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시각]

현 유가의 60%가 투기 때문...美 감독기관의 '악의적 무시'가 문제

 

 고유가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세계석유회의(WPC)가 지난 3일 막을 내렸다. 그러나 아무런 합의점을 찾지 못한 이 회의를 비웃듯 이날 유가는 배럴당 146달러를 돌파해 최고치를 또 한 번 갈아치웠다.
  
  최근 유가 급등의 원인으로는 달러화 하락, 미국 원유 재고량 감소, 이란 정세 불안정 등이 꼽힌다. 달러화 문제만 제외하고는 '정정 불안과 수급 불안정'이라는 고전적인 분석이다. 세계석유회의에서 석유 수입국들이 생산국들을 향해 원유 증산을 요구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유가 상승은 수요-공급 문제가 아니라 석유에 대한 투기 때문이라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번 회의에서 생산국들이 투기자금 문제를 강하게 지적한 것은 그같은 시각을 반영한 것이었다.
  
  투기가 고유가를 부른다고 주장하는 쪽의 근거는 무엇일까?
  
  미국의 경제·에너지 전문가인 윌리엄 엥달(William Engdahl)에 따르면, 석유 선물(先物)을 온라인으로 사고파는 장외시장에 대해 미국 선물거래위원회(CFTC)의 감시를 면제해준 2000년 상품선물현대화법 때문이다. 이 법에 의해 골드만삭스 같은 석유 거래 은행들의 고삐가 풀어졌고, 마음 놓고 가격조작과 투기를 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그는 또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미국인들이 미국산 석유 상품을 미국에 있는 컴퓨터를 사용하면서도 미국시장이 아닌 영국시장을 통해 거래하도록 눈감아 준 것도 투기를 부추겼다고 분석했다. 따라서 그는 현재 유가의 60%는 투기 요소 때문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유가 상승을 수급 요인으로 분석하는 시각과 투기 요인으로 분석하는 시각 사이의 어딘가에 진실이 있다며 유보적인 입장을 취하곤 한다. 그러나 엥달의 관점은 두 시각 중 하나를 택일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수급 불안정이라는 껍데기를 벗기면 그 안에 투기적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는 것이다.
  
  엥달은 최근 <석유 지정학이 파헤친 20세기 세계사의 진실>이 번역되면서 국내에도 이름이 알려진 에너지 문제 전문가이다. 다음은 엥달이 지난 5월 2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게재한 '유가의 60%는 투기 때문'이란 글(☞원문보기)을 번역한 것이다. <편집자>


 
"오일 피크 신화와 무관한 유가 상승"
  
  오늘날 원유(crude oil) 가격은 고전적인 수요-공급 법칙에 따라 만들어지지 않는다. 유가는 영미권 4대 메이저 석유회사들은 물론이고 복잡한 금융시장 시스템에 의해 지배된다. 현재 원유가의 60%는 대형 은행(trader banks)과 헤지펀드들이 주도하는 순수한 의미의 투기(speculation)에 따른 것이다. 석유 생산량은 최고점에 이른 뒤 줄어든다는(Peak Oil) 신화와 무관하다. 유가는 석유와 그 가격에 대한 지배와 관련된 것이다. 과연 어떻게?
  
  첫째, 런던과 뉴욕에서 이뤄지는 국제 석유거래는 유가 결정 게임에 있어 결정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한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와 런던국제(석유)거래소 선물시장(ICE Futures)은 국제 유가의 표준가격을 좌우하고 있다.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와 북해산 브렌트유라는 두 원유에 대한 선물(先物, futures) 계약을 통해서다.
  
  NYMEX, ICE보다 나중에 생긴 석유거래 시장인 두바이 상품거래소(DME)는 NYMEX의 자식뻘 쯤 되는 곳인데, 제임스 뉴섬 NYMEX 회장은 DME의 이사이며, 영국인과 미국인들이 DME의 요직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해산 브렌트유는 스팟계약(시점 필요에 따라 특정 원유를 판매자와 수요자간에 거래하는 현물 계약)과 장기계약(1년 이상 기간 동안 일정 물량을 정기적으로 인도하는 계약)을 통해 국제 석유시장에서 매일 생산되는 대부분의 원유에 대한 값을 매기는 데 활용된다. 브렌트유 가격은 <플래츠>(Platt's)라는 석유 관련 출판기업에 의해 공개된다.
  
  러시아, 나이지리아 등 주요 산유국들은 브렌트유를 기준으로 자신들이 생산한 석유에 가격을 매긴다. 이처럼 브렌트유는 유럽 시장에서의 핵심적인 유가 표준(crude blend)이다. 아시아 시장에서도 어느 정도 그러하다.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는 역사적으로 미국산 원유 가격을 형성하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 즉, 미국에서 거래되는 석유 선물가의 토대가 될 뿐만 아니라, 미국 석유 생산량 산출의 중요한 기준이기도 하다.

▲ 유가가 최고치를 갈아 치운 지난 3일 호주의 한 주유소를 걸어가고 있는 주민 ⓒ로이터=뉴시스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
  
  여기까지는 좋다. 공식적인 얘기들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유가 결정 과정은 매우 불투명해서, 골드만삭스나 모건스탠리 같은 몇몇 대형 석유 거래 은행들만이 누가 석유 선물이나 파생상품을 사고 파는지 알고 있다. 선물이나 파생상품은 이 낯설고 새로운 '페이퍼 오일'의 세계에서 실제 유가를 결정한다.
  
  지난 10년에 걸쳐 석유 선물시장에서는 파생상품들이 당국의 감독을 받지 않은 채 거래되는 기법이 발달했다. 현재의 투기성 유가 버블은 그에 따라 생겨난 것이다.
  
  석유 선물거래와 런던·뉴욕에서의 선물 계약이 등장한 이후 유가 결정권은 석유수출국기구(OPEC)에서 월스트리트의 손으로 넘어갔다.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전형적인 사례다.
  
  미 상원의 상설조사소위원회는 2006년 6월 '투기가 석유 및 가스의 가격 상승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보고서에서 "엄청난 투기가 가격 급등을 이끈다는 결론을 뒷받침하는 실질적인 증거가 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에 딸린 증거 자료들은 석유 파생상품에 대한 미국 정부의 감독에는 코끼리 떼가 들어가고 남을 정도의 커다란 법적 허점이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그것은 최근 몇 달 간 유가가 지붕을 뚫고 솟구치는 이유를 정확히 설명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상원의 그 보고서는 언론과 의회의 주목을 받지 못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선물거래를 감독·규제하는 기관인 미국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의회의 위임을 받아 선물시장의 가격이 조작되거나 과도한 투기에 의해 왜곡되지 않고, 수요-공급의 법칙에 의해 형성되도록 하는 일을 맡아왔다.
  
  미국 상품거래법(CEA)은 "상품 선물거래 계약에 따른 과도한 투기는 해당 상품의 가격을 갑작스럽고 변덕스럽게 변동시키거나 부당한 방법으로 변화시키기 때문에 미국 내 주(州) 사이에서 벌어지는 무역활동에 부당하고 불필요한 부담을 준다"라고 되어 있다.
  
  나아가 이 법은 "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그 부담을 줄이고, 없애고, 막는 데 필요한 것을 발견했을 때"라는 말로 CFTC로 하여금 거래 제한규정을 만들도록 하고 있다. 그렇다면 CFTC는 우리가 필요한 그러한 제한규정을 어디에 만들어 두었나?
  
