 역사, 양자의 관계에 대한 논쟁이었다. 80년대 문화학이 등장하면서 기존 역사학계는 위기를 맞았다. 당시 이 둘의 논쟁은 주로 보수 대 진보 였다. 진보쪽은 역사학계의 핵심개념들을 공격했고 보수쪽은 포스트모던니즘의 피상성과 비합리성을 비난했다. 이제는 첫 위기가 끝난 것 같아 보인다. 최근에 한 학자는 이런 논쟁이 이제 지루하다고까지 했다.

한편으로는 문화사 붐이 일어났다. 그리고 10년전부터 문화사는 미국 한국사학계에도 도입되기 시작했고, 지금은 문화연구가 한국학내에서 지배적 동향이 되어가고 있을 정도다. 또 한편으로는 문화이론을 많이 활용한 역사책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 않다. 문화연구 (문학이론)는 역사학한테는 타자라는 느낌이 많이 든다. 역사학은 역사학방법론으로서 이같은 이론을 수용하기 싫거나 아니면 수용하지 못 하는 것 같다. 시대적 과제는 아직도 타자를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모색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오늘 발제는 첫째, 내가 이해하는 문화연구, 그리고 (그것의) 무엇이 유용한지에 대한 것이다. 둘째는 문화연구의 한계를 살펴보기 위한 일환으로, 문화이론에 대한 비판내용을 정리하는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원래 문화이론은 보수 역사학한테 비판을 받았는데, 최근에 진보쪽에서 심지어 초기 문화연구를 주창하던 학자들이 문화이론을 비판하고 있는 현상이다. 그리고 세번째 부분은 내 책에 대한 구상을 설명하고자 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지난 25년간 학계내 흐름중 가장 두드러진 은것 문화학의 등장이었다. 문학학은 원래 1960~70년대 등장했는데 당시 미국내 사회과학계를 주도하고 있던 것은 근대화이론이었다. 유럽중심주의와 여타 metanarratives에 대한 비판의 한 방법으로서, 비판적 학자들은 근대화이론이 귀기울이지 않고 폄하했던, 특히 이데올로기나 의식같은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근대화이론은 사회를 이해하는데 있어 구조적 요인을 중요하게 여기기때문에 이 시기 지성사는 당연히 하향추세였다.

문화학은 1980년대 이데올로기나 의식을 연구하는 작업에 새로운 추동력을 제공하였고, 역사학계내에서는 그 영향이 ‘새로운 문화학’의 등장으로 표출되었다. 문화학이 학계에 기여한 공헌 중의 하나가 이데올로기 연구를 조약한 경제결정론에서 해방시킨 것이다. 학자간 편차는 다양하지만 많은 학자들이 이데올로기를 경제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생산의 한 형태라고 이해하는 알뛰세의 개념을 수용했다. 탈근대주의, 탈구조주의, 탈식민주의 역시 부분적으로는 이같은 이데올로기 인식의 소산( 그리고 하나의 비판)으로 볼 수 있다.

지성사 기존의 저자-텍스트-청중(독자)의 이해방식을 뛰어넘기 위 한 한 방법으로, 문화학을 통는 담론분석이라는 형식을 도입했다. 무엇보다 담론분석은 텍스트의 개념을 확장시켰다. 텍스트라는 용어는 단순히 인쇄된 것 만을 의미하는게 아니라 시각자료, 심지어 사회적 혹은 개인적 삶, 기호 체계로 구성된 모든것을 의미했다. 아주 단순화시키면 종래의 지성사는 주요 사상가의 사상을 설명하고, 그들이 그 시대에 끼친 영향을 평가하는 것이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담론 분석은 종래 지성사의 ‘초월적 주체(transcendental subject)’의 개념을 비판하면서 텍스트를 저자의 사상의 표현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기호학이 발전시킨 방법을 사용해서, 담론분석은 intertextual한 접근방식을 취하고 일련의 텍스트내에서 의미가 작동하는 방식을 밝히는데 주안점을 둔다. 담론 분석의 또다른 초점은 기구(institution)와 담론간의 상호관계를 검토하는 것이다. 이는 권력과 지식의 관계를 연구한 푸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문화학은 사상의 내용보다는 텍스트와 지식이 권력과 관계맺는 방식, 가령 어떤 담론이 어떤 권력을 생산하는지를 검토한다.

주지하듯이, 문화학의 등장은 민족주의에 관한 학문적 관심을 일으켰다. 물론 기념비적인 저서는 1983년에 초판된 Benedict Anderson’s Imagined Communities, 같은해 Eric Hobsbawm and Terence Ranger의 The Invention of Tradition이 있다.

문화학은 민족이 먼 과거의 ‘ethnic’ 공동체의 원시적 형태라기 보다 근대적 산물임을 강조한다. 그 경향중 하나는 공식적 의례(ritual)와 기구에 초점을 두어 국가가 엘리트 중심의 헤게모니를 유지하기 위해서 어떻게 민족을 이용하고, 소수자와 서발턴 그룹을 배제하는지를 밝혀내는 것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문학이론의 영향을 받아 문학과 대중 문화가 ‘민족’을 서술하는 형태를 검토하고 ,어떻게 대중 소비가 기존 권력구성에 동의하는지를 밝히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이같은 연구들의 공통 지점은 계급 혹은 경제수탈이라는 분명한 형태의 지배보다 다른 형태의 지배방식을 밝히는 것이다. 푸코나 들뢰즈 이론의 영향하에 문화학 학자들은 ‘미시정치’ 영역내에서 ‘모세혈관처럼 작동’하는 권력에 초점을 두어왔다. 국가 혹은 경제와 관련된 법적인 형태로서의 권력보다는 일상생활 수준에서의 권력의 작동을 검토한 것이다. 최근 연구는 이같은 이론을 민족주의에 적용하여 민족 정체성을 창출하는 재연적(representational), narrative 전략을 밝히는 개념과 분석도구를 만들어냈다.


문화학에 대한 비판

하지만 최근들어 문화학도 비판을 받고 있는데, 이 비판적 흐름에는 초기 문화학을 주도했던 역사학자들까지도 참가하고 있다. 우선, 문화학에 대한 비판은 문화학의 극단적인 형태가 ‘사회적인 것에 대한 망각’(obliteration of the social) 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새로운 문화사(new cultural history)는 사회사가 유지했던 계급과 사회구조에 대한 고민 혹은 관심이 거의 없다. 문화학의 도입이 기존의 국가-시민사회 패러다임에 대한 비판, 동시대 사회운동을 이해하는데 있어 이 패러다임의 갖는 문제점들을 지적하는데 유용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문화사는 국가-시민사회 패러다임에 대한 체계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하지 못했고, ‘사회적인 것’을 재개념화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았다. 둘째로, ‘문화가 사회적인 것을 전반적으로 대체’하였기 때문에 핵심 용어가 문화 담론에서 소멸하고 있다. 가령, 자본주의는 점차적으로 근대성이라는 모호한 용어로 대체되어 왔다. 이 전환이 보여주는 뚜렷한 징후는 정치-경제학에 대한 관심의 감소이다. 탈구조주의의 과잉속에서 자본주의는 이데올로기적인 모습을 띤 하나의 생산 양식으로 축소되어 또 하나의 metanarrative가 되었다.

민족주의 연구와 관련해서, 민족이 구성되었다는 문화학의 지적은 옳지만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충분치 못하다는게 또 하나의 비판이다. 민족은 구성물 이상이다. 민족은 국가와 자본의 형태(예를 들어 정치경제), 양자에 의해 성립됨에도 불구하고, 문화학에서는 이 두가지 요소가 생략되어 왔다. 아마도 이 부분에 대한 가장 적절한 증거는 민족에 대한 비판과 세계화가 탈민족주의 시대를 열었다는 주장에도 불구하고 민족주의 역사학의 지속한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민족의 개념을 살펴보고 수정할 필요가 있다.

문화 연구는 후기 자본주의 단계에 이른 미국 이데올로기의 학문적 반영이라는 비판도 있다. 풀어 말하자면, 문화연구때문에 학자들이 70년대 이후 일어난 세계 자본주의의 근본적 변화들을 놓치게 되는 (misrecognize) 되는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미국자본주의의 근본원리였던 포디즘(Fordism)은 70년대부터 하비(David Harvey)가 말했던 소위 유연한 축적(flexible accumulation)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flexible accumulation란 노동, 금융, 상품, 생산의 이동성이 강해지는 것을 의미한다.

문화연구는 정치적으로 진보적 비판이라고 하지만 그 비판은 사라지고 있던 자본주의의 한 형태인 Fordism에 대한 것이지, 그 이후 새로이 등장하는 자본주의의 형태에 대한 비판이 아니였다. 시대착오라는 것이다. Flexible accumulation 체제하에서 기존 사회관계가 불안정하게 되면서, 학자들이 사회구조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됐다. 금융과 생산의 비중이 역전되어 국가가 자본주의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지니 자본주의는 그 중심이 없는 것처럼 보이기 시작한다.

그리고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 소비의 비중이 커지면서 언어, 기호, 표상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어있다. 즉, 문화연구는 flexible accumulation 시스템 밑에서 일어나고 또 겪는 경험들을 학문 차원에서 표현할 따름이라는 것이다. 문화연구의 인종관도 비슷한 비판을 받았다. 문화연구는 서구중심주의를 부정하지만 그 부정은 어디까지나 서구의 전통안에서만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또다른 서구중심주의 (또 다른 전통)를 창출한 것이다.


