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시사
미시사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그것은 '작은 것의 역사' 혹은 '작은 것을 통해 보는 역사'일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에 역사학의 이 새로운 영역의 본령에 대한 오해가 많이 있다. 이를테면 '연필의 역사', '설탕의 역사', '유방의 역사', 그리고 결정적으로 '먼지의 역사' 등등 작은 물체의 역사를 미시사와 동일시하는 일반적인 통념이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역사학의 새로운 대안이 될 것인지 논란이 되고 있는 미시사는 특수한 발생 배경과 연구 방법을 갖고 있는 고유의 분야로서, 그 일반적인 통념과는 거리가 멀다. 미시사란 과거에 실재했던 평범한 '작은 사람들'에 대한 구체적인 관심을 규범화시킨 연구의 경향을 말한다.
실상 역사학은 그 목적이 거대한 역사의 흐름을 파악하려는 것이라 할지라도 연구의 출발점은 구체적이고 개별적인 사실의 천착에 달려있는 종합적 학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시사'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라 하여도 세부적인 사실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존재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관심에 '미시사'라는 이름이 붙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이고, 거시사와의 관련 속에서 미시사의 개념을 이론적으로 정의하려는 시도는 1960년대에 독일의 사회학자인 지그프리트 크라카우어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는 "미시사를 동반하지 않은 거시사는 이상적인 의미의 역사가 될 수 없다"고 말하며 미시사를 위한 변론을 내세웠다. 그에게 있어서 거시사와 미시사를 나누는 기준은 "시간·공간적 단위의 크기"였다. 거시사가 "극단적인 일반성의 통합으로서의 세계사"를 다룬다면, 미시사는 "원자와도 같이 미세한 개별 사건에 관한 연구"를 목표로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기준으로 본다면 방대한 사료에 대한 세밀한 분석에 의존하여 서양 예술에 있어서 르네상스의 독창성을 논증하려 한 에르빈 파노프스키의 저작이나, 18세기 영국 하원의 의석 구성과 선거 과정 등에 대한 세부적인 연구로 18세기 영국의 정치적 구조를 서술하려 하였던 루이스 네이미어의 시도는 대표적인 미시적 역사 연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고전 저작에 주석을 다는 것과 같이, 사료나 사실에 근거하여 아주 미세한 사항까지 철저하게 밝히려고 하는 노력은 모두가 미시사적인 접근 방식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 말부터 의식적으로 '미시사'라는 이름 아래 확고한 연구 방법과 지향점을 찾으려던 일단의 이탈리아 역사가들은 단지 작은 시간·공간적 단위에 대해 세부 사항까지 치밀하게 밝히려는 노력으로서 미시사를 바라본 것만은 아니었다. 역사적 단위를 축소시키려는 그들의 시도에는 단지 인식론적 이유뿐 아니라 정치적, 이념적인 이유도 있었다. 1970년대로부터 시작하여 산업자본주의를 개선시킴으로써 소외된 대중을 해방시킬 수 있으리라는 믿음은 유지하기가 어렵게 되었다. 산업화된 세계 속에서 정치 제도와 대기업과 대중매체는 새로운 기술적 혁신을 받아들이면서 변화무쌍하게 연계하여, 핍박받던 사람들을 구제한다기보다는 그들을 더욱 억압하는 방식으로 작용하였다. 바꾸어 말하면 근대화라는 세계사적인 과정은 인간의 희생을 대가로 이루어졌으며, 더구나 그것은 이른바 '작은 사람들'의 등 뒤에서 일어났다는 것이다. 이렇듯 장기적이고 대규모적인, 즉 거시적인 과정이 해방을 시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억압을 강요하는 것이라면, 그것에 초점을 맞추었던 사회사가 갖는 함축적 의미란 무엇인가?
이러한 종류의 문제를 제기하던 이탈리아의 역사가들이 『콰데르니 스토리치』라는 학술지를 중심으로 하여 곧 미시사라는 이름으로 확립될 연구의 경향을 닦아나가기 시작했다. 1976년에 발간된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저작 『치즈와 구더기』에는 미시사라는 용어가 나타나지 않지만 이 책은 미시사의 새로운 연구 방향을 결정하였다. 1977년 에도아르도 그렌디는 "미시 분석과 역사"라는 논문을 통해 "이례적 정상"이라는 개념을 제시하면서 미시사를 위한 이론적 근거의 하나를 확립시켰다. 1978년에 나온 『콰데르니 스토리치』의 한 권은 "농업 경영과 미시사"라는 특집호로 꾸며졌고, 1979년 1월 로마에서 "아날 학파와 이탈리아 역사서술"이라는 주제로 열렸던 학술대회에서 긴즈부르그와 카를로 포니가 공동으로 발표하였던 "이름과 방법: 불평등 교환과 역사책 시장"이라는 제목의 논문 말미에서도 그들은 미시사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1981년 카를로 긴즈부르그와 조반니 레비는 "미시사들"(Micro-storie)이라는 미시사 총서를 발간하기 시작했다.
