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술기획] 민족과 민족주의 ①
[경희대 대학원보 159호] 근대 초기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지배는 ‘민족’의 이름으로 자행한 땅따먹기의 결과였다. 반면 강대국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자 애썼던 식민지의 투사들 역시 저마다 ‘민족’이라는 이름으로 해방운동을 펼쳤다. 민족이란 무엇이기에 이리도 양가적이며, ‘민족’이라는 이름의 유령은 왜 여전히 우리 곁을 배회하는 것인가? 본보는 이러한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민족 개념 다시보기’를 기획했다. 첫째 원고는 다양한 민족 개념을 살펴보면서 세계화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민족’이란 무엇인지를 짚어주고 있다. 둘째 원고는 어떤 형태의 민족주의든 차별과 은폐를 낳는다고 보고, 비민족적 작은 공동체를 살리는 것이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대항하는 길이라고 진단한다. [편집자]
겔너는 그의 고전적 저서 『민족과 민족주의』에서 나폴레옹 시대에 쓰여진 샤미쏘의 소설을 언급하였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자신의 그림자를 잃어버린 사람이다. 겔너는 그 내용에 대해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그림자와 마찬가지로 고유한 민족을 가져야 한다는, 또는 특정 민족에 속해야 한다는 의미로 분석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달리 말해서 민족성은 그림자만큼이나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인간의 속성이라는 인식을 내세운다는 뜻이다. 민족주의자들은 이런 민족의 ‘자연성’과 ‘보편성’을 다시 영구 불멸의 탈역사적 주체로 발전시키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는 세계화 시대에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족이 여전히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사실을 매일 접하게 된다. 2008년 한국의 봄을 달군 화제는 베이징 올림픽 성화 봉송에서 벌어진 중국 민족주의의 폭력적 양상과 이에 대한 한국 대중의 민족주의적 반응이었다. 또 일본에서 독도에 대한 민족주의적 교육 강화에 대한 한국의 민족주의적 대응이었다. 쇠고기 파동의 확산 과정에서도 식품 안전 못지않게 민족적 자존심이 작동했다는 사실은 명백해 보인다. 민족은 여전히 살아 있는 것은 물론 인터넷과 같은 매스 미디어를 통해서 오히려 더 강화되는 양상도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민족’, 근대가 만들어 낸 이름
하지만 민족은 자연스럽고 보편적인 현상도 아니고 영구 불멸의 탈역사적 주체는 더더욱 아니다. 앤더슨은 ‘상상의 공동체’라는 개념을 통해 근대 민족을 설명하고 분석하였다. 과거 혈연이나 지역 단위의 소규모 공동체와는 달리 민족은 서로 한번도 접해 보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을 상상과 인식의 기제를 통해 하나로 묶어주는 역할을 하는 근대적 개념이라는 점을 보여주었다.
겔너는 상기 저서에서 근대 자본주의의 발전과 그에 따른 기능적 필요에 의해 민족이 생성되었다는 설명을 제시하였다. 자본주의의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를 위해서는 민족과 같이 커다란 단위의 대중 사회가 필요했고, 기술을 활용하는 생산양식은 대중적인 교육 제도를 필요로 했다는 말이다. 여기서도 다시 한번 민족은 주어진 것이 아니라 만들어 졌다는 지적이 등장한다.
홉스봄은 『1780년 이후의 민족과 민족주의』에서 개념의 근대성과 역사성을 강조하는 것은 물론 대중으로부터 만들어지는 민족의 의미를 집중적으로 추적하였다. 그는 민족주의 엘리트가 위로부터 강요하거나 확산시키는 민족의 개념 뿐 아니라 대중 속에서 아래로부터 형성되는 개념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민족을 훨씬 장기적인 측면에서 조명하고 분석하는 스미스조차 근대 민족의 기초로 작용했던 전(前)근대의 ‘민족의 종족적 기원’을 강조하지만, 이는 하나의 재료로 사용된 것이지 그 자체가 민족이었다는 주장은 아니다. 대부분의 민족과 민족주의 연구자들은 이들 현상의 근대성에 대해서는 동의하고 있다.