이광수와 민족

앞으로 내가 쓸 책의 목표는 이광수의 텍스트와 행적을 통해 3.1운동 이후 핵심 담론으로서 민족의 등장을 밝히는 데 있다. 이광수는 가장 유명한 친일파이기 때문에 그를 통해 한국의 민족주의를 보는 것이 이상할지도 모른다. 이광수 이름에 붙어다니는 ‘반역자’, ‘친일파’라는 꼬리표는 검열의 형태로서 작용해 왔다. 연구할 가치가 없는 인물로 만들어 버림으로써, 친일행적에 집중된 관심은 이광수의 텍스트가 생성할 수 있는 지식의 형태까지 억압되어 왔다.

최근 이광수에 관한 연구는 이광수 텍스트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식민지 시기 역사를 재해석하는데 유용함을 보여주고 있다. 이 책의 목표는 이광수와 한국의 민족 정체성간의 복잡다단한 관계를 이용해서 한국 민족주의의 본질을 조명하려고 한다. 이광수는 민족내에서 중심부와 주변부 양쪽에 자리잡고 있다. 이같은 모순된 위치는 민족 내부나 외부에서의 비판을 용이하게 한다.

이광수는 보기드문 연옥에서 사후인생을 보내고 있다. 그는 수수께끼가 되었다. 왜 그는 민족을 배신하고 일본에 협력하였을까? 그는 얻은 것이 거의 없었고 오히려 잃은 것이 많았기 때문에 납득이 가지 않는다. 이광수가 갖는 패러독스중의 하나는, 그 수수께끼가 답을 요구하면서도 설명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이 패러독스는 이광수에 대한 연구에서도 반영된다. 한편으로 어떤 학자들은 친일의 근원을 밝히기 위해서 이광수가 어떤 시기에도 진정한 민족주의가 아니었다는 듯이 이광수의 초기 행적을 검토하고 있다.

또 한편으로 다른 일각에서는 친일 문제를 제쳐두고 문학과 지성사적인 측면만을 부각시킨다. 최근까지, 김윤식의 ‘이 광수와 그의 시대’를 제외하고는 정면으로 이 문제를 풀려는 시도는 없었다. 이광수에 대한 많은 연구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이광수에 대한 이해는 여전히 부족하다. 요약하면, 이광수는 한국 근대성의 유령과 같은 존재다.

위에서 말했듯이, 이 책의 주요 목표는 3.1운동 이후 담론의 주요 용어로서 ‘민족’의 등장을 검토하려는 것이다. ‘민족’의 계보를 만드는 데에는 몇가지 방법이 있지만, 여기서는 이광수의 텍스트와 행적을 통해 살펴보려고 한다. 이광수는 1910년대 등장한 몇 안되는 지식인 중의 하나였고 20년대에 왕성한 활동을 하였다.

따라서 그의 텍스트는 1919년 이전과 이후의 담론 변화를 추적하는데 적절하다고 본다. 또 한편으로, 이광수는 국내 민족주의 운동의 중요 인물이었기때문에 그의 행적은 당시의 사회-경제적 발전과 맞물려 있었다. 이광수는 그가 민족주의담론의 형성과 민족주의 엘리트의 형성의 교차점에 있었다는 점에 그의 역사적 중요성이 있다. 달리 말하면, 이광수는 텍스트와 사회적 과정을 연결을 보여주는 접점이다.

이광수의 텍스트와 행적을 같이 보는 것은 다른 종류의 역사서술을 가능하게 한다. 직선적인 지성사는 이광수 사상이 민족주의 운동에 끼친 영향에 주안점을 둘 것이다. 다른 한편 전기적인 접근은 이광수의 일생과 텍스트가 서로를 반영한다는 듯이 두 가지를 결합시키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는 담론과 사회적 발전, 둘 중 하나를 다른 하나에 종속시키지 않은채, 일정 형태의 담론과 사회발전과의 관계를 이광수를 통해 보는 것이다.

각 장은 민족의 특정 측면을 보기 위해서 텍스트이건 기관이건 이광수와 관련된 각기 다른 ‘실마리’를 볼 것이다. 이 광수가 분명히 이 책의 초점이긴 하지만, 이광수는 어떤 장에서는 중심부를 차지하고 있고, 다른 곳에서는 배경으로 물러나 있다. 목표는 어느 한 요소에 치우지지 않는 ‘결합적인’(conjunctural) 역사를 만들어내는데 있다. 이 책은 ‘민족’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3.1운동을 통해 어떻게 결합하였고, 당시 핵심 담론으로 등장하였는지를 규명하고자 한다.

여기서는 사회사와 문화사의 방법을 조합해서 이 책의 목표에 접근하고자 한다.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이광수의 텍스트를 통해 민족 담론을 분석하고, 이와 동시에 이광수의 행적을 통해 당시 민족주의 지식인의 사회사를 결합하려고 한다. 사회사의 방법론은 문화사의 민족주의 접근법이 갖고 있는 약점을 보완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첫째, 이 책은 ‘민족’에 있어 사회사적인 접근법을 취한다. 이 책에서는 민족이 단지 구성물이거나, 일종의 신화 혹은 상징이 아니다. 민족은 행동과 사회내 상호작용을 규정하는 사회적 관례(social practice)의 하나이다.

사실, 이 광수는 민족이 재연(representation)과 사회적 관례(social practice), 양자의 표현임을 예리하게 이해하고 있었기때문에 이광수의 텍스트를 통해 이 둘 사이의 긴장관계를 검토하는게 가능하다. 둘째, 식민지 한국은 국가-시민사회 패러다임의 유용성을 시험하는데 좋은 예가 될 것이다. 여기서는 ‘시민사회’라는 개념이 1919년 이전의 한국사회의 발전을 설명하는데에는 유용하지만, 그 이후의 변화를 설명하는데에는 새로운 사회적 개념이 필요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민족의 등장으로 미시정치적 수준에서 작용하는 지배의 형태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상이지만 그래도 가능해 보이는’ 시민사회의 자율성을 잠식하려는 의도에서 일상으로 목표를 전환한 것이었다.

셋째로, 이 책은 민족담론이 어떻게 인쇄자본주의라는 기구를 통해 생산되었는지를 검토한다. 앤더슨(Benedict Anderson)이 지적하였듯이, 민족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것은 자본주의 형태이다. '상상된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에서 앤더슨은 인쇄 자본주의의 문화적 측면, 시공간 인식상의 효과에 주목했다.

민족은 자본과 지식 생산의 관계망에 위치하면서 지식 생산에 중심 역할을 담당하였다. 식민지 맥락에 있어서, 인쇄 자본주의는 피식민지인들이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몇안되는 기구중의 하나였기때문에 더 중요하다. 식민국가는 감시와 생체권력(biopower)의 조직(apparatuses)을 실질적으로 독점하였기 때문에, 식민통치기 동안 인쇄 자본주의는 사회운동의 중심으로 기능했을 뿐 아니라 피식민 자본가에게는 가장 성공적인 사업 아이템 중 하나였다. 이 맥락에서 식민지 부르주아의 형성과 담론생산에 있어 인쇄 자본주의의 역할을 검토할 것이다.

이같은 접근은 자본주의 발달과정 속에서 ‘민족’의 등장을 재정립하는데 기여하리라 본다. 1990년대 당시 남한 역사학계의 젊은 세대들은 계급적인 맥락에서 식민지기 사회-지식인 운동을 살피는 중요한 연구물을 내놓았다. 민족의 등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계급분석은 분명히 중요하지만, 여기서는 상품의 역할에 초점을 둘 것이다. 다시 말해 민족과 사회적 삶의 상품화의 관계이다. 민족으로의 전환은 ,한편으로는 도시의 거리 생활, 사회주의 운동등으로 보여지는 근대성의 과도함에 대한 비판으로 작용했다. 다른 한편, 민족 등장의 전제 중의 하나는 상품의 생산과 전국적 시장의 형성이었다. 레이몬드 윌리엄즈(Raymond William)의 표현을 빌려 표현하면, 이광수는 여러 면에서 ‘근대성에 반대하는 근대론자’ (modernist against modernity)의 고전적 예였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는 1919년 이전이고, 후반부는 3.1운동 이후 약 10년정도의 이야기이다. 각 부분의 앞부분은 사회사, 뒷부분은 담론과 ‘민족’의 문학적 나레이션 분석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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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론의 시간과 정치의 시간:알튀세르와 라깡의 조우

 

지젝의 삐딱하게 보기 ② 맑시즘을 바라보는 지젝의 시각

 

이병주(경희대 언론정보학부 강사) master@dambee.net


 




지젝의 삐딱하게 보기 ① 맑시즘

이번 호 <인문학술>에서는 슬라예보 지젝의 논의들을 살펴본다. 지젝은 셸링과 칸트, 헤겔 등의 독일 철학에 바탕을 두고 라깡을 재해석하면서 이를 맑시즘과 결합해 정치, 사회, 문화 형식에 대입하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 따라서 지젝이 해석해 낸 라깡과 맑시즘을 지젝 이전의 다른 이론가들의 그것과 비교해보고자 한다. 본고의 이러한 논의를 통해 지젝을 구체적으로 살펴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지젝의 논의가 가지는 함의와 영향까지 엿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 [편집자주]

▲ 슬라예보 지젝

 