  CFTC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거래 상품인 석유를 감독하는 책임에서 의도적으로 발을 뺀 것으로 보인다.


  
  막판에 웃은 엔론
  
  상원 상설조사소위원회의 보고서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최근까지 미국의 에너지 선물은 NYMEX에서와 같이 (당국의) 감독을 받는 상태에서 거래되도록 규제됐다. 선물거래위원회(CFTC)는 그 거래에서 있을 가격 조작이나 사기행위를 지속적으로 감시하는 등 철저히 감독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 간 선물 계약으로 보이거나 선물 계약처럼 설계된 거래가 엄청나게 늘어났지만, 그같은 계약들은 감독을 받지 않는 장외(OTC) 전자(인터넷) 시장(electronic markets)에서 거래되고 있다. 그 거래들은 선물 계약과 유사하기 때문에 '유사 선물(futures look-alike)'이라고 부르곤 한다.
  
  유사 선물과 선물의 유일한 차이는 유사 선물은 감독받지 않는 시장에서 거래되고, 선물은 감독과 규제를 받으며 거래된다는 것뿐이다. 큰 기업들이 장외(OTC) 전자(인터넷) 거래를 통해 에너지 상품을 사고파는 것은 2000년 상품선물현대화법(Commodity Futures Modernization Act)의 한 조항에 따라 CFTC의 감독으로부터 면제되었다. 그 조항은 엔론(Enron)과 다른 거대 에너지 기업들의 로비(behest)에 의해 (2000년 끝난) 106대 의회가 문을 닫을 무렵 삽입되었다.
  
  그 조항은 CFTC의 시장 감독 기능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예를 들어, NYMEX 거래자들은 모든 거래 기록을 보관하고 규모가 큰 거래에 대해서는 CFTC에 보고하도록 되어 있다. 이 보고서와 일일 거래 자료들은 투기가 있었는지를 판정하고 가격 조작을 찾아내고, 막고, 조사하는 기초적인 도구들이다. CFTC 의장 르벤 제프리는 최근 "우리 위원회의 거래 정보 시스템은 감시 프로그램의 초석이며, 가격을 조작하려는 거래자들이 사용할 수 있는 수단을 적발할 수 있게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감독을 안 받는 장외 전자 거래에서 거래자들은 기록을 보관하거나 CFTC에 거래 보고서를 제출할 필요가 없고, CFTC의 일상적인 감시에서도 면제된다. 또한 거래 횟수도 제한을 받지 않아 투기꾼들은 아무런 감독·규제를 받지 않은 채 장외 전자 거래를 할 수 있다. 거래 자체에 대해서는 모니터링을 받지 않으며, 특이 거래(미결제 약정)의 규모를 매일 보고할 필요도 없다."
  
  그러던 중 2006년 1월 부시 행정부의 선물거래위원회(CFTC)는 에너지 전자상거래를 가장 많이 하는 런던 국제거래소(ICE)로 하여금 런던 ICE 선물거래에서 미국산 원유를 선물로 사고 팔 수 있도록 미국에서 단말기를 사용할 수 있게 했다. 그것을 '런던국제거래소 선물시장'(ICE Futures)이라 불렀다. 이같은 조치는 유가 조작을 가능케 하도록 문을 활짝 열어준 것임에 틀림없다.
  
  과거 런던국제거래소 선물시장에서는 브렌트유와 영국산 천연가스 같은 유럽산 에너지 상품들만 거래됐었다. 영국 선물시장인 ICE 선물시장은 영국 금융 당국에 의해서만 감독을 받았다. 그러다가 1999년 런던 거래소는 미 CFTC로부터 미국에도 컴퓨터 단말기를 설치할 수 있다는 허가를 받았다. 뉴욕이나 다른 미국 도시의 거래자들이 ICE 거래소를 통해 유럽산 에너지 상품을 사고 팔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었다.
  

▲ NYMEX 회장이자 두바이 상품거래소(DME)의 이사인 제임스 뉴섬. 그는 과거 미국의 선물거래를 감독하는 상품선물거래위원회(CFTC)의 위원장이었다. CFTC는 미국인들이 미국에서 미국의 상품을 영국 시장을 통해 거래되는 데에 아무런 감독을 하고 있지 않다. ⓒ로이터=뉴시스

투기 감독 기관이 투기의 문을 열어 주다
  
  2006년 1월부터 런던에 있는 ICE 선물시장은 미국에서 생산되고 인도되는 서부 텍사스산 중질유(WTI)의 선물을 거래하기 시작했다. 또 미국의 거래자들이 미국에 있는 ICE 단말기를 이용해 런던 거래소에서 새로운 WTI 계약을 맺고 거래할 수 있게 허용할 것이라고 CFTC에 통보했다. 나아가 ICE 선물시장은 미국의 거래자들이 미국산 휘발유와 난방용 기름에 대한 선물을 런던에 있는 ICE 선물시장에서 거래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즉, 이 조치는 미국 사람들이 미국에 있는 단말기를 이용해 미국산 석유, 휘발유, 난방유 등에 대한 선물 거래를 영국 시장에서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CFTC는 지금까지 이 거래에 대한 관할권을 주장하지 않고 있다.
  
  미국에 살면서 미국의 주요 에너지 상품들을 거래하는 사람들이 뉴욕에 있는 NYMEX가 아니라 런던에 있는 ICE 선물시장을 통해 거래한다는 것은, 미국 시장에 대한 감독을 피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정말 대단하지 않은가? 미국 정부의 에너지 선물거래 감독기관인 CFTC가 자신의 감독을 받지 않는, 그리고 매우 불투명한 석유 선물 투기의 길을 터준 것이다. NYMEX 회장이자 두바이 거래소의 이사인 제임스 뉴섬이 미국 CFTC의 전임 위원장이었다는 사실은 그저 우연의 일치일 것이다.(반어적 표현-옮긴이) 워싱턴의 회전문은 민간기관과 공공기관 사이를 천천히 돌고 있다.
  
  2006년 이후 브렌트유와 서부 텍사스 중질유에 대한 선물 가격을 일별해 보면 치솟는 유가와 미국 시장에서 통제받지 않는 ICE 선물거래 사이에는 뚜렷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런던 ICE 선물시장은 애틀란타에 있는 한 미국 기업이 소유하고 지배한다는 점을 유념하라.
  
  미국 선물거래위원회(CFTC)가 ICE 선물시장에 문을 열어주던 2006년 1월 당시 유가는 배럴당 59~60달러였다. 그 후 2년이 지난 지금은 120달러(이 글을 쓴 5월 초 유가-옮긴이)에 다다랐고 더 오르는 추세에 있다. 유가 상승은 OPEC이 아니라 미국 감독 기관들의 악의적 무시((malign neglect) 때문인 것이다.
  
  CFTC는 ICE에 대규모 에너지 거래에 대한 일일 보고서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가격 조작을 적발하거나 막을 수 없다. 상원 조사소위원회 보고서에서 밝힌 대로 "에너지 가격 조작을 적발하고 막아야 하는 CFTC는 심각한 정보 부족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것은 장외 전자 거래를 하는 사람들과 런던 ICE 선물시장이 CFTC에 보고할 의무를 면제받았기 때문이다. 대규모 거래를 보고하는 것은 에너지 가격에 형성에 있어 투기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하는 데에도 긴요하다."
  