이리하여 미시사의 전통은 확립되기 시작한 것이지만, 이탈리아의 미시사가들이 어떤 통일된 방향으로 나아갔던 적은 없다. 그들은 "역사 서술의 실제"이자 "실험적인 작업"에 관심을 두고 있었던 것으로서 어떤 정통적인 학파를 수립하려는 생각을 가졌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활발하게 의견을 교환했지만, 미시사의 선언문 같은 것은 없었다. 독일의 미시사가인 위르겐 슐룸봄이 지적하듯, 이탈리아 "미시사의 경계는 열려 있으며, 미시사의 개념이 엄격하게 정의된 적도 없"지만, "바로 이와 같은 다양성이야말로 오히려 미시사 연구가 갖는 생동감과 생산성을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그런 이유 때문에 미시사가들이 지향하는 바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대표적인 저작이 제기하는 문제점들을 살펴보는 것이 아직도 유용한 방안이다. 물론 그 대표작이란 긴즈부르그의 『치즈와 구더기』이다.
『치즈와 구더기』는 16세기 북부 이탈리아 프리울리 지역의 방앗간 주인이었던 메노키오라는 인물의 전기를 그리고 있다. 메노키오에 대한 이단 심문 기록에 근거하여 씌어진 이 책은 메노키오 개인에 대한 이야기를 넘어 16세기 당시의 고급문화와 대중문화 사이의 갈등을 논하고 있다. 1532년에 태어난 메노키오라는 방앗간 주인은 읽고 쓸 줄 알았으며 마을에서 면장을 지내는 등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그는 치즈 속에서 구더기가 생겨나듯 천사나 신도 우주의 초기 물질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었다는 이단적인 주장을 하며 신이 삼라만상을 만들었다는 기독교의 창조론을 믿지 않았다. 그리하여 고발당한 그는 1583년 종교재판에 회부되어 심문 받은 뒤 2년 동안 복역하다가 다시는 그런 이단을 유포하지 않겠다는 서약을 하고 풀려났다. 그러나 그는 풀려난 뒤에도 다시 이단적인 생각을 말하다가 1598년 다시 고발당한 뒤 이단재판을 통해 처형되었다.
이 이야기는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먼저 이 이야기에는 메노키오라는 실제 이름을 가진 평범한 인물이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바꾸어 말하면 미시사란 하나의 마을, 가족, 또는 개인과 같이 경계가 잘 구획된 현상에 초점을 맞추어 실제 존재하던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을 다루고 있으며, 그 방법은 마치 인류학자가 현장조사를 하듯 면밀히 추적함으로써 그 현상이 지니는 역사적인 의미를 복합적인 사회관계의 그물망 속에서 구체적으로 파악한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치즈와 구더기』는 역사 연구의 방법론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즉 메노키오의 심문 기록을 해독할 때, 우리는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기록은 엘리트 문화의 대표자인 심문관에 의해 작성된 것이므로 그 심문의 대화 속에 담긴 권력구조를 파악하려고 시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시사가들이 평범한 개인의 구체적인 일상생활의 세계를 복원하려고 시도할 때 부딪히는 가장 큰 난관은, 사료가 별로 없을뿐더러 얼마 되지 않는 사료마저도 질적으로 왜곡되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이다. 하층의 농민이나 여성이 연구의 대상일 경우에 이러한 사료의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자신들의 입장에서 쓴 글을 거의 남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문화는 대체적으로 구전문화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미시사가들은 사료를 찾기 위하여 민담, 설화, 재판기록, 특이한 사건기록 등에 관심을 기울인다. 문헌 자료에 의존하고 있는 종래의 실증적인 방법이 엘리트 문화에 접근하는 데 유용할지는 모르지만, 그것은 자신의 목소리를 남기지 못했던 대다수의 평범한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는 통로는 되지 못한다. 또한 이것은 미시사가 인류학이나 민속학과 같은 인접 학문과 밀접한 교류를 유지하고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회성을 지니는 특이한 사건의 기록이 어떻게 그가 속한 집단이나 사회를 대표할 수 있겠는가 하는 질문은 남는다. 이런 질문에 대해 에도아르도 그렌디는 '이례적 정상'이라는 개념으로 대답한다. 모순어법처럼 보이는 이 표현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 질문에 대응한다. 먼저, 범죄자나 이단처럼 주변부에 속하는 사람들은 지배계층에 의해 '비정상'이라고 규정되기 때문에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환경이나 계급문화를 '정상적'으로 대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지배계층은 피지배계층의 사회적 현실을 조직적으로 왜곡하려고 시도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들은 하층계급에 대한 기록을 조작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지배계층에 의해 만들어진 많은 양의 공식적 자료보다는 하층계급 출신의 목격자나 피의자가 직접 남긴 말의 기록은 예외적이고 양이 많지 않다고 할지라도, 그들의 사회현실에 대해 훨씬 많은 것을 우리에게 전해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기록에서 많은 것을 얻으려는 과정에는 또 다른 장애물이 가로막고 있다. 