그레고리 엘리어트는 알튀세르에 대한 충실한 주석서인 『이론의 우회』에서 알튀세르의 비극을 다음과 같이 표현했었다. “이론의 시간과 정치의 시간은 서로 만나야만 했다. 그러나 만나지 못했다.” 그레고리 엘리어트는 이 어긋남의 극적인 예로써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들고 있다. 1968년 파리는 그의 지병인 우울증을 매개로 알튀세르를 스쳐지나갔고, 그의 뒤 늦은 개입이 바로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기구」라는 미완성 연구노트였다. 알튀세르는 이 뜨거운 68년도의 거리를 가능하게 했던 이데올로기의 자율성과 주체의 자율성을 정당화하려고 하였지만 그 이론적 결과물은 구조기능주의의 혐의였다. 결론적으로 이 연구노트 속에서도 이론의 시간과 정치의 시간은 다시 한 번 어긋난다. 근본적인 논쟁을 ‘푸코 대 하버마스’가 아닌 ‘라깡 대 알튀세르’로 잡고 있는 그의 첫 저서 『이데올로기라는 숭고한 대상』의 서문을 참고했을 때, 지젝의 출발점은 바로 이 어긋남이다. 알튀세르의 무엇이 알튀세르를 이 어긋남 속에 감금하였는가? 지젝은 구조기능주의를 이유로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을 성급히 거부하는 몸짓을 거부하고 이것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이것의 한계를 넘어서는 데에서부터 자신의 이론적 작업을 시작한다. 이 지젝의 몸짓에서 알튀세르는 진정으로 라깡을 만나야만 했다.

 


마르크스와 프로이드의 우발적 마주침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알튀세르와 라깡의 만남이 두 개의 회귀, 즉 ‘마르크스로의 회귀’와 ‘프로이트로의 회귀’간의 만남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마르크스로의 회귀는 비경제결정론적인 사회구성체의 논리를 재구성하는 작업이라는 것과 프로이트로의 회귀는 자아심리학의 헤게모니를 넘어서 무의식의 주체를 재확언·재구성하는 작업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 두 회귀의 만남이라는 이론적 스캔들이 낳은 사생아가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일 수 있다. 왜냐하면 사회구성체라는 실체의 논리와 무의식 또는 주체성의 구성이라는 주체의 논리가 매개되는 유일한 공간은 바로 이데올로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러한 알튀세르의 전체적인 기획 속에서 우리가 인지해야 할 것은 바로 알튀세르의 철학에 대한 정의의 변화, 즉 ‘이론적 실천에 대한 이론’에서 ‘이론에서의 계급투쟁’으로의 변화이다. 다른 말로 바꾸어 보자면 알튀세르는 공식적으로 언급한 바가 없지만 ‘주체 없는 과정 또는 구조’에서 ‘주체 있는 과정 또는 구조’로의 변화 또는 ‘최종심급에서의 경제결정’에서 ‘최종심금에서의 계급투쟁의 결정’으로의 변화. 알튀세르의 이데올로기론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즉 계급 또는 주체의 논리라는 빛 아래에서 읽혀져야만 한다. 이를 위해서 지젝이 가지고 오는 개념들은 실재, 적대와 같은 개념들이다.

실재란 라깡의 개념으로 우리의 현실을 구성하는 상징계의 한계, 또는 상징계의 비일관성을 보여주는 또는 상징계가 비­전체임을 보여주는 한계 차원이다. 그리고 적대란 이 실재가 우리에게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한 가지 양태이다. 적대란 단순한 차이나 대립이 아니다. 좌우의 대립이라는 예를 통해서 왜 그런지 살펴보도록 하자. 우파는 기본적으로 사회를 유기적인 총체로서 인식하며 사회의 분열을 외부적인 침입의 결과로서 생각한다. 그리고 우파는 자신을 이 유기적 총체의 수호자로 좌파를 가장 나쁘게는 이 외부의 침입자로 간주한다. 이에 비해서 좌파는 사회를 본래적으로 분열되고 갈등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있으며 좌우의 구별 또한 우파의 구별법과 다르다. 이 둘 간의 관계를 차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이 둘이 차이를 이루기 위해서는 적어도 두 가지 전제를 만족시켜야 한다. 하나는 음/양과 같이 서로 상호보완적인 역할을 하면서 유기적인 총체를 이루어야만 한다. 두 번째는 이들의 차이가 측정되기 위해서는 이들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잴 수 있는 공통의 잣대가 존재해야만 한다. 그러나 위에서 언급하였던 좌/우의 관계는 사회를 바라보는 관점에서부터 서로를 구별하고 인식하고 정의하는 방식에서 조차도 달랐다. 즉 이 둘 사이에는 소통의 공간이 전혀 존재하지 않으며, 오히려 비소통의 공백만이 존재한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좌우의 관계는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와 같은 표현에서 볼 수 있는 일관되고 정합적인 전체를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이 둘 사이에는 어떤 공백이 존재하며 이 공백으로 인해 사회는 유기적인 전체가 아님이 드러난다. 이 공백에 대한 이름이 바로 라깡의 실재이며, 이 공백에 의해 가로질러진 비관계적 관계―상식적인 의미에서의 관계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관계인―가 바로 지젝이 말하는 적대이다.



계급적대의 중층결정

이러한 논리에 따른다면 계급투쟁, 즉 계급적대란 무엇일까? 여기에서 지적되어야만 하는 것은 라깡에 따르면 무의식은 밤의 위엄이 아니듯이 계급투쟁 또는 계급적대란 정치의 로망이 아니라는 점이다. 계급적대란 전통적 마르크스주의에서 가정하듯이 실정적으로(positive)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이 사회의 궁극적인 의미를 담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계급적대란 라깡의 실재처럼 오로지 중층결정을 통해서만 그리고 증상적인 형태를 통해서만 드러날 뿐이다.

중층결정이란 프로이트가 꿈의 해석에서 꿈 형성 과정을 서술하기 위해서 도입한 개념이다. 중층결정의 논리에 따르면 꿈에서 우리는 무의식적 욕망의 중핵―라깡적 의미의 실재―을 결코 볼 수 없으며 오직 전치와 응축이라는 꿈 작업을 통해서 형성된 왜곡된 형태의 무의식적 욕망만을 볼 수 있을 따름이다. 계급적대 또한 마찬가지이다. 꿈이 무의식적 중핵과 연결된 낮의 찌꺼끼들을 배치하는, 즉 무의식적 중핵의 리비도를 전치하고 여러 다양한 꿈 사고들의 계열을 응축하듯이, 계급적대란 자신의 적대적 에너지를 다양한 사회갈등으로 전치하고 이 갈등들을 라클라우가 말한 등가의 연쇄로 응축하는 중층결정 속에서만 보여질 수 있다. 알튀세르의 “최종심급의 고독한 순간은 결코 오지 않는다”는 정식화는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만 한다. 계급적대란 항상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의 노­노 갈등이라든지 여성과 남성의 대립이라든지 또는 현재 가장 문제가 되고 있는 외국인과 내국인의 갈등 등으로 중층결정된다. 즉 계급적대란 철저하게 알튀세르적인 의미에서 상이한 갈등 방식의 우연적이고 비일관적인 배치―즉 정세, 국면―를 설명해 주는 구조화 원리이자, 라깡적인 실재의 의미를 살려본다면 초월적 틈새 그 자체이다.

꿈이 탁월한 무의식의 형성물, 즉 증상이라면 이 계급적대는 증상의 형태로 되돌아오기도 한다. 증상이란 억압된 것의 회귀이면서도 이것이 없다면 우리의 쾌락 시스템의 붕괴를 가져올 수도 있는, 즉 의식으로부터 배제되면서도 이 의식을 지탱하고 있는 실재의 한 조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지젝은 이것을 사회에도 적용하고 있다. 부르주아 자본주의 사회는 자유와 등가교환을 전제로 성립된 사회구성체이다. 그런데 이 사회구성체를 지탱하면서도 이 사회구성체의 전제에 위배되는 역설적인 존재가 있다. 모든 사람은 자유롭다. 다만 임금 노동을 하지 않는다면 굶어 죽는다는 부자유를 제외하고는. 모든 상품은 등가교환된다. 그러나 노동력은 잉여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에 등가교환에서 제외되는 예외적인 상품이다. 그런데 이 예외, 즉 임금노동과 잉여가치가 없이는 부르주아 자본주의는 더 이상 유지될 수가 없다. 이 예외를 떠맡고 있는 계급은 바로 프롤레타리아트였다. 이런 측면에서 프롤레타리아트는 일관되고 정합적인 사회―즉 의식―를 위해서는 배제되거나 부인되어야만 할 증상인 셈이다. 그리고 계급적대로 인한 사회의 비일관성과 마찬가지 이야기이지만 증상에 의한 사회의 비일관성을 다시금 일관된 것으로 환상화하는 것이 바로 지젝이 말하는 이데올로기이다.

