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광하는 순간 과학은 멀어진다
김명남의 과학책 산책 / 〈문명의 관객〉
이충웅 지음/바다출판사·1만2000원
누가 나더러 가장 좋아하는 책 제목을 꼽으라고 하면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를 꼭 넣겠다.
신문방송학과 과학사회학을 전공한 이충웅씨가 2005년 6월에 내놓은 책의 제목이다.
부제는 ‘‘과학 시대’를 사는 독자의 주체적 과학 기사 읽기’인데 여기에서 방점을 찍을 대목은 ‘주체적’이라는 단어이다. 독자는 매체가 과학을 다루는 방식과 수용자가 보이는 반응을 주체적으로 읽어낸 저자의 시선을 봄으로써 과학 정보에 대한 주체적 사고법을 배운다. 가르치려 들지 않는 글인데도 독자의 뇌세포가 마구 자극되는 것은 저자가 성찰의 결과보다 과정에 집중하기 때문이고, ‘반성적 이성과 타자 지향적 감성의 결합’으로 요약되는 성찰의 비법을 스스로에게인 듯 독자에게인 듯 거듭 다짐하기 때문이다. 그 책이 나왔던 때는 황우석 박사에 대한 대중의 열광이 정점에 이른 시기였다. 그로부터 반 년이 지나 이른바 ‘황우석 사건’이 터졌다. 그제서야 사람들이 책의 제목을 돌아보며 반은 민망해하고 반은 놀라워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문명의 관객>은 저자의 두 번째 책이다.
<시에스아이(CSI) 과학 수사대>와 <닥터 하우스> 같은 드라마, 광우병이나 복제 개 보도에 등장한 동물들의 사진, 애니메이션 <공각기동대>에 등장하는 다치코마 로봇 등이 소재이다.
‘인체의 신비’ 전시회를 생각해보자. 과학이라는 말만 붙으면 무엇이고 교육적이라고 판단하는 학부모와 교사들 때문에 ‘미취학 아동 3000원’이라고 안내가 붙은 전시회이지만, 이것이 ‘미성년자 관람불가’ 영화보다 덜 해롭다는 증거는 어디에도 없다. 실제 시체를 가공 처리하고 저며 만든 모형들이 유럽 어느 나라에서 공개되었을 때, 한 노인은 그 앞에서 통곡을 했다. 한편 우리 전시장에서는 아이가 커서 의사가 되기를 바라며 왔을지도 모르는 부모 앞에서 어린 학생들이 자못 용감하게 보고 만진다. 이 아이들은 대체 무엇을 보는 걸까? 한마디로 ‘그로테스크하다’. 우주과학이 스펙터클의 경연장이 된 지 오래라고는 해도 우리의 ‘우주인 만들기’ 이벤트는 ‘매우 조잡한 스펙터클’이었다는 감상, 서해안 기름유출 사건 때 파도처럼 밀려든 자원봉사자들이 원유의 독성에 무방비로 노출된 채 작업하는 ‘감동적인 장면’ 뒤에는 역사로부터 배우지 못한 한심함이 숨어 있다는 일갈, 촛불집회는 집단지성의 발현이 아니라는 분석 등에도 고개가 끄덕여진다.
과학과 기술에 대한 반성적 비평은 온 국민이 배반포란 무엇인가를 학습했던 황우석 사건처럼 뭔가 굵직한 소동이 있을 때에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하긴 얼마 전에는 온 국민이 인간광우병에 관련해 유전자형이 무엇인가를 학습했으니, 유달리 잘 ‘끌리고 쏠리고 들끓는’ 우리나라에서는 소동이 일상인지도 모르겠다. <문명의 관객>을 읽으면 ‘과학은 열광이 아니라 성찰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과학 정보를 다루거나 수용하는 사람들의 만트라 (진언)가 되어야 한다는 확신이 든다.
김명남/과학책 번역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