즉, 메노키오의 심문기록처럼 지배계층의 문화와 민중의 문화 사이의 심각한 불일치가 드러나는 기록에서 민중문화의 실마리를 찾아간다는 것은 대단히 어렵다는 것이다. 긴즈부르그는 이른바 '실마리 찾기'라는 독특한 방법을 제시하였다.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이 방법의 핵심은, 역사가의 해석과정은 수학자나 물리학자보다는 의사의 진단에 가깝다는 것이다. 역사학은 마치 의사가 사소한 임상적 징후에 대한 진단을 통하여 파악하기 어려운 환자의 병을 간파하는 것처럼, 겉으로는 의미가 없는 것처럼 보이는 조그마한 실마리를 통하여 그 뒤에 놓인 역사적 실재를 식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방법은 다각도의 면밀한 관찰에 근거한 추론으로서, 지배 엘리트의 문화에 가려진 민중문화의 의미를 읽기 위해서는 사료의 해석방식도 엘리트의 사료를 읽는 것과는 다른 방식을 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미시사적 관심사가 이탈리아에만 존재하였던 것은 아니다. 프랑스의 라뒤리와 뒤파키에 같은 역사가들은 긴즈부르그와 포니 등 이탈리아 미시사가들이 나아가려던 방향이 자신들의 지향점과 유사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러한 미시사적 관심이 체계적으로 구체화된 곳은 독일이었다. 1980년대에 일단의 독일 역사가들은 거시적 구조를 강조하는 '역사적 사회과학'에 반발하며 일반 대중이 경험하고 있는 일상 생활의 조건으로 관심을 전환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일상생활사'(Alltagsgeschichte)나 역사인류학(Historische Anthropologie)을 옹호했다. 이들은 평범한 사람들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면서 거대한 역사의 발전 과정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점에서는 마르크스를 부정한 것이지만, 근대화에 대한 자유주의적 관점을 비판하였다는 점에서는 마르크스의 감수성을 유지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미시사에 대해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 중에는 그것이 종래의 전기와 다를 바가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 미시사 역시 개인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전기와 다를 바가 없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시사에서 대상으로 삼는 개인은 역사의 그늘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져갔던 인물들로서, 그들의 삶을 복원시키려는 이유는 그 보잘것없는 사람들의 삶을 미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미시사가들은 그들의 삶을 통해 상층의 지배문화와 하층의 민중문화 사이의 간극을 밝히며, 그 사이의 갈등과 대립과 절충의 관계를 밝히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즉, 개인들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이되, 그것 자체에서 목적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해 사회적 관계를 추적하려고 시도한다는 것이다.
한편 미시사는 지역의 단위에서 벌어지는 사례의 연구와 다를 바가 없지 않느냐는 지적도 있다. 물론 연구의 단위가 소규모의 지역이라는 점에서 그 둘 사이에는 유사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그 둘은 본질적인 면에서 다른 성격을 갖고 있다. 사례의 연구는 거시적이고 인과적인 틀에 근거하고 있는 주어진 설명에 증거를 제공한다. 그러나 미시사가들은 구체적이고 개인적인 단계에서 벌어지는 인간들 사이의 관계가 역사의 과정에 있어서 실지로 사실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미시사가들은 이미 주어진 설명에 부합하는 예를 제공한다기보다는 하나의 개인적 차원에서의 이야기를 통하여 과거의 세계관을 추적해 가는 방법을 지향한다. 이런 의미에서 사례의 연구는 '증거'의 역사인 반면 미시사는 '가능성'의 역사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역사를 역동적으로 미시적인 수준으로 축소시켜 보려는 시도에도 단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시적인 안목을 적용시켜 도움을 얻을 수 있는 영역이 있는 반면, 거시적인 관점으로 접근해가야 해결될 수 있는 분야도 있다. 미시사의 접근은 역사의 전체적인 모습을 그려내는 데 한계를 갖고 있음이 확실하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가 미시사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것은 그런 한계가 아니라 그것이 역사학에 가져다 줄 수 있는 잠재력이다. 미시사는 궁극적으로 개인들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다룸으로써 역사 자체를 흥미롭게 만들고 있다. 미시사를 한 축으로 둠으로써 이야기체의 역사가 부활하였다. 한동안 역사학은 단지 학자들을 위한 역사로 바뀜으로써 대중들에게서 멀어져갔다. 이제 이야기체 역사의 부활은 독서대중의 관심을 역사학으로 되돌려줄 것이라고 여겨진다.