계급적대란 그럼에도 돌아오는 것들이며, 이것은 지젝이 벤야민의 ‘억압된 것의 회귀’로서 지칭하고 있는 라깡적 의미에서 항상 제자리로 돌아오는 실재의 고집이고, 즉 반복강박으로서의 죽음의 충동인 셈이다. 여기에서 한 가지 오해를 피할 필요가 있다. 마르크스도 그랬지만 이데올로기 비판이란 의식상의 변화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데올로기는 의식상의 각성으로 폐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이데올로기가 근거하고 있는 현실적 토대가 무너질 때 폐지된다. 이와 대당하는 지젝의 개념은 바로 ‘환상의 횡단’으로서의 행위이며, 라깡적 용어로 실재의 윤리이다. 바로 이런 맥락에서 지젝의 근래의 작업들이 탁월한 행위였던 레닌적인 몸짓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무의식의 주체란 권력의 장소이자 저항 또는 전복의 장소로 정의되고, 이 논리는 “실체로서 뿐만 아니라 주체”라는 헤겔적 모토 아래 역사적 유물론의 기획은 다음과 같이 선언된다. 즉 알튀세르의 ‘주체 없는 과정’은 ‘주체 있는 과정’이 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알튀세르가 기획했던 역사적 유물론의 가능성의 윤곽이 잡힌다: “요컨대 절대는 실체로서 뿐만 아니라 주체로 인식되어야 한다는 헤겔적 모토의 마르크시즘적 판본은 역사는 경제적 토대의 발전(생산력과 생산관계의 변증법)뿐만 아니라 계급투쟁(주체의 논리)으로도 인식되어야만 한다는 것이다.”



포스트-포스트 마르크스주의자, 지젝

지금까지의 논의를 정리해 보면 또 다른 프로이트 마르크스주의자인 숀 호머의 지적대로 지젝은 교조적인 라깡주의자일 수는 있어도 전통 마르크스주의자일 수는 없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마르크스는 한 번도, 그리고 심지어 알튀세르조차도 프롤레타리아트를 모든 실정적 속성을 박탈당한 라깡의 주체로 정의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그레고리 엘리어트가 자신을 반-반 알튀세리앙이라고 지칭했던 호명법을 차용해 본다면, 지젝의 입장은 아마도 포스트-포스트 마르크스주의 정도가 될 것이다. 그럼에도 지젝이 정치경제학과 계급투쟁을 중심에 두는 마르크스주의의 문제틀을 부활시키면서 하는 질문은 이렇다. 만약 지금 당신의 바지가랑이를 물고 늘어지는 것이 죽은 개들의 복수라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는가? 헤겔, 마르크스, 그리고 알튀세르라는. 이들이 ‘이론은 실천이다. 즉 실천은 이론이다’와 같은 정치의 시간과 이론의 시간 간의 단락의 가능성을 사유 가능하게 한다면.  
 
이병주 / 언론정보학부 강사

FROM 경희대 대학원신문 제15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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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리버의 시선 현대일본의 내셔널리즘
역사적 국가에 대한 망각의 소비

 

사다카네 히데유키(쿄리츠 여대 강사) hidesadakane@hotmail.com


 


● 카야마 리카『프티 내셔널리즘 증후군』 (中公新書, 2002)
● 후지와라 마사히코『국가의 품격』(新潮新書, 2005)
● 아베신조『아름다운 나라로』(文春新書, 2006)
● 강상중 『애국의 작법』(朝日新書, 2006)

 

글로벌리즘과 권력해체: 새로운 내셔널리즘

   
 
▲ 아베 신조 <아름다운 나라로>
 
최근 일본에서는 다양한 내셔널리즘 담론이 눈에 띈다. 최근에는 아베신조의 『아름다운 나라로』(2006)나 후지와라 마사히코의『국가의 품격』(2005)이 화제가 되었다. 그런 책에는 바람직한 내셔널리즘의 이미지가 각각 그려지고 있다.

이렇게 팽창되는 내셔널리즘 담론의 장을 지탱하는 것은, 사회의 다양한 장소에서 눈에 띄는, 보다 비속한 내셔널리즘적 현상에 다름아니다. 예를 들면 축구 경기장에서 일장기를 페인팅한 젊은이들의 모습이 화제가 되고 있는데, 카야마 리카는 그런 사람들을 “프티 내셔널리스트”(『프티 내셔널리즘 증후군』(2002))이라 부른다. 일본을 거의 천전난만하게 긍정하는, 이러한 사람들의 행동에 지탱되어, 현대일본의 내셔널리즘 담론은 팽창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 이렇게 일본에서는 현재, 내셔널리즘이 팽창하고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첫째로는 냉전 이후의 동아시아의 불안정화를 배경으로 들수 있다. 버블 붕괴 이후, 일본경제의 안정성의 신화가 붕괴되고, 동시에 많은 사람들이 한국과 중국문화를 접하게 되는 가운데, 사람들은 스스로에 대한 문화적·경제적·정치적으로 새로운 이미지를 탐색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내셔널리즘의 유행은 글로벌리즘의 진행에 의존하고 있다.  

일본 국내적으로는, 내셔널리즘이 일종의 원한(르상티망ressentiment)의 현상으로 존재했었다는 점이 중요하다. 원래 근대의 국민국가는 권력을 부정하는 특수한 권력으로서의 측면이 강하다. 전제국가나 귀족들을 타도하고 부정하는, 그러한 특수한 권력으로서 국민국가가 기대되었던 것이다. 현대일본에서도 그렇다. 예를 들면 작년 일본에서는‘격차사회’라는 말이 유행했다. 실체는 어떻든, 많은 사람들이 이 사회에는 격차가 해소되기 힘든 형태로 침투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런 사회를 만든 권력을 해체하는 힘으로서 내셔널리즘은 받아들이기 쉬운 측면이 있다. 실제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가 그토록 많은 인기를 얻은 것은, 일본에 만연하는 권력을 “부수는” 것을 주장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 후지와라 마사히코 <국가의 품격>
 
합리적이고 긍정적인 국가 개념


그러나 이러한 국제상황의 불안정과 국내적 불만 만으로, 현대일본의 내셔널리즘의 발흥을 다 파악했다고 할 수 있을까? 어쩌면 그건 지금까지와는 다른 타입의 내셔널리즘에 의해 지탱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먼저 이 내셔널리즘의 변질에 대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원래 전후일본은 내셔널리즘, 혹은 오히려 내셔널리즘에 대해서 말하는 것 그 자체를 타입화하는 점에서 특이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한 타입의 존재는 필경 내셔널리즘이 많은 질문을 연쇄적으로 일으키는 문제의 자장을 전후 일본에 형성하고 있었던 점에 기인하고 있으리라. 내셔널리즘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거듭되는 많은 사람의 죽음, 미국의 지배, 배신이나 기만 등 대답하기 힘든 문제에 대한 응답을 전후일본에 요구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현재, 사람들은 내셔널리즘을 정면에서 논쟁할 수 있고, 또 그래야 한다고 보는 경향이 있다. 즉 현재 내셔널리즘의 첫번째 특징은, 그것이 일종의 합리적 토론으로 전개되고 있다는 점이다. 아베신조의 『아름다운 나라로』가 그 전형이 된다. 선정적인 제목-왜 일본이 아름다운가는 마지막까지 드러나지 않지만-과는 반대로, 이 책에서 얘기되는 것은 현재 세계의 정치정세 속에서는, 일본 역시 국가를 필요로 한다는 단순한「사실」에 지나지 않는다. 미시마 유키오는 일찍이 내셔널리즘이란 목숨을 걸고 지키는 것, 즉 생의 가치에 대한 다양한 합리적인 토론을 초월한 곳에서 처음으로 형성되는 것으로 보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일본의 내셔널리즘은, 이러한 부조리의 측면을 표면부터 도려냈고, 그 때문에 왜소화된 것이다. 그들은 국가를 목숨을 걸고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이해의 합리적 계산을 전제로 해서, 내셔널리즘을 지지할 것을 설파하고 있다.


   
 
▲ 카야마 리카 <프티 내셔널리즘 증후군>
 
이러한 ‘합리성’에 근거한 현대 내셔널리즘 담론은, 둘째로 국가를 옹호한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내셔널리즘에 천진난만하게 찬성하는 담론만은 아니다.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논의에서도, 국가의 존재는 부정하기 힘든 것으로 간주되고 있다. 예를 들면 강상중의 『애국의 작법』(2006)에서는, ‘애국심’의 인공성이나‘부자연스러움’이 지적되고 있다. 하지만 바로 그 때문에 국가를, 보다 타민족에 열려진 것으로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고 하는 것이다.

역사를 망각하는 소비사회

이렇게 현재 일본의 내셔널리즘은, 합리적이며, 또 현존하는 국가를 전제한 현재긍정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렇다면 내셔널리즘론이 전제하는 이‘현실’이란 뭘까? 그것은‘소비사회’라는 현실이라 말할 수밖에 없다. 현재의 내셔널리즘은 사회의 풍요로움과 안전과 행복을 칭하는 형식으로서 존재한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낳는 것이, 무엇보다‘소비사회’라는 현실이다. 따라서 현대의 내셔널리즘을 비판하는 것은 어렵다. 우리들에게 안정과 풍요함을 가져다주는‘소비사회’라는 사회성의 장을 부정하는 것이 곤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소비사회’가 담보하는 이 자명성에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달리 말하면 내셔널리즘은, ‘소비사회’가 만드는‘현상’을 긍정하는 것으로, 그‘현상’이, 역사 속에서 떠오르는, 부정가능한 하나의‘현재’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망각시키는 것이다. 도대체 누가 역사를 망각하는 것 없이 국가의 존재를 긍정할 수 있단 말인가? 20세기의 역사를 보는 한, 국가가 일으킨, 그리고 일으키고 있는, 비참한 사건의 총량은 국가를 긍정적으로 보기에는 너무 무겁다고 할 수밖에 없다. 즉, 20세기의 역사를 긍정할 때, 국가란 무엇보다도‘적’을 만들고, 그것과 싸우기 위한 상상력을 기르는 장치로 기능했다는 걸 부정하긴 힘들다.


