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속 사상] 뇌는 정말 거짓말을 못할까?

 

거짓말탐지기까지 속인 샤론 스톤도 뇌영상 찍어 ‘P300’ 파를 잡아냈다면 꼼짝 못해
사랑도 우울증도 ‘정직한 뇌’로 판별하고 뇌 향상시키는 ‘똘똘한 약’이면 A학점도 거뜬
그렇지만 ‘뇌 프라이버시’는 누가 지켜주나
한겨레

기술 속 사상/(24) 신경과학과 윤리
 

첩보영화는 거의 언제나 배신자에 대한 응징으로 끝난다. 손에 땀을 쥐면서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는 끝날 때까지 누가 범인인지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 속 인물들 중 적어도 한 명은 거짓말을 하고 있을 테지만 원초적 본능의 샤론 스톤처럼 자신의 땀샘까지 통제해 거짓말 탐지기마저 무용지물로 만드는 경우들도 없지 않다. 그렇다면 그들의 땀샘이나 심장 대신 뇌의 반응을 찍어보면 어떨까? 샤론 스톤은 자신의 뇌마저도 거짓말을 하게 만들 수 있을까?

 

거짓말 탐지기 기능을 하는 뇌영상 기법은 몇몇 특수 기관에서 시범적으로 사용되어 왔다. 뇌파(EEG) 중 ‘P300’이라 명명된 파의 경우 피험자가 친숙한 소리, 냄새, 광경을 지각할 때 그 진폭이 달라진다고 알려져 있다. 가령 희한한 모자를 보게 되면 맨날 쓰는 모자를 볼 때보다 그 파의 진폭이 작아진다. 그래서 이 기법은 용의자가 특정 범죄 조직의 세부사항에 대해 친숙한지를 알아내는 데 활용될 수 있다.

 

뇌영상 기법 특수기관에서 시범

실제로 미국의 신경학자 파웰은 그것을 ‘뇌지문’이라 칭하고 최근 10여 년 동안 FBI와 공동 연구한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그 중 하나는 FBI 훈련을 이수한 사람들에게만 친숙한 상황을 주고 피험자의 P300의 변화를 살펴보는 것이었는데 이 실험에서 실제 요원과 가짜 요원이 95%의 신뢰도 하에서 정확히 분류되었다. 물론 이들은 기존의 거짓말 탐지기를 모두 통과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법정에서 막강한 힘을 가진 DNA지문과는 달리 뇌지문은 아직 중요한 증거로서 채택되고 있지는 않다. 왜냐하면 관련 분야의 과학자 공동체가 그 기법의 신빙성을 아직까지는 확신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래 뇌영상 기법은 뇌손상이나 뇌이상을 탐지하기 위해 고안된 장치였다. 하지만 거짓말 탐지의 경우처럼 응용분야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 중 가장 큰 관심을 끌고 있는 것은 뇌영상으로 사람들의 능력, 성격, 감정 상태 등을 알아내려는 분야이다.

 

<사례 1> 한 부부가 이혼 법정에서 논쟁을 하고 있다. 부인은 더 이상 남편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갈라서자고 하지만, 남편은 부인에게 “아직도 나를 사랑하고 있으면서 왜 그러느냐?”고 호소한다. 결말이 날 것 같지 않자 판사가 부인의 머리에 어떤 장치를 갖다 댄다. 그리고 모니터의 영상을 살피더니 곧 판결을 내린다. “기능적 자기공명영상(fMRI) 장치로 검사한 결과 부인의 뇌가 부인의 사랑이 식었음을 입증함으로 남편은 부인의 요구를 들어줄 의무가 있다”

 

물론 이것이 가상의 법정이긴 하지만 사랑에 빠진 뇌에 특징적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예컨대 런던 대학의 인지신경학자들은 사랑에 빠진 사람들의 뇌가 애인의 사진에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를 fMRI로 찍었다. 17명의 참가자에게 자신의 애인 사진과 동성 친구 사진을 보여주고 각 경우에 사랑의 감정이 얼마나 일어났는지를 9점 척도 상으로 점수를 매기게 했다. 그 결과 애인에 대한 사랑의 감정은 평균 7.46점, 친구의 경우는 3.2점이 나왔는데, 사랑의 감정을 느낄 때 내측 도, 전측 대상피질, 그리고 미상핵과 피각 등의 활동이 증가하는 영상이 fMRI로 포착되었다. 아직은 초보적인 수준이긴 하지만 뇌영상이 사랑과 같은 내밀한 프라이버시까지 제공할 수 있는 날이 곧 올지도 모른다.

 

유전자 말고 뇌 프로파일도 입수

정직한 뇌, 사랑에 빠진 뇌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뇌영상 기술이 제기하는 윤리적 쟁점 중 하나는 바로 뇌 프라이버시에 관한 것이다. 사실 이 문제는 유전정보의 프라이버시 문제와 몇 가지 면에서 비교될 만하다. 우선, 뇌정보는 유전정보에 비해 더 구체적이다. 유전정보는 환경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발현되기 때문에 그 최종 산물을 정확하게 예측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운데 반해, 뇌정보는 관련 유전자들이 이미 몇 차례 발현된 후의 정보이다. 가령 유전정보는 “네가 우울증에 걸릴 개연성은 80%”라는 식으로 말하지만, 뇌정보는 “너는 지금 우울한 상태”라고 말한다.