주요 개념 및 학자
실마리 찾기, 혹은 추론적 패러다임(paradigma indiziario) 다각도의 면밀한 관찰에 근거하여 합리적으로 추론해 나가는 방식으로서, 미시사가들의 기본적인 방법론이라고 말할 수 있다. 탐정 셜록 홈즈의 방식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위르겐 슐룸봄(J rgen Schlumbohm) 독일의 미시사를 대표하는 학자 중 한 사람. 독일 막스 플랑크 역사연구소에 재직하면서 올덴부르크 대학교의 교수로 있음. 그는 1977년 페터 크리테 및 한스 메티크와 『산업화 이전의 산업화: 자본주의 형성기 시골에서의 상업적 상품 생산』을 발간하였고, 최근에는 주로 출산의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이례적 정상(eccezionalmente normale) 1977년 에도아르도 그렌디에 의해 "미시 분석과 역사"라는 논문에서 제시된 개념이다. 미시사의 저작에서 언제나 논란이 되는 사료의 대표성과 관련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론으로서 미시사에서 사용되는 사료는 이례적인 것이지만, 그것은 지배층의 문화로 봤을 때 이례적일 뿐, 그것은 민중 문화의 시각을 정상적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것.
조반니 레비(Giovanni Levi) 카를로 긴즈부르그와 함께 미시사의 대표자의 한 사람. 그러나 긴즈부르그의 저작이 일화에 대한 해석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데 반하여, 1985년에 출간된 그의 대표작 『무형의 유산: 근대로 가는 문턱에서 본 농민의 세계』는 전통적인 사회사의 방법에 더욱 크게 의존하고 있다. 그런 이유에서 그의 미시사는 '체계적 미시사'라고 불리기도 한다. 이탈리아 베네치아 대학교 교수.
카를로 긴즈부르그(Carlo Ginzburg) 1976년에 간행된 『치즈와 구더기』를 통해 미시사의 구체적인 성과를 제시한 이탈리아 출신의 역사가. 그 책에서는 기독교의 오랜 지배에도 불구하고 오래 살아남은 농민들의 민중 문화의 존재를 상정한다. 미시사가 마르크스주의와 결합될 수 있는 방식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미국 UCLA 대학교 교수.
『콰데르니 스토리치』(Quaderni Storici) '역사 노트북' 혹은 '역사 연습장'이라는 의미를 갖는 이 학술지는 1966년에 창간되었다. 미시사가들은 이 잡지를 중심으로 활동을 하였고, 따라서 미시사가들의 의견을 교환하고 종합하며 그 제도적 기반을 구축하는 역할을 하였다.
한스 메디크(Hans Medick) 1984년에 발표된 "보트에 탄 선교사들"이라는 논문을 통해 '일상생활사'의 기본적인 입장을 규정한 독일의 역사가. 클리포드 기어츠로 대표되는 문화인류학의 방법을 모델로 삼았다. 이후 막스 플랑크 역사연구소의 원산업화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라이힝 지방에 대한 지역 연구를 수행하였다.
추천 도서 목록
곽차섭 엮음, 『미시사란 무엇인가』, 푸른역사, 2000.
나탈리 제먼 데이비스, 『마르탱 게르의 귀향』, 양희영 옮김, 지식의 풍경, 2000.
로버트 단턴, 『고양이 대학살』, 조한욱 옮김, 문학과지성, 1996.
리햐르트 반 뒬멘, 『역사인류학이란 무엇인가』, 최용찬 옮김, 푸른역사, 2001.
안병직 외, 『오늘의 역사학』, 한겨레신문사, 1998.
위르겐 슐룸봄 엮음, 『미시사와 거시사』, 백승종 외 옮김, 궁리, 2001.
이진모, "나치의 유태인 학살과 평범한 독일인들," 『역사비평』, 1998 봄.
조지 이거스, 『20세기 사학사』, 임상우·김기봉 옮김, 푸른역사, 1999.
조한욱, 『문화로 보면 역사가 달라진다』, 책세상, 2000.
카를로 긴즈부르그, 『치즈와 구더기』, 김정하, 유제분 옮김, 문학과지성, 2001.
클리포드 기어츠, 『문화의 해석』, 문옥표 옮김, 까치,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