   
 
▲ 강상중 <애국의 작법>
 
그러나 ‘소비사회’는 국가가 뿌리내린 이러한 역사적 공간에 대해서 망각시켜버린다. 그것은 말하자면 끊임없이‘현재’를 긍정하는 것으로 재생산되는, 사회적 망각의 시스템 형식을 구성하고 있다고 할 수 있으리라. 이 시스템이 만드는‘현재’의 자명성에 근거해, 전후일본의 내셔널리즘 담론에 대한 금기도 상대화되어 온 셈이다.

소비가 아닌 사유의 대상으로 

이에 대해 우리들은 국가를 인간의 역사 속에 자의적인 것으로 간주하는, 상상력을 열어둘 필요가 있다. ‘복지국가’로서의 ‘커다란 국가’나 자유주의적‘작은 국가’, 혹은 또 헌법을 개정해‘합리적’인 나라가 된 일본의 모습 등, 다양한 국가의 이미지를 이상화하는 것은 가능하다. 하지만 그것들을 이상화한 사상의 가치는 극히 제한적인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국가를 전제한 사고는 소비사회 속에서 떠올랐다가 사라지는 모드로서 소비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들은, 국가가 소실되는 세계에 대한 이념을 늘 사고 속에 열어두고, 그 이념에 얼마만큼 가까이 다가가고 있는가를, 현실의 선택의 지침으로 삼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확실히 현대에 국가가 필요하다는 건 자명하다. 그러나 그러한 ‘현실’을 상대화하는 것이야말로, 현대 소비사회 속에서 지(知)를 독자의 것으로 성립하기 위한 근본조건을 구성하고, 지의 고유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임을 부정할 수 없다.
                                   
사다카네 히데유키   쿄리츠 여대 강사 / hidesadakane@hotmail.com
           
번역 : 남상욱  도쿄대 비교문학비교문화학 박사과정 / indimina@hotmail.com

FROM 연세대 대학원신문 제154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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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미FTA, '일탈'이 아니라 '기획'
  [관점] 홍기빈의 '축적 기획으로서의 신자유주의'
 
  2007-06-15 오후 7:45:29
 
   

 
 

  <프레시안>은 금융경제연구소 등 10개 연구단체들이 15일 주최한 심포지엄 'IMF에서 FTA로'에서 홍기빈 금융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이 발표한 글 '축적 기획으로서의 신자유주의'를 요약해 게재한다. 이 요약문은 독자들이 IMF 위기 이후 한국 사회가 어떻게 변모해 왔는지, 한미 FTA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편집자>


  
  한미FTA라는 수수께끼
  
  한미 FTA는 많은 이들에게 수수께끼였다. 아무리 따져보아도 이익은 전무하거나 불명확한 반면 피해와 위험은 무수하고 명확한 한미 FTA를, 노무현 정부는 어째서 번갯불에 콩 볶아 먹는 속도로 진행하고 있는 것인가. 경제적 논리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기에, 많은 이들은 정치적인 요소로 한미 FTA를 설명하고자 했다. 뭔가 굵직한 치적을 남기고픈 '집권 말기의 심리학'이라는 지적도 나왔고, 대통령 선거판을 주도하려는 노무현 대통령의 전략이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심지어는 한미 양국의 경제통합을 획책하는 친미 세력들의 '음모'라는 주장도 나왔다.


  
  전통적인 '국민경제'의 관점에서 보면 한미 FTA는 분명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정치경제 체제의 동학(動學)이 지향하는 푯대는 '국민경제의 번성'이 아니라 '더욱 효율적인 자본축적'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한미 FTA를 '지배 세력이 자본을 축적하기 위해 마련한 새로운 기획'으로 보면 어떨까? 한미 FTA는 IMF 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한국 사회의 구조 변화를 관통하는 일련의 흐름 선상에 놓여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한미 FTA의 추진은 정치적 차원만이 아니라 경제적 차원에서도 '어불성설'이기는커녕 '사필귀정'이 아닐까? 우리 내부에는 한미 FTA를 원하고 추진해 온 세력이 없었을까? 한미 FTA는 노무현 대통령의 '단독 범행'일까?


  
  이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한미 FTA라는 현재의 사건을 IMF 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진행된 역사적 구조 변화의 '지속(durée)' 속에 놓고 볼 필요가 있다. 안타깝게도, 이 기간에 한국이 겪은 신자유주의적 구조 변화에 대한 설명은 "시장의 전횡"이나 "자본의 강화"와 같은 현상 기술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자본축적과 '축적 기획'
  
  IMF 위기 이후 10년간 진행된 한국 사회의 구조 변화를 설명하는 말로써 많이 쓰였던 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이라는 형용사이다. 그런데 이 말의 의미는 아직도 모호하다. 어떤 이는 신자유주의를 '시장'이라는 "살인 기계(juggernaut)"의 작동으로 보고, 다른 이는 신자유주의를 '자본주의'의 "몰인격적이며 자연사적인 운동"으로 파악한다. 그런데 '시장'과 '자본주의'라는 전통적인 개념과 그에 기반을 둔 분석틀은 현실의 역동성을 담아내는 데 큰 한계를 지닌다. 이들은 구체적인 현실세계로부터 동떨어진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시장과 자본주의는 200년 전부터 현실세계를 규정하는 중심 원리로 작동했고, 이미 그 공간적 범위도 전 세계로 확장됐다. 지난 10년간의 한국'으로 한정된 시공의 상황을 이렇게 추상적인 개념으로 포착하려다 보면, '시장의 전횡'이나 '자본주의 본래의 운동법칙'을 넘어서는 분석이 나오기 어렵다. 그 대응책 역시 '국가기구와 시민사회의 협조를 통한 거버넌스로 시장의 전횡을 통제한다'든가 '자본주의를 혁명적으로 변혁한다'는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이렇게 전통적인 개념들로는 현실을 파악하기 힘들 때에는, "사건 그 자체로!"라는 한 위대한 철학자의 외침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지난 10년간 겪어 온 신자유주의의 현실에서 뚜렷하게 나타난 중요한 현상은 무엇일까? 바로 끊임없는 '자본축적'이다. '축적'이란 사회적 구조 변화 그 자체가 아니라 구조 변화의 결과만을 수치상으로 보여주는 '사후적인 것'이 아닐까. 그렇지 않다. 마르크스가 갈파했듯, 자본은 "사회적 관계"다. 자본과 지배 세력은 사회적 관계라는 '외생적 조건'을 순순히 받아들이면서 축적의 게임을 진행하지 않는다. 주어진 조건에서의 축적 게임이 한계에 부닥치면 이들은 새로운 게임의 룰을 찾아낸다. 이들은 이 새로운 룰이 작동할 수 있도록, 기업, 금융, 노사관계 등은 물론이고 정치, 사회, 문화 전반에 이르는 광범위한 사회적 관계의 재구조화하려고 한다.


  
  특정 시기, 특정 지역의 자본과 지배 세력이 어떤 새로운 게임의 룰을 염두에 두고서 어떤 특정 방향으로 사회 전체를 재구조화하려는 '정치적' 프로젝트가 바로 '축적 기획'인 것이다. 신자유주의는 20세기 말부터 자본과 지배 세력이 지구적 규모와 일국적 규모에서 착상하고 추진해 온 하나의 '축적 기획(accumulation project)'으로 이해될 필요가 있다.

 


  
  금융화: 신자유주의 축적 기획의 게임법칙
  
  그렇다면 신자유주의라고 하는 새로운 '축적 기획"의 내용은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적 상황에서 금융의 중요성이 커졌다는 점, 즉 금융화(financialization)가 일어났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나는 신자유주의적 상황에서 새롭게 나타난 축적 기획의 성격으로 '금융화'를 포착하고자 한다.


  
  ◇ 축적의 지표: 시장 자산 가치의 극대화
  
  전후 자본주의는 흔히 포디즘(Fordism) 시대의 자본주의라고 일컬어진다. 포디즘의 주요한 특징은 생산설비의 확장과 고도화, 고용과 임금의 지속적인 상승을 통한 시장의 창출 등이다. 이런 포디즘식 순환이 이뤄지려면, 국가는 잘 정돈된 금융 체제를 갖춰야 했고, 기업은 경영자들의 자율재량을 통해 시장 점유율의 상승, 기업 규모의 거대화 등을 경영 목표로 해야 했다.