  상원 보고서는 또 "ICE가 미 증권관리위원회(SEC)에 제출하는 문서와 증거서류들을 보면 ICE의 장외 전자 거래는 가격예시기능(price discovery function)을 통해 현물시장(cash market)에서의 에너지 가격에도 영향을 미친다.
  


  헤지펀드와 은행의 유가 올리기
  
  최근 에너지 가격이 계속 인상되면서 대형 금융기관, 헤지펀드, 연금, 기타 투자자들은 가격 변동이나 그에 연계된 매매를 통해 수익을 얻기 위해 에너지 상품 시장에 수십억 달러를 쏟아부어왔다.
  
  이렇게 추가로 투자된 돈의 대부분은 에너지 상품을 생산하거나 소비하는 측에서 온 게 아니라, 가격 병동을 이용해 이득을 보려는 투기세력에서 온 것이었다. CFTC는 투기꾼을 "상품을 생산하거나 사용하는 게 아니라 가격 변동을 통해 수익을 얻으려고 위험을 무릅쓰고 어떤 상품에 자본을 붓는" 사람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투기세력이 원유 선물을 대량으로 사들이면 추가 수요가 발생하고 미래 인도분에 대한 가격을 올린다. 그것은 추가 수요가 발생해 현물 시장에서 당일 인도분에 대한 가격이 오르는 것과 이치가 다를 바 없다. 선물시장도 시장이기 때문에, 투기꾼들이 선물을 구매함으로써 생기는 석유 1배럴만큼의 수요는 정유업자나 기타 석유 사용자들이 선물을 구매함으로써 생기는 1배럴만큼의 수요와 같은 것이다.


  
  유가의 60%가 투기 때문
  
  골드만삭스와 모건스탠리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큰 에너지 거래 기업이다. 시티그룹과 제이피모건 체이스는 주요 (투기) 행위자이고, 역시 투기를 하는 수많은 헤지펀드에도 투자한다.
  
  2006년 6월 석유는 선물시장에서 배럴당 60달러 정도에 거래됐고, 미국 상원 조사에서는 그 중 25% 정도가 순전히 투기에 의해 형성됐다고 평가됐다. 한 분석가는 2005년 8월 미국의 석유 비축량을 감안할 때 서부 텍사스 중질유의 가격은 배럴당 60달러가 아니라 25달러 가량이 되어야 한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그것은 최근 배럴당 115달러 하는 석유값 중 50~60달러 혹은 그 이상은 순전히 헤지펀드와 금융기관들의 투기 때문에 생겼음을 뜻한다. 그러나 뉴욕 NYMEX와 런던 ICE에서 거래되는 석유 선물의 가격이 폭등하는 와중에도 석유 수요량과 공급량이 변함없이 균형점을 찾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재 석유가의 60% 정도가 투기에 의한 것일 수 있다.
  
  뉴욕과 런던에 있는 극소수 에너지 거래 은행들을 제외하고는 이에 대한 정확한 수치를 아는 데는 없고, 그 은행들은 분명한 말을 하고 있지 않다.
  
  투기세력들은 수많은 선물을 사들이고, 그를 통해 선물가를 시가보다 높게 올림으로써 석유기업들로 하여금 더 많은 석유를 사들이고 비축하게 하는 동기를 제공한다. 정유업자들은 배럴당 115달러가 되어도 미래의 가격이 더 높다고 판단하면 바로 오늘 남은 석유를 사들일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난 2년간 (석유기업들의) 원유 비축량은 꾸준히 증가해왔고, 현재 미국의 원유 비축량은 지난 8년 동안 가장 많다. 석유 선물에 대한 투기적 투자금이 대규모로 유입되면서 원유 공급량과 가격이 모두 높은 상태에 놓이게 되었다.
  
  원유 수급에 대한 실제 데이터를 보면, 현재의 에너지 가격 상승은 지정학적·경제적·자연적 요인들로 설명되지 않음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수요량은 지난 몇 년간 상당히 늘었는데, 공급량 역시 마찬가지로 늘었다.
  
  지난 2년 동안 국제 원유 생산량은 수요의 증가에 따라 늘어왔다. 미국 에너지부에 따르면 사실 이 기간 동안 공급이 수요를 앞질렀다. 에너지부 산하 에너지정보국은 잉여 생산 능력이 2010년까지 하루 300~500만 배럴 정도 꾸준히 증가해 "여유량이 상당히 많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은 투기적 석유거래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는 골드만삭스의 회장이었다. ⓒ로이터=뉴시스

달러-석유 연계
  
  돈이 증시로 몰리면서 더 많은 투자 수익을 얻고자하는 투기세력과 일반 투자자금은 달러는 '매도', 석유는 '매수' 포지션을 취한다. 미국 경제가 쇠퇴하고 달러 가치가 하락하는 상황에서 가져야 할 일반적인 투기 전략이다.
  
  2007년 8월 이후의 수익 폭락과 미국발 부동산 위기가 이어지자, 수익을 얻는데 다급해진 미국과 유럽연합(EU)의 덩치 큰 연금 펀드나 은행들이 엄청난 투기적 이득을 얻을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석유가 되었다. 중동·수단·베네수엘라·파키스탄에서 계속되는 정세 불안, 중국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 지역에서의 견조한 석유 수요는 현재의 유가 거품을 지탱하는 배경이다. 투기꾼들은 팩트가 아니라 루머로 거래한다.
  
  또 북미와 EU의 메이저 석유기업들과 정유업자들이 석유를 사재기 하기 시작하자, 공급도 수월치 않게 되어 현재의 가격을 지탱하고 있다.
  
  장외시장과 런던 ICE 선물 에너지 시장이 아무런 감독을 받지 않기 때문에 최근 에너지 상품에 대한 투자에 얼마의 달러가 투입되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수백억 달러 정도가 지속적으로 유지된다고 평가되고 있다.
  
  상품들에 대한 투기적 관심이 늘고 있다는 것은 다양한 상품의 선물 가격과 연계된 '상품지수펀드(index fund)'의 인기가 높아지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골드만삭스의 평가에 따르면, 연금펀드와 뮤추얼펀드가 상품지수펀드에 투자한 자금은 총 850억 달러 정도다. 또한 골드만삭스 상품지수(GSCI) 같은 자체 상품지수에 대한 투자도 지난 몇 년간 3배 이상 늘었다.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이 골드만삭스 회장이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황준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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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중강좌 : 맑스주의, 무엇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

 

      새움에서 진행되었거나 혹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각종 세미나, 강좌의 주제들을 중심으로, 맑스주의적 관점을 통해 바라볼 수 있는 다양한 분과학문들에 대해 소개하는 강좌입니다. 맑스주의적 관점이 어떤 영역에서 어떠한 방식으로 적용될 수 있는지 개괄적으로 살펴볼 수 있는 대중강좌입니다. 맑스주의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이도 부담없이 들으실 수 있습니다.