 

» 드라마의 단골 소재 중 하나인 ‘기억상실증에 걸린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도 결국 달라진 뇌로 인해 생기는 관계의 혼란을 다루고 있는 셈이다. 대박을 터뜨린 <겨울 연가>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금 추세로 신경과학이 유전공학과 함께 발전하게 되면 머지않아 직장이나 보험회사에서 유전 프로파일뿐만 아니라 뇌 프로파일까지도 입수하려 들지 모른다. 그러면 뇌의 특정 부위가 남들보다 더 잘 활성화된다는 이유만으로 학업, 취업, 그리고 일상생활에서 차별받는 상황이 벌어질 수도 있다. 이런 측면에서 프라이버시 문제가 유전공학의 전유물은 아니다.

 

하지만 다른 점도 있지 않을까? 유전적 차별을 받지 않기 위해 유전적 조성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있지 않는가? 궁극적으로는 맞춤아기가 그 대표적 사례가 될 것이다. 뇌의 경우는 어떤가?

 

<사례 2> 정주는 ㄱ대학 의대 본과 2학년 학생이다. 정신약물학 기말시험이 하루 앞으로 다가오자 일명 ‘똘똘한 약’으로 불리는 프로버길(provigil) II를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 약은 원래 집중력 장애가 있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약으로 처방전이 필요한 경우인데, 요즘은 시험을 앞둔 수험생들에게도 암암리에 거래되고 있다. 정주는 결국 A학점을 받았다.

 

그동안 정신약물들은 주로 치료 목적으로 개발돼 왔다. 예컨대 항우울제인 프로작과 선택적 세로토닌 재흡수 억제제는 우울증 환자들에게 매우 일반적으로 처방되는 약이다. 수면 장애, 식욕 장애, 성기능 장애 등을 치료하기 위한 약물들도 흔하다.

 

하지만 기억, 학습, 집중력 등을 강화하는 정신자극제처럼 정신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약물들도 최근에 활발히 연구되고 있다. 그 중 가장 많이 연구되고 사용된 약이 집중력을 높여주는 리탈린과 아데럴인데, 원래는 이 약들도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를 겪는 아이들을 치료하기 위해 개발된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는 일반인의 집중력 향상을 위해서도 사용되고 있다. 실제로 미국의 경우 고등학생 10%, 대학생 20%가 이미 리탈린을 불법으로 구입해서 복용한 경험이 있으며, 전세계적으로는 리탈린의 판매가 지난 10년 사이에 계속 증가하고 있는 추세이다. 그러니 <사례 2>는 지금 어딘가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뇌 다쳐 돌변한 범죄자의 윤리는

이런 약물들을 복용하는 문제는 유전자 강화프로그램에 몸을 맡기는 경우와 몇 가지 면에서 비교될 수 있다. 먼저, 후자는 다음 세대로 대물림되는 변화를 꽤하는 경우이지만 전자는 그렇지 않다. 둘째, 후자는 변화의 원천(유전자)을 조작하는 것이라면 전자는 변화의 매개자(뇌)를 조작하는 것이다. 셋째, 약물 복용에는 늘 ‘중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삼킬 수도 있었던 파란약처럼 말이다.

 

하지만 두 강화프로그램에서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윤리적 쟁점은 그것을 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한 차별의 문제일 것이다. 그런 프로그램이 일상화된 사회에서는 ‘원래 두뇌’를 고수하는 사람들이 늘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차별 문제보다 더 근본적인 문제들도 있다.

 

<사례 3> 민수는 원래 다정다감하고 친구들이 많은 대학생이었다. 여학생들에게도 매너 좋은 남학생으로 인기가 많았었다. 하지만 어느 날 큰 교통사고로 머리를 다치고 나서는 친구들과 말다툼을 자주 하고 가끔씩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사고 전부터 친하게 지내던 여학생을 성추행하다 입건된 적도 있다.

 

» 장대익/미국 터프츠대 인지연구소 객원교수
만일 민수의 변호사가 신경과학의 지식을 동원하여 나쁜 행동의 원인이 민수에게 있지 않고 민수의 손상된 뇌에 있다고 강변한다고 해보자. 당신이 판사라면 어떻게 판결하겠는가? 사실, 이 사례는 그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다. 미국 버몬트 주의 철도노동자인 게이지는 1848년 어느 날 건설 현장에서 큰 폭발 사고를 당해 뇌의 전두엽 부분에 쇠파이프가 관통하는 큰 부상을 당했다. 다행히도 목숨은 건졌지만 그 이후로 그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괴팍하고 무책임한) 성격의 소유자로 돌변했다. 그렇다면 사고 전의 민수와 게이지는 사고 후의 그들과 전혀 다른 사람들인가? 민수와 게이지의 행동은 도대체 누가 (혹은 무엇이) 책임져야 하는가?

 

이렇게 신경과학의 발전은 뇌 프라이버시 문제, 뇌 차별 문제, 행동의 도덕적?법적 책임 문제 등의 윤리적 쟁점들을 던져줄 뿐만 아니라 ‘뇌가 곧 나인가?’라는 더 근본적인 철학적 문제도 제기한다. 이 모든 쟁점들은 ‘신경인문학’이라는 이름으로 다뤄질 수 있을 것이다. 누가 아는가? 복제된 인간만이 아니라 복제된 뇌, 강화된 뇌들도 미래를 활보하게 될지.

 

장대익/미국 터프츠대 인지연구소 객원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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