  
  이같은 어제의 축적 방식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할까? 폴 스위지(Paul Sweezy)는 1966년 폴 바란(Paul Baran)과 함께 미국 자본주의에서 나타났던 이같은 경향을 '독점자본(Monopoly Capital)'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 바 있다. 하지만 그는 1991년 이 기업이론으로는 "설명은커녕 실마리조차 찾을 수 없는" 중대한 변화가 나타났음을 고백했다. 그것은 바로 "미국과 여러 지구적 자본주의 나라들에서 지난 25년간 금융 부문이 엄청나게 확장되고 갈수록 복잡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또, 이런 발전은"기업이 지배하는 '실물' 경제의 구조와 작동에 중대한 방식으로 반작용을 가해 왔다"는 것이었다. 그는 특히 1980년대에 일어났던 기업 매수(buyout) 광란을 주목했다. 실제 '생산'에 대해서 아무런 관심도 지식도 없었던 초기의 금융 거래자들이 금융 거래를 통해 기업의 통제권을 쥐고서 기업과 생산 자체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존재로 발전했다는 것이다. 이 변화는 기업 경영 방식의 변화나 금융 부문의 질적·양적 팽창뿐 아니라, 민간 부문의 산업구조까지 바꾸어 놓는 광범위한 것이었다. 스위지는 이 변화는 자본축적의 이론 그 자체, 특히 '실물' 부문과 '금융' 부문의 관계에 대한 이론을 전면 재구성하지 않으면 다룰 수 없는 근본적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여기서 우리는 자본과 축적에 대한 이론과 관련해 가장 근본적인 질문 하나에 부닥치게 된다. 축적이란 '양이 불어나고 있는 상태'이니, 양이 불어난다는 것은 정확히 무엇이며 또 그것은 어떻게 측정할 수 있는가? 1960년대 '케임브리지 논쟁'은 자본이 단순히 '실물'의 자본재이며 자본의 양은 이 실물 자본재의 총량을 합산하면 된다는 전통적인 이론을 이미 무너뜨렸다. 그렇다면, 대안적인 자본과 축적 이론은 어떻게 마련되어야 할 것인가?


  
  일찍이 100년 전 베블런(Thorstein Veblen)은 이러한 주류의 전통과는 정반대의 자본과 축적 이론을 제시한 바 있다. 그는 자본이란 철저하게 "금융적(pecuniary)" 개념이며, 자본축적도 철저히 금융 부문과 비즈니스 부문의 논리로 운동하게 돼 있다고 주장했다. 물론 금융 부문에서의 자본축적은 실물의 '산업" 부문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하지만, 금융 부문에서의 자본 축적이라는 논리가 현실의 실물적 관계를 재구조화한다.


  
  닛잔과 비클러(Jonathan Nitzan and Shimshon Bichler)는 이런 베블런의 관점을 더욱 발전시켰다. 그들에 따르면, 자본이란 보유하고 있는 생산재의 크기와 같은 '실물'적인 것들로 측량되고 축적되는 것이 아니다. 자본이란 유형·무형의 '자산(asset)'이며, 자산의 크기는 소수의 개인이나 집단이 주어진 역사적·사회적 맥락 속에서, 생산과 일반적 사회관계에 걸쳐서, 소유권이라는 형태를 통해 쟁취하는 권력의 크기다. 따라서 자본의 크기는 자산의 현재가치(present value), 즉 '내 자산을 지금 당장 여기에서 다른 사람에게 매각할 때 받는 대가의 크기'라는 지극히 금융적인 개념이다.


  
  ◇ 주주 자본주의: GE의 경우
  
  1970년대 초반까지 미국 대기업들의 자본축적 방식은 주로 기업 확장을 통해 영업이익을 늘이고, 이를 사내에 보유하든지 아니면 신규 투자를 해서 기업의 내적·외적 성장과 팽창을 계속하는 사이클이었다. 그런데 이같은 기업 행태는 효율성과 통제력에 있어서 많은 문제를 낳았다. 그러자 경영학계에서는 '대리인 이론(agency theory)'을 신봉하는 학자들이 나타나 기업 경영의 지표를 '주주 이익의 극대화'로 놓고 이것을 목표로 기업 경영과 구성에 일대 혁신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 급격히 팽창한 동시에 극적인 탈규제를 겪었던 미국 금융시장은 이런 이론을 현실에 집행할 주체인 기관 투자가들을 등장시켰다.


  
  원래 미국 금융시장은 질서정연하게 구획돼 있었고 각각의 금융기관들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도 엄격하게 제한돼 있었다. 그런데 70년대 초 석유위기 이후 초 인플레라는 예측불능의 금융적 환경이 도래하자, 금융기관들은 기존보다 더 높은 수익률로 생존하기 위해 이를 가로막는 기존 규제를 풀 것을 강력하게 요구했다. 이에 따라 보험과 연기금 등에 대한 주식 소유 제한 규제가 풀렸고, 은행 이자율에 대한 규제도 철회됐다. 증권시장의 주요 행위자로 가계 대신 뮤추얼펀드, 보험, 연기금, 은행 등 대규모 기관 투자자들이 등장한 것이다.


  
  이런 덩치 큰 선수들이 유입되자, 미국에서는 1980년대 '정크본드' 붐을 시작으로 기업 경영권이 거래되는 엄청난 규모의 금융시장이 형성됐다. 그러자 적대적 인수의 위험에 고스란히 노출된 기업들은 주식 가치의 제고를 최고의 경영 목표로 삼지 않을 수 없었고, 이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해고와 자산 매매도 서슴지 않는 새로운 경영 행태를 보이게 됐다. 그 대표 주자가 잭 웰치(Jack Welch) 아래에서의 제너럴 일렉트릭(GE, General Electric)이었다. GE는 1980~1990년대 전통적인 대규모 "제조업체"로서는 시장 가치를 가장 높게 제고했다. 1980년과 1998년을 비교했을 때 수입(revenue)은 300% 증가했고, 순소득(net earnings)도 520% 증가했다. 시장 가치의 폭등과 배당금 증가 등으로 주주들에게 돌아간 몫도 1200% 이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GE의 성공은 같은 기간의 미국 경제의 호황 때문만이 아니라, 잭 웰치만의 적극적인 "주주 가치 극대화를 통한 시장 가치 경영"의 산물로 보아야 한다. 실제로 GE의 성공 요인으로 꼽히는 전략들은 대부분 "실물적 생산"에의 투자와는 거리가 멀거나 오히려 역행하는 것이었다. 여기에는 △기업 인수와 기존의 사업 부문 양수도를 통한 재구조화(restructuring) △대규모 정리 해고와 연구개발(R&D) 투자 감소를 통한 '산업적' 비용 절감 △서비스, 특히 금융서비스 부문으로의 진출(GE 금융서비스) △대규모 자사주 매각(stock buybacks)을 통한 주가 부양 등이 있다.


  
  곧 다른 대기업들도 GE와 동일한 경영 노선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한 경영평론가에 따르면, 미국의 100대 기업 중 약 3분의 1이 GE 의 뒤를 따르고 있다. 여기에는 제너럴 모터스, 아이비엠(IBM), 시어스, 케이마트(K-Mart), 보잉, 휴렛-패커드 등 거의 전 산업에 걸친 대기업들이 포함돼 있다.


  
  ◇ "시장 가치 자본주의"의 결과들
  
  이러한 "시장 가치 경영"은 1980년대 이후 자본 축적이라는 자본주의 경제의 핵심 운영 준칙(rule of the game)이 '기업의 현재 시장 가치의 극대화'로 바꾸어 놓았다. 이런 변화는 기업 경영은 물론 금융시장의 구조, 산업, 노동시장 모두를 근본적으로 재구조화하는 것이었다.


  
  △ 현금 흐름: 경영 시간 지평의 단축
  
  기업의 장기적인 성장이나 자산총액의 증가와 같은 지표들은 뒷전으로 물러난다. 그 대신 '일정한 시간 내에 얼마만큼의 현금이 창출될 수 있는가'에 초점을 두는 소위 '캐시 플로우(cash-flow)'가 핵심 경영 지표로 등장한다. 이는 기업 경영의 시간 지평(time horizon)을 단축시키는 결과를 낳았으며, 이는 소위 "영미식 자본주의의 단기적 성과주의"라고 비판받는다. R&D 투자, 직원들의 교육과 장기적 생활복지, 기업 조직 내의 사회관계, 기업을 둘러싼 사회적 환경의 개선 등 기업의 장기적 성장에 필요한 것들은 일단 뒷전이 되고 심지어 희생당한다.


  
  △ 제조업체의 '금융 자본화'
  
  금융화의 가장 중요한 귀결 중 하나는 금융 기관과 비금융 기업들의 행태가 통일되는 것이다. '현재 시장 가치의 극대화', 이를 평가할 주주들이 가장 중요시하는 현금 흐름을 강화한다는 단일한 원칙 아래에서는 산업 자본이니 금융 자본이니 하는 전통적인 구별이 의의를 가질 수 없게 되는 것이다. 크립너(Greta Krippner)는 최근 '금융화'를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의 이윤 증가가 상품 생산과 교역보다는 주로 금융적인 채널을 통해 이루어지는 '축적 패턴'의 변화로 정의하자고 주장한 바 있다. 그의 연구에 따르면, 1980년대 중반부터 미국 법인의 이윤 중 제조업과 서비스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든 반면 금융, 보험, 부동산 등 금융 부문의 몫이 급격하게 증가했다.


  
  △ 금융 체제
  
  1970년대 이후 대형 기관투자가들이 규제가 풀린 금융시장을 넘나들면서 거의 모든 종류의 금융증서들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또 가계에서 은행, 보험, 연기금 등의 형태로 나오던 엄청난 자금이 모두 구획이 사라진 자본시장으로 밀려들었다. 경영자들은 스톡옵션 등의 보상체제를 통해 주주들의 이익과 밀착한 경영을 하게 됐고, 이는 '주주 이익의 극대화'라는 명분으로 이들의 기업 경영권을 더욱 강화시켰다.