 


1강 (7/3)     맑스주의와 노동  

              - 강사 : 이종탁 (비정규직노동센터 부소장)

2강 (7/10)    맑스주의와 환경  

               - 강사 : 김민정 (새움회원, 성공회대 사회학 박사수료)

3강 (7/24)    마르크스 경제학

                  - 강사 : 김정주 (새움회원, 경상대 사회과학연구원 연구교수)

4강 (7/31)    해방신학         

               - 강사 : 김성호 (새움회원, 성공회대 신학 박사수료)

5강 (8/7)     역사적 자본주의론 

                  - 강사 : 정웅기 (새움회원)

6강 (8/14)    맑스주의의 역사   

                  - 강사 : 한형식 (새움회원)





  ■ 세미나 : 마르크스 경제학 입문

   

    마르크스의 ‘정치경제학 비판’ 이라는 작업의 내용이 무엇이고, 그것이 오늘날 어떤 의미를 갖는지에 대해 살펴봅니다. 『정치경제학원론』(김수행) 을 주 텍스트로 하여 여름방학 9주동안 진행됩니다. 입문적인 성격의 세미나이므로 마르크스 경제학에 대한 관심만 있으시면 누구든지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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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담당 : 최희명 (새움회원. 서울대 경제04, 010-9360-20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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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학기술학회 2008년 전기 학술대회

- “사회적 쟁점으로서의 과학기술”-



장소: 동국대 원흥관 E103호

일시: 2008년 6월 14일(토) 오전 10시



프로그램


09:45~10:00  등록

10:00~10:10  개회사 김문조(한국과학기술학회 회장)

10:10~10:20  축사 : 진정일(과학문화진흥회 회장, 고려대 명예교수)


주제발표Ⅰ 사회 : 김문조(고려대)

10:20~11:00  “Scientists behaving badly, why?: 연구윤리의   저해요인들”
                     발표 박기범(과학기술정책연구원)
                     토론 송성수(부산대)
11:00~11:10   질의 및 응답


11:10~11:50  “한반도 대운하와 과학기술”
                       발표 윤순진(서울대)
                       토론 김환석(국민대)
11:50~12:00   질의 및 응답


12:00~1:30 점심



주제발표 Ⅱ 사회 : 김종영(과학기술정책연구원)

1:30~2:10  “정치화된 위험과 위험관리의 실패: 미국산 쇠고기 수입에 따른 광우병 논쟁”
                  발표 : 정병걸(동양대), 성지은(과학기술정책연구원)
                  토론자 : 홍성욱(서울대)
2:10~2:20   질의 및 응답


2:20~3:00  “기후변화논쟁을 통해 본 환경과학의 역할과 성격”
                  발표 : 박희제(경희대)
                  토론 : 박진희(동국대)
3:10~3:20   질의 및 응답


3:20~3:40 휴식


주제발표 Ⅲ 사회 : 이은경(전북대)

3:40~4:20  “호주와 한국의 수돗물 불소화논쟁 비교”
                 발표 : 서이종(서울대)
                 토론 : 이영희 (가톨릭대)
4:20~4:30  질의 및 응답


4:30~5:10  “이과대학원생의 정체성 구성과 사회화”
                 발표 : 김동광(국민대)
                 토론 : 김병윤(렌슬러공대)
5:10~5:20  질의 및 응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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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의료 산업화, 맹장수술 1천

 

만원 시대 불러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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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석균 성수의원 원장을 처음 인터뷰했을 때를 잊을 수 없다. 영화에나 나올 것 같은 허름한 병원도 낯설었지만 그는 도저히 의사처럼 보이지 않았다. 머리는 언제 감았는지 모르게 헝클어져 있었고 코털이 삐져나와 있었고 감기에 걸렸는지 계속 콜록거렸고 교통사고가 났다면서 팔에는 붕대까지 감고 있었다. 게다가 인터뷰 하는 동안 내내 담배를 피워댔다. 어딘가 당장 입원이라도 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를 다시 만난 것은 이명박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일련의 의료 산업화 정책에 대한 좀 더 구체적인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을 맡고 있는 그는 한미자유무역협정(FTA)와 관련, 미국산 소고기와 유전자변형식품(GMO) 수입 문제 등으로 정신 없이 바쁜 날을 보내고 있다. 올해 들어서는 이명박 정부의 의료 산업화 정책이 최대 현안으로 떠올랐다. 이명박 정부는 우리나라 의료 시스템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계획인데 정작 이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허름한 성수의원은 1988년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산재 투쟁을 이끌었던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이 설립한 곳이다. 성수의원은 이 지역 주민들에게 단순히 병원 이상의 공간이다. 양 원장의 뒤를 이어 받은 우 원장은 성동건강복지센터를 설립해 저소득 계층과 외국인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무상 진료를 실시하고 있다. 간판조차 찾기 힘든 작은 병원이지만 환자들이 끊이지 않고 몰려드는 것도 이 병원과 우 원장에 대한 무한한 신뢰 때문이다.

인터뷰는 지난달 31일 오후, 우 원장이 환자를 보는 틈틈이 5시간에 걸쳐 이뤄졌다.

- 이명박 정부의 의료 산업화 정책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영리병원을 허용하고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민영보험을 활성화하는 것, 그리고 하나 더하자면 장기적으로 건강보험 재정을 축소하는 것 등이다. 벌써부터 그 부작용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은데 도대체 모르고 밀어붙이는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밀어붙이는 것인가. 어떻게 생각하나.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의료산업화 정책은 2005년 삼성경제연구소에서 낸 '의료산업 고도화의 과제'라는 보고서에서 그대로 배껴온 것이다. 애초에 삼성생명과 삼성의료원으로 대변되는 국내 보험회사들과 대형 병원의 이해관계를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른바 '고소영'이나 '강부자'라는 사람들은 민영 의료보험에도 들고 비용을 더 부담하더라도 더 좋은 병원을 찾고 싶을 것이다. 건강보험을 축소하고 각자 알아서 해결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바로 이 사람들이다. 건강보험 안 받는 병원을 만들자는 주장은 거대 자본과 일부 부유층의 이해가 맞물려 나온 발상이다."

- 이명박 정부는 태국이나 싱가포르와 비교도 한다. 의료 산업화를 통해 경쟁력을 높이면 해외로 빠져 나가는 의료비도 줄이고 오히려 해외 환자들도 받을 수 있지 않겠느냐는 논리인데.
"싱가포르는 공립 병원이 80%가 넘는다. 병상으로 치면 85% 정도다. 우리나라는 병원이 8% 정도, 병상 수로는 15% 정도다. 애초에 인프라가 다르다는 이야기다. 싱가포르는 교육과 의료와 주택을 나라에서 제공하고 그 위에 의료 산업화가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가장 큰 레플즈 병원만 해도 외국 환자들이라고 해봐야 인도네시아나 말레이시아 등 이웃 나라의 해외 상사 직원들이 대부분이다. 생각해 봐라. 누가 자기 나라에 있는 좋은 병원 두고 말도 안 통하는 낯선 다른 나라에서 치료를 받겠는가. 싱가포르처럼 의료 수출이 성공하려면 조건은 세 가지다. 언어가 같고 이웃 나라의 의료 시스템이 부실하고 또 해외 나가서 치료를 받을만한 부유층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를 봐라. 일본이나 중국과 언어도 다르고 일본은 감기만 걸려도 자기네 나라 돌아가 치료하는 사람들이다. 누가 우리나라 병원을 찾겠는가. 게다가 우리나라 물가가 일본이나 중국보다 싼가. 절대 그렇지 않다."