이처럼 민족은 사람이 눈이 두 개이고 코가 하나이듯이 자연스런 속성이 아니라 사회적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기 때문에 무척 다양할 수밖에 없다. 물론 근대라는 커다란 시대적 배경 속에서 성장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을 찾을 수 있지만, 실제로 지구상에는 존재하는 민족만큼이나 다양한 민족의 개념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10인 10색의 민족 개념
서구에서 민족을 논할 때 등장하는 두 가지 대표적인 모델은 프랑스와 독일이다. 19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상가 르낭은 『민족이란 무엇인가』에서 민족의 고갱이는 종족도 언어도 종교도 이익도 영토도 아니라고 역설하면서 ‘민족은 하나의 영혼이며 정신적인 원리’라고 주장하였다. 이 영혼과 정신은 ‘함께 공동의 삶을 계속하기를 명백하게 표명하는 욕구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러나 공동의 문화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십 개의 정치적 단위로 분열되어 있었던 독일의 민족 개념은 혈통과 언어, 풍습과 전통을 중시한다. 프랑스의 의지에 기초한 민족보다 종족적인 의미가 더욱 강하게 담겨 있는 민족의 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프랑스와 독일의 이런 차이점은 전자의 개방적인 속지주의 국적(nationality)법과 후자의 폐쇄적이고 혈통적인 국적 부여 원칙에서 확인된다.
영국은 매우 이른 시기에 근대적 민족을 형성한 잉글랜드와 이에 어느 정도는 대립적인 입장에서 발전한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웨일즈 등으로 구성된 ‘다민족 민족’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역시 앵글로색슨계의 혈통적 문화적 동질성이 지배적인 입장에서 출발하였지만 지금은 다양한 인종과 종족으로 구성된 다문화적 민족이다. 영국이 영토적 기반을 가진 다민족이라면 미국은 인종·종족적 기반을 가진 다민족이라고 하겠다.
동아시아에서도 민족의 개념은 동질적이지 않다. 한국과 일본의 민족주의자들은 두 민족의 영구한 성격, 세계 ‘최고’에 가까운 민족 동질성들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하지만 오구마 에이지의 『일본단일민족신화의 기원』이 잘 드러내고 있듯이 일본은 팽창적 제국주의 시절 자신의 혼혈적·혼합적·다민족적 기원을 강조한 바 있다. 물론 타민족의 지배를 정당화하기 위해 민족 개념이 조작된 결과이다.
한국도 자민족의 장기적 성격과 동질성을 내세우지만 불과 분단 60여 년이 초래한 남북의 거리와 차이는 이 동질성에도 의문을 제기하기에 충분하다. 게다가 최근에는 국가뿐 아니라 민족의 범위까지도 대한민국 국민으로 규정·제한하는 경향이 젊은 층을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는 듯하다. 민족이라는 개념이 가지고 있는 가변성과 유동성, 그리고 우연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한국과 일본과는 또 다른 민족의 개념을 만들어냈다. 사실 중화민족이라는 개념은 청조에서 물려받은 영토의 동질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20세기에 고안해 낸 개념에 불과하다. 중국은 미국이나 영국과 비슷한 다민족 민족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영토성에 기반한 다민족 국가이기에 최근 티베트에서처럼 분열적 양상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국가 분단의 현실이 민족의 분화를 가져오는 대표적인 경우로는 타이완을 들 수 있다. 타이완은 한족을 중심으로 형성된 사회임에도 불구하고 내성인(內省人)과 외성인(外省人)의 대립이 심각하게 나타났고 상대적으로 내성인을 중심으로 독립 성향이 등장하게 되었다. 종족적 문화적 동질성에도 불구하고 국가 단위에 해당하는 민족주의의 생성이 이뤄진 모양이다. 쳔꽝싱은 이를 『제국의 눈』에서 ‘국족주의’라고 부른다.
유럽의 새 옷, ‘유럽 민족’의 탄생
아직 걸음마 단계에 있기는 하지만 유럽연합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정치체(polity)는 이에 상응하는 유럽 민족이라는 개념을 만들어가고 있다. 청색 바탕에 하얀 별이 그려진 깃발과 베토벤의 환희의 노래는 유럽 연합의 상징이다. 유럽 시민들은 5년마다 직접 투표를 통해 유럽 의회의 의원을 선출한다. 기독교민주주의와 사회민주주의 정당은 유럽 전체에 회원을 보유하고 있는 대륙적 규모의 정당이다. 유럽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인간적 얼굴의 자본주의’에 대해 자랑스러워하며 미국과의 차별성을 강조하고 있다.
민족의 형성은 필연이 아니라 우연이기에 초보적인 유럽 민족의 미래를 예측할 수는 없다. 하지만 유럽연합을 중심으로 정책과 정치 활동이 조직되는 현실이 지속된다면 유럽적 민족 정체성의 형성을 동반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인다. 민족은 그림자보다는 - 물론 조명이 여럿이면 그림자도 여럿이지만 - 갈아입거나 껴입을 수도 있는 옷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래서 한 사람이 스코틀랜드인이면서 영국인이고, 동시에 유럽인일 수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대한민국인이며, 한반도인이고, 또 동아시아인일 수 있다.
조홍식 / 숭실대 교수, 정치외교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