  
  프로우드(Julie Froud) 등 영국의 회계학자들은 미국과 영국의 이런 주주 자본주의적 환경 아래에서 국민경제 차원에서의 금융 체제의 구성과 의미가 근본적으로 달라졌음을 지적했다. 새 금융 체제는 자본시장이 가계와 기업 부문을 잇는 매개자(intermediary)가 아니라 양쪽의 행동을 제어하는 규제자(regulator)가 되는, 이른바 '쿠폰-풀 체제(Coupon-pool System)'라는 것이다. 프로우드는 금융 시장 전체가 주식, 채권, 그 밖의 온갖 금융 증서들이 차별 없이 거래되는 쿠폰-풀의 틀로 통일된다고 본다. 이를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가계로부터 나오는 자금의 공급과 회수, 왼쪽으로는 국가와 기업에 의한 자금 융통이 이루어지는 두 개의 순환 구조가 생겨난다. 오른쪽에서는 가계 자금이 금융 빅뱅 등의 규제 완화를 통해 은행, 뮤추얼 펀드, 보험, 연기금, 부동산 등 기관 투자에 집중 유입돼 결국 모두 이 통일된 쿠폰-풀로 들어오게 된다. 한편 국가와 대기업은 자기 금융이나 조세에의 의존도를 줄이고 이 쿠폰-풀에서의 자금 융통 비중을 높인다. 이런 상황에서 쿠폰-풀은 기업 및 국가 부문은 물론 가계의 개인들의 경제적 행동을 결정하는 규제자가 된다.


  
  아직 이 왼쪽과 오른쪽의 구조를 모두 갖춘 나라는 그다지 많지 않다. 하지만 영국, 미국의 대금융 자본을 선두로 지구적 자본의 공세는 날로 강화되고 있으며, 대부분의 나라들은 이같은 방향으로 국내의 기업 및 금융 체제를 재구조화하고 있다. 한국도 IMF 체제 10년을 거치며 신자유주의적 경향을 국가와 기업 운영의 원리로 확립해가고 있으며, 최근에는 자본시장통합법(그야말로 "쿠폰-풀"이다)이나 금산분리 폐지 등을 통해 "빅뱅"까지 추구하고 있다.


  
  △ 기업 형태
  
  기존의 주요 자본주의 국가는 자국의 조건을 고려해 적극적인 산업 정책과 이를 뒷받침할 금융 정책을 편다. 대기업 등은 이같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조절(regulation) 아래에서 각자 목표에 따라 대기업 부문과 중소기업의 하청 부문에 이르는 일련의 산업구조와의 연쇄 관계를 맺어나간다. 하지만 이러한 축적 체제는 자본 축적을 평가하는 기준과 시간적 지평이 단기적인 "현재의 시장 가치와 현금 흐름"이라고 하는 원칙으로 바뀌면서 근본적인 변화를 겪게 된다. 먼저 상호 주식 보유(cross-share-holding)나 은행과의 장기적 관계 등을 매개로 했던 기업집단(corporate groups)이 해체된다. 기술적 생산성의 안정화와 향상 등과 같은 장기적인 기업 경영의 시간 지평에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중소기업 부문과의 연결 고리도 끊어지게 된다. 대신 기업을 주식시장에서의 평가에 가장 유리한 형태로 "날씬하고 옹골차게(lean and mean)" 만든다는 원칙이 세워진다.


  
  대기업, 나아가 산업 구조 전체를 주주 자본주의의 원칙에 맞게 재구조화하는 강력한 틀로 각광받는 것이 바로 '지주회사'다. 지주회사는 정점에 선 모기업이 '주식 가치'라는 단일한 원리에 따라 산하 기업들의 기업 통치(corporate governance)를 이룰 수 있는 이상적인 모습이다. 모회사는 산하 기업들 내에서 발생하는 복잡한 노사 문제를 간단히 회피할 수 있다. 또, 모회사는 산하 기업들의 주식 발행을 통해 자본을 조달할 수 있다. 게다가 기업 인수의 경우와 달리, 모회사는 산하 기업의 주식을 '50%+1만 보유하면 되기 때문에 기업 인수합병(M&A) 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2007년 한국, 기업과 금융 부문의 변모
  
  IMF 위기 이후 10년 동안 한국 사회에서 '금융 부문'이 엄청나게 확장되고 복잡해졌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화(financialization)'란 단지 '금융 부문의 확장'을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다. 오히려 금융화는 예전엔 '실물 경제'의 작동을 지원하는 역할에 그쳤던 금융 부문이 기업의 통제권을 장악하면서 실물 생산 그 자체를 근본적으로 변혁하는 것을 의미한다.


  
  ◇ 한국의 금융화 10년
  
  금융화란 기업, 노후 생계 등 우리의 삶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이러저러한 사회경제적 요소들을 금융적 이익의 추구가 가능한 형태'로 바꾸는 것이다. IMF 사태 이전엔 기업, 특히 국민경제와 고용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대기업을 자유롭게 사고파는 것이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IMF와 김대중 전 대통령은 기업 경영권 시장의 형성, 소유지배구조 개혁, 주식시장 자유화 등을 통해 기업과 은행을 주식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는 상품으로 전환시켰다. 또 주식시장을 개방해 이런 거래가 한국인이나 국내에서뿐 아니라 외국인과 국외에서도 이뤄질 수 있도록 했다. 결국 기업이 생산하는 상품을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기업 그 자체'를 상품화하고 국내외적으로 자유롭게 거래할 수 있도록 만드는 조치가 지난 10년간 한국에서 진행돼 왔던 것이다.


  
  '기업 그 자체'를 거래하는 주체, 즉 주주나 금융투자자들이 기업 운영을 좌지우지하는 권력으로 부상했다. 이런 과정을 촉진하기 위해 나타난 금융투자의 형태 중 하나가 바로 '자본주의의 왕'이라고 불리는 사모펀드다. 사모펀드는 주식시장에서 저평가돼 있다고 판단되는 기업의 경영권을 사들인 뒤, 비핵심 부문의 매각, 정리해고 등으로 기업 가치를 높인 뒤 되파는 것이다. 사모펀드는 유통과 생산 영역에 모두 개입해서 금융적 이익을 추구하는, 발전된 형태의 금융투자 형태다. 한국의 장하성 펀드, 보고펀드가 바로 이런 사모펀드다.


  
  사모펀드와 같은 금융투자자들이 기업 가치를 올리려면 구조조정을 통해 비핵심 부문과 노동자들을 해당 기업 밖으로 자유롭게 축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국가는 비정규직, 정리해고 등의 법률로 지원한다. 또한 투자자들이 세계 어디서나 자유롭게 이익을 추구하고 그 과실을 본국으로 송금할 수 있으려면 외환시장이 자유화돼야 한다. 이렇게 투자자의 이익을 지키기 위한 움직임이 바로 '소액주주운동'이고, 이같은 투자자 보호는 한미 FTA 등에서의 '투자자-국가 소송제(ISD)'로 절정에 달한다. '금융화'라는 시각에서 보면, 세계 자본주의를 주도하는 세력이 그토록 민영화를 재촉하는 이유도 알 수 있다. 대다수 공기업들은 생활 필수재를 생산하므로 시장이 넓고 현금흐름도 양호하다. 이런 '맛있는' 기업들을 민영화해서 사고파는 머니게임을 벌일 수만 있다면, 얼마나 많은 금융적 이익을 누릴 수 있겠는가.


  
  금융화는 국가 거시경제정책의 기조까지 바꿔 놓는다. 세금, 사회보장 등에 관련된 재정정책을 억제하고 통화정책의 궁극적 목표를 물가안정에 두는 것이다. 금융투자자 입장에서는 물가가 오르는 만큼 투자손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화는 서민들의 라이프-사이클을 금융시장에 연관시키기도 한다. 국가는 연기금, 실업보험금 등 공자금을 국내외 증권시장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고, 이 결과 한국인들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국제금융시장과 직간접적인 관계를 맺게 됐다. 한편, 이런 경제 환경에서는 저성장과 이에 따른 고용불안이 불가피하므로, 복지제도가 사회적인 의제로 떠오를 수밖에 없다. 문화적 측면에서는 탈민족주의와 반집단주의, '웰빙'을 강조하는 문화상품들이 부상한다. 고실업-저성장 사회에 의욕적인 시민들이 '지나치게' 많은 경우, 그 사회는 지탱될 수 없다.


  
  이처럼, IMF 사태 이후 한국에서 벌어진 일은 '자본시장(주식시장)의 활성화'라는 가치를 중심으로 사회, 경제, 문화 부문이 재조정되는 것이었다.
  

▲ IMF는 이제 '전 세계 거시경제의 수호자'가 아니라 '초국적 기업들의 세계화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지난 1월 24일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는 로드리고 라토 IMF 총재의 인도네시아 방문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연합뉴스


  

◇ 김대중 시대 : 신자유주의의 원시적 축적기
  
  김대중 전 대통령의 기업·금융 개혁은 결국 미국 월스트리트의 금융자본이 한국의 기업과 은행을 재료로 머니게임을 벌일 수 있도록 '기업 경영권 시장'을 개방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기존의 한국경제 시스템은 앙시앵레짐(구체제)의 '악의 축'이며 청산 대상으로 낙인찍혔고, 특히 재벌은 기존엔 불가능했던 M&A의 대상이 됐다.


  
  IMF는 국회로 하여금 한국은행법을 개정하도록 해, 국가의 경제 개입을 원천봉쇄했다. 재벌에 대해서는 상호지급보증을 금지해 다른 계열사에 대한 지원을 차단하는 한편 부채비율 200%를 내세워 재무구조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라고 명령했다. 이와 동시에 은행에는 BIS(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 8% 달성 및 대기업 여신 축소를 강요했다. 이는 기업과 기업의 자금줄인 은행의 목을 동시에 죄는 조치였다.