- 태국은 어떤가. 태국으로 성형수술 받으러 가는 사람들도 많고 그만큼 외화 획득에도 도움이 된다고 하지 않은가.
"태국은 의사들이 모두 성형수술만 하는 바람에 의료 시스템이 엉망이다. 농촌은 의사들 찾아보기가 어렵다. 의료 시스템이 외국 환자 따로 국내 환자 따로 분리할 수 없기 때문에 태국 사람들 입장에서는 전반적으로 의료비가 터무니없이 높다. 아마 정부 관계자들은 수박 겉핥기식으로 구경만 하고 왔거나 아니면 알면서도 이런 현실을 무시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도대체 의료 산업으로 성장률을 올리겠다는 나라가 세계에 어디 있나."

- 민영 의료보험 활성화부터 이야기해보자. 우리나라는 이미 민영 의료보험이 꽤나 활성화된 상태다. 집집마다 암 보험 하나 안 든 곳이 없는데. 얼마나 더 활성화한다는 이야기인가.
"가구로 보면 65~70% 정도가 암 보험 등 민영 의료보험에 가입해 있다. 생명보험은 90%가 넘는다. 이미 포화상태인 셈인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실손형 보험으로 가려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정액으로 암이면 얼마, 어디 부러지면 얼마, 입원하면 얼마 이렇게 나왔는데 이제는 병원비가 나오는대로 보장을 해주겠다는 것이다. 굳이 말하자면 민영 의료보험에 가입하는 대신 나홀로 무상 진료가 되는 셈인데 문제는 보험료가 턱없이 올라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의료비 가운데 건강보험 빼고 본인 부담이 10조원 정도인데 이게 모두 민영 의료보험 시장이 된다. 민영 의료보험으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10조원 이상으로 늘어나게 될 가능성도 있다. 보험회사들 몫을 챙겨야 할 테니까."

- 건강보험공단이 보유하고 있는 개인 질병정보를 민영 의료보험과 공유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무슨 이유에서인가.
"보험회사 입장에서는 실손형 보험의 경우 가입자가 병에 걸리면 진료비를 모두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병에 걸릴 확률이 높은 사람을 제외하려고 할 것이다. 건강한 사람만 받아야 수익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생명보험과 의료보험 사이에도 정보 교환을 금지하고 있고 의료보험 사이에서도 정보 교환에 제한이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가입자들 개인 질병정보를 보험회사에 넘겨주려고 한다. 프라이버시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도 질병정보가 공개되면 이를 빌미로 보험료를 높여 받거나 아예 가입을 거부할 수도 있다. 더 큰 문제는 실손형 보험이 확산되면 보험회사들이 병원 진료에 개입하게 된다는 것이다."

- 영화 '식코'에 보면 보험회사가 진료를 거부해 수술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 이야기가 나온다. 어떻게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가.
"우리나라에서는 아픈 사람이나 환자를 경멸하는 용어가 없는데 식코(sicko)라고 하면 쓸모없는 사람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히스패닉 사람들이 속어로 쓰는데 그만큼 한번 아프면 다시 사회로 복귀하는 게 힘들다는 이야기다. 의료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미국에 4800만명, 전체 인구의 20% 규모다. 해마다 1만8천명이 해마다 병원 문턱도 밟지 못하고 죽는다. 민영 의료보험에 가입된 2억5천만명의 사람들도 상황도 크게 다르지는 않다. 이를테면 백혈병인데 보험회사가 골수이식을 못하게 하고 치료만 하게 한다거나 의사가 보험회사와 논의 없이 임의로 진료를 했을 경우 진료비를 못 내겠다고 버티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의료 소송이 끊이지 않는다. 의사들은 보험회사에서 시키는 대로 했는데 억울할 수밖에 없다. 보험회사들은 소송을 당하면 맞소송을 걸고 최종 승소하기까지 몇 년씩 걸리거나 중간에 적당히 합의하고 끝내는 경우도 많다."

- 보험회사와 병원이 직접 계약을 맺거나 환자 유인과 알선행위를 허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병원 광고를 허용하자는 주장도 있다.
"실손형 보험이 도입되면 당연히 그렇게 가게 된다. 이를테면 삼성생명에 가입하면 어느 병원에 가야 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결국 병원 줄 세우기가 되고 우리랑 계약을 하지 않으면 환자를 보내지 않는다고 병원을 위협할 수 있게 된다. 지금은 건강보험 심사평가원이 병원과 가격 계약 맺고 심사 평가를 하는데 이제 그걸 보험사가 하게 된다. 보험회사가 병원을 쥐고 흔들게 되고 과소치료 강요하게 된다. 이게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 미국에도 공적 의료보장제도는 있지 않나.
"65세 이상 노인의 경우 메디케어가 있고 저소득 계층을 위한 메디케이드가 있다. 이건 그야말로 최소한의 시스템이다. 메디케이드로 혜택받는 사람은 18% 밖에 안 된다. 나머지는 모두 민영 의료보험에 가입하거나(70%) 아예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한다(12%). 미국 의료 체계도 장점이 있다고 이야기하는 의사들이 있는데 의사 면허증을 찢어버리라고 말하고 싶다. 물론 미국은 응급실에 실려가면 일단 공짜로 치료는 해준다. 평소에는 치료를 못 받다가 거의 죽을 때쯤 해서 응급실 실려 가서 공짜로 치료 받는 게 과연 제대로 된 의료 시스템인가. 그게 과연 의사가 할 말인가. 미국은 메디케어나 메디케이드라도 있지만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을 제외하면 거의 아무 것도 없다. 건강보험까지 무너지면 미국보다 훨씬 끔찍한 상황을 맞게 될 것이다."

- 우리나라도 민영 의료보험이 활성화 되면 그나마 있는 건강보험에 대한 불만이 더 높아질 것 아닌가. 건강보험에서 빠져 나가겠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장기적으로는 건강보험 가입을 의무에서 선택사항으로 바꾸게 될 가능성도 있나.
"극단적인 가정이지만 이명박 정부가 가는 방향이 바로 그 방향이다. 건강보험이 싫은 사람은 민영 의료보험으로 가고 건강보험은 껍데기만 남게 된다. 경제개발협력기구(OECD) 의료보장 수준이 73% 정도다 공립 의료기관 비율은 75% 정도 된다. 우리나라는 보장 수준이 50%, 공립 의료기관은 8% 정도다. 그나마 이 정도 보장이 되는 것은 모든 병원을 비영리 병원으로 하고 건강보험을 의무가입 하도록 하고 병원에는 건강보험 당연지정제를 두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두 개를 날리겠다는 거다. 영리 병원을 허용하고 민영 의료보험을 허용하고 결국에는 의무가입도 깨지게 되는 수순이다. 이른바 강부자, 고소영씨들은 나는 건강보험 안 되는 고급 병원에 가는데 건강보험을 왜 내느냐고 주장할 것이다. 그렇게 상위 12%가 빠져 나가면 건강보험 재정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가뜩이나 열악한 건강보험 재정이 파탄난다는 이야기다."

