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역사연구소에서는 '역사용어사전' 편찬을 위한 제1회 '비교사 집담회'를 개최한다. 아래는 취지문의 주요내용과 집답회 관련 내용이다.
"왜 우리나라에서는 역사가 세 분야인가? 해방 후부터 지금까지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로 나뉘어왔다. 그것은 근대화 과정에서 배우는 주체인 우리, 정체된 동양, 배워야 할 상대인 유럽을 서로 갈라놓았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이 구분법은 세 분야의 학문적 수준을 높이고 각각의 연구자를 키우는 데에 공헌해왔다. 그러나 상호간에 벽을 쌓아 소통이 되지 않은 채 안주해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 큰 안목으로 역사를 바라보는 대가를 길러내지 못하였다.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칸막이를 허물고 서로 소통해야만 할 때가 된 것이다.
한국의 역사학은 (한)국사-동양사-서양사의 3분구조라는 독특한 학문편제를 갖고 있다. 그 안에 있는 우리에게는 당연해 보이지만, 외국의 사례들을 보면 특정의 역사적 형성물임을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해방 직후부터 기본 틀로써 자리를 잡았는데, 일본의 선례를 따른 것이기는 하지만 신생 국가의 발전 전략에 맞지 않았다면 뿌리를 내리지 못했을 것이다. ‘근대화’를 ‘서구화’와 동일시하여 내재적 발전의 가능성을 사전에 차단했던 그간의 인식지평에서 3분법은 서구를 특화시켜주는 동시에 한국(사)학에게는 문명적 근거를 제공함과 아울러 보호막의 노릇을 해주었다. 그것은 유럽중심주의를 함축하면서도 자기정체성에 심리적 안정감을 제공해 주었다.
사실 3구분법은 한국 역사학의 발전에도 크게 이바지했다. 그것은 세 분야의 전문화를 키워 학문적 수준을 높였으며, 정체성을 만들어주어 학계의 형성을 도왔다. 그것은 분과학문체계의 건설이라는 시대적 요청에 잘 부합했으며, 세 분야는 그 체계의 일부가 되었다. 참으로 역사학의 3분법은 우리 ‘근대성’의 일부가 되었고, ‘근대주의’의 한 표현이다. 하지만 그것은 분과학문체계를 통해 굳어져 구조가 되면서 전문화의 대가를 요구한다. 삼분 구조는 역사학 내부에 칸막이를 만들어 역사세계를 잘게 나눔으로써 상호 소통을 힘들게 하고 궁극적으로 통합적인 역사상의 구축을 어렵게 한다. 한국의 역사학은 근대성의 극복이라는 새로운 시대적 요청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역사용어사전 편찬팀’은 연구의 제1차 년도를 끝내면서 비교사집담회를 시작한다. 1차적 목표는 사전편찬의 도움을 받겠다는 것이다. 애초 우리는 낙관적이었다. 외국의 좋은 본보기를 참조한다면 길이 거기 있을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우리는 곧 그것이 ‘옮겨놓을’ 수 있는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우리말로 된 사전을 만든다는 것 자체가 이미 그 용어들로 표상되는 역사세계의 주체가 누구인지를 엄중하게 묻고 있었다. 그 용어들의 상당수는 바다 건너로부터 ‘옮겨’ 왔지만 우리 현실의 일부가 됨으로써 자신의 고향에 대해서도 새로운 물음을 제기할 터였다. 사전의 대표제어가 되는 근대국가, 봉건제, 노예제, 공과 사, 중화질서, 문명, 문화 등의 용어들은 역사세계가 마치 양(洋), 해(海), 만(灣)으로 나눠지면서도 하나인 비할 데 없이 큰 온 바다임을 현현하는 듯했다.
하여 편찬팀은 조금은 어깨에 힘을 주기로 했다. 3인 1조가 되는 발표·토론자를 아예 한국사, 동양사, 서양사 분야에서 한 분씩 모셔 소통의 장으로 삼겠다는 것이다. 대표제어의 집필을 한 사람이 하여 뒤섞임과 넘나듦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면 차라리 염도의 차이를 크게 하여 삼투압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우리는 동일한 사상(事象)에 대한 다양한 접근로의 교착으로 역사학의 3분 구조를 극복할 수 있는 계기까지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 단초는 마련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한껏 용기를 내본다.
따라서 우리 편찬팀은 대표제어의 집필과 그것을 뒷받침하기 위한 비교사집담회를 통해 다음의 두 가지 점을 기대한다. 첫째, 집필 자체가 비교사의 실험장이다. 이런 식의 집필은 기왕의 역사서술에서는 일어날 수 없었다. 한 주제를 놓고 200자 원고지 100매로 동서고금을 아우른다는 것 자체가 집필자에게 미증유의 경험을 가져다 줄 것이다. 역사용어사전의 편찬 자체가 비교사의 흔치 않은 무대가 될 것이다. 둘째, 그런 식의 발표를 놓고 학문영역이 서로 다른 3명의 전문가가 토론을 벌이는 것 역시 흔치 않은 광경일 것이다. 차이를 확인하는 것으로도 족하며, 소통의 가능성을 발견한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우리는 대표제어 가운데 절반 정도인 20여개의 꼭지를 집담회에 올릴 계획이다. 첫 번째 주제로 ‘중화질서’를 잡았다. 발표자는 이 분야의 권위자인 이성규 교수님을, 토론자로는 송기호(한국사, 발해사 전공), 김경현(서양사, 고대로마사 전공) 교수님을 모셨다. 흔치 않은 자리에 많이 참석해 주시기를 앙망한다."(최갑수 서울대 교수 씀)
제 1회 주제 : <중화질서(中華秩序)>
발표 : 이성규(서울대 동양사학과 교수, 중국고대사 전공)
토론 : 송기호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 발해사 전공), 김경현(고려대 사학과 교수, 고대 로마사 전공)
시간 : 6월 15일(금) 오후 3시
장소 :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5동 327호 (철학과 세미나실)
-향후일정-
제 2회. <근대국가> (9월중 예정)
발표 ; 최갑수(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역사용어사전 편찬책임자)
토론자 ; 미정
제 3회. <봉건제>
제 4회. <수취체제>, <토지제도>
제 5회. <공과 사>
제 6회. <귀족>, <신분제>
제 7회. <관료제>, <군주제>
제 8회. <계급>, <노예제>
제 9회. <유토피아>, <종말론>
제 10회. <문화>, <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