  
  이런 IMF의 명령에 따라, 한국 기업들은 은행 대출이 아니라 주식 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해야 했다. 이는 기업의 소유권과 경영권을 쪼개 주식시장에서 거래 가능한 상품으로 전환하는 것을 의미했다. 은행 역시 BIS 비율을 맞추기 위해 주식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해야 했는데, 이는 은행 역시 거래 가능한 상품이 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외국환 취급 은행의 스왑, 옵션, 선물거래 전면 허용 △상업은행에 대한 외국인 지분소유 제한의 철폐 등이 바로 1997년에 실시됐다.


  
  이렇게 기업과 은행이 결별하고 각각 '상품'이 되었다. 이렇게 기업과 은행이 상품이 되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몰려와 이 '상품'을 사들였다. 김대중 개혁이 진행됐던, 1998년 이후 3~4년은 기업과 은행이 국가와 재벌 가문, 상호 간의 속박에서 벗어나 주식상품으로 전화되기 시작한 '신자유주의의 원시적 축적기'라고 명명할 수 있겠다.


  
  이같은 기업·금융 구조조정과 함께 IMF가 강력히 요구했던 것이 바로 자본시장의 개방이다. 외국인들도 한국 기업을 자본시장에서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게 하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1998년 정부는 지배 지분을 획득하려면 주식의 상당 부분을 공개 매수하도록 했던 '의무공개매수제'를 폐지하고, 국내 기업과 은행에 대한 외국인의 적대적 인수합병(M&A)을 허용했다. 같은 시기 외국인에 대한 주식한도가 폐지됐고, 2조 원 이상 자산을 가진 국내 기업의 주식을 취득할 때 정부로부터 사전 허가를 받아야 하는 규정도 사라졌다. 국내 주식에 대한 외국인 투자제한도 철폐됐고, 국내 채권 및 단기 자본시장이 외국인에게 개방됐으며, 외국인들이 10% 이상 투자할 때 대상 기업 이사회의 사전 동의를 받도록 했던 규정도 폐지했다.


  
  그 결과, 해외자본은 국내 대표 기업과 금융기관을 보유하게 됐다. 해외자본은 외환은행, 국민은행, 하나은행, SC제일은행, 신한은행에서 1대 주주거나 50%를 상회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또한 해외자본은 삼성전자, SK텔레콤, LG화학, 포스코 등 국내 대표기업에서도 의미 있는 지분을 가지고 있다. 자동차와 조선, 석유화학 등 한국경제의 '등뼈'에 해당하는 산업들도 해외투자자들에게 넘어갔다.


  
  이렇게 해서 은행에서 많은 돈을 빌려 전략산업에 과감히 투자하는 고부채-고성장 모델은 역사의 피안으로 넘어가고, 저부채-저성장 시대가 왔다. 은행의 영업 형태가 수익성 극대화 일변도로 흐르면서 '위험이 낮은' 가계대출이 '위험한' 기업대출을 능가하게 됐다. 이는 기업의 자금사정을 압박하는 요인이 돼, 결국 국민경제 전체적인 총투자율의 저하로 이어졌다. 산업은행에 따르면 2005년 국내 설비투자 금액은 모두 78조 원으로, 1996년의 77조 원에서 1조 원(1.3%)밖에 늘어나지 않았다. 이같은 투자부진은 낮은 경제성장의 원인일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성장 잠재력을 훼손한다는 측면에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 노무현 개혁 : 금융시장 중심 사회의 심화
  
  한국은 '독재정권이나 재벌가문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자본시장이 전 사회의 소득-분배-소비를 결정하는 사회'로 이행하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정부는 이같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에 어떻게 대응해 왔을까. 김대중-노무현 '자유주의 2대 정부'의 대응은 '적극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적극적 적응'을 '대안 전략'으로 축약한 것이 바로 노무현 정부의 '동북아 금융허브론'이다. 2003년 초 세상에 선보인 동북아 금융허브론은 단순한 '금융산업 발전방안'이 아니라 일종의 국가발전 모델(즉 '고부가가치 서비스업을 주력산업으로 하는 통상국가')로 제시된 것이다.


  
  IMF 사태 이전에는 국내 예금자나 투자자의 돈이 국내 은행이나 증권사를 통해 국내 산업에서 운용된 뒤 다시 일정한 수익(이자)과 함께 국내 예금자나 투자자의 손으로 회귀하는 식으로 돈의 흐름이 형성됐다. 이에 비해 금융허브에서는 국내는 물론 해외의 돈까지 국내외 은행, 증권사, 자산운용사, 투자은행 등 금융회사를 통해 다양한 금융상품으로 운영된 뒤 다시 국내외의 투자자에게 회귀하는 방식으로 자금이 흐른다. 금융허브(financial hub), 즉 금융거래(financial)의 축(hub)이라는 용어 자체에 이미 '돈이 국경을 벗어나 세계적으로 순환한다'는 의미가 내포돼 있다. 결국 '금융허브 정책'이란 '돈의 세계적 순환'이라는 가능성을 기반으로, 국내외의 부유한 개인들이 자산을 투자하고 싶은 국내적 조건을 조성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국내외의 투자자들을 유치하려면 그들의 투자가 안전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야 한다. 한국 정부의 부당한(?) 시장 외적인 간섭으로 이들의 투자가 손해를 볼 위험이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장해야 한다. FTA의 기본정신 중 하나가 '투자자 보호'라는 점을 상기하면, 금융허브론과 FTA가 같은 전제를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볼 때 동북아 금융허브론은 '박정희 모델 파산론'과 '김대중(DJ) 개혁'에서 한미 FTA(자유무역협정)로 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다.


  
  결국, 노무현 정부의 금융허브론은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다른 표현이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의 물결은 세계경제 내에서 국민경제 간 서열을 변화시킬 것인데, 정부는 이 수직적 서열 체계에서 가급적 높은 자리에 한국경제를 세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예컨대 중국에서 IMF 사태와 비슷한 경제위기가 발생해 기업가치가 현저히 낮게 평가될 회사가 있다면, 이 중국 회사를 인수해 구조조정 한 후 되팔아 막대한 수익을 얻는 '금융 연금술'의 주인이 반드시 미국이나 유럽의 금융업자일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 시대의 금융강국! 이것이 참여정부의 꿈이다.


  
  이 꿈을 이루기 위해 노무현 정부는 법률적으로 치밀한 준비를 해 왔다. 우선 한국을 '자산운용업 중심의 금융허브'로 육성하겠다는 계획 하에 지난 2003년 한국투자공사(KIC)를 설립했으며, 간접투자자산운용업법을 제정했다. 2005년엔 금융기관의 아웃소싱을 활성화할 목적으로 '금융기관의 업무위탁 등에 관한 규정'의 개정안 원안인 '금융기관의 업무위탁 등에 관한 규정'을 냈다. 2008년부터는 자본시장통합법을 시행할 예정이다.


  
  ◇ 한국사회 금융화의 전망
  
  김대중 정부가 추진한 금융화는 노무현 집권기에 한 단계 도약했다. IMF 금융위기 이후 한국에 강요된 신(新)금융 질서를 적극적으로 내재화하고 '우리의 역량'으로 바꿔, 다른 개발도상국에서 '한국이 당했던 그 방식'으로 금융적 이익을 추구하는 구상을 갈고 닦았던 시기가 지난 4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와 함께, '한국경제의 성격'을 다시 한 번 송두리째 바꿀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2008년 시행될 예정인 자본시장통합법, 오는 정기국회나 대통령 선거 이후에 시도될 한미 FTA의 비준, 금산분리 철폐 및 한국판 엑슨 플로리오법 추진, 생명보험사 상장, 재벌그룹들의 지주회사 전환 움직임 등이 그것이다. 이런 움직임들은 결국 재벌을 '금융화의 완료'에 동력으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금융화의 동력으로 활용된 이후 재벌들의 고용창출 능력 및 산업연관 효과는 지금보다 훨씬 더 열악해질 가능성이 높다.

 


  
  맺으며
  
  신자유주의를 축적 기획으로 이해한다면 지난 10년간 김대중 노무현 두 정권을 거치면서 진행돼 온 한국 사회의 변화, 특히 기업과 금융 부문의 변화는 '금융화'라는 방향을 꾸준히 지향하는 일관성을 보여 왔음을 알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한미 FTA는 결코 정치권과 한미 간의 정치적 관계에 의해 벌어진 일탈적인 사건이 아니다. 오히려 '축적 기획'이라는 경제적 관점과 '국내 자본과 지배 세력의 기획'이라는 정치적 관점에서, 한미 FTA는 지난 10년간의 구조 변화가 가져온 자연스러운 귀결임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신자유주의적인 사회 구조 변화는 소위 지구화된 세계경제에서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이자 지상 명령일까. 만약 신자유주의를 "보이지 않는 손"이라든가 "역사의 운동 법칙"과 같은 초월적인 개념들로 파악한다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를 자본과 지배 세력의 축적 기획으로 파악할 경우, 이 기획이 지닌 적나라한 정치적 성격이 드러나게 된다. 우리는 이러한 지배 세력의 기획을 저지시키는 투쟁을 조직해야 한다. 국가 기구를 통한 시장 독재의 저지 등과 같은 소극적인 방향이 아니라, 이런 기획 자체를 대체할 수 있는 진보 세력의 독자적인 기획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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