- 영리병원의 개념을 다시 정리해 달라. 지금도 모든 병원이 다 영리병원 아닌가.
"물론 지금도 병원이 돈벌이에 혈안이 돼 있는 건 맞다. 다만 지금은 병원 안에서 번 돈은 병원 안에서만 쓰도록 돼 있다. 주식이나 채권으로 바깥에 주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병원이 주식을 발행할 수 있도록 하면 주주들이 돈을 벌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도 벌써부터 일부 치과나 소아과가 프랜차이즈 사업을 벌이고 있다. 이런 병원들 보면 의사 말고 코디가 따로 있다. 경영지원시스템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이 환자들에게 추가 진료를 권유하고 수익을 높이는 일을 맡는다. 이를테면 이것도 하나 하시죠, 이런 주사 한번 맞아보시죠 하는 식이다. 극단적인 사례로 미국에서는 영리병원의 경우 신장투석 환자의 사망률이 비영리병원보다 20%나 높다는 통계가 있다. 적절한 시기에 신장이식 수술을 해야 하는데 병원에서는 수술 보다는 신장투석을 추천한다. 신장이식을 하고 나면 병원에 올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장투석을 계속해서 받고 더 많이 죽게 된다. 통계적 오류는 있을 수 있지만 결코 터무니없는 소리는 아니다."

- 영리병원이 허용되면 영리병원으로 전환할 병원은 어느 정도나 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영리병원 허용과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폐지는 동전의 양면처럼 맞물려 돌아간다. 영리병원으로 빠져 나가는 비율을 대략 5% 정도로 예상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자료는 없다. 정부는 별로 안 나갈 거라고만 한다. 정부 역시 아무런 전망도 근거도 없다. 그러면서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근거를 대라고 한다. 우리가 왜 근거를 대야 하는가."

- 영리병원의 진료비는 어느 정도 될 것으로 예상하는가.
"연세대 병원에 외국 환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포리너 클리닉이 있는데 진료 수가가 평균 4배 정도 된다. 감기 치료가 일반 병원은 1만3천원인데 거기는 6만원이다. 약값까지 치면 8만원 정도다. 건강보험을 적용 받으면 일반 병원에서는 약값까지 해서 5천원 정도면 되니까 거의 13배쯤 차이나는 셈이다. 맹장수술 한번 받으면 1천만원 나온다는 게 괜한 소리가 아니다. 지금은 40만원 정도 나오는데 영리병원에서는 13배 이상, 1인실 이용하고 며칠 입원하면 1천만원이 훌쩍 넘을 수도 있다. 지금은 병원 못가서 죽는 사람은 없는데 건강보험 도입되기 전에는 있었다. 그때는 의사 개업하고 2~3년 안에 빌딩 못 올리면 바보라고 했었다. 과연 그게 정상적인 사회인가."

- 그런데 의료 산업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시장원리에 맡겨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시장원리에 맡겨야 경쟁이 되고 서비스도 좋아지고 가격도 내려갈 것이고 터무니없이 비싸게 받으면 환자들이 안 갈 테니 적정 가격이 형성되지 않겠느냐는 논리에서다.
"다시 강조하지만 우리나라는 공립병원이 8% 밖에 안 된다. 나머지 92% 가운데 얼마나 빠져 나갈 것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뱀파이어 효과가 생긴다. 불 껐다가 켜면 누가 뱀파이어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다들 서로 물어뜯으려고 한다. 하나둘씩 빠져 나가다 보면 걷잡을 수 없게 된다. 결국 너도 나도 의료 수가를 올리게 되고 건강보험 수가도 덩달아 압력을 받게 된다. 경쟁을 할수록 서비스가 좋아진다고 하지만 사실 좋아지는 건 의료 수준이 아니라 그야말로 서비스뿐이다. 로비를 넓히고 엘리베이터를 고치고 병실을 꾸미고 그야말로 숙식업소로 가는 거다."

- 건강보험 재정이 열악한 것도 사실 아닌가. 일부에서는 건강보험의 재정 안정화를 위해 보장 범위를 필수의료에 한정하자는 이야기도 나온다.
"필수의료와 고급의료라는 구분 자체에 문제가 있다. 고급의료라는 건 애초에 없다고 생각한다. CT나 MRI 촬영은 처음에는 고급의료였지만 이제는 필수의료가 됐다. 새로운 기술이 평범한 기술이 되는 건 2년도 안 걸린다. 양전자 자기공명이라고 부르는 PET 같은 경우만 해도 지금은 보편화됐다. 고급의료라고 건강보험에서 제외하면 제대로 진료를 할 수 없게 된다. 엑스레이만 찍고 말 것인가. 일부에서는 미용성형이나 보약, 치과진료 같은 걸 이야기하는데 그건 민영 의료보험에서도 안 한다. 그게 계지 무슨 보험인가. 고급의료라는 건 건강보험 축소를 위한 핑계일 뿐이다. 고급의료라는 건 사실 의료영역이 아닐 수도 있다. 민영 의료보험에 가입할 수 있는 능력있는 사람은 제대로 치료받겠지만 건강보험 밖에 가입할 수 없는 사람은 기초적인 치료만 받게 될 수도 있다."

- 의료 산업화가 경쟁력을 높이고 의료수지 적자를 줄일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있는데.
"해외 의료지출이 1조원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건 아무런 근거도 없는 이야기다. 삼성의료원 이종철 원장이 언젠가 인터뷰에서 대략 1조원쯤 될까 이 정도로 이야기했는데 모든 언론이 이를 인용하고 있다. 대한병원협의회에서는 이런 자료 낸 적이 없다고 한다. 보건산업진흥원과 한국은행 추계로는 500억원로 보고 있다. 많이 잡아야 1천억원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원정 출산이 상당부분 포함돼 있다. 그런데 최근 대한무역진흥공사가 1조원이라고 또 듣도 보도 못한 수치를 끄집어 냈다. 오래 된 사기를 새로운 사기로 포장한 셈이다."

- 인구 고령화가 진행되면서 건강보험의 재정적자는 불가피한 상황이다. 대안이 있나.
"필요하다면 보험료를 올려야 한다. 그게 민영 의료보험을 활성화하는 것보다 훨씬 나은 대안이다. 사실 보험료를 안 올려는 대안도 있다. 보험료를 5:5로 내는 나라는 우리나라밖에 없다. 회사가 5, 가입자가 5를 낸다. 대만은 6:3:1이다. 회사가 6: 가입자는 3, 정부가 1을 낸다. 유럽의 스칸디나비아 나라들은 9:1이고 프랑스는 8:2다. 우리나라는 가뜩이나 복지부문 정부 지출이 OECD의 3분의 1 수준인데 건강보험의 재정 적자를 이야기하는 건 우스운 일 아닌가."

- 이르면 올해 5월부터 GMO 식품이 수입될 거라고 한다. 논란이 많지만 아직 GMO가 위험하다는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 않나. 일부 시민단체는 현실적인 이유로 GMO 식품의 수입 거부는 문제가 있다고 보고 수입 거부보다는 표시제도를 강화하자고 주장한다.
"FTA 협상 과정에서 일부 교역 조건을 완화하는 것을 조건으로 GMO 식품 수입을 허용하는 거래를 했다는 증거가 있다. 의류 수출을 위해 GMO 식품을 들여오기로 한 것이다. 유럽은 가공식품이든 뭐든 GMO 식품 첨가 여부를 표시하도록 돼 있는데 우리는 모르고 먹고 있다. 위험성이 밝혀진 바 없다고 하지만 밝혀지지 않은 바도 없다. 토마토를 탱탱하게 보이려고 토마토에 넙치 유전자를 집어넣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정작 위험성을 검사할 때는 이 결합 식품의 위험성을 검사하는 게 아니라 넙치 유전자의 유해성을 검사한다. 그만큼 위험성 검사가 엉터리로 이뤄지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해를 돕기 위해 말하자면 왜 GMO 쌀은 있는데 GMO 밀은 없는가. 몬산토에서 개발은 거의 끝냈는데 소비자 단체 발발이 거세서 잠정 중단한 상태다. 터미네이터라고 불리는 유전자가 있다. 한번 뿌리고 수확해서 다시 뿌리면 안 열리는 유전자다. 특허를 보호하기 위해 종자를 뿌릴 때마다 다시 사도록 하기 위해서인데 문제는 이 유전자가 날아가서 다른 식물과 이종 교배가 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다. 무슨 말이냐면 아예 종자 번식을 못하게 된다는 것이다. 끔찍한 일이다."

- 의약품 특허도 문제 아닌가. 한미 FTA에 외국 제약회사들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조항이 많은데.
"특허라는 게 한 사람이 개발한 과학기술을 무덤까지 갖고 가지 않게 일정 기한이 지나면 공개하고 인류의 재산으로 만들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 이익이 개발한 사람에게 돌아가는 게 아니라 주주들에게 돌아간다. 세계보건총회에서 나라마다 GDP의 몇 %씩 갹출을 해서 글로벌 펀드를 만들고 항생제를 개발하고 특허를 공개해 저렴한 가격에 필수 의약품을 공급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그런데 미국이 반대해서 무산됐다. 더 정확하게는 미국에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들이 반대했다. 세계적으로 완전히 박멸된 질병이 소아마비다.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조나단 솔크가 특허를 포기한 덕분에 세계 어디에서나 이 백신은 100원 정도면 접종할 수 있다. 그런데 제약회사들은 특허를 20년도 모라자 더 연장하려고 한다. 의약품 비용은 해마다 13.5%씩 오른다. 물가 상승률 3.5배다. 몇몇 제약회사의 이익을 위해 세계 모든 사람들이 부담을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 조류독감 치료제 타미플루의 경우가 좋은 사례가 될 것 같다. 정말 중세의 페스트처럼 인류의 3분의 1이 죽는 그런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나. 특허를 공개해서 타미플루를 대량생산을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는데 가능성이 있다.
"학자들은 페스트 못지 않은 위험한 전염병이 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타미플루는 유일한 조류독감 치료제다. WHO는 인구의 15% 이상 타미플루를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권고하고 있다. 문제는 생산이 한정돼 있어 2020년이 돼야 그 정도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량이 나오는 족족 사재기를 해서 구하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우리나라도 40만개, 1% 정도를 확보하는데 그쳤다. 다행히 사스처럼 그냥 지나가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을 경우 끔찍한 재앙이 될 수 있다. 특허를 풀면 좋겠지만 특허를 갖고 있는 회사가 길리아드 사이언스인데 이 회사의 최대 주주이자 전직 최고경영자가 바로 현재 미국 국방장관인 도널드 럼스펠드다. 가만 앉아있으면 돈 벼락을 맞을 수 있는데 이걸 내놓으려고 하겠는가."

- 미국 소고기와 광우병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FTA 찬성론자들은 흔히 미국 사람들 다 먹는 소고기가 뭐가 문제냐고들 말한다. 좀 더 신중한 사람들도 광우병의 위험을 간과해서는 안 되겠지만 지나치게 과장할 필요는 없는 것 아니냐고 한다.
"확실한 건 인간 광우병의 잠복기가 10년이라는 것이다. 영국에서도 광우병이 1988년 처음 발생하고 인간 광우병은 1997년에 처음 나타났다. 미국의 경우 2013년이 돼 봐야 알 수 있다. 영국에서도 농림부 장관이 나와서 소고기 시식도 하고 아무 문제 없다고 떠들어 댔지만 결국 수많은 사람이 죽었다. 과장이 아니다. 언젠가 조선일보 칼럼에서 어떤 대학 교수가 내 아들도 미국에서 소고기 먹고 있다고 말하던데 그 사람은 아마 초등학교 생물학부터 다시 공부하는 게 좋겠다. 10년 지나서 다시 이야기하자. 유럽에서는 미국산 소고기 수입 거의 안 한다. 유럽은 동물성 사료를 금지했는데 미국은 여전히 교차 오염 위험성이 있다. 소에게 돼지를 먹이고 돼지에게 소를 먹이고 그런데 만약 소 안에서 소화되지 않은 돼지를 돼지가 먹고 돼지 안에서 소화되지 않은 소를 소가 먹는다고 생각해 봐라. 위험은 과장되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알려지고 있지 않다. 미국에서 사상 최대의 소고기 리콜 사태가 벌어졌는데 여전히 우리는 소고기 수입하고 FTA 체결하자고 한다. 도대체 미국만 먹고 아무도 안 먹는 미국 소고기를 왜 우리나라는 수입해야 하는가."

- 만약 소고기를 수입해 와도 아무도 안 먹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일본처럼 말이다.
"언젠가 소시지를 마트에서 산 적이 있는데, 햄 말고 밀가루 들어간 길죽한 소시지였는데 점원이 요즘 이런 소시지를 누가 먹느냐고 묻더라. 이런 소시지는 어린이집에서 밖에 안 사간다는 이야기다. 어린이집에서는 가장 싼 걸 먹인다는 이야긴데 놀랍지 않은가. 만약 미국산 소고기가 들어오면 가장 먼저 이런 곳에 들어가지 않을까. 내 자식에게 먹이고 싶지 않은 음식을 다른 자식들에게는 먹인다. 결국 모두가 먹게 된다. 이런 소고기를 누가 수입하는 것일까. 급식업체들인 삼성에버랜드와 CJ푸드시스템 같은 회사들이다. 값싼 소고기를 들여오면 급식비를 내릴까, 천만의 말씀이다. 어디 소고기를 쓰는지 알게 뭔가. 급식업체 뿐만 아니라 식당이나 가공식품 등 곳곳에 들어가게 된다. 결국 그 과정에서 누가 돈을 챙기는가. 미국에서는 다국적 식품회사들, 우리나라에서는 재벌들이다. FTA라는 게 사실 미국의 자본과 한국의 자본이 뜨겁게 연대하는 과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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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1 테러 직후 미국에서는 테러가 발생할 가능성을 파생상품으로 만들어 거래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테러가 발생하면 가격이 오르는 파생상품을 만들면 이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배신자가 나올 것이고 이 파생상품의 가격 추이를 보고 사전에 테러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거라는 이야기다.


시장을 신봉하는 사람들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믿는다. 누군가가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투자를 했다면 실제로 테러가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이야기다. 베팅 규모가 크고 무모할수록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이 아이디어는 거의 실현 단계까지 갔다가 막판에 철회됐다.


파생상품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기본적으로 완벽한 제로섬 시장이기 때문에 이를테면 배럭 오바마와 힐러리 클린턴, 또는 존 매케인 가운데 누가 미국 대통령이 될 것이냐를 놓고 파생상품으로 만들어 거래할 수도 있다. 예측이 맞으면 돈을 벌고 틀리면 날리는 전형적인 머니게임이다.


방법은 간단하다. 이를테면 오바마가 당선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오바마가 당선될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오바마의 당선 가능성과 연계된 파생상품을 팔면 된다. 선거 막판에 가까워질수록 이 파생상품의 가격은 오르거나 내려갈 것이다. 오바마가 당선된다면 이 파생상품을 산 사람은 큰 돈을 벌 것이고 이를 판 사람은 투자 금액을 모두 날릴 것이다. 거꾸로 오바마가 낙선한다면 오바마의 파생상품을 판 사람이 대박을 터뜨리게 된다.


파생상품의 매력은 환금성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선거 상황을 지켜보면서 언제라도 사거나 팔 수 있다. 선거 당일까지 가지 않더라도 이익이 나면 언제라도 이익을 챙기고 빠져 나올 수 있고 손해가 커지면 손절매를 할 수도 있다. 특정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라는 무형의 상품을 사고 팔면서 누군가는 돈을 벌고 누군가는 잃고 누군가는 수수료를 챙긴다.


헤지(방어)가 가능하다는 점도 큰 매력이다. 어디까지나 가정이지만, 만약 공화당이 집권하면 군수물품을 납품하기로 돼 있는 군수사업체라면 메케인의 파생상품을 팔아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미래의 손실에 미리 대비할 수 있다. 이 경우 공화당이 집권하면 사업에서 돈을 벌고 낙선하면 파생상품에서 돈을 벌게 된다.


최근 세계 주식시장을 얼어붙게 만든 가장 충격적인 소식은 세계 최대의 보험회사인 AIG가 신용보험상품의 손실 규모를 크게 줄여서 발표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진 것이다. AIG는 미국 현지시간으로 11일 신용부도스와프(CDS)의 자산가치가 지난해 10~11월 48억8천만달러 가까이 줄어들었다고 미국 정부에 보고했다. 지금까지 알려졌던 손실 규모의 4배에 이르는 규모다.


AIG의 불어난 손실은 서브프라임 사태가 여전히 진행형이고 그 끝을 가늠하기조차 어렵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준다.


문제가 된 CDS란 은행이 기업에 대출을 해준 뒤 빌린 돈을 못 갚게 됐을 때 손실보전 계약을 맺은 보험회사가 대신 갚아주는 상품이다. A은행이 B라는 기업에 대출을 해줬는데 B라는 기업이 돈을 갚지 못할 경우 C라는 보험회사가 대신 갚아주기로 계약을 맺는다는 이야기다. CDS 부실은 곧 기업들과 이 기업들에 대출을 해준 은행들의 부실을 의미한다.


이에 앞서 지난 주말 일본 도쿄에서 열린 선진 7개국 재무장관 회담에서 흘러나온 서브프라임 부실 규모 전망은 훨씬 더 충격적이었다. 페어 슈타인부뤼크 독일 재무장관은 "서브프라임 관련 세계 금융회사가 입게 될 손실이 4천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가 추정하고 있는 1500억달러의 거의 3배에 이르는 규모다.


시장의 공포는 이 천문학적인 규모의 부실이 끝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우려에서 비롯한다. 금융회사들은 막바지에 가서야 숨겨왔던 부실을 털어놓고 있고 부실은 거침없이 연쇄적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지난 20년 가까이 지속돼 온 금융세계화의 귀결이다. 특히 2000년 이후저금리 기조가 계속되면서 집값이 계속 뛰어올랐고 금융회사들은 부동산 대출을 크게 늘렸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론은 신용이 부족한 사람들까지 이 부동산 투기대열에 끌어들였다. 여기에 파생상품의 함정이 있다.


모기지론 회사들은 대출채권을 묶어 주택저당채권(MBS)을 만들어 팔고 투자자금을 회수하고 빠진다. 그리고 다시 부동산 담보대출을 내준다. 주택저당채권에는 신용도가 높은 대출채권과 낮은 대출채권이 섞여 있다. 이를 테면 부도 확률이 1%인 대출채권과 5%, 10%, 20%인 대출채권이 일정 비율로 섞여 있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평균 부도 확률이 8%라면 전체 대출 금액의 92% 이하를 지불하고 이 주택저당채권을 사거나 팔게 된다.


만약 집값이 꾸준히 오르는 상황이라면 아무런 문제될 일이 없다. 부도 확률은 8%를 지킬 것이고 대출 금액의 92% 이하를 지불하고 사들인 주택저당채권은 그만큼 차익을 남기게 될 것이다. 문제는 집값이 오르지 않거나 떨어지기 시작하면 대출 채권의 부도 확률이 걷잡을 수 없이 높아진다는 데 있다. 10%나 20%의 부도 확률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20% 부도 확률의 대출채권 100개 가운데 50개가 부도를 낸다면 이들 대출채권이 포함된 주택저당채권의 부도확률은 8%를 훨씬 웃돌게 된다.


더 큰 문제는 MBS를 묶어 또 다른 파생상품을 만들고 이들이 또 다른 파생상품과 연계돼 부채담보부증권(CDO)이나 CDS 등 완전히 다른 형태의 새로운 파생상품을 만드는 과정에서 부실 규모를 가늠하기 조차 어렵게 된다는데 있다. 위험을 줄였다고 생각하지만 몇 단계 거치면 이쯤 되면 각각의 단위 파생상품의 확률이라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가뜩이나 지금 미국은 60년 만의 위기라고 할만큼 돌발 변수가 확대돼 있는 상황이다. 한 금융회사의 부실이 다른 금융회사의 부실로 연쇄적으로 파급되고 있다. 일종의 폭탄 돌리기 게임인 셈인데 이미 폭탄은 터지기 시작했고 그런데도 게임을 끝낼 수 없는 상황이다.


오바마와 힐러리, 메케인이 각각 당선될 가능성을 파생상품으로 만들고 이를 국제 유가와 연계하고 이를 다시 우리나라의 부동산 가격이나 과테말라의 옥수수 가격과 연계하고 베네수엘라의 테러 발생 가능성과 상관관계를 다시 한번 유동화시키고 나면 오바마의 당선이 이 파생상품에 미칠 나비효과를 짐작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누군가는 돈을 벌 것이고 누군가는 잃을 것이고 누군가는 수수료를 챙길 것이다. 세계 경제는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거대한 머니게임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들었다.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지분형 아파트는 정확히 서브프라임의 닮은 꼴이다. 우리나라가 그나마 서브프라임 사태에서 자유로운 것은 우리나라 금융 기관들의 해외 투자가 많지 않았고 특히 역설적으로 파생상품 투자에 아직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우리나라의 부동산 담보대출은 아직 총부채상환비율(DTI)이나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의 규제를 받고 있지만 지분형 아파트는 이마저도 무력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인수위원회는 미국의 몰락을 아직도 강 건너 불 구경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서브프라임 사태는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과열될 수도 있고 과열이 지나치면 붕괴할 수도 있다는 뼈아픈 교훈을 준다. 이명박 정부가 서브프라임 사태와 세계적인 경제 불안에 대해 최소한의 지식만 있더라도 지분형 아파트를 다시 거론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명박 정부의 정책을 무조건 감싸고 도는 보수·경제지들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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